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색과 탐색





 

                                                                                                     최초의 사진은 형태를 재현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색깔을 재현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흑백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재현이라는 문제만 놓고 보자면   :   흑백사진은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발명품이었다. 하지만 색상이나 채도는 없고 오로지 명도의 차이만 있는 무채색 풍경은 묘한 아우라를 획득했다.  컬러를 탈색시킨 흑백사진은 컬러 화장을 지운 맨 얼굴과 같아서

대상을 실존적 차원에서 탐색(접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류 역사 발전 단계에서 색채어가 발생한 순서를 보자면 1순위는 검은색과 흰색이었고 2순위는 빨간색, 3순위는 초록색(혹은 노란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흑백사진은 가장 원초적이면서 근원적인 형태를 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장례식장을 찾을 때마다 맞닥뜨리게 되는 당혹감은 고인의 컬러 영정사진이었다. 이 세상에 화려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것은 죽음이라는 불행과는 격이 맞지 않는 색처럼 보였다. 나는 내 장례식장에 쓰일 좋은 영정 사진을 갖기를 원했고 그때부터 흑백 필름을 기계식 필름 카메라에 장착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래전 일이다........

기계식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에는 대상을 흑백으로 찍을 것인가 아니면 컬러로 찍을 것인가, 라는 문제부터 결정해야 한다. 흑백 필름을 카메라에 정착한 경우, 사진가는 알록달록한 세상을 흑백의 시선으로 번역해야 한다. 미리 예측하고 찍어야 한다. 이 번역 능력이 없는 사진 작가는 좋은 흑백 사진을 얻을 수 없다. 흑백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빛1)이다. 빛의 세기와 강도 그리고 방향이 전체 이미지를 좌우한다. 하지만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더군다나 핸드폰에 렌즈가 달리면서 흑백 이미지는 말 그대로 빛이 바랬다. 

이제 빛은 컬러에 스며들면서 원하는 색감을 얻기 위한 보조 물감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  솔방울정원, < 감정의 재료, 재료의 감정 시리즈 > 중에서

 

위의 펜화는 솔방울정원 님이 현재 작업하고 있는 <  감정의 재료, 재료의 감정 - 시리즈  > 중 하나다. 작가는 색을 탈색시킨 모습으로 대상을 밖으로 드러낸다.  이 흑백 펜화는 컬러였다면 놓쳤을 것이 분명한 빛과 그림자에 주목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세기 그리고 빛이 대상과 충돌하면서 만들어 놓은 그림자의 농도와 형태도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빛이 대상을 들이받을 때의 속도와 강도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이것을 뭉뚱그려서 빛의 펀치라고 하자).  빛이 밝을수록 그리고 그 대상 뒤편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짙을수록 < 빛 > 은 핵주먹을 가진 싸움꾼일 가능성이 높다. 후술하겠지만 빛의 속도가 가장 빠른 부분(펜화에서 명도가 가장 높은 2층 블록과 3층 블록)은 결과적으로 이 그림의 주제를 반영한다.

점, 선, 면으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형태의 이 펜화는 풍부한 깊이와 재질을 느끼게 해준다. 오브제의 형태와 빛이 대상과 충돌하거나 스며드는 흔적, 그리고 그것에서 빗겨나가는 과정을 포획한 광학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흑백사진이 화장을 지운 맨 얼굴을 직시할 수 있는 아우라를 제공하듯이, 작가는 색을 탈색시켜서 버려지는 대상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더군다나 그림 상단 우듬지 오른쪽에 위치한, 사선 45도로 기울어진 블록은 이 덩어리들이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만든다. 주목해야 될 점은 쌓아올린 덩어리-들의 형태다.

