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곡 성



 

 

 

 



1. 여곡성, 2018


 

                                                                                                            요즘, 남들이 " 망작 " 이라며 저주를 퍼붓는 영화들을 찾아서 보는 악취미가 생겼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작심하고 보는 일'이라 안구가 썩는 고통도 즐거운 마음으로 "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영화 " 를 눈 감고 본다, 눈 뜨고 보나 눈 감고 보나 거기서 거기니까 ! << 안시성 >> 같은 쓰레기 영화를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보았던가.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처럼 망작 영화도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극장 문을 뻥, 발로 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야 티켓값이 아깝지 않다.  마음속에서는 온갖 독설이 쏟아진다. 살다 살다 이런 개 같은 영화는......  그것은 일종의 모욕을 당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메조흐적 관객이라 할 수 있다. 아흐, 마조흐 ! 아흐, 마조흐 !!   소비자가 왕인 시대에 욕쟁이 할머니집에서 욕먹는, 그 유명한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 광고처럼 형편없는 영화에 관객으로서 모욕을 당하면서도 나는 혼자서 낄낄거리며 웃게 된다. 아흐, 마조흐 !  오늘은 악평 자자한 << 여곡성, 2018 >> 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었으나 목에 담이 걸려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종영이 되기 전에 하루빨리 저 그지같은 영화를 봐야 할 텐데,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형편없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낡은 노포를 찾아 문어처럼 밤거리 술집을 찾아다니는 이유도 추레한 것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만약에 당신이 작가 지망생이라면 도스토옙스키'보다는 러브크래프트 문학이 더 많은 용기를 줄 수 있다(러브크래프트 문학이 형편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위대한 작가이다. 다만, 문장만 놓고 보면 러브크래프트는 아마추어다). 그래서 나는 B급 무비'가 좋다. 에드 우드'에게 경배를. << 여자들 >> 이라는 소설에서였나 ?  찰스부코스키는 예쁜 여자를 보면 좆이 서질 않는다는 문장을 남긴 적이 있는데 묘하게 동의하게 되는 지점이어서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결핍 없는 미학은 " DESIGN " 이지 " ART "는 아니다.  영화도 그렇다. 형편없는 영화는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 여곡성, 꼭 보고 말리라 ~  (어금니 꽉 물고 외치리라)  기다려라, 내가 너를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 먹어주마1) ! 

 



 

2 여곡성, 1986

                                                                                                                  옛날에는 여름이 되면 << 주말의명화 >> 시간에 납량 특집 시리즈를 상영하곤 했다. 폭서의 계절에 혹한의 공포를 선사하겠다는 편성 목적이었다. 토요일 주말 저녁이 되면 우주 로봇 건담조차 간담을 서늘케 한다는 공포 영화가 매주 상영되었다. 그때 상영했던 한국 공포 영화가 << 월하의 공동 묘지, 1967 >> , << 깊은밤 갑자기, 1981 >> , << 여곡성, 1986 >> 이었다. 거웃이 솜털처럼 야들야들 자라던 중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덤이 홍해처럼 쫙 갈라지며 화장실에서나 달았을 빨간 알전구 불빛이 세상 밖으로 번지는 월하의 공동묘지를 보며 오금이 저려서 오줌을 쌀 뻔했던 기억이 난다. 므, 므므므므섭구나. 이 납량 특집 한국 공포 영화 시리즈 기획에서 발군은 << 여곡성 >> 이었다. 눈에서 피를 흘리는 신씨 부인의 데스마스크'는 그 어떤 표현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선사했다. 신씨 부인이 닭 피를 마시다가 낌새를 차리고 갑자기 뒤돌아보는 장면에서 오금보다 오줌이 먼저 저리는, 믿지 못할 신체 반응을 경험하기도 했다. 오금을 저린다는 것과 오줌을 지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곤경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영화였다. 므, 므므므므섭구나. 어디 그뿐인가. 대감이 지렁이 국수를 먹는 장면은 내가 지금껏 보았던 모든 병맛 장면을 통틀어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씬이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존 워터스 감독의 << 핑크 플라밍고 >> 에서 디바가 길거리에 떨어진 개똥을 먹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배우는 실제로 개똥을 씹어먹는다. 예술을 위하여 개똥에 쌈 싸먹는 장면을 보면 예술은 똥이라는 앤디 워홀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감은 귀신에 홀려서 그릇에 담긴 지렁이를 국수로 착각하고는 맛있게 먹는다. 이 장면의 리얼리티를 글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리얼리티란 가짜를 진짜처럼 연기할 때 발생하는 효과일 뿐이니 말이다. 단장이 끊어지면서 몸부림치는 지렁이 장면은 소름 그 자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장면에 사용된 지렁이는 미니어처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지렁이였다고 한다. 배우는 열정을 불태워 혼신의 연기를 펼친 것이다. 그 후에도, 나는 세 편의 영화를 다시 보곤 했다. 그 옛날처럼 오금보다 빨리 오줌을 지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나는 한국 공포 영화를 자주 본다.위 세 편의 무대는 대부분 < 넓은 집 > 이다.  사랑채와 별채가 있고 뒷간과 넓은 마당이 있는가 하면 현대극인 << 깊은밤 갑자기 >> 는 이층집이다.

