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는 지옥이다

 

 

 

타자는 지옥이다

 - 사르트르

 

 

 

 

 

 

 

 

 

 

 

 

 

제철'이라는 말이 있다. 영국 식으로 말하자면 " 리즈 시절 " 이고, 중국 식으로 말하자면 " 화양연화 花樣年華 " 다. 꼰대가 즐겨 사용하는 " 왕년에 ~ " 라는 말은 " 제철 " 의 과거형'이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제철 씨 배다른 형이 왕련 씨'라는 말은 아니니까. 철 지난 제철이 왕년이다. 가을이 제철인 생선이 있다. 바로 전어'다. " 봄 도다리 가을 전어 " 라는 말이 있듯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전어 구이'를 생각하고는 침이 고인다. 맛은 잘 모르겠다. 잔가시 많은 생선을 좋아하지 않아서 일부러 찾는 생선은 아니다. 사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기도 하다. 알베르 까뮈처럼 바바리 깃 세우고 담배 한 대 피우면 가을 남성 패션 간지 모드는 완성된다. 구둣솔 같은 촘촘하게 박힌 수염이 거뭇거뭇 보이면 더욱 멋있다. 여기에 가을비'라도 내리면 금상첨화'다. 평소 꾀죄죄한 오징어였던 당신도 가을이 되면 꼴뚜기처럼 보이리라.


어머머, 평소 흐느적흐느적 걷던 저 남자 장딴지를 봐 ! 탱탱한, 아......  꼴뚜기 다리 같아.  그렇다, 찐따들은 가을을 노려야 한다. 올 가을에는 경동 보일러 대신 바바리코트 하나 장만해야 겠어요.  마른 오징어 다리처럼 부실한 다리는 바바리코트가 감싸줄 것이다. 곰곰 생각하면 : 남성 또한 가을이 제철인 생명체'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봄이 오면 자주 집을 나갔다. 좋게 말하면 두 발로 걸어서 집을 나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장롱 속에 꽁꽁 숨겨둔 돈을 훔쳐서 야반도주를 했다. 불심검문에 걸려서 서울로 압송된 적도 있다. 봄이 오면 미치는 거라, 꽃 피는 봄이 오면 미치는 거라 ! 내 몸 속에 여성 DNA가 숨겨져 있던 것일까 ?  그랬던 내가 이제는 봄을 타지 않는다. 봄은 불임의 계절이 되었다. 가을이 좋다. 어떤 이에게 가을은 전어의 계절이지만 내게는 가을 야구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올가을, 엘지 트윈스는 기적을 이뤘다. 시즌 초반  승률 5할에 못 미치는 -13으로 곤두박질치더니 김기태 감독이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배를 버리고 달아난 경상우수사 배설 장군 같은 캐릭터'였다. 철딱서니 없는 아이가 헤살 부리는 것 같았다. 일해라절해라    이래라저래라의 오타    참견하는 수장이 없으니 노를 젓던 병졸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했다. 일을 하지도 않았고 절을 하지도 않았다. 성적은 점점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이때 양상문이 김기태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일해라절해라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선수들은 일도 하고 절도 했다. 성적은 수은 온도계처럼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고 결국 5할 승리를 근접했다.  2014년 10월 8일 기준 엘지 트윈스는 60승 61패로 1승만 더하면 승률 5할이 된다. 두산 팬은 우우, 했지만 엘지 팬은 와와, 했다. 나머지는 에에, 했다. 언제부터인가 엘지 팬들은 양상문 리더십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골수 엘지 팬인 나는 양상문 리더십이 불편했다.

 

툭 까놓고 말해서 : 양상문 식 선수 운용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부임한 이후 4강 진입이 가능해졌다 해도,  결과가 좋다고 해서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발 투수는 최소 5이닝을 마무리해야 승리 조건을 갖춘다. 10 : 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5이닝을 매조지하지 못하고 물러나면 팀이 10 : 0으로 경기를 이겼다고 해도 승리 투수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감독은 선발 투수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투수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최소 5이닝은 소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양상문은 선발 투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선발 투수가 무실점으로 호투를 한다고 해도 위기에 봉착하면 5이닝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투수 교체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과적으로 냉정한 승부는 통했고, 엘지는 좋은 결과를 얻었고, 승리는 차곡차곡 쌓였다. 해피엔딩 ?! 글쎄다,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적 이익 앞에서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쪽으로 손을 잡는다. 덕장이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5이닝을 채워 승리 투수가 될 자격을 선발 투수에게 주어야 한다. 투수 교체에 대한 선택은 5이닝 이후이지 5이닝도 채우지 않은 선발 투수를 내리는 것은 승부수가 아니다. 양상문 감독은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은 그동안 우리가 많이 듣던 소리다. 박정희 정권 이후, 국가는 항상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부국강병을 위해서 국민은 모든 자유를 내려놓아야 했다. 여공들은 피임약을 먹어가면서까지 철야 야근을 해야 했고    박정희 시대를 지나 전두환 정권 때도 여성 노동자들은 피임 약을 먹으며 강제로 생리를 피했다. 생리통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곳곳에서 노동자 권리를 외쳤지만 그럴 때마다 국가는 국가라는 팀을 위해서 선수 개개인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소리만 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4강에 들어야 모두 모두 모두 좋은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승률 5할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도 때도 없이 선발 투수를 아무 때나 내린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았다. 나는 양상문 감독을 볼 때마다 국가가 국민을 세뇌시켰던 大을 위한 희생이 떠오른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이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복지보다 우선하는 것은  경제 성장 담론이다. 내가 감독이라면 마운드에 올라 이렇게 말하겠다. " 그까이꺼 !  져도 된다. 너에게는 5회까지 던질 자격이 있다. 맘껏 던져라 ! " 내 말에 마음이 여린 투수는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투지가 불끈 솟을 것이다. 그리고는 힘껏 공을 뿌릴 것이다. 비록 만루 홈런을 맞더라도 어쩔 수 없다. ​


