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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은 칼날을 숨긴 종이'다.
" 나의 다른 책들에서처럼 어떠한 사회적 논평도 제시하지 않고, 어떠한 교훈도 입에 담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지도 않고, 인류에게 올바른 출구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
- 절망,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영문판 작가 서문 中
나는 첫인상에 대한 감응력을 뜻하는 " 첫눈의 힘 " 을 믿는 편이다. " 첫눈에 ~...... " 는 설명되거나 덧대는 과정 없이 어떤 대상을 편견없이 바라볼 때 생기는 직관'이다. 그러니깐 온갖 말이나 빳빳한 명함으로 덧씌운 이미지'가 아닌 날것에 대한 시각의 본능적 감각이 바로 첫눈이다. 시인 나태주가 < 풀꽃 > 이라는 시에서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 고 말했지만 모든 것을 관조적 자세로만 볼 수는 없다. 첫눈에 반하는 대상은 밝게 비추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아름다운 존재는 빠르게 지나간다. 롤랑 바르트의 사유를 빌리자면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존재는 스투디움에 속하고, 첫눈에 반하는 대상은 푼크툼에 속한다. 관조가 어떤 대상을 밝게 비추어 자세히 관찰하는 자세라면, 직관은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이다. 뚫는(푼크툼) 힘'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장편소설 < 롤리타 > 1부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서 가장 황홀한 도입부'였다. 소설 < 롤리타 > 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한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 그녀는 로, 아침에는 한쪽 양말을 신고 서 있는 사 피트 십 인치의 평범한 로. 그녀는 바지를 입으면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안에서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 롤리타, 민음사 판
하지만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 롤리타 > 는 " 아름다운 문장 " 으로 시작한 소설이지만 내용은 중년 남자가 열두 살 소녀에게 성적 욕망을 느낀다는 " 아름답지 않은 막장 " 이니깐 말이다. 이 정도 막장이면 임성한 드라마 작가도 놀라서 다시 볼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보코프'는 험버트 험버트'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중년 남자의 고백을 통해 아름다운 문장을 쏟아낸다. 막장'을 문장'으로 덮는 거장'의 솜씨가 뛰어나다. 사실 그가 쓴 소설에서 윤리적 올바름'이나 도덕적 교훈'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나보코프는 이렇게 말한다. " 도대체 나는 왜 쓰는가 ? 만족을 얻기 위해서이다.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 어떤 도덕적 교훈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수수께끼를 내고 멋지게 풀이하는 것이 그저 좋을 따름이다. ( 절망, 문학동네. 작품해설에서 발췌 ) "
나보코프는 문학이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사르트르보다는 보르헤스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소설 < 롤리타 > 는 온갖 패로디와 말장난 그리고 낱말 십자 풀이'를 통해서 독자가 문장 속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풀도록 만들어놨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마치 백인 레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당대에 태어난 젊은이였다면 챙을 구부리지 않은 모자를 쓰고 힙합 배틀에서 멋진 슬램을 보여줄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 헤이, 요 ! 일말의 주저없이 말하리. 너는 병신과 머저리. 골 빈 대가리. 두 말 하지 않으리. 세 말 하면 잔소리. 그건 깐 데 또 까는 까투리. 내 품안에서 잠든 로리. 나의 사랑스러운 롤리폴리. 우리 사랑 영원하리. yo ! " 다음의 문장은 어떤가 ?
스와인(돼지) 같은 녀석, 콰인. 퀼티를 살해한 길티(죄). 오, 내 사랑 롤리타,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은 그저 단어들밖에 없구나 !
- p. 47
원문은 이렇다. " Quine the Swine. Guilty of killing Quilty. " 절묘하다. 잘빠진 랩 가사 같다. 라임이 뛰어나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나보코프'는 수백 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랩의 라임'이 시의 운율과 같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알고 있는 것 아닌가. Swine(돼지)은 Quine ( 사람 이름 ) 과 붙고, Guilty(죄) 는 Quilty ( 사람 이름 ) 와 붙는다. 이 정도 라임이면 입에 짝짝 붙는다. 나보코프가 험버트 험버트의 입을 빌려 고백했듯이 그가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은 단어들밖에 없다. 러시아 망명자인 그가 타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소설을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몰락한 귀족의 신세한탄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유미주의자의 혐오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그는 모국어인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로도 작품을 썼다.
다양한 언어로 작품을 자유자래로 쓴다는 것은 나보코프의 천재적 언어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무국적 성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탐미적 개인주의자처럼 보인다. 그리고 주류 언어가 아닌 소수 언어로 글을 썼다는 측면에서 나보코프와 카프카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카프카가 프라하에서 체코어 대신 독일어로 작품을 썼듯이, 나보코프는 독일에서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소설을 썼고, 정작 미국에서는 러시아어로 작품을 쓰기도 했다. 들뢰즈, 가타리는 < 소수 집단의 문학을 위하여 : 카프카론 > 에서 이러한 경향을 소수 집단의 문학'이라고 말하며 카프카가 지배자 문학'을 증오했다고 지적했는데, 나보코프의 탐미적이며 유희적 성향 또한 주류적 가치와 문학에 대한 경멸처럼 보인다.
