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카이저 소재'가 누구야 ? "

 

 

 

 

 

 

 

 

 

 

 

 

 

 

 

 

 

 

 

 

 

 

 카메라 루시다/ 롤랑 바르트.

 

 

 

1-10. 나는 고전적인 정보로 되돌려진 사진들에 대해 때로는 감동적인, 일종의 일반적인 흥미를 느낄 수 있지만 그러나 그 감동은 도덕적, 정치적이 교양이라는 합리적인 중계를 거친다. 내가 이 사진들에 대해 느끼는 것은 거의 길들이기에 가까운 ‘평균 감정’ 상태에 속한다. 그것을 라틴어로 스투디움(studium)이라 하는데, 무엇에 대한 전념, 누군가에 대한 호의, 즉 일반적인 정신의 집중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열심이기는 하지만 특정한 격렬함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내가 많은 사진에 흥미를 갖는 것은, 그들을 정치적 증거로 받아들이건, 훌륭한 역사화로 받아들이건 간에 , 이 스투디움에 의해서이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태도, 얼굴모습, 몸짓, 배경 그리고 행위에 참여하는 것은 문화적이 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소로는 스투디움을 깨뜨리기 위해(혹은 박자를 맞추려고)온다. 이번에는 내가 이 요소를 찾지 않고(스투디움의 영역에 나의 절대덕인 의식을 부여하는 것처럼) 그것 스스로가 마치 화살처럼 사건의 현장을 떠나 나를 꿰뚫기 위해서 온다. 이 낙인들, 이 상처들은 점이다. 스투디움을 방해하러 오는 이 두 번째 요소가 푼크툼이다. 사진의 푼크툼은 그 자체가 나를 찌르는(또한 상처 입히고 나를 주먹으로 때리는) 이 ‘우연’이다.

 

-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열화당)

 

 

 

 


 

 

유주얼 서스펙트.

 

 

 

 

 

 

 

 

속물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좋다. 열화당에서 나온 (절판된) 이 얇은 사진 에세이'가 중고 시장에서 100,000원 안팎으로 거래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 야호 ! " 나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이런 맛에 책을 사서 읽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고 싶어서 똥 싸고 싶은 사람들이 이 하늘 아래 존재한다는 상상'을 하니 요실금 환자처럼 비실비실 웃음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책값 때문이 아니다. 며칠 전에 누가 내게 " 곰곰발 ! 도대체 푼크툼과 스투디움이 뭐야 ? 당최 모르겠어. 각자 뭐라 뭐라 하는데 제각기 다른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쉽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 속 시원하게 풀어내면 500원 줄께 ! " 곰곰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또한 푼크툼과 스투디움'의 차이에 대해 이해를 못한 터였다. 이 기회에 다시 문장을 복기시키며 정리를 하려고 했으나 마음에 드는 비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를 쉽게 풀어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짓이다. 그녀의 주문은 곧 잊혀졌다. 그깟, 500원 받으려고 고생할 필요가 없는 탓이다. 그래서 그냥 코 팠다, 잇힝 !

 

내가 이 푼크툼과 스투디움'을 다시 떠올린 것은 브라이언 싱어의 < 유주얼 서스펙트 > 를 볼 때였다.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푼크툼과 스투디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롤랑 바르트'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벌거벗은 채로 뛰어나와 바르트 씨에게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바르트 씨 ! " < 스투디움 > 은 사건 현장을 구경하는 구경꾼의 눈이고, < 푼크툼 > 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범인의 눈'이다. 스푸디움'은 일반적인 정보의 나열이다.① 시체는 농수로 안에 卍 자 형식으로 누워 있다. ② 파란 린넨 소재 셔츠와 보라색 주름 치마를 입었다. ③ 현장 근처에 가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말보로 레드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다. 경찰은 팩트 ①②③ 를 취합해서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찾으려고 한다. 현장 구경꾼들은 사건 현장에 나열된 정보만 얻을 뿐이다.

