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장난감 日記
현태준 지음 / 시지락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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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는 리뷰어는 이 책의 저자 만큼이나 장난감에 미친 인간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학생사 문방구로 장난감, 고전 프라모델, 빈티지들을 사러 갔다가 그 문방구 역사 40년 지기, 주인이신 차 사장님의 권유로 이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차 사장님께서는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가 실린 이 책을 '꾼'인 나에게 읽히고 싶으셨나 보다. 28세의 남자 대학생인 나는 프라모델과 장남감 류를 사기 위해 그 초등 학교, 학생사 문구점을 무려 6회나 방문 했으니, 차 사장님이 이런 나를 '꾼'으로 본 것은 당연한 아니, 정확한, 제바로된 선견지명이었다. 대화는 무려 다음 손님이 문방구 안으로 들어오기 까지 거의 20분 이상 지속 되었다. 아마도 다음 번에 내가 그 학생사 문방구를 방문하게 되면 난 차 사장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소기의 목적 달성... 오래된 빈티지 장난감을 여러개 구입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본인이 쓴 이 서두가 이해가 될 것이다.)

  각설하고서 다음은 책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살면서 노란색 표지의 책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전체가 노란색 바탕의 표지로 되어 있는 책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내 인생에 있어서 노란색으로 꾸며진 책은 이 책이 네번째이다. 첫번째 책은 고등학교 때 수학 능력 시험 외국어 영역을 위해서 암기한 우선 순위 영단어, 출판사 비젼, 두번째로는 소설가 이외수 씨의 '감성 사전', 세번째로서 강원대학교 문장 작법 교양 과목의 수업 교재인 '글씨기의 원리와 실제' 북스힐 출판사 였으며 대망의 네번째 책은 바로 이 책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이다. 왜 이 책들은 색상이 노란색인가? 노란색 병아리 색깔, 가장 유치한 색, 아이들의 노랑 우산 색상으로 책의 표지 바탕을 꾸민 것은 이 책의 성격을 극명하게 단적으로 드러낸다. 소위 이중적인 가치관과 윤리관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지 못한 '차일드어덜트(childadult)'나 '피터팬 신드롬(peterpan syndrom)'의 미성숙한  어른의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어른들이 장난감을 좋아해서는 안되는 것이 통념적인 한국 성인 사회의 문화이다. 아마 일반적인 회사라면 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이 좀 이상하게 취급 당할 지도 모르고 왕따 내지는 별스러운 인간 대접 받기가 쉽상일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장난감을 갖고서 노는 어른을 욕하는 그 어른들이 자신의 아이들이나 다른 친척, 친구의 딸, 아들 생일 날에 선물로 바로 그 장난감을 선물하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자녀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아주 즐거워하고 잊혀져 있던 자신의 어릴적 추억을 떠올리며 새삼 감회에 젖어들곤 한다. 이 것은 바로 자신의 감추어진 욕구에 대한 대리 만족이다. 자신이 장남감을 갖고 논다고 생각을 해 보자. 장인, 장모가 아님 아버님, 어머님이, 동창회의 친구들이, 친목회의 회원들이 회사의 동료가 이런 자신을 어떻게 생각 할지를!!!??? "이런 망할 자식! 돈 벌 시간에 애들처럼 하찮은 장난감이나 갖고 놀다니!!" 이건 끔찍한 일이다. 사회적 지탄, 손가락질, 뭐! 매장 당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은 어른의 신분과 책임감을 망각한 행동으로 참으로 경거망동한 일탈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욕하는 약은 어른들 중에는 아들이 변신 합체 로봇을 가지고 놀 때 옆에서 몰래 함께 놀아준다는 명목으로 어린 아들보다도 더 어리게 장난감을 갖고서 논다. 그리고 장난감 총으로는 세워둔 인형 표적을 맞추어 쓰러뜨린다. 또 어떤 엄마는 자기가 갖고 싶은 '바비 인형'들을 자신의 딸에게 사주곤 남들 몰래 뒤에 숨어서 "키득 키득" 웃는다. 어린 아이들 보다도 더 재미있게 웃음 짓고 있는 어른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어른들이 차라리 다음에 말할 어른들 보다 더 사회적으로 건전한, 바람직한 모습들일 것이다.

