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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ㅣ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평점 :
이른 가을이었던가 ? 열린 창문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나비는 내 방으로 들어와 나무의 섬유질’로 만든 종이 책’ 냄새를 맡으며 이리저리 호들갑스럽게 날아다녔다. 그날 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잠을 잤다. 나비를 가두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칼바람이 불었으리라.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며칠을 앓았다. 그렇다고 떠나버린 나비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벽 모퉁이’에서 꼼짝도 않고 붙어 있는 나비’를 발견했다. 날개 모양과 색깔로 보아서 며칠 전에 날아들어왔던 그 나비’였다. 나비’가 나갔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비’는 그동안 내 방에서 갇혀 있던 것이다. 사흘 동안 굶었을 생각을 하니 이만저만 미안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두 손으로 손 감옥을 만들어서 나비를 가두었다. 나비는 그때서야 자신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손 감옥으로 나비를 가두기 전에 이미 내 방에 갇혀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나비는 자신이 오래 전에 갇혔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창문을 열었다. 두 손을 펼쳤다. 나비는 잠시 내 손바닥 위에 앉아 있다가 이내 팔랑거리며 밖으로 날아갔다.
- 쇼생크 탈출 3, 당신은 독살에 갇힌 죄수다 中
정직한 사람에게는 소리가 난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걸어갈 때 발소리가 나는 법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대지 위를 살금살금 돌아다닌다. 보라, 달이 고양이처럼 다가온다. 정직하지 못하게스리.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프리드리히
속초 미라지 모텔 달방'에서 1년을 살았다. 원래는 지붕 낮고 마당 넓은 집을 찾기 전까지 잠시 머무를 요량이었다. 텃밭은 아니더라도 작은 터앝 하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에 살던 집 전세금이 집주인 사정과 묶여서 재판에 걸리는 바람에 집을 얻을 수도 없는 노릇이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모텔 달방'에서 살았다. " 달방 " 이란 모텔에서 先월세'를 달마다 미리 지불하는 형식이었다. 이곳은 주로 장기 투숙자들이 묵었다. " 달방 " 이라고 하니 이름은 꽤나 낭만적이고 근사했지만 사실 달방 세입자들은 대부분 유흥업소 여성들이나 그녀들이 매춘을 해서 번 돈을 갈취하는 기둥서방들 그리고 떠돌이 노역자가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밑바닥 인생'이었다. 대포항 방파제 공사현장에서 틈틈이 일을 했고 극장 영업이 끝나면 카페트나 의자를 소독하고 청소하는 일을 했다. 제임스 조이스나 프르스트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던 욕심과는 반대로 나는 날마다 술을 마셨다.
달방은 감방'이었다. " 둘러보아 사방 네 벽 감방에서 / 갖고 놀 만한 것이라고는 네 자지말고 없다는 것을 ( 시 독거수 부분 / 김남주 作 ) " 깨닫게 되었다. 비가 오거나 일이 없을 때에는 아침 9시에 도서관에 갔다. 그때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바로 < 리타 헤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이었다. 영화로는 이미 숱하게 보았지만 원작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중편 분량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두 번 읽었다. 그리고 나서 시청각실'에 가서 < 쇼생크탈출 > 을 신청해서 보았다. 우울할 때마다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대부분 원작에 충실히 따랐지만 몇몇은 약간씩 다르다. 도서관 사서'로 나오는 브룩스는 소설에서는 자살이 아니라 빈민 노인수용소'에서 죽은 것으로 나온다. 소설 속 브룩스'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 브룩스의 나이는 68세였고, 거기에 관절염까지 있었다. 감옥 문을 나가면서 그는 한참을 울었다. 쇼생크가 브룩스의 세계였던 것이다. 브룩스에게 벽 밖의 세계는 15세기에 미신을 신봉하는 선원들이 생각하던 대서양처럼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감옥 안에서 브룩스는 중요인물이었다. 도서과의 사서였고 배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키터리 도서관에 가서 취직시켜 달라고 말한다고 해도, 취직은커녕 대출 카드조차 받지 못할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브룩스는 1953년에 프리포트 가까이에 있는 어느 빈곤 노인수용소에서 죽었다. ( p70 ) "
이 부분을 읽다가 잠시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3월을 며칠 앞둔 2월 늦겨울이었다. 하지만 속초에서는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계절이기도 했다.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렸다. 여름에 내리는 비는 시끄럽지만 겨울에 내리는 눈은 조용하다.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때 창밖을 보면 영락없이 눈이 내렸다. 나는 늙은 사서 브룩스가 교도소 철문 앞에서 오랫동안 한참을 울었다는 문장 앞에서 먹먹해졌다. 그는 50년 가까이 이곳 쇼생크 교도소'에서 살았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들어와서 한평생을 이곳에서 산 것이다. 그는 자유에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규제'에 길들여진 인간이었다.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험프리 보가트가 나오는 < 카사블랑카 > 를 좋아했던 나의 옛 애인은 이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늘 낮게 속삭였었다. " 카사블랑카여, 영원하라 ! "