4년 만에 1승을 따낸 투수가 있었다. 값진 승리였다. 1승을 따내기 위해서 4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다. 동료 선수와 가족들이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는 방긋 웃으며 화답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고 한다. 집에 가서 펑펑 운 사내가 바로 나'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나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보스턴 레드삭스 마이너리그 투수로 뛰었다. 당시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다. 무조건 레드삭스 스카우터를 찾아갔다. " 공을 던지고 싶습니다 ! " 스카우터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것은 대화를 나눈 지 5분이 지나서였다. 그가 말했다. " 혹시....  앞을 못 보시나요 ? " 나는 장님이라고 말했다. 침묵이 꽤 길게 이어진 것을 보면 놀란 눈치였다. " 앞을 못 보신다면 캄캄한 밤에 공을 던지는 기분일 텐데 두렵지 않습니까 ? " 나는 대답했다.


" 두려운 건 내가 아니라 타자입니다. 타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요. 두 눈 부릅뜨고 던져도 헤드샷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 헬멧을 맞히는 경우      이 빈번한데 두 눈 감은 맹인 투수가 96마일'짜리 공을 던진다고 생각해 봐요. 야구 전문 기자 레너드 코페트가 쓴 << 야구란 무엇인가 >> 라는 책 첫 장 타격 부분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 타격을 말할 때에 가장 먼저 꺼내들어야 할 화두가 두려움이다. 투수가 던진 공이 몸을 향해 날아오면 누구나 '피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반사 동작을 일으킨다 >  날아오는 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열쇠입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늘 두려움과 싸웁니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자는 늘 지옥이었지요. 그래서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타자는 지옥이다 ! "   세월이 흐른 후 그 스카우터는 내게 말했다. " 만약에 당신이 장님이 아니었다면 돌려보냈을 것이오. "


레드삭스 팀에서의 내 성적은 통산 49승 51패, 방어율 3.99이었다. 잘 던진 것도 아니고 못 던진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잘 던진 날도 있었고 못 던진 날도 있었다. 하지만 못 던졌다고 해서 5회 이전에 마운드를 내려간 적은 없었다. 잘 던지고 진 날도 있었고, 못 던졌는데 동료 선수 도움을 받아 승리를 얻은 경우도 있었다. 그게 인생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번 돈은 모두 라스베가스 도박장에서 날렸다. 나는 빈손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내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명박이 정권을 잡더니 이내 박근혜 언니가 빛나는 졸업장을 타셨다. 사람들은 한 자리 얻기 위해 한아름 꽃다발을 선사하며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다고 괄약근 꽉 조이며 굳은 맹세를 했다고 한다. 앞을 볼 수 없으나 짐작컨대  꼴불견이었으리라. 내가 앞을 못 보는 장님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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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10-09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알라딘 활동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주로 네이버에서 활동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10-09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돌아오는 겁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4-10-09 14:03   좋아요 0 | URL
저야 뭐 항상 왔다갔다 하지낳습니까... 아, 이거 왜 자꾸 자판이 이상ㅔ낳

수다맨 2014-10-0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대한민국 오야붕들 리더십이라는 게 덕장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성과 나올 때까지 아랫사람들 지독하게 들볶고 조지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어째 예나 지금이나 안 바뀌는 것 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10-09 14:03   좋아요 0 | URL
저는 저번에 4회에 리오단 1실점 하고 위기였을 때 투수 교체하는 거 보고 욕했습니다. 아무리 승리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선발이면 대량 점수를 주지 않는 이상은 믿고 가야 하는데 너무 막대하는 느낌같은생각이들어서 말이죠....

samadhi(眞我) 2014-10-16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선발을 불펜처럼 쓰는 감독들 무척 싫어하고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럼 머더러(울 형부가 자주 쓰는 말) ˝선발˝이라는 말을 붙이냐는 거죠. 투수 출신 감독이 오히려 적절한 투수 교체를 더 못하는 것 같아요. 선똥렬도 그렇고. 사실상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한화를 빼고 2년 연속 꼴찌를 한 기아빠로서, 언제나 타이거즈에게 조공(선수들^^ 이용규, 김상현, 박기남, 이대형...)해 주는 ˝사랑해효 엘지~˝가 부러울 줄이야줄이야. (엘지팬은 이 얘길 들으면 마음이 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 엘지는 늘 고마운 존재지요.)

