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XTER Season 1 by Travis English

 

 

 

완벽한 범죄'를 꿈꾸는 당신을 위한 조언.

 

 

" 김연아 성이 金이 아니라 李 였다면 큰일 날 뻔했어. " " 왜요, 부장님 ? " " 이년아, 가 되잖아 ! " 으, 하하하하하. 제일 크게 웃는 놈은 나와 입사 동기다.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시니컬하던 녀석은 늘 부장의 시덥지 않은 농담에는 크게 웃는다. 출세는 상사의 농담에 크게 웃는 자의 것. 하지만 경멸은 나의 것. 입사 동기가 크게 웃을수록 내 얼굴은 굳어진다. 속 좁은 놈이라고 욕하지 마라. 그는 지금 내 아내와 바람을 피고 있으니깐 말이다. 어쩌면 저 녀석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침대 속에서 내 아내와 뒹굴면서 나를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을 테니깐...

 

 

 

 

아침에 눈을 뜬 당신은 넥타이'를 조이면서 혹은 화장을 하면서 결심한다. 추리소설에 나오는 완벽한 계획을 설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죽어버렸으면...... " 하던 처음의 넋두리는 점점 살이 보태지고 보태어져서 나중에는 " 죽여버리고 싶다.... " 로 바뀌게 된다. < 죽어... > 에서 < 죽여... > 로, " ㅓ " 가 " ㅕ " 로 바뀌는 순간, 어느덧 이 욕망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망 시간에 맞추어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증거를 없애야 한다. 거짓 증언을 위해서 믿을 수 있는 공모자를 포섭해야 할까 ? 아니다. 그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섹스와 배설 그리고 살인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누가 보면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이 꺼림직하다면 사체를 은폐하는 것도 좋으리라. < 은폐 > 만큼 훌륭한 방식은 없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 토막살인 ? 수장 ? 혹은 숲속 은폐 ?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될 사항이 있다. 은폐는 당신 혼자서 처리해야 된다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 지독한 노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노역 > 이라고 다소 먹물 투로 말했지만 < 묶어서한말 > 식으로 표현하자면 피 ! 똥 ! 싼 ! 다 !

 

▶ 공모는 늘 비극적으로 끝난다. 배신자'란 보다 나쁜 놈이 선택하는 것 아니라 보다 약한 놈이 선택하게 되는 룰이다. 스콧 스미스의 무시무시한 걸작 < 심플플랜 > 은 간단한 공모에서 시작해서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살인'이란 혼자서 해야 되는 고독한 일이란 사실을 일깨워준다.

▶ 묶어서한말 : 숙어, 관용어의 순우리말. ( 오소리입말사전 中 )

 

시체를 절단해 보라. 당신은 인간의 몸이 매우 단단한 유기체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건강한 성인 남자가 시체의 팔, 다리 그리고 몸통을 자르고 몸속 부속물을 봉투에 담아 정리하는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단, 완벽한 절단 도구가 있다는 가정에서 산출된 기본값이다. 초보자인 당신이라면 시체를 절단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생각했던 계획보다 시간이 초과된 사실에 당신은 절망한다. 기리노 나쓰오의 < 아웃 > 은 시체를 절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실감나게 전달해 줄 것이다.

 

▶ 기리노 나쓰오의 < 아웃 > 은 작업의 A에서 Z 까지의 전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 하나의 힘든 노동이다. 나쓰오 여사의 말에 의하면 손질하는 일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잘 맞는 일이란다. 

  

설령 당신의 남편을 " 작업 " 해서 땅 속에 묻었다 해도 누군가에 의해 발견될 경우,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사람은 아내'다. 형사의 의심을 냉정하다고 탓하지 마라.  수사학의 기본 자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자를 의심하라, 이니깐 말이다. 뜨거운 물이 식으면 맹물이 되지만, 사랑이 식으면 독이 된다. 형사들은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수도사업부'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실종된 날을 전후로 한 며칠 간의 수도사용량'을 점검할 것이 분명하다. 평상시와는 달리 남편이 사라진 날의 물 사용량이 몇 배나 많다면 ? 형사들은 더욱 집요하게 당신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수색 영장을 발부 받은 과학수사대는 집안 곳곳에 루미놀 혈액 반응 검사를 할 것이다.

 

▶ 토막 살인'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가장 탁월하게 소설을 구성한 작품은 시마다 소지의 < 점성술 살인 사건 > 이다. 이 작품은 심은하의 < 텔미썸씽 > 에 영감을 주었다.

