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no.6

 

 

 

 

 

 

 

문화촌 공원 그림자 사교 클럽.

 

 

 

 

 

바닥에서 뒹군 모양이었다. 헛구역질이 나서 눈을 뜨니 공원이었다. 내 인생이 그렇지, . 나는 벚꽃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여 ! 나를 부랑자라고 판단하지 마시길.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은 것뿐이니깐 말이다.  가만히 누워서 눈을 뜬 채 보니 내 옆에는 벚꽃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가끔 바닥에 눕는데 너는 항상 바닥에 눕는구나 !그 생각을 하니 그림자가 안쓰러웠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보니 그림자가 2차원 평면이 아닌 3차원 입체감으로 보였다. 어라 ?! 그림자에 높이가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술에 너무 취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다. 머리가 빙글빙글 도니 풍경도 빙글빙글 돌았다. 오래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 생각이 났다. 그림자를 껴안아 보았다. 그림자였지만 왠지 포근했다. 나는 외로웠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귀신인 모양이었다. 귀신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외롭지는 않을 터였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은 후였다. 머리가 지끈 아팠다.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그림자. 그래, 그림자 !해가 뜨자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며칠 후 다시 그곳을 찾았다. 벚꽃나무 그림자는 그곳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림자를 자세히 보니 진짜 그림자가 아니었다. 내 예감이 맞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으로 세팅을 하고, 얼굴과 손도 검은 색으로 분칠한 여자였다. 그것은 일종의 위장이었다. 그림자로 위장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맙소사, 세상에 이런 일이 ! 만날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직장 생활이 힘든 모양이었다. 나는 가자미처럼 바닥에 납작하게 누운 그림자를 깨웠다. 그림자가 일어났다. 검게 칠한 얼굴의 윤곽은 희미했으나 여자임에는 분명했다. 내가 말했다.

 

직장 생활이 힘든가 봐요 ?“

네에, 전 아이들을 가르쳐요. 교사에요 !“

그렇군요. 그런데 왜 집도 없이 공원에서 노숙 생활을 하시죠 ?“

재작년에 안양천변이 장마 때 물에 잠겨서 떠내려갔어요.

그래서 이렇게 그림자 생활을 한답니다. “

... 집이 떠내려갔다는 말씀이죠 ?“

아뇨. 안양천변이 떠내려갔어요 !“

어떻게 하천이 떠내려갑니까 ?“

그야 저도 모르죠. 하여튼 하천이 떠내려갔으니 집도 같이 떠내려갔겠죠.“

그러니깐 집이 떠내려갔다는 말씀이잖아요. “

아니죠. 하전이 떠내려갔다니까요. 호호호. “

하하하. “

호호호. “

그림자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은가요 ?“

저기, 그네 옆에 있는 갈참나무 그림자 보이시죠 ? 저 분은 기러기 아빠에요. 대기업에 다니지만 애들 유학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죠. 등골이 휘어서 집도 팔아버리고 저렇게 그림자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

 

그네 옆에서 그림자 흉내를 내며 납작 엎드려 있던 남자가 우리의 대화 소리를 들었는지 벌떡 일어나 겸연쩍은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깜짝 놀랐다. 그림자가 부스스 움직이며 일어났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나 ! 나는 그 동안 그림자인 척하는 사람들에게 깜빡 속은 것이다. 여자는 계속 말했다. “ 저기 가로수 그늘 흉내를 내는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 바로...... 가수 이문세에요. 회사 하나 차렸는데 망했다고 하더군요. , 이건 절대 비밀이에요. 연애인이잖아요. 자존심이 무척 세요.  여자의 손짓을 따라가니 가로수 그림자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격하게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 저도 이 공원에서 그림자로 살 수 있나요 ?“ 여자는 내 말을 듣고는 나를 또렷이 바라보았다.

 

이때 쓰레기통 그림자를 흉내 내던 남자가 기지개를 켜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 아따, 시부럴. 알콩달콩별사탕 놀이 하오 ? 아직도...... 모르것소 ? , 여긴 아무나 들어온다요 ? 그림자에게도 자격이란 거시 있는 거시지라. 생각 안 나요 ? 아저씬 작년 저 아카시아 나무에 목을 매 자살을 했단 말이오. 경찰차 와불고, 119 와불고, 그날따라 바람도 불고, 난리도 아니었지라. 으메, 으찌나무섭던지 ! 여태 자신이 죽은 귀신이란 것도 모르셨소, ? 형씨, 저길 보시오 !“ 나는 쓰레기통 그림자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아카시아 나무엔 그림자가 없었다.

 

우리에게도 불문율이란 것이 있지라. 사령의 혼이 깃든 나무엔 그림자 집을 안 짓는다요. 으메, 저곳이 명당이었지, 명당 ! 형씨가 목 매 죽기 전에 내가 살던 곳 아니오. 참말로 징허요. 형씨 땀시 내가 이로코롬쫓겨나서 쓰레기통 연기나 하는 거 아니것소. 내가 왕년에 명품 사극 전문 배우 아니었소. 엑스트라 세계에서 나 모르면 간첩이지라. “ 쓰레기통 그림자의 말에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벚꽃이 그만하라고 쓰레기통에게 손짓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 귀신 주제에 뭔노무 스카프로 멋을 낸다요. 멋 내면 뭐 허요, 치맹적 매력의 소유자면 뭐 허요. 투명인간 같은 우리들 눈에나 보이지, 일반 사람 눈에는 보이기나 허것소 ? 당신 같은 귀신이나 우리 같은 그림자는 이 사회의 투명인간이오. 잉여인간일 말이오 ! 내가 당신같은 귀신이면 불알 두 쪽 당당히 내불고 돌아다녀 !“

 

쓰레기통 그림자가 툴툴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네모난 금속 쓰레기통이 놓인 자리에 가더니 몸을 둥글게 말아 그림자가 되었다. 다른 그림자에 비해 힘들어보였다. 하루 종일 몸을 말아 그림자가 되어야 하다니. 그가 내게 보인 적개심이 이해가 갔다. 아카시아 나무 그림자로 살았으면 지금보다는 편한 삶이었으리라. 아카시아 나무를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그날이 생각날 것도 같았다. 바람 불면 흔들렸을 내 몸을 생각하니 울음이 쏟아졌다. 여자가 나를 위로했다. “그래요. 당신은 오래 전에 죽었답니다.  하지만 슬퍼 마세요. , 내 몸 안으로 들어오세요. “ 여자가 내 옷을 벗겼다. 나는 금새 알몸이 되었다. 이때 몇몇 사람이 공원을 지나갔으나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다만 걸음이 빨라진 것 같았다. 그렇구나, 유령이구나. 나는... 보이지 않는 유령이구나.

 

나는 여자의 검은 구멍 속으로 숨었다. 촉촉하고, 따스하며, 부드러웠다. 젖가슴 또한 생각보다 컸다. 젖가슴만 큰 것이 아니었다. 여자는 전체적으로 몸이 컸다. 나는 바닥에 누웠고 여자가 나를 덮었다. 벚꽃 그림자가 뚱뚱해졌다. 쓰레기통 그림자가 우리의 정사를 훔쳐보더니 한 마디 했다. “으메, 씨브럴 !치맹적 매력의 소유자는 죽어서도 인기가  하늘을찌른당가. 좋아서 좋것네. 좋아서 좋것어.음메좋것어. 시브럴, 오지게 허네. “ 쓰레기통 그림자는 또 다시 툴툴거렸다. 하지만 나는 너그러웠다. 이미 죽은 귀신이었으므로 !살아 있는 사람에게 못된 귀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공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벚꽃나무 그림자가 뚱뚱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 누가 그림자에게 관심을 보일까, 어느 누가 밑바닥을 이해할까. 그때였다. 엄마와 함께 지나가던 사내아이가 벚꽃나무 그림자를 보더니 말했다. “ 엄마, 저 나무 그림자가 다른 날보다 뚱뚱해졌어! 저 나무도 엄마 아빠처럼 밤에 레슬링 했나봐 ?엄마는 밤에 옷 홀딱 벗고 아빠랑 레슬링 하면 뚱뚱해지잖아. 아기 나왔잖아. 저 나무도 레슬링 했나 ?“ 엄마는 아들의 따귀를 때리며 황급히 그 자리를 피했다.