브룩스가 흘린 눈물은 쇼생크'와 결별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곁을 떠나는 애인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여자의 마음은 쇼생크 교도소 철문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나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해 봄, 나는 속초로 떠났다. 영화와 소설에서 가장 많은 차이가 나는 인물은 바로 교도소장'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새뮤얼 노튼 교도소장을 비롯해서 다양한 전임 소장들이 등장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교도소장'을 하나로 묶어 워든 노튼 교도소장'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원작에 비해 설정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나 소설 속 새뮤얼 노튼 소장은 영화와는 달리 티미'를 살해하지도 않았고 권총 자살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조용히 몰락하는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소설과 영화 중 어느 작품이 더 좋은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않겠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더 좋아 아니면 아빠가 더 좋아 라고 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침 9시에 도서관에 가서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을 두 번 읽고 나서 도서관 내 시청각실에 가서 < 쇼생크 탈출 > 을 보고 나오니 밖은 어두웠고 눈은 밝게 빛났다. 자전거를 두고 가게에 들려 소주 2병을 산 후 달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머무는 객실 옆에 사는 여자는 항상 새벽 4시에 들어왔다. 퇴근 시간으로 보아 유흥업소에 다니는 여자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105호에 입주했을 때 103여자는 다음날 입주했었다. 우리는 모텔 투숙 동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텔 장기투숙자라는 것이 그렇게 떳떳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 여자는 늘 취해 있었다. 내가 머무는 객실 복도를 지나칠 때에는 항상 불규칙적인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의 비틀거리는 하이힐 소리를 좋아했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걸어갈 때 발소리가 나는 법이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곧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이내 조용해졌다. 간혹 변기 뚜껑을 열고 토악질하는 소리가 들렸을 뿐 여자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티븨 소리도,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 아가씨였다. 어느 날 날품을 팔고 돌아와 보니 객실 문고리'에 검은 비닐봉투가 걸려 있었다. 그 속에는 귤과 쪽지 편지'가 있었다. " 기침을 심하게 하시더군요. 귤을 사다가 생각나서 나눕니다. 빈 속에 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세요. 103호 " 낯익은 글씨체'였다. 헤어진 옛 애인의 글씨체와 비슷해서 눈물이 났다.
나는 다음 날 < 리타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이라는 책을 사 그 속에 손편지를 넣어 103호 객실 문 옆에 두었다. " 제가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읽어보세요. 105호 " 얼굴은 알지 못하나 편지를 주고받았으니 일종의 펜팔이었다. 며칠 후 문 틈 사이로 쪽지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 저는 카사블랑카'를 좋아해요. 103호 " 우리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신을 왕래했다. 어느 날이었다. 103호 여자가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왔다. 목소리에서 쨍쨍 쇳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얼마나 울고 싶었을까 ? 얼마나 외로웠을까 ? 낯선 타관에서 얼마나 그리웠을까 ? 다음날 복도에 사람들이 분주히 다니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일꾼들이 103호 객실에서 벽지를 뜯어내고 있었다. 카운터 주인에게 103호 여자의 행방을 물었다. 카운터 직원은 말했다.
" 무슨 말이에요. 103호는 물이 새서 그동안 방을 놓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방수 공사를 하는 거예요. 이 방을 창고로 쓴 지 벌써 1년이 넘었는걸요. 103호 여자라니 무슨 말인가요 ? 환상의 여인'이라도 되나요 ? " 카운터 여자'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말을 꺼내려다 이내 말문을 닫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귀신에 홀린 듯했다. 비틀거리는 하이힐 소리와 벽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았던 쪽지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서울에 사는 친구였다. s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s는 내 옛 애인의 여동생과 사귄 적이 있는 친구였다. 그를 통해 옛 애인을 만날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급히 서울로 내려갔다. 장례식장에서 옛 애인의 여동생을 만났다. 어색한 침묵이 오래 지속되었다. 내가 어렵사리 언니에 대한 근황을 묻자 여동생은 망설이다 말했다.
" 언니는 자살했어요. 오빠와 헤어지고 나서 말이에요. 아직 모르고 있었군요. 좋은 소식이 아니니 굳이 헤어진 애인에게 소식을 전할 필요는 없었죠. 경찰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강원도에 위치한 영안실이었어요. 아마... 작년 이쯤이었지 싶어요. 강원도에는 3월인데도 폭설이 내리더군요.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직원 안내를 받고 따라간 곳은 어느 모텔이었어요. 언니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거죠. 경찰 말로는 언니가 이곳에 달방을 얻은 관계로 기간이 투숙 기간이 남아 있어서 유품 정리'를 따로 안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유품이라고는 별로 없었어요. 책 한 권에 옷 몇 벌. 그리고 껍질을 까다 만 귤이 전부였어요. 네에 ? 아.... 그 책 이름이.... 아, 그래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었죠. 바로 어제가 일 주기 기일'이었어요. 이제 우리 가족은 오빠를 원망하지 않아요. 결혼을 반대한 것은 우리 쪽이었으니 말이죠. 다 지난 일이잖아요. "
봄이 오자 나 또한 미라지 모텔을 떠났다. 떠나기 전 주머니칼로 벽 모서리 끝에 " i was here " 라고 새겼다가 다시 " we were here " 라고 고쳤다. 모텔 문을 나가면서 한참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