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는 지옥이다
타자는 지옥이다
- 사르트르

제철'이라는 말이 있다. 영국 식으로 말하자면 " 리즈 시절 " 이고, 중국 식으로 말하자면 " 화양연화 花樣年華 " 다. 꼰대가 즐겨 사용하는 " 왕년에 ~ " 라는 말은 " 제철 " 의 과거형'이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제철 씨 배다른 형이 왕련 씨'라는 말은 아니니까. 철 지난 제철이 왕년이다. 가을이 제철인 생선이 있다. 바로 전어'다. " 봄 도다리 가을 전어 " 라는 말이 있듯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전어 구이'를 생각하고는 침이 고인다. 맛은 잘 모르겠다. 잔가시 많은 생선을 좋아하지 않아서 일부러 찾는 생선은 아니다. 사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기도 하다. 알베르 까뮈처럼 바바리 깃 세우고 담배 한 대 피우면 가을 남성 패션 간지 모드는 완성된다. 구둣솔 같은 촘촘하게 박힌 수염이 거뭇거뭇 보이면 더욱 멋있다. 여기에 가을비'라도 내리면 금상첨화'다. 평소 꾀죄죄한 오징어였던 당신도 가을이 되면 꼴뚜기처럼 보이리라.
어머머, 평소 흐느적흐느적 걷던 저 남자 장딴지를 봐 ! 탱탱한, 아...... 꼴뚜기 다리 같아. 그렇다, 찐따들은 가을을 노려야 한다. 올 가을에는 경동 보일러 대신 바바리코트 하나 장만해야 겠어요. 마른 오징어 다리처럼 부실한 다리는 바바리코트가 감싸줄 것이다. 곰곰 생각하면 : 남성 또한 가을이 제철인 생명체'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봄이 오면 자주 집을 나갔다. 좋게 말하면 두 발로 걸어서 집을 나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장롱 속에 꽁꽁 숨겨둔 돈을 훔쳐서 야반도주를 했다. 불심검문에 걸려서 서울로 압송된 적도 있다. 봄이 오면 미치는 거라, 꽃 피는 봄이 오면 미치는 거라 ! 내 몸 속에 여성 DNA가 숨겨져 있던 것일까 ? 그랬던 내가 이제는 봄을 타지 않는다. 봄은 불임의 계절이 되었다. 가을이 좋다. 어떤 이에게 가을은 전어의 계절이지만 내게는 가을 야구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올가을, 엘지 트윈스는 기적을 이뤘다. 시즌 초반 승률 5할에 못 미치는 -13으로 곤두박질치더니 김기태 감독이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배를 버리고 달아난 경상우수사 배설 장군 같은 캐릭터'였다. 철딱서니 없는 아이가 헤살 부리는 것 같았다. 일해라절해라 이래라저래라의 오타 참견하는 수장이 없으니 노를 젓던 병졸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했다. 일을 하지도 않았고 절을 하지도 않았다. 성적은 점점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이때 양상문이 김기태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일해라절해라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선수들은 일도 하고 절도 했다. 성적은 수은 온도계처럼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고 결국 5할 승리를 근접했다. 2014년 10월 8일 기준 엘지 트윈스는 60승 61패로 1승만 더하면 승률 5할이 된다. 두산 팬은 우우, 했지만 엘지 팬은 와와, 했다. 나머지는 에에, 했다. 언제부터인가 엘지 팬들은 양상문 리더십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골수 엘지 팬인 나는 양상문 리더십이 불편했다.
