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과 나귀
5년 전, 가족 여행을 떠났다. 계획은 일주일 동안 서울 이북(경기도. 강원도)을 샅샅이 훑고 지나는 여정이었다. 그 여정 중에는 봉평'이라는 고장도 있었다. 때마침 우리 가족이 도착했을 때에는 봉평 축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향토 작가로 알려진 이효석의 << 메밀 꽃 필 무렵 >> 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였다. 소설 < 메밀 꽃 필 무렵 >> 의 무대가 봉평 5일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축제 장터는 드넓은 메밀밭이 무대였다. 이효석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여서 그곳에는 이효석 기념관과 함께 메밀과 관련된 향토 음식 그리고 농산물을 염가로 판매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장대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갈대비도 아닌 애매한 비가 계속 내린 탓이다. 내 눈에 띤 것은 나귀'였다. 소설에 나귀가 등장하니 축제 장터에 나귀 한 마리 정도는 볼거리로 갖다 놓자는 공무원의 탁상행정이 눈에 밟혔다. 나귀는 비를 맞으며 풀을 먹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깜짝 놀랐다. 나귀가 이렇게 예쁜 동물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이후, 내 꿈은 인적이 드문 두메산골에 집을 지어 여러 짐승과 함께 사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귀 한 마리, 블랙 래브라도 리트리버 두 마리, 검은 고양이 한 마리, 거위 한 마리.....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가족 동물 농장은 규모가 커졌다. 이왕 키우는 거 타조 한 마리도 키울까 ? 좋아, 브레멘 음악대에 타조도 악단 단원으로 뽑겠어. 해 뜨면 몸집 작은 나귀를 끌고 나무를 하러 가리라. 풀을 실컷 먹인 후 등짝이 땔감을 잔뜩 싣고 집으로 오리라. 타조와 거위는 아마도 내가 죽을 때 내 곁을 지켜줄 녀석일 것이다. 타조는 수명이 80년이고 거위 수명이은 40년이라고 한다. 인적이 전혀 없는 두메산골 깊은 곳에서 눈 내리는 날 고독사하고 싶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오로지 늙은 거위만이 내 죽음 앞에서 거룩 ~ 거룩 ~ 소리내며 울어주리라. 그런 상상을 하면서 나는 지금 상암동 거리를 걷고 있다. 도시 생활에 지쳤다. 울고 싶다.
가족여행 후일담
가족여행 여정에는 내가 한때 살았던 속초 방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족은 이곳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나는 속초 명소를 찾아다니는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해야 했다. 가족을 이끌고 첫 번째로 찾아간 여행 명소는 동명항 방파제'였다. " 이곳은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장소입니다. 대포항은 관관객을 상대하는 곳이기에 비싸기만 하지요. " 다음에 찾아간 곳은 속초 중앙병원 응급실이었다. " 이곳은 제가 등에 박힌 병 조각을 빼낸 곳입니다. 술 먹고 난동을 한 번 부렸었거든요. " 가족은 숙연한 마음으로 내 말을 경청했다. 다음은 중앙시장 동해 순댓국집이었다. 내가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이곳에서 찬 소주에 따순 순댓국을 먹었다고 하자 큰누님이 소리 내어 울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조양동 미라지 모텔 103호였다. " 저는 이곳에서 죽었습니다. 사망 시각은 새벽 4시경,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습니다. " 가족들은 옹기종기 모여 추도 예배를 올렸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배가 끝나자 동생은 코카콜라 뚜껑을 거칠게 따 이곳저곳에 뿌렸다. " 엄니, 생각나요 ? 형이 콜라를 그렇게 좋아했잖아. " 가족은 다음날 서울로 향했다. 가족은 서울로 향하던 도중에 메밀 꽃 축제가 열린다는 봉평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비가 내려서 관광객은 그 많지 않았다. 큰누님이 비를 맞고 있는 나귀를 보며 말했다. " 어머, 비 맞는 나귀를 봐. 처량도 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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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창섭
교과서에 실렸던 이효석 수필 << 낙엽을 태우면서 >> 를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 이 수필이 발표된 해가 1938년이라는데, 조선총독부에서 서기로 잠시 일했다는 이 인간은 참 배도 부르구나. 백성들은 굶주려서 굶어죽는 이도 많았던 시절에 마당의 낙엽을 태우며 커피 향을 그리워하다니 ! 그 당시 커피 한 잔 값이 하급 공무원 한 달 월급이라던데 일제 시대에도 넓은 정원을 둘 만큼 잘 살았다는 것은...... 아이고, 이런 게 문학이다냐 ! - 이런 삐뚜룸한 생각을 했다. 한국 수필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법이다. << 메밀 꽃 필 무렵 >> 은 여러 모로 보나 형편없는 단편'이다. 누군가 나에게 단 한 명의 한국 작가를 뽑으라고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손창섭이란 작가를 뽑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종종 남성 폭력과 패륜이라는 이름으로 오해를 받곤 하는데 손창섭 문학을 뒤틀어서 읽으면 반대로 남성성에 대한 조롱과 경멸 그리고 혐오로 읽혀진다. 매우 독특한 작가'다.
■ 백선생
한국에서만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 << 위플래시 >> 도 그런 경우'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의 정서와 한국인의 정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영화가 해외에서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관객들이 미치광이 스승의 교수법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에게 가혹하다. 가혹하다기보다는 미친놈처럼 군림한다. 이 작품은 잡초는 밟힐수록 강해진다는 정서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일종의 성장 영화인 셈이다. 한국인은 이런 마즈흐적 성장 스토리에 열광한다. 아흐, 마조흐 ! 그런데 잡초는 정말 자근자근 밟아야 강하게 자라는 것일까 ? 잡초(민초)따위는 밟아도 상관없다는 문화적 토양은 재벌의 막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백선생은 서른은 훌쩍 넘어 이제는 불혹에 가까운 홍탁집 아들을 말 그대로 개무시한다. 사람들은 백선생에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홍탁집 아들에게 분노한다. 그럴수록 나는 백선생에게 분노하게 된다. 과연, 저 인간은 멘토라는 자격으로 저렇게 인격을 무시하면서까지 타인을 모욕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공중파 티븨에서 말이다. 내 일도 아니면서 마치 네 일을 내 일처럼 행동하는 저 눈물겨운 사마리아인(인 척하는 바리새인의) 휴머니즘은 무엇일까 ? 역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