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no.4

 

 

 

 

세상의 모든 무게'를 재는 방법.

 

 

 

나는 그동안 < 무게를 잴 수 없는 것'에 대한 무게 > 를 재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 슬픔 >, < 한숨 >, < 절망 > 따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저울이 필요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특별한 저울'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나는 저울 설계도가 도난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찢어버렸다. 이로써 내가 만든 특별한 저울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저울이 되었다. 내가 이 저울을 사용해서 첫 번째로 잰 것은 종이에다 낙서를 하는 데 소요된 < 연필심 > 의 무게였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다음과 같다.  ① 종이의 무게를 잰다.  / ② 종이 위에 연필로 낙서를 한다. / ③ 문장이 쓰여진 종이'를 다시 측정한다. /  ④ 3 에서 1 의 무게'를 뺀 나머지'가 낙서를 하는 데 사용된 연필심의 무게'이다. 그리고 < 한숨 > 처럼 손에 잡을 수 없는 비물질'에 대한 무게도 이 특별한 저울이라면 가능했다. 우선 ① 바람 빠진 풍선'을 저울에 단다. ② 그리고 삶에 지친 사람에게 풍선을 불게 한 후 그 무게'를 다시 단다.

 

② 에서 ① 를 뺀 차'가 바로 한숨의 무게'이다. 그 무렵,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게'에 대한 호기심에 충만했었고 이 세상에서 무게를 잴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확신에 차 있었다. 심지어는 < 영혼 > 의 무게'도 측정했으며, < 유령 > 의 무게'를 재는 데에도 성공했다. 대체로 유령은 평범한 영혼보다 무게가 많이 나갔는데 가장 무거웠던 유령'은 굶어서 죽은 귀신'이었다. 그 유령의 무게는 사막 코끼리 150마리를 합친 무게'와 같았다. 이름은 미스 벨벳 리사' 였다. 그녀는 19세기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2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굶어서 죽었다고 했다.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는 감자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었다. 나는 벨벳 리사 양을 설득한 후 씻김굿을 벌려서 무거운 영혼을 위로했다. 굿이 끝나자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 벨벳 리사 !  그녀에게서 제라늄 향이 났다. 나는 서재로 돌아와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사물들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들, 세상의 모든 것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는 모든 것에게는 고유한 무게'가 존재했다. 존재는 무게'다 !  " 그래, 하품은 3그램, 빗은 900 그램, 백열 전구의 끊어진 필라멘트 선은 1그램......  "  나는 사전에 나오는 단어 순서대로 무게를 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생전에 이룩해야 할 거대한 도전이요, 과제였다. 나는 < 낱말 무게 사전 > 을 집필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모든 진행 과정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었다. 가장 애를 먹었던 낱말은 "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의 더듬이 한 쪽 " 이었다. 채집 과정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에게서 더듬이 한 쪽을 뽑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느새 나는 국어사전 맨 마지막에 기록된 < 힘 >이란 단어'를 끝으로 길고 긴 여정을 끝낼 수 있었다.

 

 아, 이로써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재는 데 성공했구나 ! 내가 무게를 측정하지 않은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바벨탑을 짓다고 무너졌다면, 나는 잴 수 없는 무게를 재서 금자탑을 이뤘구나 ! "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 세상에 하나뿐인 저울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그만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저울 자체의 무게'를 측정하지 않은 것이다. 정작 무게를 재는 저울의 무게'는 재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 저울을 어떻게 잰다는 말인가 ? < 저울 > 은 모든 것을 잴 수는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무게'를 잴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역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이후 나는 세상 모든 것의 무게를 재려는 욕망이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 숨을 쉴 때마다 내 입에서 감자 썩는 냄새'가 났다. " 닝기미, 생각해 보니..... 감자 썩는 냄새'의 무게도 재지 않았군. 맙소사 ! 세상의 모든 무게를 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잰 무게는 티끌'보다 작은 것이었어. 에라이.... " 나는 힘없이 웃었다. 그때 폴 오스터'가 내 침실을 방문했다. 그는 헝크러진 머리에 몰골이 형편없었지만 눈빛만큼은 매섭게 빛났다. 헤비스모커'였던 그는 내 침대 곁에 의자를 끌고와 앉자마자 연신 담배 연기'를 내품으며 내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원했다. 나는 웃으면서 폴에게 말했다. " 야, 시방새야 ! 여긴 금연이라네.. 허허허 " 그는 현재 영화 시나리오 한 편을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줄거리가 성겨서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웨인 왕'이라는 감독과 함께 < 스모크 > 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내 침실은 폴 오스터가 내품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속이 타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내가 폴 오스터에게 말했다. " 자네,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방법을 아나 ? " 폴 오스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내가 말했다. "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것은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과도 같아. 먼저 피우지 않은 담배의 무게를 저울에 잰다네. 그리고는 그 담배를 피우면서 저울에 재를 털고 다 피운 꽁초도 올려놓은 뒤 다시 무게를 재는 거야. 처음 무게와의 차이가 바로 연기의 무게라네.한때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게'를 달고 싶었다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어. ”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몸에서 제라륨 향이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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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0-3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무게를 잴 수 없는 저울 ; 러셀의 역설이군요. - 역시 수학과 친하신 곰곰발님이십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50239

곰곰생각하는발 2013-10-30 16:49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수학과는 정말 친하지 않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반전이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2013-10-30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30 16: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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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1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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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0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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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1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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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15: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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