  어른들의 문화는 노름, 술과 담배, 저질스런 요정 문화, 창녀촌, 조기 축구, 과도한 운동 등의 과격한 마초적 남성 자기 파괴 행동, 혹은 노래방이나 단란 주점에서 육체를 파는 행위들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 문화는 이렇게 엄격히 구분이 되어 있다. 건전한 장소에서 남들을 꾸짓고 욕하는 문화와 자신만이 몰래 숨어서 더러운 것들을 즐기는 문화로... 그리고 돈과 성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정신없이 살아가기를 사회 문화는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룩한 많은 훌륭한 부분들이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 사회는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의 산업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이면에 우리가 잊고 살아온 것에 또 다른 산업적 측면과 생산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바로 일본은 우리가 하찮게, 갖잖게 여긴 것들을 가지고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매니아, 오타쿠, 오소쿠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대중 문화의 세계적 강국이다. 한마디로 우리 나라와 일본은 여러 측면에서 레벨이 다르다. 쨉이 않된다. 그런 대중 문화의 시장에 있어서 규모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인구가 일본이 2배 이상이니! 그 것도 한 원인이 될 것이다. 단지 그 것만이 차이 발생의 원인인가? 리뷰를 하는 당사자의 의견은 이렇다. 우리 사회는 남과 다른 가치관을 추구하거나 조금 다른 의견을 갖은 자들을 참지 못한다. 모든 인간이 나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 보편적인 인간, 사회적으로 건전한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실리보다는 대의 명분과 명예와 체면과 허례 허식에 관심이 많다. 윗사람의 눈에서 벗어나면 개밥그릇을 차는 신세가 되기 때문에 쥐 죽은 듯이 잠자코 있어야만 하는 발바리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겉으로만 말 잘듣고 착한 아랫 사람은 결국 그 윗 사람을 욕하는 '수동 공격적인 태도'만을 키워 나게게 된다.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 개성을 찾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중적인 가치관을 갖고서 이야기를 한다. "그 것도 직업이 될 수 있느냐?!", "니가 정상적인 어른이냐?!" 등등 아마도 현태준이란 사람에게 우리는 두가지 시선으로 그를 대할 것이다. 겉으로는 그 사람이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를 그 사람 앞에서 입에 사탕 발림으로 말을 하고 뒤 돌아서면 그를 욕한다. "나이살 처먹고 저게 뭐하는 짓이야!?" 라고. 이런 이중적인 문화적 가치 판단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신의 삶을 시간들을 행복하게 쓰는 그를 보면 참으로 본 받고 싶다. 똑같은 직업과 똑같은 명예만을 위해서 모두가 인생을 소비해서는 않되는 것이다. 이런 매니아, 오타쿠, 오소쿠 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적 소양을 갖추게 될 때 하위 문화의 강국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되는 것의 밑바탕, 근본, 저력이 되는 것이 아닌가? 만화가 아이들만을 위한 산물인가?! 장난감이 어린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어불성설이다. 새로이 등장하는 고차원적인 장난감을 개발하는 당사자는 어른이다. 그 것을 만드는 자가 그 것에 대한 본질을 더욱 잘 알고 있지는 않을까? 단언 하건데 장난감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당당히 하나의 하위 문화로서 인정되어야 하는 사회적 현상, 부분인 것이다. 즐거움은 삶의 정신 건강에 좋은 자극을 준다. 그것이 어린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이 책은 이런 척박한 한국의 이중적 사회 문화에 위배되는 도전장을 낸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필두로 해서 새로운 서적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와야만 될 것이다. 또 현태준 씨는 이 책 이후에 또 다른 책들을 기획해서 자꾸만 새로운 시리즈 물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더 세분화하고 더 방대하게...그 것은 그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사명감과 소명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배려이기도 하다. 매니아, 오타쿠, 오소쿠로서 이 글을 쓰는 자도 조만간에 관련 분야의 책을 출판해 낼 것이다. 우리가 우리것에 대한 문화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계속 되어온 문화 종속을 벗어 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빙해서 보여주는 일본의 만화 영화를 우리 것인냥 속인다 해도 그 내용에 반영된 일본 문화, 일본인의 정신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만들어 낸 그들의 것이지 우리의 것은 아니다. 만화의 가치와 장난감의 가치, 코스튬 플레이 등의 놀이 문화의 가치에 산업적인 성공을 거둔 일본이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볼 때 이런식의 하위 문화의 특정 영역에 대한 전문적인 수집과 정리, 자료의 기록과 보존은 참으로 칭찬을 해야만 할 긍정적인 일인 것이다. 관이 주도적으로 이런 것에 대한 박물관과 기록의 역사 보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그 것은 문화 강대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장남감 박물관의 성대한 개관이 있다면 그 최대 기여자 중 한 사람은 바로 현태준이란 인간이 될 것이란 생각이든다. 조만간에 그를 한번 찾아가 봐야 되겠다. 재미있는 별스런 인간 현태준 재미있고 별스러운 인간 심재윤이... 

