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의 리부트 - 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
김미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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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자기계발서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추운 겨울이 지나면 일상을 되찾을 줄 알았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리는 법이니깐 말이다. 마스크 때문에 자신이 내뱉은 날숨을 다시 들숨으로 마셔야 하는 상황에서도 묵묵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_ 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봄날은 가고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지만 전세계 확진자 수는 감소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상시적 일상이 되었다. 접촉(off)은 죄악이 되었고 이제는 접속(on)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좋든 싫든 20세기는 히틀러가 만든 세계'였듯이,  좋든 싫든 21세기는 코로나가 만든 세계가 되었다.  코로나가 만든 새시대는 그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보니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 예측 " 이 아니라 " 예방 " 이다. 전자가 공격적 태세라면 후자는 방어적 태세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김미경의 << 김미경의 리부트 >> 는 놀랍게도 코로나 이후를 예측하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내놓는다(라고 책 선전을 하고 있다). 세계의 석학들도 모두 한결같이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섣부른 예단을 내놓는 것을 경계하는 마당에 저자는 어떤 근거로 세계를 진단하고 예측하며 그 값을 제시하는 것일까 ?  " 위기는 곧 기회 " 라는 자기계발서의 닳고닳은 신소리를 마치 미래를 꿰뚫는 선견 따위로 포장하는 이 책의 가치는 얼마일까 ? 코로나로 인하여 오프 라인 강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강의 수익이 0원이 되어서)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는 100만 유튜버 김미경의 결의가 뻔뻔해 보이는 이유는 세계의 비참을 돈벌이로 활용한다는 데 있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비극을 이용하여 돈벌이(자기계발서)에 사용하는 방식은 세월호 사건을 재난 모험극 영화로 만들려고 하는 감독의 도덕적 해이'와 무엇이 다를까 ?  동기 부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 긍정의 과잉 " 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 농담 >> 에서 이렇게 말했다. 낙관주의는 민중의 아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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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책방 2020-07-06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합 1위군요..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20-07-06 21:1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수다맨 2020-07-08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서 목차만 읽었는데 절로 한숨이 나오는군요. 차라리 어느 사교邪敎 교주의 경전을 일독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 책에도 진실이라고는 별로 없지만 적어도 구라(!)를 그럴듯하게 가공하려는 집필자의 정성이라도 조금은 있지요.
저렇게 뻔하디뻔한 내용을 책으로 내놓은 것을 보니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과히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7-10 16:31   좋아요 1 | URL
이런 책을 왜 읽는지 이해가 안 가는 1인. < 해빙 > 이란 책도 읽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뻔한 이야기여서 왜 이런 책을 읽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진 짜   개 소 리 를   찾 아 서  :












반짝반작 빛나는 쥐덫












                                                                                               다양한 종류의 소리'가 있다. 쉰소리, 헛소리, 새소리, 쇠소리, 개소리, 찍소리, 빗소리, 잔소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좆(개) 같은 소리, 허튼소리, 문소리...... 문소리 ?!  아임소리 !  많고 많은 소리 가운데 인간에게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새소리'일 것이다. 동의 ?  동의하신다면 모두 다 부처핸섬 !  특히 작은 새일 수록 소리가 아름답다. 아침에 높낮이가 서로 다른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바람의 결에 따라 흔들리는, 처마 끝에 달린 풍경 소리 같다. 


굳이 이 자리를 빌려 강조하지 않아도  새와 숲의 관계는 공생에 가깝다.  새가 찾지 않는 숲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 없다. 숲을 키운 건 팔 할이 새'다. 새가 없다면...... 숲도 없다. 국토 면적의 70%가 산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입장에서 보면 새는 중요한 생태계의 금은보화'이다.  그런데 이 귀중한 새가 어이없는 시설물 때문에 죽는다.  어떤 종은 멸종 위기에 다다랐다.  바로 유리창이다.  새는 유리벽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유리창(벽)에 충돌해 그 자리에서 죽는다.  투명한 유리창도 문제이지만 반사 유리'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새는 유리창에 반사된 象을 허상이 아닌 실상이라 믿고 돌진한다. 하루에 유리창 충돌 사고로 죽는 새는 대략 2만 마리'이고 1년이면 대한민국에서 800만 마리가 유리창 충돌 사고로 죽는다. 어느 책에서인가 건축학은 곧 환경학이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문장을 인용해서 다른 식으로 변주하자면 좋은 건축가는 좋은 환경가'라는 소리가 된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건축가는 좋은 건축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 EBS 건축탐험 집 >> 에 소개된 뜬 집'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 개소리 " 였다.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다. 건축가의 입말을 빌리자면 환경을 고려해서(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소한으로) 지은 집이 통유리 집'이다. 누가 봐도 산촌 주변 환경과는 동떨어진,  과시성과 전시성에 촛점을 맞춘 집구석인데 검소한 최소주의1)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의 쾌감 때문에 이 집을 구상했다는 집주인의 설명은 같은 눈높이로 대상을 보려는 평화주의자의 태도라기보다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지배자의 그것을 닮았다. 그렇기에 이 집은 검소하다기보다는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도시 속 커튼월(통유리 건물) 때문에 미국에서 해마다 죽는 새가 무려 6억 마리'이다. 건축가라면 유리창의 크기와 유리창 충돌 사고의 연관성을 모를 리 없다. 더군다나 새들이 모여 사는 숲속이라면 더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이 건축가와 집주인은  주변 환경은 무시한 채 개소리를 전시하고 있다. 아마도 이 집은 건축가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집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소리인 것이다. 통유리창은 집주인에게는 최고의 조망권을 제공하는 공간이겠으나 새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의 덫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쥐덫이다.




