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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위로한답시고 한 말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위로가 지나치면 충고가 되고 진심이 없으면 하나 마나 한 말이 된다. 그래서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때 긴장하게 된다. 특히, 장례식장에서 상주에게 한마디 건네야 할 때에는 좌불안석이 된다. 죽음에 가까운 슬픔 앞에서 일상을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는 무엇일까 ?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불리는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 << A Small, Good Thing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은 위로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단편소설에는 아들의 여덟 번째 생일날 뺑소니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생일이 지나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고객 맞춤 주문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아서 화가 난 빵집 주인이 등장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소한 약속(생일 케이크)을 챙기기에는 아들의 죽음은 거대한 불행이었고, 그 속사정을 알 턱이 없는 빵집 주인은 생일이 지났는데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손님이 미워서 수시로 재촉 전화를 했을 뿐이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말한다. " 이제는 스카티(아들 이름)를 잊어버린 모양이군 ! " 한쪽은 아이의 죽음 때문에 혼이 나간 상태이고 한쪽은 상한 케이크 때문에 화가 난 상태이다. 이 불협화음은 어두컴컴한 터널처럼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 빵집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울부짖는 젊은 부부 앞에서 늙은 빵집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일단, 사과의 말은 건네지만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며 울고 있는 부부를 어떻게 위로할지는 모른다, 사과와 위로는 다른 말이니까. 그는 부부 앞에 철제 의자 두 개를 가져와 앉게 한 후 따듯한 커피와 갓 구운 롤빵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어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겁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됩니다. 더 있어요. 다 드세요. 먹고 싶은 만큼 드세요.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 있으니...... " 극심한 고통 때문에 며칠 동안 물 한 모금도 삼킬 수 없었던 부부는 비로소 롤빵을 먹기 시작한다. 달콤하고 따스한 빵이다. 아내는 롤빵을 세 조각이나 먹는다. 부부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고 거짓 감정도 없이 진심을 다해 사과를 전하는,
위로의 말 없이도 위로를 전하는 빵집 주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소설은 새벽 동 트는 창밖의 풍경을 묘사하며 끝이 난다. 불협화음이 환해지는 순간이다. 소설은 끝이 나도 잔상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불쑥 이 글을 쓴다. 좋은 소설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