  문화 강국들이 튼튼한 주류 대중 문화를 소유하고 있음은 그 밑에 막대한 소수의 다양성 추구가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여러 다양성들이 전문화 되고 포용이 되는 세상이 진정한 문화 강국의 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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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률 VOCA 어원편 - 테이프 6개
이찬승 지음 / 능률영어사(참고서)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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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물리적인 특성을 살펴 본다면...  6개의 파란색 테잎이 커다란 흰색 케이스에 3개씩, 3개씩 정성스럽게 담겨있다. 책을 펼치듯이 열면 양 쪽에 대칭적으로 나란히 테잎들이 위치해 있다. 이 하드 케이스가 아주 만족스러운데 우선은 이 테잎의 본 책인 '능률 VOCA 어원편'과 디자인 컨셉이 동일하다. 책도 흰 색으로 깔끔한데 테잎의 하드 케이스도 그에 맞추어서 흰 색으로 깔끔하게 잘 나왔다. 이러저런 테잎 교재를 많이 사용해 본 사람으로서 특별히 테잎 교재들을 구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바로 이 하드 케이스의 유무이다. 만일에 하드 케이스에 제대로 담겨 있지 않고 그냥 테잎만 달랑 주는 책들의 경우 반드시 테잎을 훼손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첫째로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몰라서 전체 테잎 중 하나나 두개를 찾기 위해 온 집구석을 뒤져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둘째로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테잎을 의자 다리로 눌러서 폭파시킨다거나 거대한 엉덩이로 눌러서, 혹은 밟고 지나가 깨트려 버리는 경우가 비일 비재하게 생긴다.

셋째로 공부를 지지리도 않하는 조카들이 놀러와서 공부하는 테잎을 우습게 여겨 분해 한다거나 던지면서 논다.

  애석하게도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위에 나열한 경험, 모두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하드 케이스에 예쁘게 담겨진 테잎 교재를 선호 하는데 그냥 그대로 책꽂이에 다른 책들 속에 꽂아 두면 원상태 그래로 보존도 되고 듣고 싶을 때 손쉽게 듣고 정리 정돈도 되면서 자동적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또한 하드 케이스가 없이 오는 테잎들은 따로 테잎의 집을 마련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시간적으로 이중의 노고가 든다.

  다음은 내용을 살펴보자. 영어 완전 정복을 꿈꾸는 본인은 그간 여러 수험서와 교재들을 사용해 왔는데, 고교 교재나 일반인들의 위한 영어 교재로서 능률 영어사 이찬승 선생님 시리즈를 무척 좋아한다. 능률 영어사 책들의 공통점을 나열해 본다면. 책의 내용이 일단은 풍성하다. 지문과 관련된 어휘의 정리도 자세하게 빼곡히, 사전 그대로 충실하게 가장 잘되어 있고 전체 목차의 구성이 범주 구분이 카테고리별로 명확하게 너무나 잘 되어있다. 그리고 혼자서 학습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설명이 쉽고 좋은 한국어 어휘, 단어들로 상세히 해설되어 져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이 테잎에 관한 설명을 해 본다면 책 전체가 60일 동안에 고교 어휘를 어원별로 정리, 체계적으로 학습하도록 구성이 되어 있어 그 것에 맞추어서 테잎도 같은 체계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한 개의 테잎에 레코딩되어 있는 분량은 그러므로 10일치의 분량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각각의 테잎의 A면, B면에 녹음되어 있는 분량이 정확히 5일 분의 내용이다. 테잎을 들어보면... 네이티브 스피커 두 명이 주 단어들을 두 번씩 번갈아서 읽어 주고 그와 관련된 예문을 한번씩 읽어준다. 두 네이티브 스피커의 원어 발성이 매우 좋은 수준을 넘어서서 들리는 소리가 명쾌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가끔씩 아주 가끔씩 예문을 읽어주는 네이티브 스피커의 목소리가 바뀌는데, 또 다른 여성이나 남성의 네이티브 스피커의 새로이 등장해서 목소리로 예문이 한 두 번씩 나올 때가 있다. 아마도 부분 부분을 수정을 했거나 새로이 삽입한 내용들인 것 같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등장을 하는 네이티브 스피커는 여러 명인 셈이다. 그리고 각각의 챕터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한국인 여자 성우가 해당 챕터의 접두사, 접미사, 어근 등에 대한 설명을 영어, 한국어로 하는데 성우 여성분의 성함은 모르겠으나 방송에서 너무 자주 등장하는 분이시라서 친숙함을 느낄 수 있다. 테잎 제작 당시에 능률 영어사가 돈과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방송에서는 한국어 목소리만 들어 왔기에 개인적으로는 그 여자 성우 분의 영어 발성이 그렇게 좋은지 몰랐는데, 성우가 되려면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 되어야 하나 보다?!

