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나쁜 개는 없지만 걔는 있다  :












세상에 나쁜 피는 없다











                                                                                             반려동물고민상담 방송 <<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 에서 제작진은 의뢰인을 방송 스튜디오로 불러 인터뷰를 진행한다. 반려동물 몇 마리를 키우고 있느냐고 묻자 의뢰인이 대답한다. ( 낯선 이름이어서 잘 생각은 안 나지만 예를 들자면 : )비숑 프리제 한 마리와 차이니즈 샤페이 그리고 스코티쉬 폴드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요.  내가 이 장면을 보고 의아했던 것은 동문서답이었다. 몇 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우느냐는 질문에 의뢰인은 개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라는 대답 대신에 묻지도 않은 품종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의뢰인의 인터뷰에서 내가 포착한 것은 반려동물을 명품 브랜드 취급하는 태도'였다.  화면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에서 의뢰인의 집으로 이동한다.  아니나 달라. 의뢰인의 반려동물들은 모두 다 최신 헤어컷에 멋들어진 옷을 입고 뿜뿜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키우는 짐승은 최근 반려인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인싸 품종들이었다. 문득, 그는 정말 자신이 키우는 짐승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 _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미적 기준에 의해 개조(미용)된 개는 행복할까 ?  의뢰인의 과시욕이 견종 차별처럼 느껴져서 역겨웠다. 


얼마 전 티븨엔'에서 리얼리티 동물 예능이랍시고 품종을 알 수 없는 길고양이를 우아한 스코티쉬 폴드 고양이와 비교 평가하면서 " 촌년 " 이라는 자막을 달아 논란이 됐던 장면과 겹쳐졌다. 품종이 없다는 이유로 촌년이라고 말하는 경멸적 태도와 묻지도 않았는데 키우는 짐승의 품종부터 말하는 순혈주의는 서로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종종, 아니 자주 듣는 소리가 혈액형이 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개봉동 딱정벌레처럼 쉽게 피로해진다. 도대체 왜 궁금해하는 것일까 ?  혹시,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흡혈귀가 아닐까 ? 


바넘 효과1)를 이용한 혈액형 성격 테스트를 믿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 유일하다(혈액형 성격 테스트는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그 어느 나라도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혈액형이 무엇인지 모르는 서양인은 수두룩 빽빽이다. 만약에 독일 사람에게 혈액형이 무엇이냐고 묻다가는 따귀를 맞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독일 사람에게 혈액형 성격설은 우생학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인종 청소를 위해 이용한 학문이 바로 우생학이다. 나치즘은 대부분의 포유류가 B형인 반면에 인간과 침팬지에서는 A형도 분포되었다는 점에 착안해서 B형을 나쁜 피로 분류하였다. 


즉, B형이 많은 민족일수록 그 나라는 열등하다는 논리이다. 히틀러가 이 말도 안 되는 우생학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한 이유는 백인일수록 A형이 많기 때문이다. 생화학적 인종계수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인이 스스로를 " 명예백인 " 이라고 우기는 것도 바로 피의 우생학에 기초한다. 그들에 의하면 한국인과 유태인은 1.18로 '아시아-아프리카형'에 속하고 일본인(1.48)이나 러시아인(1.41)은 '중간형'에 속하며, 영국인(4.09)이나 프랑스인(5)은 '유럽형'에 속하는 식이다. 이처럼 인종 청소(인종 차별)의 목적으로 악용된 혈액형 성격 테스트를 


한국인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낄낄대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꼴이다. 이 세상에 나쁜 피는 없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단점이나 장점이 될 수 없다. 밀란 쿤데라의 말이다. 






1)  바넘 효과  :  란 이런 것이다. 화를 내면 아무 일도 아닌 일에 화를 낸다고 소심한 A형이라 하고, 웃으면 배알도 없냐며 소심한 A형이라 하고, 수긍하면 소심하게 반박도 못한다고 A형이라고 하고, 반박하면 그냥 재미로 한 소리인데 정색을 하는 것을 보니 소심한 A형이라 하고, 이 꼴 저 꼴 다 싫어서 무시하면 소심하게 삐쳤냐며 A형이 맞다고 확신하고, 삐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은 그냥 무시하면 되지 그깟 일로 삐쳤나며 소심한 A형이라 하니, 삼라만상 모든 감정은 A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O형이라고 해서 다를까 ? 화를 내면 화를 참지 못하는 성격인 것을 보니 O형이라 하고, 웃으면 호탕하게 웃는 것을 보니 O형이라 하고, 수긍하면 통 크게 인정하는 것을 보니 O형이라 하고, 반박하면 돌려말하는 것을 잘 못하는 성격을 보니 O형이라 하고, 무시하면 싸우는 걸 안 좋아하는 걸 보니 O형이라 하고, 삐치면 성격 좋은 사람이 오죽했으면 삐쳤냐며 O형이라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요, 양 팔에 걸면 양파링이다. 아이고야, 스피노자가 울고 갈 노릇이다. 


