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는 무척 착한 곤충이다. 건강한 바퀴는 목숨을 걸고 인간이 사는 부엌에 가서 실컷 먹은 후 은신처로 돌아와 자신이 먹은 먹이를 액체 형식으로 토해 놓는다. 그러면 몸이 아픈 동료나  늙은 동료들은 그 액체 먹이를 함께 나눠 먹는다. 먹잇감 앞에서는 죽기 살기로 서로 싸우는 맹수보다 멋있다. 내가 바퀴에게 먹은 걸 다 내놓으면 다시 배가 고프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바퀴는 싱긋 웃으면서 괜찮아 ! 난 건강하고 달리기도 빠르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먹이를 찾으면 돼. “ 라고 말해서 나를 감동시켰다.  인간은 가끔 나눔을 실천하지만 바퀴는 날마다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심성 고운 곤충이다. 인간이 사악한 이유는 바퀴의 나눔 정신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바퀴를 죽이기 위한 잴 형태의 독약은 바퀴의 고운 심성을 이용한다. 이 독약을 먹은 바퀴는 먹자마자 죽지 않는다. 제조회사에서 서서히 독이 퍼져서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독약을 먹은 바퀴는 굶주린 동료를 위해 자신이 먹은 맛있는 먹이를 내놓는다. 동료들은 독약인지도 모르고 먹는다. 그들은 함께 죽는 것이다.

 

- 바퀴벌레와 코카콜라 中

 

 

 


 

 

 

바퀴와 벌레

 

우울증 약에는 강력한 수면제'가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는 이유는 타는 듯한 갈증 때문이다. 주변 사람 가운데 물을 자주 마시는 사람은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갈증은 종종 통증을 수반한다. 눈을 떴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벽을 타고 기어다녔다. 나는 순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a. 침대에서 일어나 바퀴벌레를 죽이고 물을 마신다. b. 물을 마시고 나서 바퀴벌레를 죽인다. c. 다 포기하고 죽은 듯이 잠을 잔다. 바퀴를 죽이는 일'에도 몇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d. 화장지를 이용해서 죽인다. e. 걸레를 던져 떨어뜨린 후 죽인다. f. 책으로 내려친다. g. 살충제를 뿌린다. 이런 식으로 우선 가상의 수를 종합하니 총 98개나 되었다. 아, 자본주의'란 선택의 폭이 너무나 많아서 선택에 대한 고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다가 죽는 체제'이다. 자본주의에서 선택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나는 고민하다가 눈을 감고 잤다. 

 

다시 눈을 떴다. 몇 분이 흘렀을까 ? 아니면 몇 시간이 흘렀을까 ? 몸은 석고처럼 굳어 있었다. 눈동자만 굴려서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던 벽을 쳐다보았다. 바퀴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선택의 폭은 좁아졌다. a. 물을 마실 것인가. b. 계속 잠을 잘 것인가. 바퀴가 사라졌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가 줄어든 것이다. 숨을 쉬었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비릿한 약 냄새'가 진동을 했다. 미원을 잔뜩 입에 넣었을 때의 불쾌감이다. 문득 이마를 긁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이 하나 더 늘었다. c. 제일 먼저 이마를 긁을 것인가. 나는 c를 선택했다. 툭 ! 이마를 긁자 검은 물체가 떨어졌다. 깜짝 놀라서 침대 바닥을 보니 커다란 바퀴벌레였다.  그 사이, 바퀴벌레는 바닥으로 떨어져 구석진 곳에 몸을 숨겼다. 화, 났다 !!!! " 나 죽고 너 살자 ! " 라고 외쳤다. 아차, 너 죽고 나 살자지 ? 피식. 인간사랑에서 출간된 지첵의 < 향락의 전이 > 를 뽑아 바퀴벌레를 내리쳤다. 

 

바퀴벌레는 몸 밖으로 내장이 흘러나왔다. 머리와 발은 바삐 움직였으나 바닥에 놀린 몸은 움직이지 못했다. 끈적거리는 내장은 풀과 같은 작용을 했다. 나는 거실로 가 물을 마시고, 걸레에 유한락스를 묻혀 책 하드커버를 닦았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바퀴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탈장한 몸으로 살기 위해 어디론가 숨은 모양이었다. 은신처에 숨은 바퀴'는 신호를 보낼 것이다. 인간은 들을 수 없는 울음을 울 것이다. 바퀴들은 그 소리를 듣고 모인다. 몸에 붙어 있던 알집은 떨어져나가 부화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은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뜯길 것이다.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으리라. 알은 부화하리라. 그리고는 곰곰생각하는발'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더 많은 바퀴들은 내 침대를 공격할 것이다. 수면제로 시체가 되어버린 내 몸 위에 똥을 쌀 것이 틀림없다. 어택, 어택 ! 일보전진 !!!!  한밤중에 깜짝 놀란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형설시공사 판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에서 " 바퀴 " 를 찾아보았다. 바퀴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바퀴 : [ 명사 ] < 동물 > 바큇과의 곤충. 바퀴를 발견하게 되면 인간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최소 10배 이상 증가한다. [ 유의어 : 상품.  물건 ]  자본주의에서 상품은 인간에게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하도록 만든다. 나이키 덩크 로우를 살 것인가, 덩크 하이를 살 것인가. 검은 나이키 로고를 살 것인가, 빨간 나이키 로고를 살 것인가. 정가를 주고 나이키 매장에서 살 것인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살 것인가. 등등. 자본주의 상품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다양한 선택을 강요한다. 자본주의 체제 속 인간은 선택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아 죽는다. 바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죽일 것인가 ? 그러므로 자본주의 상품과 바퀴는 동일어'다.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소율. 형설시공사. 1999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아무리 봐도 이상한 사전'이다. " 서슴없이 " 란 부사'를 찾아보니 단어에 대한 뜻은 없고 대신 그림 하나가 있었다. 사슴이었다. 그리고는 붉은 X자가 그 그림 위에 겹쳐진 상태로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국어사전으로 검색하니 " 말이나 행동에 망설임이나 거침이 없이 " 란 뜻이다. 그런가 하면 " 일리있다 " 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 일리 있다 " 라고 띄어쓰기'를 해야 하는지 아리송해서 오소리입말사전'을 찾아보니 " 어떤 면에서 그런대로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이치 " 라는 뜻 대신에 " 1.2.2.5 " 라고 표시되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무릎을 아, 쳤다. 일(1) 리 (2) 있 (2) 다 (5)  아무리 생각해도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이상한 사전이다. 이왕 펼쳤으니 사전을 이리저리 살폈다. 

 

사전에 <딱정> 이라는 이름의 곤충은 없다. < 딱정벌레 > 라는 이름이 있을 뿐이다. 같은 이유로 < 사슴 > < 사슴벌레> 는 전혀 다르다. 사슴은 사슴과에 속하는 동물이고, 사슴벌레는 사슴벌레과에 속하는 곤충이다. 그렇다면< 바퀴벌레 > ?!  정식 명칭은 바퀴. 바퀴벌레가 아니다. 그러므로 바퀴는 바퀴과에 속하는 곤충이지, 바퀴벌레과에 속하는 곤충이 아니라는 말이다지구상에 바퀴벌레과  곤충은 한 마리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철썩같이 바퀴를 바퀴벌레라고 알고 있다. 그런식으로 유유상종하자면 사슴과 사슴벌레도 모두 하나다 ! 우리가 바퀴를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는 바퀴라는 곤충에 대한혐오와 경멸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둘의 관계는 곰곰생각하는발 박사의 어투를 빌리자면 < 질문 : 하우아 유 >  < 답변 : 아임 파인탱큐. 앤드 유’ > 의 관계와 같다.

 

바퀴와 벌레는 장소팔과 고춘자, 서수남과 하청일이고  유재석과 박명수, 팝콘과 콜라, 맥주와 치킨 사이. 그런데  바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백해무익한 해충일까? 인간이 바퀴를 징그러운 해충이라고 규정한 후 < 박멸 > 한다면, 어쩌면 지구는 멸망할지도 모른다. 곤충은 지구 생태계 종 70%를 차지한다. 자연생태계에서  곤충은 좋은 식량이다. 많은 동물들이 곤충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바퀴는 새나 쥐, 고양이와 개도 즐겨 먹는 일용할 양식이다. 그뿐이 아니다. 개미도 바퀴를 즐겨 먹으며, 심지어는 바퀴도 바퀴를 즐겨 먹는다. 바퀴는 닭보다 단백질 함유량이 3배나 많다 !  이 녀석은 말 그대로 단백질 덩어리다.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인 셈이다. 영양학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바퀴는 아웃벡 같은 패밀리레스토랑에 선보일 만한 자원이다.

