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공포 영화나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에게 드라큐라, 뱀파이어의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신에 대항하여 그 죄로 죽지 못하는 삶을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존재.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사랑.
드라큐라는 창작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였나 보다.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드라큐라는 사랑을 잃고 헤매이는 세계 최고의 로맨티스트이다. 현세의 삶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안식마저 던져버린 남자. 비참한 모습으로 인간의 피를 빨아먹으며 처참하게 영원을 살아야 할지라도 그는 신에 대한 저주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단 한 여자의 안식 때문에.
신의 사랑을 비켜나 영원히 지옥을 맴돌아야 한다는 자신의 연인처럼, 자신도 신의 사랑을 거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고통받는데, 자신은 행복할 수 없으니. 그리하여 십자가에 칼을 꽂은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세상 천지에 이런 로맨스가 어디 있을까. 드라큐라 왕자는 그 누구도 아닌 절대신에 대항했다. 그것도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지옥으로 보냈다는 이유로. 그런 신이라면 더 이상 섬기지 않겠노라고.
드라큐라 영화를 제법 보았는데, 게리 올드만과 위노나 라이더,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이 영화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터키와 전쟁을 하기 위해 성을 떠났던 드라큐라 왕자, 그가 승리하고 돌아왔을 땐 이미 그의 아내 엘리자벳은 자살한 뒤였다. 사랑하는 이가 죽었으니 나도 따라가리...라는 그녀의 선택에 사제는 말했다. 자살한 영혼은 구원받을 수 없노라고. 드라큐라 왕자는 분노했다. 신을 위해 싸운 대가가 이런 것이냐고, 그렇다면 나는 신을 버리겠다고, 신에게 복수하겠노라고.
신의 피를 마시고 포효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그의 어찌할 수 없는 분노가 생생하게 전해졌다.
사실, 드라큐라가 흉측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건 비유적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정상적인 모습이지만, 그녀가 떠나고 신을 버리고 난 뒤 그의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허무하고 허무하며, 온갖 분노와 부정적인 생각들과 고통이 그를 휩싸고 있을테니 그런 모습일 수밖에. 그러나 그녀를 감지했을 때 그는 돌아왔다. 본래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모습으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믿었는데 그녀는 환생하여 다시 그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 그의 시간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운명. 또 다시 그는 신을 저주할 수 밖에 없었다. 광기에 휩싸인 그는 미나의 친구 루시를 죽이고, 그녀의 고백을 듣지만 이미 늦었다.
기나긴 시간을 홀로 외로이 살아온 그가 미나의 손에 죽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작을 그녀로 인해 하였으니 끝도 그녀가 내 주어야겠지. 구원받을 수 없는 그녀의 영혼이 속세에, 그녀를 그리던 그 앞에 나타났으니 이제 그가 신을 저주하며 고통받던 시간들은 끝을 내어도 좋았다. 그의 영혼이 소멸될지라도 그녀가 존재함을 그가 알았으니 이제는 쉴 수 있다. 그는 그렇게 그의 마지막을 행복으로 장식했다.
키아누 리브스가 좋았는데 이 영화는 게리 올드만이 더 멋있다. 아하... 어쩌면 그래서 드라큐라의 이미지는 나에게 로맨티스트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생뚱맞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의 톰 쿠르즈의 영향도 있을수도.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존재, 피라미드에서 인간의 위쪽에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나타난 것은 왜일까. 뱀파이어나 드라큐라나 정말로 존재할까. 하긴, 있을 수도 있겠지. 인간은 자신의 하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존재를 사냥하고 학대하기에, 인간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존재도 인간을 사냥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그래서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그 존재를 두려워하고, 괴물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것일지도. 뭐, 나에게는 로맨티스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