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 살인 사건.
가해자는 19살 소년이고 피해자는 17살 소녀'다. 모두 미성년이다. 소년은 동성 친구와 함께 모텔에 투숙한다. 따분해진 그들은 평소 친분이 있던 소녀'를 모텔로 불러들인다. 잠시 후 친구는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뜬다. 소년과 소녀만 남았다. 갑자기 소년의 눈빛이 날까롭게 변한다. 소년은 소녀를 목 졸라 죽인 후, 공업용 카터 칼로 살점을 발라내어 화장실 변기에 버린다. 그리고는 뼈만 김장용 비닐 봉투에 넣어 모텔을 빠져나온다. 소년은 집으로 와 봉투'를 장롱 속에 숨긴다. 긴장으로 인한 피로가 몰려온다. 깊은 잠'에 빠진다. 눈을 떴을 때 허기를 느꼈을까 ? 그는 생각 끝에 친구에게 이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는 곧 자수'를 한다.
지금 이 이야기는 범죄 소설이나 공포 영화에 대한 줄거리 요약'이 아니다. 어제 용인에서 실제 있었던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언론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10대'가 저지른 엽기적인 범죄'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픽션이 현실에서 논픽션'으로 재현된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 대한 통탄'이 아니다. 10대 사건을 다루는 언론이 특정 팩트를 어떻게 < 프레임化 > 하는가에 대한 지적이다. 이런 십대 범죄'를 다룬 기사의 제목은 팔 할이 < 무서운 십대... > 로 시작된다. 이런 기사를 접한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 무서운 씹새... " 다. < 십대' > 는 < 씹새'> 로 추락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싸가지 없는 존재로 낙인 찍는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프레임 전략'은 어, 어어어어어어르신들의 지랄같은 꼰대와 꼴값'이 만들어낸 이미지 과잉'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부분을 전체'로 확산하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범죄를 저지른 소수에 대한 지적을 집단 전체에 대한 해석으로 확대한 것이다. 10대가 살인을 저지르면 무서운 십대 운운하지만 30대 이상인 성인 남성이 살인을 저지르면 " 무서운 삼십대... " 라는 식으로 제목을 뽑지는 않는다. 강력 범죄 횟수를 보면 10대 청소년보다 30,40,50대 연령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도 말이다. " 무서운 오십대.. " 라고 말하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나 ? 여기에는 자기 허물은 못 보고 남 탓만 하려는 대한민국 어르신들의 소갈딱지'가 읽힌다.
특정 집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구성원'을 분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카데미 상'은 아카데미 회원의 투표로 이루어진다. LA타임즈의 분석에 따르면 투표단 중 백인의 비중은 94%이며, 남성은 77%를 차지하고, 평균 연령은 62세'라고 한다. 결국은 < 보수 성향의 60대 백인 남성 > 의 영화적 취향이 곧 아카데미 성향'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이유로 편집권을 가지고 있는 데스크 직원의 구성 분포를 분석하면 그 성향을 알 수 있다. IMF 이후 보수 언론 데스크에서 완장을 찬 사람들이 쏟아낸 것은 < 고개 숙인 남성 > 에 대한 슬픈 발라드'였다. 여권이 신장한 반면 남성은 고개를 숙였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징징거린다. 명백한 엄살이다.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는 당당한 남성 사회'다. 뉴스는 공정해야 된다. 특정 계급과 계층'에게 불신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뉴스 보도는 삼가야 한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십대에게는 엄격한 이중잣대'는 < 성' > 을 다룰 때에도 드러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 청소년은 법적 허용 범위 안에서 하고 싶은 사람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상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 권리'를 주장하면 괴물 보듯이 한다. 청소년에게 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청소년의 성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들은 방석집 가서 별별 쇼를 하면서 말이다. 어, 어어어어어어어르신들이 십대의 성'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면 욕구에 불만이 쌓인다. 십대의 성'을 왜 당신이 관리하는가 말이다.
이처럼 10대를 대하는 어르신의 이중적 태도'는 고스란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이어진다. < 10대 > 라는 단어를 < 여성 > 으로 바꾸고, < 30,40,50대 > 를 < 남성 > 으로 바꾼 후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면 놀랍게도 같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0대 청소년들과 여성'이 약자인 이유이다. 한국 사회는 수컷이 지배하는 가부장 구조'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위해 10대와 여성을 짓누른다. 못생긴 여자는 죄가 되지만 못생긴 남자는 빳빳한 명함만 있으면 용서가 된다. 불공평 사회'다. 내 말이 < 어이 >없다면 당신은 < 아이 > 다. 철없는 아이다. 섭섭'해할 필요 없다. 내 말이 답답'하다면 당신은 갑갑한 꼰대다.
< 용인 살인 사건 > 은 느닷없이 공포 영화 < 호스텔 > 과 연관검색어'로 묶이는 모양새'다. 범인이 이 영화'를 보았다는 것. 그리고는 판에 박힌 결론에 도달한다. 범인은 공포 영화를 즐겨 보았으며 모방 범죄'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론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억지로 짜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기자가 고개를 푹 숙인 범인에게 묻는다. " < 호스텔 > 이란 공포 영화를 본 적 있나요 ? " 이 뜬금없는 질문은 함정 수사를 펼치기 위한 유도 질문'이다. 범인이 호스텔이란 공포 영화를 보았기에 공포 영화가 범죄의 요소'가 되었다면, 같은 이유로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자. " 위대한 개츠비'를 보셨나요 ? " 만약에 그가 보았다고 대답하면 < 사랑 > 이 범죄의 요소'가 되었나 ?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가운데 " 모텔 탈출기 " 라는 단편이 이 사건과 유사하다고 해서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멍청한 생각'이다. < 어 > 다르고 < 아 > 다른 법이다. 언론 데스크를 장악한 가부장 꼰대'의 입맛에 맞게 얼마든지 포지셔닝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질문에 따라 < 어 > 는 < 아 > 가 된다. < 어이 > 없다면 당신은 < 아이 > 다. 이처럼 편견으로 가득찬 언론 플레이'는 비주류 문학이나 공포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꼰대여 ! 아웃사이더와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향한 갑갑한 갑질'은 집어쳐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십대가 싸가지 없는 이유는 싸가지 없는 어른을 보고 배운 탓이다. 그게 정답이다. 기성용이 싸가지 없다고 혀를 끌끌 차기 전에 윗물은 맑았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라. 김지하 풍으로 말하자면 십대를 향한, 혹은 비주류'를 향한 조롱의 굿판은, 시부랄, 집어쳐라. 당신이나 잘해라.
■ 언론에 공개된 매우 짧은 정보'만 가지고 추리를 한다면 : 이 사건의 방점은 < 소년 + 소녀 > 가 아니라 < 소년1 + 소년 2 > 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범행 동기가 단순한 성폭행'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좀더 복잡한 심리적 동기가 작용했다는 말이다. 피해자인 소녀는 성폭행을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성폭행을 당했다면 모텔에 함께 있던 친구가 가담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범인은 자신의 용기'를 친구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저지른 과시적 동기'가 작용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 동성애적 관계 말이다. 그러니깐 이 소년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메시지'를 발송한 것은 아닐까 ? 어디까지나 100%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