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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에게 물린 날 ㅣ 푸른도서관 47
이장근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6월
평점 :
질문 : 북한 공산당(또는 김정일)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는?
답 : 대한민국 중2가 너무 무서워서.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씁쓸하다. 중학생을 키우는 부모라면 또 가르쳐 본 선생님이라면 저 말에 무리없이 수긍할 것이다. 이 땅의 중학생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는 핵폭탄보다 더 무섭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오리무중. 제맘에 안 맞다고 친구를 팬다. 왕따 시킨다. 양심의 가책 따윈 모른다. 되려'왕따 당할만하니까 왕따시키는 거예요'라고 뻔뻔하게 말 한다. 뉴스에서 연일 중학생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이 시기 남학생은 남학생대로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미쳐 날뛰니 다루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오죽하면 이 무렵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동서고금을 통해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주자고 약속까지 해놓지 않았던가. 성장통이라 당연하게 여기고 그저 지혜롭게 잘 넘기기만 바랄 뿐이다. '엄마도 다 거쳐온' 것을 너희만 더 유난을 떠냐고 아이들에게 역정을 내다가도 요즘 아이들이 우리때보다 더 큰 집채만한 파도와 싸우는 것 같아 입을 꾹 다물고 만다.
껌
지각해서 벌 청소로/껌을 뗀다/ 껌 떼는 칼에 / 힘이 적게 들어가는 놈은/ 뱉은 지 얼마 안 되는 껌/
아직도 약간 말랑말랑하다 / 손이 아프도록 힘을 주어도 / 꿈쩍 않는 놈은 / 오래된 껌 / 돌처럼 딱딱하다 /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 엄마와 살고 있는 / 나도 껌이다 / 엄마 아빠의 아픈 말들이 / 나를 밟고 지나갔다/
점점 납작해지는 나 /
지난 봄에 나는 이장근 선생님의 『악어에게 물린 날』을 보며 많이도 울었다. 애를 학교 보내놓고 시를 읽다간 울고 덮어놓고 또 울었다. 지난 봄 작은애가 중3 올라왔을 적. 내 아이에겐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났다. 큰애도 무사히 잘 지나왔으니, 또 이 엄마가 '눈동자처럼'아들을 챙기니 무서운 일들은 비켜갈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는 공부는 빼어나게 잘 하진 못해도 그럭저럭 '우수(80점만 넘으면 우수하다는 내 기준)'하고 학급 임원도 줄곧 맡고 선생님들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좋은 평을 받았다. 성격이 활달하고 붙임성이 있는 아이라 나는 정말로 작은애 학교 생활에 대해선 걱정 한번도 안 했었다.
그 날 나는 몸살로 신열이 나서 운신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아빠가 없는 틈을 타 작은 애가 내 머리맡에 와서 나즈막한 목소리, 간첩이 접선할 때나 낼 법한 그런 낮고도 음산한 목소리로,
"엄마, 내일 학교폭력위원회 소집한다고 부모님들 부를거래요.
선생님 전화받고 놀라실까봐 미리 말씀드려요."
도둑놈과 눈이 딱 마주쳤을 때처럼 나는 '뭐라구!' 외마디 소리도 못질렀다.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을 뿐이었다. 애는 벌써 제 방으로 쫒아 가고 없었다. 겨우 정신 차려 "이리 와봐..'라고 모기만한 소릴 내었다. 아이는 달려와 사색이 되어 내 앞에 납짝 무릎 꿇었다. 나는 머릿속이 온통 하얀 걸 겨우 수습하여 이윽고 한다는 첫 소리가 이랬다.
"네...네가...때렸니?"
"아니예요! 저는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예요" 란다.