 

이처럼 죽은 남편의 팔을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작업 하는 경우는 흔적을 남긴다. 그렇다고 100kg에 육박하는 죽은 남편을 커다란 트렁크에 싣고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씨씨티븨'는 당신의 창백한 얼굴과 함께 축축하게 적은 대형 트렁크'를 비출 것이다. 비싼 아파트일수록 씨씨티븨의 화질은 좋은 법, 파리 한 마리가 트렁크 주변을 맴돈다면 백 프로다.  당신은 끝이다. 당신은 나일론 80%가 섞인 땀 흡수가 안 되는 죄수복을 입어야 한다. 좆된 거다.

 

▶ 현대 사회'는 감시 사회이다. 씨씨티븨는 곧 미셸 푸코가 < 감시와 처벌 > 에서 말하는 " 판옵티콘  " 이며, 기 드보르가 지적한 " 스펙타클의 사회 " 다. 그리고 조지 오웰은 씨씨티븨를 < 빅브라더 > 라고 말한다. 이제 사생활이란 없다. 핸드폰, 신용 카드, 교통 카드 사용 내역은 당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한다. 범죄를 예방하는 용도의 씨씨티븨'는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노동자를 범죄에 노출시킨다. 강남을 중심으로 설치된 씨씨티븨는 범죄자를 내쫒는 대신 씨씨티븨'가 없는 할렘'으로 모이게 만든다. 그들은 씨씨티븨가 설치가 안 된 외각지역의 주민을 타킷으로 삼는다. 강호순 사건이 좋은 예이다.

 

어찌 되었든, 당신은 실행에 옮겨야 한다. 완벽한 트릭'을 만들어서 완벽한 알리바이'를 증명해야 한다. 알리바이만 완벽하다면 굳이 사체를 은폐하기 위해서 차 뒷 트렁크에 시체를 싣고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욕실 바닥에서 뼈마디를 쇠톱으로 자르는 수고는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 " 그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거야 ! "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당신은 자신의 살인 계획을 좀 더 디테일하게 설계한다. 디테일할수록 자신의 알리바이'는 완벽해진다.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 

 

 

" 김연아 성이 金이 아니라 李 였다면 큰일 날 뻔했어. " " 왜요, 부장님 ? " " 이년아, 가 되잖아 ! " 으, 하하하하하. 제일 크게 웃는 사람은 나와 입사 동기다.  그는 늘 긍정적이다. 반면 굳은 얼굴로 동기를 바라보는 사람은 내 남편이다.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시니컬하다. 우리 셋은 모두 입사 동기였다.  운명이란 짓궂은 것. 그때 내가 선택한 남자는 남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남편이 아닌 이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어쩌면 내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침대를 같이 쓰면서 우린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동상동몽일지도 !  먼저 칼을 뽑은 자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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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스포츠 특집과 한국 노동 사회.

 

 

 

 

 

- 한국 재벌은 괴물이 되었다. 모든 골목 상권을 무차별적으로 집어삼켰다.

 

 

 

 

무한도전의 시작은 정말 무()한 도전이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좌충우돌을 전면에 내세운 오락프로그램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이 프로는 띨빵과 띨띠리의 만담-였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요. 빨간 것은 사과예요 ! 사과는 맛있어요. 맛있으면 바나나예요 ! 바나나는 길어요. 길면...

 

                                              내 거시기네요 !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평균 이하 헐렁이들이 아니다. 유재석 사단은 방송 3사의 모든 오락 프로를 점령했으니, 이제 평균 이하 찌질이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평균 이상이다. 오락프로의 진일보한 진화란 이런 것일까 ? 그들이 변했다. ()한 도전은 이제 무()한 도전으로 업종 변경한 지 오래이다. 스포츠댄스 경연 대회에서 경연을 하고, 봅슬레이 국제 경기에서 선수로 경기를 펼치며, 프로레슬링 경기도 소화한다. 그리고 이제는 조정 경기에 도전장을 내민 모양이다. 말 그대로 무한한 도전이다. 고생 끝에 눈물이 맺힌다. 감동이란 이런 것입니다 ! 강열한 임팩트, 긴 여운 ! 긴 건...

    내 거시기'라니까요 !

 

그런데 요즘 무한도전 특별 기획 시리즈를 보면 지나치게 속도전'이다. 연습 기간이 짧다. 짧은 시간 안에 미션 파서블 해야 한다. 일 년에 걸쳐 배워야 할 것을 한 달 안에 마스터해야 한다. 일 년에 걸쳐서 배울 분량을 일 년에 걸쳐서 배우면 감동이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속도전이다. 이 기간 안에 마스터할 수 있습니까 ? 할... 수 있습니다 !!!