 

*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벚꽃나무 그림자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장을 지우고 화장을 하니 여자는 제법 예뻤다. 내가 옷을 입으려고 하자 쓰레기통이 소리쳤다. “ 아따, 시부럴 ! 유령이 뭔 놈의 패션이오. 훌라당 벗고 사시오 !“ 그 말에 여자도 동조했다. “ 그래요, 당신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벌거벗는 자유는 죽은 자의 특권이에요. 저도 유령이 되면 이 놈의 브래지어벗고 다니고 싶어요. 얼마나 불편한지 아세요 ? 더 자요. 아무도 당신의 달콤한 잠을 깨울 사람은 없으니깐. “ 여자가 내 입에 키스를 했다. 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눈을 뜨니, 나를 깨운 사람은 경찰이었다. 경찰 옆엔 중년의 여자가 있었다. 내가 발딱 일어서자 여자는 연신 어, 어머 어머머머머 라며 고개를 외면했다. 내가 보이나 ?! 그럴 리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유령이므로 !투명인간이므로 ! 경찰이 나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 주민 신고를 받고 나왔습니다. 다 큰 어른이 이게 뭡니까 ? 어서 옷을 입으세요 ! 당신을 공공장소 음란죄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

 

을 정도의 중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오.  어서 옷이나 입으시구려. “   경찰 옆에 있던 여자는 외면하는 척하면서 계속 나의 남근을 쳐다보았다. 소나무 훈제로 노릇노릇 구운 독일 소시지가 생각나리라. 크고, 쫀득쫀득하며, 알싸한 그런 맛. 먹고 싶겠지. , 쳐다보라지 ! 난 유령이라고. 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난 유령이야. 내가 보이기는 하나 ?“  내 말에 경찰이 짜증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이 양반이 제정신이 아니구만 !  당신이 유령이면 난 브르스윌리스요!!!! “  이때 화장실 옆에 놓인 쓰레기통 그림자가 마구 흔들렸다. 쓰레기통은 웃음을 참느라 엎드린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아차차. 그림자들이 날 골탕 먹였구나. 쓰레기 같은 자식과 벚꽃(벗고) 나를 품은 여자의 합작품이구나.  이문세도 웃음을 참느라 미세하게 그림자가 떨렸다.얼굴이 화끈거렸다.

 

두 손으로 그곳을 가렸지만 어디 포크로 소시지를 가릴 수가 있던가 ? 부끄러워서 동동거렸다. 속았구나 ! 내가 동동거릴수록 쓰레기통은 거의 웃음을 통제할 수 없게 된 모양이었다. 울음 섞인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웃음도 지나치면 고통이 된다. 안다, 다 안다. 나도 웃음이 나왔다. 난 유령이 아니었다. 멋지게 속았다 ! 나는 경범죄로 벌금 10만 원을 내고 풀려났다. 그날 밤 벚꽃나무 그림자는 내 사연을 듣고는 깔깔거리며 박장대소 했다. 멀리서 쓰레기통이 웃는 소리도 들렸다.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가 깊게 벤 웃음소리였다. 징허게 웃었다. 그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갈참나무도 웃었다. 가로수도 웃었고, 벤치도 웃었다. 문화촌 공원 간판 입석도 웃었다. 그리고 벚꽃도 신나게 웃었다.

 

정말 유쾌한 여자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공원 그림자들과 친해졌다. 쓰레기통과도 친해졌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명품 쓰레기통 그림자 연기를 칭찬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 연기에 혼신을 다했다. 그는 서울시 소유 금속 쓰레기통보다도 더 네모 반듯한 그림자를 연기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로수 이문세 씨와도 친해졌다.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아진 이문세는 노래를 부르고는 했다. “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 / ...... /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 가을 창가에 기대어 보네 / 이렇게도 아름다웠던...... /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여인 / , 우우우우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아카시아 나무 그림자가 되었다. 달의 위치에 따라서 방향을 정한 후 눕기만 하면 되었다. 왜냐하면 그림자의 위치는 광원에 따라서 달라지니깐 말이다. 내 마음대로 방향을 정할 수는 없었다. <일정한 방향으로 누웁시다 !>문화촌 공원 그림자 클럽의 유일한 원칙이었다. 그렇다고 모두 다 같은 방향으로 눕는 것은 아니었다. 은행나무 그림자는 예외였다. 우리가 모두 동남쪽으로 누울 때 은행나무 그림자는 가끔 동남쪽으로 누웠다. 은행나무 그림자는 대부분 북서쪽으로 누웠다. 과학자의 눈으로 보자면 그것은 해괴한 일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광원에 따라 그림자는 일정한 방향으로 지는 것이아닌가 ! 하지만 이 해괴한 일에 대하여 의심을 품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은, 그림자가 되지 않은, 투명인간이 되지 않은, 바닥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림자가 된 자에 대하여, 투명인간이 된 자에 대하여, 바닥이 된 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무도 그림자와 바닥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빌어먹을..... 이런 신파는 개나 줍시다. 다시 명랑으로 돌아옵시다. 은행나무 그림자를 연기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 검은 리트리버였다. 온몸이 검은 색이라 달리 분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눕기만 하면 되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였다. 언제부터인가 공원을 떠돌던 개는 그림자가 되었다. 개는 낮에도 공원에 남아서 북서쪽을 바라보고는 했다. 바람이 불면 코를 씰룩거렸다. 옛집 생각이 간절한 모양이었다나는 벚꽃나무와 결혼하였다. 그림자끼리 결혼한 세계 최초의 커플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쓰레기통은 여전히 말이 많았고, 가수 이문세가 연기하는 가로수 그림자는 여전히 우울해 했다. 그리고 기러기 아빠인 갈참나무도 변함없이 가족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직장 일을 끝내면 바로 문화촌 공원으로 왔다. 그는 제일 먼저 화장실에 가서 양복을 벗고는 검은 타이즈로 갈아입는다.

 

그의 몸은 온통 상처투성였다. 내 시선을 의식한 듯 그가 말했다. “ 바닥엔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별 빼고는 다 있지요. 둥근 돌, 모난 돌, 작은 돌, 큰 돌...... 그중에서 항상 모난 돌이 이렇게 몸에 박힙디다. 자식은 모난 돌입니다. 그게 아버지의 운명 같습니다. 내가 공원 모퉁이 갈참나무 그림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가족들은 알고 있을까요 ? 모르죠.  알아서도 안 됩니다. " 그는 검은 구두약으로 자신의 얼굴을 칠했다. 그는 분장을 마치고는 갈참나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피곤한 모양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었다. 모난 돌에 상처 입지 말라고 힘차게 바닥을 쓸었다. 쓰레기통 그림자가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다. 아따, 징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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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푸르 2013-11-0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런 글을 좀 더 많이 써달라는 거~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2 15:25   좋아요 0 | URL
알겠습니다. 선생님 !

별다 2013-11-0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ttps://www.facebook.com/type4graphic

이 사람은 최근에 sns 시인이라고.. 하이쿠같은 시를 sns에 올린 것이 공감을 많이 얻어서 책도 낸 사람인데요. 페루애 님의 언어유희를 보면 이 사람에 전혀 못 미치지 않는 것 같아요. ㅎㅎ 전통 출판 시장도 좋지만 이런 쪽으로 진출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3 19:51   좋아요 0 | URL
결정적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하지 않습니다.. ㅎㅎㅎㅎㅎ.
링크 걸어둔 이'는 꽤 자주 보게 되네요. 유명인이기는 한가 봅니다. 허허..

엄동 2013-11-0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좋아횽!!