하부는 (아래에서) 사선으로 빗겨난 2층 블록이 증명하듯이 견고한 형태가 아니다. 블록 쌓기 놀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붕괴를 야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지점이다. 이 불완전한 축성을 보완하고자 3층에 위치한 블록이 중심을 잡아보려 애를 쓰지만 이 또한 사선이어서 불완전한 느낌을 준다. 빛의 속도 저항을 가장 많이 받은 2층과 3층 블록은 빛의 강력한 주먹질에 의해 중심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밀려나고 있는 형태를 보인다. 시리즈 제목이 < 감정의 재료, 재료의 감정 > 이라는 점은 감안하면, 감정을 사물에 투영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유심론(감정)을 유물론(재료)적 시각으로 번역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작가의 위태위태한 불안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비단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위기 의식만은 아니다. 현대인이라면 모두 다 느낄 수 있는 불안이다. 위태롭게 축성된 탑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그 관점에서 이 그림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단순한 도상이지만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


 




​                                     


1)   바람개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있게 만든 발명품이라면 흑백사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운동성을 볼 수 있게 만든 발명품이다. 내가 흑백사진을 관찰할 때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빛의 성질이다. 어느 녀석은 순진하고 어떤 놈은 까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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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마당 Vol.10 어른 찾아 삼만리 - 2018
언니네 마당 편집부 엮음 / 언니네마당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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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고            있     네        :




 


애나 어른이나



잡지 << 언니네 마당 봄호 >> 에 게재된 글을 옮긴다. 글자 수를 늘릴 요량으로 중언부언하다 보니 글이 산으로 갔으나 담당자가 요술을 부려서 정상적인 꼴을 갖춰주셨다. 편집의 묘미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훌륭한 작가에게는 반드시 훌륭한 편집자가 있다. 만고불편의 진리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동의하겠지만 글을 늘리는 것보다 글을 줄이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은 진실이다. 담당자가 제대로 된 글꼴을 갖춰 보내주신 한글 파일을 찾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부득이 중구난방 상태인 그지같은 원본을 올린다. 이번 호는 읽을거리가 많다.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구매할 수 있다. 강추 !

 - 피터 브뢰헬, 아이들의 놀이 1599년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과 어쩌다 어른이 될 사람. tvN 프리미엄 특강 쇼 << 어쩌다 어른 >> 은 어른이 될 준비를 하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떠밀려서 어른이 된 사람과 어쩌다 어른이 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 쇼다.

“ 어쩌다 - ” 라는 부사에는 준비 없이 어른이 되었다는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억울함도 살짝 묻어 있다. 어찌 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제가 감히 어른이 되었습니다아. 이 방송 프로그램이 주요 타깃으로 삼은 대상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라고 말하는 캔디형 어른이다. 사실은 외롭고 슬프지만 어른인 척하느라 내색도 못하고 참고, 참고, 참고, 참고, 참다가 마침내 참치가 된 캔디를 겨냥한 것이다. 인류와 어류 사이. 당신은 사람입니까, 참치입니까. 이는 지금의 세태와 맞물리면서, << 어쩌다 어른 >> 은 홀로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1인 독립 가구의 증가, 시대 변화에 따른 디지털 호모루덴스의 탄생,

어른이지만 어린아이처럼 놀이에 탐닉하는 키덜트,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취직할 나이가 되었지만 취직도 못하고 경제적 사정 때문에 부모로부터 독립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88세대와 캥거루 계층에게 호소한다. 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의 자격에서 살짝 벗어났다는 데 불안을 느낀다. 그런데 나는 어른이라는 단어 앞에 어쩔 수 없다는 어투로 붙은“ 어쩌다 ㅡ ” 라는 표현이 자꾸 거슬린다. 사람들은 유년 시절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인간은 아이와 어른으로 나뉜다는 단순한 분류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는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뢰헬의 풍속화 << 아이들의 놀이, 1559 >>를 감상하면서 시작되었다.

<< 아이들의 놀이, 1559 >> 라는 그림에는 아이들이 무려 200여 명이나 출연한다. 그들은 각자 혹은 끼리끼리 모여서 다양한 놀이(75가지)를 재현한다. 물구나무서기, 팽이 돌리기, 굴렁쇠 굴리기, 말뚝박기, 뜀틀 넘기, 통 굴리기, 카드놀이, 소꿉놀이, 공기놀이, 기마놀이, 돌치기 놀이 등 말 그대로 놀이 백화점인 셈이다. 그런데 놀고 있는 아이들은 생김새로 보아 아이와 어른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다. 설상가상, 이들이 입고 있는 복장도 어른이 입는 옷이 똑같아서 복장만 가지고는 어른과 아이를 구별할 수도 없다. 그림을 확대해서 세세하게 살펴보면 아이가 어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른이 아이를 흉내 내며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이 그림을 감상하고 나서 내린 최종 결론은 이렇다. 놀고 있네, 애나 어른이나 하는 짓은 똑같구나. “ 어쩌다 어른 ”이라는 제목은 나이가 들면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회적 요구에 떠밀려서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필연이자 숙명이다. 이 가정법은 반드시 상대적 개념인 아이라는 계층이 존재할 때에만 성립될 수 있다. 만약에 어린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어른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올챙이 시절 없는 개구리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어린이라는 개념이 근대가 낳은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어린이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 워워. 말도 안 되는 신소리라며 나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다.

