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의 리뷰를 미리 쓰다 :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다
1 사람만이 절망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_ 라는 흔해빠진 감성을 접할 때마다( : 대표적인 작품이 이기주의 『 언어의 온도 』이다. 읽을 때마다 이기주의 등짝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현실은 시궁창인데 작가에게는 동화 속 세상인가 보다. 나는 입만 열었다 하면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외치는 놈에게서 단 한 번도 희망의 불씨를 읽은 적이 없다 ) 감성팔이 소녀의 재림을 보게 된다. 이런, 망할 !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간 중심 사고에 세뇌된 말종이다. 인간은 결코 희망이 될 수 없으며 대안이 될 수도 없다. 김영민의 신간 << 차마, 깨칠 뻔하였다 >> 를 구입한 이유는 목차의 제목이 흥미진진했다는 데 있다. 목차 - 제목'이 이토록 내 흥미를 끈 경우는 흔치 않다.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며 허세를 부리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목차 제목만 훑는 것이다.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내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책의 리뷰를 쓸 수 있는 히마리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몇몇 제목이 흥미를 끈다. 6장의 제목이 < 사람만이 절망이다 > 이다. 날카로운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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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은 이렇다 : 정상적인 체위보다는 변태적 체위가 좋고 A급 영화보다는 B급 영화가 좋다. 그리고 이음매 없는 매끈한 표면보다는 꿰매거나 묶인 흔적이 있는 울퉁불퉁한 표면이 좋다. 토드 브라우닝 감독이 연출한 << 프릭스 >> 를 보았다. 1931년도 작품인데 볼 때마다 놀라게 된다. 마지막 20분은 현대 영화가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기형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기형인 분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형인을 배우로 캐스팅했다. 샴쌍둥이, 소두증 세 자매, 양팔이 없는 장애인은 물론이고 양팔만 있는 이도 등장하며 양팔과 함께 두 다리조차 없는 이도 등장한다.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볼거리로 여겨졌던 인물들이 주체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반대로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이들이 마음속 괴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영화는 비주류가 주류를 응징하는, 비정상성이 정상성을 살해하는 전복적 서사로 진행된다. 감독은 당신에게 묻는다.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정상적인 부류와 신체는 건강하지만 마음은 사악한 부류 중에서 누가 더 기형적인가 ? 이 영화는 불온한 상상력으로 인해 30년 동안 상영 금지 목록에 오른 기록을 남겼다. 사악한 마음을 응징하는 것으로 끝이 나니 권선징악인 셈이지만 주류 사회는 비주류의 욕망이 불쾌했던 모양이다. 권선징악을 불온하다고 여기는 검열 사회야말로 불온한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보통 대화를 나눌 때 술어(동사,형용사)의 쓰임이 그 사람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싫다, 밉다, 좋다 따위가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믿지만 사실 그 사람의 진짜 복심은 부사'에 숨겨져 있다. 술어는 대부분 위장에 가깝다.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다. 이 문장 또한 김영민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