 

이 짧은 기간이라는 악조건을 이기기 위해서는 방법은 단 하나 ! 밤낮없이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스포츠댄스도 아니고 프로레슬링 운동도 아니고 조정 스포츠도 아닌 새벽 별 보기 운동이다. 미션 ()파서블한 과제를 미션 파서블로 바꾸는 기적, 무한도전의 포맷은 어느새 무()한 도전이 되었다. 무모에서 무한으로, 그리고 무한에서 다시 무리한 도전으로 진화한 것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 레슬링은 위험한 스포츠다. 실수는 곧 죽음이다. 이 문장'은 은유가 아니라 서로의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이 죽음의 무도'에 무한도전이 말 그대로 도전한다. < 특집 > 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 특집 편성은, 여름철 장마가 끝나면 웃자라는 잡초의 꽃대처럼, 시청률 20%를 훌쩍 넘었다.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대실패작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감동'은 천박한 것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 정형돈 뇌진탕 투혼 > 이라는 낯뜨거운 카피'로 도배되었지만 사실 이 프로레슬링 특집은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기도 했다. 그것은 투혼이라기보다는 잘못하면 사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단 잠재적 증후'에 가깝다.

 

문득, 이 오락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라는 감동적 스포츠 서사를 끌어들인 무한도전의 방식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의 욕망과 유사하다. 그것은 마치 일 년 치 일감을 던져주고는 한 달 안에 끝마쳐야 된다고 강요하는 봉제공장 사장의 얼굴을 닮았다. 일 년에 걸쳐서 연습해야 할 분량을 한 달이라는 기간 안에 마스터하라는 요구가 과연 합당한 것일까 ? 이건 폭력이다. 빨리빨리 속도전과 노동력 착취를 통해 얻게 된 임무 완수를 과연 감동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 생활의달인 > 도 마찬가지다. 빠른 것은 아름다운가 ? 왜 대한민국의 숙련 노동자만이 번개 같은 속도의 달인이 되었을까 ? 왜 그들은 속도전의 희생양이 되어야 할까 ? 나는 < 생활의 달인‘ > 에 나오는 기계보다 빠른 숙련 노동자를 볼 때마다 괴물이 연상된다. 그것은 노동에 대한 값진 가치가 아니라 혼자서 노동자 세 사람 몫을 해야지만 먹고 살 수 있는 어느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그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찬양해야 할 미덕도 아니다.

 

이 눈부신 속도는 충원되어야 할 노동력이 충원되지 않아서 부여된 늘어난 일의 양과 비례한다. 왜냐하면 모든 과제는 일정한 기간 안에 끝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늘어난 일감만큼 마감 기간은 연장되지 않는다. 밤낮없이,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낮밤없이 일해서 주문 날짜에 맞춰야 한다. 대한민국 가내수공업의 특징이다. 일감은 늘어났지만 마감은 일정하다. 결국 노동자 1인이 두 사람 몫을 해낼 수밖에 없다. 결론은 속도전이다. 컨베이어 속도를 높인다. 그 속도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어, 쩔 수 없다. 기계보다 빠른 손동작으로, 기계 톱니바퀴의 rpm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한다. 그것이 몸에 밴 것이다. 배달 쟁반을 아홉 개나 머리에 쌓아올리며 아슬아슬하게 걷는 아줌마의 힘겨운 노동을 미화시키면 안 된다. 장한 어머니라고 칭송하기 전에 배달 직원을 더 많이 고용하지 않은 식당 주인의 횡포를 생각해야 한다.

 