 

▶ 1981년에 만들어진 공포영화 << 깊은밤 갑자기 >> 의 무대가 되는 집이다. 넓은 정원에 창고로 사용하는 다락까지 계산하면 3층집에 가까운 대저택의 위용을 과시한다. 감독은 하우스호러 영화 장르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면 감독은 공간의 크기를 강조하기 위해 카메라가 원을 그리며 팬한다. 하긴, 코딱지 만한 집구석에서 무슨 얼어죽을 공포영화인가 !

 

생각해 보면, 단칸방에서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포영화의 핵심은 인간이 아니라 공간이 주는 공포'다. 공간이 넓으면 넓을수록 감독은 더 많은 공포 효과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공포 영화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다. 한국 영화가 공포 영화 장르에 취약한 이유는 한국인이 대부분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데 있다. 기껏해야 30평짜리 아파트 공간에서 무슨 얼어죽을 공포를 선사할 것인가. 악취가 심한 고시원 방이 알고 보니 옆 호실 투숙객이 고독사해서 발생한 냄새였다는 한겨례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사실, 진짜 공포는 이런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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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11-22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공포 영화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다, 이 부분에 크게 공감합니다.
 

 

 

 


이국종 : 패트리어트 게임













노무현 정권 때 탄생한 영웅이 황우석 교수라면 이명박 정권 때 탄생한 영웅은 이국종 교수'다.  세월이 흘러, 이명박은 범죄자가 되어 개똥밭에서 뒹굴고 있지만 이국종은 지금도 영웅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다. 그 명성이 드높아서 지붕 뚫고 하이킥 할 정도'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는 의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술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황우석과 이국종은 닮은꼴이다. 둘 다 " 쇼잉 " 에 능수능란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황우석이 " 구원자 - 서사 " 를 연출했다면,  이국종은 " 구조자 - 서사 " 를 연출하고 있다.  죽어가는 자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서 두 서사는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황우석은 모성적 언술에 능한 반면에 이국종은 남성 서사에 의지한다는 점이다.  이제 대중은 황우석 신화가 가짜로 판명이 나자 이국종에게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그런데 정말 그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그는 열악한 의료계 현실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면서 의료계 비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처럼 그의 정의감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그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 무전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의사가 아닌 영화 감독이었다면 << 패트리어트 게임 >> 같은 영화를 찍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했다.  kt가 지원한 무전기 덕에 수술 준비를 원활히 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에 kt 광고를 찍었다고 고백했던 그는 이제와서는 무전기의 불통에 화가 나서 수목금토토토한다.  왜 죄 없는 무전기에 대고 토토토 하십니까.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왜, 하필 카메라가 돌아가는 때에 맞춰 헐리우드 액션스타처럼 무전기를 내동댕이쳤을까.  무전기 탓을 해서 무전기를 지원하니 다시 무전기 탓을 하고,  닥터헬기 탓을 해서 닥터헬기를 지원했더니 이제는 헬기가 내려앉을 장소가 없다며  헬기 임계지점(헬기가 뜨고 착륙하는 정거장)  탓을 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의 취향이다.  그는 전쟁 영화 속 주인공이고 싶다. 그는 사선을 넘나들며 헬기, 무전기, 구조복 따위의 소품으로 자신을 전쟁 영웅화'하고 있다. 정점은 해군 정복을 입고 청와대에서 정치인과 군인들 앞에서 강연을 했을 때이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모두 한때 군인이었으며 앞으로도 군인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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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17   좋아요 0 | URL
냄비근성 이라는 말 쓰면 한국비하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만큼 정확한 말도 없죠..