​                             


1) 커튼월 건물(통유리 건물)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다른 건물에 비해 냉난방비가 매우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축가가 검소 운운하는 것 개소리'다. 디자인을 최소화했다는 것이 검소하다는 증거라면 미니멀한 디자인을 상징하는 아이폰은 왜 그리 비싼가 ? 내가 뜬 집'을 보았을 때 연상되었던 것은 선그라스를 낀 박정희가 높은 연단 위에 올라 육군사관생도를 내려다보면서 훈시를 하는 이미지'였다. 다른 분들(산촌 주민들)이 깜짝 놀랐을 것 같아요 _ 라고 묻는 진행자의 감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건물은 위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첨단 도시에 지어진 건물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숲속에서 이런 건물을 짓는 것은 자연과 주변 환경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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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 지 도   못 하 면 서  :










뜨거워.  몸속에서 밀려나와 !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너를 알고 나를 알면 그 어떤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지만  본래 인간이란 < 너 > 를 모를 뿐 아니라 < 나 > 에 대해서도 모르는 족속이다. 말이 쉽지 지피지기는 신공에 가까운 내공'이다. < 지피 > 까지는 아니더라도 < 지기 > 만 해도 그 인간은 훌륭한 사람이다. < 남 > 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 나 > 에 대한 관심도 없다. 남자들은 종종 여자의 생리가 오줌을 누는 것과 같다고 믿곤 한다.  그러다 보니 김훈의 << 언니의 폐경 >> 과 같은 " 저세상 텐션의 발광 다이오드적 삼파장 극성 " 이 탄생하는 것이다. 





- 얘, 어떡하지. 갑자기 왜 이러지...
- 왜 그래, 언니?
- 뜨거워. 몸 속에서 밀려나와.

나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다. 나도 생리날이 임박해 있었으므로 핸드백 안에 패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룸 라이트를 켜고 패드를 꺼내 포장지를 뜯었다. 내 옆자리에서 언니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나는 언니의 엉덩이 밑으로 바지를 걷어내주었다. 언니의 팬티는 젖어 있었고, 물고기 냄새가 났다. 갑자기 많은 양이 밀려나온 모양이었다. 팬티 옆으로 피가 비어져나와 언니의 허벅지에 묻어 있었다. 나는 손톱깎이에 달린 작은 칼을 펴서 팬티의 가랑이 이음새를 잘라냈다. 팬티의 양쪽 옆구리마저 잘라내자 언니가 두 다리를 들지 않아도 팬티를 벗겨낼 수 있었다. 팬티가 조였는지 언니의 아랫배에 고무줄 자국이 나 있었다. 나는 패드로 언니의 허벅지 안쪽을 닦아냈다. 닦을 때 언니가 다리를 벌려주었다. 나는 벗겨낸 팬티와 쓰고난 패드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차 뒷자리로 던졌다.

