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범죄'를 꿈꾸는 당신을 위한 조언.
" 김연아 성이 金이 아니라 李 였다면 큰일 날 뻔했어. " " 왜요, 부장님 ? " " 이년아, 가 되잖아 ! " 으, 하하하하하. 제일 크게 웃는 놈은 나와 입사 동기다.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시니컬하던 녀석은 늘 부장의 시덥지 않은 농담에는 크게 웃는다. 출세는 상사의 농담에 크게 웃는 자의 것. 하지만 경멸은 나의 것. 입사 동기가 크게 웃을수록 내 얼굴은 굳어진다. 속 좁은 놈이라고 욕하지 마라. 그는 지금 내 아내와 바람을 피고 있으니깐 말이다. 어쩌면 저 녀석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침대 속에서 내 아내와 뒹굴면서 나를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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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뜬 당신은 넥타이'를 조이면서 혹은 화장을 하면서 결심한다. 추리소설에 나오는 완벽한 계획을 설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죽어버렸으면...... " 하던 처음의 넋두리는 점점 살이 보태지고 보태어져서 나중에는 " 죽여버리고 싶다.... " 로 바뀌게 된다. < 죽어... > 에서 < 죽여... > 로, " ㅓ " 가 " ㅕ " 로 바뀌는 순간, 어느덧 이 욕망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망 시간에 맞추어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증거를 없애야 한다. 거짓 증언을 위해서 믿을 수 있는 공모자를 포섭해야 할까 ? 아니다. 그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섹스와 배설 그리고 살인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누가 보면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이 꺼림직하다면 사체를 은폐하는 것도 좋으리라. < 은폐 > 만큼 훌륭한 방식은 없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 토막살인 ? 수장 ? 혹은 숲속 은폐 ?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될 사항이 있다. 은폐는 당신 혼자서 처리해야 된다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 지독한 노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노역 > 이라고 다소 먹물 투로 말했지만 < 묶어서한말 > 식으로 표현하자면 피 ! 똥 ! 싼 ! 다 !
▶ 공모는 늘 비극적으로 끝난다. 배신자'란 보다 나쁜 놈이 선택하는 것 아니라 보다 약한 놈이 선택하게 되는 룰이다. 스콧 스미스의 무시무시한 걸작 < 심플플랜 > 은 간단한 공모에서 시작해서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살인'이란 혼자서 해야 되는 고독한 일이란 사실을 일깨워준다.
▶ 묶어서한말 : 숙어, 관용어의 순우리말. ( 오소리입말사전 中 )
시체를 절단해 보라. 당신은 인간의 몸이 매우 단단한 유기체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건강한 성인 남자가 시체의 팔, 다리 그리고 몸통을 자르고 몸속 부속물을 봉투에 담아 정리하는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단, 완벽한 절단 도구가 있다는 가정에서 산출된 기본값이다. 초보자인 당신이라면 시체를 절단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생각했던 계획보다 시간이 초과된 사실에 당신은 절망한다. 기리노 나쓰오의 < 아웃 > 은 시체를 절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실감나게 전달해 줄 것이다.
▶ 기리노 나쓰오의 < 아웃 > 은 작업의 A에서 Z 까지의 전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 하나의 힘든 노동이다. 나쓰오 여사의 말에 의하면 손질하는 일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잘 맞는 일이란다.
설령 당신의 남편을 " 작업 " 해서 땅 속에 묻었다 해도 누군가에 의해 발견될 경우,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사람은 아내'다. 형사의 의심을 냉정하다고 탓하지 마라. 수사학의 기본 자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자를 의심하라, 이니깐 말이다. 뜨거운 물이 식으면 맹물이 되지만, 사랑이 식으면 독이 된다. 형사들은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수도사업부'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실종된 날을 전후로 한 며칠 간의 수도사용량'을 점검할 것이 분명하다. 평상시와는 달리 남편이 사라진 날의 물 사용량이 몇 배나 많다면 ? 형사들은 더욱 집요하게 당신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수색 영장을 발부 받은 과학수사대는 집안 곳곳에 루미놀 혈액 반응 검사를 할 것이다.
▶ 토막 살인'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가장 탁월하게 소설을 구성한 작품은 시마다 소지의 < 점성술 살인 사건 > 이다. 이 작품은 심은하의 < 텔미썸씽 > 에 영감을 주었다.
이처럼 죽은 남편의 팔을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작업 하는 경우는 흔적을 남긴다. 그렇다고 100kg에 육박하는 죽은 남편을 커다란 트렁크에 싣고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씨씨티븨'는 당신의 창백한 얼굴과 함께 축축하게 적은 대형 트렁크'를 비출 것이다. 비싼 아파트일수록 씨씨티븨의 화질은 좋은 법, 파리 한 마리가 트렁크 주변을 맴돈다면 백 프로다. 당신은 끝이다. 당신은 나일론 80%가 섞인 땀 흡수가 안 되는 죄수복을 입어야 한다. 좆된 거다.
▶ 현대 사회'는 감시 사회이다. 씨씨티븨는 곧 미셸 푸코가 < 감시와 처벌 > 에서 말하는 " 판옵티콘 " 이며, 기 드보르가 지적한 " 스펙타클의 사회 " 다. 그리고 조지 오웰은 씨씨티븨를 < 빅브라더 > 라고 말한다. 이제 사생활이란 없다. 핸드폰, 신용 카드, 교통 카드 사용 내역은 당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한다. 범죄를 예방하는 용도의 씨씨티븨'는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노동자를 범죄에 노출시킨다. 강남을 중심으로 설치된 씨씨티븨는 범죄자를 내쫒는 대신 씨씨티븨'가 없는 할렘'으로 모이게 만든다. 그들은 씨씨티븨가 설치가 안 된 외각지역의 주민을 타킷으로 삼는다. 강호순 사건이 좋은 예이다.
어찌 되었든, 당신은 실행에 옮겨야 한다. 완벽한 트릭'을 만들어서 완벽한 알리바이'를 증명해야 한다. 알리바이만 완벽하다면 굳이 사체를 은폐하기 위해서 차 뒷 트렁크에 시체를 싣고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욕실 바닥에서 뼈마디를 쇠톱으로 자르는 수고는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 " 그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거야 ! "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당신은 자신의 살인 계획을 좀 더 디테일하게 설계한다. 디테일할수록 자신의 알리바이'는 완벽해진다.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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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 성이 金이 아니라 李 였다면 큰일 날 뻔했어. " " 왜요, 부장님 ? " " 이년아, 가 되잖아 ! " 으, 하하하하하. 제일 크게 웃는 사람은 나와 입사 동기다. 그는 늘 긍정적이다. 반면 굳은 얼굴로 동기를 바라보는 사람은 내 남편이다.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시니컬하다. 우리 셋은 모두 입사 동기였다. 운명이란 짓궂은 것. 그때 내가 선택한 남자는 남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남편이 아닌 이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어쩌면 내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침대를 같이 쓰면서 우린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동상동몽일지도 ! 먼저 칼을 뽑은 자가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