2)  니미 조또  :  일본은 일본인이 열등한 유색인종이 아니라 차라리 백인에 가깝다는 탈아입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국가와의 차이점을 강조해야 했다. 처음에 도입한 것은 신체 계측학이었다. 두개골 크기, 신체 길이, 남근 크기 따위를 측정했는데 일본의 야심과는 정반대의 결과에 실망하게 된다. 일본인의 두개골은 한국인의 두개골보다 크고 반대로 키는 일본인이 더 작았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페니스 길이도 작었다. 일본의 좆이 좆도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나자 일본 제국은 매우 크게 실망했다. 닝기미, 조또 !  결국 계측학은 포기하고 피의 우생학에서 해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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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살아볼 용기 - 당연한 것들과의 결별
이종미 지음 / 들메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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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반대말이 없는 것은 쓸쓸할까 ? 












여교사라는 단어의 반대말은 없다. 남교사'라는 단어는 없으니깐 말이다. 여배우라는 단어의 반대말도 없다. 남배우라는 단어도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여교사, 여배우, 여의사, 여교수 따위의 낱말은 주로 성적 비하 판타지로 소비된다. 신조어인 개똥녀, 김치녀도 마찬가지다. 개똥남과 김치남이라는 단어'도 없으니 개똥녀와 김치녀의 반대말도 없다. 그렇다면 < 그녀 > 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  십중팔구는 " 그 " 라고 대답하겠지만 < 그녀 > 의 반대말은 < 그 > 가 아니다. 


사전적 의미로 < 그 > 라는 낱말은 성별 구별 없이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이거나 앞에서 이미 이야기하였거나 듣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일 뿐이다. < 그 > 가 남녀를 아울러 통칭하는 낱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 그 > 옆에 애써 < -女 > 를 붙여 < 그 > 와 < 그녀 > 를 분리한 것은 빈곤한 철학의 반영인 셈이다.  분류할 필요가 없는 데에도 불구하고 애써 구별짓는 심보야말로 " (페루애적 관용어로 설명하자면) 밤꽃 향기 작렬하는 불알후드의 발광 다이어드적 3파장 극성 "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랄이 풍년이라는 소리. < 그녀 > 라는 단어는 광복 이전에는 없는 단어'였다. 문예지 현대문학에서는 이 단어를 두고 치열한 논쟁(현대문학 3월호, 1965년)이 일기도 했다. 일종의 현대어인 셈이다. 뜬금없는 질문 하나. < 그 > 의 낮춤말은 무엇일까 ? < 그놈 > 이다. 반대로 높임말은 < 그이 > 이다(보통은 어른 혹은 어르신으로 부른다). 그렇다면 < 그녀 > 의 낮춤말은 무엇일까 ? < 그년 > 이다. 반대로 그녀의 높임말은 ?  없다.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은 여사님이거나 사모님인데 이 두 단어는 상류층 진입에 성공한 여성을 지시할 뿐 보통의 여성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결국 수평적 관계로써 그녀라는 단어의 반대말은 없다. 친애하는 이웃인 허허 님이 << 혼자 살아볼 용기 >> 에서 " 왜 반대말이 없는 것은 쓸쓸할까 ? "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그 질문에 감탄했다, 좋은 대답보다 어려운 것은 좋은 질문이니까 ! 이 책의 저자인 허허 님은 이렇게 말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따뜻함의 반대말은 많은데 쓸쓸함의 반대말은 하나도 없었다. ' 음산, 고독, 황량, 적적, 삭막, 스산... ' 등등 외롭고 어둑한 '쓸쓸'함과 비슷한 말은 이렇게 많은데 그 반대말은 하나도 없다니! 쓸쓸함을 면할 길 없는 쓸쓸한 말이구나. 반대말이란 무엇인가 ? 왜 반대말이 없는 건 쓸쓸하게 느껴질까 ? 

