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영화평론집

 

 

로저애버트, 위대한 영화 vs 정성일, 필사의 탐독

 

두 사람의 차이는 명확하다. 로저애버트’는 쉽게 쓰고, 정성일은 어렵게 쓴다는 점’이다. 물론 두 사람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억지스럽기는 하다. 로저애버트’는 대중적 글쓰기/저널리즘 평론’을 하는 평론가’인 반면, 정성일’의 평론은 로저애버트’보다 철학적이며 학술적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평론가인가 ?!  그건 아니다, 둘 다 영화에 대한 평론을 하는 평론가’다.

쉽게 쓰인 문장은 가급적이면 어려운 단어’를 동원하지 않고 쉬운 단어를 선별한다. < 별리하다 > 라는 말 대신 < 이별하다. > 라고 쓴다. 반면 어렵게 쓰인 문장은 < 이별하다 > 나 < 헤어지다 > 대신 < 별리하다 > 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알기 쉽게 쓰인 문장’보다는 어렵게 쓰인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밑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소리이며, 이명박이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하는 소리이다. 개소리다.

로저애버트’는 매우 쉽게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영화 < 달콤한 인생 >의 주인공’인 마스트로얀니’에 대한 묘사에서, 애버트는 그를 “ 머리가 아파서인지 아니면 영혼의 깊은 통증 때문인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 “ 라고 쓴다. 이 단순한 문장’은 사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술과 쾌락에 젖어 환락의 밤을 보내는 불쌍한 영혼’에 대한 서사’를 두통과 영혼의 통증’이라는 간략한 말로 압축한다. 반면 정성일은 허진호의 < 외투 > 에서 두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를 다음과 같이 쓴다.

 

“ 그 씬의 대사 자체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지만 문 앞에서 나눈 쇼트의 사운드는 문에 의해서 ‘구태여’그 대사의 디제시스에 어떤 주관성을, 내면화를, 착각을, 부정확성을, 무엇보다도 비현실성을 부여한다.  그 쇼트는 한 씬 안에서 객관적, 현실적, 실제적 장면을 보여 준 다음, 쇼트를 나누어서 뒤이어지는 대사에 의혹, 기대, 착각, 환청, 무엇보다도 모호함을 통해서 무인가 그 자연스러운 장면을 기괴하게 만든다. “

- 정성일, 필사의 탐독

나는 로저애버트나 밀란 쿤데라 그리고 스티븐 킹의 산문’을 읽으면 < 아! > 라는 감탄사를 뱉는데 반해 정성일의 산문’을 읽으면 < 어? > 라는 의문사’를 뱉는다. 정성일이 잘난 척하며 쓴 저 긴 만연체는 간단하게 <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는 그들이 머문 장소에 어울릴 만한 대사는 아니기에 약간 기괴한 느낌을 준다. > 라고 쓰면 된다. 그런데 정성일은 지긋지긋하게 나열해서 늘린다. 아무것이나 나열해서 병렬로 늘리면 문장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가깝다.

저 위에 쓰인 문장’은 먹물들이 너무나 사랑해서 10초마다 애용한다는 전설의< must have 아이탬 3종 세트 >가 적나라하게 사용된 훌륭한 예이다. < ~ 성/性 >, < ~ 적/的 >, < ~ 화/化 > 다. 이 3가지’번역투 문체’가 없으면 그들은 문장을 하나도 연결하지 못한다. 물론 저런 문장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게는 가재 편이라고,  젠 체하는 먹물들은 저런 문장’이 까리하다고 생각한다. 가지도 아니면서 가지가지하고, 기린도 아니면서 끼리끼리 논다.

저런 문장’은 난해한 문장도 아니고, 좋은 문장도 아니며, 뛰어난 영화 분석’도 아니다. 저 문장은 난해한 것이 아니라 문장을 난도질한 것에 불과하고, 좋은 문장이 아니라 나쁜 문장이며, 뛰어난 분석이 아니라 형편없는 분석이다. 정성일’은 테엽장치 시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분해만 한 채 조립은 하지 않고 방치한 것과 같다. 로저 애버트’는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질질 끌지 않는다. 그는 훌륭한 평론가다. 그는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 에 대해

“파스빈더는 감정의 고양된 상태와 침울한 상태를 영화에서 모두 제거하고,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조용한 절망만을 간직한다. “ 고 쓴다. 아마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문장에 감탄했을 것이다.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 조용한 절망 > 이라는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울컥했다. 왜냐하면 오래된 그 영화가 보여준 장면과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쳤기 때문이었다. 좋은 문장은 결코 젠 체하지 않는다. 다음 문장을 보자.

 

카사블랑카: 마지막 장면의 클로즈업에서 버그먼의 얼굴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출한다. 혼란스러웠을 법도 하다. 촬영 마지막 날까지도 비행기에 오를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이 영화 관계자 중에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버그먼은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 배경 사연은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감정의 신뢰성을 높여주는 기묘한 결과를 낳았다. 그녀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느 쪽으로 불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애버트가 훌륭한 문장가’인 이유는 : 그녀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느 쪽으로 불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라는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성일이라면 이 문장을 이렇게 묘사했을 것이다. “ 할리우드 시스템은 배우와 스텝 간의 계급적 차이’를 조성한다. 그것은 결국 비디제시스와 디제시스 간의 운명적 간극의 문제이며, 불화를 조성하고, 소통은 단절되며,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그러니깐 버그만이 공항에서 보여준 혼란스러운 연기는 매우 이상한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녀의 연기는디제시스에 어떤 주관성을, 내면화를, 착각을, 부정확성을, 무엇보다도 비현실성을 부여한다. “

라고 쓰지 않을까 ? 다음은 그가 쓴 취화선 촬영 현장 일지'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고 난 다음 아무렇게나 말하지 못한다. 조이스나 프루스트 같은 미로를 헤치고 나온 다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친구들의 이름이 적힌 수첩을 들추면서 우리의 하루를 돌아볼 뿐이다. 세잔의 그림을 보고 난 다음 그 감흥을 아무렇게나 말하지 못한다. 브루크너의 제 8교향곡 3악장 아다지오에 대해서 방금 듣고난 다음에도 다시 한 번 더 듣고 말하겠다고 대답을 미룬다. 베케트의 무대는 거의 등장인물이 없는데도 무언가 보지 못한 것이 거기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영화는 보고 나오면, 그 영화가 난니 모레티건, 허우 샤오시엔이건, 제임스 캐머린이건, 데이비드 린치건, 임권택이건, 그게 누구의 영화건, 누구라도 영화관 문을 나서면서 방금 보고 나온 것에 대해서 금방 입을 연다.

 

- 필사의 탐독

 

장승업이라는 동양화가'를 이야기하면서 조이스, 프르스트, 세잔, 브루크너, 베케트, 모레티, 샤오시엔, 캐머런, 린치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뭘까 ? "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 " 를 좀더 글로벌하게 확장한 예일까 ? 동서양 예술가들이 한자리 한마당에 모여서 어울렁 더울렁 뒤엉켜서 운우지정을 나누는 문장 같다. 모를 일이다. 정성일의 문장은 참... 쓰다. 쓸개 같은 문장’이다. 나는 이런 문장을 오감보쉼빠빠’와 슈퐁크오빠’가 내뱉는 혀 꼬부라진 취중농담’이라고 말하고 싶다. 뭔 소리인지 알기 쉽게 말하라. 니미 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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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7-14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 거듭 읽어도 재밌습니다.
파스빈더에 대한 로저 애버트의 표현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4 16:02   좋아요 0 | URL
전 처음에는 애버트 글이 너무 평이해서 실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우연히 화장실에서 다시 읽었는데 정신없이빠져들더군요. 핵심을 짚는 문장이 탁월해요. 어렵게 쓰지 않아도 정확히 딱 그 부분을 씁니다. 카사블랑카에 대한 그 바람.. 어쩌구 하는 부분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왜 로저 애버트가 훌륭한지를 알게 해줍니다.

iforte 2013-07-1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 '니미 뽕'... 어려서부터 똥자루'같은 말만 듣고 자라서인지 참 정겹게 들린다는...
책 전체를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첫번째 인용한 정성일의 문장은 완전히 논문 형식이군요. 만약 논문심사하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세상을 본다'는 식의 표현을 쓴다면, 그 압축성, 다의성, 따라서 해석의 모호성 때문에 퇴짜맡기 십상이겠네요. 문제는 정성일이란 사람이 대중평론가인지, 학계에 몸담은 자이라서 전문 연구자들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인지,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할 필요가 있겠군요. 그 정체성이 흔들리면 딱, 박쥐되는거죠.

