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그 찌질함에 대하여 :
물통이냐 알통이냐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과 같다는 주장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동의한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이 생태주의자여서 이 가해자 프레임을 억울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연생태주의자일수록 오히려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기생충이라는 프레임을 적극 받아들인다.
생태주의자가 철저하게 생태주의적 삶을 살면서도 자신을 자연을 파괴하는 가해자라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종에 종속된 운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유로 현대 일본인에게 전범 국가 국민으로서 피해 국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다. 일본 젊은이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전범 행위는 자기 세대가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아버지 세대가 저지른 범죄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화를 부를 뿐이다. 일본이라는 국가에 종속된 이상, 일본인은 전범 국가 가해자라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모두는 일종의 원죄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는 가부장 사회 속에서 여자를 힘의 논리로 제압하고 착취했기에 잠재적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한국 남자 A가 나는 그동안 여성을 때린 적이 없기에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전후 세대 일본인에게 전범 국가 국민으로서 피해 국가에 사과를 할 필요 없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 사회는 남성에게 남성의 원죄론을 거론하는 순간 불같이 화를 낸다. 그리고는 말이 막힌다 싶으면 뜬금없이 여자도 군대 가라 _ 는 소리나 하고 있다.
일종의 군무새(앵무새처럼 군대만 찾는다는 소리) 탄생이다. 군대 가지 않으면 입 닥치고 가만있어 _ 라는 으름장이다. 남녀 차이를 단순하게 군필 VS 미필의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앵무새들이 자주 하는 소리가 너희(사무실 여성)는 사무실 물통 한 번 들어봤어 ? 이다. 남녀를 군필이냐, 미필이냐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던 남성들이 이제는 알통 VS 물통의 관계로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다. 군필과 알통, 이 모두는 결국 힘의 논리이다. 한국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꺼내드는 수작이 고작 알통이냐 물통이냐를 가지고 싸우고 있으니 이 논리적 박약 앞에서 나는 삐약 _ 하며 하늘 한 번 보고 물 한 모금 마신다. 이게 바로 한국 남성의 낯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