 


돌이켜보면  :  반대말이 없는 단어는 쓸쓸하다. < 홀몸 > 이나 < 고아 > 라는 단어가 반대말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다. 어쩌면 반대말이 없기 때문에 쓸쓸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독서를 통해서 명쾌한 답을 얻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보다 멍청한 태도는 없다. 진리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다 필요 없다. 당신이 책을 통해서 " 좋은 질문 " 하나를 건졌다면 그것만으로 훌륭한 결과'다. 명쾌한 답 100개보다 도움이 되는 것은 훌륭한 질문 1개이다. 





+

법륜의 < 즉문즉설 > 이나 혜민의 < 위로 > 따위의 솔루션 에세이가 질이 낮은 이유는 훌륭한 질문은 없고 명쾌한 대답만 남발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괴롭힌 고민이 겨우 승려의 20자 대답으로 요약될 수 있다면 그 고민은 고민이 아니고 20자평은 해결책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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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2020-01-09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은 다섯인데... 내용은 하나인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9 23:41   좋아요 0 | URL
내용도 별 다섯입니다..

tobewhat 2020-01-09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 ‘그녀’가 3인칭 대명사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최근세의 일이며, 신문학 초창기인 1919년경에 김동인 등이 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그’ 대신에 ‘궐자(厥者)’를, ‘그녀’ 대신에 ‘궐녀(厥女)’라는 말을 썼다. 그간 ‘그녀’는 성차별적 언어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이젠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고경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언어는 움직이고 진화하는 것인데, 일본어의 유래만 가지고 ‘그녀’를 사생아 취급하는 게 옳을까요. 영어의 ‘she’에서 나왔든 일본어의 ‘彼女’에서 나왔든, 그걸 반드시 제국주의의 괴물처럼 비난해야 할까요. ‘겨레의 말’엔 과연 성차별 요소가 없을까요. 전통의 언어습관에 대한 집착이 배타적 민족주의의 무기가 되는 건 아닌지 의심해봅니다. 이에 반해 여성학자들은 ‘차이 드러내기’라는 차원에서 ‘그녀’를 지지합니다. 언어에서 성을 차별하는 게 진짜 성차별적 언어들에 저항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녀 (선샤인 논술사전, 2007. 12. 17., 강준만)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9 23:41   좋아요 0 | URL
1919년에 김동인이 ˝ 그녀 ˝ 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이광수‘입니다. << 무정 >> 에서 그녀라는 말을 사용했죠. 그리고 최현배는 그녀라는 말이 일본에서 비롯되었다며 반대했는데 반해 김동리는 그녀가 일본어에서 비롯되었다는 근거가 없다며 그녀를 옹호했죠.

그리고 여성학자들이 차이 드러내기라는 차원에서 그녀를 지지했다는 것은 여러 해석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어느 페미니스트는 그녀의 탄생이 남성이 모든 지시대명사를 대표했다는 점에서 그녀가 성차별의 결과라는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펼치지 않은 우산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ㅡ 디디의 우산, 147










그녀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더군다나 연구소 연구원이었다. 똑똑한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도 똑똑한 편이어서 늘 중요한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연봉도 훌륭했고, 사원 복지도 훌륭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임원의 신뢰는 큰 자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에게 유리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목표가 생기자 욕심이 생겼다. 밝은 미래가 보였다. 밤낮없이 일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지난한 고생 끝에 연구 계발한 시제품을 임원 앞에 선보이는 날이어서 정신없이 바빴다. 


그때 이십대 젊은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밤샘 작업을 했던 동료 연구원이었다. 평소 싹싹한 성격으로 자신을 친언니처럼 잘 따르던 동료였다. 하지만 그녀는 워낙 바쁘다 보니 주저주저하는 동료 목소리를 뒤로 하고 짧은 통화만 하고 끊었다. 회의는 한없이 이어졌다. 회의에, 회의에, 회의가 이어지다 보니 날은 밝았다. 그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서'였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회사 동료가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사람이 당신이니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내 생각했다. 