툭 까놓고 말해서 : 양상문 식 선수 운용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부임한 이후 4강 진입이 가능해졌다 해도, 결과가 좋다고 해서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발 투수는 최소 5이닝을 마무리해야 승리 조건을 갖춘다. 10 : 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5이닝을 매조지하지 못하고 물러나면 팀이 10 : 0으로 경기를 이겼다고 해도 승리 투수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감독은 선발 투수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투수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최소 5이닝은 소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양상문은 선발 투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선발 투수가 무실점으로 호투를 한다고 해도 위기에 봉착하면 5이닝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투수 교체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과적으로 냉정한 승부는 통했고, 엘지는 좋은 결과를 얻었고, 승리는 차곡차곡 쌓였다. 해피엔딩 ?! 글쎄다,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적 이익 앞에서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쪽으로 손을 잡는다. 덕장이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5이닝을 채워 승리 투수가 될 자격을 선발 투수에게 주어야 한다. 투수 교체에 대한 선택은 5이닝 이후이지 5이닝도 채우지 않은 선발 투수를 내리는 것은 승부수가 아니다. 양상문 감독은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은 그동안 우리가 많이 듣던 소리다. 박정희 정권 이후, 국가는 항상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부국강병을 위해서 국민은 모든 자유를 내려놓아야 했다. 여공들은 피임약을 먹어가면서까지 철야 야근을 해야 했고 박정희 시대를 지나 전두환 정권 때도 여성 노동자들은 피임 약을 먹으며 강제로 생리를 피했다. 생리통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곳곳에서 노동자 권리를 외쳤지만 그럴 때마다 국가는 국가라는 팀을 위해서 선수 개개인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소리만 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4강에 들어야 모두 모두 모두 좋은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승률 5할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도 때도 없이 선발 투수를 아무 때나 내린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았다. 나는 양상문 감독을 볼 때마다 국가가 국민을 세뇌시켰던 大을 위한 희생이 떠오른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이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복지보다 우선하는 것은 경제 성장 담론이다. 내가 감독이라면 마운드에 올라 이렇게 말하겠다. " 그까이꺼 ! 져도 된다. 너에게는 5회까지 던질 자격이 있다. 맘껏 던져라 ! " 내 말에 마음이 여린 투수는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투지가 불끈 솟을 것이다. 그리고는 힘껏 공을 뿌릴 것이다. 비록 만루 홈런을 맞더라도 어쩔 수 없다.
4년 만에 1승을 따낸 투수가 있었다. 값진 승리였다. 1승을 따내기 위해서 4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다. 동료 선수와 가족들이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는 방긋 웃으며 화답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고 한다. 집에 가서 펑펑 운 사내가 바로 나'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나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보스턴 레드삭스 마이너리그 투수로 뛰었다. 당시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다. 무조건 레드삭스 스카우터를 찾아갔다. " 공을 던지고 싶습니다 ! " 스카우터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것은 대화를 나눈 지 5분이 지나서였다. 그가 말했다. " 혹시.... 앞을 못 보시나요 ? " 나는 장님이라고 말했다. 침묵이 꽤 길게 이어진 것을 보면 놀란 눈치였다. " 앞을 못 보신다면 캄캄한 밤에 공을 던지는 기분일 텐데 두렵지 않습니까 ? " 나는 대답했다.
" 두려운 건 내가 아니라 타자입니다. 타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요. 두 눈 부릅뜨고 던져도 헤드샷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 헬멧을 맞히는 경우 이 빈번한데 두 눈 감은 맹인 투수가 96마일'짜리 공을 던진다고 생각해 봐요. 야구 전문 기자 레너드 코페트가 쓴 << 야구란 무엇인가 >> 라는 책 첫 장 타격 부분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 타격을 말할 때에 가장 먼저 꺼내들어야 할 화두가 두려움이다. 투수가 던진 공이 몸을 향해 날아오면 누구나 '피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반사 동작을 일으킨다 > 날아오는 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열쇠입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늘 두려움과 싸웁니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자는 늘 지옥이었지요. 그래서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타자는 지옥이다 ! " 세월이 흐른 후 그 스카우터는 내게 말했다. " 만약에 당신이 장님이 아니었다면 돌려보냈을 것이오. "
레드삭스 팀에서의 내 성적은 통산 49승 51패, 방어율 3.99이었다. 잘 던진 것도 아니고 못 던진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잘 던진 날도 있었고 못 던진 날도 있었다. 하지만 못 던졌다고 해서 5회 이전에 마운드를 내려간 적은 없었다. 잘 던지고 진 날도 있었고, 못 던졌는데 동료 선수 도움을 받아 승리를 얻은 경우도 있었다. 그게 인생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번 돈은 모두 라스베가스 도박장에서 날렸다. 나는 빈손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내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명박이 정권을 잡더니 이내 박근혜 언니가 빛나는 졸업장을 타셨다. 사람들은 한 자리 얻기 위해 한아름 꽃다발을 선사하며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다고 괄약근 꽉 조이며 굳은 맹세를 했다고 한다. 앞을 볼 수 없으나 짐작컨대 꼴불견이었으리라. 내가 앞을 못 보는 장님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