 

조인성이 나와서 내가 다 해줄게. 바퀴 위에 구운 마늘을 이렇게 으깨서...한 입 ! “ 만약에 인간이 바퀴를 멸종시킨다면 그 영향은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바퀴의 상위 포식자는 그만큼 먹이를 먹지 못하게 되어 개체수가 줄어들고, 바퀴의 상위 포식자가 줄어들면 바퀴의 상위 포식자를 잡아먹는 상위 포식자 또한 굶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바퀴의 박멸은 생태계 재앙을 야기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 세상에 잡초라는 이름을 가진 풀은 존재하지 않듯이, 해충이란 곤충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깐 < 해충 박멸’ > 이라는 문구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낳은 존나 촌스러운 의기양양이다. 자연생태계 입장에서 보자면 바퀴는 매우 소중한 식량 자원 중 하나이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동물이 해충에 가깝다. 자연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은 바퀴가 아니라 인간이다.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에는 " 곰곰생각하는발 " 이란 낱말도 기재되어 었다. 뜻은 이렇다. " 아는 것은 많으나 깊게 알지는 못하는 놈. 이 자에게 진지하게 묻지는 말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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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야 2013-11-14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진지하게 따져 묻고 싶으데, 따져 물을 말이 별로 없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페루애님과 함께 잘 조리된 바퀴벌레 한접시 먹고 싶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4 15:48   좋아요 0 | URL
마디겠군요. 튀겨서 겨자소스에 잘 찍어먹자구요..

히히 2013-11-1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인성할아버지가 나와서 샬랑샬랑해도 바퀴요리는 사양합니다.
세계1대희귀음식이 모기눈알 요리인데
차라리 요놈으로 도전~~~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5 08:28   좋아요 0 | URL
전 한번 바퀴 요리에 도전하고 싶어요.
벌레 요리만 하는 레스토랑도 있다고 하더군요.
벌레가 맛있나 봐요.
우리 번데기는 잘먹잖아요. 그러니깐 혐오'는 일종의 편견임...
같이 먹어요. 난 다리 먹을 테니깐
히히 님은 오동통한 배 먹으세요. 뭐니뭐니 해도
육식즐기는 사람은 내장 맛이 최고죠...

피비 2013-11-1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거미는 무척 나쁜 동물이다. 건강한 거미는 목숨을 걸고 피비가 사는 방으로 가서 실컷 피비를 골탕먹인 후 은신처로 돌아와 피비를 괴롭힌 이야기를 친구 거미에게 토해 놓는다. 그러면 몸이 아픈 동료나 늙은 동료들은 그 이야기를 함께 즐긴다.

먹잇감 앞에서는 죽기 살기로 서로 싸우는 맹수보다 악하다.

내가 거미에게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 놀래키면 너무 나쁜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거미는 싱긋 웃으면서 "괜찮아 ! 난 너를 놀래켜도 모기도 잡고 벌레도 잡아주니까. 그걸로 쌤쌤이지 뭐" 라고 말해서 나를 감동시켰다.


인간은 가끔 쌤쌤을 실천하지만 거미는 날마다 쌤쌤을 실천하는 것이다.

참,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병주고 약주는 동물이다.

인간이 사악한 이유는 거미의 외모만 보고 죽여버린다는 점이다.

두꺼운 형태의 국어사전은 피비가 무섭게 생겼다고 미워하는 거미를 죽이기 위해 이용한다. 이 사전에 눌린 거미는 바로 죽어버린다. 그렇지만 끝이 아니다. 이미 피비를 괴롭히는게 재밌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동료들은 침대 뒤에 숨어서 거미가 죽자마자 피비를 놀래킬 생각에 들떠 있던 중인 것이다!


- 거미와 피비 中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5 08:26   좋아요 0 | URL
피비, 날 놀리는구랴. ㅎ.ㅎ
거미 무서워하죠 ? ㅎㅎ. 저도 거미는 정말 무섭습니다.
지네 다음으로 무서워요.
벽에 거미가 있길래 내가 쩍쩍이에게 여기 벌레 있네, 라고 했더니
쩍쩍이가 큰 거미 한 마리를 생각없이 물었는데 아마 독거미였나 봐요.
화들짝 놀라서 도로 뱉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벌레 어딨어 ? 라고 하면 일단 흥분해서 벽을 봅니다. 영리한 녀석잉요.
 

 

 

무한도전의 시작은 정말 무()한 도전이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좌충우돌을 전면에 내세운 오락프로그램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이 프로는 띨빵과 띨띠리의 만담-였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요. 빨간 것은 사과예요 ! 사과는 맛있어요. 맛있으면 바나나예요 ! 바나나는 길어요. 길면..내 거시기네요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평균 이하 헐렁이들이 아니다. 유재석 사단은 방송 3사의 모든 오락 프로를 점령했으니, 이제 평균 이하 찌질이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평균 이상이다. 오락프로의 진일보한 진화란 이런 것일까 ? 그들이 변했다. ()한 도전은 이제 무()한 도전으로 업종 변경한 지 오래이다. 스포츠댄스 경연 대회에서 경연을 하고, 봅슬레이 국제 경기에서 선수로 경기를 펼치며, 프로레슬링 경기도 소화한다. 그리고 이제는 조정 경기에 도전장을 내민 모양이다. 말 그대로 무한한 도전이다. 고생 끝에 눈물이 맺힌다. 감동이란 이런 것입니다 ! 강열한 임팩트, 긴 여운 ! 긴 건...

    내 거시기'라니까요 !

 

- 무한도전 中

 

 

 


 

 

 

홀로서기'

  

< 홀로서기 > 라는 시집'을 읽은 적은 없다. 가끔 라디오'에서 청취자 엽서 사연'을 소개할 때 종종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차 안에서 3040세대'를 겨냥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흘러나올 때 DJ가 " 에코빵빵사운드 " 로 시 낭송을 하는 것이 내가 서정윤 시를 접한 전부였다. 들을 때마다 시가 시시해서 고개를 도레도레 쳤다. 시적 서정성의 확립은 사실 미미한 수준이었다. 내 평가가 너무 도도한가 ? 미레가 창창한 시인에게 너무 야박한 평가다 싶어 작품을 진지하게 파도 파도 결과는 시시한 시였다. 어찌되었든, < 홀로서기 > 는 문학도를 열망하는 사춘기 소년이 일기장에 썼을 법한 아우라'였다. "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 라는 구절은 연애편지 쓰기에 딱이다. 나는 나중에 이 시집이 300만 부'나 팔렸다는 말을 듣고는 기절초풍할 뻔했다.

 

이 기록은 < 실미도 > 가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불행한 결과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가난에 대한 낭만적 접근에 성공한 함민복 시집이나 피고름을 짜서 완성한 김신용의 완성도 높은 시집이 3000부도 안 팔리는 판국에 < 홀로서기 > 가 300만 부'나 팔렸다니 놀라운 결과였다. 그렇다고 잘 팔렸던 < 홀로서기 > 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 디워 > 의 흥행'을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 지구를 지켜라 > 의 흥행 결과가 < 디워 > 와 바뀌었다면 한국 영화 산업이 조금 더 성숙했을 것이란 믿음처럼, 시집 판매량이 전자와 후자가 반대로 나왔다면 대한민국은 문화 강국이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어찌되었든 서정윤과 홀로서기 시집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풍문으로 들었고, 알음알음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어제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접했다.