생활의 달인 : 감동인가 ?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몫을 한다고 해서 칭찬받아야 할까 ? 자본가가 보기에는 훌륭한 노동자이나 노동자가 보기에는 무모한 도전이다. 모 블로그 만담에서 엿들은 이야기 한 토막. 별다른 장비 없이 물질을 하는 늙은 해녀에게 스킨 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물질을 하면 열 사람 몫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한다. 물론 그 말에 늙은 해녀는 동의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 내가 열 사람 몫을 하면 나머지 해녀는 뭘 하나요 ? " 우리가 생활의 달인에서 보아야 할 것은 묘기대행진이 아니다. 노동은 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늘 이런 식이다. 무한도전의 이상한 진화'를 보면 마치 대한민국 건설 토목 공화국의 현대사를 보는 것 같다. 평균 이하의 나라였을 때 닥치는 대로 주어진 임무를 하던 우리는 어느새 국격의 20 회원국이 되었다. 자랑스러운 평균 이상의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노동의 강도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임무는 점점 미션임파서블이 되었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자본가의 세뇌와 착취는 아주 교묘하다. 우리는 늘 무리한 일감에 허덕이는 평균 이하 노동자들이다. 오늘도 우리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무도장에 간다. 지르박을 추고, 탱고와 차차차를 연습한다. 취미생활이 아닌 목표 달성을 위해서. 슬로우, 슬로우, , ! 프로그램은 보다 세련되고 재미있어지지만 우리의 평균 이하 노동자는 지친다. 그래도 방긋,  " 쉘...  위 땐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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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3-03-25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한도전 레슬링은 "일 년에 걸쳐 배워야 할 것을 일 년에 걸쳐 배운"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잘못 알고 계시는 사실을 근거로 지나치게 비난하시는 듯 ;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은 저 역시 천박하다고 생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5 21:10   좋아요 0 | URL
무한도전 팬입니다. 무한도전을 싫어한다가 아니라 기획 작품인 스포츠 도전 프로그램에 대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레슬링 편이 장기 프로젝트'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재석을 비롯한 모든 맴버들의 월화수목금토일 스케쥴이 빡빡 찬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재석의 경우는 단 하루도 연습을 위해 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한 달에 몇 번 나와서 그렇게 3,4시간 훈련해서 1년을 채운다고 해서 그것이 알찬 연습 과정이었겠습니까 ? 중요한 것은 기간이 아니라 연습한 시간의 총합이 아니겠습니까 ? 중요한 것은 기획 자체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 21세기 각하 > 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 20세기 각하 > 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각하가 2007년 12월 추운 겨울,  시장 바닥에서 빨간 핸드마이크를 잡고 " 믿숩니까 ? " 라고 외쳤을 때, 일단은 믿음을 유보하고 2007년 12월 이전의 생의 내역'을 뽑아서 분석하면 된다는 말이다. 내역이 곧 내력'이다. 각하는 스스로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며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한다고 외쳤지만, 21세기는 조용필 이외'에는 아무도 욕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입말의 첫 글이 길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는 아버지요, 아들은 현대'다. 아들은 아버지의 습속을 유전적으로 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뒷조사'라는 말을 쓰기가 민망해서 고고학'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후 16세기 프랑스 사회를 뒤진다. 조사하면... 다 나와 ! 미셸 푸코는 현대의 권력 구조를 폭로하기 위해 중세와 근대를 분석한다. < 감시와 처벌 > < 광기의 역사 > < 성의 역사 > 는 모두 그러한 것들의 결과였다. 그가 < 감시와 처벌 >에서 인용한 판옵티콘은 원형감옥으로 1인의 보이지 않는 감시자가 다수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레미 벤덤이 고안한 원형 감옥 그림을 첨부할까도 생각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해하기 쉬운 예가 있다. 지금의 국정원이 바로 판옵티콘'이다. 국가 권력 기관의 보이지 않는 눈이 민간인 사찰에 쓰이는 것이 바로 판옵티콘의 나쁜 예이다. 각하가 " 믿숩니까 ? " 라고 말할 때 우리는 믿으면 안됐다.  왜냐하면 옵하/오빠'가 " 옵하, 믿지 ? " 라고 말하는 순간 믿으면 안된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각하는 그런 존재다. 옵하'가 그런 존재니깐. < 감시와 처벌 > 은 푸코의 저서 중 가장 쉽다. 일독을 권한다.

 

 

 

 


 

 

 

판옵티콘의 새로운 변종 : 셀프카메라'가 당신을 노린다.

 

 

 

 

 

 

 

 

이 세상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 위에서 다 내다보고 계십니다 ! " 다. 심판이 안 볼 때 다람쥐처럼 날쌘 메시의 옆구리 쿡쿡 찌르고 싶지만 위에서 내려다보시니 그럴 수 없다. 뛰어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니 그럴 수 없다. 그분은 다 알고 계십니다. 이게 바로 종교의 기본적 성격이다. 이 세계관을 푸코'는 약간 다른 각도로 비튼다. 하느님의 내려다보심'과 부처님의 손바닥'을 하드코어 판타스틱 느와르 버젼으로 변형하면 < 판옵티콘 > 이 된다.  

 

 

판옵티콘이란 원형감옥 core에 위치한 높이 솟은 탑의 감시창에서 죄수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감시자는 죄수를 24시간 감시할 수 있으나 죄수는 감시자를 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눈'이다. 뜬구름 잡는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판옵티콘은 현대사회에서 널리 활용되는 시스템이다. 청와대 민간인 사찰도 보이지 않는 눈'이다. 권력을 남용해서 개인의 사생활을 열어볼 수 있다. 스토커 또한 판옵티콘의 변형이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어 ! 아... 지난 여름에 한 일을 모두 알고 있다면 그 무더운 밤 야동을 보며 혼자..... 손으로 자두와 키위'를 집어먹었다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 무쉬무쉬하다. 

 

 

그런데 이 판옵티콘이 이상한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타인의 눈이 자신을 감시하는 방식에서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감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 아마... 이 사실은 푸코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 어느 철학자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이 자리를 빌어 처음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첵도 아직 모르고 있을걸, 바디우도 아직 모르고 있을 거야. 허허허. 