 

 

 

 

 

 

 

 

 

 

 

 

 

 

 

 

 

 


 


 

 

마지막 수업

 

티븨 동물 농장 한 장면 : 단어를 40개나 알아듣는 개'가 있었다. ​주인이 " 연필 " 이라고 외치면 연필을 물고 오고, " 열쇠 " 하면 열쇠를 물고 온다. 그뿐이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입에 물고는 앞발로 휴지통 발판을 꾹 눌러 뚜껑을 연 후 휴지를 버리기도 하고, 주인이 발을 씻고 나오면 수건을 대령한다. 와와, 보는 내내 감탄했다. 영리한 개와 함께 산다는 것은 요리 솜씨가 뛰어난 여자를 아내로 둔 것과 같다. 봉달이      정식 풀 네임은  봉다리만 보면 좋아서 잘 뛰네'이다        는 리트리버종 네 살짜리 수컷'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청년이니 가장 힘 세고 총명할 때'이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봉달이 뇌 구조를 보면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봉달 씨가 인간이었다면 구순기 고착 장애 환자였으리라.

 

독한 마음을 가지고 훈련을 시켰다. 연필 가져와, 열쇠 가져와, 휴지는 휴지통에, 수건 가져와 ! 그럴 때마다 봉달이는......          어느 날이었다. 타란튤라 만한 거미가 벽에 붙어 있었다. 비명을 지르자 봉달이는 본능적으로 가족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듯했다. 털이 곤두서더니 이내 경계 태세를 갖췄다. 내가 벽에 붙은 대왕 거미'를 손가락으로 지시하며 봉달이에게 소리쳤다. " 벌레 ! 벌레 !!! " 사명감이었을까 ? 봉달이는 달려와서, 말릴 틈도 없이, 거미를 냅다 삼켰다. 주인에게 위협을 가하는 놈은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하지만 용맹도 잠시, 개가 화들짝 놀란 몸짓을 보이더니 이내 거미를 내뱉었다. 성질 사나운 거미가 순순히 있을 턱이 없다. 거미는 고래 뱃속 요나가 아니니깐 말이다.

 

거미가 봉달 씨를 문 모양이었다. 입 밖으로 나온 거미는 유유자적 사라졌다. 그날 이후, 내가 봉달이에게 " 벌레 어딨어 ? " 라고 말하면 국경수비대 군인'처럼 즉각 벽을 쳐다보며 경계 태세를 갖췄다. 벽에 얼룩이라도 있으면 달려가 물어뜯으려고 한다. 그렇다, 봉달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한국어는 < 벌레' > 였다. 아, 드디어 말귀가 트였구나. 봉달이가 벌레 다음으로 배운 말은 < 쥐 > 였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쥐 한 마리가 방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잠을 자려다가 이상한 소리에 불을 켰다. 조용했다. 잘못 들었나 ? 하지만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불을 켜면 조용해지고 불을 끄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반복됐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는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옷 바구니를 뒤질 때였다. 무엇인가가 후다닥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쥐였다. 쥐는 침대 밑으로 숨었다. 화가 난 나는 마당에서 잠을 자고 있는 봉달 씨를 깨워 방 안으로 들였다. " 쥐, 잡아 !!! "  나는 날카롭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개는 본능적으로 주인이 무엇인가에 화가 잔뜩 났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벌름거리더니 이내 낌새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한밤중에 사투가 벌어졌다. 이리저리 숨는 쥐와 쥐를 잡아서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개는 열심히 쥐를 쫓았다. 하지만 덩치가 작은 쥐는 덩치가 산 만할 뿐 아니라 정신력도 산만한 개를 압도했다. 쥐는 침대 밑, 거실 냉장고 뒤, 안방 장롱 밑을 돌아다니다가 결국에서 마당으로 달아났다. 그날 이후, 내가 봉달 씨에게 " 쥐 어딨어 ? " 라고 말하면 침대 밑, 냉장고 뒤를 구석구석 샅샅이 뒤진다. 두 번째 배운 한국어'였다.

