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깨칠 뻔하였다
김영민 지음 / 늘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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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는 주어의 복심(腹心)이다 :





박근혜와 건달-들


 

 

 

 

김영민이라는 철학자를 알게 된 계기는 << 집중과 영혼 >> 이라는 철학 에세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쉽지 않은 문체였으나 만연체와 문어체 사이에서 종종 눈에 띄는 시적 언어'가 예사롭지 않았다. 한국의 철학자들이 대부분 서양 철학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김영민은 소중한 철학자이다.

나는 오랫동안 오고가는입말에서 중심부에 해당되는, 부사(구)로 강조한 " 술어의 세계 " 를 믿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동사와 형용사는 주어의 욕망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항상 번역이 필요한 영역이다. 진실은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다(진실을 폭로하는 이는 천사가 아니라 주로 악마다). 오히려 진실은 중심부가 아닌 눈에 잘 띄지 않는 주변부에 놓여 있다. 김영민은 이렇게 말한다. "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라는 게 내 오랜 지론이다. 포이어바흐나 니시다 키타로라면 술어는 주어의 진실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진실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엉뚱한 자리에 숨어 있기도 한다(92쪽,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다 中) ". 그 사람의 욕망을 읽으려면 부사의 쓰임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부사는 주어의 니드 the need(s)이자 이드 the id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이다. 인간이랍시고 내뱉은 말투를 듣다 보면 이 짐승은 부사를 지나치게 남발하며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박근혜 왈, " 그러니까 그게 너무 많은 음모가 좌파 진영에서 저를 이렇게 매우 막 공격하는 게 과연 이게 옳은가, 그리고 ...." ).  분열된 부사구, 바로 그것이 박근혜의 정신세계인 것이다. 부사를 자주 사용한다는 것은 술어가 빈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무들이 자신의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내듯이, 박근혜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술부가 사실은 황폐한 내부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넓은 부사(구)를 남발한 것이다.

서평의 고수이신 파란여우 님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김영민은 " 자본주의와 창의적으로 불화하기 위해서 채택한 생활양식으로 1일1식을 실천하고 있다 " 고 한다. 파란여우 님의 글을 인용하면   :  1일 1식은 생산과 소비까지 자본주의 체계가 점령한 현실에서 개인이 실천 가능한 저항 양식이다. “하루 세끼 식사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강요한 생활”이라는 언급으로 보아 폭주하는 산업 성장을 비롯해 노동착취를 가리킨 느낌이 든다. 1일 1식을 “정치적 행위”라고 규정한 이 인터뷰에는 《보행》에 나온 “ 여자의 말을 배우기 ”와 《차마, 깨칠 뻔하였다》에 나온 “여자라는 장소”, “남자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와 겹친다(파란여우, 욕심 없는 의욕- 글쓰기와 칼쓰기에서 발췌).

" 하루 세끼 식사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강요한 생활 " 이란 언급은 내가 " 삼시 세 끼라는 신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허구 " 라는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현대인에게 세 끼는 치명적인 < 독 > 이다.  하물며 좋은 아내의 기준을 아침밥을 차려주는 여자'로 규정하는 한국 남자 거개가 건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남자는 거개가 건달이다. 표정도 건달이고 눈매도 건달이고 매무새도 건달이다. 앉아 있어도 건달이고, 서서 걸어도 건달이다. 밥을 먹을 때도 건달이고, 악수를 할 때도 건달이고, 모르는 여자를 대할 때도 건달이고, 심지어 발제를 하거나 강의를 할 때도 건달이다. 핸드폰을 놀리거나 담배를 피울 때는 더더욱 건달이니, 술을 먹을 때에는 살펴 말할 건덕지조차 없다(한국남자들, 혹은 건달들 112쪽)



김영민은 한국 남자에 대해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기 위해 " 건달 " 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내 식대로 말하자면 " 밤꽃 향기 작렬하는 불알후드 새끼 " 인 셈이다. 깡패를 순화한 건달이 내뱉는 입말의 특징 중 하나는 과장된 부사(구)의 남발이다. 이들에게 과거는 왕년(往年)이 아니라 왕년(王年)이다. 그들은 " 허벌나게 " 허세가 심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염불을 외운다. 주여, 밤꽃 향기 작렬하는 저 불알후드 새끼들의 허벌나게 찬란했던 허세를 제발 잠재우게 하소서 !





+

한국 남자 거개가 건달이 된 이유는 대한민국이 근대성을 거치지 않고 전근대에서 곧바로 현대로 직행했다는 데 있다. 근대성의 핵심은 에티켓 교육에 있다. 이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한국 남성은 manner를 모른다. 건달의 탄생이다. 이처럼 건달이 창궐하다 보니 지랄이 흉년이었던 적은 이승만 정권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랄은 항상 풍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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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0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30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8-11-30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글 보고 마음이 들썩들썩 했는데, 곰발님이 쐐기를 박으셨네요. 장바구니.....

곰곰생각하는발 2018-12-03 14:50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씁니다. 쉬운 책은 아니에요. 선문답집 같기도 하고 종종 유머도 있고... 종합적입니다. 함 읽어보세요..ㅎㅎ

수다맨 2018-12-02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김훈은 인터뷰에서 문학으로 분류되는 글(소설, 시 등)보다는 기록문(조선왕조실록, 난중일기 등)을 더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었지요. 제가 보기에는 그의 문체는 명확한 사실만을 전달해야 하는 기자 경력과, 부사/형용사를 가능한 배제하고 단순한 주술 구조로 문장을 쓰려는 과거 무신/사관들의 작법에 빚진 바가 큽니다.
저는 이문구 같은 (판소리체와 타령조를 염두에 두고 문장을 쓰는) 예외적인 작가를 제외하면, 부사를 많이 쓰는 작가일수록 인식의 빈곤을 장식적인 언어로 감추려 든다는 혐의를 가질 때가 많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03 14: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읽은 기억이 나는군요.
기록문이죠. 특유의 만연체가 맛이 나기란 쉽지 않죠. 그런 점에서 이문구의 문체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