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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국

                                                  - 공광규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공광규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1986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대학일기}, {마른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실천문학사 1996
{아름답게 사는 법} 북토피아 2003
{소주병} 실천문학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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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공부하다보면 가끔은 시가 누군가의 가슴에 파고들어가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김용택의 고추밭'의 곁가지로 짚을 시를 고르다가 눈에 띄었을 때, 내게도 느낌이 좋았지만 

여섯 명의 아이들이 함께 낭송하는 가운데 유난히 한 아이의 목소리에서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시는 이래서 힘있다. 

 

2009.1. 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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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1-0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참 좋은시로 새해를 여셨군요.
아이들과 이런 시를 함께 낭송하는 진주님, 여전하셔서 보기 좋습니다.
전 요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을 쉬고 있어요. 한 일년 되었네요.
좀 염증을 느꼈다고 할까요. 게으름이 발동해서이기도 하구요.
근데 멀덕국이 뭐에요?

진주 2009-01-05 15:49   좋아요 0 | URL
충청도 사투리로 건데기는 별로 없고 국물만 많은 국을 멀덕국이라고 부른다고, 혜경님께서 물으시길레 혹시나 싶어 검색까지 해봤어요ㅎㅎ 저도 같은 경상도 사람인데도 별 어려움 없이 저 낱말을 단박에 알아 묵었는데 아마도 부산보다는 충청도에 더 가까운 데서 살아서 그렇지 싶어요ㅎㅎ

저는 수업을 쉬는 게 아니고, 완전히 끊었죠.
행여나 다시 해야할 일이 생길까봐 자료들 몽땅 다 버렸구요..
지금은 수업은 아니고 그냥 아이들과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거죠. 제 손길이 필요한 곳도 있다고 하네요..

프레이야 2009-01-05 19:22   좋아요 0 | URL
저도 정확히 말하면 끊었어요. 자료도 버렸구요.
어정쩡하게 하기는 싫어서요. 조금만 하라고 만류하였었는데..
그냥 진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니 더 좋으네요.^^
멀덕국, 그거 재밌네요. 듣고보니 딱 어울리는 이름이에요.ㅎㅎ

라로 2009-01-05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도 좋지만 님의 대문글에 공감해요~.
기도,,,요즘 저의 화두거든요~.
배워나가야 하는거죠~.

진주 2009-01-05 15:55   좋아요 0 | URL
5만번 이상 기도 응답받은 죠지뮬러의 말이지요^^
기도라는 말은, 추상명사에 형이상학적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개념으로 분류되겠지만 실제로는 아주 현실적이며 눈에 직접 보이는 결과물을 낳게 하는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고 손에 잡히는 행위임을 죠지뮬러를 통해 다시금 깨닫지요. 저도 잘 배워보고 싶습니다^^ 나비님 방가방가~
 

 

남 눈치 안 보고 빈둥거리기 가장 좋은 곳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물리적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나,

정신적 공간은 거의 무한하다.


깊은 바다를 어슬렁거리는 물고기처럼,

또는 막막한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인처럼


모든 움직임이 무의미하고 자유롭고 또 아름답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서가(書架) 사이를 이리저리 거니는 모습은

마치 해초들 사이를 하릴없이 헤집고 다니는 물고기 같다.

그곳에서 꼭 책을 만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래된 책의 곰팡이 냄새를 맡아도 좋고,

높고 낮은 책의 키들과 그 색깔, 두께 등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



또는 책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책등의 제목들에서 흥미로운 단어들을 만날 수도 있다,


마치 자갈밭에서 예쁜 자갈들을 줍듯이.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 이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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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2-0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하필 제목이 보르헤스일까요? 이 시를 쓸때쯤 이 사람이 보르헤스랑 사귀고 있었을까요? ^^ 아 저도 보르헤스든 누구든 상관없으니 하루종일 저렇게 도서관에서 만나고 싶네요. ^^
 

 

자화상

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어느 해 겨울 끄트머리쯤. 내 주방의 작은 창으로 은행나무 새순을 찍으려 했나보다(많이 흔들렸다-그래서 차마 '찍었다'라고 말 못 한다.)