  각설하고서 이 테잎의 단점을 지적할 차례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 원어민의 녹음 내용과 본문 발성, 테잎에 녹음 되어 있는 문장의 속도 등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테잎을 시작할 때 나오는 시작 음악과 각각의 챕터가 시작 될 때와 끝날 때를 알려주는 시그널 음악이 너무 촌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건 어디 까지나 개인적인 취향, 느낌과 소감이다. 너무 촌스럽고 녹음되어 있는 음감도 좋지가 않다. 요즘 출시하는 다른 테잎들의 삽입 음악과 비교를 하면 너무나 떨어지는 수준의 감각이다. 이 점은 어떻게 해서든지 능률 영서사가 개선을 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테잎 교재는 특성상 수없이 반복을 해서 듣고 또 듣고, 듣고 또 듣게 되기를 밥 먹듯이 하는데 듣는 사람은 보다 좋은 삽입 음악, 듣기 편하고 부담이 없는 그런 시그널 음악, 질리지 않는 곡, 경쾌함 내지 청량감은 아닐지라도 듣기 편한 음악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이점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가지 지적 사항이 더 있는데 그 것은 타 교재에 비해서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다. 외국에서 직수입을 한 외국 테잎 교재들 보다는 저렴한 편이지만 다른 한국의 회사에서 출시한 테잎들 보다는 약간 더 비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용의 수준과 충실성을 따진다면 상쇄하고 남는 부분이지만 차라리 가격 수준대를 조금 더 낮추어서 박리다매 전략의 마케팅을 구사 하시면 어떨런지?! 란 개인적 소견과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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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에스카플로네 (16disc) - 할인 한정판 / 14disc + 특전 서플먼트 2disc
아카네 카즈키 감독, 칸자키 히토미 외 출연 / 조이온엔터테인먼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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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구입을 해서 3번 째 디스크를 보고 있는 중이다. 일단은 제품의 물리적인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자면. 맨처음 볼수 있는 것은 흰색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전체 박스이다. 종이 재질의 박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데 그 이유는 박스가 아주 두껍고 단단한 종이 재질로 되어 있어서 개개의 플라스틱 케이스 7개의 낱개들을 보호하는데 충분하기 그지없다. 물론 전체 박스의 종이는 예쁘게 플라스틱 필름으로 코팅이 되어있다. 케이스가 딱딱하고 타이트하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매우 흡족하다. 케이스를 열어서 7장의 낱개의 타이틀 케이스를 보면 마찬가지로 흰색의 바탕에 주요 등장 인물들의 컷으로 박스 아트가 꾸며져 있다. 물론 전부다 다른 컷의 그래픽들이다. 각각의 박스 아트의 주인공 등은 당연히 칸자키 히토미, 반 파넬, 알렌 쉐자르, 폴켄, 밀레나 공주, 딘란두 등이다. 케이스의 전체적인 톤을 흰색으로 밝고 가볍게 이끌어 간 것이 마음에 쏙든다. 흰색을 바탕색으로 쓴 이유가 뭐냐고?! 에스카플로네의 가이메르프 외관 기체 색상을 떠올려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바로 흰 색의 천공을 날라다니는 백용이다. 두 장의 디스크가 낱개의 케이스 속에 들어 있는데 한 장은 일본어 원판이고 또 다른 한 장은 한국어 더빙, SBS 방영 판이다. 일본어 원판 디스크는 역시 전체적인 통일감을 살려서 흰색 색상으로 디자인되어 있으며 한국어 더빙 판 디스크는 검은 색으로 구성했는데 대비가 꽤 만족스럽다. 일본어 원판은 더블 레이어이며 한국어 더빙판은 싱글 레이어이다. 한 디스크 당 방영분 4화가 수록이 되어있고 전체가 26화로 되어 있다. 맨 마지막 7번 째 타이틀에 최종회인 25화와 26화가 수록이 되어 있고 나머지 빈 공간은 서브 타이틀이다. 서브 타이틀의 내용에는 난 크레딧 오프닝(Non credit opening)과 난 크레딧 엔딩(Non credit ending)이 수록되어 있다. 또 주인공인 칸자키 히토미 역의 목소리를 연기한 '사카모토 마야'가 에스카플로네 음반과 만화 영화를 제작하면서 부른 주제곡들에 대한 당시의 소감과 목소리 연기 당시의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한 인터뷰가 각각의 노래와 뮤직 비디오 애니메이션이 나온 후에 매번 직접 등장해서 각각의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에 담겨진 추억을 회고한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마음에 드는 스타일의 여성이다. 목소리 만큼 예쁘다. 그리고 에스카플로네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 타이틀에 삽입되어 있는 12가지의 다른 에스카플로네 명장면도 원화 그대로의 애니메이션으로 감상을 할 수가 있다. 또 2화와 3화의 요약 장면도 서브 타이틀에 함께 제공이 되는데 역동적인 에스카플로네의 전투 씬을 '댄스 오브 컬스(Dance of curse)'의 노래에 맞추어서 감상 할 수가 있다. 2화와 3화의 요약 본이 이렇게 서브 타이틀로 제공이 되는 이유는 너무나 작화가 우수하고 아름다우며 애스카플로네의 진면목을 표현한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경쾌하고 사뿐히 움직이는 거대 갑옷, 가이메르프, 에스카플로네의 탄생 장면과 다이나믹한 전투 씬들을 지켜보시길...  