 

서정윤이 여중생을 성추행했다는 소식이었다.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공개된 것을 보면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중앙일보가 시교육청과 경찰서에서 얻은 내용을 종합하면 " 가슴이 얼마나 컸는지 만져봐도 되나요 ? " 라고 묻거나 볼에 두 번 입술에 세 번에 걸쳐 입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반항하는 제자에게 " 가만히 있어 보세요 ! " 라고 말했다는 것.  여학생은 가마니'가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을 턱이 없고, 자신의 가슴은 젖을 뗀 지 일주일이 지난 통통한 강아지가 아니니 얼마나 컸는지 만져보겠다는 제안에 화가 잔뜩 났을 것이다. 서정윤은 격려 차원'이라고는 하나 이 정도가 < 격려' > 면 피해 여학생 입장에서는 이 < 갈려 > 할 사안이다. 솔직히 내가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라고는 했으나 사실 나는 이 사건이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유명 시인'이 어쩌면 저럴 수 있는가 라고 한탄하지만 범성론자인 내가 보기에는 시인'이라고 별다른 것은 없다. 나는 시인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다. 시인이 고고하고 단아할 것이란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시인이란 순수의 결정체가 아니다. 그냥 인간은 모두 도 긴 개 긴이다. 물론 이러한 말이 <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깐 ~  > 이라는 식으로 싸잡아서 특정 집단을 비판할 때 생기는 오류라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문학판 술자리'에 몇 번 가본 사람은 대충 돌아가는 꼴을 짐작할 수 있다. 문인들이 색기 있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인간이 색기 있다는 소리'이다. 특히 수컷의 성욕은 본능이다. 후속 보도에 의하면 2008년에는 남학생들을 성적이 안 오른다는 이유로 골프채로 때려서 징계를 먹은 기록도 있는 모양이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때릴 수 있는 자유를 당연한 권리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이 사건과는 관련없지만,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리지만 < 어르신 이데올로기 > 에 사로잡힌 어르신들이 있다. 이런 인간들은 항상 어른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 그들은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 년/놈을 모두 싸가지없다고 취급한다.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미덕이 될 수 있지만 어르신이 그것을 집요하게 강요하면 추태와 주접'이 된다. 어르신이 피죽 먹으며 피똥 싸서 이룩한 풍요로운 결과 때문에 너희들이 배부른 것 아니냐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하지 말자. 어른이라고 아이를 때릴 권리는 없다. 그런 어른은 어른 대접할 필요 없다. 국가와 꼰대가 강요하는 어른 대접은 개나 줘라.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욕을 잘한다며 혀를 끌끌차는 모양이던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자연스러운 입말'이다. 그들에게는 욕도 소통의 한 방식'이다.

 

오히려 " 요즘 아이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을 해서 걱정이에요. "라고 교양 있게 말하는 그 자세야말로 꼰대스럽다. 요즘 아이들이 싸가지가 있건 없건 그것은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어른이여, 아이들에게 지적질하지 마라. 너나 잘해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내가 보기에는 동일 계통 속에서 오고가는 욕보다는 위 아래 서열이 명확한 수직 계급 속에서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반말'이 더 심각하다. 어리다고 놀리지 마세요.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가 아니라 더러워서 말을 안 하는 것이니깐 말이다. 그러니까 나이 많다고 반말 찍찍거리지 마라. 쥐새끼도 아니면서 왜 찍찍거리나. 범성론자인 내가 보기에 < 홀로서기 > 에서 " 서다 " 라는 동사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그 뜻이 아닌지도 모른다.

 

 

서다

 

1. 사람이나 동물이 발을 땅에 대고 다리를 쭉 뻗으며 몸을 곧게 하다.

2. 처져 있던 것이 똑바로 위를 향하여 곧게 되다.

3. 계획, 결심, 자신감 따위가 마음속에 이루어지다.

4. 무딘 것이 날카롭게 되다.

5. 질서나 체계, 규율 따위가 올바르게 있게 되거나 짜이다

6. 아이가 배 속에 생기다.

7. 줄이나 주름 따위가 두드러지게 생기다.

8. 물품을 생산하는 기계 따위가 작동을 멈추다.

9. 남자의 성기가 발기되다.

 

서정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은 < 서다 > 를 ① 로 생각할 것이다. 진취적인 사람은 ③ 으로 판단할 것이다. 성모 마리아를 믿는 사람은 ⑥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범성론자는 ⑨로 이해할 것이다. 어쩌면 시인은 " 그것의 참을 수 없는 성욕 " 에 대한 번뇌를 호소하기 위해서 홀로 서기'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려던 행간은 아니었을까 ? 그래서 이제는 만나야 한다, 고 끝을 맺은 것은 아닐까 ?  라임에 욕심 내서 한번 디스하련다.  " 홀로 선다는 것은 죄 없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다들 아시리라. 하지만 교사실'에서 여학생과 둘이 있을 때 해소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그사실'은 명심했으면 ! "  서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서면 가면 밀면 좋다. 알면 좋은 정보이니 초행길에  챙겼으면. 아, 그리고 돼지국밥도 맛있다. 맛있으면 역시 바나나다. 바나나는 길다. 길면..... 

 

성욕에 의한 범죄는 어쩌면 원숭이 엉덩이'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하필 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서 사과 → 바나나 → 거시기'로 진화했으냔 말이다. 사과가 맛이 없고, 바나나도 동그란 모양이었다면 거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원숭이, 사과, 바나나'를 공범죄'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원숭이와 사과는 종북 세력으로 몰아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단하고 바나나는 공연 음란죄로 그리고 뼈도 아니면서 뼈 흉내를 내는 거시기는 명의 도용에 의한 사기죄로 다스릴 것이다. 그래야 지구에 평화가 찾아온다. 독수리 오형제는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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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11-14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로서기.. 서면.. 밀면... ㅋㅋㅋㅋ 으핳 하고 웃었네여. 제가 알고지내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들은 stand 뜻이 뭐냐며 낄낄거리고 웃지요. 참 귀여워요. 성의 /도 모르는 제가 이들을 진심으로 귀엽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건 다 페루애님 덕분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삼 감사. 이런 글을 자주 올려주셔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4 03:01   좋아요 0 | URL
아니 이 시간에 안 주무시고 뭐합니다. 진짜로 서면 가서 밀면 먹고 싶네요. 돼지 냉족발이었던가요 ? 고것도 별미라 하던데 아직 못 먹었습니다. 이런 글 자주 올리면 즐겨찾기 수가 절반으로 감소가 되어서요.. 헤헤헤...

푸르푸르 2013-11-1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국밥 정말 맛있습니다 아 해장으로 그거 먹고 싶네요~
아이 속쓰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4 10:31   좋아요 0 | URL
선생님은 왜 항상 술에 쩔어 사십니까 !! 이 댓글에 대한 답글도 뻔해보이지만...
3일째 달렸어염... 요런 거 달릴 거 뻔함..

푸르푸르 2013-11-14 15:27   좋아요 0 | URL
왜 그러십니까 전 선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술이야 늘 마시는 거니 왜 숨쉬고 사냐고 묻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질문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4 15:43   좋아요 0 | URL
사실 그 표현이 이미 예상했었습니다 ~

나탈야 2013-11-1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시 페루애님은 이시대의 진정한 범성애자이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4 15:43   좋아요 0 | URL
범성애자가 아니라 범성론자입니다.

엄동 2013-11-1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은 오픈형 범성론자 즉 인퍼블릭"형!
곰발님외 수컷은 체면상아닌척"형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4 15:44   좋아요 0 | URL
아닌 척하는 놈들은 꼴도 보기 싫습니다.

히히 2013-11-15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고생 때 [홀로서기] 정말 인기 많았는데.
TV 없애고 난 뒤 소식통이 많이 늦습니다.
이외수 혼외아들 사건도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최악의 사기죄 공범 히히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5 08:29   좋아요 0 | URL
티븨 없애길 다행입니다.
보면 볼수록 병신 같은 기계가 티븨'임...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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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가을이었던가 ? 열린 창문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나비는 내 방으로 들어와 나무의 섬유질로 만든 종이 책냄새를 맡으며 이리저리 호들갑스럽게 날아다녔다. 그날 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잠을 잤다. 나비를 가두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칼바람이 불었으리라.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며칠을 앓았다. 그렇다고 떠나버린 나비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벽 모퉁이에서 꼼짝도 않고 붙어 있는 나비를 발견했다. 날개 모양과 색깔로 보아서 며칠 전에 날아들어왔던 그 나비였다 나비가 나갔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비는 그동안 내 방에서 갇혀 있던 것이다. 사흘 동안 굶었을 생각을 하니 이만저만 미안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두 손으로 손 감옥을 만들어서 나비를 가두었다. 나비는 그때서야 자신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손 감옥으로 나비를 가두기 전에 이미 내 방에 갇혀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나비는 자신이 오래 전에 갇혔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창문을 열었다. 두 손을 펼쳤다. 나비는 잠시 내 손바닥 위에 앉아 있다가 이내 팔랑거리며 밖으로 날아갔다.