"휴.........." 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애가 때린 게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엄마는 알까
창문에 김이 서렸다 / 안과 밖의 / 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밖이 보이지 않는다 / 밖에서도 / 안이 보이지 않을 거다 / 답답하다 /
생각과 행동이 다른 / 나를 보며 / 답답하다고 가슴을 치던 / 엄마 생각이 난다 /
엄마와 나 사이에 / 김이 서린 거다 / 나도 엄마만큼 답답하다는 걸 / 엄마는 알까 /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한 반 친구가 있는데 이 녀석이 얼마 후에 자기 생일이라면서 돈을 달라고 하더란다. 생일이 아닌 건 이미 알았다고 한다. 생일 운운하는 건 그 아이가 '삥' 뜯는 수단일 뿐. 작은애는 처음엔 "난 너와 친하지도 않는데 왜 내가 너한테 생일을 챙겨야 해? 생일 선물을 주고말고는 내 마음이야! " 하면서 조리있게 반항했다고 한다. (자존심은 있어서 이 부분을 꼭 강조해달라는 아이의 요청에 의해 빨강색으로) 그러자 그 애는 날이면 날마다, 시간나면 시간나는대로 계속 와서 협박과 공갈로 괴롭혔다고 한다. 이미 아이들 거진 반이 어거지로 돈을 뺏긴 상황이었고 돈 줄 때까지 집요하게 공격-일테면 주먹으로 어깨나 신체부위를 계속 때린다거나,지나가면서 책상을 쾅 치거나, 화장실 간 사이 가방을 뒤진다거나, 복도나 운동장에서 이름을 불러 돌아보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손가락 욕을 하거나, 심지어 하교길에서는 다른 반에 있는 자기 패거리들과 우루루 떼지어 다니면서 길모퉁이 으쓱한 곳으로 끌고 간다거나 하는 아주 다양한....-을 하면 사람을 들들 볶아서 학교 생활을 생지옥으로 만든다고 했다. 안 주고 버티면 버틸 수록 고달파지고, 그렇다고 '에라 모르겠다~'하고 한번 돈을 줘버리고 나면 그게 끝이 아니고 줄창 돈을 대줘야 하기 때문에, 아이로는 안 주고 버티기도 무섭고 주기도 힘들어 무진장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제 말대로 담임 선생님 연락이 왔고 나는 학교로 갔다. 가 보니 학부모님이 꽤 많이 모였다. 입학식이나 신학기초 보다 훨씬 많았다. 선생님으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들으니 더 놀라웠다. 가해자라는 애가 우리 반 반장이라니...아연실색... 폭력을 일삼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결손 가정의 아이일거라는 편견과 달리 부모가 멀쩡하게 있었고 교육열도 지대한 사람들이었다. 반장과 심복이라는 애와 함께 둘이서 온 반을 휩쓸며 반 친구를 괴롭힌 것이다. 폭력위원회 소집에 본인이 원하지 않아서 빠진 여학생과 다른 반 애들까지 다 합하면 상당수가 당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이 두 놈한테 꼼짝없이 당했는지.
3000원, 5000원 정도로 뺏긴 돈이 적은 애도 있고 기십만원이 넘어가는 애도 있었다. 즉, 그 애들이 한번에 뺏는 액수가 2~3000원인데 한 번 상납하기 시작하면 주기적, 지속적, 점진적으로 쌓이게 되니까 액수가 큰 것이다. 1년 넘는 세월동안 빼앗긴 애도 있었다. 가해한 두 아이의 부모 네 사람이 우리에게 무릎 꿇고 울면서 용서해달라고 빌자 '자식 키우면 그럴 수도 있지' 눈물에 약해져 급기야 큰 피해 당한 것도 아닌데 폭력위원회 조직하고 어쩌구 하면 번거로우니까 그냥 묻어주자는 말도 나왔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지난 해부터 친구 삥 뜯고 때리는데 재미를 붙인 애들이 이젠 간댕이가 커져서 온 반을 불법천지로 만든게 어찌 가벼운 일이냐고 반문했다. 지금까지 이런것도 모르고 애를 학교 보낸 것도 어른들 잘못인데, 사태를 알고도 묻어둔다면 우리 애들한테 '정의는 죽고 없다'라고 가르치는 것밖에 더 되냐고 했다. 하필 가해 피해 부모가 한자리에 있다보니 가해 부모가 빈다고 무릎 꿇었으면서도 내 얼굴을 쏘아보고 있어 가슴이 선뜩했다. (진정으로 무릎 꿇었다면 쏘아보진 않았을텐데..)
그때 한 엄마가 울부짖었다. 지난 해 아이가 너무나 심한 폭력과 왕따로 시달렸고, 담임과 교장에게 몇 차례 건의를 해도 뾰족한 수없이 그냥 당하기만 하고 살았노라고, 폭력은 눈 감아주면 더 크게 돌아오니 할 수만 있다면 이 참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해내자고 마음 모았다. 일이 완전히 해결되기까지 한 달 정도가 걸렸는데 몸도 마음도 무척 힘든 기간이었다(아무리 다이어트해도 안 빠지던 살이 그때 3kg이나 빠졌다). 궁금해 할 분들을 위해 결말을 잠시 말하자면, 강력한 형사고발조치는 그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접고 정학 및 '자진해서 전학'가도록 요청했고 그렇게 판결났다. 생기부에 나쁜 이력을 남기지 않는 퇴출조치였다. 그 아이들에겐 기회를 한번 더 주는 셈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용서되지 않으며 부모가 아무리 무릎 꿇고 울어도 지은 잘못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 학교를 떠나 가서는 부디 새출발 하길 바랐다. 우리 시에서는 아무 학교도 받아주지 않아 멀리 시골로 퇴거신고를 해서 전학갔다고 들었다. 그애들 패거리들이 다른 반에도 더 있어서 두 아이가 전학가고도 사고가 터져 두 명 정도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두 차례 강경 조치로 인해 그동안 골머리를 앓던 폭력은 교내에서 사그라 들게 되었다.