 

세 번째 배운 말은 < 야옹이 > 였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앞집 뒤켠에 새끼를 낳았다. 다섯 마리였다. 개코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봉달 씨는 하루 종일 앞발을 담 위에 올리고는 고양이를 감시했다. 털을 곤두세운 것을 보면 사랑보다는 미워 죽겠다는 태도처럼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 귀여운 야옹이'야. 친하게 지내야지 " 라고 가르쳤으나 검은 개 꼬리 삼 년 묻어도 황모 못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봉달 씨를 두 달 동안 실내에 감금했다. 덩치가 산 만해서 담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다섯 마리 새끼 고양이가 불안에 떨며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두 달 후. 길고양이 어미는 새끼를 데리고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했다. 잘 살고 있으려나 ?     

 

고양이 가족이 이사를 가자 자연스럽게 봉달 씨에게 내려진 주택 감금 조치도 사라졌다. 내가 봉달 씨에게 " 야옹이 어딨어 ? " 라고 말하면 봉달 씨는 담벼락에 앞발을 올려 앞집 뒤켠을 바라본다.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봉달 씨가 한국말을 세 개나 알아들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학습을 하다가는 3년 후에는 40개 단어를 알아듣는 천재견이 될지도 모른다. 방긋 !    하지만 수업은 여기서 끝났다. 비 오는 날, 곰곰 생각했다. 내가 봉달 씨에게 가르친 것은 말이 아니라 증오'였다. 많고 많은 말 중에서 나는 개가 싫어하는 대상만을 가르친 꼴이 되었다. 벌레, 쥐, 고양이.......    이렇게 키우다가는 사뮤엘 풀러 영화 << 마견 >> 이나 스티븐 킹 소설 << 쿠조 >> 에 나오는 사나운 개가 될 게 뻔했다. 그래서 한국어 수업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내가 어리석었다.  선생 곰곰발과 제자 봉달 씨만 탓할 일이 아니다. 증오라는 단어를 가르치기란 쉽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르치기는 힘들다. 헬렌 켈러'가 가장 늦게 배운 단어는 사랑에 대한 낱말이었다.  인간은 사랑보다 증오를 먼저 배운다. 그래서 어리석은 존재다. 레비스트로스는 말했다. "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 라고.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에 빠진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롤랑 바르트의 << 사랑의 단상 >> 을 다시 읽었다. 읽을 때마다 심장이 뛴다. 아, 이토록 떨리는 사랑을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말하는 이가 또 있을까 ? 

 

 

모든 연인은 독사에 물린 사람과 흡사하다고 알키비아데스는 말한다. " 흔히들 말하는 것을 들으면 독사에 물린 사람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런 일을 겪은 사람 말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들려주기를 꺼린답니다. 너무도 아픈 나머지 무슨 짓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이런 사람들만은 알아주고 용서도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

 

ㅡ 사랑의 단상, 303쪽

 그는 사랑하는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사랑은 비정상인 상태에 놓인 심리적 증후'다.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으면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나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지고,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며 아주 사소한 일에도 뛸 듯이 기쁜 상태가 된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종교인에게 열병은 에볼라 바이러스만큼이나 위험해서 세속적 사랑을 멀리하게 된다. 종교인은 성인이 가르친 말씀의 결대로 살아가야 한다. 결이 난 방향으로 대패질을 해야 대팻날이 상하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사랑의 열병은 결 반대 반향으로 대패질을 하는 행위'다. 심장이 부서지고, 거스러미 일어도 사랑은 개의치 않는다. 비록 거스러미가 살갗에 깊이 박힌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은 견딘다. " 이따위 통증은 개나 줘 버려 ! "

 

달리 설명할 길은 없다. 그것이 사랑이니까. 봄바람은 항상 일정한 바향으로 불어오지만 태풍은 방향의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사랑은 방향을 짐작할 수 없는 태풍과 같다.  오른 쪽으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피하기 위해 몸을 돌리면 어느새 맞바람이 분다. 누구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둡고 슬픈 마음 때문에 그 곁을 떠나지만 또 누군가는 그 어둠에서 낭만을 읽기도 한다. " 나무의 저항은 못을 받는 장소에 따라 다르다. " 롤랑 바르트의 말이다.

 

 

 

 http://myperu.blog.me/22013982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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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4-10-05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잘 들어가셨습니까? 제가 술에 좀 취해서 실수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혹여나 결례를 끼쳤다면 죄송하게 됐습니다.
크리스토퍼 란스마이어의 ˝최후의 세계˝와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 잘 받았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다른 선물을 준비해가겠습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10-05 21:02   좋아요 0 | URL
ZZZZZZZZZZZZZZZZZZZZZZZ 아니 그게 무슨 결례입니까.....
술 마시고 넘어질 수도 있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전 2차는 사실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최후의 세계와 플레베르 앵무새 무척 좋습니다. 잘 읽으시기 바립니다.