회사 동료가 자신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말은 구원의 손길이었을까 ?  아니면 당부의 말이었을까 ?  내가 만약에 그 전화를 끊지 않았다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컴컴한 우울과 너무 하얗고 시끄러운 죄책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가슴은 뻥 뚫렸는데 항상 속이 답답했다.  출시된 상품은 빅히트를 쳐서 연초 승진 0순위로 뽑혔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현관 수납장에 넣어둔 3단 접이식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2년 전에 사두었던 예쁜 우산.  그녀는 그 우산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밤낮없이 집과 주차장과 회사를 오갔으니 비가 와도 우산이 필요 없었던 것이었다. 그 공간이 그녀가 2년 동안 오갔던 동선의 전부였던 것이었다. 늦은 겨울의 한낮, 겨우내 꽁꽁 얼었던 마당의 수도가 녹으면서 느닷없이 녹물을 쏟아내듯이 그녀는 2년 동안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우산을 보며 실컷 울었다. 마치 그 우산이 단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한 자신의 꿈 같았다. 모든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느 사표를 내고, 지금은 깊은 산속에 컨테이너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주중에는 지방 중소기업에 다니고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에는 숲속 오두막에서 산다. 


올해는 깨를 깨(?) 많이 심어서 챔~기름을 4병이나 얻었다. 비가 오면 자주 걷는다고 한다. 3단 접이식 우산을 펼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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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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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나나맨의 비극









박민규 소설 << 지구영웅전설 >> 에는 수많은 DC 영웅이 등장한다. 아메리카 히어로를 대표하는 슈퍼맨은 물론이고 배트맨, 아쿠아맨, 스파이더맨도 맹활약을 펼친다.  이 무리에는 한국인(1인칭 소설 주인공)도 끼어 있는데 바로 " 바나나맨 " 이다.  루저 소년이 자살을 결심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때 그를 도와준 이가 슈퍼맨이었던 것이다.  장수원을 닮은 듯한 슈퍼맨이 어눌한 한국어로 높낮이 없이 띄엄띄엄 소년의 안부를 묻는다. " 괜찮아요 ?? 많이 놀랐죠 ?? " 그것이 인연이 되어 최초의 코리아 히어로,  아니 최초의 아시아 히어로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 바나나맨 " 인가 ? 




" 너무 작아, 마치 한국의 땅덩이처럼 작구나 "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 곤란해 하는 슈퍼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컨셉을 친근한 영웅 쪽으로 맞춰 보는 건 어떨까 ? " 로빈의 힘찬 목소리가 부메랑처럼 날아 돌아왔다. " 이를테면 바나나맨(Banana-man) 같은 것 말이지 ! " " 겉은 노랗다. 그러나 속은 희다. 그거야말로 우리의 컨셉에 딱 맞는 이름이군. 좋아, 다들 어때 ? " 모두가 동의를 뜻하는 박수를 쳤기 때문에, 그 순간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구영웅전설, 박민규

 


하지만 속이 희다고 해서 주인공 < 나 > 가 완전한 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나나맨의 주요 임무는 아메리카 히어로의 시다바리'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원더우먼의 생리대 심부름 따위'였다.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보다는 차라리 겉은 하얗고 속은 노란 웨딩 케잌이 되고 싶은 바나나맨은 자신도 영웅이 될 수 없냐고 반문한다. 슈퍼맨이 충고한다. " 넌 미국인이 아니기 때문이야. " 그러자 바나나맨이 소리친다. " 그럼 미국인이 될 테야 ! " 슈퍼맨은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 소용없어. 그런다 해도 넌 백인이 아니니까 ! "  박민규의 의도는 명백하다. 


아시아인이면서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의 은유이다. 박민규도 인터뷰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한다. 


어느 책에선가 일본인만 명예 백인으로 간주해주겠다고 하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명예 백인이라는 단어에서 바나나맨이라는 캐릭터가 떠올랐죠. 아시아인이면서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껍질은 황인종이지만 속엣 것은 백인인.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나나맨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백인이 되고 싶은 아시아인의 식민지적 근성은 각 나라마다 차이는 있으나 일본처럼 노골적으로 " 명예백인 " 을 갈망하는 나라는 없다. 유튜브를 보면 일본은 아시아인이 아니라 백인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유튜버가 수두룩 빽빽이다. 


