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통한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 원죄 " 를 짊어지고 태어난 불쌍한 운명'을 타고난 족속이다. 인류의 시조 격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original sin 이라고 한다.  아담과 하와는 사과 먹은 것에 대해 신에게 사과를 했으나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가 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불호령을 내렸고,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야 했다. 한번 미운털이 박힌 놈은 뭘 해도 미운 법. 하나님은 나중에 물호령(대홍수 : 노아의 방주)으로 아담과 하와의 후예'를 징벌하였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모르면 간첩. 너무 많이 알면 빨갱이.  이 기독교 교리(원죄설)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악하기에 후천적 교육에 의해서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순자의 성악설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런데 나와는 혈연 관계도 아니면서 형제자매 님'이라며 친절하게 다가오는 기독교 신앙인'에게 인간은 성선설에 가깝냐, 아니면 성악설에 가깝냐고 물으면 몇몇은 인간은 선한 존재'라고 말한다. 헛점이 보이면 하이에나처럼 후벼파는 본성을 가진 나는 사악하게 말대꾸한다. " 성선설은 이슬람교 기본 교리'입니다. 무신론자나 불교신자 혹은 이슬람교 신자'가 성선설을 믿는다고 하면 반론을 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기독교 신자'가 성선설을 주장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 라고 다시 한번 불꽃 스매싱을 날리면 나를 형제자매라고 불러서 유사 형제자매가 된 형제자매 님은 눈빛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한순간에 이슬람교 교리를 믿는 사이비 기독교인이 된 형제자매는 치질하게 눈알 불알이며 항문 쫙 조인다.

성선설을 믿는냐, 성악설을 믿느냐 아니면 빈 서판 가설'을 믿느냐는 자유에 속하지만 기독교인이 성악설을 부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의 핵심은 " 나는 죄인이올시다 ! " 가 아니었던가. 이 사실을 부정하면 안 된다. 사이비 기독교 신자인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겉으로는 도덕군자처럼 행동하지만 내 머릿속은 송강호가 << 살인의 추억 >> 에서 이단옆차기와 함께 외친 " 강간의 제국 " 이 펼쳐진다. 상상 속에서 이웃집 여자를 탐한 적도 있고, 갑의 횡포에 살의를 느낀 적도 있고,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졸라 아픈 적도 많다. 그리고 타인의 불행에 대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이 정도면 내 본성은 " 성악 " 에 가깝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 배 부르면 행복했고 나 혼자 칭찬 받으면 우쭐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람 변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으니, 나는 태어날 때부터 사악한 놈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 진심은 통하기 마련...... " 이라는 상투어'가 끔찍하게 느껴진다. 이런 말을 술자리나 티븨 모니터 속 인물에게서 듣게 되면 " 시바, 끔찍하구나 ! "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블루 " 하며 " 다크 " 하고 때론 에스트로겐 분비 때문에 " 분홍분홍한 " 나에게 진심이 통하는 세상은 그야말로 끔찍한 세상이다. 인간은 10분마다 거짓말을 하고 10분마다 꼴린다(남성의 경우)는 통계가 있다. 이게 바로 인간 본성'이다. << 진심 >> 이란 진짜 마음으로 거짓으로 꾸미지 않은 마음속'을 뜻하니 진심은 아름다운 게 아니라 추악한 것에 속한다.

그런데 진심이 통하거나 간절히 원했더니 꿈이 진짜로 이루어지면 세상은 아비규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역설적 표현이지만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진심이 통하면 안 되고, 간절히 원한다고 꿈이 이루어지면 안 된다. 까짓것 ! 정은 통해도 된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면 안 된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유행하던 구호는 "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 " 였다. 지성하면 맨유이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40위 권 밖에서 빌빌거리던 한국 축구가, 16강 본선 진출은커녕 그동안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1승조차 거두지 못했던 한국 축구가 4강 진출을 했으니 꿈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말.입.니.다. 이 꿈이 그리 좋은 꿈이 아니었다. 