투 떰즈 업!! d●b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4 15:14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 캄사 ~
 

엽편소설 no.5

 

 

 

 

 

 

 

특별요리'를 위한 특별요리  

 

  

그곳은 심야식당'이었다. 외대에 위치한 자그마한 가게'였다. 그곳에서는 새벽 시간에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간단한 음식과 술을 팔았다. 우리가 이곳을 자주 찾은 이유는 오코노미야키 때문이었다. 애인은 이 요리'를 좋아했다. 한번 맛을 본 사람은 이 맛을 잊지 못했다. 우리는 맥주와 오코노미야키를 시켜놓고는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했다.  자주 오다보니 주인'과도 친해졌다. 그는 키가 크고 과묵한 사내'였다.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떠나는 꿈을 가진 남자'였다. 내가 심야식당'을 다시 찾은 것은 2년이 지난 12월 깊은 밤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키가 크고 과묵한 사내는 여전히 그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빙그레 웃길래 답례로 방그레 웃어주었다. 그는 작년에 자전거로 일본을 횡단했다고 짧게 말했다. 나는  맥주 한 잔 마시고는 말없이 나왔다. (물론 술값은 계산 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술에 취하면 습관처럼 혼자서 그 심야식당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특별 요리'를 준비할 터이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단골 손님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특별히 내놓은 음식이니 부담 갖지 말고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음식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요리가 나오기 전에 사내는 내게 따스한 정종을 내놓았다. " 찬바람이 불면 사케만큼 좋은 술도 없죠. " 나는 중탕으로 따듯하게 데워진 술병에 차갑게 언 손을 녹였다. 그가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망설이듯 내게 말을 했다. " 두 분의 방문이 뜸해지다가 한동안 오지를 않더군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따로따로 오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다른 일행들과 이곳을 찾거나 아니면 손님처럼 혼자 오고는 했죠. 그때 알았습니다. 두 분이 헤어졌다는 사실 ! 제가 보기엔 두 분 다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님처럼 그 여성분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말없이 자리를 떠나고는 했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두 사람은 아직도 서로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구나.  두 분 모두 오코노미야키'를 핑계로 다시 이곳에서 우연히 만나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운명이란 참으로 오묘하더군요. 소율 씨'가 오던 날에는 윤아 씨'는 오지 않고, 반대로 윤아 씨가 오던 날에 소율 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항상 엇갈린 것이지요.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한 달 전 윤아 씨'가 이곳을 찾아왔어요. 그리고는 내게 부탁을 했죠. 소율 씨가 이곳에 오거든 특별요리를 부탁한다고 말이죠. 그를 잊지 못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주 찾아왔으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는 더이상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제가 그녀의 결혼식이었습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딸그랑 ! 그때 술에 취한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주인'은 영업이 끝났다며 손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가게 안이 조용해지자 그가 다시 말했다. " 오늘 소율 씨가 이곳을 찾아와서 반가웠습니다.  오늘 이곳을 방문하는 마지막 날이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소율 씨'가 이곳을 잊지 않고 찾은 이유는 윤아 씨를 잊지 못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잊어야죠. 제가 소율 씨에게 내놓은 술은 취생몽사'란 술입니다. 마시면 기억이 사라지는 술이죠. 그리고 오늘 제가 선보일 특별요리는..... "  그가 선보인 음식은 도미 요리'였다. 고소하고 쫄깃했다. 씹을 때마다 짭조름한 맛과 함께 허브 향이 났다. 급히 마신 술 탓이었을까 ? 아니면 깊은 슬픔 탓이었을까 ?

 

*

  

얼마나 잤을까 ? 내가 눈을 떴을 때 심야식당은 불이 꺼진 채 아무도 없었다. 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방 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살펴보니 그는 마침 요리를 하기 위한 준비'에 바빴다. 커다란 솥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물 속엔 육수를 내기 위한 식재료가 한가득이었다. 그는 내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 이놈의 인간들은 뭘 처먹었는지 뼈가 단단해. 토막을 내다가는 이내 칼이 무디어지고는 하지.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우리 같은 외계인에게는 지구인이 최고지. 잘 처먹어서 쫀득쫀득해. 지구인은 통통해서 마블링이 최고지. 일 년 간 이 특별요리를 위해 저 녀석에게 최고급 사료를 먹인 보람이 있었어. 최고의 마블링이야. 그동안 네 놈에게 먹인 특별요리는 사실 오늘의 특별요리를 위한 특별요리인게지. 허허허. 아, 침이 고인다. 침이 ! 오늘의 특별요리에 침이 고인다. 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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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1-03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이 엽편이 참 좋군요.
헌데 곰발님 외대 쪽에 자주 오시나요? 예전에 모임도 여기서 주로 있었던 듯한데..
저도 인연이 많은 곳. 지금 사는 곳에서도 버스 몇 정류장이면 금방일 정도로 가깝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3 19:50   좋아요 0 | URL
가끔 갑니다.. 후후, 그 근처 사시는 군요. 아는 사람들이 그곳에 몇몇 있어서
가끔 놀러가고는 합니다.

엄동 2013-11-0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명의 만화를 떠올리며
목 아래까지 솜이불을 끌어올려 덮은 듯
편안한 마음으로 시이 작.

오 역시 반전이
짧지만 강한 임패엑 트.

이래서 술마시고
아무데서나 엎어지면 안된다니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4 15:16   좋아요 0 | URL
죽다 살아났어요. 앞으로는 술 먹고 잠자는 버릇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술에 취하면 정신이 말똥말똥한 스타일인데
요즘은꾸벅꾸벅 조네요....


티비도 아닌 피비 2013-11-0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 블로그는 너무 하얘요.
저는 알록달록 장미 스킨이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6 02:51   좋아요 0 | URL
아이고.. 티비도 아닌 피비 님...........
내 늦둥이 막내 같은 피비 님............
사실 저도 너무 하얗고 창백해서 고민 중입니다.
썬텐을 좀 해야 할 듯합니다
 

 

 

 

2011년 기록'

  

 

 

■ 2011.11.07 소리에 대한 정의.

나는 작은 공간이 익숙하다. 그래서, 모텔, 하숙촌, 고시원, 쪽방이 친숙했다. 속초 미라지 모텔 103호 장기 투숙객은 노래방 아가씨였는데 105호였던 내 호실을 지나갈 때마다 갈지 자 특유의 톡톡거리는 발소리'를 남겼다. 문을 여는 소리와 가끔 들리는 텔리비젼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겨울 밤 무진장, 눈 쏟아지는 밤에 들어와 울었다. 벽 하나를 두고 그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에 그녀는 왜 그토록 울었을까 ?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다. 모텔 장기 투숙자라는 신세'가 그리 떳떳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서로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음 날 사라졌다. 아마 다른 지방으로 팔려간 모양이었다.  오래 전 일이 생각난다. 쪽방에서 겨울을 보내던 밤을 생각한다. 깊은 밤, 사랑을 나눌 때 여자는 늘 자신의 입을 막고는 했다. 나는 그때 그 의미를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깨닫는다. 넉넉하게 사는 삶이란 가족의 소리들이 타인에게 감지되지 않는 영역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나는 여전히 그 정의'를 믿는다. 가난한 자는 자신의 소리'를 들킨다.

 

 

■ 2011.10.21 구석이 주는 위로.

광장의 반대말은 구석이 아닐까 ?  구석'은 늘 심리적인 위안을 준다. 학창 시절 1분단 맨 끝줄 창가의 책상을 생각할 때마다 낡은 책상에 아른거리는 조각 볕이 생각난다. 구석에서 날마다 딴짓을 했다. 만화책을 보거나 소설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꿈을 꾸거나 플레이보이 잡지에 나오는 여자의 젖가슴을 훔쳐보았다. 아, 서양 여자의 젖가슴은 너무 빵빵해 ! 띠띠빵빵 해 !  때로는 구석 맨 끝 책상 밑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고,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서 뛰노는 3학년 7반 17번 이혜진 학생'을 몰래 훔쳐보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짝사랑했던 여자였는데 뛸 때마다 체육복 상의'가 파랑주의보가 내릴 때의 동해바다처럼 출렁거려서 나를 심란하게 만들고는 했다.  그 여자의 젖가슴 크기를 짐작할 수 없었다. 아, 저 여자의 성장 호르몬 ! 아아아아아. 이 모든 것이 모퉁이 안쪽, 옆쪽, 뒷쪽, 책상 밑에서 행한 일'들이다. 그 사이, 나는 키는 크지 않고 자지만 컸다. 이게 다 모퉁이 안쪽 탓이다.

 

 

 

2011.03.24 나이테 없는 나무을 위한 위로.

지금 내 방에는 네 개의 책장이 있다. 그 중 가격이 가장 비싼 원목 책장'은 어머니'가 사 주신 "  보르네오 엘리트 파주 공장 B 에어리어 시리얼 넘버 가-10370번, 인도네시아産 오동나무 재질의 책장 " 이다. 개나 소나 닭이나 다 돈을 벌던 주식 황금기'에,  어머니가 한 번 배팅에 50만 원을 버셨다고 해서 사 오신 책장이다. 하루에 50만 원을 버시기도 하셨지만 어머니는 그 후 5년 동안 5억을 날리셨다. 참, 무모한 도전' 이셨다. (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다. 집 한 채 날렸다 ! )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재활용센터에서 책장 하나를 장만했고, 나머지는 모두 버린 것'을 주워 왔다. 버렸다기보다는 " 멀쩡합니다. 필요하신 분은 가져가세요 ! "  라는 쪽지가 붙어 있는 가구'를 가져온 것이므로, 나는 " 땅그지 " 가 아님을 밝힌다. 그건 그렇고, 5칸 책장에 책을 정상대로 채우면 평균 200여 권이 된다.

