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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살아볼 용기 - 당연한 것들과의 결별
이종미 지음 / 들메나무 / 2019년 10월
평점 :
왜 반대말이 없는 것은 쓸쓸할까 ?
여교사라는 단어의 반대말은 없다. 남교사'라는 단어는 없으니깐 말이다. 여배우라는 단어의 반대말도 없다. 남배우라는 단어도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여교사, 여배우, 여의사, 여교수 따위의 낱말은 주로 성적 비하 판타지로 소비된다. 신조어인 개똥녀, 김치녀도 마찬가지다. 개똥남과 김치남이라는 단어'도 없으니 개똥녀와 김치녀의 반대말도 없다. 그렇다면 < 그녀 > 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 십중팔구는 " 그 " 라고 대답하겠지만 < 그녀 > 의 반대말은 < 그 > 가 아니다.
사전적 의미로 < 그 > 라는 낱말은 성별 구별 없이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이거나 앞에서 이미 이야기하였거나 듣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일 뿐이다. < 그 > 가 남녀를 아울러 통칭하는 낱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 그 > 옆에 애써 < -女 > 를 붙여 < 그 > 와 < 그녀 > 를 분리한 것은 빈곤한 철학의 반영인 셈이다. 분류할 필요가 없는 데에도 불구하고 애써 구별짓는 심보야말로 " (페루애적 관용어로 설명하자면) 밤꽃 향기 작렬하는 불알후드의 발광 다이어드적 3파장 극성 "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랄이 풍년이라는 소리. < 그녀 > 라는 단어는 광복 이전에는 없는 단어'였다. 문예지 현대문학에서는 이 단어를 두고 치열한 논쟁(현대문학 3월호, 1965년)이 일기도 했다. 일종의 현대어인 셈이다. 뜬금없는 질문 하나. < 그 > 의 낮춤말은 무엇일까 ? < 그놈 > 이다. 반대로 높임말은 < 그이 > 이다(보통은 어른 혹은 어르신으로 부른다). 그렇다면 < 그녀 > 의 낮춤말은 무엇일까 ? < 그년 > 이다. 반대로 그녀의 높임말은 ? 없다.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은 여사님이거나 사모님인데 이 두 단어는 상류층 진입에 성공한 여성을 지시할 뿐 보통의 여성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결국 수평적 관계로써 그녀라는 단어의 반대말은 없다. 친애하는 이웃인 허허 님이 << 혼자 살아볼 용기 >> 에서 " 왜 반대말이 없는 것은 쓸쓸할까 ? "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그 질문에 감탄했다, 좋은 대답보다 어려운 것은 좋은 질문이니까 ! 이 책의 저자인 허허 님은 이렇게 말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따뜻함의 반대말은 많은데 쓸쓸함의 반대말은 하나도 없었다. ' 음산, 고독, 황량, 적적, 삭막, 스산... ' 등등 외롭고 어둑한 '쓸쓸'함과 비슷한 말은 이렇게 많은데 그 반대말은 하나도 없다니! 쓸쓸함을 면할 길 없는 쓸쓸한 말이구나. 반대말이란 무엇인가 ? 왜 반대말이 없는 건 쓸쓸하게 느껴질까 ?
돌이켜보면 : 반대말이 없는 단어는 쓸쓸하다. < 홀몸 > 이나 < 고아 > 라는 단어가 반대말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다. 어쩌면 반대말이 없기 때문에 쓸쓸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독서를 통해서 명쾌한 답을 얻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보다 멍청한 태도는 없다. 진리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다 필요 없다. 당신이 책을 통해서 " 좋은 질문 " 하나를 건졌다면 그것만으로 훌륭한 결과'다. 명쾌한 답 100개보다 도움이 되는 것은 훌륭한 질문 1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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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의 < 즉문즉설 > 이나 혜민의 < 위로 > 따위의 솔루션 에세이가 질이 낮은 이유는 훌륭한 질문은 없고 명쾌한 대답만 남발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괴롭힌 고민이 겨우 승려의 20자 대답으로 요약될 수 있다면 그 고민은 고민이 아니고 20자평은 해결책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