겨울호랑이 2018-11-02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이국종 교수에게서 안철수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16   좋아요 1 | URL
이번에 해군 명예중령인가 받았죠 ? ㅎㅎ

akardo 2018-11-02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 쪽으로 가지만 않는다면 그냥저냥 좋게 볼 텐데 혹여 간다면 이 사람에 대한 기대는 버릴 겁니다. 근데 좀 불안불안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17   좋아요 0 | URL
불알불알하죠 ?ㅎㅎ

2018-11-03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런 강한 말은 잘 안 쓰죠. 무슨 드라마 대사 같잖아요..ㅎㅎ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우울증이 심신 미약'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는 남궁인이었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를 조심해야 한다. 나는 365일 심신 미약 상태에 놓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사내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 심신 미약으로 감형을 받으려는 김성수보다 재수 없는 이는 남궁인이었다.  그가 분노에 차서 일필휘지로 휘갈겨쓴 문장이야말로 서사의 과잉이었고 권위의 과잉이었다. 의협심이 강한 그가 자신이 소속된 조직 내에서 발생한 의협 사태에 대해서 왜 침묵했을까 ?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의 핵심 트리거'는 " 우울증 " 이 아니라 " 불친절 " 이다. 그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자신에게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 행위에는 고객은 서비스 노동자로부터 당연히 친절한 봉사'를 제공받아야 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다. 그의 전제가 맞다면 pc방 사용 대금에는 서비스 제공에 따른 부과 요금(봉사료)이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내는 요금에는 봉사료는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는 봉사료(팁)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즉, 그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친절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은 감정 노동자에게 과도한 봉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고객이 왕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무릎을 꿇리고 욕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친절 문화'가 한국으로 유입된 경로는 프로야구 창단을 통해서 " 프로(페셔널) -  " 라는 개념이 수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스포츠 분야에서 시작된 프로는 감정 노동자는 고객에게 무조건 복종하라 라는 이건희의 훈시에 따라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고객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직원에게는 프로 의식의 결여라는 진단을 받아야 했다. " 왜 그래 ? 아마추어같이! "  비극은 우리가 감정 노동자의 친절을 과잉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상인이 고객에게 친절하지도 않았고 고객 또한 상인에게 친절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문화는 옛날 시장'에서 흔히 엿볼 수 있다. 친절하지는 않지만 좋은 식재료를 고를 수 있는 안목과 튼튼한 발목만 있다면 품질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에 우리는 시장 상인에게 과잉 친절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지인은 2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그 친구는 복지 선진국일수록 가게 상인들은 고객에게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불친절하지도 않는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냥 무뚝뚝하다는 것이다. 상인과 고객 사이에 갑을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 물건 하나 사면서 고객은 왕이라고 허세를 부리다가는 따귀를 맞을 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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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10-29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에서 살다가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 말로는 저녁에 술과 먹거리를 사려고 편의점으로 갔는데 사장이 때마침 담배 피울 시간이라고 문 밖으로 나와서 흡연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사장이 애연가였는지 그 자리에서 느긋하게 줄담배를 피웠다고 합니다. 외국 생활이 처음이었던 친구는 주문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결국에는 밖으로 나와서 계산을 좀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주변에 편의점 더 있으니 다른 데 가시오. 나한테는 지금처럼 짬짬이 담배 피우는 시간이 하루에 제일 중요하니까는.˝

곰곰생각하는발 2018-10-29 17:52   좋아요 0 | URL
왜 이렇게 친절을 강요하는 것일까요. 이거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적당히 생까고 적당히 불친절하고 적당히 이기적이며 적당히 칼칼한 맛이 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조만간 술 한 잔 합시다..