자서전 < 말하라, 기억이여 > 쳅터 14장 " 망명 " 에서 나보코프가 망명 기간 중 가장 흥미를 느낀 작가는 " 블라디미르 시린 " 이라고 고백한다. 시린은 자신과 동시대 사람으로 망명 중에 생겨난 젊은 작가 중에서도 가장 외롭고 거만한 자라고 그를 소개한다. 도대체 시린'이란 자는 누구일까 ? 아마, 다음 문장을 읽고 나면 당신은 웃을 것이다. 시린'은 나보코프가 독일에서 러시아어로 작품을 쓸 때 사용했던 필명이었다. 그는 망명지는 독일에서 모국어인 러시아어'로도 소설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 절망 > 은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 롤리타 > 못지않게 화려한 언어 유희가 손버릇 나쁜 풍각쟁이의 손처럼 모든 곳을 들쑤신다. 그러니깐 그의 고백은 조크'가 섞인 나르시즘'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시린의 찬미자들은 아마 너무 과할 정도로까지 그의 범상치 않은 문체와 명석한 정밀함, 기능적인 심상과 같은 것들을 중요시했다. 완강히 직설적인 러시아 리얼리즘의 기반에서 길러졌으며 허풍쟁이들을 데카당의 속임수라 블러 온 러시아의 독자들은, 거울처럼 분명하면서도 불가사의한 곳으로 이끌어 가는 그의 문장들에, 그리고 그의 책의 실제 삶이 그의 화법 속에 흘러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 말하라 기억이여, p.350
뭐, 이정도면 왕자병을 넘어 황태자병'이라 할 수도 있다. 그는 확실히 지나치게 도도한 인간이었지만 우리는 그 지적 우월에 대해 딱히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가 " 거울처럼 분명하면서도 불가사의한 문장 " 으로 쓴 작품들은 미미하지도, 시시하지도, 수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 탁월했으니 말이다. 주류적 가치와 주류 문학에 대한 경멸은 러시아 리얼리즘 소설의 신화적 존재인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시린이라는 이름으로 썼던 < 절망 > 을 영문판으로 번역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조롱한 모양이다. < 절망 > 을 번역한 최종술은 작품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문판에서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조롱은 숨은 작가의 말이 된다. 단적인 예가 영문판에 새로 도입된 동어반복적인언어유희인 dusty and dusky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에 경멸적인 울림을 부여하는 이 언어유희가 영문판을 관류하고 있어서 .....
- 절망, 작품 해설 中 p.269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dusty and dusky 라고 조롱한 이 기막한 언어 유희에 박장대소했지만 한편으로는 위대한 대문호를 사랑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 대문호를 조롱한 이가 나보코프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저 조울증 환자처럼 기막힌 재치와 기가 막힌 조롱 사이를 오갈 뿐이다. 소설 < 롤리타 > 는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도도한 나보코프가 깔아놓은 장치는 꽤나 정교해서 험버트 험버트가 살해한 퀼트 씨'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일도 이 소설을 읽는 맛이다. 그것은 순전히 이 책을 읽을 독자의 몫이다. 물론 이 소설을 험버트 험버트가 롤리타를 사랑한 이야기로 해석해도 매우 뛰어난 서사시'처럼 읽힌다. 이래저래 다 좋다. ( 권택영이 번역한 민음사판과 김진준이 번역한 문학동네판 중 어느 쪽이 더 좋으냐는 질문을 받고는 했는데 민음사판는 바탕체-스럽고, 문학동네판은 명조체-스럽다. 비슷하다는 소리'다. 단, 각주를 꼼꼼하게 챙길 독자라면 문학동네판을 추천한다. 문학동네 각주가 꼼꼼하다. )
< 롤리타 > 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 나는 들소와 천사들, 오래가는 그림 물감의 비밀, 예언적인 소네트, 그리고 예술이라는 피난처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너와 내가 나눌 수 있는 단 하나의 불멸성이란다, 나의 롤리타. ( p.422) "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이라 했던가. 아름다운 꽃, 열흘 붉을 리 없다는 뜻이다. 험버트가 도망쳤던 롤리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문 앞에서 지저분한 겨드랑이의 롤리타가 가망 없이 지친 17세로, 임신을 한 채 서 있는 모습을 참당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 나는 그녀를 죽이지 못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아시다시피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것은 첫눈에 반한 사랑이고, 마지막까지의 사랑이고,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 p.368 ) "
책장을 덮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험버트 험버트는 옴므 파탈일까, 아니면 롤리타가 팜므 파탈일까 ? 똑같은 질문, 험버트 험버트가 요부(妖夫)인가, 아니면 롤리타가 요부(妖婦)인가 ?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위험한 사랑이다. 강렬한 각인'은 자칫 잘못하면 고착'이 된다. 불멸하는 존재는 없다. 모두 다 한때'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빨리 지나간다. 롤리타도 늙어갈 것이다. 책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이는 종이에 손을 자주 베인다. 우리는 이 상처를 통해서 쉽게 찢어지고 휘는 연성을 가진 종이'가 벼린 날'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잠시 당황하게 된다. 어쩌면 쉽게 찢어지는 종이의 연성(軟性)은 날카로운 날과 촉을 숨기기 위한, 약한 척하는, 종이의 위선'인지도 모른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깊게 사랑할수록, 뒤돌아서면 더 아프게 베인다.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자는 그만큼 아프다. 사랑에 목숨 걸지 마라. 사랑은 칼날을 숨긴 종이다.
참고한 책
1. 소수 집단의 문학을 위하여 : 카프카론 / 들뢰즈,가타리 / 문학과 지성사
2. 절망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문학동네 / 옮긴이 해설 참고
3. 말하라, 기억이여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플래닛 / 본문 인용
4. 롤리타 / 블라디므리 나보코프 / 권택영 옮김 본문 인용
5.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김진준 옮김 각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