  선라이즈가 총력을 다해서 만들어낸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답게 매우 훌륭하며 빼어난 '콸러티 (quality)'를 보증하는 작품이다. 1996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그 이후에 이 회사가 기획한 이와 동종, 동종류의 유사한 시리즈물이 없기에 그냥 최고로 아직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으로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성공한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극장판도 존재한다.

   만화의 전체적 이미지를 중세풍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딱 맞을 것이다. 건담류에서 보여지는 메카딕 디자인은 이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메르프, 가이 메르프들은 마크로스에서 등장을 하는 발키리 류도 아니며 파이브 스타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것들과도 다르다. 거대 갑옷인 가이 메르프에 탑승을 하는 기사들을 보면 마치 시계 테엽 장치의 메카닉을 연상하게 만드는데 첨단 과학의 느낌이 아니라 고대 문명의 기술이라는 고대적 느낌이 들게 한다.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장면은 주인공 반 파넬이  에스카플로네에 탑승을 해서 몸과 팔 다리가 거대 갑옷과 연결되는 '조정궁 장면이다.' 마치 어머니 뱃속에 들어있는 태아의 이미지 이다. 거대 갑옷은 그 속의 인간을 태반 속 양수가 감싸듯이 가이 메르프의 주인을 보호한다.  흡사 복잡한 시계 장치 속에 들어간 사람을 연상 시키면 될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새로운 메카닉 디자인의 개척이 남자 매니아 층들이 값비싼 전체 DVD 타이틀을 사게 만들어 소장케 하는 이유인 것 같다. 애니메이션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중세풍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극중에 등장하는 배경 음악들 때문일 것이다. 바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장엄하고도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서 보는 이들을 압도 시키기 때문이다. 에스카플로네가 기동을 시작하면 '댄스 오브 컬스(dance of curse : 저주의 춤)'의 배경 음악이 동시에 발 맞추어 등장을 하는데 이 연주는 이 애니메이션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마치 오페라의 클라이맥스를 연주 하듯이 절정의 극치를 표현해 냈는데 선악의 구별이 모호하며 거부할 수 없는 힘의 역동성으로 광기어린 싸움 속으로 말려들어 가는 가이아 기사의 심경을 느껴지게 만든다. 이 애니메이션이 어떠한 기획력으로 탄생한 작품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좋은 지표로서 오케스트라는 좋은 상징이 되어 준다. 단지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최고의 음악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시도와 노력이 있기에 일본은 명작의 반열에 올라서는 작품이 많아지는 것일 게다. 서구적 중세풍을 느끼게 해주는 또 다른 요소들은 가이 메르프들의 얼굴에서 찾아 볼수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알렌 쉐자르가 타고 있는 쉐러자드의 얼굴은 마치 펜싱을 하는 선수들의 투구를 연상케한다. 정확히 말해서 얼굴의 눈과 코와 입등이 없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에스카플로네를 포함해서 등장하는 모든 가이메르프, 메르프들의 얼굴은 뚜렷한 이목구비를 보여주는 대신에 험상궂은 모양을 하고 있고 한편으로 흉물스러운 듯하며 괴기 스럽다. 속에 탄 이, 조종을 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알 수가 없게 한다. 바로 적에게 위협감과 공포심을 주기 위한 옛날의 실제 사실과 일치한다. 그리고 고대적, 거대 갑옷들 모두가 멋진 망토를 걸치고서 원시적인 모습으로 부딪히는 힘겨운 싸움들 만을 한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살벌한 힘의 향연이 중세풍의 이미지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이와는 또 다른 만화 영화의 특징들은 바로 '미스매치(mismatch)'에 있다. 가이아라는 지구인의 상상력으로 실체가 만들어진 또 다른 별, 세계에서 우리의 주인공이 맹활약을 하면서 뛰어 다닐 때 입고 있는 옷, 주요 의상은 바로 세라복, 지구 별 여학교의 평범한 교복이다. 일상의 우리들과 너무 친숙한 교복. 그 것인 것이다. 보는 이에게 가이아란 세계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친숙한 이유는 바로 이런 주인공 때문이며 쉽게 여성 팬들이 공감을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또, 다른 '미스매치'는 중세풍과는 어울리지 않는 '앤딩송(ending song)'이다. 바로 '미스틱 아이(mestic eye : 푸른 눈동자)'인데. 이 곡은 듣는 이로 하여금 단번에 그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경쾌하고도 빠른 템포의 음악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남자 가수의 목소리와 함께 연주가 되는데 테크노적인 현대적 감각이 두드러진 곡이다.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대박을 낸 곡이다. 이런 특징적인 대비적 구성을 제외하고도 이 애니메이션은 가장 기본에 충실하고도 전형적인 모범, 전범이 되는 만화 영화의 수작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서 대다수가 이의를 제기 하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에 있어서 주인공들 간의 복잡한 족보, 인연, 관계 설정들이 극이 진행되는 동안 흥미를 잃게 하지 않는데, 가이아 최고의 기사인 알레 쉐자르의 여동생이 바로 최고의 호적수 였던 '디란두'라든지 신분적 한계 때문에 이루지 못한 알렌 쉐자르의 사랑의 흔적이 이웃 나라의 국왕이 되는, 시드 왕자라는 설정은 세련된 내러티브라고 평가 받을 만하다. 또한 용 사냥에 실패하고 도둔커트의 부하가 되는 주인공 반 파넬의 형, '폴켄'은 자신의 나라, 파넬리아를 파괴한 원흉이며 적국의 제 2인자인 군사로서 주인공들과 대면하게 된다. 작품의 후반부에 심경에 변화를 일으켜 다시 선한 본성을 드러내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캐릭터이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애정 관계를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이 만화 영화는 그 재미를 느낄 수가 있는데 모든 등장 인물들이 삼각 관계 이상의 애증 관계로 서로가 엮여 있다고 보면된다. '빛좋은 개살구'로 등장을 하는 알렌 쉐자르...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여인들 모두에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는 비극의 기사 역할을 해낸다. 제일 잘 생긴 놈이 참 박복하다. 정말 맘고생 많이 하는 캐릭터이다. 가이아 최고의 기사로서 크루세이드 함장의 직업적 사명, 주인공 칸자키 히토미를 포함한 애인들 관리하랴! 죽은 전 애인과의 불륜에서 얻은 '시드' 왕자를 지켜야 하는 소명에다가! '반 파넬'의 불같은 성질도 참게 만들어야 되고! 게다가 동생 '디란두'의 문제까지! 스트레스 엄청 받는다. 저러다가 멋있게 휘날리는 긴 머리칼이 대머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언니인 말레나 공주가 결혼을 위해 이웃 나라로 갈 때, 동생인 밀레나 공주가 결혼을 할 때 옆에서 칼을 뽑은 채로 자신을 간절히 사랑하는 여인들을 지키고서 처다만 본다. (직접 확인하시길. 다 쓰라면 쓸 수가 있지만 내용이 너무 길어지면 화면에 다 뜨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구구절절한 내용은 다 생락함) 지구와 가이아를 오고 간 사람들의 세대를 넘는 신비주의적 환타지도 마치 소설 피터팬의 '앤디'를 연상 시키면서 환타지적 요소와 몽환적인 꿈, 이상적인 사랑을 연상 시킨다.   