<언니의 폐경> 일부 발췌


이 소설에서 묘사된 생리 장면을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는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김훈은 겨울 내내 얼었던 마당의 수도가 봄볕에 녹아 느닷없이 녹물을 쏟아내는 수돗물처럼 언니의 생리를 묘사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동생의 행동이다.  생리가 시작되면 가까운 휴게소로 차를 몰아 24시 편의점에서 팬티를 구입한 후 언니를 화장실로 안내하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이 될 텐데  동생은 차 안에서 칼로 언니의 팬티를 찢는다. 언니의 행동은 더욱 기괴하다.  언니는 " 엉덩이를 들어올리며 다리를 벌린다. "  


문장 안에 들어갈 조사 하나 때문에 열흘 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다는 완벽주의자가 여성 생리에 대한 기초 조사도 없이 궁서체스러운 문장을 뽑아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뜻밖에도 내가 이 장면에서 연상되었던 것은 전우가 총상 입은 동료 병사의 지혈을 막는 이미지'였다.  김훈은 철저하게 남성의 시각으로 두 여자의 곤경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발췌한 장면이 자매애보다는 전우애로 읽히는 대목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작품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의문은 쉽게 풀렸다.  심사위원 5명 모두 늙은 남자였다. 두 눈에 쌈심지를 켜고 잘잘못을 따지는 심사위원 눈에는 이 장면이 매우 자연스러웠던 모양이다.  아카데미상이 아카데미 회원(성공한 50대 백인 남성)의 욕망을 그대로 반영하듯이 한국의 문학상 또한 한국 문단에 소속된 늙은 남성의 욕망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인간들이 " 일상 속에 느닷없이 침범한 곤경 앞에서 무력한 여성을 묘사한 걸작 " 이라며 설레발을 떨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어르신, 생리에 대한 대처는 초등학생이라면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문단 어르신들 하는 꼬라지를 보면 이 양반들은 차 안에서 생리하면 911 이라도 부를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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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20-06-23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소설 안 읽었는데 거두절미하고 넘 웃겨요ㅋㅋ 생리는 무슨 중병이나 사고로 인한 과다출혈이 아닌데 저기서는 아닌가요?? 저러다 죽거나 뭐

곰곰생각하는발 2020-06-27 23:26   좋아요 1 | URL
가만히 보면 김훈은 이 소설을 마치 밀리터리 소설처럼 쓴 것 같습니다. 총상 맞은 동료 병사를 지혈하는 장면처럼 보이잖아요. 아니 어떻게 이런 엉망인 사실을 심사위원들이 왜 아무도 비판을 하지 않았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ㅎㅎㅎㅎ

푸른괭이 2020-06-28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칼의 노래>, <남한 산성>을 좋아하지만, 남성성(낭만주의, 영웅주의, 마초 등)이 너무 도드라지는 작가라 <언니의 폐경>은 제목만 보고도 그냥 걸렀어요^^; 김훈 선생님이 생리에 지나치게 에로틱하게, 뭐랄까, 사춘기 남자애들처럼 접근하신 것 같네요. 딸을 키우는 아빠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밑에 쓰신 레이먼드 카버 소설과는 사뭇 다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6-29 17:02   좋아요 1 | URL
아, 저도 칼노래, 남산성 매우 좋아하는 소설인데 어느 순간부터 지나치게 남성성이 도드라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 언니폐경 > 같은 경우는 그가 아예 여성의 정체성에 대하여 티끌만큼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조사 하나 가지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는 분이 이렇게 사전 조사가 허술한 작품을 썼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고나 할까요 ?
 
대성당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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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작 새 와    만 연 체   :











깃털들, 레이몬드 카버







                                                                                               아름다운 새의 대명사는 " 공작새 " 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 아름다운 새의 대명사 " 라는 수식어에 불만을 가질 것이다. 좋다, 양보해서 공작은 아름다운 새의 명사, 조사, 형용사, to부정사 정도'라고 하자. 하여튼 공작새는 아름답다(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공작새는 조금 징그럽고 약간 괴상하며 너무 과도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작의 화려한 " 날개 " 는 사실은 " 꽁지 " 이다.  날개보다 꼬리가 크다 보니 비행술도 최악이다.  멋을 과도하게 부리다가 나중에는 새의 본능도 상실한 것이니 주객이 전도된 삶이다.  그리고 울음소리도 듣기 좋은 음색이 아니다. 불혐화음에 가깝다.  지나치게 " 투머치-스럽다 " 라고나 할까 ?  공작(수컷)이 하늘을 멋지게 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비행기의 디자인이 오로지 날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장식을 최소화한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작새는 무거운 꽁지 깃털을 모두 다 뽑아버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몸이 가벼워지니깐 말이다.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 << 깃털들 >> 의 주인공 '나(잭)'는 프랜의 긴 금발머리와 잘록한 허리에 반해 결혼한다. 젊고 매력적인 신혼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고 즐겁게 살자고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동료인 버드와 올라 부부의 초대를 받고 그들의 집을 향한다. 잭과 프랜 부부를 맞이한 것은 버드와 올라 부부가 애지중지 키우는 공작새'였다. 미적 취향은 제각각이어서 잭과 프랜 부부는 공작새가 조금 징그럽고 약간 괴상하다고 느낀다. 