 

 

21세기 카메라의 성능은 관음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단춧구멍으로 진화한 몰카는 당신의 침대를 엿본다. 흥분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그것을 불기둥이라고 소리친다는 사실도, 흥분하면 솔과 라 음으로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사실도, 아와 어 사이의 애, 매모호한 원시적 소리를 낸다는 사실도 카메라는 죄책감 없이 담담하게 기록한다는 사실도 ! 이놈이야말로 < 보이지 않는 눈 > 이요, 판옵티콘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몰카의 시대는 가고 셀카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반전이 생긴다. 사람들은 타자의 카메라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기록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자신의 카메라로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을 한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남기는 것이다. 찍힌 것은 불리하고 찍은 것은 안전하다는 생각은 당신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찍힌 사진이 초상권 침해라면 자신이 찍은 사진은 초상권을 판 것이 된다. 찍힌 것과 찍은 것은 동일하다. 패밀리레스토랑만 가만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는 버릇은 언젠가 당신의 유죄를 증명할 결정적 한방이 될 것이다. 검사는 당신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혹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린 모든 내역을 조사해서는 결정적 한방을 찾아낼 것이다. 검사가 프로젝터'를 설치할 때 당신은 이미 끝 !  ( 긴장하시라... )

 

" 재판장 님 ! 오춘자 씨가 5월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사진 한 장을 첨부합니다 !!! " 스스스스스슥... 프로젝터의 열이 오르고 나면 이내 스크린에 음식 사진 하나'가 뜬다. 재판 참관인들 우, 우우 하거나 오, 오오 한다. 그런데 예상 밖이다. 그냥 평범한 사진 한 장.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음식 나오면 후레쉬 터트리며 찍는 단순한 사진 한 장. 파스타 요리 사진이 전부다. 프레임 주변에는 포크를 순에 쥔 손가락들만 보인다.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이 당신의 감형 없는 25년 유죄를 증명할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 존경하는 재판장 님 ! 여기 사진 한 장을 첨부합니다. 오춘자 씨는 5월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아욱백에서 찍은 음식 사진 하나를 올립니다. 사진 왼쪽 프레임을 보시면 남자의 손이 보이죠 ? 얼굴은 안 보이지만 손가락은 보이실 겁니다.  새끼 손가락에 푸우 밴드 보이시나요 ? 바로 살해된 피해자의 손입니다. 그날 죽은 피해자 또한 새끼 손가락에는 푸우 곰돌이 밴드를 붙여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그날 피해자인 황만근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지요 ? 예 아니오 라고만 답하십시요. 다시 묻겠습니다. 그날 당신은 황만근 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진술했죠 ? 여기 오춘자 씨의 진술 녹취록을 첨부합니다. 이 사진을 보면 오춘자는 그날 피해자와 강남 아욱백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왜 만난 적이 없다고 진술하셨죠 ? " 

 

 

그렇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올린 한 장의 사진은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결국 당신은 당신의 유죄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것이다. 무쉬무쉬하지 않은가 ? 스스로 타자의 눈이 되어서 자신의 일상을 체록하는 것이다. 물론 당신은 동치미 무처럼 결백해서 죄 짓지 않고 살 위인이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당신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범죄란 당신이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니깐 말이다. 당신이 찍은 사진은 당신의 올가미가 될 수 있다 ! 

 

어쩌면 손톡톡소식상자* 에 부착된 렌즈'는 거대 판옵티콘 지도부의 계략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원형감옥의 감시창 대신 핸드폰의 렌즈로 모습을 바꾼 것이리라. 축소지향적 사회가 아니었던가. 아무도 믿지 마라. 당신이 찍은 것들은 언젠가 결정적 한방이 될 것이다. 각하도, 옵하도, 셀카도, 아무도......

 

 

 

 

 

* 손톡톡소식상자 : 휴대폰의 다듬글

- 오소리 입말 사전/ 소율 著

 

* 다듬글 : 순화어의 순우리말

- 오소리 입말 사전 / 소율 著

 

* 묶어서한몸 : 관용어의 순우리말

- 오소리 입말 사전 / 소율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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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3-03-2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코 성님이시여!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5 23:4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푸코 성님은 갑인가 봅니다. 21세기는 푸코와 들뢰즈의 세상인 것 같아요.
 

 

 

 

 

 

 

 

오소리 입말'사전.

 

 

 

< 오소리 입말 사전 > 이라는 국어 백과사전이 있다. 효형출판사에서 나온 대안 사전'인데 대부분은 처음 듣는 제목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전이니깐 말이다. 지은이'는 소율'이다. 이 사전은 기존의 단어'가 맺고 있는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예를 들면 < 지름길 > 의 반대말은 둘레길'이 아니라 < 애인과함께걷는길 > 이라는 다소 긴 호흡의 단어로 대체된다. 왜냐하면 지름길이란 가장 빠른 길인데 반해 애인과함께걷는길'은 가장 느린 길'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깨닫게 된다. 세찬 바람은 걸음을 멈추게 하고, 추위는 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지만 사랑은 걸음'을 느리게 만든다. 오소리 입말 사전'에 기재된 단어 중 몇'을 추린다. 이 사전의 특징은 단어의 상투적 결탁'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지름길 > 의 반대말이 < 애인과함께걷는길 > 이라면 < 애인과함께걷는길 > 의 반대말은 < 지름길 > 이 되어야 하지만, 오소리 입말 사전은 지름길 대신 < 애인을만나러가는길 > 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 애인을만나러가는길 >의 반대말은 < 애인과함께걷는길 > 일까 ? 그렇지 않다, < 집으로가는길 > 이다. 소율은 시간을 순차로 정의하지 않고 동등한 병렬로 놓는다. 그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관계의 상호텍스트성'을 거부함으로써 외연의 확장을 가져온다. 여러분의 어휘력 확장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반대말과 비슷한말