p.s. 어려서는 똥자루라고 어른들이 (특히 삼촌이) 놀릴때마다 무지 서러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똥자루 맞아요. 특히 화장실 가기 전후, 몸무게가 2kg씩 차이날때는 도무지 뱃속에 뭐가 들었나 자괴감이.... 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00:0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눈을 가늘게 뜨고 세상을 본다'는 애버트의 글입니다욧...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이리저리 섞다보니 혼동이 올 수 있음 !!!
어릴 때는 다 똥자루 같아야 귀엽지 않나요. 전 애들 귀여우면 똥강아지'라고 하는데
젊은 신혼 부부는 싫어할라나 모르겠네요.
제가 욕은 좀 구수하게 합니다욧..

iforte 2013-07-15 00:25   좋아요 0 | URL
아, 혼동한게 아니구요, 정성일은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했고, 애버트의 글은 다소 문학적으로, 함축해서 표현'했다고 설명과 표현의 차이를 말하려 했사와요. 에구... 글솜씨가 워낙 없다보니 뜻전달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네요. ㅠㅡㅠ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00:32   좋아요 0 | URL
아, 그뜻이군요 ! 크하하하하하....
하긴 저런 문장은 논문 형식으로 제출했다가는 작살나겠죠 ? ㅎㅎㅎㅎㅎ.
전 처음엔 애버트 문장이 왜 좋은 건가 했어요.
그러다가 그냥 화장실 가야 되는데 그냥 눈에 뜨이길래 가지고 가서 읽다가
다 읽게 되었습니다. 굉장하더라고요. 전 아무래도 문학적 취향을 가진 놈인가 봐요..ㅎㅎㅎ

히히 2013-07-1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화를 사랑한 시청자와
영화를 재료로 벌이를 하는 사업가의 차이. ㅎㅎㅎ

카사블랑카의 문장은 정말 좋습니다.
[섬] 보다는 카뮈의 서문이 더 유명한 것 처럼.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 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00:08   좋아요 0 | URL
저도 카뮈 때문에 섬'을 읽었습니다.
실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카사블랑카 저 문장은 쉽게 쓸 수 없는 문장이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팜므느와르 2013-07-17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의 이런 씨알 먹히는 얘기들이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쉬운 말로, 기막히게 좋은 글들을 쓰는 사람들이 쌔고 쌨는데 저렇게 써야 한다고 강박 갖는 학자(!)연한 체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현실입니다. 코미디죠.
근데 정성일식 문체를 완벽하게 해석하는 님이 저는 더 존경스럽습니다.

그나저나 로저 애버트를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8:41   좋아요 0 | URL
씨알은 일단 먹히고 나야 뭘 말하는지를 알수 있는 것 아니게습니까 ?
저런 문장 보면 속에서 울화통이 터집니다.
내가 괜히 정성일 안티가 되는 게 아닙니다.
정성일 씨 영화제에서 자주 보는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하여튼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모습만 저는 보았어요. 혼자 있는 걸 본 적이 없음.. 은근 수다쟁이인 것 같습니다.

바라리 2017-09-12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시원한 사이다 글입니다!
 

 

 

 

 

 

 

보수란 무엇인가! 

부제 : 짬뽕과 딤섬. 

1. 캡사이신’보다 더 화끈한 밤

그는 고교 졸업과 함께 친적이 운영하는 중국집 배달 일’을 하면서 주방 일을 배웠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당당히 중화요리 요리사’가 되었다. ( 그래도 여전히 주방 보조'였다. ) 몇몇 친구들이 그를 찾아갔다. 그는 자신이 직접 요리한 다양한 음식을 내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매운 짬뽕을 잘 만든다고, 탕슈우우욱’도 잘 만든다고, 군만두는 대한민국 중화요리의 수치라고, 부끄럽다고, 다 큰 어른들이 쪽팔리게 군만두 서비스로 안 주냐고 징징거리지 말라고, 한국인들은 군만두에 환장한 민족'이라고. 당시 군만두 서비스를 안 주면 화가 나서 징징거리는 성인’에 속했던 친구들은 알았다고, 그만 하라고, 듣기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지겹다고 말했다 .

고등학교 때는 본드 불고, 눈에서 레이져 쏘던 놈이었는데 나이 들고 나서 정신 차린 것이었다. 나중에 그 친구의 여자친구’도 술자리에 동석했다. 이런 자리에서 늘 하는 질문. 어디가 좋아서 둘이 사귀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 쇼바 잔뜩 올린 오토바이가 멋있었다고, 삼일절만 되면 광복의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서 신나게 달리던 오빠의 빠라빠라빠라빰을 잊을 수가 없다고, 노랗게 물든 머리가 존나 멋있었다고, 성격도 화끈하다고. 그 소리를 듣던 그는 밤에는 더 화끈하다고 농담을 했다. 얼굴이 붉어진 여자’는 부끄럽다는 듯이 조용히 말했다. 캡사이신’보다 더... 더... 화끈해...예.

그의 이름이 바로 천맹기’다. 중학교 1학년이 되도록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서 국어 시간’에 책을 읽을 때는 늘 더듬거렸다. 그러니 공부를 잘 할 리가 없었다. 반에서 늘 꼴찌’였다. 하지만 명랑한 친구’여서 꼴찌’를 한다고 기가 죽는 친구는 아니었다. 그 친구’는 화교였다. 화교인 친구가 왜 중화학교를 다니지 않고 일반 국립 중학교’에 다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 친구는 나와 함께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국립 중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항상 태극기 앞에서 경례를 했으나 태극기는 단 한번도 우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적은 없었다. 도도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친구가 사는 집은 전두환이 사는 연희동에 위치한 중화학교’ 안이었다. 아버지가 중국인 학교 소사’였기 때문에 친구는 학교 관사 안에서 살았다. 그러니깐 화교인 친구는 화교 학교 안에서 살았지만 학교는 일반 대한민국 중학교를 다닌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미스테리한 일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자식을 중화 학교에 입학시키지 않은 이유는 학교 소사인 아버지 때문에 자식이 기가 죽은 채로 학교 생활을 할까봐서 아들을 일반 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

 

2. 보수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은 보수다.

아버님이 하시는 일’은 고장난 책상’을 수리하거나 파손된 학교 기물들을 보수하는 일을 하셨다. 내가 이 친구’에 대한 추억으로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 보수 > 란 무엇인가, 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 건강한 보수란 무엇인가요? >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서이다. 진보와 보수, 빨갱이와 꼴통, 좌파와 우파 할 때의 그 < 보수 > 말이다.

니미... 보수의 정의에 대해서 토론하자고 하더니 고장난 책상 다리를 보수’하는 그 보수’로 시작하는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보수 / 保守에 대한 정의를 보수 / 補修’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수란 오랜된 것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고장난 부분은 수리를 하고, 보존하고, 대를 이어 물려주려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보수/保守 의 뜻은 보수/補修 다. 건강한 보수’란 바로 낡은 것을 아끼고 사랑해서 버리지 않고 고쳐서 다시 쓰는 것이다. 옛것에 깃든 가치에 대한 긍정’이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보수’다.

문제는 보수를 대표한다는 < 새누리 > 의 정체성’이 보수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 까닭은 보수인 척하는 보수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수’가 아니라 보신’이다. 보수당이 아니라 보신탕’이다. 자기 몸에 좋다면 얼씨구나 지화자 타령을 하며 곰 쓸개, 사슴 뿔, 물개 응응'을 날것으로 먹으며 보신을 한다.  내가 각하를 보수주의자’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그가 지향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색깔이 아니라 돈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구리보다는 은의 색깔을, 은보다는 금의 색깔’을 향한다. 그것은 빛에 반응하는 플라나리아의 머리’다. 그러므로 그는 이념적 보수가 아니라 거들먹거리는, 금전주의자 보스’다. 대다수 대한민국 사람들은 보수를 대표하는 사람을 뽑은 것이 아니라 백성 위에 상전으로 군림하려는 보스’를 뽑은 것이다. 명박은 상득이와는 협력하지만 완득이와는 상종도 하지 않는 분이다. 상득이의 속박'은 자업자득이다. 그것은 명박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진보’인가 ?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 놈이거나 미친 년이 될 것이다. 민주당’도 보수 정당이다. 보신탕’이다, 개고기다, 개소리다. 그것이 대한민국 정치사가 가지고 있는 비극이다. 병신 같은 놈이 정치판에서는 꽤 정의로운 놈이 되어 투사 운운한다. 대한민국의 비극은 새누리’를 대표하는 보수당’이 형편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항마인 민주당’이 대책 없는 꼴통이기 때문에 더 비극인 것이다. 새누리’가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도 민주당’은 새누리’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새누리보다 점수가 더 형편없기 때문이다.그것은 브라질 축구 대표팀과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경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절대 이길 수 없는 경기’를 관람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경기도 없다.