깊이에의강요 2018-10-30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년 삼백육십오일 심신미약이네요
이런 젠장~
 

 





위근우의 황교익 비판






                                                                                                                   사이비 목사는 신도들 앞에서 누운 병자를 일으켜세우거나 몸속에 악귀가 들어와 기세등등한 사람을 제압하는 쇼를 펼친다. 목적은 간단하다.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속임수는 가짜 목사에게 권위를 부여한다. 그 이후는 만사형통이다. 쇼가 성공하면 뭐니 ?  그렇다, 쇼미더머니'다. 헌금 많이 하면 천국 갑니다. 믿슙니까 ?  (일동 괄약근을 오므라이스처럼 바짝 오므리며) 네에, 믿슙니다아아아 ~                       경향신문 토요판 특별 기고 칼럼 << 황교익의 ‘백종원 비판’, 논리적인 것 같지만 인문학으로 포장한 독선 >> 에서 칼럼리스트 위근우는 백종원 - 황교익 논란에서 황교익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현재의 방송 환경에서 지식인들은 서사 과잉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앞서의 <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 > 을 비롯해 OtvN < 어쩌다 어른 > 이후 등장한 수많은 인문학 강연쇼는 연단 위의 강사에게 절대적 권위를 요청하는 동시에 부여하며,  이런 유혹 앞에선 꽤 현명한 전문가들도 자기 제한의 미덕을 잃는 경우가 많다 "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 칼럼이야말로 논리적인 것 같지만 인문학으로 포장한 독설'이란 생각이 든다. 절대적 권위를 부여받은 쪽은 황교익이 아니라 백종원이다. 골목식당 제작진은 백종원이 화려한 쇼를 펼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은 음식의 맛을 보는 순간 그 식당의 문제점을 단박에 알아차리는 절대 미각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백종원은 함박스테이크 맛을 보고 나서 주인(골목식당 뚝섬 경양식 편)에게 질이 나쁜 냉동 고기를 사용한다고 지적한 후 식당 냉장고에 있는 고기를 눈으로 보며 고기가 오래되었다고 인상을 찡그린다. 매의 눈이요, 장금의 혀'다. 햐, 우리 백 선상님은 맛에 대해서는 박사여, 박사 !            

시청자는 하나를 보면 백을 아는 종원의 신통력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백종원의 지적은 사실일까 ?  백종원의 지적과는 달리 경양식 식당 주인은 냉동 고기가 아니라 냉장 고기를 사용했고, 질 나쁜 고기가 아니라 1등급 고기를 사용했다. 또한 오래된 고기가 아니라 포장된 지 2일 이하인 신선한 고기'를 소량 구매해서 신선도를 유지했다. 이 식당에 고기를 납품하는 관계자는  “예전부터 같은 (1등급, 냉장, 포장된지 2일 이하의)고기를 납품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종원의 지적은 전부 오답이었지만 방송에서는 모두 정답으로 둔갑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악마의 편집요,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 기적이다. 이 속임수(악마의 편집)는 백종원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한다.

말에 권위를 부여받으면 기적을 연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백종원은 대전 청년구단 편 방송에서 막걸리에 물을 탔을 뿐인데, 시음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다 물에 탄 막걸리 맛이 더 진해졌다고 고백한다.  백종원이 요술을 부린 것일까 ?  그럴 리는 없다. 술에 물을 탔는데 알코올 도수가 더 높아질 리도 없다. 이 모든 기적은 바로 권위라는 히로뽕이 만들어낸 착각일 뿐이다. 백색가루, 바로 백뽕의 기적이다.  그 이후는 만사형통이다.  쇼가 성공하면 뭐니 ?  그렇다,  쇼미더머니'다.  골목식당 제작진은 백종원에게 전지전능한 능력과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악마의 편집을 통해서 식당 주인을 악마로 만든다. 악마는 프리다 대신,  상처를 입는다.