일본인을 조롱할 때 " 명예백인 " 이라거나 " 바나나 " 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내가 위스키와 샌드위치 그리고 재즈에 열광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화이트 워싱하고 싶은 작가의 " 바나나적 근성 " 이다. 하루키 문학 작품 속에서 그놈의 샌드위치 얘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샌드위치뿐이랴. 위스키, 와인, 스파게티, 샐러드, 토마토 요리가 자주 등장하다 보니 일본인의 밥상이라기보다는 구라파의 밥상을 보는 듯하다. 누군가는 하루키 문학을 " 탈아(脫亞 : 아시아를 벗어난)적 세계 " 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 입구(入歐  :서구화한)의 세계 " 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과 마주친다. 바나나적 근성(화이트 워싱)을 이해하면 왜 일본 만화 속 인물들이 모두 서양인의 두상과 신체 구조를 닮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 이것이 일본 만화다 >> 에서 프레드릭 L쇼트는 " 일본 만화를 처음 접하면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접시 모양의 눈, 오똑한 코, 그리고 형형색색의 머리카락을 보며 왜 이렇게 많은 백인이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지 궁금해한다. " 고 지적한다. 일본의 근대 사상가 다카하시 요시오는 저서 << 일본인종개량론 >> 에서 


인종 개량을 목적으로 서양인과 잡혼하여 인종 자체를 개량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서양인은 신장, 체중, 두뇌 어느 면에서든지 일본인보다 뛰어나다고 전제한 후,  열등 인종이 우등 인종과 잡혼하면 열등 인종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서 국가와 개인을 위해 능력 유전을 목적으로 잡혼을 장려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인은 스스로 명예백인이라 자위하며 아시아인을 열등인종이라 여기는 것이다. 징징거리는 진중권을 볼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의 " 바나나적 욕망 " 이다. 그는 한국 대중의 정념을 싸잡아서 열등한, 너무나 열등한 서정으로 여기는 경향이 심하다. 


대표적인 예가 << 디워 >> 논쟁이다. 영화에 대한 진중권의 과잉 반응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국뽕은 비단 한국 대중의 천박한 정념의 특징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 전투기를 몰고 외계인과 싸워 이긴다(결국 지구는 미국 대통령이 구한다)는 롤랜드 에머리히 영화에 비하면 << 디워 >> 의 국뽕은 귀여운 수준이 아닐까 ? << 디워 >> 에 대한 대중의 즐거움을 진중권은 왜 그토록 싫어했던 것일까. 언젠가 진중권은 << 나도 국적을 포기하고 싶다 >> 라는 도발적 제목의 신문 칼럼(2013,경향일보)을 쓴 적이 있다. 이 칼럼에서 그는 유학 도중 비자 연장을 하기 위해 


독일 관공서를 간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  한국 여권을 든 자는 제3세계 인종들로 이루어진 기다란 줄의 틈바구니에 끼어 몇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지만 일본 여권을 가진 사람들은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쾌적한 장소에 설치된 한산한 창구 앞으로 갔다면서 일본은 서유럽 국가와 같은 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라며 부러워한다. 여기서 그가 부러워하는 것은 화이트 워싱 한 바나나맨에 대한 선망이다. 탈아입구론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입만 열었다 하면 그놈의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와 " 파타파직스 " 을 남발이다. 


한국 문화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 호모코레아니쿠스 >> 도 제목부터 탈아입구에 다다른 바나나적 욕망이 진하게 풍긴다. 여기서 그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인들은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정념을 정직하게 표출하는 편이다. 가령 어떤 상점에서 물건을 산 후 결함이 있어 주인에게 항의를 한다고 해보자. 처음에는 고객의 불평을 들어주다가 곧 말싸움이 시작되고, 이 설전이 길어지면 어느 시점엔가 주인은 자제심을 잃고 " 나, 더러워서 장사 안 해 " 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유학에서 막 돌아와 이 땅의 습속들이 낯설기만 하던 시절, 비슷한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일본에서라면 어떨까 ? 모르긴 몰라도 주인이 스미마셍 을 연발하며 끝까지 항의를 들어줄 것이다

-호모코레아니크스,102쪽

 


진중권이 두 나라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내린 결론은 " (정념이 풍부한 한국인은) 역사적 후진성의 징표 " 이다.  혼네(本音, 속내 혹은 본심)와 다테마에( 建前, 겉치레 혹은 가식)로 대표되는 일본의 가식이 한국의 정념보다 우월한 문화적 표상이라면 그가 화이트 워싱하고 싶은 서양인이야말로 한국인보다 더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표출하는 문화권이라는 점에서 구라파는 한국보다 더 역사적 후진성의 징표'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 내가 보기에 진중권은 바나나맨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문화 현상들은 모두 다 역사적 후진성의 징표로 읽힌다. 