 

< 첫 > 의 반대말은 < 끝 > 이 아니라 < 헛 > 이다. 그러므로 첫사랑의 반대말은 끝사랑이 아니라 헛사랑이다. 같은 이유로 < 헛것 > 의 반대말은 < 처음 > 이다.

 

< 끝 > 의 비슷한말은 < 위로 > 이다. < 끝 > 은 관계의 절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망이기도 하다. 지긋지긋한 관계에서 끝이 보일 때 위로'를 받는다. 끝이 보인다는 것은 작은 희망이다. 

 

사랑

< 사랑 > 의 반대말은 < 사랑 > 이다. 불의 반대말이 물인 이유는 물은 불을 소멸(파괴)시키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사랑을 파괴시키는 것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는 당신의 사랑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반대말은 사랑이다.

 

시간

< 시간 > 의 비슷한말은 < 뱀 > 이다. 소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 뱀 > 이라는 단어가 < 시간 > 과 가장 유사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 뱀은 후진을 할 수 없는 동물이다. 오직 곡선 주행에 따른 직진만 할 뿐이다. 이러한 뱀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땅꾼들은 뱀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길게 설치해서 길을 가로막는데 이때 길목에 설치된 그물은 뱀을 포획하기 위한 수단이기보다는 단순히 길을 차단하는 역할만 한다. 그리하면 주행로가 막힌 뱀은 후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물을 따라 기어가다가 진짜 그물망에 갇히고 만다. 되돌아갈 수 없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시간과 뱀은 유사하다. 자전거라는 단어도 < 시간 >이 뿌리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방향성을 가진 모든 단어의 모어'는 시간'이다.

 

 

 

......

 

 

2. 뜻풀이

  

가 족

a. 아줌마 : 우리 엄마만큼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모든 예

b. 아저씨 : 우리 아빠만큼은 닮지 않았으면 ㅎ는 모든 예

c. 엄   마 : 내가 아닌 타인에게는 아줌마

d. 아   빠 : 내가 아닌 타인에게는 아저씨

 

어 깨

앞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뒤에서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관련어 > 아버지의 어깨 : 앞에서 보면 든든하지만, 뒤에서 보면 초라한 것.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 최승자 )

 

강자 앞에서는 숙이고 약자 앞에서는 뻣뻣한 기관

 

 

 

 

 

3. 다듬은말 ( 순화어 )

 

뜬금소식 ( 속보 )

 

손톡톡소식상자 ( 휴대폰 )

- 손톡톡가락 ( 수타면 )

- 손톡톡 ( 자판 )

 

오고가다걸린것 ( 통화 내역 )

- 오고가는말풍선 ( 대화 )

 

속닥속닥뻐꾸기 ( 손목시계 )

- 쑥덕쑥덕뻐꾸기 ( 벽걸이 시계 )

 

씨앗방지턱 ( 콘돔 )

 

숨어있기좋은방 ( 호텔, 모텔, 여관 )

 

박하유리 ( 안경 )

 

마음산책 ( 책 )

 

생각도둑 ( 독서 )

 

 

 

 

 

4. 묶어서한말 ( 관용어,숙어 )

 

 

■ 외로우니깐 솜사탕 : 힘든 일일수록 웃어라.

                             

                             ( 입말 활용의 예 ) " 외로이니깐 솜사탕이지. 힘내자 ! "

 

 

날마다 까진 무릎 : 힘든 일상.

 

                             ( 입말 활용의 예 ) " 오늘도 날마다 까진 무릎이었어... "

 

 

어쩌다 낳은 한숨 : 돌이킬 수 없는, 후회.

 

                             ( 입말 활용의 예 ) " 어쩌다 낳은 한숨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

 

 

넘어지지 않으려고 구르는 돌 :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는,꼿꼿한 태도 혹은 사람.

                      

                        ( 입말 활용의 예 ) " 김수영 시인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구르는 돌이었어. "

 

 

곰곰 생각하는 발 : 느리게 걷기.