  여성 팬들을 흡수하기 위한 복잡한 사랑의 이야기와 심한 갈등의 사랑의 삼각형들, 인물들의 성격 묘사, 알렌 쉐자르의 긴머리 칼, 서구적으로 고풍스럽게 묘사한 등장 인물들의 의상 등과  남성 팬들을 겨냥한 메카닉의 화려하고도 무게감 있는 전투씬, 투박한 느낌을 주는 메카딕적 디자인 요소, 매력적인 성격의 남성 캐릭터의 등장들과 전쟁, 잃어버린 아틀란티스의 신화를 추적하는 모험, 타로 카드에 의지해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사람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의 의미, 마음, 희망, 소망, 타인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은?!, 진정한 나의 사랑과 그 사랑과의 이별! 등등의 삶의 주요 화두를 극의 전개와 잘 연결 시켰다.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들을 환상의 환타지적 요소와 결합을 시키는 이 애니메이션의 욕심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직접 느껴보기를... 아낌없이, 주저없이 권해드린다. 여러가지로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뛰어난 작품의 수준에 놀라울 뿐이다.  

  아마도 바쁜 와중에 다 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 밤에도 잠들기 전까지 뜬 눈으로 가이메르프들을 지켜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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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랑 전설'이라는 것을 남들과 똑같이 학교에 다니다 보니!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서 몇 번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원래 김영하란 작가, 인간을 좋아하는 지라! 당연히 책을 집어 들어고 읽어 내려 갔는데,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바로 수불석권...

  '김영하 소설 쓰기'의 파격적인 구성적 단면을 극명하게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소설의 주제적 내용이 되는 '아랑 살해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전에 작가와 등장 할 인물들이 인터뷰를 하는 대목은 연극이나 영화에서 보는 배역 캐스팅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이 작품도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경계가 다른 곳을 여기 저기 넘나든다. 경계가 서로 다른 곳을 넘나드는 것이 이 번에는 과거의 사실, 진실과 현재의 구전, 기록이 중심을 이룬다. 