■ 물론 경기도’는 있다. 행정 구역상 팔도 중 하나다. 하지만 경기도는 재미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경기도보다는 인천 월미도’가 더 재밌다. 경기도와 인천은 그렇고 그런 사이다가 떠다닌다. 그래서 서영춘은 뿜빠라뿜빠 뿜빠빠.. )

보수와 보신주의’는 180도 다른 말이다. 그런데 보신주의자들은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86.3%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보신주의자들이다. 보신주의자들은 자신의 입지’를 공고하게 해 줄 빽과 줄 그리고 동창과 동향’을 이용하는사람들이다. 그것은 단물만 쏙 빼먹는 알사탕 마니아의 사심이지 애향심이 아니다. 그들은 낡은 의자’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수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보수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그냥 보수주의자’들이다. 옛것을 낡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것은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서 바득바득 발악하지 않는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는 빨갱이’인가 ?  드라큐라인가 ? 늑대인간?! 진보가 수구’보다는 개혁’에 가깝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보가 말하는 개혁이란 낡은 의자’는 버리고 새 의자로 바꾸자는 주의’가 아니다. 건강한 진보주의자들은 왜 꼭 의자에 앉아서 수업을 하냐고 반문한다. 책상과 의자 대신 바닥에 앉아서 자유롭게 수업을 하자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진보’는 전복’보다는 전환’을 모색한다. 발상의 전환 말이다.

 

3. 뿅, 뿅뿅. 짬뽕은 너무 매웠다.

내 친구의 아버지’는 묵묵이 파손된 기물’을 보수하셨다. 당신의 손을 거쳐 나온 물건은 모두 튼튼했다. 그는 박봉이었지만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셨다. 입신을 위해서 고향’이나 지인’의 이름을 팔지도 않았다. 그는 전라도 새끼’라고 욕을 하지도 않았고, 경상도 새끼라고도 욕을 하지 않았다.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서 고쳤을 뿐이고, 그 물건을 애지중지하며 아껴 썼다. 그의 작업장에는 크기가 다른 다양한 못들과 부품들이 있었고, 오래된 톱과 다양한 망치’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자신만의 작업장과 연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는 옛것을 사랑했지만 낡은 것’을 폄하하지는 않았다. 그가 새로운 것’을 불편해 한 이유는 적의 때문이 아니라 잡다한 기능이 너무 많아서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손에 익은 것을 좋아했을 뿐이다. 그는 훌륭한 목수이며 건강한 보수주의자’였다.  그의 아들’은 전교에서 꼴지를 했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매운 짬뽕을 만드는 중화요리 전문점의 주방장이 되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녀석이 일하는 일터’를 찾아간 적이 있다.  비록 그가 손수 만든 매운 짬뽕 때문에 내 똥구멍에서는 불이 났지만 맛은 < 참 >좋았다. 친척이었던 중국집 사장님의 배려로 우리는 밤 늦도록 문 닫은 가게’에서 술을 마셨다. 얼큰하게 취했을 무렵 그의 여자친구’가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친구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누군가가 망치질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 말에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때 뽄드’를 불며 007 제임스 뽄드 흉내를 내던 철없던 놈이 철이 든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오빠야 성깔이 화끈해서 좋아예, 뒤끝 없어예, 밤에는 더 화끈해예, 야광봉이라예, 캡사이신보다 더, 더, 더 화끈해예. 오래 쓰는 건전지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천맹기 씨’는 마작을 하자고 했다. 내가 모른다고 하니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마작을 하다가, 고스톱을 치고, 포커 게임을 했다. 술기운이 올라왔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했다. 닝기미, 짬뽕이 너무 매웠다.

 

4. 짬뽕과 딤섬

그는 지금도 주방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 보았던 여자와 결혼을 해서 자그마한 중국집’을 차렸을지도 모른다. 오래 쓰는 건전지였던 그의 발기력’은 조금 물컹물컹해졌을 것이고, 야광봉’도 희끄무리죽죽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젊었을 때 뽄드와 부탄가스를 너무 많이 먹어서 전립선 기능 저하’를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아닐 수도 있다. 하여튼 그는 오늘도 전국에서 가장 매운 짬뽕’을 만들어서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발악을 할 것이 분명하다. 캡사이신 듬뿍 넣어서 독한 맛’을 낼 것이다.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불타는 나의 똥구멍이 생각난다. 하루종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캡사이신은 지독하게 나의 괄약근을 공격했다.

친구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음식은 딤섬'이었다. 짬뽕으로 승부하기에는 경쟁이 치열해서 고급화 전략'으로 딤섬 요리 기술'을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며 내놓은 것이다. 내가 만두'라고 했더니 그는 화를 냈다. " 그, 그그그그것은 딤섬에 대한 모독이야 ! " 딤섬을 點心'이라고 적는단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이름이 시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이 질리도록 먹었던 군만두'는 서비스 메뉴'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추론을 해보면 유지태는 최민식을 사설 감옥'에 보내면서 날마다 밥값을 지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밥값은 사설 감옥 직원들의 공돈으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대신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를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러니깐 최민식은 15년 동안 직원들이 점심을 시켜 먹고 남은, 서비스로 나온 만두만 먹다가 속 터져버린 이야기다. 만약에 최민식에게 군만두 대신 딤섬을 點心 으로 내놓았다면 그토록 비극적이지는 않았으리라.

짬뽕이 맵고 자극적이었다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딤섬'은 담백하고 순한 맛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자극적인 것을 탐하다가 늙으면 순한 맛에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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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orte 2013-07-14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보이 포스터가 왜 걸려있나 했더니, 만두얘기로... 그리고 딤섬으로 마무리....ㅎㅎ
그러고보니 올드보이에서 유지태가 좀 값싼 싸비스를 주문했었나봐요. 조금 돈을 썼더라면 우리의 주인공이 십오년동안 만두대신 딤섬을 먹을수 있었을텐데.. ㅋㅋ... 아까 아침에는 헐리우드판 올드보이 티저를 봤는데... 오대수 역을 맡은 미국배우가 꽤 기대되요. (삼천포로 빠지는 재주는 곰발님 못지않다능...)

여하튼, 보수와 보신의 차이, 격하게 공감요. 그러고보니, 나의 정치적 정체성은.....만민 만생 평화주의...?! 곰발님은 어디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4 04:42   좋아요 0 | URL
전 항상 정치성향 테스트를 거치면 무정부주의자'가 나오더라고요.. 후훗..
제가 올드보이'에서 만두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왜 유지태가 사설 감옥에 돈을 주고 맡기지 않습니까.
아마도 최민식 밥값을 따로 지불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최민식 밥값을 자기 주머니( 담뱃값'이나 하려고 )에 털고
대신 서비스로 나오는 군만두'를 준 것이 분명합니다.

하여튼 내 친군느 군만두를 아주 싫어해요. 군만두 서비스로 달라고 하는 사람 보면 죽이고 싶다고...ㅋㅋㅋㅋㅋ
뭔가 좀 찔리더라고요... 제가 중국집 군만두 좋아하거든요...ㅎㅎㅎㅎㅎ 올드보이 리메이크 예고 저도 봤어요.
내용은 거의 비슷한 거 같더라고요....대신 유지태 부하로 나오는 남자'가 여자로 바뀐 걸 보고 역시 헐리우드스럽다는 생각을 해보았ㅆ브니다.

히히 2013-07-14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보수가 잘 된 책상에서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정도의 기능에 안주하기 보다는
oh captin! my captin! 을 외치며 책상을 짚고 올라서는 개혁의 용솟음을 받아들일 때
진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으로 뜯어 고치는 개혁이 아니라
기존의 토대위에서 개간하는 것이
참다운 진보가 아닐까나요?

올드보이 만두에 대한 이야기 궁금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05:43   좋아요 0 | URL
언제 한번 올드보이 만두 이야기'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꺄하하하하하..
 
토리노의 말
벨라 타르 감독, 야노스 데르지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가 상징성'에 기반을 둔다면, 벨라 타르는 현시성'에 방점을 찍는다. 그것은 즉물성이다. 벨라 타르는 그 어떠한 첨삭 없이 날것을 현시함으로써 진실을 보게 만든다. 그의 영화는 온갖 상징으로 압도되는 알레고리화'라기 보다는 쿠르베나 일리야 레핀의 소박한 그림에 가깝다. 그는 < 과정을 과장 > 없이 보여준다. 양말을 신고, 바지를 입고,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스웨트를 걸치고, 마지막에 외투를 입는다. 그리고 옷을 벗을 때는 그 역순을 편집 과정 없이 집요하게 보여준다. 말의 장신구를 입히는 과정과 벗기는 장면도 지루하도록 반복된다. 결국 과장 없는 과정의 목격을 통해서 관객이 깨닫는 것은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일상의 반복'이다. 인간은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생의 의지를 죽음의 묵시록과 연관시켜서 인간은 시지푸스처럼 부조리한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벨라 타르는 生은 환희가 아니라 형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생의 의지'에 대한 경멸을 의미할까 ?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늙은 남자가 얼어버린 감자'를 씹을 때, 우리는 어떤 숭고함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숭고함은 생의 찬양이 아니다. < 겨우 > 살아야 하는 인간'에 대한 감독의 연민이다. 영화 < 토리노의 말 > 에서는 니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니체가 늙고 병든 말의 목덜미'를 잡고 울다가 미쳐버린 곳이 바로 토리노'다. 이 일화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롤랑 바르트의 < 카메라 루시다 > 이다. 그는 " 1889년 1월 3일, 학대받아 숨진 말의 목덜미에 울며 매달리던, 연민'때문에 미쳐버린 니체 " 라고 적는다. 나는 이 하나의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사랑했다. 그것은 박완서의 < 그 남자네 집 > 에서 한때의 찬란을 " 내 생애 구슬 같은 겨울 " 이라고 말해서 내 심장을 뛰게 했던 것과 같은 울림이다.