 신현림이 그러했던 것처럼 울음 끝에 무너진 슬픔이 한 줌 흘린 희망 하나, 작은 창은.
 비록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켜켜이 쌓인 슬픔의 무게에 갇혀 있었다.
 설거지하며 바라보는 내가 만든 아주 작은 창문-은행 새순.

 

# 이골나서 다시는 안 하려고 했는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또 다시 아이들과 마주 앉았다. 다른 점이라면 무료로.

목소리 가다듬고 차분하게 읽어 주었다.

눈만 꿈뻑꿈뻑...내 그럴 줄 알았다. 뇬석들~

시인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늬놈들 가슴패기를 울릴 때까지 나는 읽고 또 읽을거라고 했다.

두 번, 세 번....

그 후, 우리들은 '울음'과 '슬픔', '좌절', 등에 대한 경험들을 나눴고

'희망'과 '길'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으며

'여자'와 '싱글맘' 또 '최진실' 이야기까지 나눴다.

 

아...난 이래서 또 빠져들고 만다.

흑머루같이 새카만 눈동자가 반들반들하다가 촉촉하게 잦아들던 그 녀석들에게...

 

2008.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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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11-22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음 끝에 길이 보이는 것, 알 것 같아요. 길이 보이는 것 같을 때, 그 때가 울음을 겨우 그치는 때 아닐까요.
까만 눈동자들 사이에 저도 앉아 있고 싶으네요.

진주 2008-11-25 15:01   좋아요 0 | URL
울고싶은만큼 실컷 울어보자구요, 뭔 길이 열리려나..^^

Mephistopheles 2008-11-2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내용이건 기쁜내용이건 배춘몽여사님의 글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반가울 뿐입니다.^^

진주 2008-11-25 15:03   좋아요 0 | URL
진짜로 반가우신 겁니까? ㅎㅎ
저는 영 힘들어요. 마음이 아주 편하지만은 않아요...
하기사, 무엔들 안 그럴까요...
오프라인에서나 온라인에서나 내 맘에 꼭 들고, 내 몸에 꼭 맞는
그런 집이 어디 있을라구요^^
 


/바람꽃

 

꽃 진 자리에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문태준...


 

/060420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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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2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진주 2006-04-2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의자에 조용히 앉고 싶은 날입니다^^

치유 2006-04-2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 두는 일..

실비 2006-04-21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히 생각하고 싶은날.

진주 2006-04-21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실비님, 꽃 진 자리에 조용히 앉아 생각하려면....
우선은...
몸무게부터 좀 줄여야 겟지요? 하핫^^;;;;;
 


나무에 깃들여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정현종...


==========================

토요일 오후, 이 짤막한 시를 우리는 두번 세번....연거푸 감상하였다.
처음에는 넓직한 벌판에 당당하게 선 아름드리 나무가 심상으로 그려졌다. 
그 다음엔 나무에 깃들인 새들이 즐거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듯 말듯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낭송했을 때는 코 끝에서 상큼한 풀 냄새가 아련히 묻어나고 꼬물꼬물 벌레들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 나무로 말미암아 숨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쓰읍.........휴우..........................................

쓰으읍..........휴우......................................................

시험공부에 찌들린 조그만 어깨들이 펴지며 크게 크게 심호흡을 하는 것을 보았다. 비로소 우리는 몸도 마음도 나무에 깃들여졌다. 시 한 편의 기적.

060417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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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1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mong 2006-04-17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늘바람 2006-04-1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입니까 그림입니까 너무 좋네여. 나무에 깃들여 산다. 좋네요

잉크냄새 2006-04-1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뿐이겠나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깃들여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니까요...

진주 2006-04-17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무가 나무나무 좋아요^^ 만두님, 몽님.

하늘바람님, 사진 같은데요?

잉크냄새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깃들여 살아 가게 자주 좀 나타나시지요...서재동네에 바람처럼 다녀 가시나요? 너무 뜸하시더군요^^

2006-04-18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