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어느 바나나맨의 비극









박민규 소설 << 지구영웅전설 >> 에는 수많은 DC 영웅이 등장한다. 아메리카 히어로를 대표하는 슈퍼맨은 물론이고 배트맨, 아쿠아맨, 스파이더맨도 맹활약을 펼친다.  이 무리에는 한국인(1인칭 소설 주인공)도 끼어 있는데 바로 " 바나나맨 " 이다.  루저 소년이 자살을 결심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때 그를 도와준 이가 슈퍼맨이었던 것이다.  장수원을 닮은 듯한 슈퍼맨이 어눌한 한국어로 높낮이 없이 띄엄띄엄 소년의 안부를 묻는다. " 괜찮아요 ?? 많이 놀랐죠 ?? " 그것이 인연이 되어 최초의 코리아 히어로,  아니 최초의 아시아 히어로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 바나나맨 " 인가 ? 




" 너무 작아, 마치 한국의 땅덩이처럼 작구나 "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 곤란해 하는 슈퍼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컨셉을 친근한 영웅 쪽으로 맞춰 보는 건 어떨까 ? " 로빈의 힘찬 목소리가 부메랑처럼 날아 돌아왔다. " 이를테면 바나나맨(Banana-man) 같은 것 말이지 ! " " 겉은 노랗다. 그러나 속은 희다. 그거야말로 우리의 컨셉에 딱 맞는 이름이군. 좋아, 다들 어때 ? " 모두가 동의를 뜻하는 박수를 쳤기 때문에, 그 순간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구영웅전설, 박민규

 


하지만 속이 희다고 해서 주인공 < 나 > 가 완전한 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나나맨의 주요 임무는 아메리카 히어로의 시다바리'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원더우먼의 생리대 심부름 따위'였다.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보다는 차라리 겉은 하얗고 속은 노란 웨딩 케잌이 되고 싶은 바나나맨은 자신도 영웅이 될 수 없냐고 반문한다. 슈퍼맨이 충고한다. " 넌 미국인이 아니기 때문이야. " 그러자 바나나맨이 소리친다. " 그럼 미국인이 될 테야 ! " 슈퍼맨은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 소용없어. 그런다 해도 넌 백인이 아니니까 ! "  박민규의 의도는 명백하다. 


아시아인이면서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의 은유이다. 박민규도 인터뷰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한다. 


어느 책에선가 일본인만 명예 백인으로 간주해주겠다고 하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명예 백인이라는 단어에서 바나나맨이라는 캐릭터가 떠올랐죠. 아시아인이면서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껍질은 황인종이지만 속엣 것은 백인인.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나나맨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백인이 되고 싶은 아시아인의 식민지적 근성은 각 나라마다 차이는 있으나 일본처럼 노골적으로 " 명예백인 " 을 갈망하는 나라는 없다. 유튜브를 보면 일본은 아시아인이 아니라 백인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유튜버가 수두룩 빽빽이다. 


일본인을 조롱할 때 " 명예백인 " 이라거나 " 바나나 " 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내가 위스키와 샌드위치 그리고 재즈에 열광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화이트 워싱하고 싶은 작가의 " 바나나적 근성 " 이다. 하루키 문학 작품 속에서 그놈의 샌드위치 얘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샌드위치뿐이랴. 위스키, 와인, 스파게티, 샐러드, 토마토 요리가 자주 등장하다 보니 일본인의 밥상이라기보다는 구라파의 밥상을 보는 듯하다. 누군가는 하루키 문학을 " 탈아(脫亞 : 아시아를 벗어난)적 세계 " 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 입구(入歐  :서구화한)의 세계 " 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과 마주친다. 바나나적 근성(화이트 워싱)을 이해하면 왜 일본 만화 속 인물들이 모두 서양인의 두상과 신체 구조를 닮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 이것이 일본 만화다 >> 에서 프레드릭 L쇼트는 " 일본 만화를 처음 접하면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접시 모양의 눈, 오똑한 코, 그리고 형형색색의 머리카락을 보며 왜 이렇게 많은 백인이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지 궁금해한다. " 고 지적한다. 일본의 근대 사상가 다카하시 요시오는 저서 << 일본인종개량론 >> 에서 


인종 개량을 목적으로 서양인과 잡혼하여 인종 자체를 개량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서양인은 신장, 체중, 두뇌 어느 면에서든지 일본인보다 뛰어나다고 전제한 후,  열등 인종이 우등 인종과 잡혼하면 열등 인종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서 국가와 개인을 위해 능력 유전을 목적으로 잡혼을 장려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인은 스스로 명예백인이라 자위하며 아시아인을 열등인종이라 여기는 것이다. 징징거리는 진중권을 볼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의 " 바나나적 욕망 " 이다. 그는 한국 대중의 정념을 싸잡아서 열등한, 너무나 열등한 서정으로 여기는 경향이 심하다. 