버드와 올라 부부의 아기는 공작새보다 조금 더 징그럽고 괴상하다. " 여태 본 적 없는 못생긴 아이 " 이다. 너무 못생겨서 차마 예쁘다는 흘림말조차 할 수 없다. 잭과 프랜 부부는 촌스럽고 못생긴 버드와 올라 부부를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그 행복감은 비교 우위를 선점한 자의 우월감이다.  잭은 " 그날 저녁 나는 내 인생이 여러모로 썩 괜찮다고 느낀다 " 이처럼 행복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잔인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발견할 때 느끼게 되는 것은 행복'이다.  마치, 잭과 프랜 부부가 그날 밤에 느꼈던 행복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행복은 또 다른 불행을 낳는다.  그날 밤,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낀 잭과 프랜 부부는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임신을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  출산한 아내는 긴 머리를 잘랐고 뚱뚱해 졌다.  그리고 아이는 음흉한 구석이 있다.  가족은 어딘지 모르게 뚱뚱한 공작새를 닮았다. 





+

단편소설 << 깃털들 >> 은 레이몬드 카버 자신이 이룩한 문학적 성취에 대한 불안으로 읽힌다. " 공작새의 깃털들 " 은 카버가 그동안 갈망했던 미니멀한 문장과는 결을 달리하는 만연체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작가가 보기에 공작새의 깃털(화려한 만연체)은 솎아내야 할 악덕이다. 카버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간절함을 잃어버린 순간 자신의 문장에 덕지덕지 붙게 될 만연체'에 대한 공포였을 것이다.  단편집 << 대성당 >>  은 걸작이다. 여기에 덧대어 약간 과장하자면 압도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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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6-18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버의 대성당 작품집이 걸작이라는데 동의합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20-06-19 12:02   좋아요 0 | URL
읽다가 기절할 뻔했습니다.. ㅎㅎㅎ
 
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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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위로한답시고 한 말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위로가 지나치면 충고가 되고 진심이 없으면 하나 마나 한 말이 된다. 그래서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때 긴장하게 된다. 특히, 장례식장에서 상주에게 한마디 건네야 할 때에는 좌불안석이 된다. 죽음에 가까운 슬픔 앞에서 일상을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는 무엇일까 ?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불리는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 << A Small, Good Thing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은 위로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단편소설에는 아들의 여덟 번째 생일날 뺑소니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생일이 지나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고객 맞춤 주문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아서 화가 난 빵집 주인이 등장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소한 약속(생일 케이크)을 챙기기에는 아들의 죽음은 거대한 불행이었고, 그 속사정을 알 턱이 없는 빵집 주인은 생일이 지났는데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손님이 미워서 수시로 재촉 전화를 했을 뿐이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말한다. " 이제는 스카티(아들 이름)를 잊어버린 모양이군 ! "  한쪽은 아이의 죽음 때문에 혼이 나간 상태이고 한쪽은 상한 케이크 때문에 화가 난 상태이다.  이 불협화음은 어두컴컴한 터널처럼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 빵집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울부짖는 젊은 부부 앞에서 늙은 빵집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일단, 사과의 말은 건네지만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며 울고 있는 부부를 어떻게 위로할지는 모른다, 사과와 위로는 다른 말이니까.  그는 부부 앞에 철제 의자 두 개를 가져와 앉게 한 후 따듯한 커피와 갓 구운 롤빵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어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겁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됩니다. 더 있어요. 다 드세요. 먹고 싶은 만큼 드세요.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 있으니...... "  극심한 고통 때문에 며칠 동안 물 한 모금도 삼킬 수 없었던 부부는 비로소 롤빵을 먹기 시작한다.  달콤하고 따스한 빵이다. 아내는 롤빵을 세 조각이나 먹는다. 부부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고 거짓 감정도 없이 진심을 다해 사과를 전하는,  


위로의 말 없이도 위로를 전하는 빵집 주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소설은 새벽 동 트는 창밖의 풍경을 묘사하며 끝이 난다. 불협화음이 환해지는 순간이다. 소설은 끝이 나도 잔상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불쑥 이 글을 쓴다. 좋은 소설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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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20-06-1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로버트 알트만 영화 <숏컷>에 삽입돼 있었는데 넘나 감동적이었어요ㅜ 아이 엄마 역이 앤디 맥도웰. 박완서 선생님도 어디 수필에서 언급하셨어요. 원작 제목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6-17 22:35   좋아요 0 | URL
아 ! 그래요. 앤디 맥도웰이 엄마로 나왔던... 아, 그개 영화 숏컷의 한 장면이었군요. 이제야 생각이 납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