- 쇼생크 탈출 3, 당신은 독살에 갇힌 죄수다 中

 


 

 

 

 

 

 

정직한 사람에게는 소리가 난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걸어갈 때 발소리가 나는 법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대지 위를 살금살금 돌아다닌다. 보라, 달이 고양이처럼 다가온다. 정직하지 못하게스리.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프리드리히

 

 

 

 

 

속초 미라지 모텔 달방'에서 1년을 살았다. 원래는 지붕 낮고 마당 넓은 집을 찾기 전까지 잠시 머무를 요량이었다. 텃밭은 아니더라도 작은 터앝 하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에 살던 집 전세금이 집주인 사정과 묶여서 재판에 걸리는 바람에 집을 얻을 수도 없는 노릇이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모텔 달방'에서 살았다. " 달방 " 이란 모텔에서 先월세'를 달마다 미리 지불하는 형식이었다. 이곳은 주로 장기 투숙자들이 묵었다. " 달방 " 이라고 하니 이름은 꽤나 낭만적이고 근사했지만 사실 달방 세입자들은 대부분 유흥업소 여성들이나 그녀들이 매춘을 해서  번 돈을 갈취하는 기둥서방들 그리고 떠돌이 노역자가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밑바닥 인생'이었다. 대포항 방파제 공사현장에서 틈틈이 일을 했고 극장 영업이 끝나면 카페트나 의자를 소독하고 청소하는 일을 했다. 제임스 조이스나 프르스트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던 욕심과는 반대로 나는 날마다 술을 마셨다. 

 

달방은 감방'이었다. " 둘러보아 사방 네 벽 감방에서 /  갖고 놀 만한 것이라고는 네 자지말고 없다는 것을 ( 시 독거수 부분 / 김남주 作 ) " 깨닫게 되었다. 비가 오거나 일이 없을 때에는  아침 9시에 도서관에 갔다. 그때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바로 < 리타 헤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이었다. 영화로는 이미 숱하게 보았지만 원작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중편 분량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두 번 읽었다. 그리고 나서 시청각실'에 가서 < 쇼생크탈출 > 을 신청해서 보았다. 우울할 때마다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대부분 원작에 충실히 따랐지만 몇몇은 약간씩 다르다. 도서관 사서'로 나오는 브룩스는 소설에서는 자살이 아니라 빈민 노인수용소'에서 죽은 것으로 나온다. 소설 속 브룩스'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 브룩스의 나이는 68세였고, 거기에 관절염까지 있었다. 감옥 문을 나가면서 그는 한참을 울었다. 쇼생크가 브룩스의 세계였던 것이다. 브룩스에게 벽 밖의 세계는 15세기에 미신을 신봉하는 선원들이 생각하던 대서양처럼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감옥 안에서 브룩스는 중요인물이었다. 도서과의 사서였고 배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키터리 도서관에 가서 취직시켜 달라고 말한다고 해도, 취직은커녕 대출 카드조차 받지 못할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브룩스는 1953년에 프리포트 가까이에 있는 어느 빈곤 노인수용소에서 죽었다. ( p70 ) "

이 부분을 읽다가 잠시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3월을 며칠 앞둔 2월 늦겨울이었다. 하지만 속초에서는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계절이기도 했다.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렸다. 여름에 내리는 비는 시끄럽지만 겨울에 내리는 눈은 조용하다.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때 창밖을 보면 영락없이 눈이 내렸다. 나는 늙은 사서 브룩스가 교도소 철문 앞에서 오랫동안 한참을 울었다는 문장 앞에서 먹먹해졌다. 그는 50년 가까이 이곳 쇼생크 교도소'에서 살았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들어와서 한평생을 이곳에서 산 것이다. 그는 자유에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규제'에 길들여진 인간이었다.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험프리 보가트가 나오는 < 카사블랑카 > 를 좋아했던 나의 옛 애인은 이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늘 낮게 속삭였었다. " 카사블랑카여, 영원하라 ! "

브룩스가 흘린 눈물은 쇼생크'와 결별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곁을 떠나는 애인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여자의 마음은 쇼생크 교도소 철문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나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해 봄, 나는 속초로 떠났다. 영화와 소설에서 가장 많은 차이가 나는 인물은 바로 교도소장'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새뮤얼 노튼 교도소장을 비롯해서 다양한 전임 소장들이 등장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교도소장'을 하나로 묶어 워든 노튼 교도소장'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원작에 비해 설정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나 소설 속 새뮤얼 노튼 소장은 영화와는 달리 티미'를 살해하지도 않았고 권총 자살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조용히 몰락하는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소설과 영화 중 어느 작품이 더 좋은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않겠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더 좋아 아니면 아빠가 더 좋아 라고 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침 9시에 도서관에 가서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을 두 번 읽고 나서 도서관 내 시청각실에 가서 < 쇼생크 탈출 > 을 보고 나오니 밖은 어두웠고 눈은 밝게 빛났다. 자전거를 두고 가게에 들려 소주 2병을 산 후 달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머무는 객실 옆에 사는 여자는 항상 새벽 4시에 들어왔다. 퇴근 시간으로 보아 유흥업소에 다니는 여자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105호에 입주했을 때 103여자는 다음날 입주했었다. 우리는 모텔 투숙 동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텔 장기투숙자라는 것이 그렇게 떳떳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 여자는 늘 취해 있었다. 내가 머무는 객실 복도를 지나칠 때에는 항상 불규칙적인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의 비틀거리는 하이힐 소리를 좋아했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걸어갈 때 발소리가 나는 법이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곧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이내 조용해졌다. 간혹 변기 뚜껑을 열고 토악질하는 소리가 들렸을 뿐 여자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티븨 소리도,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 아가씨였다. 어느 날 날품을 팔고 돌아와 보니 객실 문고리'에 검은 비닐봉투가 걸려 있었다. 그 속에는 귤과 쪽지 편지'가 있었다. " 기침을 심하게 하시더군요. 귤을 사다가 생각나서 나눕니다. 빈 속에 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세요. 103호 " 낯익은 글씨체'였다. 헤어진 옛 애인의 글씨체와 비슷해서 눈물이 났다. 

나는 다음 날  < 리타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이라는 책을 사 그 속에 손편지를 넣어 103호 객실 문 옆에 두었다. " 제가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읽어보세요. 105호 " 얼굴은 알지 못하나 편지를 주고받았으니 일종의 펜팔이었다. 며칠 후 문 틈 사이로 쪽지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 저는 카사블랑카'를 좋아해요. 103호 " 우리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신을 왕래했다. 어느 날이었다. 103호 여자가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왔다. 목소리에서 쨍쨍 쇳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얼마나 울고 싶었을까 ? 얼마나 외로웠을까 ? 낯선 타관에서 얼마나 그리웠을까 ? 다음날 복도에 사람들이 분주히 다니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일꾼들이 103호 객실에서 벽지를 뜯어내고 있었다. 카운터 주인에게 103호 여자의 행방을 물었다. 카운터 직원은 말했다.

" 무슨 말이에요. 103호는 물이 새서 그동안 방을 놓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방수 공사를 하는 거예요. 이 방을 창고로 쓴 지 벌써 1년이 넘었는걸요. 103호 여자라니 무슨 말인가요 ? 환상의 여인'이라도 되나요 ? " 카운터 여자'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말을 꺼내려다 이내 말문을 닫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귀신에 홀린 듯했다. 비틀거리는 하이힐 소리와 벽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았던 쪽지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서울에 사는 친구였다. s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s는 내 옛 애인의 여동생과 사귄 적이 있는 친구였다. 그를 통해 옛 애인을 만날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급히 서울로 내려갔다. 장례식장에서 옛 애인의 여동생을 만났다. 어색한 침묵이 오래 지속되었다. 내가 어렵사리 언니에 대한 근황을 묻자 여동생은 망설이다 말했다.

" 언니는 자살했어요. 오빠와 헤어지고 나서 말이에요. 아직 모르고 있었군요. 좋은 소식이 아니니 굳이 헤어진 애인에게 소식을 전할 필요는 없었죠. 경찰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강원도에 위치한 영안실이었어요. 아마... 작년 이쯤이었지 싶어요. 강원도에는 3월인데도 폭설이 내리더군요.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직원 안내를 받고 따라간 곳은 어느 모텔이었어요. 언니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거죠. 경찰 말로는 언니가 이곳에 달방을 얻은 관계로 기간이 투숙 기간이 남아 있어서 유품 정리'를 따로 안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유품이라고는 별로 없었어요. 책 한 권에 옷 몇 벌. 그리고 껍질을 까다 만 귤이 전부였어요. 네에 ? 아.... 그 책 이름이.... 아, 그래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었죠. 바로 어제가 일 주기 기일'이었어요. 이제 우리 가족은 오빠를 원망하지 않아요. 결혼을 반대한 것은 우리 쪽이었으니 말이죠. 다 지난 일이잖아요.  "  

봄이 오자 나 또한 미라지 모텔을 떠났다.  떠나기 전 주머니칼로 벽 모서리 끝에 " i was here " 라고 새겼다가 다시 " we were here " 라고 고쳤다.  모텔 문을 나가면서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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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야 2013-11-13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캬... 좋다.
교도소의 철문을 굳게 닫힌 그녀의 마음으로 묘사한 부분이 특히 좋았습니다.