 

                                          ( 입말 활용의 예 ) " 우린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린 것 같아. 이젠 곰곰 생각하는 발로 걷자. "

   

 

 

 

 

오소리 입말 사전 구입 희망은 덧글'로 받습니다. 정가 178,0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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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소리 입말 사전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13-05-20 12:55 
    * 오소리 입말 사전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57301 곰곰이생각하는발님의 ‘오소리 입말 사전’를 읽고 떠오른 생각 (그러니까 페이퍼에 대한 독후감) ; ‘갈릴레이 좌표계’ 몇 번을 읽고도 실제 오소리 입말 사전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효형출판사, 가격이 17,800원이라는 구체적 제시에 믿을 수밖에 없지만. * 개인적으로 플라톤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고, 분석적이고 환원적 사고가 주류입니다. 그런
 
 
2013-05-20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0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0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도대체 카이저 소재'가 누구야 ? "

 

 

 

 

 

 

 

 

 

 

 

 

 

 

 

 

 

 

 

 

 

 

 카메라 루시다/ 롤랑 바르트.

 

 

 

1-10. 나는 고전적인 정보로 되돌려진 사진들에 대해 때로는 감동적인, 일종의 일반적인 흥미를 느낄 수 있지만 그러나 그 감동은 도덕적, 정치적이 교양이라는 합리적인 중계를 거친다. 내가 이 사진들에 대해 느끼는 것은 거의 길들이기에 가까운 ‘평균 감정’ 상태에 속한다. 그것을 라틴어로 스투디움(studium)이라 하는데, 무엇에 대한 전념, 누군가에 대한 호의, 즉 일반적인 정신의 집중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열심이기는 하지만 특정한 격렬함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내가 많은 사진에 흥미를 갖는 것은, 그들을 정치적 증거로 받아들이건, 훌륭한 역사화로 받아들이건 간에 , 이 스투디움에 의해서이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태도, 얼굴모습, 몸짓, 배경 그리고 행위에 참여하는 것은 문화적이 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소로는 스투디움을 깨뜨리기 위해(혹은 박자를 맞추려고)온다. 이번에는 내가 이 요소를 찾지 않고(스투디움의 영역에 나의 절대덕인 의식을 부여하는 것처럼) 그것 스스로가 마치 화살처럼 사건의 현장을 떠나 나를 꿰뚫기 위해서 온다. 이 낙인들, 이 상처들은 점이다. 스투디움을 방해하러 오는 이 두 번째 요소가 푼크툼이다. 사진의 푼크툼은 그 자체가 나를 찌르는(또한 상처 입히고 나를 주먹으로 때리는) 이 ‘우연’이다.

 

-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열화당)

 

 

 

 


 

 

유주얼 서스펙트.

 

 

 

 

 

 

 

 

속물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좋다. 열화당에서 나온 (절판된) 이 얇은 사진 에세이'가 중고 시장에서 100,000원 안팎으로 거래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 야호 ! " 나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이런 맛에 책을 사서 읽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고 싶어서 똥 싸고 싶은 사람들이 이 하늘 아래 존재한다는 상상'을 하니 요실금 환자처럼 비실비실 웃음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책값 때문이 아니다. 며칠 전에 누가 내게 " 곰곰발 ! 도대체 푼크툼과 스투디움이 뭐야 ? 당최 모르겠어. 각자 뭐라 뭐라 하는데 제각기 다른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쉽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 속 시원하게 풀어내면 500원 줄께 ! " 곰곰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또한 푼크툼과 스투디움'의 차이에 대해 이해를 못한 터였다. 이 기회에 다시 문장을 복기시키며 정리를 하려고 했으나 마음에 드는 비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를 쉽게 풀어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짓이다. 그녀의 주문은 곧 잊혀졌다. 그깟, 500원 받으려고 고생할 필요가 없는 탓이다. 그래서 그냥 코 팠다, 잇힝 !

 

내가 이 푼크툼과 스투디움'을 다시 떠올린 것은 브라이언 싱어의 < 유주얼 서스펙트 > 를 볼 때였다.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푼크툼과 스투디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롤랑 바르트'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벌거벗은 채로 뛰어나와 바르트 씨에게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바르트 씨 ! " < 스투디움 > 은 사건 현장을 구경하는 구경꾼의 눈이고, < 푼크툼 > 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범인의 눈'이다. 스푸디움'은 일반적인 정보의 나열이다.① 시체는 농수로 안에 卍 자 형식으로 누워 있다. ② 파란 린넨 소재 셔츠와 보라색 주름 치마를 입었다. ③ 현장 근처에 가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말보로 레드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다. 경찰은 팩트 ①②③ 를 취합해서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찾으려고 한다. 현장 구경꾼들은 사건 현장에 나열된 정보만 얻을 뿐이다.