그 주장은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가 한 말이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 아동의 탄생 >> 에서 아동은 필요에 의해 근대에서 만들어진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7세 이후가 되면 어른들 세계로 편입되어 그들과 섞였고,  어른들의 공동체에 소속된 아이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되었으며 일과 놀이를 공유했다. 궁금하여 그 시대 풍속사를 살펴보니 옛날에는 아이와 어른의 구별이 따로 없어서 아이들은 어른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똑같은 놀이를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과 섞여서 카드놀이나 주사위 놀이를 하고 돈을 걸고 도박을 했고 술도 마시며 기방도 출입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의 달콤한, 아 !  아밀라아제를 교환하며 사랑을 나눈 나이가 14살이 아니었던가. 반대로 어른들도 아이들이나 하는 놀이를 즐겼다고 하니 키덜트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족속이었다. 이를 두고 서구가 동양보다 도덕적으로 더 개방적이고 성적으로 더 타락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동양 사회도 아이를 작은 어른 취급을 했기 때문이다. 이몽룡이 기방을 제 집 드나들 듯 출입하며 기생들에게“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 라고 했을 때가 16살이었고,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은 15세에 결혼을 했으며, 벽초 홍명희는 13살에 결혼을 해서 나이 서른이 되어 손자를 보았다.

그리고 조혼 풍습으로 인해 10살에 장가를 간 꼬마 신랑도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고 ? 아니다, << 임꺽정 >> 의 저자 홍명희는 20세기 인간이었다. 어린이라는 말은 17세기부터 써온 말인데 중세 국어에서 어리다는 의미는 " 나이가 적다 " 는 것이 아니라 " 어리석다 " 는 의미였다. 이 말은 20세기에 와서야 아동 문학가였던 소파 방정환(1899~1931)이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로 사용했으니 그 이전에는 나이가 적다는 의미에서의 어린이란 없었다. 다시 말해서 옛날에는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어른과 어린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하면 어른이라는 개념

또한 근대가 만든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어른이라는 개념은 판타지다. 그렇기에 어린이와 어른이라는 구별 짓기는 칼로 물을 베는 것과 같다. 대부업 광고 문구 중에 " 여자니까 쉽게 ( 대출 가능 ) " 라는 표현이 있다. 여성 계층에게는 다른 계층보다 특별 우대하겠다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 여자는 멍청해서 복잡한 것은 못해 " 라는 뉘앙스로도 읽을 수 있다. 여성 우대보다는 여성 홀대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세를 살아가는 어른들은 어린이 인권에 대해서 과도할 정도로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른과 아이를 나누는 것이 억압의 결과였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어른과 아이를 구분 짓기 하는 순간 차별은 시작된다. 나는 짊어져야 할 어른의 무게 때문에 힘들다며 징징거리는 어른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들끼리 모여서 서로를 위로하며 자위할 때마다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다. 그렇기에 어른이기 때문에 겪는 특별한 성장통은 허구라는 점에서 환상통이다. 애나 어른이나 하는 짓은 똑같다는 사실을 부정한 채 인간의 성장 과정을 어린것와 어르신으로 나누는 것은 인간을 올챙이와 개구리로 나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성장 과정에는 변태라는 극단적 형태의 변신은 없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이렇게 묻고 싶다. 인류와 양서류 사이. 당신은 인간입니까, 개구리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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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8-05-01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나 어른이나 하는 짓은 똑같다,는 사실적 통찰에
뜨끔해집니다
인간인지 개구리인지 저 스스로 헛갈리는 나날입니다
잘 계시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5-01 14:30   좋아요 1 | URL
저는 사람 가지고 구별 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여자 남자, 어른 아이, 이성애자 동성애자.. 굳이 이런 구분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별의 시작은 구분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저야 늘.... 다크 님이야말로 잘 지내시지요 ? 다크 님이 다크한 소설을 빨리 보고 싶은 1인입니다아..

cyrus 2018-05-01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에서 여성과 아이의 차별과 억압이 없는 유토피아를 제시합니다. 그녀는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른’과 ‘아이’로 구분하는 문화와 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5-02 10:17   좋아요 0 | URL
제 글의 요약본이네요. 사이러스 님 댓글이 말입니다... 파이어스톤의 주장에 적극 동의합니다..
 