푸르푸르 2014-10-17 14:50   좋아요 0 | URL
실수 안하셨습니다 혹시 이번주 토요일도 시간 괜찮으시면 나오세요
페루애님이랑 또 한잔 합니다
 

 

 

 

아내의 마술

 

 

아내가 슬프고

슬픈 아내를 보고 있는 내가 슬프고

그때 온 장모님 전화 받으며, 그러엄 우린 잘 지내지. 하는

아내 속의 아내는 더 슬프다

 

마술처럼 완벽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모자에서 나온 토끼가

모자 속으로 자청해서 돌아간다

내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 하면

딱딱한 면은 왜 나를 막는가

 

엄마가 아이를 버리고

직업이 아비를 버리고

병이 아픈 자를 버리고

마술사도 결국 토끼를 버리고

 

매정한 집이, 너 나가, 하며 문밖에 길을 쏟아버리자

미망 迷妄 이 그 길을 받아 품에 한번 꼭 안았다가 바로 버린다

 

온 세상을 슬픔으로 물들게 하려고

우는 아내가 식탁 모서리를 오래오래 쓰다듬고 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마술이다

 

                   ㅡ 심보선, 시집 [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중에서

 

 

 

 

 

식탁 모서리를 오래오래 쓰다듬고 있다

 

슬픔은 유행성 독감보다도, 에볼라 바이러스보다도 전염성이 강하다. 슬픔은 수인성전염병 水因性傳染病도 아니고 수인성전염성 手因性傳染病도 아니다. 시인성전염병 視因性傳染病 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전염이 된다. 아내가 슬픔에 빠지자 그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던 남편이 슬픔에 빠지고, " 아내 속의 아내 " 는 더 슬프다. 그리고 이 시를 읽고 있는 독자도 슬픔에 빠진다. 이런 식으로 슬픔은 세계를 잠식할 것이다. 감염 속도를 감안하면 일주일 이내에 대한민국이 슬픔에 빠질 것이고, 일본이, 중국이, 과테말라가, 갈라파고스 군도가, 세계가, 인류가, 지구가 슬픔에 빠질 것이다. 이 재앙의 시작은 " 아내의 슬픔 " 이다. 시인은 " 마술처럼 완벽한 세상 " 에서 살고 싶다. 그곳은 신나는 세상이지 슬픈 세상은 아니니까. 하지만 마술처럼 완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유토피아는 " 어느 곳에도 없는 곳 " 이라는 의미이니깐 말이다. 현실은 잔혹하다. " 엄마가 아이를 버리고 / 직업이 아비를 버리고 / 병이 아픈 자를 버리고 / 마술사도 결국 토끼를 버리고 // 매정한 집이, 너 나가, 하며 문밖에 길을 쏟아버 " 린다고 말한다. 꾀죄죄한 현실'이다. 슬픔은 늘 이런 식이다.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스크린 속 영화나 티븨 속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대부분은 구질구질한 현실 때문에 슬퍼진다. 시인의 아내도 꾀죄죄한 현실 때문에 슬퍼했으리라. 시인은 아내가 " 온 세상을 슬픔으로 물들게 하려고 / 우는 아내가 식탁 모서리를 오래오래 쓰다듬고 있다 " 고 말하지만, 그 지적은 틀렸다. 아내는 각진 모서리 끝을 쓰다듬어, 천 번을 더듬어 둥글게 마모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자기 치유이면서 슬픔에서 벗어나려는 묵언수행'이다. 시인은 뾰족한 각을 둥글게 만들고 있는 아내의 " 신기한 마술 " 을 보고 있다. 어루만진다는 것은 뾰족한 것을 둥글게 만드는 행위'이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언제가 아내는 식탁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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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 2014-09-2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팟캐스틀 아시는군요!

이 양반, 글재주 뿐 아니라 목소리도 참 좋죠.

가뭄에 콩나듯 내킬때마다 읽어주는 책인게 좀 아쉽지만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9-23 16:00   좋아요 0 | URL
아, 오늘은 댓글이 별로 안 달렸네요.
그래도 엄동 님이 꾸준한 댓글 고객이로군요....

사실 이 팟 캐스트 있다는 건 알았지만 오늘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김영하 목소리는 좋군요. 신형철보다... ㅋㅋㅋㅋㅋ
신형철은 개인적으로 졸립니다.

라로 2014-09-24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좋아요,,,다만 그런 종류의(?) 아내가 아닌 저는 어쩐지 죄책감을 느껴야 할듯한ㅎㅎㅎ;;;;
책 언제 내실 거에요? 북펀드든 뭐든 저도 동참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9-24 09: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아롬 님 ! 일단 의견추렴 중입니다.
동참하신다니 영광입니다. 대박 나면 굴비 보내드리겠습니다..ㅎㅎㅎㅎ

잘지내시고 바쁘게 사시는 소식 잘 듣고 있습니다. 전 아롬 님의 스토커입니다.