 

- 토리노의 말 vs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중 

 

 

 

 


 

 

 

 

 

 

 

 

말(馬) 과 말 (語)

 

 

영화사가 쏟아내는 과장된 광고 카피'에 동의한 적은 없으나 < 토리노의 말 > 에 대한 " 압도적 걸작 " 이라는 문장'에는 동의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롱테이크'는 타르코프스키가 60년대 만든 최고 걸작 < 안드레이 류블레프 > 를 떠올리게 만든다. 단 서른 개의 롱테이크로 만들었다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한국 영화 평론가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 < 서편제 / 임권택 > 롱테이크'가 쪽팔려서 미칠 지경이다. 벨라 타르가 이 영화에서 선보인 롱테이크'는 앞으로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감상하지 못할 것이다. 이로써 나는 두 개의 과장 광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머지 하나는 < 칼의 노래/ 김훈 > 에 대한 " 벼락 같은 축복 " 이라는 카피다. 걸작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참고 견디는 것'이다.  좋은 약은 쓰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단 한번도 카프카의 소설이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도 마찬가지이고, 우엘벡의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책에서 재미 만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가왕 조용필은 피날레를 장식하는 법, 전율'은 언제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슈퍼스타'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은 도도한 법이다.  

 

■ 1. 정성일은 작가주의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번 믿으며 끝까지 간다는 말이다. 위대한 감독이 만든 모든 영화가 위대하다는 생각이 바로 작가주의적 시각이다. 그런데 이러한 찬양은 극히 위험하다. 미술가와 영화감독은 다르다. 그림은 오로지 화가 혼자의 붓으로 완성하지만 영화는 수많은 분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다. 작가주으적 시각은 미술 작품에는 적합하지만 영화에는 적합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 다크 라이즈 > 는 훌륭하지만 그 속편은 형편 없기 때문이다. 임권택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길소뜸은 좋은 영화이지만 천년학'은 끔찍하고, 달빛 길어올리기'는 지역 특산품 홍보 영화 같다. 정성일은 미술 작품과 영화 작품을 혼동하는 것 같다.

 

 

< 토리노의 말 > 은 재미'가 없다. 무대라고는 늙은 남자와 딸, 병든 말, 돌집 그리고 바람'이 전부인 영화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대사도 거의 없다. 무성영화처럼 진행된다. 감독은 지루한 일상을 지독하게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여자는 일어나면 옷을 입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르고, 한쪽 팔이 불편한 늙은 노인이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감자를 삶는다. 기계적 반복이다. 벨라 타르'는 이 장면을 편집 없이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영화는 그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압도적인 감정'이 몰려온다. 이 압도적 몰입'은 스펙타클'과 유사하다.  벨라 타르'는 지구 종말'을 다룬 그 무수한 헐리우드 스펙타클 무비 감독을 병신으로 만드는 재주가 탁월하다. 이 영화를 보다가, 니체를 생각하다가, 병든 말을 생각하다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으앙 으앙 울게 된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서사는 < 시지푸스의 신화 / 알베르 까뮈 > 이다.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 놓고 나서 뒤돌아서면 바위가 바닥으로 굴러서 다시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아야 하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해야만 하는, 이 일상의 반복 ! 까뮈가 시지푸스 신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 희망 없는 노동 " 이다. 이 일상이라는 형벌의 중심에 시지푸스'가 있었다면, < 토리노의 말 > 에서는 여자가 있다. 여자는 기계처럼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것은 마치 시지푸스가 바위를 굴리는 것과 같은 의미 없는 반복이다. 그리고 돌집은 명백하게 시지푸스 산에 대한 은유이다.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늙은 남자와 여자는 오로지 이 돌집을 벗어나기 위해 얼음처럼 차가운 감자를 씹는다. 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병든 말과 물이 마른 우물과 그치지 않는 칼바람'은 고립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그들에게 희망은 없다. 실존'만 있을 뿐이다. 희망이 없는 실존은 얼마나 허망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은 " 없는 희망 " 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것이다.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는 없는 희망'을 마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익살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희망'은 달콤한 사탕에 지나지 않는다. 내일 처형에 처해질 것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형수에게 간수가 희망을 말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사기'이다. 프르스트는 이런 말을 했다 " 행복은 몸에 좋다. 하지만 정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고뇌'다."  이 말을 살짝 비틀어 인용하면 이런 말도 된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몸에 좋다. 하지만 정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인식'이다.  이 인식의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김난도의 < 아프니깐 청춘이다 > 따위를 지독하게 혐오하는 까닭은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우스가 시지푸스의 귀에 대고 " 저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는 임무를 완수한다면 너에게 자유의 신분을 줄께 ! " 라고 말하는 잔꾀'와 다르지 않다. 바위는 반드시 아래로 구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미션파서블한 것처럼 보이는 임무는 사실은 미션임파서블'한 과제'이다. 지금의 성난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인식이다. 나는 김난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난도여, 사과나무는 당신이나 심어라 !  

 

< 겨우 > 라는 단어가 있다. 겨우는 없다고 하기에는 조금 있는 상태이고, 있다고 하기에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 있음 > 이다. 그러니깐 없음 < 겨우 < 있음'의 순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늙은 남자가 얼음처럼 딱딱한 감자를 씹을 때, 우리는 이 "겨우" 를 목격하게 된다. 까뮈의 부조리'는 < 겨우 > 를 의미한다. 결핍과 과잉 사이의 존재가 실존이요, 부조리다. 실존은 곧 겨우'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겨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서 겨우'라는 좌표를 다시 설정하자. 없음이 절망을 의미하고 있음이 희망을 의미한다면 겨우는 절망과 희망 사이에 놓은 변곡점이 될 것이다. 벨라 타르'는 이 영화를 끝으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선언은 자신의 한계에 따른 절망'이라기 보다는 어떤 성취의 결과처럼 느껴진다.

 

 

 

 

 

 

 

계속 이어지는 글

 

1. 흥분이 가시지 않아서 계속 쓰게 된다. 사실 이 영화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화라고 보아야 한다. 당신은 이 영화에 대해 무엇이 위대한가, 라는 질문을 할 수가 있는데 첫째 이런 식으로 영화를 찍으면 촬영이 미션 임파서블'하게 된다. 이 영화에 쓰인 쇼트가 30개 정도'라는데 보통 영화에서는 최소한 1000개 이상이 쓰인다. 마이클 베이 같은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의 영화에는 보통 4000에서 5000개까지 찍는다. 결국 이 영화의 쇼트가 30개라는 것은 30개 모두를 롱테이크로 찍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가능한 모험에 가깝다.  2.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트래킹 장면'은 매우 아름답다. 말의 움직임과 카메라의 동선이 정확히 일치해야 하는데 영화는 무엇보다도 훌륭하게 이끌고 있다. 깜짝 놀랐다. 3. 말의 연기도 훌륭하다. 아마도 수많은 엔지를 통해 얻어낸 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 노력에 경배를 ! 

 

5. 지금 오프닝 롱테이크 장면 ( 마차 장면 ) 을 보고 있는데, 롱테이크가 이렇게 다양한 앵글'을 선보였다는 것 자체가 미스테리'처럼 느껴진다. 일정한 회색톤을 유지하는 야외 촬영 장면도 기적처럼 보인다. 정말...... 뛰어나다. 압도적이다 !!

 

6. 아... 다시 보니 정말 끝내주네. 사실 이 영화 볼 때에는 독감에 걸려서 누워서 보았다. 그냥 좋은 영화이겠거나 생각했을 뿐 이렇게 좋은 영화인 줄은 상상을 못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의문 중의 하나가 사나운 바람을 어떻게 동원했는가 였다. 물론 거대한 선풍기를 돌리는 것이 일반적인 해결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 환풍기에 의해 만들어진 바람은 뭔가 작위적이다. 왜냐하면 전경의 나무의 환풍기 바람에 의해 가지가 흔들리지만 멀리 떨어진 후경의 나무는 7월의 나무처럼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이 동원된 장면을 볼 때는 항상 근경과 원경을 눈여겨보는데 이 영화에는 영화 속 나무 전체가 흔들린다. 닝기미... 환풍기 100대를 설치했다는 것을까 ? 이리저리 찾아보니 답은 헬리콥터'였다. 헬리콥터'라면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헬리콥터를 사용하면 동시 녹음을 할 수가 없다. 결국 이 영화의 모든 야외 음향은 녹음실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바로 완벽한 소리에 있다. 내가 바람으로 동원된 헬리콥터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이유에는 마치 동시 녹음'처럼 진행된 음향 때문에 깜빡 속은 것이다. 굉장하다. 스고이 !