변신
클립의 한 부분을 눌러서 구부리면 / 하트 모양이 된다 / 두 부분도 아니고 딱 한 부분/
"열려라 참깨!" / 알리바바가 도적들의 보물 창고를 열어주던 주문처럼 / 내게도 나를 변화시킨 / 한 마디가 있다 /
올해 처음으로 교사가 된 영어 선생님 / "믿는다!" / 딱 한 마디만 했을 뿐인데 / 가슴이 뜨거워졌다
비로소 학교에는 평화가 찾아와 애는 까칠하게 굴지도 않고 예전처럼 까불고 웃고 그랬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으기 안심이 되면서도 나는 우울해졌다. 아이가 마음에 그런 고통을 앓고 있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최선을 다해 키우고 있으니 내딴엔 애 잘 키운다는 자만에 빠졌던 것이 가슴을 후벼팠다. 그때 집어든 책이 바로『악어에게 물린 날』이다.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장근 선생님이 지은 청소년시집이다. 세상엔 시집이 세고 셌으며 어린애가 보는 동시집도 흔해 빠졌는데 어째서 청소년 시집은 잘 없는 걸까? 어른들은 말로만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지, 진정으로 그 질풍노도를 잠 재우고 위로해줄 방법은 간구하지 않는단 말인가. 하루도 가만있지 못하고 마음이 울렁대는 청소년들이야말로 시를 읽어야 한다.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아이들은 시를 읽으며 위로 받고 마음을 정화시키고 새힘을 얻어야 한다. 선생님 시를 읽어보면 아이들 눈높이에 마치 맞다. 처음에 나는 아이들이 직접 쓴 시인줄 알았다. 어른답게 선생답게 가르치려 들지 않고 아이들 있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놓았다. 그래서 힘이 있다. 읽으면 위로가 된다. 속이 후련하다. 그러면서 역시 힘들어도 바른 길로 가는 것이 옳다는 깨닫게 된다. 착하고 예쁜 마음을 가져야 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악어에게 물린 날
책상 위에 놓아둔 스테이플러가
악어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놈이 물고 간 자리에는
이빨이 박혀 있다
....중략.....
오늘은 내가 악어에게 물렸다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피웠다고
생활지도부에 불려 갔다
아무도 나의 결백을 믿어 주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과 친하다는 이유로
한통소으로 묶여 버렸다
겨우 오해가 풀려 이빨은 빠졌지만
집에 걸오오는 내내
마음에 구멍 두 개가 뚫긴 기분이었다.
어제는 작은 애 졸업식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를 무사히 보내고 드디어 졸업했다. 작은 녀석은 졸업하는 날까지도 지각할까봐 뛰어갔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아이는 입던 교복을 한 반 여자애한테 준다고 꿈지럭거리며 싸고 있었다. 그 여자애는 내년에 남동생이 우리 학교에 입학한다고 얻어 입힐거란다. 참 야무지고 어진 누나이다.
"차 조심해서 길 건너. 설마 마지막 날인데 벌 주시겠어?"
"에이~엄마도 참! 벌 받기 싫어서 뛰는 게 아녜요. 마무리를 잘 하고 싶은거지!"
하면서 베란다에 서서 소리치는 나에게 손 한 번 흔들고 번쾌같이 뛰어가고 없었다.
보호색
친구야 / 슬플 땐 울어 / 내가 어깨 빌려 줄게 / 내 앞에서까지 / 웃으려고 애쓰지 마 /
네 웃음이 보호색이라는 거 / 알아 그러나 난 / 천적이 아니잖니 / 네가 울면 / 같은 색으로 울어 주는 /
친구잖니 / 내가 바로 네 / 보호색이잖니
졸업식에 애를 먼저 보내고 나는 머리를 감으면서 좋은 생각이 났다. 그때 함께 당했던 친구들에게 뭔가 선물을 해줘야겠다는! 돈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일 해결할 땐 시도때도없이 상담실로 불려가서 진술을 하고 진술서를 썼던 우리 애들. '어휴~넘사시러버서 못 살겠다. 어째서 내 자식이 매나 맞고 다니고 돈이나 뜯기냐? 밥은 뭐러 먹어? 밥값도 못 하는 자식아~차라리 때리고 다녀라! 등신같은 자식아! 내가 치료비 다 대 줄게! 사내자식이 어디 맞고 다니냐!!'하는 소리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로부터 들은 아이도 있다고 들었다. 그 부모는 아이를 두 번 죽인다는 걸 알기나 하는 걸까. 우리 아이들이야 말로 이런저런 상처를 가장 많이 받았는데 위로는 못 해줄 망정.......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부디 이번 일로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허용되어선 안 되며 불의를 눈 감지 말고 지혜와 힘을 모아 끝까지 싸워야 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좋은 세상은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모두들 힘든 고비 잘 넘기고 쑥 자라길 바란다. 그런 뜻에서 나는 악어 시집을 부랴부랴 사러 갔다. 진작에 생각했으면 알라딘에서 미리 주문해두는건데, 서점 두 군데를 뒤져 원하는 권수를 맞출 수 있었다.
이제 각기 다른 고등학교로 다 흩어진 아이들, 앞으로 공부하느라 힘들 때 간간이 여기 실린 시로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다. 20120211ㅁ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