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치지 않은 우산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ㅡ 디디의 우산, 147










그녀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더군다나 연구소 연구원이었다. 똑똑한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도 똑똑한 편이어서 늘 중요한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연봉도 훌륭했고, 사원 복지도 훌륭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임원의 신뢰는 큰 자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에게 유리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목표가 생기자 욕심이 생겼다. 밝은 미래가 보였다. 밤낮없이 일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지난한 고생 끝에 연구 계발한 시제품을 임원 앞에 선보이는 날이어서 정신없이 바빴다. 


그때 이십대 젊은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밤샘 작업을 했던 동료 연구원이었다. 평소 싹싹한 성격으로 자신을 친언니처럼 잘 따르던 동료였다. 하지만 그녀는 워낙 바쁘다 보니 주저주저하는 동료 목소리를 뒤로 하고 짧은 통화만 하고 끊었다. 회의는 한없이 이어졌다. 회의에, 회의에, 회의가 이어지다 보니 날은 밝았다. 그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서'였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회사 동료가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사람이 당신이니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내 생각했다. 


회사 동료가 자신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말은 구원의 손길이었을까 ?  아니면 당부의 말이었을까 ?  내가 만약에 그 전화를 끊지 않았다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컴컴한 우울과 너무 하얗고 시끄러운 죄책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가슴은 뻥 뚫렸는데 항상 속이 답답했다.  출시된 상품은 빅히트를 쳐서 연초 승진 0순위로 뽑혔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현관 수납장에 넣어둔 3단 접이식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2년 전에 사두었던 예쁜 우산.  그녀는 그 우산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밤낮없이 집과 주차장과 회사를 오갔으니 비가 와도 우산이 필요 없었던 것이었다. 그 공간이 그녀가 2년 동안 오갔던 동선의 전부였던 것이었다. 늦은 겨울의 한낮, 겨우내 꽁꽁 얼었던 마당의 수도가 녹으면서 느닷없이 녹물을 쏟아내듯이 그녀는 2년 동안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우산을 보며 실컷 울었다. 마치 그 우산이 단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한 자신의 꿈 같았다. 모든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느 사표를 내고, 지금은 깊은 산속에 컨테이너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주중에는 지방 중소기업에 다니고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에는 숲속 오두막에서 산다. 


올해는 깨를 깨(?) 많이 심어서 챔~기름을 4병이나 얻었다. 비가 오면 자주 걷는다고 한다. 3단 접이식 우산을 펼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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