 

하지만 공백 여기저기 채우면 250여 권이 넘게 저장된다. 그러므로 총 5개의 책장에 꽂힌 책은 1000권이 넘는다. 사실, 책장은 5개였다. 내 방의 크기는 책장 네 개'가 나란히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이었으므로 남은 책장은 옆면에 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술래잡기에서의 오갈데없는 깍두기 신세처럼 보여서 처량해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발로 깍두기의 등짝을 힘껏 차 주었다. " 이눔의 새끼들 !  너희들은 한때 나무도 아니었어. 이놈들아 !  너희들은 노가다판 이곳저곳에서 버려진 족보 없는 나무들이야. 버려진 나무들 모아서 나무 분쇄기'에 갈아서 톱밥을 만든 후 톱밥 덩어리에 아교를 섞어 모양을 만든 거라고. 얼큰한 4000원짜리 만리장성 짬뽕이라고. 겉에만 번지르르하게 나무 무늬 코팅으로 도배를 한 거지. 나이테는 개뿔 !  어이구 ?  가지가지한다. 아니 무슨 책장이 그깟  책이 무거워서 칸막이가 한여름 엿가락처럼 아래로 휘냐 ?

 

옆집의 오동 나무 책장을 보라고! 20년이 더 된 책장인데도  20살 사내아이의 자지처럼 딱딱하다고 ! 그리고 저 나이테를 보라구. 비닐 코팅지에 새겨진 것이 아닌 나무 자체에 새겨진  오리지날 나이테 말이야. 바로 저런 것이 명품 나이테다.  아셨쎠셔셔셔셔셔요 ?  내가 너희들 나이테 지워볼까 ? 퉷, 퉷, 퉷 !  침을 묻힌 후 박박 문지르니 지워지네 ?  으이구, 속 터져...  " 돈을 벌면 그때 제일 먼저 오리지날 나이테가 선명하게 새겨진 멋진 책장을 구입하리라.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책을 보고 있는데 그 옆면에 놓인 책장 칸 하나가 우지지직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깜짝 놀라서 살펴보니 책 무게 때문에 책장 칸막이  하나가 부러진 것이 아닌가?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남들은 보르네오 섬 메타쉐콰이어 70년산 원목으로 만든 음이온 추출 책장을 들였다는 둥, 공간 특성에 맞게 맞춤형 책장 제작에 들어갔다는 둥,

 

자랑을 하던데 나는 7만 원짜리 합판 쪼가리'의 비극적 골절'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먹장구름이 내 머리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꼴이, 내 인생의 축약본 같아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아도 좋을까 ? 합판 쪼가리 같은 내 인생. 아놔 ! 정말 화나는군. 홧김에 책장 하나에 꽂힌 책을 알라딘 중고 가격으로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팔았다. 본래의 목적은 책장에 꽂힌 책을 팔아서 좋은 책장을 사는 계획이었으나 생각해 보니 책을 팔아서 책장을 산다는 것이 마치 자식이 부모를 내다버리고 희희낙락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 오죽 못났으면 읽던  책을 팔아서 책장을 사는가 말이다. 그래서 더 이상의 책장 구입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버릴 낡은 책장은 " 쓸 만해요 !  필요하신 분은 가져 가세요 ! " 라고 쪽지를 차마 남길 수가 없어서 폐기물 처리 신고를 냈다. 

 

마음이 짠했다. 어느 가구 재생 공장으로 들어가서 톱밥으로 갈리다가 다시 새로운 코팅 옷을 입고 5단 책장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나이테도 없으면서 나이테가 들어간 이미테이션 옷을 입고 말이다. 잘 살아 ! 나무, 잘 살아, 책장 ! 그러다가 얼마 전에 책장 정리를 했다. 분야 별로 책을 정리하느라 책장의 책을 모조리 꺼냈다. 한 칸의 책이 보통 40권 정도 들어가는데 그 무게가 쌀 한 가마처럼 무거웠다. 결국 포기하고 10권 씩 꺼내서 책을 정리하다가 문득 그 골절상 입은 책장이 생각났다. 갑자기, 그 책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십년 동안 이 무게를 견디었구나 ! 책장의 입장에서 보면 책은 짐이다.  평생 함께 해야 할 자기 자신의 짐'이다. 등골이 휜다.   그렇다고 내려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책 대신 곰 인형이 있거나 장식용 그릇으로 대체된 형편없는 바람둥이 책장을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책장은 자신이 읽은  낡은 책으로 꽉 채울 때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리라.  어쩌면 나의 책장은 그 쉬운 장식용 가구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와 함께 살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지는 지게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휘어지고 부러진 것이다. 비록 나이테 짝뚱이지만 말이다. 갑자기 숭고해졌다. 내가 버린 나무는 재활용되어서 다음 세상에도  책장이 되었을까 ?  아니다, 다음 생은 4인용 식탁으로 태어나라. 싱크대로 태어나지 말고,  하루종일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 기껏해야 작은 꽃병만 놓으면 되는 화병 장식대로 태어나라. 하여튼,  나무여! 고맙다.

 

 

■ 2011.03.08 패각과 가시.

소라게'가 사는 집은 패각이다. 연체동물의 몸에서 분비된 석회질이 단단한 조개껍데기를 만드는 것이다. 겉은 딱딱한 각질의 세계이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것은 뼈 없는 무른 몸이다. 뼈 없는 몸이 뼈로 만든 집을 만드는 것이다. 달팽이도 마찬가지다, 우렁도 마찬가지다. 단단한 조가비 속에 사는 것은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짐승이다. 아, 이 위악적 은폐'란 !  선인장 가시'도 마찬가지다. 가시는 말랑말랑한 몸이 토해 놓은 딱딱한 패각'이다. 그 가시를 가르면 동글동글한 푸른 잎'이 숨어 산다. 그러니깐 날카로운 가시는 푸른 잎이 숨어 사는 방이고, 달팽이 집이며 소라 껍질이다. 이 좁고, 날카로우며, 위협적인 가시 안에서 사는 넓고, 부드러우며, 촉촉한 잎이라니. 아, 이 위악적 삶의 세계란 !

 

 

■ 2011.01.23 행실이 좋지 못한

집에  세로 1미터에 가로 6미터 크기의 터앝'이 있다. 이 남새밭'은 작년에 울타리콩 수천 마리'를 낳고 길렀다. 터앝은 다산의 여왕이었다. 콩 새끼도 낳고, 농구공만한 호박도 낳고, 방울토마토 열 개'도 낳아서 길렀다. 간혹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정령들과 눈이 맞아서 처음 보는 꽃 새끼'들도 낳았다. 그리고 허락 없이 핀 민들레, 방동사니, 개발톱꽃도 자기 새끼려니 하며 키웠다. 우리 집 터앝은 사내라면 좋아서 조건 없이 모두를 품었다. 행실이 좋지 않은 땅이었으나,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겨울이 오니 터앝은 12월의 곰'처럼 겨울잠을 잤다. 잠들고 있는 동안 눈이 내렸고, 눈이 내렸고, 눈이 내렸고, 눈이 내렸다. 눈이 맞아 이름모를 새끼들을 키우던 남새밭을, 지금 나는 눈 맞으며 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눈 덮인 터앝에 오줌을 눠서 잘생긴 사막 코끼리'를 만들었는데 오늘 눈이 펑펑 내려서 그림을 덮었다. 화가 난 나는 다시 눈 위에 오줌을 눴다 !

 

 

■ 2011.01.07 죽은 척하는 생태의 연기.