최근 JTBC의 신년토론회에서 맹활약을 펼친 진중권의 태도를 보면서 느닷없이 내 뇌리에 호출된 인물은 핵주먹 타이슨이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결국에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던 그 유명한 희대의 경기가 떠올랐다. 맙소사, 성스러운 홀리의 귀를 물어뜯다니...... 안티조선운동에 앞장섰던 진중권이 느닷없이 레거시 미디어를 절대 신뢰한다고 말했을 때 그가 즐겨 사용하는 unheimlich(언캐니)을 체험했다. 대한민국 1등 신문인 조선일보야말로 레거시 미디어의 박혁거세 같은 상징이 아니었던가. 이 얼마나 우스꽝스운 어느 호모코레아니쿠스의 파타파직스적 세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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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1-05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읽지 않아 곰곰발님의 말씀으로 짐작해 봅니다만, 아마도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이 담긴 책이라 여겨집니다. 예전에는 건전한 비판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을 저자의 바뀐 모습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마치 90년대 김지하의 분신에 대한 비판이 「오적」을 비롯한 그의 작품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과 같은 현상처럼 느껴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5 17:39   좋아요 1 | URL
네, 바로 그겁니다. 진중권의 태도(현)로 다시 보니까 굉장히 탈아입구적 태도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더군요. 왜 그 사람 특유의 외래어 미학 용어의 남발만 봐도.. 스스로를 명예백인인 척하는... 것 같습니다.. 뭐, 그렇다는 얘기구요.. ㅎㅎ
 














                                  


방법적 HEY ! : 그때그때 달라요






                                                        만나봤어요 ?






끊임없이 의심한 끝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의심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데카르트









철학과 논리는 떼래야 뗄 수 없는 젖은 땔감과 같은 사이다. 왜냐하면 철학에는 논리가 필요하고 논리적 사고를 거쳐야 철학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JTBC 신년 토론회는 " 토론 " 이 아니라 진중권이 울분을 " 토(로) " 하기 위해 마련한 깔아놓은 멍석이 되었다. 시작부터 상기된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하는 그를 보면서 대환장 쑈를 예감했는데 아니나 달라, 막장으로 치달았다. 새해 벽두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스튜디오에서 오바이트'를 하니 보기 민망했다. 이 토론회에서 진중권을 감싼 심인은 원한 감정'이다. 니체에 의하면 원한 감정은 겁쟁이의 노예 도덕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상대를 향해 주먹질을 하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안나니 한발 물러나서 나중에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퇴행한 결과이다. 그동안 말이 좋아 겸임교수( : Part Time Professor )이지 문자 그대로 파트 타임으로 아르바이트하는 선생이나 다름없는 비정규직 교수였던 진중권이 이곳저곳 떠돌다가 최성해 총장의 은혜로 박사 학위도 없는 신분으로 정규직 교수가 되어 입에 풀칠한 지 어언 7년.  이 안락을 깨트린 자가 조국 일가'였으니 원한 감정이 생겨났던 모양이다. 조국을 옹호하자니 은혜 입은 총장에게는 배덕이어서 차라리 절친을 배신하는 쪽으로 각을 세운 것이다. 


그러니까 진중권의 화는 조국 때문에 자신이 직장에서 쫓겨났다는 실업자의 원한 감정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국의 반대편인 검찰을 옹호하게 되고, 결국에는 작년 초 채널A 방송에 나와 김학의 사건을 언급하며  " 공수처가 있었다면 과연 이 사건이 덮였을지 생각해 볼 문제" 라며 " 지금이 '공수처'를 설치할 절호의 기회다. 야당이 틀어버리니 여당은 국민을 설득하고 기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던 말(2019년 3월, 채널A 외부자들)을 뒤집고,  최근에는 페이스북에 “분위기가 하도 무서워서 그동안 감히 질문도 못 꺼냈는데… 이제 통과됐으니 묻는다”며 “공수처, 전 세계에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던데,  