 

주름 치마가 걷어올려진 것으로 보아 강간 당했을 것이란 추측과 담배꽁초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판다난다. 그런데 그 구경꾼 틈에 끼여 있는 살인범'은 전혀 다른 것을 본다. 진흙 속에 박힌 포켓몬스터 스티커'다. 그가 사건 현장에 흘린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몬스터 시리즈 스티커를 모으는 어덜트 마니아'다. 그가 현장에 나온 이유는 명확하다. " 경찰들은 진흙 속에 박힌 스티커'를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할까 ? " 그러니깐 동일한 현장'을 보고 있는데 구경꾼의 포커스와 범인의 포커스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구경꾼은 정보의 총합으로 사건을 유추하지만 범인은 오로지 스티커에 쏠려 있다. 이것이 바로 스푸디움과 푼크툼의 차이이다. 스푸디움은 구경꾼이고, 푼크툼은 범인이다. 어린이용 티켓몬스터 스티커'는 구경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범인에게는 강렬한 것이 된다. 이 스티커'는 그를 찌른다. 범인에게 있어서 이 스티커는 강렬한 푼크툼으로 작동한다. 스티커는 오직 범인'만이 알고 있는 상징적 물건이다.  

 

영화 < 유주얼 서스펙트 > 에서 구경꾼인 관객은 절름발이 용의자로 나오는 캐빈 스페이시'의 진술에 의지해서 사건 현장을 바라본다. 구경꾼인 우리는 그의 증언을 토대로 1. 사울. 2 레드풋 3. 코바야시, 4 기타등등 중 한 명이 범인인 카이저 소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의 반전은 엉뚱한 데 있다. 주요 용의자는 모두 경찰서 심문실 안에서 급조된 가상의 이름이었다. 절름발이 용의자는 형사 뒤의 벽에 걸려 있는 지명수배자 명단에서 사울이라는 이름을 차용하고, 레드풋은 형사가 사용하는 메모지 속 이름이며, 코바야시는 머그컵 제조사 이름이었다. 관객은 스투디움의 시각으로 심문실 내부를 보고 있는 것이고, 가짜 절름발이는 구경꾼이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명수배 전단지, 메모지, 머그컵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구경꾼의 포커스와 절름발이 용의자의 포커스'는 전혀 다른 것이다. 여기서 관객인 당신은 스투디움의 시선이고, 절름발이는 푼크툼의 시선이다.

 

이처럼 푼크툼은 스투디움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그것은 포켓 몬스터 스티커'처럼 (혼자만 알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롤랑바르트'가 매우 평범한 사진에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한 이유는 사진 속에서 몬스터 스티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렬하다. 포우의 도둑 맞은 편지'에서 왕비가 파견한 밀사들이 본 장관의 책상은 스투디움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다. 반면 뒤팽'은 푼크툼의 시선으로 장관의 책상을 본다. 뒤팽이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 장관의 입장으로 빙의가 되었기 때문이다. 범인의 생각을 훔쳐서 범인의 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탐정의 시선이다. 장관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상 앞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릴 때 묘한 쾌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편지는 검은 진흙 속에 쳐박힌 몬스터 스티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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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주얼 서스펙트 vs 카메라 루시다 : 도대체 카이저 소재는 누구야?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13-05-16 07:45 
    * 유주얼 서스펙트 vs 카메라 루시다 : 도대체 카이저 소재는 누구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56843 곰곰이생각하는발님의 ‘유주얼 서스펙트 vs 카메라 루시다 : 도대체 카이저 소재는 누구야?’를 읽고 떠오른 생각 (그러니까 독후감에 대한 독후감) ; ‘앗, P & NP’ * ‘스투디움’은 사건 현장을 구경하는 구경꾼의 눈이고 ‘푼크툼’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범인의 눈'이다. 주름 치마가 걷어
 
 
다크아이즈 2013-03-24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보! 곰발님^^*

근데 카메라 루시다의 조광희,
밝은방의 김웅권,
어떤 게 나은 번역일까요? (밝은방은 좀ㅠ)

저야 당근 밝은방,을 가지고 있으니 님이 부럽긴 하네요.
밝은 방은 구하기 쉬우니 비교 좀 해주심? 흐흐~~

밝은방의 푼크툼적 찌름이 덜 해서가 아니라,
카메라 루시다의 스투디움적 보편성에 편승하다 보니
독자들은 먼저 나온 카메라 루시다에 열광하는 게 아닐까요?

정말이지 조광희의 번역이 훨씬 낫다면 십만 원이라도 주고 구하고 싶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4 07:02   좋아요 0 | URL
밝은방'은 동문선에서 나왔잖아요. 발번역의 영원한 금자탑이 동문선이 아닐까 싶어요. ㅎㅎㅎ.
이상한 것은 판권은 열화당이 가지고 있을 것 아닙니까.
찾는 사람이 많다면 재판을 찍을 터인데... 열화당 망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