죽은 척하지만 사실은 살아 있는 생태-들. 선그라스를 끼고 가만 들여다보면 배가 미세하게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한 사실을 위해서는 생태의 주둥이를 닫고 손으로 코와 아가미'를 30초 동안  막고 있을 것. 숨을 참지 못한 생태'가 푸아, 하며 입을 쫙 벌릴 것이다. 어쩌면 그 힘줄 좋은 꼬리로 당신의 얼굴을 냅다 후려칠지도...... 내가 좋아하는 곳은 " 어시장 " 이다. 라스베가스 따위는 부럽지 않아.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도 빠라빠라빠라빰 롤러코스터'도 물고기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볼 때마다 나는 심장이 뛴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가끔 죽은 척하며 누워 있는 생태'에게 " 연기하는 것 다 알아 ! 까르르르. " 라며 농담을 건내기도 하지만 생태는 연기에 몰입하느라 도통 말대꾸를 하지 않는다. 생태'는 천의 얼굴 가진 메소드 연기자다.  명태가 되었다가, 동태가 되기도 하고, 황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나이에 맞지 않게 노가리'를 연기하며 혀 짧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 세대를 뛰어넘는 명연이란 !  한번은 초인적인 감량으로 [ 북어, 긂어서 죽어 ! ] 라는 멋진 복싱 영화의 주인공도 했다. 이런 것을 두고 " 생태의 진지한 몰입 " 혹은 " 생태의 무호흡 메소드 연기 "라고 한단다. 내가 고개를 외면하면 생태는 그때 비로소 입을 뻐끔거리며 참았던 숨을 몰아 쉰다. 다음은 명배우 생태의 필모그라피'다.



동태  역: 얼린 명태 
황태  역: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서 말린 명태(살이 황금빛으로 연하게 부풀도록 잘 말린것)
북어  역: 건조시킨 명태(건태)
코다리 역 : 명태를 반쯤 말린 명태(흔히들 코를 꿰어 4마리 한 묶음으로 해서 판매)
노가리  역: 명태의 치어(새끼 명태, 앵치)를 말린 것. 일반적으로 술 안주용으로..
금태  역: 금(金)처럼 귀한 어종이 되었다고 붙여진 이름
진태  역: 원양 명태와 동해안 명태를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
조태  역 : 낚시로 잡은 명태(낚시태)

망태  역: 그물로 잡은 명태

춘태  역:  3-4월에 잡은 명태
백태  역: 색깔이 하얗게 된 것
찐태(먹태) : 색깔이 검게 된 것
파태  역: 머리나 몸통에 흠집이 생기거나 일부가 잘려나간 명태
무두태 역 :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만을 걸어 건조시킨 것
통태  역: 작업 중의 실수로 내장이 제거되지 않고 건조된 것
낙태  역: 건조 중 바람에 의해 덕대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진 것

꺾태  역: 산란을 직후 뼈만 남다시피한 명태

대태  역: 아주 큰 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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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0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블로그를 구경하다가 지난 글들을 읽게 되었다. 문득 내가 글을 매우 잘 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네이버 블로그 폭파시키려고 했다가 아무래도 그냥 보관을 해야겠다....

수다맨 2013-11-01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한 자는 자신의 소리를 들킨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구절이네요.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곰곰발님 글 너무 좋습니다. 희극과 비극이 그대로 우러나고, 드러나서 참 깊게 공감합니다. 조만간 대작을 한 권 쓰시는 게 어떠할지^^;;;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15:0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수다맨 님 ! 전진 전진 오로지 전진하겠습니다.

나탈야 2013-11-0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페루찡의 글은 잘쓴 글이라기보단- 좋은글임.

제 아무리 화려한 문장력을 갖고 있다할지라도, 흡입력이 없으면... 독자를 지치게 하지.
일단 페루찡은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니까.

근데 가끔씩은 페루찡의 좋은 글 말고- 잘쓴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타고난 센스로 속전속결 쓴 글 말고...
여타의 작가들처럼 수백번 퇴고하고 수년 간 준비해서.. 쓴 완성도 높은 글.

진면목은 그때 비로소 발현되겠지.

보여달라! 페루애!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15:03   좋아요 0 | URL
다른 이에게는 다 보여주지만 나탈야에게는 안 보여주겠음 !!

엄동 2013-11-0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님하의 광팬

좋은글 잘쓴글 심장을쫄깃하게하는글
마음을촉촉하게하는글 손발을건조하게하는글
킁킁하면 제라늄향이나는글 맛을보면응가맛이날듯한글 /
캬 님하가 킹왕짱이긴 하네요

새빨간활 네이버블로그엔 요즘도 종종 들러요
완전 까만 그 화면을 보러요
까만걸 봐줘야 흰게 희게 보이니깐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15:0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나의 올드팬 엄동 님 !
그동안 보아오셨으면 볼 꼴 안 볼 꼴 다 보셨겠습니다..ㅎㅎ

ㄷㄷ 2013-11-0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파시키면 아니 되옵니다ㅎㅎ 페루애님이 네이버를 떠난다고 하셨을 때 사실 저는 블로그의 메인페이지를 사진으로 저장해놨더랬죠... 그 갈색 바탕의 장미무늬와 노란 배경의 빨간글씨들을 가끔씩 보곤 한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15:06   좋아요 0 | URL
아, 띵스 님... ㅎㅎㅎㅎㅎ. 근데 정말 띵스 의미가 뭔가요 ? 요거 되게 궁금했습니다.

ㄷㄷ 2013-11-02 18:20   좋아요 0 | URL
사실 별 의미 없습니다. 인터넷 계정을 만들 때 별명도 만들라고 하길래 이것저것 해보니 죄다 중복이라고 뜨더군요...그래서 어떤 걸 할까 생각하다가 제가 쓰고 있던 노트를 보게 되었는데 브랜드명이 thinkthings... 어떤 것을 생각한다 이거 괜찮겠군 생각했지요... 띵크띵스? 띵ㅋ띵스! 뭔가 톡톡 튀어 보이고 참신한 것 같다.. 뭐 이렇게 된 겁니다. 하핫... 그 뒤로 줄곧 어느 사이트이건 간에 별명 기입란에 띵ㅋ띵스라 쓰고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4 04:30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ㅎㅎ.
 

 

 


 

 

그날이오면.

 

 

 

 

지금은 네이버 블로그 덧문을 걸어 잠궜지만 여전히 술자리'를

갖는다. 매달은 아니지만 분기'마다 만나는 꼴이다. 봄이면 꽃 핀다 만나고, 여름에는 비 온다 만나고, 가을에는 쓸쓸하다고 만나며, 겨울이 오면 눈이 온다고 만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 모임 후기 > 를 썼다.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바라본 풍경에 대한 묘사와 해석을 내놓았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알라딘 서재'에다 쓰는 글이지만 사실은 네이버 블로그'에 쓰는 글이다. 이웃이여, 신랄한 어투와 디스戰'에 놀라지 마시라. 戰( 싸울 전 )이 아니라 展 ( 펼칠 전 ) 이다.

 

http://amd780501.blog.me/130178941008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내 별명은 < 불광동 도깨비풀 > 이었다. 도깨비풀을 도깨비바늘'이라고도 하는데 뾰족한 갓털이 있어서 사람 옷이나 길짐승 털에 붙으면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 풀이다. 학창 시절 싸웠다 하면 절대 먼저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최영의 선생은 손으로 황소 뿔을 뽑고 미스터 존슨에게 시비를 걸었지만 나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정의를 위해서 불의를 참지 못했을 뿐이다. ( 내가 뽑은 것이라고는 중학교 배정표가 유일했다. ) 원 펀치 쓰리 강냉이. 그렇다, 나는 바람의 주먹'이었다. < 동사서독 > 에서 맹무살수'는 칼 솜씨'가 좋은 놈은 적의 목을 벨 때 경쾌한 바람소리'가 난다고 고백했는데, 내가 상대방 얼굴을 날릴 때에도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날도 나는 아현동 굴다리 아래에서 동네 양아치 16명과 싸웠다. 나는 외쳤다.

 " 나는야 원 펀치 쓰리 강냉이. 한 놈 당 이빨 세 개다잉~ " 아현동 굴다리에 떼거지로 모인 양아치들은 추풍낙엽처럼 나자빠졌다. "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개쉐들, 오징어 다음은 뭐다냐, 잉 ? " 내 주먹이 최홍만을 닮은 꾀죄죄한 얼굴'에 정확히 꽂히자 덩치가 곰 같은 놈은 3미터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 바로.... 너는 (육)개장이여 ! 알긋냐 ? 넌 (칠)면조이고, 팔에 담배빵한 새끼, 어딜 봐 이 개쉐야. 넌 (팔)각정, 글구 자네는 (구)봉서, 머리에 빵구난 넌 십... 십....  이 씹새야, 너 때문에 막혔잖아 ! 토, 토토토토다는 놈은 용서 못해. "   바닥에 누런 이빨 서른 개'가 나뒹굴 무렵이었다. 구봉서 다음에는 십'으로 시작하는 마땅한 단어가 생각이 않았다. 뭐... 였더라 ? 문득 땡전 뉴스에서 즐겨 사용하던 용비어천가 숫자놀이가 생각났다.