 

주름 치마가 걷어올려진 것으로 보아 강간 당했을 것이란 추측과 담배꽁초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판다난다. 그런데 그 구경꾼 틈에 끼여 있는 살인범'은 전혀 다른 것을 본다. 진흙 속에 박힌 포켓몬스터 스티커'다. 그가 사건 현장에 흘린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몬스터 시리즈 스티커를 모으는 어덜트 마니아'다. 그가 현장에 나온 이유는 명확하다. " 경찰들은 진흙 속에 박힌 스티커'를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할까 ? " 그러니깐 동일한 현장'을 보고 있는데 구경꾼의 포커스와 범인의 포커스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구경꾼은 정보의 총합으로 사건을 유추하지만 범인은 오로지 스티커에 쏠려 있다. 이것이 바로 스푸디움과 푼크툼의 차이이다. 스푸디움은 구경꾼이고, 푼크툼은 범인이다. 어린이용 티켓몬스터 스티커'는 구경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범인에게는 강렬한 것이 된다. 이 스티커'는 그를 찌른다. 범인에게 있어서 이 스티커는 강렬한 푼크툼으로 작동한다. 스티커는 오직 범인'만이 알고 있는 상징적 물건이다.  

 

영화 < 유주얼 서스펙트 > 에서 구경꾼인 관객은 절름발이 용의자로 나오는 캐빈 스페이시'의 진술에 의지해서 사건 현장을 바라본다. 구경꾼인 우리는 그의 증언을 토대로 1. 사울. 2 레드풋 3. 코바야시, 4 기타등등 중 한 명이 범인인 카이저 소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의 반전은 엉뚱한 데 있다. 주요 용의자는 모두 경찰서 심문실 안에서 급조된 가상의 이름이었다. 절름발이 용의자는 형사 뒤의 벽에 걸려 있는 지명수배자 명단에서 사울이라는 이름을 차용하고, 레드풋은 형사가 사용하는 메모지 속 이름이며, 코바야시는 머그컵 제조사 이름이었다. 관객은 스투디움의 시각으로 심문실 내부를 보고 있는 것이고, 가짜 절름발이는 구경꾼이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명수배 전단지, 메모지, 머그컵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구경꾼의 포커스와 절름발이 용의자의 포커스'는 전혀 다른 것이다. 여기서 관객인 당신은 스투디움의 시선이고, 절름발이는 푼크툼의 시선이다.

 

이처럼 푼크툼은 스투디움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그것은 포켓 몬스터 스티커'처럼 (혼자만 알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롤랑바르트'가 매우 평범한 사진에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한 이유는 사진 속에서 몬스터 스티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렬하다. 포우의 도둑 맞은 편지'에서 왕비가 파견한 밀사들이 본 장관의 책상은 스투디움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다. 반면 뒤팽'은 푼크툼의 시선으로 장관의 책상을 본다. 뒤팽이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 장관의 입장으로 빙의가 되었기 때문이다. 범인의 생각을 훔쳐서 범인의 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탐정의 시선이다. 장관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상 앞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릴 때 묘한 쾌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편지는 검은 진흙 속에 쳐박힌 몬스터 스티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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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주얼 서스펙트 vs 카메라 루시다 : 도대체 카이저 소재는 누구야?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13-05-16 07:45 
    * 유주얼 서스펙트 vs 카메라 루시다 : 도대체 카이저 소재는 누구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56843 곰곰이생각하는발님의 ‘유주얼 서스펙트 vs 카메라 루시다 : 도대체 카이저 소재는 누구야?’를 읽고 떠오른 생각 (그러니까 독후감에 대한 독후감) ; ‘앗, P & NP’ * ‘스투디움’은 사건 현장을 구경하는 구경꾼의 눈이고 ‘푼크툼’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범인의 눈'이다. 주름 치마가 걷어
 
 
다크아이즈 2013-03-24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보! 곰발님^^*

근데 카메라 루시다의 조광희,
밝은방의 김웅권,
어떤 게 나은 번역일까요? (밝은방은 좀ㅠ)

저야 당근 밝은방,을 가지고 있으니 님이 부럽긴 하네요.
밝은 방은 구하기 쉬우니 비교 좀 해주심? 흐흐~~

밝은방의 푼크툼적 찌름이 덜 해서가 아니라,
카메라 루시다의 스투디움적 보편성에 편승하다 보니
독자들은 먼저 나온 카메라 루시다에 열광하는 게 아닐까요?

정말이지 조광희의 번역이 훨씬 낫다면 십만 원이라도 주고 구하고 싶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4 07:02   좋아요 0 | URL
밝은방'은 동문선에서 나왔잖아요. 발번역의 영원한 금자탑이 동문선이 아닐까 싶어요. ㅎㅎㅎ.
이상한 것은 판권은 열화당이 가지고 있을 것 아닙니까.
찾는 사람이 많다면 재판을 찍을 터인데... 열화당 망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