 

7. 바람의 디테일과 함께 극찬받아야 할 점은 바로 소리'이다. 바람 소리'를 잡아낸 음향은 탁월하다. 묘하게 음악적이다. 8. 롱테이크는 필연적으로 공간의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쇼트와 쇼트 사이의 편집은 기본적으로 조작'이다. 하지만 롱테이크는 하나의 쇼트이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감독은 리얼리티를 위해 롱테이크를 선호한다. 쉽게 말해서 폭력 시퀸스에서 쇼트를 남발하면 관객은 그 장면이 가짜 액션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영화 < 올드 보이 > 에서의 복도 폭력 장면'은 진짜 폭력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롱테이크로 찍혔기 때문에 그렇다. 벨라 타르'가 이 영화를 30개의 롱테이크로 찍은 이유는 사실주의에 대한 집착 때문처럼 보인다. 그것은 마치 귀스타프 쿠르베의 고집을 닮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9. 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평단의 해석처럼  < 토리노의 말 > 은 창세기가 아닌 묵시론을 말한다.  창조가 아닌 소멸이다. 6일째 되는 밤, 빛 대신 어둠이 찾아온다. 그리고 영화는 7일'이 되기 전에 끝난다. 늙은 노인과 여자는 이 혹한과 어둠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 감독은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웃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란 멀쩡한 것을 엉망으로 만드는 존재이다. 

 

10. 이 영화는 무성 영화는 아니지만 거의 무언 영화'에 가깝다. 2시간 30분 동안 대사가 거의 없다. 집시와 이웃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전체 다이알로그는 2분이 채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최소화했다. 결국 이러한 미니멀적인 경향은 겨우'와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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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07-1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람을 녹인 봄의 희망이 퇴각하였다고 해서
여름의 진군이 절망은 아닙니다.
우듬지 그늘이 있지 않습니까?
복날이, 휴가가, 공포영화가, 핫팬츠가, 소나기가, 등목이.....
겨우를 절망에 가깝게 두기 보다는 억지로라도 희망의 부스러기에 둘랍니다.
더 나은 희망은 없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겨우가 희망으로 바뀌는 감동만 있을 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2 00:06   좋아요 0 | URL
덧글의 여왕이십니다. 제가 지금껏 본 덧글 중에서 퀄리티가 가장 탁월하신 분이십니다.

히히 2013-07-12 15:3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 글에서 받은 번쩍임만 할라구요.
날마다 까진 글이 곰...발님 스럽지만
속초, 한가인, 아리랑치기류의 글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걸 보면
단언컨데
당신은 따뜻합니다.
곰...발님의 시에서 언급한 김밥 속재료의 부실함을 숨기기위하여 잔뜩 뿌린 깨처럼 말입니다.
깨 뿌린 김밥이 터지면 훈기가 돕니다.

새벽 2013-07-1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 어제 네이버가 낮에도 DB 점검을 했다더니.. 이웃들의 여러 글들을 새글 알림에서 누락시켜 놨군요.

토리노의 말 보고 저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전대미문의 영상 표현을 이렇게 의외로 접하게 될 줄이야..

사탄 탱고를 비롯해서 벨라 타르의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고 싶은데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구요.

'겨우'라는 키워드를 비롯해서 문장 문장이 팍팍 꽂힙니다.

이 글 읽고 기존 평론가들은 반성 좀 해야 할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2 12:23   좋아요 0 | URL
충격 제대로 먹었습니다. 사실 저 사탄탱고 봤습니다. 8시간인가...
근데 이상하게 그날 따라 졸리더라고요. 영화는 아마 채 3시간 못 보고 나머지 5시간은 잔 것 같습니다.
영화가 지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날 몸상태가 최악이었습니다.
항상 감독에게 미안합니다. 다시한번도전을 해야겠어요....

iforte 2013-07-1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이 이리도 극찬하시니 꼭 한번 봐야겠습니다.
말이 없는 영화하니, 어려서 본 '불을 찾아서' (Quest for fire)란 영화가 생각이 나는군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한 영화였는데... 지금도 인류학 서적을 접하면 꼭 이 영화의 장면들과 대조해보면서 이해를 도모한다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4 03:05   좋아요 0 | URL
이 영화는 뭐랄까... 미니멀하다고 해야 할까요 ?현상학적 반응'이라고 개인적으로 쓰고 싶군요.
지루하고 재미없죠. 하지만 잘 견디면 압도적 감동이 몰려옵니다.
롱테이크 3분짜리 하나 만들려면 감독이 모든 에너지를 다 쏟는다고 하죠 ?
그만큼 좋은 롱테이크 만드는 거 힘이 들다고 해요.
그런데 이 양밤은 120분 내내 30개 롱테이크로 찍었어요. 미쳤어요 !!!!!!!!!!!!!!!!!!!!!!!!!!!!!!!!!!!!!!!!!!!!!!!!!!!!!!!!!!!!!!!!!!!!!!!1
 

 

 

 

 

 

 

 

 

 

 

 

 

 

 

 

 

 

 

 

 

 


 

 

 

 

 

 

 

 

 

 

 

 

 

 

 

 

용인 살인 사건.

 

 

가해자는 19살 소년이고 피해자는 17살 소녀'다. 모두 미성년이다. 소년은 동성 친구와 함께 모텔에 투숙한다. 따분해진 그들은 평소 친분이 있던 소녀'를 모텔로 불러들인다. 잠시 후 친구는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뜬다. 소년과 소녀만 남았다. 갑자기 소년의 눈빛이 날까롭게 변한다. 소년은 소녀를 목 졸라 죽인 후, 공업용 카터 칼로 살점을 발라내어 화장실 변기에 버린다. 그리고는 뼈만 김장용 비닐 봉투에 넣어 모텔을 빠져나온다. 소년은 집으로 와 봉투'를 장롱 속에 숨긴다. 긴장으로 인한 피로가 몰려온다. 깊은 잠'에 빠진다. 눈을 떴을 때 허기를 느꼈을까 ? 그는 생각 끝에 친구에게 이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는 곧 자수'를 한다.

 

지금 이 이야기는 범죄 소설이나 공포 영화에 대한 줄거리 요약'이 아니다. 어제 용인에서 실제 있었던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언론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10대'가 저지른 엽기적인 범죄'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픽션이 현실에서 논픽션'으로 재현된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 대한 통탄'이 아니다. 10대 사건을 다루는 언론이 특정  팩트를 어떻게 < 프레임化 > 하는가에 대한 지적이다. 이런 십대 범죄'를 다룬 기사의 제목은 팔 할이 < 무서운 십대... > 로 시작된다. 이런 기사를 접한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 무서운 씹새... " 다.  < 십대' > 는 < 씹새'> 로 추락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싸가지 없는 존재로 낙인 찍는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프레임 전략'은  어, 어어어어어어르신들의 지랄같은 꼰대와 꼴값'이 만들어낸 이미지 과잉'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부분을 전체'로 확산하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범죄를 저지른 소수에 대한 지적을 집단 전체에 대한 해석으로 확대한 것이다. 10대가 살인을 저지르면 무서운 십대 운운하지만  30대 이상인 성인 남성이 살인을 저지르면 " 무서운 삼십대... " 라는 식으로 제목을 뽑지는  않는다. 강력 범죄 횟수를 보면 10대 청소년보다 30,40,50대 연령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도 말이다. " 무서운 오십대.. " 라고 말하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나 ?  여기에는 자기 허물은 못 보고 남 탓만 하려는 대한민국 어르신들의 소갈딱지'가 읽힌다.  

 

특정 집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구성원'을 분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카데미 상'은 아카데미 회원의 투표로 이루어진다. LA타임즈의 분석에 따르면 투표단 중 백인의 비중은 94%이며, 남성은 77%를 차지하고, 평균 연령은 62세'라고 한다. 결국은 < 보수 성향의 60대 백인 남성 > 의 영화적 취향이 곧 아카데미 성향'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이유로 편집권을 가지고 있는 데스크 직원의 구성 분포를 분석하면 그 성향을 알 수 있다. IMF 이후 보수 언론 데스크에서 완장을 찬 사람들이 쏟아낸 것은 < 고개 숙인 남성 > 에 대한 슬픈 발라드'였다. 여권이 신장한 반면 남성은 고개를 숙였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징징거린다. 명백한 엄살이다.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는 당당한 남성 사회'다. 뉴스는 공정해야 된다. 특정 계급과 계층'에게 불신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뉴스 보도는 삼가야 한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십대에게는 엄격한 이중잣대'는 < 성' > 을 다룰 때에도 드러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 청소년은 법적 허용 범위 안에서 하고 싶은 사람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상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 권리'를 주장하면 괴물 보듯이 한다. 청소년에게 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청소년의 성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들은 방석집 가서 별별 쇼를 하면서 말이다. 어, 어어어어어어어르신들이 십대의 성'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면 욕구에 불만이 쌓인다.  십대의 성'을 왜 당신이 관리하는가 말이다.