(일)하시는 각하, (이) 나라의 지도자시여 ! (삼)일정신 받들어, (사)랑하는 겨레에, (오)일륙 일으켜, (육)대주에 빛나고, (칠)십년대 번영을, (팔)도강산 이루고, (구)국영단 내리니 (십).... 음, 십.... 이때'도 십'이 막혔다. 나는 싸움 중에도 이런저런 사색을 즐기고는 했다. 그때였다. 격렬한 통증이 아랫도리 급소에 전해졌다. 누군가가 발로 찼는데 경쾌한 바람소리가 들렸다. 이 싸움으로 인해 나는 불알이 터졌어. 다행히 고자 신세는 면했으나 이 사고로 남성 전립선에 이상이 생겼다. 사고 이후 갑자기 관심에도 없던 요리와 패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내가 휘두른 주먹에서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전신거울 앞에 섰다. 꽃남방을 입었다. 이 나이'에 꽃남방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단추를 채우려다가 벗었다. 나탈야'가 비아냥거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모임 때, 나탈야는 내 패션스타일'을 두고 " 슈퍼스타 게이 같아요 ! " 라고 말했다. 가는귀먹은 나는 슈퍼스타 K로 알아듣고는 싱글벙글했지만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오쉬프만젤쉬탐이 꾀죄죄하게 거들었다. 도전 게이 팝 스타, 게이비에스 등등. 얍삽한 인간들에게 화딱지가 났지만 참아야 했다. 밝은 체크무늬 남방'으로 갈아입고 녹색 가디건으로 멋을 부렸다. 여기에 붉은 타이'로 포인트를 줬다. 이탈리아 패션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고급 실크 타이'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옷보다 액세서리'에 신경을 쓴다. 훌륭한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잘 던지는 선수가 아니라 볼을 잘 던지는 선수가 좋은 투수이듯이 패션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비싼 옷보다는 비싼 액세서리'에 투자를 하는 사람이다.

녹색 가디건과 붉은 타이'가 조화를 이루니, 아... 감탄사가 나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내가 점잖게 입고 나가면 나탈야와 오쉬프'가 또 지랄을 하겠지 ? 안 봐도 디브이디'다. 닝기미, ( 나탈야 말투 흉내를 내며 ) 붉은 넥타이가 게이 패션을 도드라지게 만드는구녕, 웃으면서 코 파여. 홓홓홓 아이구, 니미 뽕이닷. 나탈야, 여시 같은 것. " 그래도 어쩌랴, 미우나 고우나 이웃이니 말이다. 약속 장소인 홍대 < 그날이오면 > 에 도착했다. 모임을 주최한 나탈야와 키티'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꼴을 보니 남성 파티'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탈야는 내게 "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 " 라는 말 대신 " 붉은 넥타이가 게이 패션을 도드라지게 만드는구녕, 웃으면서 코 파여. 홓홓홓 " 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이 타이 하나 가격이 당신 로가디스 코트 값이올시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가난을 지나치게 공격하는 것 같아서 참았다. 상대하지 않으리라. 다른 이와 즐겁게 술을 마시리라.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오쉬프가 왔다. 그 사이 자리'가 옮겨졌다.

오쉬프만젤쉬탐은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다. 인상 좋은 시인'이다. 그는 반갑게 악수를 건내며 말했다.  " 붉은 넥타이가 게이 패션을 도드라지게 만드는구녕, 홓홓홓 " 아휴, 시부랄 ! 시인이라는 작자가 문학적 향기가 이렇게 빈곤하냐. 오늘 모임도 수컷들뿐이었다. 페브리스 뿌린다고 수컷 냄새가 사라질까 ? 불알 안에 밤나무 하나씩 숨겨 두었으니 밤꽃 향기가 진동을 했다. 우리는 조용히 술을 마셨다. 꾀죄죄한 인간들과 술을 마시니 흥이 나지 않았다. 좌불알석'이었다. 어색한지 나탈야'가 오줌 맛이 나는 국산 맥주를 밀러 맥주처럼 맛있게 만들겠다며 재롱을 부렸다. 맥주에 젓가락을 담근 후 다른 젓가락으로 강하게 때리니 밀도가 굉장히 높은 거품이 만들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마셔보니 맛이 매우 좋았다. 나는 나탈야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속으로 생각했다. "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나탈야'에게도 이런 제주가 있구나.

그냥 조금 더 비싼 밀러 맥주 사먹으면 되지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 아, 가난한 나탈야. " 백석은 나타샤 생각에 당나귀처럼 으엉으엉, 울었으나 나는 나턀야의 빈곤 때문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곧이어 달빛가루'가 나타났다. 모두가 나를 까기 위해 모임에 나온다면 달빛가루'는 순전히 내가 가진 매력 때문에 모임에 참석한다. 이 대학생이 보기엔 내가 알랭들롱처럼 잘생긴 것이다. 그는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이곳저곳을 만졌다. 아마도 그가 진짜 만지고 싶었던 것은 내 불알'이리라. 남성들이 나를 향한 구애'만큼만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이런 흐물흐물한 모임 따위'에는 참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만지고 싶었던 것은 불알이 아니라 젖가슴이었다. 서로 조롱하고 비난질로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 무렵 뒷모습에페티쉬'가 뒤늦게 도착했다. 그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다. 모르는 게 없다. 하지만 깊게 아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아느냐고 ? 후후, 느낌 아니까.

우리는 계속 맥주잔 속에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넣고는 타종을 쳤다. 누가 봤다면 지랄한다고 했을 것이다. 웃고 떠들 무렵은 아니고 타종 치고 먼산 볼 무렵, 쥴봉이 왔다. 이 인간은 모임을 어떻게 알았는지 꾸역꾸역 찾아온다. 잘생긴 얼굴과 락커의 상징인 검은 가죽 점퍼'는 빛이 났다. 홍대 인디 밴드 최고의 미남'은 역시 어딜 가도 다른 법이다. 그가 오자 다른 이들은 모두 오징어가 되었다. 특히 나턀야는 오징어를 빼다박았다. 쥴봉과 겨룰 외모는 아무래도 나밖에 없었다. 쥴봉의 조각같은 외모'는 자주 보면 질리는, 싼 티가 났지만 내 외모는 오래 볼수록 은은하다. 그나저나 수컷 7명이 모인 것이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즐거운인생'이 모임에 참석을 한 것이다. 내 입만 바라보던 수컷들은 아름다운 여신이 등장하자 정신 못 차리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녀 또한 자신을 향한 수컷들의 몰입'을 즐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직 한 명만은 배신을 때리지 않았다. 달빛가루, 그는 다른 사람들이 즐거운인생'에게 빠져서 안 보는 사이 더욱 더 내 몸을 애무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 그 인기 오래 가지 않을 겁니다. 즐거운인생 님. 허허. 우리는 2차로 호프집에 가서 생맥주를 마셨다. 여기서도 가난한 동무들은 1130원 더 비싼 밀러 대신 젓가락으로 제조한 밀러 비스무리한 맥주를 마셨다. 아, 오줌 맛이 났다. 사실 이때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항상 필름이 끊기는 부분은 중간'이다. 내가 이곳에서 기억하는 것은 즐거운인생 님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는 기억이 전부다. 아마도 이 무리 중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다른 사내에게서는 밤꽃 향이 나고 내게서는 제라늄 향이 났을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 하지 않았던가 !

그리고 또 하나. 나탈야는 줄봉 옆에 앉아 있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 그것은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설레일 때 나타나는 홍조'였다. 그가 줄봉에게 조인선과 싱크로율이 100% 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추파였다 어쩌면 나턀야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기 위해서 유부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화딱지가 난 나는 딴지를 걸었다. " 그럼 한국인이 조선인 닮지 독일인 닮습디까 ? 그냥 우스면서 코 파여. " 글이 길어지면 읽는 이 지루하여 2차에 대한 스케치는 여기서 갈무리하기로 한다. 3차는 페티쉬와 쥴봉을 이끌고 양 꼬치구이집'으로 갔다. 이과두주를 마셨다. 잔뜩 취했다. 우리는 셋이서 나탈야의 깐족과 오쉬프만젤쉬탐의 능글 그리고 키티의 정력'을 두고 흉을 보았다. 5시간 동안 사정하지 않고 섹스를 한다고 자랑을 하는 남자. 지루라고 하기에도 지루한 시간이 아니었던가.