2014-10-03 0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03 0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03 0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10-03 03:5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네에 ! 아 저 지금 일어나 막 컴 켰더니 댓글이 달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페이퍼 하나 지운다는 게 그만 전체 클릭을 눌러서 페이퍼 10개가 몽땅 날아갔어요. 신경질나는군요...


유진식당 ( 네이버에 낙원동 유진식당, 낙원상가 유진식당, 종로 유진식당 치면 자세한 내용 나옵니다. 워낙 오래되고 유명한 곳, ) 5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내 사랑

 

                                      전윤호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봉긋한 가슴을 눈 여겨 봐두었지
  날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파먹어야 하니까
  난 당신에게
  생살을 찢기는 아픔밖에 줄 게 없어
  지금은 사방이 막힌 빙하기
  당신의 늑골 속에 숨어 단잠을 자다가
  심심하면 손톱으로 그림을 그리지
  참나무 숲과 얼지 않은 강
  멈출 줄 모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내 사랑
  당신은 나의 무덤이야

 

-  전윤호, 시집 [ 순수의 시대 ] 중에서

 

 

 

 

 

 

 

당신 가슴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곰곰생각하는발

 

여의도 밤섬을 사서 죽은 고래 한 마리 그곳에 두고 싶다 / 기름 등불 밝혀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 잠들고 싶다 / 눈 뜨면 아, 캄캄한 세상 / 눈 감고, 다시 눈 떠도 / 아, / 캄캄한 세상 / 고래 뱃속은 암막 커텐도 필요 없고 / 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숙면용 귀마개도 필요 없다 / 비가 와도 우산 쓸 필요 없고 설령 하늘이 무너진다한들 / 가라앉지 않을 섬 / 거대한 갈비뼈는 두오모 성당의 아치형 기둥 / 이보다 더 견고한 벙커가 있을 수 있을까 ? / 밤낮없이 캄캄하고, 밤낮없이 은은하고, 밤낮없이 고립된 거대한 궁전

 

세상 밖으로 떠밀려 나온 후 줄곧 그곳을 그리워했다 / 내가 다시 찾아간 곳은 사랑하는 여자의 뱃속이었다 /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는 당신을 파먹어야 하니까 / 사랑할수록 여자는 헛배 부르고 / 속은 점점 텅 비워지고 남은 거대하지만 슬픈 / 맨홀 나는 당신 속을 파먹고 사는 기생 벌레였다 / 심장과 간과 폐를 갉아먹고 눈물을 마시고 붉은 피에 취했지 / 당신 가슴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 내가 갉아먹은 속은 당신 심장이 아니라 내 심장이었다는 사실을

 

내 몸 내가 갉아먹고 살았네 / 오오, 시부랄 ! 오히려 잘 됐다 / 심장 따위 ,   필요 없어.

 

 

 

 

 

 

 

 

 

 

 

http://blog.aladin.co.kr/749915104/6695997 :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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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큐리언 2014-09-22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산에서 고래고기에 소주 한 잔 합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9-23 09:15   좋아요 0 | URL
고뤠? 아닙니다. 전 포경 반대론자`랍니다. 세꼬시나 사주십시요..

만화애니비평 2014-09-2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부산은 오십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4-09-23 16:01   좋아요 0 | URL
언제 함 가야 할 터인데.... 워낙 멀어서리..
가게 되면 에피큐리언 님과 만애비 님 같이 만납시다..
스케쥴이 워낙 바빠서 ㅎㅎㅎㅎㅎㅎㅎㅎ...
 

 

 

 

모르는 새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꽃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이국 햇빛 속에서 겁도 없이.

 

ㅡ 황동규, [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 전문 

 

 

 

첫 끝발이 개 끝발이라는 말이 있다. 천재적 재능을 너무 젊은 나이 때 발산하게 되면 끝에 가서 재능이 고갈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되는데 한때 천재 시인으로 불렸던 오쉬프만젤쉬탐'도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오쉬프만젤쉬탐은 러시아 국민 시인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춘기 시절 시를 쓰기 시작해서 스무살이 되기 전에 시집을 출간했던 시인. 고도리에, 똥 흔들고, 따따블에, 쓰리고를 외치고 피박 뒤집어씌워 첫 판을 휩쓸어 노름판 노름꾼을 가재미 눈깔로 만든 오쉬프만젤쉬탐 ! 하지만 나중에는 요 밑에 꼬불쳐 둔 비상금마저 탈수기처럼 탈탈 털리는 신세가 되었다.  순수했던 어린 시인은 어른이 되어 타락했다.  그나 나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지 못했으나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는 넉살이 좋아서 친화력을 갖춘 인물이었지만 이 친화력이 과한 듯하면서 동시에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의 치근덕은 인간적이어서 좋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는 천상 시인이었다. 나와는 정반대'였다. 나는 거절 공포증이 있어서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기지 않으면     여럿이 모이는 자리를 약속한 적은 있어도    단 둘이 만나는 자리를 먼저 제안한 적은 없다. 자칫 잘못하면 치근덕거리는 남자로 오해받는 게 싫어서다.  사랑 고백도 받기만 했을 뿐,  먼저 고백한 적이 없다. 반면 오쉬프만젤쉬탐은 " 거절 공포증 0 % " 환자였다. 약속을 거절해도 서운해하거나 토라지지 않았다. 문득 오래 전에 보았던 자연 다큐'가 생각났다. 수컷 새는 반짝거리는 예쁜 돌을 주워 평소 좋아하던 암컷 앞에 다가가 돌을 내려놓았다.