위근우 논리대로라면 서사 과잉에 빠지기 쉬운 사람은 황교익이 아니라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다. 또한 보다 더 강력한 권위를 부여받는 쪽도 백종원이다. 백종원에게 달라붙은 방송국 스텝의 인원을 보라. 겨 묻은 개'에게 더럽다고 손가락질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똥 묻은 개와 비교한 후 겨 묻은 개에게만 더럽다고 지적하는 것은 논리 모순이다. 그렇기에 위근우 칼럼은 졸라 엉터리'다. 엉터리 칼럼을 특별 기고 형식으로 포장하여 글에 권위를 입히는 것은 소음이다. 듣는 사람에게도, 우선 본인에게도.  


   


+

위근우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황교익을 비판한다    :   그렇다면①  백종원의 등장 이후 한국인의 당 섭취가 위험한 단계로 올라갔는가?  ② 닭볶음탕에 설탕 세 숟가락을 넣는 백종원의 사람 좋은 미소와 설탕 여덟 티스푼이 들어간 청량음료 광고에서 청량함만을 강조하는 광고모델의 산뜻한 이미지 중 무엇이 더 단맛에 대한 경각심을 해제하는가?   정말로 백종원 신드롬은 10대만을 중심으로 생겨났는가?  황교익의 가설은 꽤 그럴싸하지만 이런 질문들에 대해 책임감 있는 답변을 해주진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들 질문 앞에서 쉽게 좌초할 정도로 허술하다. 하나의 이야기로서는 재밌지만 검증에 취약한 가설을 우리는 전문용어로 ‘구라’라고 부른다.


1.

위근우는 백종원의 등장 이후 한국인의 당 섭취가 위험한 단계에 올라갔다는 가설을 사실로 증명할 수 없기에 " 구라 " 라고 정의를 내린다.  우선, 가설 = 구라' 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 생각의 점프컷 " 에 놀라게 된다.  가설은 과학의 영역이고 구라는 사기의 영역이니 교집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도 과학적 검증에 취약하기 때문에 구라'다.  생구라요, 개구라다.  종교를 구라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위근우의 과학적 태도가 자못 당당하다.  그리고  황교익은 < 백종원의 등장 이후 한국인의 당 섭취가 위험한 단계에 올라갔다 > 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 한국인의 당 섭취가 위험한 단계인 상태에서 백종원의 등장 > 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근우는 도치법을 사용해서 독자를 호도한다.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 > 이 되지만 <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냠 > 이 되지 님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


2.

그는 백종원의 설탕 세 스푼과 청량음료의 여덟 티스푼'을 비교한 후 누가 더 나쁜가_ 라고 묻는다. 쉽게 말해서 똥 묻은 개(설탕 여덟 티스푼)도 있는데 왜 겨 묻은 개(설탕 세 스푼)에게만 신소리를 하느냐고 묻는 뉘앙스'다. 그런데 이 논조는 그대로 위근우를 비판하는 논조로 활용될 수도 있다. 위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더 강력한 권위(서사의 과잉, 권위의 과잉)를 부여받은 쪽은 황교익이 아니라 백종원이다. 위근우의 논조대로라면 마약이 담배보다 더 해롭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담배는 마약보다는 덜 해로운 기호식품으로 긍정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두고 우리는 전문용어로 논리 박약'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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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0-20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러다가는 전국의 음식점은 죄다 백 씨네
가게가 될 판입니다.

제가 동네는 백종원 브랜드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새마을식당, 철판구이
등등 죄다 나가 떨어지네요.

그런데 팟캐에서 들어 보니 백 씨네 프랜
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싸장님들 중에서
또 장사가 잘되는 쪽은 백 씨편을 들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10-20 22:08   좋아요 0 | URL
뭐 맛이 좋아 장사가 잘 된다면 그것을 탓할 일은 아니나
굳이 방송에서 백종원이라는 브랜드를 ppl 형식으로 1시간짜리 광고를 하는 것인데
이거 불공정이죠.. 백종원 골목식당 이거 완전히 한 시간짜리 백종원 광고인 겁니다..
 