 

 

 








이 시금치를 아욱국이라 불러도 좋다




                                                                                                       못생긴 운동화(어글리 슈즈) " 발렌시아가 트리플 에스 팔라디움1) " 가격은 백만 원을 훌쩍 넘는다. 비싸지만 없어서 못파는 지경이란다. 운동화 가격이 십만 원을 넘기면 비싸다고 투덜대는 내가 보기에는 언빌리버블하다(내가 보기엔 운동화 적정 가격은 삼만 원이다).

그렇다 보니 발렌시아가 에스 신발을 신은 패피(패션피플)들은 인스타그램에 착장 사진을 올릴 때 이 운동화가 돋보이도록 옷을 입거나 운동화가 강조되도록 카메라 각도에 신경쓴다(바지 밑단이 운동화 끈을 가리는 것을 염려해서 바지 밑단을 양말 속에 넣은 녀석도 보았다. 쏘가리 같은 댓글 하나 남겼다. " 모내기 하냐, 농번기 때 모내기 해 ?? " ). 나, 발렌시아가 운동화 신은 남자야 !               그러니까 그네들에게 있어서 주인공은 운동화이고 엑스트라는 옷이다. 웩 더 독 !  당연히 패션 보조 용품인 악세서리에 불과했던 운동화가 주인공이 되다 보니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깍두기 형님들이 금목걸이가 강조되도록 옷을 배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것을 두고 나는 " 졸라 촌스러운 페티시 패션 " 이라고 부른다.  우리, 제발 호스트와 게스트는 구별 합시다아.  중요한 것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시그니처'다. 이 시그니처를 아우라라 불러도 좋다.  옷차림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보그 병신체처럼 외래어를 쓰기 되는데..........   좋다 !  아우라 대신 아욱국이라 부르겠다( 그리고 시그니처는 시금치라 부르겠다).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는 것은 < 유행 > 과 < 개성 > 을 혼동한다는 점이다. 

유행하는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을 개성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는데 유행과 개성은 서로 반대 개념에 가깝다. 왜냐하면 유행은 대중성을 기반으로 한 현상이고 개성은 말 그대로 개인의 시금치를 기반으로 한 아욱국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행 따라 옷을 입는 사람을 두고 옷을 개성 있게 입는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요한 것은 시금치와 아욱국이다. 유행에 따르지 않지만 누가 봐도 이 스타일은 그 사람 고유의 시금치라고 모두 다 동의할 때 그 사람의 패션은 아욱국을 얻는다. 시금치 없는 스타일은 스타일이 아니다.

문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시금치는 스타일을 만들고 스타일은 그 작가의 아욱국을 만든다. 문창과 중심으로 신인 작가를 뽑는 한국 현대 문학(문단)은 스타일이 모두 대동소이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그 교수에 그 제자가 결국에는 작가가 되는 시스템이 한국 문단이다.  현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각각 몇 문장을 발췌해 문장을 뒤섞으면 마치 한 사람이 쓴 작품처럼 보일 때가 많다.  쉽게 말해서 그들끼리 근친혼을 하다 보니 문장 분별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분별력이 떨어지다 보니 변별력도 떨어지는 것이다. 개나 소나 전복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란다.

이 말은 작가 고유의 시금치가 없다는 것이고, 아욱국이 없다는 말이 된다.  당연히 한국 문학은 골라먹는 재미가 없다.  한국 문학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금치와 아욱국이다 ■

 

 

 

덧대기

사람들이 신형철 평론에 대해 엄지 척 하며 성찬을 하덴더 개인적으로 신형철 평론은 평론의 연성화, 평론의 감성화, 평론의 국뽕화, 평론의 멜로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장은 아름다우나 아름다운 문장이 평론의 덕목은 될 수 없다.