 

이처럼 10대를 대하는 어르신의 이중적 태도'는 고스란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이어진다. < 10대 > 라는 단어를 < 여성 > 으로 바꾸고, < 30,40,50대 > 를 < 남성 > 으로 바꾼 후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면 놀랍게도 같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0대 청소년들과 여성'이 약자인 이유이다.  한국 사회는 수컷이 지배하는 가부장 구조'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위해 10대와 여성을 짓누른다. 못생긴 여자는 죄가 되지만 못생긴 남자는 빳빳한 명함만 있으면 용서가 된다. 불공평 사회'다. 내 말이 < 어이 >없다면 당신은 < 아이 > 다. 철없는 아이다.  섭섭'해할 필요 없다.  내 말이 답답'하다면 당신은 갑갑한 꼰대다.  

 

< 용인 살인 사건 > 은 느닷없이 공포 영화 < 호스텔 > 과 연관검색어'로 묶이는 모양새'다. 범인이 이 영화'를 보았다는 것. 그리고는 판에 박힌 결론에 도달한다. 범인은 공포 영화를 즐겨 보았으며 모방 범죄'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론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억지로 짜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기자가 고개를 푹 숙인 범인에게 묻는다. " < 호스텔 > 이란 공포 영화를 본 적 있나요 ? " 이 뜬금없는 질문은 함정 수사를 펼치기 위한 유도 질문'이다. 범인이 호스텔이란 공포 영화를 보았기에 공포 영화가 범죄의 요소'가 되었다면, 같은 이유로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자. " 위대한 개츠비'를 보셨나요 ? " 만약에 그가 보았다고 대답하면 < 사랑 > 이 범죄의 요소'가 되었나 ?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가운데 " 모텔 탈출기 " 라는 단편이 이 사건과 유사하다고 해서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멍청한 생각'이다. < 어 > 다르고 < 아 > 다른 법이다. 언론 데스크를 장악한 가부장 꼰대'의 입맛에 맞게 얼마든지 포지셔닝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질문에 따라 < 어 > 는 < 아 > 가 된다. < 어이 > 없다면 당신은 < 아이 > 다.  이처럼 편견으로 가득찬 언론 플레이'는 비주류 문학이나 공포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꼰대여 ! 아웃사이더와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향한 갑갑한 갑질'은 집어쳐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십대가 싸가지 없는 이유는 싸가지 없는 어른을 보고 배운 탓이다. 그게 정답이다. 기성용이 싸가지 없다고 혀를 끌끌 차기 전에 윗물은 맑았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라. 김지하 풍으로 말하자면 십대를 향한, 혹은 비주류'를 향한 조롱의 굿판은, 시부랄,  집어쳐라. 당신이나 잘해라.

 

 

 

 

 

 

 

 

 

■ 언론에 공개된 매우 짧은 정보'만 가지고 추리를 한다면 : 이 사건의 방점은 < 소년 + 소녀 > 가 아니라 < 소년1 + 소년 2 > 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범행 동기가 단순한 성폭행'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좀더 복잡한 심리적 동기가 작용했다는 말이다. 피해자인 소녀는 성폭행을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성폭행을 당했다면 모텔에 함께 있던 친구가 가담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범인은 자신의 용기'를 친구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저지른 과시적 동기'가 작용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 동성애적 관계 말이다. 그러니깐 이 소년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메시지'를 발송한 것은 아닐까 ? 어디까지나 100%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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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7-11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도 마찬가지. 미성년들 범죄 사건 일어날 때마다
언론은 범죄소설,영화,만화의 영향이다고 그러는데..
하긴..그런 끔찍한 범죄가 고작 영화나 책 몇권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겠나~ 그 필름, 책만 싹 다 골라 불질러버리면 되게 말이야.
이런 사건이 터지면 나는 그 소년의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어른'들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해. 부모나 친인척, 선생님, 동네 어른...
아이들의 문제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가까이에 있는 어른둘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본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1 13:38   좋아요 0 | URL
한국 주류, 그러니깐 가부장이 누구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예로 들자 어떤 집단의 성질을 파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
구성 분포도를 이해하는 거야. 예를 보자.
아카데미 상'은 어떤 성향일까 ? 간단히 아카데미 회원의 평균을 분석하면 돼.

1. 90%가 백인 남성이다.
2. 60대 이상이 80% 이상이다.
3. 유대인이 많다.

이 세 가지를 분석하면 답은나오지.
아카데미는 60대 백인 남성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영화제란 거다.

한국 언론을 장악한 것을 데스크 주체자를 분석해봐.. 답은 나오는 거지.
보통 4,50대 부장급이겠지 ? 남자겠지 ?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이들이니
주류 문화에 정이 가겠지 ? 답은 뻔하지 뭐...


iforte 2013-07-11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일하다가 잠깐 들렸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헙.. 5시간도 훨씬 전에 먹은 저녁식사가 막 쏠릴려고... 아... 제발.... 이게 현실이 아니길....

오늘, 일진이 왜 이런답니까.... 낮에는 잠깐 심리학과에서 자폐아동관련한 논문발표를 듣고 왔는데 (제 전공은 아닙니다만) 논문 쓴 이가 자랑스럽게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제안한 방법이 자폐아동 교육에 도움을 줄것인데, 교육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서 교육비를 엄청 아낄수도 있고, 보험회사에서도 좋아할 것이라고.... 뭐, 이런 소리를 씨부렁 거리길래 빈정상하고 왔고만요. 어떻게 자폐아동 심리교육 전공자입에서 요딴 소리나 나온답니까. 이게 미국 대학 교육의 현실인가 싶어서.. 이런 교육 현실에 낑겨있는 제 모습이 초라해져서 기분 울적하던 차였는데... 아... 이 포스팅은 더 심난하게 합니다. 흑흑.....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1 13:34   좋아요 0 | URL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이 효율 대비 값'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니 교육 심리'를 공부하는 사람도 이 가격에 이 정도 효과면 남는 장사'란 소릴 하는 거 같습니다.
사실 교육이라는 게 장기간을 둔 포석인데 짧은 효율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망하죠.
한국 교육이 계속 망하는 이유는 20년 30년 포석을 두어야 하는데
정권 내에서 바꿔보려고 짧은 기간 교육 정첵을 매일 바꾸니 바뀌지가 않는 겁니다.
이걸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극찬하고 있으니...
아마 그는 청소년 자살 비율이 압도적은 많은 나라라는 사실을 잊으 듯합니다.

Forgettable. 2013-07-1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난하네요.

요즘 애들이랑 수업하다 보면 야한얘기가 난무 ㅠㅠ 처음엔 어떻게 할 줄 몰랐는데 요즘은 적절히 수위조절하는 단계. 억압하니까 잘못된 방향으로 튀어나가잖아요. 아 진짜 할 말 많은데 나중에 포스팅 해야지.

여튼 이 글 좋아요.
무서운 십대의 불편함을 꼭 찝어주셨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1 13:43   좋아요 0 | URL
성 자체에 대한 인식부터 바귀어야 아이들도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개그콘서트를 좋아하는데 불편한 이유는 못생긴 얼굴에 대한 비하가 너무 노골적이란 말입니다.
이런 것은 자제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명품 몸매'라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 꿀벅지'라는 말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 말을 풀면 식욕과 성욕이 결합된 신조어거든요. 이걸 너무 자연스럽게 쓴다는 거죠. 제가 늘 놀라는 단어가 영계'입니다. 젊은 여성을 두고 한 말인데, 이 단어도 식욕과 성욕이 합쳐진 단어짆아요. 먹고 싶다, 영양가 많다... 가 결국은 젊고 싱싱한 여성을 영계라고 하는 건데.... 이거 공중파에서 자연스럽게 말해진다는 거죠.

공포 영화 탓을 하기 전에 먼저 이런 것들에 대한 비판부터 선행이 되어야 합니다. 공포 영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장르일 뿐이지, 그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배운 게 아닙니다.. 저도 할 말은 많으나... 후훗..

