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9월
평점 :
절판


  '리뷰'를 하기 전에 우선 밝혀야 할 한 가지는 리뷰를 하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작가 중 그 첫번째가 이 단편 소설집의 주인인 '김영하'이다.

  우선 이 단편 소설집을 살펴보기 전에 '인간 김영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를 좋아 하는 단순한 이유는 그가 나처럼 젊고, 남자이며, 똑똑하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3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가 쓰는 글들에 쉽게 공감이 가며, 감정 이입이 필요한 단계에서는 작가의 기발하고도 독특한 상상력의 표현에 박수를 보내 줄 의향이 쉽게 생긴다.

  어쩌면 김영하가 그의 단편 소설에서 보여주는 기발하고도 독특한 소설 쓰기의 소재와 기법들은 기발한 것이 아닐 수 도 있다. 그러나 독특하고 기발하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고 빚어지는 일들, 우리가 자신들만의 삶에 만 관심을 두고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 갈때, 무관심해서 스쳐지나가는 일들을 이벤트적 상상력이 깃들어 있는, 별스런 이벤트적 현실들을 작가는 포착해 내어서 소설이란 이름으로 썼다는 것이다. '참 별스런 내용들도 소설로 가능한 것이구나!' 란 생각이 들며 '문자화로, 소설화로 취급되는 것들에 대한 지평과 사람들의 용인, 인정이 넓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마디로 그의 소설은 얼핏 쉬운 듯 보이며 그냥 거침없이 질주를 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벼락을 한번 맞아 보아서, 또 다시 그 벼락을 다시 맞아 보기 위해서, 천둥 번개가 치는 비오는 날, 벼락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누가 소설로 써서 발표하겠다는 생각이나 했겠느냔?! 이말이다. 그런 과감함과 도전의 용기, 참신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쓰는 '단편'들에서는 예전의 기성 작가군들이 근엄하게 혹은, 엄숙하게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을 주려는 심각성이 없어서 좋다. 물론 그의 책에서 배울점이나 본받을 만한 점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책은 일상에서 평범하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을 선물해 준다. 조금은 청량감이 있는 이야기들을 독자를 향해서 풀어 놓는다.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심각한 주제와 문체의 답답함, 유식한 척 만을 하는 작가의 책만을 읽다보면 나름의 일장일단이 있겠으나, 답답해서 질식하고 만다. 대표적으로 이문열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알수가 있다! 그의 소설은 학교나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습과 배움 보다도 소설 읽기가 더 무거우며 힘들고, 한편으로는 어렵다.(소위 말하는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는 대작가이다. 철학적, 사회적 문제와 이슈들을 소재로 하는...) '공부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는 독자가 보수적인 한국적 윤리학 책을 읽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경우를 만들 때가 간간이 있다.(어떤 평론가가 이문열을 이렇게 평가 했다. 오래 되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래와 전망에 대한 결여') 

  그러나 김영하는 이문열처럼 그런 식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경쾌함과 가벼움을 느끼게 되지만, 일탈과 벗어남을 많이 느끼게 되지만, 작가는 아슬아슬하고도 교묘하게 자신의 소설이 삼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위험한 소재(예를 들어서 성직자인 신부가 여자와 섹스를 한다는 내용의 소설, 여성의 음모를 면도 하는 소재 등)와 서술 기법, 상상력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이류, 일류란 줄을 좌우로 중심을 잡아가며 나란히 앞으로 추구해 간다. '오랜된(?) 비평가'들에게 욕먹지 않을 정도의 청량감과 신선함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준다.

  '김영하 소설 읽기'에서 재미와 즐거움들을 책장을 넘기는 동안 느낄 수가 있을 것이며 심각한 교훈주의적 소설은 아니지만 사고의 다양성을 독자들에게 주려는 작가의 비의식적인, 간접적 의도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 소위 괴짜들이 많아야 세상이 즐거워 지고 재미나는 것이 아닌가? 넥타이 부대의 정형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가수 조영남 류의 자유인들을... 미술과 음악 예술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엉뚱함과 생경함, 파격적인 인상들... 그 것이 그의 본래적 성향에서 파생된 것인지?! 아님, 무의식적인 산물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님, 자신만의 글쓰기적 통로를 타고 나온 문제적인 특별한 방법인지는 문외한인 리뷰어의 입장에서는 연구 해야할 문제인 것 같다. 짐작해 보면... 어쩜, 어느 정도는 자신이 의도하고서 그런 식의 파격적인 형식의 글을 쓰는 것도 같다.(너 튀고 싶니?) 자세한 것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지 못했으니,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엄숙주의적이지 않고 고루하지도 않으며 학구적인 풍으로 책을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다. 유식하고 잘난 체 하는 것이 아닌, 이 작가에게서는 읽는 도중에 '일탈감'과 '형식'과 '틀'에 얽매여 있지 않는 글쓰기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가 있다. 적어도 자유 분방하고 글쓰기에 대해서 만큼은 호방하며, 자신의 글쓰기에 있어서 관대한 마음을 작가 스스로가 갖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 자신도 그 심각하지 않은 대중 문화의 소비자, 독자로서 성장해 온 나와 같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창작자가 되기 이전의 소비자로서의 자신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고 감상자, 혹은 대중 문화의 소비자로서, 어쩌면 키취의 모습으로서 형성되어진 창작자 자신을 '수 많은 인용들을 통해서' 자신의 소설들에서 과감히 드러낸다. 그가 '글을 쓰는 형식'과 '도입'과 '인용'하는 대중 문화 작품과 인물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마치 미술이라면 꼴라주이며 모자이크다. 수학이라면 계속해서 엉뚱한 것이 더해지는 것이고 과학이라면 엇박자의 시스템이다.  

  그의 소설들 속에서는 독자의 입장에서 소설이 전개 되기도 하고, 소설을 읽는 자와 소설의 쓰는 자의 경계가 사라져 가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권위적인 인간들은 뭔가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하며 한가지 방식만을 경직되게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길들여져서 움직일 수가 없는 방식으로... 사회에서의 자신의 입지, 사회적인 위상, 기득권 등을 지켜 나가는데, 더 관심이 있기에 '석회처럼 딱딱해져 가며, 간경화처럼 경직되어 가더라도 기존의 것에 인습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김영하의 글쓰기에는 그런 것들이 많이 묻어나지 않아서 좋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더 많이 나이가 든다고 해도 지금처럼 파격적이며 일탈적이고 경계를 구분하기가 묘하며 독자들이 읽는 동안에 재미와 즐거움, 때로는 심금도 울려줄 수 있으면서,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해 낼 수 있는 작품을 끊임없이 많이, 많이 썼으면 하는 바램이다.

 

  '모든 것들이 경화되고 딱딱하게만 굳어가는 세월 속에서 딱딱하게 굳지 않기를 바래본다.'

   삼류 리뷰어가 횡설수설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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