  대다수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민중이든 대중이든... 그 사람들이 평범하게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감추어진 사실과 진실'은 얼마나 다른 것인지에 대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추적해 들어가 결국 파헤쳐 낸다. 마지막까지 작품을 다 읽어야지만 알게 되는 '아랑의 죽음'에 대한 내막은 '더러운 것', '잘못된 것', '정의에 위배되는 것'이 어떻게 포장이 되고 치장이 되어, 새롭게 가공이 된 채로 갖은자, 기득권 층들의 삶에 유리하게 기여하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실이, 아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작가의 예리함과 직관력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세상은 여러 겹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단순히 세상은 이중적인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복잡하고 '다중적'이다. 그러나 결국 아랑의 죽음은 다름 아닌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수구 보수적인 벼슬아치의 성적 욕망'과 '개인적 치부' 라는 가장 원초적이며 유아적인 인간의 속성, 그 것이 원인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감탄하게 되는 또 한가지는 김영하가 바라보는 세상이 참으로 공평하고도 냉정하며, 작가 김영하의 예리한 인간 조직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랑이 죽은 사인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말단 하급 관리가 새로 부임한 수구적 보수 관리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 맏는 대목에서 그 것을 느끼게 된다. 작가로부터 주인공의 시점을 받고 있는 자도 현실에서는 똑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예외없이 공평하게 대우를 받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독자로서 책을 읽어 내려가는 개인적인 동정심과는 상관없이... 마치 창작을 한 작가 김영하나 그의 책과 글들을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그리하여 지금 리뷰를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이 두 사람도 똑같은 공평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 처럼... 태어나서 배고프고, 아프며, 죄지으면 벌받고, 감옥에 가기는 매 한가지이며... 저마다 때가 되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어디로든 가긴 갈 것이다. 억울하고 비참하게 살해된 한 많은 삶을 살다 가버린  아랑은, 살인의 진실과 내막과는 상관없이 좋은 곳에서 평안하게 잠들었길  바래본다.

  대다수 모든 인간들이 잘 못된 미화와 과장들에 속아서 살아간다는 것도 이 소설이 주는 교훈 중 한가지 일 것이다. 공식적으로 표명되고 발표 되어지는 역사와 기록이 이처럼 '진실', '사실'과는 다를 수가 있는데 매스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과연 얼마나 '거짓의 늪'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수가 없는 노릇이다. 진실과 사실은 소수의 누군가를 위해서 충분히 은폐가 되고 유기 될수도 있는 것임을 소설은 시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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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9월
평점 :
절판


  '리뷰'를 하기 전에 우선 밝혀야 할 한 가지는 리뷰를 하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작가 중 그 첫번째가 이 단편 소설집의 주인인 '김영하'이다.

  우선 이 단편 소설집을 살펴보기 전에 '인간 김영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를 좋아 하는 단순한 이유는 그가 나처럼 젊고, 남자이며, 똑똑하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3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가 쓰는 글들에 쉽게 공감이 가며, 감정 이입이 필요한 단계에서는 작가의 기발하고도 독특한 상상력의 표현에 박수를 보내 줄 의향이 쉽게 생긴다.

  어쩌면 김영하가 그의 단편 소설에서 보여주는 기발하고도 독특한 소설 쓰기의 소재와 기법들은 기발한 것이 아닐 수 도 있다. 그러나 독특하고 기발하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고 빚어지는 일들, 우리가 자신들만의 삶에 만 관심을 두고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 갈때, 무관심해서 스쳐지나가는 일들을 이벤트적 상상력이 깃들어 있는, 별스런 이벤트적 현실들을 작가는 포착해 내어서 소설이란 이름으로 썼다는 것이다. '참 별스런 내용들도 소설로 가능한 것이구나!' 란 생각이 들며 '문자화로, 소설화로 취급되는 것들에 대한 지평과 사람들의 용인, 인정이 넓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마디로 그의 소설은 얼핏 쉬운 듯 보이며 그냥 거침없이 질주를 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벼락을 한번 맞아 보아서, 또 다시 그 벼락을 다시 맞아 보기 위해서, 천둥 번개가 치는 비오는 날, 벼락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누가 소설로 써서 발표하겠다는 생각이나 했겠느냔?! 이말이다. 그런 과감함과 도전의 용기, 참신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쓰는 '단편'들에서는 예전의 기성 작가군들이 근엄하게 혹은, 엄숙하게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을 주려는 심각성이 없어서 좋다. 물론 그의 책에서 배울점이나 본받을 만한 점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책은 일상에서 평범하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을 선물해 준다. 조금은 청량감이 있는 이야기들을 독자를 향해서 풀어 놓는다.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심각한 주제와 문체의 답답함, 유식한 척 만을 하는 작가의 책만을 읽다보면 나름의 일장일단이 있겠으나, 답답해서 질식하고 만다. 대표적으로 이문열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알수가 있다! 그의 소설은 학교나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습과 배움 보다도 소설 읽기가 더 무거우며 힘들고, 한편으로는 어렵다.(소위 말하는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는 대작가이다. 철학적, 사회적 문제와 이슈들을 소재로 하는...) '공부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는 독자가 보수적인 한국적 윤리학 책을 읽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경우를 만들 때가 간간이 있다.(어떤 평론가가 이문열을 이렇게 평가 했다. 오래 되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래와 전망에 대한 결여') 