됐고!

네이버에 빨리 돌아오셈.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3 11:52   좋아요 0 | URL
네이버에서 이웃들에게
무시(전라도 방언 무 ) 도 아니면서 무시당하고
멸치도 아니면서 멸시당한 생각을 하면 화병납니다.
언젠가 네이버 본사 불질러서 네이버 이웃들 다 쫒을거임..

나탈야 2013-11-1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리 블로그 데이터 백업해놔야겠다. 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3 15:11   좋아요 0 | URL
그럼 백업을 공격하게씀..

히히 2013-11-15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필 [달방]으로 가셨답니까?
음기가 강한 곳이니 처녀귀신이 출몰하지요?
아~~~우
빨간종이 줄까?
파란종이 줄까?
하얀종이 줄까?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5 08:23   좋아요 0 | URL
별로 안 웃기군요. 흠흠...
 

 

 

을(乙)들의 희망’으로 불리는 경주마 ‘차밍걸’이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생긴 이래 최다연패 신기록을 세웠다. 2005년 태어난 8세 암말 차밍걸은 26일 경기도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제6경주에 출전해 11마리 중에서 9번째로 골인했다. 이로써 2007년 데뷔, 7년간 96번 경주에 출전한 차밍걸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며 자신과 당나루(1995년 기준)가 갖고 있던 95연패 기록을 넘어섰다. 차밍걸은 다른 경주마보다 몸무게 100㎏이 덜 나가는 430㎏의 왜소한 말. 1등은 못하지만 끝까지 열심히 뛰는 ‘소시민’ 또는 성실한 ‘을’로 비유되며 서울 경마공원의 ‘화제마’로 부상했다. 차밍걸이 96연패 기록을 세운 26일, 1등 기수보다 더 조명을 받은 기수가 있다. 차밍걸의 기수 유미라(29)씨다. 2008년 6월 기수로 데뷔한 유씨는 같은 해 8월 차밍걸을 처음 타 12두 가운데 6위를 한 이래 차밍걸이 출전한 96회 경주 중 75번을 함께 달렸다.유 기수는 “오늘도 레이스 중반까지 꼴찌로 처졌다. 하지만 끝까지 열심히 달려 직선주로에서 두 마리를 제쳤다. 1등을 못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꼴찌도 안 하는 투지 있고 열심히 뛰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 신문에서 기사 발췌, 이해준 기자

 

 


 

 

 

지지 않는다는 말과 죽지 않는다는 말 !

 

 

당시 나는 ●●사단 ●연대 대표 명사수'였다. 연대장은 진급에 환장한 사람이어서 사격 선수로 뽑힌 병사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 " 둥근 해가 뜨면 / 자리에서 일어나서 / 제일 먼저 이를 닦고 / 윗니 아랫니 닦았다 / 세수할 때는 깨끗이 / 이쪽 저쪽 목 닦고 / 머리 빗고 옷을 입고 / 거울을 보았다 / 꼭꼭 씹어 밥을 먹고... "  총을 메고 사격장에 갔다. 시바 !  해 질 때까지 총만 쐈다. 군 제대할 때까지 100발 정도도 못 쏘고 제대하는 병사가 수두룩했지만 나는 하루에 평균 100발 정도 쏘았다. 그짓을 무려 4개월 동안 했다. 아시다시피, 총소리'는 고막을 찢을 만큼 강력했는데 4달 동안 그짓을 하다보니 나중에는 청각에 이상이 왔다. 이명'으로 시작된 청각은 점점 약해져서 결국에는 가는귀먹게 되었다. 더군다나 요즘은 시력마저 급격하게 나빠져서 정상적인 감각이라고는 촉각 밖에는 남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무근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각적 존재'가 될 판이었다. 속절없이 늙는 것도 서러운데 무근과 무각의 존재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다. 요즘은 출판업계도 불황인 탓에 선정적인 제목으로 소비자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얄팍한 상술을 선보이는 출판사가 많아진 모양이었다. 압권은 " 성 병신 " 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이었다. 도가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런 제목을 단 작가는 누구일까 ? 살펴보니.... 읭?! 카프카였다 ! 카프카가 영혼을 판 것이다. 다시 보았다.  제목은 성 병신'이 아니라 장편소설 < 성 > 과 단편 < 변신 > 을 한데 묶은  < 성/변신' > 이었다. 내가 착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 모두 가죽으로 > 라는 공방 가게 간판을 < 모두가 죽으로 > 라고 착각한 적도 있었다. 예식장에 간다는 소리는 장례식장에 간다고 웃으면서 말해서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이런 착각과 실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김연수 산문집 < 지지 않는다는 말 > 을 두고도 주먹을 불끈 쥔 적이 있었다. 표지에 박힌 타이포그래피는 < 지지 > 와 < > 은 폰트가 크고 굵은 반면에, < 않는다는 > 은 그에 비해 폰트와 굵기'가 상대적으로 작고 얇아서 < 지지 > 와 < 말 > 만 눈에 들어왔다. 큰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지만 문제는 내가 시력이 나빠서 < 자지 > 와 < 말 > 로 이해를 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표지에는 빨간 코끼리가 있으니 말(語)을 말(馬)로 받아들였다. 시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가 뭐냐. 너희들 영혼을 팔았냐, 이 색휘들아 !   도대체 이토록 선정적인 제목을 단 사람은 누구일까 ? 마광수일까, 황병승일까 ? 황병승... 그래, 황병승일 거야. 미래파들은 다 그래. 그런데 놀랍게도 김연수'였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문장으로 유명한 김연수가 이런 파격적인 제목을 달았다고 생각하니 납득이 가지 않아서 다시 보았다.

 

< 자지 않는다는 말 > 이 아니라 < 지지 않는다는 말 > 이었다. 여기서 말은 내가 생각하는 그 말이 아니었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말이 그 말이 아니라 과천에서 뛰어노는 말인 줄 알았던 것이었다. 청각에 의한 착각은 더욱 심했다.  예를 들면 " 내 안에 너 있다 " 는 말은 내 귀에는 < 내 아내 너(의 집에) 있다 > 로 들리는 것이었다. " 왜 내 아내가 네 집에 있냐 ! ( 씩씩씩 ) " 이 자리를 빌려 일말의 주저 없이 고백하련다. 두 말 하지 않으련다. 세 말 하면 잔소리이니 말이다. 내 말의 요지는 " 나란 놈은 범성론자 ! " 라는 말이다. 그동안 나쁜 시력과 청각 탓을 했지만 사실은 뭐 눈에는 뭐만 보인 꼴이었다. 머리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나는 곰곰 생각했다. " 나는 왜 범성론자가 되었는가 ? " 남 탓을 하자면 프로이트 때문이었다.

 

나는 프로이트 전작주의자'였다.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프로이트 전집을 구매해서 여러 번 읽었다. 프로이트 논문은 딱딱한 학술서이기보다는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 창작물처럼 보였다. < 꼬마 한스 >, < 쥐 사나이 >, < 도라 케이스 > 는 서스펜스 소설처럼 읽혔고, < 그라디바 > 와 < 모래 사나이 > 는 공포 소설 같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 창조적 작가와 몽상 > 은 문학 평론이면서 미술 평론'이었고, < 문명과 야만 > 은 문화인류학으로 이해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자이면서 뛰어난 소설가였고 동시에 문학평론가요, 문화인류학자'였다. 프로이트 이전 시대가 聖적인 인간'에 대한 욕망을 열망했다면 프로이트는 인간을 철저하게 性적인 인간으로 이해했다. 聖적인 인간은 없다. 오로지 性적인 인간만 존재한다. 나는 프로이트의 황소 고집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 또한 범성론자가 되었다.