왜 그것만이 검찰 개혁의 방법이라고들 했던 것이냐...... 꼭 그래야만 하는 한국인만의 DNA 특성 같은 게 있는 거냐”고 반문하는 사태에 이르고 만다. 아아. 양심을 팔면서까지 한입으로 두말 하기 있기/없기 ?  나도 되묻고 싶다. 꼭 그랬어야만 했냐 ?  무리한 논리를 전개하다 드디어 정신줄 놓게 된 것이다. 진중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무오류성을 주장한다. 전지적 시점에 가까운 " 내가 아니까요 ! " 와 " 만나봤어요 ? " 라는 단호한 선언은 그가 중세적 인간(전근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대중 앞에서 폭로한 것이나 다름없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는 진리 탐구를 위한 첫 번째 규칙으로 "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진리인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 것 " 을 주문하면서 속단과 편견을 피하라고 강조했는데, 진중권은 근대 철학의 핵심인 < 의심 > 대신 맹목적 < 믿음 > 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중세의 전근대적 인간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한다.  그는 토론회에서 주류 전문가의 권위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면서 기성 언론과 검찰을 절대 신뢰한다고 선언했는데 그렇다면 (레거시 미디어의 전문성과 권위를 믿는다고 했던) 왜 진중권은 그 옛날 안티 조선운동의 앞잡이가 되었나 ?  


조선일보야말로 레거시 미디어의 할아버지가 아니었던가 ?  이런 인간이 21세기 논객이랍시고 논리적 사고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는 민들레가 웃을 일이다. 끝으로 그때그때 다른 입장에 대한 너님의 해명을 듣고 싶다. 해명할 수 없다면 주체적으로 너절하게 찌그러져라. 그리고 아름답게, 미학적으루다가 더러워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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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1-03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국 사태부터 아는 것이 하나없는 인간이지만
따끈따끈한 곰발 님의 글을 첫빠로 읽게 되는 영광이 2020년에 오다니!!
저 아무래도 2020년 제대로 대박칠 것 같은 느낌!!^^;;;;;;;

라로 2020-01-03 12:49   좋아요 0 | URL
죄송해요,,,이런 진지한 글에 이딴 댓글을 달아서요. 흑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3 13:10   좋아요 0 | URL
제 글은 곱창의 막장 같은 느낌이니 막, 그냥 쓰셔도 됩니다.
라로 님 올해에는 항상 필승하시기 바랍니다. 해든이 화이팅 ~

2020-01-03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3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20-01-03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형편없이 망가졌지만, 1980년대에 쓰였던 조갑제의 글들을 저는 참 좋아했습니다. 민주노총에서 일하셨던 어떤 분은 ‘1989년 이전의 조갑제보다 더 훌륭한 기자를 본 적이 없다‘면서 그야말로 최고의 상찬을 했지요.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 몸이 끔찍하게 망가진 고문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이들의 참상을 사실감 넘치는 르포로 담아낸 왕년 조갑제는 기자 정신의 살아있는 표본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느 때부턴가 자기 분열적이고 자기 모순적인, 본인이 했던 말을 깡그리 잊고 만, 그야말로 맛이 간 사람으로 변하더군요.
저는 어제 토론을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예전에 진중권이 인터넷상으로 지만원이나 조갑제 같은 이들을 조롱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곰곰발님 글을 읽고 나니 (실업자의 원한 감정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가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자기 점검이나 자기 반성을 철저히 해야한다고 봅니다. 저는 진중권을 예전부터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가 그토록 냉소하고 모멸해마지 않았던 사람들과 동류가 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니, 뭔가 웃프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3 17:11   좋아요 0 | URL
만약에 진이 토론 후 정신승리한다면 정신병원 가야죠. 논리적 사고가 제로가 되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의 전문성과 권위에 대해 자신은 절대 신뢰한다고 한 인간이 왜 그 옛날에는 안티조선운동의 선두에 섰는지 .. 이율배반 아닙니까. 조선일보야말로 레거시 미디어의 상징이 아닙니까.

찔레꽃 2020-01-04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날 토론회를 보며 느꼈던, 그러나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던 마음을 속시원히 대신 표현해 주셨네요. 세종대왕님이세요~ ^ ^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4 18:44   좋아요 0 | URL
궁예의 재림을 보는 듯합니다. 궁예의 관심법이 진중권을 통해 재현될 줄..... 그 누구 알았겠습니까 ?
그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파타파직스‘만 남발하고... 이 개념을 20년째 반복하고 있는 걸 보면 한심하단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