​                                     

1) 옛날에 시골 개 한 마리 키운 적이 있었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무시하고는 했다. 이에 열받은 나는 아주 멋진 이름을 지어주었다. 개 이름은 " 드미트리히 라스콜리니코프 앙겔로 라흐마니 3세 " 였다(지금은 정확한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뭐 대충 이런 이름이었다).  이름이 길면 뭔가 고급스럽고 귀족스러운 느낌이 난다.  발렌시아가 프리플 에스 팔라디움이라는 네이밍도 이 전략을 구사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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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30 11:52   좋아요 1 | URL
그 귀한 것을 어떻게 땅을 밟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ㅎㅎㅎㅎㅎㅎ
 


 



​                                                                                      


일본어 같기도 하고 포르투갈어 같기도 한 살인 방식에 대하여  :
















도끼와 상어

                 












                                                                                                      공포(두려움)가 섹스 상품만큼 잘 팔린다는 사실을 간파한 사람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었다. 보기에는 곰같이 보여도 영상 감각만큼은 여우 같은 사람이었다.

파방에 수수엿 장수처럼 별 볼 일 없던 배우 안소니 퍼킨스는 식칼 하나 손에 쥐고 상대방을 향해 휘투루마투루 예닐곱 차례 종이칼을 휘둘렀을 뿐인데 스타가 되었고, 영화 << 사이코 >> 는 천문학적 수익을 거둬들였다. 타인을 어떻게 창발적으로 죽일 것인가 _ 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고민이자 인생 화두였다. 도끼로 이마 깔 것인가, 아니면 도끼로 이마 깐 데를 또 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깐 데 또 깐 데를 다시 또 깔 것인가 ! 흥행에 눈이 먼 제작자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 깐 데 또 깐 데를 다시 또 깐 데를 또다시 까기 " 로 하죠 ? 자극적으루다가.......                                       

하지만 히치콕 감독은 지나치게 깐 데 또 깐 데를 다시 또 까고 또다시 까는 행위는 자칫 공포 차원을 벗어나 혐오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동물적 본능으로 알고 있는 인물이어서 선을 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과하면 탈이 나는 법. 그는 혐오 감정은 흥행(돈)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리라 _ 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잘 죽여야 영화가 살 수 있는 공포 영화 장르에 있어서 걸작(傑作)이냐 걸작(乞作)이냐1)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것이다. 어디까지 도끼로 이마를 깔 것인가, 도끼로 깐 데를 또 까도 되는가, 검열과 윤리적 문제는 해결되었는가 ?

이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영화가 바로 << 프렌지 >> 이다. 이 영화는 당대 검열 기준으로 보자면 공포와 혐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지만 김정은처럼 문재인 손을 잡고 선을 넘지는 않는다. 때가 때인지라 잠시 삼천포로, 아니 판문점으로 빠지자면 4.27 판문점 정상회담이라는 영화는 김정은과 문재인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의 " 선을 넘었다 " 는 점에서 러브어페어'이자 폴리티칼 브로맨스 장르이다. 사랑 영화의 핵심은 두 사람이 선을 넘으면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선을 넘는 행위이니깐 말이다. 김정은은 문재인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내래 동지를 잊지 못하갓시오. 동지 생각만 하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당최 모르갔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날래 왔습네다. 자, 선을 넘갓시오.  긴긴밤 내내 보고 싶었습네다, 사랑하는 문재인 동지 ! "  

특히,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새소리를 달콤한 음악삼아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장면은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 를 뛰어넘는 명장면이다. 두 정상이 나눈 것은 밀담이 아니라 밀어다.  사이칠데이# 로맨틱# 성공적 !  본론으로 돌아와서 히치콕의 모든 영화는 걸작이지만 내 취향을 고려하자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와서 만든 마지막 영화 << 프렌지 >> 는 정말 위대한 걸작2이다. 그는 사람을 제대로 죽일 줄 아는 예술가다. 히치콕 쵝오 !

