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전윤호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봉긋한 가슴을 눈 여겨 봐두었지 날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파먹어야 하니까 난 당신에게 생살을 찢기는 아픔밖에 줄 게 없어 지금은 사방이 막힌 빙하기 당신의 늑골 속에 숨어 단잠을 자다가 심심하면 손톱으로 그림을 그리지 참나무 숲과 얼지 않은 강 멈출 줄 모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내 사랑 당신은 나의 무덤이야
- 전윤호, 시집 [ 순수의 시대 ] 중에서
당신 가슴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곰곰생각하는발
여의도 밤섬을 사서 죽은 고래 한 마리 그곳에 두고 싶다 / 기름 등불 밝혀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 잠들고 싶다 / 눈 뜨면 아, 캄캄한 세상 / 눈 감고, 다시 눈 떠도 / 아, / 캄캄한 세상 / 고래 뱃속은 암막 커텐도 필요 없고 / 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숙면용 귀마개도 필요 없다 / 비가 와도 우산 쓸 필요 없고 설령 하늘이 무너진다한들 / 가라앉지 않을 섬 / 거대한 갈비뼈는 두오모 성당의 아치형 기둥 / 이보다 더 견고한 벙커가 있을 수 있을까 ? / 밤낮없이 캄캄하고, 밤낮없이 은은하고, 밤낮없이 고립된 거대한 궁전
세상 밖으로 떠밀려 나온 후 줄곧 그곳을 그리워했다 / 내가 다시 찾아간 곳은 사랑하는 여자의 뱃속이었다 /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는 당신을 파먹어야 하니까 / 사랑할수록 여자는 헛배 부르고 / 속은 점점 텅 비워지고 남은 거대하지만 슬픈 / 맨홀 나는 당신 속을 파먹고 사는 기생 벌레였다 / 심장과 간과 폐를 갉아먹고 눈물을 마시고 붉은 피에 취했지 / 당신 가슴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 내가 갉아먹은 속은 당신 심장이 아니라 내 심장이었다는 사실을
내 몸 내가 갉아먹고 살았네 / 오오, 시부랄 ! 오히려 잘 됐다 / 심장 따위 , 필요 없어.
http://blog.aladin.co.kr/749915104/6695997 : 심장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