 

범성론자가 된 이후로는 인간은 모두 도 긴 개 긴'이었다. 교사나 교장이나 교육감이나 교육부장관이나 같은 부류였다. 혓바닥은 공자, 맹자, 플라톤'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머릿속에서는 10분마다 섹스를 생각하는 존재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10분마다 섹스를 생각한다. 각하도 허각도 허공도 허허허허, 다 그런 생각을 하리라. 오죽했으면 기타노 다케시는 이런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 모두 다 하고 있습니까 ? " 이 말은 꼭 " 안녕하세요 ? " 나 " 식사 하셨어요 ? " 라는 상투적 인삿말처럼 들렸다. 모두 다 하고 있습니까, 는 오갱끼데스까'이며 와따시와 갱끼데스'였다. 범성론적 시각으로 영화를 보면 꽤나 황당한 분석이 가능하다. 영화 < 킹콩 > 을 범성론적 시각으로 해석하면 " 성기 사이즈'가 서로 맞지 않아서 오게 되는 섹스리스 혹은 섹스트러블에 대한 수컷의 울분 " 이다.

 

여기에 사회비판적 요소를 가미하면 " 킹콩은 흑인에 대한 은유'이다. 킹콩이 백인 여자를 욕망할 때, 백인 사회'는 철저하게 응징한다. 킹콩은 흑인이 백인 여자를 욕망하는 것에 대한 백인들의 히스테릭을 다룬 "  영화가 된다. 백인 사회에 퍼져 있는 이종교배'에 대한 불쾌감은 한국배우인 비가 주연을 맡아서 화제가 된 < 닌자 어새씬 > 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백인 마초'가 흑인 미녀나 동양 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정작 흑인 남성이나 동양 남성이 백인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는 불쾌감을 표시한다. 영화 < 닌자 어새씬 > 에서 비와 사랑을 나누는 여성은 백인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다. 헐리우드는 백인 배우가 예쁜 동양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꼴은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동양 배우'가 늘씬한 백인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꼴을 못본다. 그래서 비에게 흑인 여성을 파트너로 정한다. 유색인종은 유색인종끼리 끼리끼리 놀라는 속셈이다.

 

현대 문명은 오랫동안 남성이 지배했다. 이 말은 곧 남성 욕망이 문명 속에 뿌리 깊게 박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10분마다 섹스를 생각하는 놈들이니 곳곳에 영역 표시를 했을 것이다. 가부장 중심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영화 < 실미도 > 는 고개 숙인 남성'에 대한 자기 연민'을 다룬다. 1000만 관객 동원은 불길한 증후였다. IMF는 딱딱한 아버지를 물렁물렁한 아버지로 만들었다. 이 위기 속에서 등장한 < 실미도 > 는 물렁물렁한 아버지를 위한 위로 영화'였다. 훈련 도중 다리'를 다친 찬석 ( 강성진 ) 이 동료들을 향해 울면서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고 감동적으로 울먹일 때 상필 ( 정재영 ) 은 외친다. " 우린 죽지 않아 !!!!! " 나는 이 말이 딱딱한 남근을  욕망하는 절규처럼 들렸다. 실직은 곧 사회적 임포텐츠'였다.

 

실미도 부대'는 사형수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그것은 사회 체제 내 포섭 대상이었던 30대 이상의 남성이 정리해고로 인해 체제 밖으로 쫒겨난 상황과 유사했다. 영화 속 사형수는 직장에서 쫒겨난 아버지에 대한 은유였다. 강우석은 실의에 빠진 한국 남성들에게 해병대 극기 훈련'을 받고 새롭게 갱생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한물간 선수들을 모아서 " 헬 오브 지옥 " 같은 동계 훈련을 통해 심신을 단련한 후 재무장하여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는 스포츠 서사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섞었다. 남성혈맹, 스포츠 서사, 반공 이데올로기가 섞인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테스토스테론이 작렬하는 남성 판타지 영화'였다. 이 영화가 시대적 우울에도 불구하고 1000만 관객에 성공했다는 점은 위기의식을 느낀 중년 남성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기를 느낀 남성들은 이 영화를 통해 위로 받았다.

 

위로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성만을 위로하는 것은 쪼잔해 보인다. 한국 사회는 남성이 힘들면 여성은 남성보다 2배 더 힘든 구조'이다. 이 구조를 외면한 채 불쌍한 한국 남성'만 외치는 것은 뻔뻔한 것이다. 내가 영화 < 실미도 > 의 흥행을 두고 불행한 증후'라고 말한 이유는 위기를 애국심'에 호소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 태극기 휘날리며 > 와 < 실미도 > 는 전형적인 반공영화'이다. 여기서 적은 북한으로 설정되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 적 > 은 < 경제 위기 > 이다. 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남성들의 군사적 혈연동맹'이다. 영화 < 실미도 > 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애국심을 강조한 유사 파시즘을 제안한다. 그래서 불길한 것이다. 이처럼 범성론적 시각을 무조건 허무맹랑한 잡설로 치부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을 싸잡아서 범성론적 시각으로 판단하는 것에는 오류가 따르지만 적어도 사회를 욕망하는 유기체로 보았을 때에는 매우 유용한 시각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 에일리 누드 유출 > 에 대한 소식으로 시끄러웠다. 솔직히 나는 이 에피소드가 왜 논란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포르노를 워낙 많이 보아서 그런지 에일리의 누드'는 오히려 아름다워서 그 건강한 육체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 브라보 ! 에일리 가는 길에 영광있으라 ! " 그런데 이상한 기사 하나가 내 눈에 띄었다. 텐 아시아'가 전송한 기사였다

 

 

 

논조는 에일리 누드 의혹이 미국에 기반을 둔 영어 사이트'에 올라와서 국가적 망신'이라는 뉘앙스'였다. " 국제적으로 민망한 상황 " 이라고 점잖게 말했으나 사실은 " 나라 망신 "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나라 망신'이라는 것일까 ? 한국산 나체 사진이 돌아다녀서 ? 그런 식의 논리가 맞다면 미국은 패리스 힐튼 때문에 얼굴을 못 들고 다녀야 한다. 배선영 기자의 논리가 맞다면 나체 사진과 수많은 섹스 동영상이 유출된 미국은 히잡 쓰고 다녀야 한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패리스 힐튼 섹스 비디오가 파문을 일으켰을 때 적어도 패리스 힐튼 때문에 미국이 국제적으로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겠네,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에일리의 누드 사진은 국제적으로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 여기에는 한국 남성의 남근적 욕망을 대리하는 줏대없는 시선이 자리 잡고 있다. " 나라 망신 " 이라는 논조는 여성-육체와 여성-욕망'을 개인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고 국가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러한 사고는 남근주의에 기반을 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개인의 육체를 국가 소유라고 생각할 때 파시즘은 작동한다. 한국 사회는 파시즘이 도래할 가능성이 있는 사회가 아니라 이미 파시즘 사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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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11-13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링크한 책을 보고 기대한 내용과 글의 결말이 백만 광년 쯤 멀리 있어서 놀랐어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3 04:29   좋아요 0 | URL
뒤통수 치는 거죠... 제가 뒤통수를 잘 칩니다. 그래야 읽는 맛이 있더라고요.
예상 가능한 글만큼 재미업슨 것도 없어요. 잘지내십니까 ? 시미코 만화 재미있더군요.
알고보니 요거 내가 좋아하든 일본드라마 원작이더군요...ㅋㅋㅋㅋ 이런 스타일 무지 좋아합니다.
황당하면 할수록 좋아요..

poptrash 2013-11-13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에일리 누드로 끝나다니 한참 웃었네요 ㅎㅎ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4 00:33   좋아요 0 | URL
전 아무래도 저 책 디자인 한 사람 범성론자 같아요.
지지 말 빨간 색 등등... 뭔가 성적인 것을 의도적으로 뿌린 것 같습니다.

yamoo 2013-11-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리히 프롬과 에코 그리고 쿤데라 전작주의자 였죠.ㅎ
프롬 저서는 번역된 거 다~~모았는데, 에코는 열린책들에서 에코매니아판 냈을 때, 완전 좌절했다는...ㅜㅜ
새물결에서 낸 에코 에세이만으로 위안을...ㅎ
쿤데라는, 니미....전집이 나올 줄이야.....OTL 이전에 출간된 건 다~~구색을 맞춰놨는데...어쩌라구..ㅜㅜ