오쉬프의 능글은 더욱 가관이다. 자신을 무성애자'라고 소개하지만 사실은 작업 멘트다. 이런 식으로 다자파트린 여자가 한둘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사람은 나탈야'였다. 깐족거리는 입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둥, 깐풍기 좋아할 것 같다는 둥, 심장이 꾀죄죄할 거라는 둥. 까르르르르. 우리는 웃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어제의 귀갓길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만취한 상태로 오토바이'를 탄 것이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여기서 모임 후기를 끝내기로 한다. 모임이 즐거워서 찾아가는 게 아니라 모임 후기'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만난다. 개그맨들이 토크쇼에 써먹을 에피소드를 찾아 강남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듯이 말이다. 내가 " 발길질에서 바람소리가 나는 놈 " 과 싸워서 전립선을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당신들은 모두 나에게 강냉이가 털렸을 것이다.

꽃남방 대신 빤스 입고 격투기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내 몸은 여성化가 진행 중이다. 잔소리가 늘었고, 가슴은 A컵으로 진화했다. 어디 그뿐인가. 가는귀먹어서 < 사랑의 서약 > 이라는 제목을 < 사랑해 소야 > 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 각하, 각하가 저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 "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매조지'는 각하를 욕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버릇이 있다. (일)하시는 각하, (이) 나라의 지도자시여 ! (삼)일정신 받들고, (사)랑하는 겨레에, (오)일륙 일으킨 아버지를 받들어, (육)대주에 빛나고, (칠)십년대 번영을 이십일세기에 이루소서, (팔)도강산 번영 이루고, (구)국영단 내리니 (십)팔대 대통령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지금은 꽃남방을 즐겨 입으며 수많은 게이들로부터 갖고 싶은 " 머스트 헤브 아이템 소프트 바디 " 가 되었지만  한때 내 별명은 불광동도깨비풀 혹은 원 펀치 쓰리 강냉이'였다. 딱딱한 하드바디'였어. 상남자'였다. 기억해 달라.

 

 

 

추신 

게이들이여 ! 나는 치질로 고생하는 환자이니, 날 욕망하지는 마십시요. 내 괄약근은 흐물흐물해서 밀러 생맥주 거품처럼 밀도가 높지 않습니다. 만지면 톡 하고 터집니다. 피똥 쌉니다. 그냥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지는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아잉 ~

모임후기 35탄. ▼

 

1. 어제 모임'이 있었다. 외대 카페 < 너와 > 밖에서 안을 살피니 남자 셋'이 초라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로 이 자리에 왜 나왔는지 후회하는 얼굴들이었다. 밤꽃 냄새 나는 밤나무 세 그루'가 불 타는 토요일 밤이 모여 있다니.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분위기'는 화사해졌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 그들은 나를 연애인 보듯 했다. 신기한 듯 토일렛'이 내 팔을 비틀었다. " 어... 인형이 아니네. "  

 

2. 술을 마시던 토일렛'이 갑자기 카페 조명이 갑자기 밝아졌다고 지적했다. 오쉬프도 동조했다. 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준태'가 한심하다는 듯이 토일렛에게 귀엣말로 조용히 말했다. " 그건 조명의 조도 때문이 아니라 페루애의 아우라 때문에 그래요 ! "  

 

3. 오쉬프'는 여전히 나의 등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첫 번째 모임에서도 그는 나를 향해 " 돌아이야, 진짜 이 인간은 내가 본 진짜 똘아이야 !! " 라고 외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 오쉬프 인맥 동원력이 겨우 이 정도 입니까 ? 밤나무 세 그루라니. 까르르르르. " 내 말을 듣던 오쉬프는 얼굴이 빨개지며 불끈 주먹을 쥐었다. 나는 곧바로 손을 펴 보자기'를 내밀었다. " 오쉬프 ! 내가 이 상황에서 가위'를 낼 것이라 생각했소 ? 난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져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소 ! 왜인지 아쇼 ? 난... 항상 늦게 손을 내밀기 때문이오. 반칙이라고 ?! 후후. 순진하기는. 당신은 여전히 페어플레이 신화를 믿소 ? " 오쉬프는 내기에서 졌다. 그는 팬티만 입고 술을 마셨다.  

 

4. 내가 토일렛에게 가재' 흉내를 내보라고 제안하자 그는 검지와 중지로 가재 앞다리 흉내를 내며 루이 암스트롱 목소리를 언더 더 씨를 불렀다. 가관이군, 가관이야 ! 내가 잽싸게 주먹을 내밀었다. 이겼다. 가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주먹이 유일하니깐 말이다.토일렛도 팬티만 입고 술을 마셨다. 준태는 냉철한 분석가답게 속지 않으려고 경계를 했다. 절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리라. 토일렛이나 오쉬프보다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준태에게는 손금을 봐주겠다고 제안하자 그가 넙죽 손바닥을 펴 내게 내밀었다. 그도 곧 팬티만 입고 술을 마셨다.  

 

5.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오쉬프는 하루키'라고 지칭했고, 토일렛도 하루키'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감성적 심증보다는 과학적 실증을 중요시여기는 준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키 씹새끼'라고 욕했다. 할 줄 아는 건 자위 사용법과 재즈와 와인 이야기가 전부라고 말이다.  

 

6. 김지하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 꼰대가 된다는 이야기'가 주였다. 토일렛이 내 글을 보더니 나이가 들어서 꼰대 글이 자주 보인다고 했다. 이에 오쉬프가 데시벨 레벨 7.0' 으로 우렁차게 웃었다. 인간은 늙으면 꼰대가 된다.  

 

7. 내가 화장실에 가서 오바이트를 하는 사이 토일렛이 도망친 모양이었다. 이후로 나는 했던 말을 계속 반복했다. 취했다는 증거였다. 오쉬프와 준태는 짜증스러워 했다. 난 잠시 졸았다. 눈을 떴다. 그 사이 둘 다 도망갔다. 내가 눈을 떴을 때엔 카페엔 아무도 없었다. 주인과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다.  

 

8. 고백하노라, 사실 나는 < 너와 > 가 외계인 소굴'이라고 생각했었다. 첫 번째 모임에서 였다. 난 언제나 술기운이 올라오면 까마귀처럼 잠시 까무라쳐서 잠을 자는 버릇이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카페는 텅 비어 있었고, 앞자리에 주인이 혼자 부동 자세로 멈춰 있었다. 나는 시간이 멈춰서 세상에 멈췄다고 생각했다. 시부랄, 만날 지구 종말을 이야기하더니 드디어 지구 멸망 시계가 멈췄구나 ! 불알이 오그라들 정도로 무섭네. 잽싸게 밖을 보았다. 밖도 시간이 멈춘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다. 주인은 그냥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밖의 거리 또한 고양이 한 마리 다니지 않으니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당시 내 옆에서 술을 마시던 윤슬이 보이지 않았다. 잡아먹혔나 ?! 내가 자는 사이에 주인장에게 잡아먹혔나 ? 내가 화장실 문을 힘껏 박차고 열었더니 화장실에 윤슬이 있었다. 그 또한 시간이 정지된 채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화장실 문이 갑자기 열리니 깜짝 놀라서 나를 멍하니 본 것인데 나는 이것을 시간 정지'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부랄, 하루키였다면 지구 멸망 전에 이곳에서 자위를 했을 거야. 이곳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레드... 썬 ! 주문을 외우자 윤슬이 얼음이 풀렸다. 윤슬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윤슬은 꽤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넋두리처럼 " 내가 널 살렸어 ! " 라고 계속 중얼거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윤슬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는 먼저 택시를 타고 떠났다.  

 

9.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내려서 편의점에 들려 도시락 하나와 맥주 한 병을 사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맥주는 마시지 않고 도시락만 먹었다. 오쉬프가 블랑쇼 책과 비니 모자를 선물했다. 비니 모자를 쓰고 책을 읽다가 잠을 잤다. 다음에는 비니'나 책' 말고 다이아몬드 같은 현금화가 가능한 선물을 해 주었으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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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2013-10-3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시 쓰세요. 저에 대한 '찬미'가 부족하지 말입니다. 기분 상했지 말입니다.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00:02   좋아요 0 | URL
그르믄서 왜 공감을 누르셨나여 !
앞으로 자주 오시면 그때마다 즐인찬미'가 점점 오를 것입니다. ㅋㅋㅋㅋ

Forgettable. 2013-11-01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즐인님이 궁금해져가는 시점... 암튼 자꾸 평일 모임 하시면 제가 못가잖아요!!! 다음 모임은 토욜로! (부탁ㅋㅋㅋ )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01:11   좋아요 0 | URL
다 유부남들이어서.... 토요일에 술 약속 잡으면 아내에게 줘터지나 봅니다.
다음에는 톨'요일로 잡겠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11-01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되겠어용. 다음에 제가 토요일에, 다음주 PISAF행사가 부천에서 하는데
일이 바쁘다 보니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15:11   좋아요 0 | URL
추운 겨울에 44분기 미팅 있으니 그때 만애비 님 초청합니다. 먼곳에서 오시는 관계로
회비'는 무료로 제공할 터이니 맘껏 즐기다 가십시요....