 

구애 행위'였다. 암컷이 보는 둥 마는 둥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수컷은 보다 더 예쁘고 반짝거리는 돌을 주워 다시 암컷 앞에 내놓았다. 내가 만약에 그 새였다면 첫 번째 거절에 낙담하여 꽁지 빠지게 도망쳤을 것이다. 거절에 대한 불안 공포를 가지고 있는 나로써는 부럽고, 부럽고, 부러운 근성이었다.내가 가끔 떼거지로 사람들을 긁어모아 술을 마시는 이유에는 거절에 대한 데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까 ?  그러니까 이 작전은 스팸 메일과 같은 형태'였다. 다수에게 메시지를 뿌리면 응답하는 이는 소수지만 이 소수 정예'가 마치 다수 의견처럼 느껴져서 거절당했다는 불안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가지도 아니면서 가지가지한다고 놀려도 좋다.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당신이나      오리도 아니면서 오리무중인 당신이나       나나 피차 매한가지'다. 그게 내가 가진 꾀죄죄한 한계'다. 나는 인간이 품은 품성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월남 쌀처럼 푸석푸석한 술자리를 좋아했다. 끈끈한 관계는 질색이었다. 음식은 영양가 있는 게 좋지만 인간 관계는 영양가 없는 게 좋았다. 별 볼 일 있는 사람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다. 대화는 즐겁게 관계는 냉정하게 ! 그래서 나는 남자끼리 몰려다니며 " 브라더후드 " 를 강조하는 우정이 못마땅했다. 그것은 " 브라더후드 " 라기보다는 " 불알- 후드 "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내새끼들은 테스토스테론이 과다 분비되어서 쓸데없이 우정과 의리'를 들먹인다.

 

나는 한국 남자들에 왜 그토록 브라더후드     지랄같은 남성 혈맹       를 강조하며 끈끈하게 붙어먹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끈끈한 관계는 사랑하는 애인 한 명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  황동규 시집 제목이기도 한 시 [ 버클리풍 사랑 노래 ] 는 읽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버클리라........      버클리는 도대체 어느 촌구석에 있는 마을일까 ?      양촌리는 들어봤어도 버클리'는 금시초문이어서 버클리풍 사랑 노래'를 내가 과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한국인은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고, 앵두 같은 입술을 괄약근처럼 오므리며 샐러드를 오물거려도 집에 들어가면 본능적으로 젓갈 냄새나는 묵은지 한 조각 먹고 싶은 DNA가 몸속에 저장되어 있으니

 

<< 버클리풍 사랑 노래 >> 라고 해도 사실은 << 양촌리풍 사랑 노래 >> 와 비슷하지 않을까 ? 시적 화자인 < 나 > 는 여성성이 두드러진 남성이다. " 오빠만 믿어 봐 ! " 라고 호탕하게 허세를 부릴 만도 하지만  나는 묵묵히 사랑하는 그대가 해야 할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한다. < 나 > 는 사랑하는 "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 꽃꽃이도 /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 그냥 설거지일 뿐. " 이라고 고백한다. 힘과 의리를 외치는 수컷들이 못마땅해 할 짓'이다.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이만큼 준비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서는 티가 나는 이벤트를 벌려야 그대가 감동할 터인데 시적 화자는 단순히 " 그대 모르는 새 해치우는 " 설겆이로 마음을 표현할 뿐이다.

 

누군가는 해야 될, 사소한 일이기에 모르는 새 해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에둘러 설겆이로 표현하는 시적 화자를 보고 있으니 반짝거리는 예쁜 돌을 물어 암컷 새 앞에 떨어뜨리고는 이내 사라지는 수컷 새의 구애가 생각났다. 시적 화자는 예쁜 돌을 주워 사랑하는 암컷 앞에 놓고 가는 대신 설겆이를 선택한다. "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 " 으면 반짝거리는 예쁜 돌이 되리라.       시인이 < 물비누 > 란 시어 대신 < 비눗물 > 이라고 했으면 이 시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란 작은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아름다운 존재는 항상 " 우리 모르는 새 " 찾아온다. " 우리 모르는 새 / 언덕 새파래지고 / 우리 모르는 새 / 저 샛노란 유채꽃 " 이 피고 우리 모르는 새 사랑은 싹 트고......  