 


 




 

 


 




스모킹 건






그   목사는  연기  나는  총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

the chaplain stood with a smoking pistol in his hand


-  << 글로리아 스콧 호 >> ,  셜록홈즈의 회상에 수록





   총을 허리에 찬 놈보다 위험한 놈은 총을 손에 쥔 놈이고, 총을 손에 쥔 놈보다 더 위험한 놈은 총을 쏘고 있는 놈이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 << 블루 스틸 >> 에서 영화 제목 " 블루 스틸 blue steel " 은 총에 대한 은유이다. 경찰 학교를 갓 졸업한 여성 경찰관 매건 터너는 첫 근무 날,  편의점 강도 사건을 목격하고 범인을 사살해 버린다. 그런데 범인의 총이 행방불명되고, 목격자도 없어 터너는 비무장한 범인을, 그것도 총탄을 모두 써가면서 무참히 사살한 혐의로 자격 정지를 당한다. 설상가상 원인불명의 연속 살인 사건이 이어지고, 피해자들의 시체에서는 하나같이 터너의 이름이 새겨진 탄피가 발견된다. 경찰은 그녀를 감시하고, 그녀는 점점 궁지에 몰린다. 스모킹 건은 누구의 손쥐어진 것일까(네이버 영화 소개 글'에서 발췌).

영화는 궁지에 몰린 터너가 사라진 스모킹 건의 행방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라진 총을 애타게 찾아 떠나는 여정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여기서 < 총 > 은 권력을 대표하는 남근의 대체재'로 여성 경찰관 매건 터너( 제이미 리 커티스 분)가 찾고 있는 것은 총이 아니라 남근(팔루스)이다.  거세된 여성이 남성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푸른 강철을 차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루이스(수전 새런든)가 휴게소에서 델마를 강간하려는 악당을 권총으로 쏴 죽이는 순간 여성 정체성을 깨닫는 것과 같다.  영화 << 블루스틸 >>  은 " 피스톨 = 남근 " 이라는 영화적 상징이 다소 상투적이고 뻔뻔하기는 하나 그럭저럭 볼 만한 작품이다. 

내가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공지영이 김부선의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한 전화 통화 녹취록등장하는 " 스모킹 건 " 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영화 속 매건 터너가 애타게 사라진 스모킹 건을 찾듯이 한국판 델마와 루이스도 애타게 스모킹 건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스모킹 건이라는 표현은 가설을 증명하는 과학적 근거가 확실해서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을 뜻한다.  김부선은 왜 " 자G와 불R 사이에 크고 까만 점 " 이 있다는 거짓말을 했을까 ?   같은 질문을 공지영에게도 던지자.  공지영은 왜 " 자G와 불R 사이에 크고 까만 점 " 이 있다는 거짓말에 그토록 열광했을까 ?  그것은 남성 성기를 모욕하고 훼손하는 데에서 오는 쾌락 때문이다.

이 심리는 일베가 여성 성기를 모독하고 훼손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 반대편인 워마드가 남성 성기를 희화화하는 심통과 일맥상통한다. 점이란 피부의 변이(변성) 현상으로 양성 종양인 얼룩'이다. 그러니까 문학적 수사를 동원하자면 남근에 얼룩인 점이 있다는 것은 곧 남근의 불완전성(임포텐츠)을 뜻한다. 두 여자는 남근에 점을 찍어서 이재명을 사회적 고자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 호호호호호, 네가 고자라니 !!!!!!!!!!! "  하지만 김부선이 주연을 맡고 공지영이 연출한 리벤지 포르노는 일장춘몽으로 끝날 모양이다. 스모킹 건이라 믿었던 점은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두 여자에게는 그들의 아킬레스 건으로 돌아왔다.

총을 허리에 찬 놈보다 위험한 상황은 총을 손에 쥔 놈이 등장하는 장면이고, 총을 손에 쥔 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은 총을 쏘고 있는 놈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총을 쏘려고 하는 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은 총을 쏘았는데 총알이 없을 때 발생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판 델마와 루이스가 선택한 것은 마지막 경우의 수인 것 같다. 트럼프였다면 두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You're fire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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