나탈야 2013-11-01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시 후기는 페루애껄 봐야... 정리되는 느낌.
마치 류현진투구 이후 메팅리 코멘트를 읽어야 경기가 마무리된 느낌이랄까...

-는 개뿔.

내가 만든 거품맥주을 맛본 페루애의 눈이 풀리는 걸 내가 봤는데-
이제와서 발뺌이라니... 쯧쯧.

여튼 연말때 한번 또 봅시다. 그때 패션을 기대하겠소.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15:13   좋아요 0 | URL
그때는 진짜 마성의 게이 패션으루다가, 준비하겠습니다. 전 히피 스타일'이 좋습니다.

참.. 고 젓가락 신공 대단하더이다. 다음에도 계속 젓가락 신공 부탁드립니다.

엄동 2013-11-0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석자에 대학생'이 껴있다는 말에
호오~

그 하나뿐인 대학생이
곰곰발님을 진득하게 애무한다는 말에
우호워오~


곰곰발님의 완벽보색패션과
이웃님들의 파안, 홍조와 능글을 못봐서 아쉽다는 ㅎㅎ

곰곰발님의 오랜 팬임에도 불구.
워낙 눌변이라 이번 4/4분기 모임에 못 꼈구녕!
아ㅡ후
걍 웃으면서 코파면 되는거였는데 훟훟훟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15:14   좋아요 0 | URL
저도 모임 참석하면 말 거의 못합니다.
말만 하면 끊어요. 말꼬리를 잡고 끊어서 거의 문장을 완성하지 모샜어요.
엄동 님 오셔도 아무 걱정 없을 겁니다. '

yamoo 2013-11-03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나두 앤날에 네이뇬 블로그질 할 때 오프 모임 좀 했었는뎅~
엔날 생각납니다그려~

근데, 모임 분위기가 ㅎㄷㄷ 할거 같아욤..ㅋㅋ

그나저나 11월 단풍들이 쥑이게 들었던데, 보시면서 깊어가는 가을 만끽하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22:52   좋아요 0 | URL
캐릭터 모임'인데 그냥 만나서 술 마시고 서로 흉 보다가 헤어지는 모임입니다.
제가 여기서 연기한 캐릭터는 마성의 게이' 역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
다음 모임에는 야무 님도 오십시요.

2013-11-03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4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엽편소설 no.4

 

 

 

 

세상의 모든 무게'를 재는 방법.

 

 

 

나는 그동안 < 무게를 잴 수 없는 것'에 대한 무게 > 를 재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 슬픔 >, < 한숨 >, < 절망 > 따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저울이 필요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특별한 저울'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나는 저울 설계도가 도난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찢어버렸다. 이로써 내가 만든 특별한 저울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저울이 되었다. 내가 이 저울을 사용해서 첫 번째로 잰 것은 종이에다 낙서를 하는 데 소요된 < 연필심 > 의 무게였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다음과 같다.  ① 종이의 무게를 잰다.  / ② 종이 위에 연필로 낙서를 한다. / ③ 문장이 쓰여진 종이'를 다시 측정한다. /  ④ 3 에서 1 의 무게'를 뺀 나머지'가 낙서를 하는 데 사용된 연필심의 무게'이다. 그리고 < 한숨 > 처럼 손에 잡을 수 없는 비물질'에 대한 무게도 이 특별한 저울이라면 가능했다. 우선 ① 바람 빠진 풍선'을 저울에 단다. ② 그리고 삶에 지친 사람에게 풍선을 불게 한 후 그 무게'를 다시 단다.

 

② 에서 ① 를 뺀 차'가 바로 한숨의 무게'이다. 그 무렵,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게'에 대한 호기심에 충만했었고 이 세상에서 무게를 잴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확신에 차 있었다. 심지어는 < 영혼 > 의 무게'도 측정했으며, < 유령 > 의 무게'를 재는 데에도 성공했다. 대체로 유령은 평범한 영혼보다 무게가 많이 나갔는데 가장 무거웠던 유령'은 굶어서 죽은 귀신'이었다. 그 유령의 무게는 사막 코끼리 150마리를 합친 무게'와 같았다. 이름은 미스 벨벳 리사' 였다. 그녀는 19세기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2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굶어서 죽었다고 했다.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는 감자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었다. 나는 벨벳 리사 양을 설득한 후 씻김굿을 벌려서 무거운 영혼을 위로했다. 굿이 끝나자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 벨벳 리사 !  그녀에게서 제라늄 향이 났다. 나는 서재로 돌아와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사물들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들, 세상의 모든 것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는 모든 것에게는 고유한 무게'가 존재했다. 존재는 무게'다 !  " 그래, 하품은 3그램, 빗은 900 그램, 백열 전구의 끊어진 필라멘트 선은 1그램......  "  나는 사전에 나오는 단어 순서대로 무게를 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생전에 이룩해야 할 거대한 도전이요, 과제였다. 나는 < 낱말 무게 사전 > 을 집필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모든 진행 과정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었다. 가장 애를 먹었던 낱말은 "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의 더듬이 한 쪽 " 이었다. 채집 과정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에게서 더듬이 한 쪽을 뽑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느새 나는 국어사전 맨 마지막에 기록된 < 힘 >이란 단어'를 끝으로 길고 긴 여정을 끝낼 수 있었다.

 

 아, 이로써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재는 데 성공했구나 ! 내가 무게를 측정하지 않은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바벨탑을 짓다고 무너졌다면, 나는 잴 수 없는 무게를 재서 금자탑을 이뤘구나 ! "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 세상에 하나뿐인 저울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그만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저울 자체의 무게'를 측정하지 않은 것이다. 정작 무게를 재는 저울의 무게'는 재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 저울을 어떻게 잰다는 말인가 ? < 저울 > 은 모든 것을 잴 수는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무게'를 잴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역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이후 나는 세상 모든 것의 무게를 재려는 욕망이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 숨을 쉴 때마다 내 입에서 감자 썩는 냄새'가 났다. " 닝기미, 생각해 보니..... 감자 썩는 냄새'의 무게도 재지 않았군. 맙소사 ! 세상의 모든 무게를 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잰 무게는 티끌'보다 작은 것이었어. 에라이.... " 나는 힘없이 웃었다. 그때 폴 오스터'가 내 침실을 방문했다. 그는 헝크러진 머리에 몰골이 형편없었지만 눈빛만큼은 매섭게 빛났다. 헤비스모커'였던 그는 내 침대 곁에 의자를 끌고와 앉자마자 연신 담배 연기'를 내품으며 내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원했다. 나는 웃으면서 폴에게 말했다. " 야, 시방새야 ! 여긴 금연이라네.. 허허허 " 그는 현재 영화 시나리오 한 편을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줄거리가 성겨서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웨인 왕'이라는 감독과 함께 < 스모크 > 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내 침실은 폴 오스터가 내품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속이 타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내가 폴 오스터에게 말했다. " 자네,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방법을 아나 ? " 폴 오스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내가 말했다. "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것은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과도 같아. 먼저 피우지 않은 담배의 무게를 저울에 잰다네. 그리고는 그 담배를 피우면서 저울에 재를 털고 다 피운 꽁초도 올려놓은 뒤 다시 무게를 재는 거야. 처음 무게와의 차이가 바로 연기의 무게라네.한때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게'를 달고 싶었다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어. ”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몸에서 제라륨 향이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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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0-3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무게를 잴 수 없는 저울 ; 러셀의 역설이군요. - 역시 수학과 친하신 곰곰발님이십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50239

곰곰생각하는발 2013-10-30 16:49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수학과는 정말 친하지 않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반전이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2013-10-30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30 16: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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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1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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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0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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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1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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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15: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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