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no.5

 

 

 

 

 

 

 

특별요리'를 위한 특별요리  

 

  

그곳은 심야식당'이었다. 외대에 위치한 자그마한 가게'였다. 그곳에서는 새벽 시간에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간단한 음식과 술을 팔았다. 우리가 이곳을 자주 찾은 이유는 오코노미야키 때문이었다. 애인은 이 요리'를 좋아했다. 한번 맛을 본 사람은 이 맛을 잊지 못했다. 우리는 맥주와 오코노미야키를 시켜놓고는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했다.  자주 오다보니 주인'과도 친해졌다. 그는 키가 크고 과묵한 사내'였다.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떠나는 꿈을 가진 남자'였다. 내가 심야식당'을 다시 찾은 것은 2년이 지난 12월 깊은 밤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키가 크고 과묵한 사내는 여전히 그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빙그레 웃길래 답례로 방그레 웃어주었다. 그는 작년에 자전거로 일본을 횡단했다고 짧게 말했다. 나는  맥주 한 잔 마시고는 말없이 나왔다. (물론 술값은 계산 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술에 취하면 습관처럼 혼자서 그 심야식당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특별 요리'를 준비할 터이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단골 손님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특별히 내놓은 음식이니 부담 갖지 말고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음식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요리가 나오기 전에 사내는 내게 따스한 정종을 내놓았다. " 찬바람이 불면 사케만큼 좋은 술도 없죠. " 나는 중탕으로 따듯하게 데워진 술병에 차갑게 언 손을 녹였다. 그가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망설이듯 내게 말을 했다. " 두 분의 방문이 뜸해지다가 한동안 오지를 않더군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따로따로 오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다른 일행들과 이곳을 찾거나 아니면 손님처럼 혼자 오고는 했죠. 그때 알았습니다. 두 분이 헤어졌다는 사실 ! 제가 보기엔 두 분 다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님처럼 그 여성분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말없이 자리를 떠나고는 했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두 사람은 아직도 서로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구나.  두 분 모두 오코노미야키'를 핑계로 다시 이곳에서 우연히 만나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운명이란 참으로 오묘하더군요. 소율 씨'가 오던 날에는 윤아 씨'는 오지 않고, 반대로 윤아 씨가 오던 날에 소율 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항상 엇갈린 것이지요.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한 달 전 윤아 씨'가 이곳을 찾아왔어요. 그리고는 내게 부탁을 했죠. 소율 씨가 이곳에 오거든 특별요리를 부탁한다고 말이죠. 그를 잊지 못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주 찾아왔으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는 더이상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제가 그녀의 결혼식이었습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딸그랑 ! 그때 술에 취한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주인'은 영업이 끝났다며 손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가게 안이 조용해지자 그가 다시 말했다. " 오늘 소율 씨가 이곳을 찾아와서 반가웠습니다.  오늘 이곳을 방문하는 마지막 날이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소율 씨'가 이곳을 잊지 않고 찾은 이유는 윤아 씨를 잊지 못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잊어야죠. 제가 소율 씨에게 내놓은 술은 취생몽사'란 술입니다. 마시면 기억이 사라지는 술이죠. 그리고 오늘 제가 선보일 특별요리는..... "  그가 선보인 음식은 도미 요리'였다. 고소하고 쫄깃했다. 씹을 때마다 짭조름한 맛과 함께 허브 향이 났다. 급히 마신 술 탓이었을까 ? 아니면 깊은 슬픔 탓이었을까 ?

 

*

  

얼마나 잤을까 ? 내가 눈을 떴을 때 심야식당은 불이 꺼진 채 아무도 없었다. 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방 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살펴보니 그는 마침 요리를 하기 위한 준비'에 바빴다. 커다란 솥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물 속엔 육수를 내기 위한 식재료가 한가득이었다. 그는 내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 이놈의 인간들은 뭘 처먹었는지 뼈가 단단해. 토막을 내다가는 이내 칼이 무디어지고는 하지.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우리 같은 외계인에게는 지구인이 최고지. 잘 처먹어서 쫀득쫀득해. 지구인은 통통해서 마블링이 최고지. 일 년 간 이 특별요리를 위해 저 녀석에게 최고급 사료를 먹인 보람이 있었어. 최고의 마블링이야. 그동안 네 놈에게 먹인 특별요리는 사실 오늘의 특별요리를 위한 특별요리인게지. 허허허. 아, 침이 고인다. 침이 ! 오늘의 특별요리에 침이 고인다. 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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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1-03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이 엽편이 참 좋군요.
헌데 곰발님 외대 쪽에 자주 오시나요? 예전에 모임도 여기서 주로 있었던 듯한데..
저도 인연이 많은 곳. 지금 사는 곳에서도 버스 몇 정류장이면 금방일 정도로 가깝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3 19:50   좋아요 0 | URL
가끔 갑니다.. 후후, 그 근처 사시는 군요. 아는 사람들이 그곳에 몇몇 있어서
가끔 놀러가고는 합니다.

엄동 2013-11-0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명의 만화를 떠올리며
목 아래까지 솜이불을 끌어올려 덮은 듯
편안한 마음으로 시이 작.

오 역시 반전이
짧지만 강한 임패엑 트.

이래서 술마시고
아무데서나 엎어지면 안된다니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4 15:16   좋아요 0 | URL
죽다 살아났어요. 앞으로는 술 먹고 잠자는 버릇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술에 취하면 정신이 말똥말똥한 스타일인데
요즘은꾸벅꾸벅 조네요....


티비도 아닌 피비 2013-11-0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 블로그는 너무 하얘요.
저는 알록달록 장미 스킨이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6 02:51   좋아요 0 | URL
아이고.. 티비도 아닌 피비 님...........
내 늦둥이 막내 같은 피비 님............
사실 저도 너무 하얗고 창백해서 고민 중입니다.
썬텐을 좀 해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