이번 글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4 00:36   좋아요 0 | URL
쿤데라 전작주의자는 행복한 사람이죠.. 할만 함...
전 프로이트와 니체 전작주의자였는데... 오, 아니다. 셔록홈즈도 전작했구나..ㅎㅎㅎㅎ. 홈즈는 별로 없으니 감흥이 없는데 애거사 전작하신 부는 뿌듯할 거 같습니다. 전 솔직히 한 출판사에서 스티븐 킹 전작 나오길 기대하며 10년을 버티고있는데 안 나오네요.. 아마 저좍권이 여러 출판사 몫으로 가서 그러나 봅니다.
사실 킹 소설 중 안 나온 작품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빨리 나오길 바래요. 딱 독립적인 전집 있잖아요.
밀리엔셀러 시리즈 중 몇 권이 아닌... 아무래도 가능성은 황금가지'가 해야 할 것 같은데.. 흠흠...
쿤데라 책을 전집처럼 꾸미는 방법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같은 책종이 사서 쿤데라 책만 포장해 봐요. 그럴 듯하지 않겠습니까 ?
오, 이거 방금 제가 생각한 건데 그럴 듯한데요 ?
+
저도 소새키 책 꽤 되는데 아 이번 소새키 전집은 정말 갖고 싶더라고요. 계속 고민 중입니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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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키 호러 픽쳐 쇼 > 라는 컬트 영화를 300번 넘게 감상하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이 있다. ( 컬트라는 것의 정의 중 하나가 반복 관람이기는 하지만 300번이라면 도를 넘은 것이다. ) 그는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오로지 록키 호러 픽쳐 쇼'에 대해서만 썼다고 한다. 1회 감상에 1페이지 분량의 글감이 나온 셈이다. 만약에, 그가 500번 넘게 봤다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쓸 수 있을까 ? 우리라면 엄두도 못낼 것이다. 1번 볼 때마다 코 파고, 1페이지'를 작성할 때마다 피, 똥, 싼, 다. 하지만 그 록키 호러 열혈 무명씨'라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 록키 호러 픽쳐 쇼 > 를 볼 때마다 " 반복 " 을 경험하지만 그는 볼 때마다 " 차이 " 를 경험한다. 이 차이는 다시 보기(반복)의 결과이다. 300번을 넘게 본 그는 볼 때마다 즐거워서 비명을 지르고,  3번째 보는 우리는 지루해서 댄스홀에서 지루박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이처럼 차이'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들은 하하하

- 록키 호러 픽쳐 쇼 中

 

 

 


 

 

 

 

 

시간과 압력에 대한 단상.

 

 

나는 한결같이 나 자신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치는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미치는 것이다.

 

- 사랑의 단상 中 동문선 176,  롤랑 바르트

 

 

 

안양 새마을 금고 강도 사건

틈틈이 회계사 시험 준비'를 했다.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선배들로부터 칠전팔기할 각오가 아니면 제풀에 지쳐서 포기하게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선배들은 종종 빈정 반 농담 반 섞어 말하고는 했다. " 곰곰발'은 키도 작은데다 집도 가난하니, 결혼정보회사 듀오 같은 곳에서 너에 대한 점수를 매기면 0점에 가까울 거이. 그러니 연봉이라도 빵빵한 직업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냐 ? "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아침에는 곰 쓸개를 씹고 저녁에는 바늘 방석 위에서 잠을 잤다. 다행히 나는 행운이 따라서 이전삼기 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가문의 영광이었다. 회계사 합격 후 결혼 정보 회사인 듀오'에 가입했다. 내 점수는 0점에서 65점으로 뛰었다. 이 점수는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최대였다. 내가 아무리 기를 써도 나라는 인간은 대한민국에서는 65점이 최고 점수였다.

90점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가 강남에 살아야 했고(10점), S대를 졸업해야 하며(10점), 키가 180은 넘어야 했다(10점). 나 같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노력해서 수우미양가 중 미'에 해당하는 신랑감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폴레옹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그 또한 기껏해야 70점짜리 신랑감이 되었을 것이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은 60점짜리 신랑감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광화문에 있는 국내 4대 회계법인 EY한영'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내 계획은 달랐다. 내 목표는 공인회계사'가 아니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은 보다 원대한 목표를 위한 작은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과정 중 하나였던 것이다.  나는 2009년 5월 경기도 안양 새마을 금고'에서 돈을 훔쳐서 달아나다가 잡혔다.  경찰에 잡히는 과정도 내 계획 가운데 하나였다.

내 마지막 목표는 안양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이었다. 당시 언론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공인회계사 자격 시험에 합격한 엘리트가 은행 강도로 돌변했다는 사실은 매력적인 기삿거리'를 제공했다. 심지어는 이명박 각하'도 월례 회의 때 이 사건을 거론하며 요즘 젊은이들의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는 구치소 수감 중 그 소식을 들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 너나 잘하세요! " 내 목표는 교도소에 수감되어서 교도소장의 회계'를 봐주다가 세탁한 돈을 갖고 탈출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이 목표인 사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 쇼생크 탈출 > 에 대한 썰'을 풀어야 한다.

 

교화되셨습니까 ?

< 아비정전 > 을 40번 넘게 보았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72664 ) 하지만 이 " 오따꾸적 열정 " 은 억지에 가까웠다. 세 번째 감상까지는 황홀했으나 열 번'을 넘기자 이 영화가 서서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번 넘게 본 이유는 기록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나는 거들먹거리는 정성일 키드'를 만나면 사용할 요량으로 아비정전 40회 관람'을 히든 카드로 준비한 것이었다.  반은 모니터로 보았고 나머지 반은 스크린을 통해 보았다. < 아비정전 > 은 왕가위 영화제나 장국영 추모제를 통해 자주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제를 찾아다니면 보았던 것이다.  부산, 전주, 부천 영화제를 돌아다녔다. 40번 넘게 보았다는 말에 정성일 키드'들은 내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다함께 외쳤다. " 곰곰생각하는발,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 "

하지만 나는 이 행위'를 두고두고 후회했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황홀은 점점 무덤덤한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끝이 보이는, 오래된 연인 사이에서 감지되는 권태 말이다. 열정이 독이 된 케이스'였다.   이 사건 이후로는 한 영화'를 반복적으로 보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 정성일 키드的 허세 " 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틀어졌다. 영화 < 쇼생크 탈출 >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이 영화에 욕심을 냈던 것은 아니었다. 케이블 티븨 OCN 영화 채널에서 상영할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 영화에 홀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열 번을 넘기고, 스무 번을 넘겼다. 그리고 이제 서른 번째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의무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 아비정전 > 과는 달리 보면 볼수록 더욱 재미있고 숨겨진 의미도 더욱 풍부해지는 영화였다. 

 

달착지근한 맛

스물아홉 번째 영화와 서른 번째 영화 감상은 서로 달랐다. 내가 서른 번째 영화 감상에서 건져올린 주제는 교화와 지질학이었다. 가석방 심사평가위원회는 장기수 레드 ( 모건 프리먼 ) 에게 뻔한 질문을 던진다. " 교화되셨습니까 ? " 레드는 취업 면접관 앞에 선 취업 준비생'처럼 판에 박힌 입사 지원 동기를 쏟아낸다. " 그럼요. 헤헤. 30년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지난날을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헤헤. 심사평가위원회 나리님들, 그 전의 레드가 아닙니다요. 헤헤. 철저한 교화'를 통해 전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헤헤. 나가면 착하게 살겠습니다. 헤헤. "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기각'이다. 가석방 대상에서 탈락한 것이다. 10년이 흐른 후 다시 한번 가석방 대상'이 된 레드는 가석방 심사평가위원회 앞에서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 교화 ? 교화되었냐고 내게 묻는 거요 ? 이따위 프로그램은 국가가 당신들에게 직업을 주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하지. 이곳에서 40년을 살았소. 날마다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소. 눈을 감으면 그때 일이 악몽처럼 생각났소. 그리고는 이내 후회가 찾아왔지....... 어리석은 행동이었으니 말이오. 이 속내는 당신들 앞에서 알랑방구나 꿔서 잘보이기 위한 게 아니오. 난... 정말 날마다 후회를 했지. 하지만 내게 교화되었냐고 묻는다면 달리 할 말이 없소. 난 그냥 나일 뿐이오. "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문득 < 사랑의 단상 / 롤랑바르트 > 이 떠올랐다. 롤랑바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 " 나는 한결같이 나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치는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미치는 것이다. " 지난날을 후회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교화된 것은 아니다. 후회는 후회일 뿐이고, 교화는 교화일 뿐이다. 원석을 다듬어서 보석'으로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연마에 가까운 관리'일 뿐이다.