비로그인 2013-07-1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1 15:31   좋아요 0 | URL
달빛가루 님 10대였던가 ? 가물가물....ㅎㅎ

히히 2013-07-1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서운 세상의 불쌍한 십대들입니다.
딸 둘을 키우면서
부모란 자식은 가한 힘 만큼 통통통 튕겨나간다는 진리를 확신하는 과정입니다.
첫째에겐 엄하고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반면
막내는 찟찌가 나와도 여전히 귀엽고 혀 짧은 소리로 대화가 오고가고.
전화 통화를 할 땐 용건만 간단히여서 섭섭한 언니와 다르게
귀청떨어지게 쫑알쫑알 결국엔 다시 수화기 들어 용무를 보는 둘째입니다.
허락되지 않은 군더더기를 붙치고 다닐 첫째가 아니고
지 보면 희죽대는 헤픈모에게 비싸게 굴 막내가 아니죠.
의지가 되고 의욕이 넘치고...

이런 차이는 내가 무심코 흘린 소행 만큼 수확되는 열매들입니다.
매스컴이 치를 떨었던 무수한 범죄자들의 유년기를 보면
그들의 죄가 어른들의 무책임함에 뿌리를 둔다는 것을...

저는 그들 밑바닥 상처가 그저 슬플 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1 15:38   좋아요 0 | URL
십대가 괴물이 되는 코스는 두 가지'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공부기계'로 전락한 십대들이 그 일탈로 탈선을 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 위주 경쟁에서 밀린 십대가 학교에서 벗어나
고립될 때 발생하게 되는 탈선이 그 경우죠. 결국은
몇몇 십대를 괴물로 만든 주범은 꼰대들이죠. 교육 정책을 총괄하는
그 늙은 남성 수컷들이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걸 깨달아야 해요.
무서운 십대'라고 말하기 전에 무서운 십대를 만든 무서운 40대 남성 주류 꼰대들의 기득권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들은 온갖 데스크에서 주류로 활동하며 조금만 우울하면 고개 숙인 남성들.. 운운하며
징징거리지만 십대들의 고민에 대한 목소리는 그 어디에도 없어요.
10대는 성욕이 없습니까 ? 웃기는 말이죠. 놀고 싶지 않나요 ? 웃기는 말입니다.
피해자인 17세 소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죠. 어느 새끼는 오죽 까졌으면 모텔에 가냐고
해서 대판 싸우고 오는 길입니다만... 죽을 짓을 했다는 것인데 어느 누가 죽을 짓을 할 놈이 어디 있습니까..

히히 2013-07-1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끼 딸린 입에서
남의 자식에게 '화냥년, 도둑놈' 은 나올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그들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이 썩어서 그런 것 처럼 도끼눈으로 보지 맙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1 16:06   좋아요 0 | URL
어린 년이 오라고 모텔 간 거 보면 정조관념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 놈이나
십대 살인자'나 둘 다 똑같은 괴물이죠.
자기 스스로는 자신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언제나 인간은 자기합리화를 하니 말입니다.

행인 2013-07-1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헐..언론기사 보기 전에 요, 개요만 먼저 보고 생각한 것은, 남자 둘이 모텔에 간 것 자체에서, 그리고 시간적으로도 공범일 가능성을 의심했는데요, 기사를 다시 보니..살해동기가 없더군요. sms 문자메시지도 그렇고...그것이 이상해서 알베르까뮈의 이방인이 생각났다느요 쿨럭. 지능적인 것도 아니고 충동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계획적이었을수 있다는 점이...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니의 진단보다는 사건 자체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네요. 고인에게는 못할 댓글인가 하지마는요...헐. 갑자기 고인에게 기도해드리고 자야 할듯요. (반 무신론자 왈)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2 00:06   좋아요 0 | URL
원래 소시오패스'가 동기가 없어요. 굳이 동기를 찾자면 지배욕이겠죠.
대상을 제압할 때 오는 그런쾌락을 원했던 것일 겁니다.
좀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의문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광부잡담 1.

 

- 패트리어트 게임 : FR(L)IGHT 241

 

실수는 곧 사망이다.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다. 비행 ( FLIGHT ) 라는 게 작은 실수 하나에도 엄청난 재앙 ( FRIGHT ) 가 될 수 있기에 철저한 직원 교육이 필요하다.  중국인 2명이 사망하고 한국인은 전원 무사하다는 소식에 " 다행 " 이라고 말하는 언론'을 볼 때마다 당혹스럽다. 일본 대지진 때 한국인 피해 소식을 전하며 " 불행 중 다행 " 이라고 말했던 언론 보도를 볼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한국인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다행과 불행'이 나뉘어지는 것이니, 어미 뱃속에서 국적 따져가며 잘 태어나시라. 위의 사례와 같이 뉴스에서 단어를 선택할 때는 개인의 감정이 강하게 드러나는 단어'는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회색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각하 정권 때 우파들이 선보인 철저한 무언'도 꼴불견이었지만  신경민 앵커'가 클로징 멘트에서 보여준 색깔 있는 발언 또한 꼴불견'이었다. 멘트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멘트'를 날린 의도가 불경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말한 클로징 멘트'를 두고 < 소신 > 이라고 말했으나 내가 보기에는 < 꿍꿍이 > 처럼 보였다. 앞날을 내다본 포석이었으며 암중모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느닷없이, 평소 그답지 않게 느닷없이, 퇴직 말년에 평소 그답지 않게 느닷없이 쏟아낸 신랄한 클로징 멘트'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클로징 멘트를 보면서 그가 곧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화를 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아니나 달라.... 그는 정치인'이 되었다. 클로징 멘트는 든든한 노후 보장을 위한 적금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두고 소신'이라고 한다면 너무 소심한 견해는 아닐까 ?

 

아시아나 항공 241편' 사고에 대한 언론 보도'는 한편의 패트리어트 게임'을 보는 것 같다. 한국 언론은 조종사 운전 미숙'에 의한 사고'로 보는 미국 언론'의 논조가 지나치게 < 자기 논에 물 대는 식' > 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모양새'다. 기체 이상으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사고 원인을 운전 미숙으로 몰고간다며 미국 언론 보도는 편파적이라고 비판한다. 맞는 소리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논조 또한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몰고가려는 아전인수 격은 아닐까 ?  

 

때린 놈이 있고 맞은 놈이 있을 때, 때린 놈이 < 구구절절 >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 그것은 < 구질구질 > 한 변명이 된다. 사고 당사국으로써 한국은 입 닥치고 침묵할 필요가 있다. 최민수처럼 억울하더라고 일단은 침묵해야 한다. 억울함에 대한 보상은 블랙박스에 기록된 데이터'가 해결해 줄 것이 아닌가 ! 블랙박스에 기록된 내용이 기체 결함에 의한 사고'였다는 것이 발견되면 그때 가서 목소리를 높여도 된다. 당당하게 외쳐라. " 야, 이 개새끼들앙 ! 남조선 작다고 무시하지 마랑 !!!! " 이렇게 말이다.  

 

꼴사나운 짓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난이 발생하면 언제나 등장하는 것은 영웅'이다. 그러니깐 발생 계통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영웅은 재앙의 첫째 아들'이거나 둘째일 것이다. 재앙이 없었다면 영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재앙, 후 - 영웅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행의 외동 딸은 다행이다. 불행 중 다행이니깐 말이다. 다행 중 불행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여기에 영웅과 다행'이가 사랑을 하는 내용이 재난 영화의 클리쉐'다. 모든 재난 영화는 영웅이'와 다행이'가 만나는 러브스토리'이다. 술자리 수다에서 주인공 이름을 모르거든  당당하게 다행이와 영웅이'라고 지적해도 된다.

 

배트맨 서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앙은 할아버지이고 배트맨은 아버지이며 조커는 아들이다. 고담 도시에 악당이 창궐하기 때문에 배트맨이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배트맨이 고담에 있기에 조커'가 그를 찾아 간 것이다. 배트맨이 없었다면 조커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승객 50명을 구한 여승무원에 대한 영웅 기사'가 불편한 지점이다. 오해는 마시라. 여승무원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녀의 희생 정신'을 비판할 생각은 발톱의 때만큼도 없다 !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영웅 서사를 부각해서 어처구니없는 재앙을 희석시키려는 논조다.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는 카피따위로 그녀가 가지고 있던 순수한 사명감에 먹칠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 배트맨 원작 만화'를 보면 실제로 조커'는 배트맨과 현피 뜨기 위해 감옥에서 탈출을 한다. 그리고는 그를 만나기 위해 고담으로 간다.