 

시를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  태어나서 멋진 프로포즈 한 번 못했다. 설겆이만 한 인생이다. 만약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예쁜 조약돌을 주워 여자 앞에 툭, 던져놓으리라. 그대가 거들떠도 안 본다 해도 그 옛날처럼 꽁지 빠지게 도망치지는 않으리. 돌을 주워 만리장성을 쌓으리. 밤새 끈적끈적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 타액과 정액으로 범벅이 된 얼룩을 두려워하지 않으련다. 다음날 "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 서 "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 " 으면 되니까. 더러워진 몸, 내가 깨끗이 씻기리라.  유리 접시'를 조심스럽게 닦듯이 !  가을이 되니 시만 읽게 된다. 가을이니까 !

 

 

 

+

참고로 내가 아는 유일한 새 이름은 은하철 씨'다. 나머지는 모르는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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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D 2014-09-2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때 전 부치느라 참석 못했지만.. 언젠가 페루애님 만나고 싶네요ㅋㅋ 물론 쑥쓰럼을 많이 타서 술 좀 들어가야 말이 나올듯..으헤헹

푸르푸르 2014-09-22 13:11   좋아요 0 | URL
10월 4일에 페루애가 모임 잡을 듯 하니 그때 오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9-22 15:12   좋아요 0 | URL
네에, 그날 날을 잡을 듯하니 토드 님 오십시요. 글구 보니 토드 님도 제 오랜 이웃이군요...

samadhi(眞我) 2014-09-2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따라 말놀이(언어유희)가 절정이구려. 저는 관계에 주로 ˝달려드는˝ 성향이 강해서 사람들이 피해다니는 편이지요. 요즘은 체력이 달리기도 하고, 기도 쇠해져서(?) 누그러졌지만. 남자한테 고백했다 차인 적 많아요^^. 지난 주말, 14년 만에 첫사랑을 만났습니다. 남편에게는 다른 친구 만났다고 하고. ㅋㅋ 아, 바람핀 기분. 아무튼 오~랜 만에 추억(이 말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딱 이 말밖에)에 젖어보았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9-22 15:17   좋아요 0 | URL
오, 좋아하는 수컷 새에게 예쁜 조약돌 주워다 앞에 놓는 스타일이시구랴.
오쉬프 형 인간이십니다.. ㅋㅋㅋㅋㅋㅋ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전 그런 치근덕이 부럽습니다.


+

첫사랑 만난 일 좀 말씀해주세요. 왜 세월이 흐르면 첫사랑 차라리 안 만나는 게 좋다고
하던데요...

samadhi(眞我) 2014-09-22 20:24   좋아요 0 | URL
그런 얘기는 만나서(?) 들려드릴게요 얘기할 거리는 그다지 없지만 ㅎㅎ

푸르푸르 2014-09-2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dimonofcity.blog.me/220129138147

엄동 2014-09-22 13:4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이거 뭔가요?
아무리 아이디와 패스워들 넣고 엔터를 쳐봐도 넘어가지질 않아요 -0-

푸르푸르 2014-09-22 13:48   좋아요 0 | URL
다시 눌러 보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9-22 15:14   좋아요 0 | URL
알라딘은 이게 댓글창에 걸면 링크가 안 걸리더라고요...
주소 보니 오쉬프 님 블로그 같소만.....
잠시 글어가서 보겠씁니다.

엄동 2014-09-2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릴땐, 상대의 사심없는 거절멘트에 괜시리 상처받고
생각에 생각. 꼬리를 물었었는데 ㅋ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낮을수록 거절공포증도 제로에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황동규˝시인의 시들, 진정 가을에 딱이네요

푸르푸르 2014-09-22 13:12   좋아요 0 | URL
아니 그 거절은 주로 여자들인가요?
엄동님을 거절할 남자들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

엄동 2014-09-22 13:3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남녀불문이죠 뭐.

아니 어쩌다 그런 선입견을..

그 선입견이 파삭 깨질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푸르푸르 2014-09-22 13:49   좋아요 0 | URL
4일날 깹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9-22 15:16   좋아요 0 | URL
가만 보면 황동규 시인 시는 사실 오글거리는 사랑 시가 많습니다.
전 시를 주로 닭살용으로 읽기 때문에
비장한 시도 좋지만 요런 사랑 시도 참 좋네요..
계절이 계절인지라......

수다맨 2014-09-22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동규가 오래전 썼던 시 중에는 오글대는 사랑시가 많은데, 나이가 들수록 그 오글댐이 조금씩은 사라지는 것 같아요. 한결 관조적이면서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야할까요. 지금 올려주신 시가 참 좋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9-24 10:27   좋아요 0 | URL
시 좋죠 ? 이상하다.. 수다맨 님 글에 댓글을 분명 달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없네요...
신기하네.. 하긴 늘 취해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