대표적인 예가 << 디워 >> 논쟁이다. 영화에 대한 진중권의 과잉 반응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국뽕은 비단 한국 대중의 천박한 정념의 특징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 전투기를 몰고 외계인과 싸워 이긴다(결국 지구는 미국 대통령이 구한다)는 롤랜드 에머리히 영화에 비하면 << 디워 >> 의 국뽕은 귀여운 수준이 아닐까 ? << 디워 >> 에 대한 대중의 즐거움을 진중권은 왜 그토록 싫어했던 것일까. 언젠가 진중권은 << 나도 국적을 포기하고 싶다 >> 라는 도발적 제목의 신문 칼럼(2013,경향일보)을 쓴 적이 있다. 이 칼럼에서 그는 유학 도중 비자 연장을 하기 위해 


독일 관공서를 간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  한국 여권을 든 자는 제3세계 인종들로 이루어진 기다란 줄의 틈바구니에 끼어 몇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지만 일본 여권을 가진 사람들은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쾌적한 장소에 설치된 한산한 창구 앞으로 갔다면서 일본은 서유럽 국가와 같은 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라며 부러워한다. 여기서 그가 부러워하는 것은 화이트 워싱 한 바나나맨에 대한 선망이다. 탈아입구론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입만 열었다 하면 그놈의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와 " 파타파직스 " 을 남발이다. 


한국 문화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 호모코레아니쿠스 >> 도 제목부터 탈아입구에 다다른 바나나적 욕망이 진하게 풍긴다. 여기서 그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인들은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정념을 정직하게 표출하는 편이다. 가령 어떤 상점에서 물건을 산 후 결함이 있어 주인에게 항의를 한다고 해보자. 처음에는 고객의 불평을 들어주다가 곧 말싸움이 시작되고, 이 설전이 길어지면 어느 시점엔가 주인은 자제심을 잃고 " 나, 더러워서 장사 안 해 " 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유학에서 막 돌아와 이 땅의 습속들이 낯설기만 하던 시절, 비슷한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일본에서라면 어떨까 ? 모르긴 몰라도 주인이 스미마셍 을 연발하며 끝까지 항의를 들어줄 것이다

-호모코레아니크스,102쪽

 


진중권이 두 나라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내린 결론은 " (정념이 풍부한 한국인은) 역사적 후진성의 징표 " 이다.  혼네(本音, 속내 혹은 본심)와 다테마에( 建前, 겉치레 혹은 가식)로 대표되는 일본의 가식이 한국의 정념보다 우월한 문화적 표상이라면 그가 화이트 워싱하고 싶은 서양인이야말로 한국인보다 더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표출하는 문화권이라는 점에서 구라파는 한국보다 더 역사적 후진성의 징표'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 내가 보기에 진중권은 바나나맨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문화 현상들은 모두 다 역사적 후진성의 징표로 읽힌다. 


최근 JTBC의 신년토론회에서 맹활약을 펼친 진중권의 태도를 보면서 느닷없이 내 뇌리에 호출된 인물은 핵주먹 타이슨이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결국에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던 그 유명한 희대의 경기가 떠올랐다. 맙소사, 성스러운 홀리의 귀를 물어뜯다니...... 안티조선운동에 앞장섰던 진중권이 느닷없이 레거시 미디어를 절대 신뢰한다고 말했을 때 그가 즐겨 사용하는 unheimlich(언캐니)을 체험했다. 대한민국 1등 신문인 조선일보야말로 레거시 미디어의 박혁거세 같은 상징이 아니었던가. 이 얼마나 우스꽝스운 어느 호모코레아니쿠스의 파타파직스적 세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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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1-05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읽지 않아 곰곰발님의 말씀으로 짐작해 봅니다만, 아마도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이 담긴 책이라 여겨집니다. 예전에는 건전한 비판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을 저자의 바뀐 모습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마치 90년대 김지하의 분신에 대한 비판이 「오적」을 비롯한 그의 작품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과 같은 현상처럼 느껴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5 17:39   좋아요 1 | URL
네, 바로 그겁니다. 진중권의 태도(현)로 다시 보니까 굉장히 탈아입구적 태도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더군요. 왜 그 사람 특유의 외래어 미학 용어의 남발만 봐도.. 스스로를 명예백인인 척하는... 것 같습니다.. 뭐, 그렇다는 얘기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