 

 

그런데 공포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비단 히치콕 감독만은 아니다. 홍준표라는 악다구니와 나경원이라는 어처구니-들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 떼거지 자유한국당 역적 패당도 그동안 북풍 장사로 부귀 영광을 누린 족속이다(참말로 어처구니가 없네) 그들은 북한이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공포를 유발했고 이 안보팔이 약발이 꽤나 훌륭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되는 황무지가 대구를 중심으로 부울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경상도만 수성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3.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 도끼로 이마 까  " 라는 스킬도 처음에 등장할 때에만 신선하지 자주 나오면

식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어서 유권자들은 악다구니와 어처구니들의 도끼질에 질리기 시작해서 어느 순간 도리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러니까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자유한국당은 도끼질을 남발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 도끼로이마깐데또깐데다시또까고또다시이마깐곳다시또까고까고다시또까는북한의도끼만행......... " 이토록 길고 긴 도끼 변주곡은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로 시작하는 전설적 만담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네이밍이다. 그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안보 위기론이다.

이 정도면 식상을 떠나 상식을 떠난  클리셰가 아닐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아니 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도끼로 적당히 까야 공포가 발생하는 것인데 도끼로 너무 많이 이마를 까다 보니 공포가 혐오로 변질되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다. " 이 개 씨부랄 새끼들아, 그만 까라. 불쌍하지도 않냐 ?  너희들은 피도 눈물도 없냐 ? "  이리하여 자유한국당이 야심 차게 제작한 공포영화는 흥행에 참패하게 되니 눈물이 앞을 가리리라.  이 사실을 간파한 것일까.  자유한국당은 이번 지방 선거 로고송으로 국민 동요 < 상어 가족 > 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공포에서 동화로 장르를 변경한 것이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에서 전체 관람가로 변경하니 세대를 초월한 월경이다. 도끼로 이마 까던 놈들이 양팔을 허리춤에 올리고 혀 짧은 목소리로 아빠 상어 뚜루루 뚜루, 엄마 상아 뚜루루 뚜루 ~  이런 노래를 부를 생각을 하니 진정 공포스럽다. 진짜루.  하여,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  그냥 하던 대로 도끼로 이마나 까. 전체관람가는 너희들에게는 안 어울린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야. 평소 안 하던 짓 하면 일찍 죽는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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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乞 : 구걸할 걸, 망할 걸, 거지 걸

2)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몇 안 남은 행운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보면 되니까

3)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친 유권자 수는 충청남도 + 충청북도 + 전라남도 + 전라북도 + 제주도 + 강원도 인구를 모두 합친 유권자 수보다 많다. 그것이 자유한국당이 믿는 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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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04-29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늘 저도 블로그에 홍준표. 나경원에 대해 썼는데요, 곰발 스승님의 글을 읽어보니 지우고 싶어지네요 ㅠㅠ 댓글이 안달렸다면 당장 지웠을 듯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정상회담을 비교한 대목이 특히 공감이 갔습니다. 생각보다 김정은이 세련된 지도자더군요. 언론의 매도 땜시 저도 그런 줄 몰랐는데 말입니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30 08:55   좋아요 0 | URL
스승님이라니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맙습니다. 늘 과대포장의 칭찬을 해주셔서...
저는 다리 회담이야말로 기가 막힌 한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남북 하면 어두침춤한 색깔이 떠오르잖아요.
더군다나 두 정상만 가지는 밀담은 대부분 검은색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이게 코페루스쿠스적 전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통유리 안에 두 정상을 가둬 다 볼 수 있게 만들고 주조색이 파란색과 초록 아닙니까.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걸작이에요, 걸작 !

2018-04-30 0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30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30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30 10:41   좋아요 1 | URL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평양 가서 냉면 먹고 유럽 가서 여행하고.... 뭐, 이런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 박근헤가 한 말 중에 딱 하나 맞는 소리는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죠... 어서어서 좋은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요즘 문 대통령님 너무 열일 하시는데 과로로 건강 상하실까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ㅎㅎ

수다맨 2018-04-30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홍준표가 대권이나 전국구에는 이제 관심도 미련도 없는, 그저 지방정당의 왕초로서만 어떻게든 남고자 북풍 장사를 하고 있는 거라면 전략적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찌 되었거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유산과 악습에 애착을, 현 정부에 무조건적인 반발심을 가진 어르신들의 한표는 확실히 끌어모을 수 있거든요.
자유한국당은 한국 사회에서 정당적인 가치와 의의를 잃은지 한참이나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존속 여부조차 점점 불투명해질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점에서는 홍준표가 아주 잘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당은 한시 바삐 사라져야 나라에 보탬이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30 13:32   좋아요 0 | URL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우리 준표는 보물이죠. 한국당에게 준 표가 이제는 민주당에게 줄 표로 바뀌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준표 같은 인물은 정치사의 똥물 아니겠습니까. 뭐, 한국당 전체가 똥물이기는 하지만..