  그러나 김영하는 이문열처럼 그런 식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경쾌함과 가벼움을 느끼게 되지만, 일탈과 벗어남을 많이 느끼게 되지만, 작가는 아슬아슬하고도 교묘하게 자신의 소설이 삼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위험한 소재(예를 들어서 성직자인 신부가 여자와 섹스를 한다는 내용의 소설, 여성의 음모를 면도 하는 소재 등)와 서술 기법, 상상력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이류, 일류란 줄을 좌우로 중심을 잡아가며 나란히 앞으로 추구해 간다. '오랜된(?) 비평가'들에게 욕먹지 않을 정도의 청량감과 신선함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준다.

  '김영하 소설 읽기'에서 재미와 즐거움들을 책장을 넘기는 동안 느낄 수가 있을 것이며 심각한 교훈주의적 소설은 아니지만 사고의 다양성을 독자들에게 주려는 작가의 비의식적인, 간접적 의도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 소위 괴짜들이 많아야 세상이 즐거워 지고 재미나는 것이 아닌가? 넥타이 부대의 정형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가수 조영남 류의 자유인들을... 미술과 음악 예술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엉뚱함과 생경함, 파격적인 인상들... 그 것이 그의 본래적 성향에서 파생된 것인지?! 아님, 무의식적인 산물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님, 자신만의 글쓰기적 통로를 타고 나온 문제적인 특별한 방법인지는 문외한인 리뷰어의 입장에서는 연구 해야할 문제인 것 같다. 짐작해 보면... 어쩜, 어느 정도는 자신이 의도하고서 그런 식의 파격적인 형식의 글을 쓰는 것도 같다.(너 튀고 싶니?) 자세한 것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지 못했으니,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엄숙주의적이지 않고 고루하지도 않으며 학구적인 풍으로 책을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다. 유식하고 잘난 체 하는 것이 아닌, 이 작가에게서는 읽는 도중에 '일탈감'과 '형식'과 '틀'에 얽매여 있지 않는 글쓰기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가 있다. 적어도 자유 분방하고 글쓰기에 대해서 만큼은 호방하며, 자신의 글쓰기에 있어서 관대한 마음을 작가 스스로가 갖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 자신도 그 심각하지 않은 대중 문화의 소비자, 독자로서 성장해 온 나와 같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창작자가 되기 이전의 소비자로서의 자신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고 감상자, 혹은 대중 문화의 소비자로서, 어쩌면 키취의 모습으로서 형성되어진 창작자 자신을 '수 많은 인용들을 통해서' 자신의 소설들에서 과감히 드러낸다. 그가 '글을 쓰는 형식'과 '도입'과 '인용'하는 대중 문화 작품과 인물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마치 미술이라면 꼴라주이며 모자이크다. 수학이라면 계속해서 엉뚱한 것이 더해지는 것이고 과학이라면 엇박자의 시스템이다.  

  그의 소설들 속에서는 독자의 입장에서 소설이 전개 되기도 하고, 소설을 읽는 자와 소설의 쓰는 자의 경계가 사라져 가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권위적인 인간들은 뭔가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하며 한가지 방식만을 경직되게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길들여져서 움직일 수가 없는 방식으로... 사회에서의 자신의 입지, 사회적인 위상, 기득권 등을 지켜 나가는데, 더 관심이 있기에 '석회처럼 딱딱해져 가며, 간경화처럼 경직되어 가더라도 기존의 것에 인습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김영하의 글쓰기에는 그런 것들이 많이 묻어나지 않아서 좋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더 많이 나이가 든다고 해도 지금처럼 파격적이며 일탈적이고 경계를 구분하기가 묘하며 독자들이 읽는 동안에 재미와 즐거움, 때로는 심금도 울려줄 수 있으면서,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해 낼 수 있는 작품을 끊임없이 많이, 많이 썼으면 하는 바램이다.

 

  '모든 것들이 경화되고 딱딱하게만 굳어가는 세월 속에서 딱딱하게 굳지 않기를 바래본다.'

   삼류 리뷰어가 횡설수설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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