모든 인간은 타락한다. 롤랑바르트가 한 말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비정상은 불변의 결과이고 정상은 가변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전자는 순수한 것이고 후자는 타락한 것이 된다. 미치지 않은 채 어른이 된 자는 모두 타락한 자'이다. 틀린 문장이나 비문은 교정 작업을 거쳐 수정하면 되지만 마음은 원고지에 쓰여진 비문이 아니라 심장에 새겨진 문장이기에 지울 수 없다.  < 쇼생크 탈출 > 은 모든 대사'가 기억에 오래 남을 명대사들이다. 오래 씹으면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 칡뿌리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 꿈은 앤디 ( 팀 로빈스 ) 처럼 살아가는 것이 되었다.  계획대로 나는 안양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내 감방에는 리타 헤이워드 대신 한가인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였다. 그곳에서 나는 교도소장이 불법적 행위를 통해 몰래 가져온 돈을 세탁했다. 전두환 비자금'으로 구권 만 원짜리 다발이었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피하는 것

내가 하는 일은 돈을 세탁한 후 다리미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냄새 제거를 위해 페브리스'를 뿌렸다. 그 돈은 불특정다수의 계좌에 이체한 후 다시 한 계좌로 모였다. 백 억이 넘는 돈이었다. 천둥 번개가 매섭게 내리치는 날이었다. 철문이 닫히고 취침 점호가 끝나자 안은 어두웠다. 나는 어둠 속에서 벽에 걸린 한가인'을 오랫동안 주시했다. 이때 번개가 내렸다. 안이 환해졌다. 하나, 둘, 셋....  천둥소리는 정확하게 셋을 센 후 들려왔다. 다시 번개가 내렸다. 하나, 둘, 셋.... 우르릉 쾅쾅 ! 내가 한가인을 볼 수 있는 시간은 3초가 전부였다. 나는 낮게 속삭였다. " 굿바이, 올리비아 핫세 ! " 하지만 운명이란 기묘한 것이다. 계획에 없던 돌발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벽을 뚫고 나가자 건물의 내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갖 하수관으로 뒤엉킨 곳이었다.

나는 밖으로 연결되는 하수관을 뚫기 위해 무거운 돌을 집었다. 번개가 내리고 나면 천둥이 치리라. 번쩍이는 불꽃이 조용히 어두운 교도소 건부 내부를 밝게 빛냈다. 하나, 둘, 셋 !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에 맞춰 무거운 돌을 힘껏 내리쳤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수관은 생각보다 쉽게 부서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는 구멍이 뚫린 오수관 속으로 들어가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다가 그만 정신'을 잃었다. 똥에서 나오는 메탄 가스 중독 때문이었다.  시바 !!!  똥 때문에 망치다니 !  나는 다시 안양 교도소'에 갇혔다. 형은 20년으로 늘었다. 이 글은 교도소 內 도서관'에서 작성하는 중이다. 믿기 싫은 놈은 믿지 않아도 된다. 이번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은 딱 하나'다. 똥을 조심해야 된다는 것.  만고 진리가 아닐까 ? 사회생활 할 때에는 괄약근 부실에 따른 치질'로 고생 꽤나 했는데

교도소에서 똥오줌이 흐르는 오수관에 갇혀서 의식을 잃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래저래 내 인생을 가로막는 것은 괄약근이었다. 건물을 거대한 유기체로 보자면 오수관은 똥오줌이 흐르는 괄약근이 아니었던가 ? 내게 있어서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피하는 오브제'가 되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한결같이 나 자신이다. 오늘 점심 때 교도소에 딸린 식당에서 숟가락을 훔쳤다. 영화 속에서 레드는 말했다.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가 지질학을 시간과 압력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했을 때 격하게 동의했다.

 

" 1966년, 앤디 듀프레인'은 쇼생크 교도소를 탈옥했다. 찾아낸 것은 진흙투성이 죄수복과 비누 한 조각 그리고 암석 망치였다. 굴을 파는 데 60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앤디는 20년 안에 해냈다. 앤디는 지질학을 좋아했다. 그의 세심한 성격과 잘 맞았나 보다. 빙하기와 수백만 년에 걸친 산맥의 생성.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연구이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압력과 시간 그리고 입구를 감출 큰 포스터...... "

- 엘리스 레드 레딩의 독백 中

 

 

지질과 치질

사전적 의미에 구애 받지 않고 같은 성질의 낱말을 하나로 묶는 내 오랜 습관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 지질학 > 과 < 치질학 > 은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엉뚱한 주장에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 지질학 > 이 시간과 압력이 토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 치질학 > 은 시간과 압력이 항문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무서운 치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과 엉덩이에 힘을 주는 압력의 세기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나는 둘 다 조절에 실패했다. 화장실에서 책을 읽느라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변기 위에 앉아 있었고, 변비 탓에 항상 엉덩이에 힘을 주다 보니 괄약근에 지나친 압력이 발생해서 과부하가 생기고는 했다. 남근은 전립선 기능 저하'로 기능을 상실한 지는 이미 오래. 내 몸에 붙어 있는 마지막 근육인 괄약근마저 치질로 망가졌으니 나라는 인간은 무근적 존재'였다.

시간과 압력에 실패하는 순간,  당신은 생전 처음 보는 대장항문과 의사 앞에서 엉덩이를 벌려야 한다. 더군다나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남성이라고 가정했을 때) 대장항문과 의사가 여성이라면 치질이 때로는 호환 마마'보다도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앵무새처럼 생긴 20대 여자 의사'는 내 항문에 손가락을 넣으며 말했다. " 똥구멍이 국화무늬'네요. 호호호호호. " 그때 내가 느낀 수치심'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이 고통은 나폴레옹만이 안다. 그도 악성 치질로 고생한 위인이었으니 말이다. 호사가들이 풀어놓은 썰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센티만 낮았어도 세계는 달라졌을 것이고, 나폴레옹이 악성 치질만 아니었어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한다. 치핵이 괄약근 밖으로 빠져나온 치질 환자가 말을 타고 달린다고 상상해 보라.

그는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지만  적어도 그의 항문만큼은 " 시간과 압력 " 에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와 나폴레옹의 공통점은 괄약근 때문에 인생 망친 케이스'였다. 스핑크스,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 오늘 내가 훔친 숟가락은 밥을 먹는 도구가 아닌 시간과 압력에 반기를 드는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벽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웨하스 과자로 지어진 집에 불과하다. 이 정도 강도면 10년이면 뚫는다. 느낌 아니까. 나는 한다면 하는 놈이다. 이 글을 두고 허풍이네 뭐네 지랄하지 마라. 탈출하면 제일 먼저 당신을 찾아가마. ( 2013.11.10. OCN 방영, 관람 )

 

* 스핑크스의 어원이 바로 괄약근이다. 오이디푸스에 등장하는 괴물은 똥구멍 괴물이다.

 

 

 

 

추신

마이리뷰에 < 별책부록 : 쇼생크탈출 > 을 따로 뽑았다. 볼 때마다 감상을 적을 생각이다. 볼 때마다 관점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 1. 쇼생크와 여성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86271  2010.07.12

▶ 2. 쇼생크와 야구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87416  2011.01.01

▶ 3. 쇼생크와 나비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90523  2011.11.23

▶ 4. 쇼생크와 왼팔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91172 2012. 11.22

▶5. 쇼생크와 카사블랑카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93984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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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3-11-11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정상은 불변의 결과이고 정상은 가변의 결과이다, 마음은 원고지에 쓰여진 비문이 아니라 심장에 새겨진 문장이기에 지울 수 없다... 유머와 통찰이 섞여 있는 글을 보면서 오늘도 크게 배웁니다.
레드가 자식 뻘인 심사평가위원들에게 차분히 대답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압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에겐 듀프레인의 저 기가 막힌 탈출 방법보단, 레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가슴에 깊게 와 닿았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1 12:20   좋아요 0 | URL
제가 쇼생크 탈출에 대한 글을 한 40개 모아서 책으로 낸다면 사볼 용의 있으신가요 ?
쇼생크 한 편에서 뽑을 수 있는 게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여요.
지질학에 대한 부분은 사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만...
제가 치질을 앓고나서 아... 시바... 딱 보는데 시간과 압력 부분에서 그만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지질과 치질은 비슷하구나... 하고 말이죠.
다음에 다시 보면 또 다른 대사가 보일 겁니다. 요거 한 40편 모아서 책으로 내야겠어요..

수다맨 2013-11-1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책으로 내신다면 사겠습니다 ㅎㅎ 인증샷 올리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1 12:28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 ㅎㅎ.. 천일야화처럼 이런 식으로 한 40화 정도 모아서 책으로 엮어야 겠어요.
이참에 디비디도 사야겠습니다. 이왕 사시는 거 한 10권 사주십시요..헤헤...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헤헤..

수다맨 2013-11-11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직 학생이라 큰돈은 없습니다^^;;;; 5권까지는 사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1 22:07   좋아요 0 | URL
농담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