나와같다면 2018-06-08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한당의 선거운동 로고송
˝아빠 상어 뚜루루 뚜루, 엄마 상어 뚜루루 뚜루~˝ 들으면, 뭔가 부자연스럽고 괴기스러운 불편한 감정이 들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6-09 10:12   좋아요 0 | URL
동화 생각납니다. 빨간 모자 소녀... ㅎㅎㅎ
 

 

 

 








촛불과 악수








 




2002년 월드컵 때, 인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떼거지로 응원을 할 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코로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항문으로 웃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세계사에서 거대한 획을 그을 이날(2018년)에 그날(2002년)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히키코모리 성향이 있는 개인주의자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촛불 집회 때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으로 스무 차례 정도 출근 도장을 찍은 계기는 위대한 이명박근혜 동지가 싼 똥 때문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투철한 민주주의 시민 의식 때문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광장에서 만난 세 사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세 사람이야말로 나한테는 가장 훌륭한 책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은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소리성애자인 나는 내 옆에 앉아서 재잘거리는 두 명의 학생들이 나누는 대사에 넋을 놓고 듣고 있었다. 서울 말씨 같기도 하나 어찌 들으면 강원도 사투리 같기도 하고 달리 들으면 경상도 사투리 같기도 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의 출신 성분은 어디인가 ?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 어디서 오셨어요 ? "  내 질문에 그 학생들이 내놓은 답은 제주도였다. " 뭐요, 제주도에서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올라왔다구요 ? "  내용인즉슨, 용돈을 모아서 부모님 허락을 받아 친구와 함께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때 내가 깨달은 점은 제주도에서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왔는데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사는 내가 집회에 빠지면 안 되겠구나 _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코 꼈네. 물어보지 말 걸 그랬어. "  두 번째는 휠체어를 탄 구순 노모를 끄는 (아들로 보이는) 장년의 남자였다. 그 어마어마한 인파를 뚫고 휠체어를 끈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 아들은 구순 노모를 데리고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그때 깨닫게 되었다.   혼자 집회에 참석하기보다는 주변인을 동원하라.  나는 생각했다. " 시바, 코 꼈네 ! " 세 번째는 휠체어가 아니라 들것(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다. 바퀴가 달렸다)이었다.

그 환자는 앉아 있을 힘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집회에 참석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탤 요량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나는 생각했다. " 진짜루, 코 꼈네 ! "  그렇게 주말마다 나오다 보니 스무 차례.  하지만 나는 이 평화로운 집회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프랑스처럼 조금 더 폭력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  내 판단은 틀렸다. 그때의 평화가 지금 김정은과 문재인이 악수를 하게 만든 원천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 역사적인 결과에 나도 한몫을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하다. 이 자리를 빌려 제주도에서 올라온 학생, 휠체어를 탄 구순 노인과 그 아들,

마지막으로 들것에 실려서 별 하나 없는 캄캄한 서울 하늘을 바라보셨던 그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 평화로운 밤을 만든 사람은 문재인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다. 당신들은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다. 많이 배웠시다. 만수무강하십시오.






 


덧 ㅣ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 야, 시발 개새끼들아 ! 대한민국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외신 기자들이 이 감격스러운 장면 앞에서 울더라. 씨부랄새끼들아. 니들이 사람새끼냐.. 나라 잃었냐. 부모 초상 치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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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04-29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나경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처구니가 없다‘ 는 논평을 내놓았군요.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영향력을 이렇게 괴물처럼 사용할 수 있다니..
근데 이 사람 ‘다스‘ 주어가 없다는 말 사과는 했던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4-29 14:34   좋아요 0 | URL
나경원 사전에 배는 있어도 사과는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