 

대한민국만큼 영웅이 많은 나라도 없다. 한국에서는 스포츠 우승자와 애국심과 영웅은 삼위일체다. 듣도 보도 못한  삼위일체론'이다. 맨발로 물속에 들어가 샷을 날린 박세리'는 IMF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어 준 영웅이 되고, 박찬호는 국가 위상을 드높인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포스트 IMF시대에는 김연아가 " 빙상 " 위에서 난세를 구한 영웅이 되고, 석 선장은 " 병상 " 에서 아덴만 영웅이 된다. 이런 과대 망상'은 좋지 않다. 한국의 파시즘적 애국자 열풍은 항상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묻고 싶다. 김연아'가 영웅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박세리는, 박찬호는 ? 그들은 그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성공에 대한 열정'일 뿐이지, 난세를 구할 목적으로 샷을 날라고, 공을 날리고, (스케이트)날을 날린 것이 아니다. 개인적 욕망을 국가적 욕망과 동일시하면 그것은 과대망상'이 되는 것이다.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지만,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다. 고담 사회'가 배트맨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국가 치안 시스템으로는 재앙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초인적인 배트맨을 호명하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는 절대 영웅 서사에 기대어 희망을 품지 않는다. 댐이 무너지는 것을 막은 사람은 슈퍼맨의 손가락이 아니라 어느 평범한 꼬마의 손가락'이 아니었던가 ? 슈퍼맨은 그따위 쪼잔한 구멍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스펙타클한 재앙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슈퍼맨은 슈퍼마켓에서 인질범들과 싸울지언정 구멍가게'에서 주인과 술주정뱅이 딸기코 아저씨가 다투는 싸움'을 말리지는 않는다.

 

이러한 패트리어트 게임은 기성용 사태에서도 드러난다. 어느 날 눈  뜨니 스타'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날 눈 뜨니 악당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모두 다 좋은 쪽으로 < 누네띠네 > 가 되면 좋으련만 기성용은 아쉽게도 나쁜 쪽으로 < 누네띠네 > 가 된 모양이다. 잠시 삼천포'로 빠지자면 " 누네띠네,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음..... MSG를 전혀 첨가하지 않았지만 이 욕,  맛있는데요. 착한 욕으로 선정하겠습니다. "  기성용'이 욕을 먹는 이유는 큰 어른'에게 대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론이 우럭도 아니면서 버럭 한 것이다. 허각이 허공을 보며 허걱 하는 꼴이니, 싸기지 없는 놈에서부터 이기주의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놈이란 비약도 흘러나온다. 국가대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아버지에게 대든 놈은 용서를 못하겠다는 태도다. 아, 이런 꼰대적 태도'는 참 보기 흉하다.  앞에 없으면 나랏님도 욕하는 판국에, 친구끼리 한 거친 말투에 그리 흥분할 필요가 있을까 ? 혈기왕성한 나이에 쌍욕 한 번 안 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감히 하늘 같은 아버지'를 욕해서 불온한가 ?  상징적 아버지인 갑'에게 대들면 안 된다는 논리'는 우스운 말이다.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욕도 할 수 있다. 몇몇 친한 지인들만 공유하는 비밀 SNS'에서 한 말을 가지고, 그것 가지고 광분하는 꼰대의 열불'이 더 볼썽사나운 것은 아닐까 ?

 

그들이 기성용의 지랄'에 대해 그토록 흥분하는 이유는 기성용이 국가대표 신분이면서 사적 욕망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그렇다. 국가대표가 되는 순간 그들은 국가의 전유물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사적 욕망'은 불온한 것'이 된다. 이처럼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은밀한 욕망은 억압되어도 좋다는 논리이다. 한국인은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개인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한국 남성들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여성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남성의 여성 편력은 이력이 되지만, 여성의 화려한 남성 편력은 때 지난 달력 취급을 한다. 이처럼 국가주의적 논리로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면 안 된다. 개인의 욕망은 그냥 순수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냥 20대 청년의 속 터지는, 예의 없는 지랄'로 가겹게 이해하라. 뭐, 그리 호들갑인가 ! 하여튼,  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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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7-0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왜 그리 호들갑인지 모르겠습니다.
패트리어트 게임, 정말 제목부터가 적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촌철살인 :)

곰곰생각하는발 2013-07-09 21:47   좋아요 0 | URL
뭘 그리 기성용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줄 모르겠습니다.
24살이면 한참 욕하고 자신감에 차서 그럴 나이인데 말입니다.
가장 호전적인 나이가 그때에요. 사람들 혀 끌끌차며 자신은 그때 그 시절엔안 그런 것처럼
세상 말세 운운하는데 보기 좋지 않습니다.

iforte 2013-07-0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공사고의 안타까운 소식 중에 또 무언가 사건이 터진 모양이군요. 아.... 곰발님의 글은 몇번씩 다시 읽어보게 만느는 힘이 있네요. 곰발님과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게 그저 축복일 뿐입니다. 할렐루야! (*참고로, 전 기독교신자, 아닙니다. )
제 의견을 덧붙이자면, 어줍짢은 일이 사건이랍시고 뉴스가 될때, 한번쯤 그나라의 언론 수준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잖은것으로 장사해보겠다고 신성한 언론의 의무를 엿바꿔먹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사우나 아줌마들 수다떠는 수준의 가쉽거리가 뉴스라고 믿는 자질 문제인지.. 스포츠인들, 연애인들에게 애국자, 영웅의 상을 찾는것도 문제이지만, 언론인이 되는것을 그저 호구지책 내지는 보다 큰 야망의 발판쯤으로 이용하는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어떤 직업은, 진정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뛰어들어야만 한다는거,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2013-07-09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0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0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3-07-0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기성용 왜 자꾸 욕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서
안그래도 오늘 엄마랑 그 얘기도 나눴는데
기성세대(축구협회?)들의 위기의식이 아닌가 싶어.
기성용처럼 해외서 인정받는 젊은 선수가 하고싶은 소리 해대기 시작하면
자신들의 자리, 권위가 위태롭다 이거지..
기성용 보면 10년 전의 나카타히데 선수 생각이 난다.
나카타도 세리에,에서 잘나가면서 일본 축구, 그 시스템, 협회 꼰대들..
존나게 깠거든. 그래서 거의 패륜아 수준으로 매스컴에서 씹혔었는데..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 국민들은 아랑곳 않고 그를 응원했다는 거.
아, 근데 윗줄 '일본국민'이라고 쓰면서 무지 어색..
'국민'이란 단어 자체를 별로 안쓴다 여긴. 그냥 '사람'이라 쓰지..
국민, 우리나라.. 이런 단어들 참.. 옛날에 새마을 운동 생각나게 함.
국민체조,이런 것도 말이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0 00:44   좋아요 0 | URL
뭐... 꼰대 정신 아니겠어 ? 어린 놈이 어른에게 대든다. 이거지...
문제는 국가대표'라고 하면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후지다는 거지.
애국자는 무조건 개인 욕망을희생해라, 이거 아니냐.
불만 제기하면 괘씸죄야. 88만원 세대'의 비극이 안타깝다 하면서 정작 자기들도 저런 문제에는 어린 놈이 싸가지 없다는 식으로 나아가잖아. 김논도의 아프니깐 청춘이다, 졸라 욕하면서 막상 저런 문제 닥치면 어린 놈이 싸가지 없다로 귀결돼... 아 다르고 어 다른 태도 아니겠어 ?
그냥 한 청년의 예의없음으로 끝나면 되지.. 그걸 좀 오버하면 안 된다고 본다.

만화애니비평 2013-07-10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요소에서 신화적 영웅보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죠.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항상 영웅심리를 내세우죠.
그런 점에서 코스프레하는 것을 보면 그런 영웅들이 나오길 바라는 대중적 욕망과 더불어 그것에 대한 동경의식이 있지요.
하지만 책임의식이나 사회적문제 의식은 없죠. 단지 화려한 것만 바라고 뒤에 있는 짐은 가져갈 생각이란 없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0 14:48   좋아요 0 | URL
망가는 좋은데 코믹스'는 잘 못 읽겠어요.
이게 취향의 문제이긴 한데 전 영웅이 나오는 만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나중탁구부가 최고임..

히히 2013-07-1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전 2PM의 박재범이 생각납니다.
순간적인 생각에 맹랑한 놈이네 할 수 있었겠으나 지 공간에서 정당한 감정 풀이 였습니다.
동방의 예의 바른 우리들 아닙니까?
이 몸은 유배당해 마땅한 죄인입니다.
君師父一體 라 하였는데
또래들과 스승을 능멸한죄,
피붙이들과 아비를 욕보인죄,
군을 개취급한 죄.
재범과 다른 점은 저는 노래도 춤도 지 마음대로고
내 좋다고 미치는 놈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니지 않았습니다.
정말 중한 것은 들키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 나라 정말 개떡같다.' -국가모독죄로 체포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비밀입니다~~~~만
1988년 그 조항이 삭되되었답니다. 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0 14:50   좋아요 0 | URL
박재범.... 사태 때 정말... 웃겼죠.
혈기왕성 젊은 때 무슨 말을 못합니다.
전 그보다 더 심한 욕도 했습니다.
그냥.. 아, 시발 이 나라 좆같다.
이런 말 안 하는 사람 있습니까 ? 솔직히 이 나라 좆같으니깐 좆같지...
하여튼 꼰대들이 나라 말아먹고는
한다는 소리가 늘 천번은 흔들려랴 그 따위 소리나 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