한국과 결전을 치룬 경기가 피파 100년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악랄한 오심 경기'로 화자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허니문처럼 달콤한 꿈이었지만 다른 나라가 보기에는 악몽에 가까운 비터문'이었다. 비열한 수를 쓰든 말든 이기고야 말겠다는 진심이 통했던 것이다. 모레노는 종편보다 무서운 편파로 한국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그는 고국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인문학은 수문학으로 고쳐 써도 말이 된다. 짐승 수 (獸)를 써서 수문학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수성(獸性)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 본성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책은 대부분 성공과 처세를 다루는 자기계발서와 반성으로 시작해서 자화자찬으로 끝나는 신달자 식 에세이'가 대부분이다.

달달한 목소리로 아프니까 청춘이야, 라고 말하거나 당신의 무한 긍정을 믿습니다, 라는 박카스 광고 문구를 들을 때마다 현실 속 시궁창을 오아시스'로 만드는, 입 닥치고 무조건 와, 하라는 요구에  무릎 탁, 치고 우, 하게 된다. 인간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 우리 개는 절대 물지 않아요 ! " 라고 말하는 개 주인의 말이 생각난다. 물론 당신이 키우는 개는 주인을 물지는 않겠지만 지나가는 행인'을 물 수는 있어요. 그렇기에 우리 개는 절대 물지 않는다는 말은 일반화의 오류에 속한다. 눈알 불알이며 항문에 힘쓴다고 해서 치질한 내 환경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인간은 인성보다는 수성에 가깝다는 인문학적 결론에 나는 행복하다.  나 혼자만 쓰레기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 맛에 책을 읽는다. 너도 쓰레기다.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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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2-1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맛에 곰발님 페이퍼를 읽습니다. 너무 귀엽잖아요.ㅋㅋㅋ
그래도 곰발님 교회는 다녀오셨습니까? 아무리 사이비라지만 주일 하루 예배는 드리셨겠죠? ㅎ

저도 성악설을 믿는데 왜 성선설을 믿는다고 하죠?
사실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 때는 몰라도 융성기 때 잘못된 교리가 오늘 날
후유증을 낳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와중에도 올바른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긴하죠.
전 요즘 김경집 교수의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이란 책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이분 정말 대단하다 싶어요.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엉터리로 전해졌는지 조목조목 따지고 캐는데 좋더라구요.
뭐 저는 좋지만 곰발님께 권할 자신은 없네요.
취향이 다를 수도 있어서...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6 18:16   좋아요 0 | URL
전 사이비라 교회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때만 갑니다.

초기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역할을 했죠. 사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교회 단체가 했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눈먼 종교... > 요거 함 읽어보겠습니다.

 

 

 

 



세월호 사건 : 책임과 회피

 

 

 

 

ㅡ 사람들은 주인(자유) 과 노예(구속) 가운데 주인의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노예를 갈망한다

 

 

 

영화 << 브레이브 하트 >> 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멜 깁슨은 자신이 공개 처형 당하는 날, 최후 변론에서 이렇게 외친다. " freedom !!! "  이 말을 끝으로 그는 목이 잘린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처절했으면 죽는 그 순간에 이토록 처절하게 절규했을까. 이 장면은 이 영화의 화룡점정이었다. 적막이 흘렀다. 눈물을 부끄러워하는 남자들은 여기저기서 애써 눈물을 참으려는 듯 헛기침을 했다, 마치 양파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신파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 이 숭고한 죽음 앞에서 주먹 쥐고 괄약근에 힘주었으리라. 그런데 나는 이 " 뽕끼 " 가 너무 유치해서 요실금 환자처럼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독재 타도, 엄마야, 화이팅, 하모 내 없으모 니가 장남이데이 알긋나 부탁한데이 ! 따위도 아니도 밑도 끝도 없이 대뜸 명사로 " 자유 !!!!!! " 를 외친다는 게 우습게 보였다.

 

물론 feedom이 대한 독립 만세 ㅡ 뉘앙스'이기는 하나, 적 앞에서 억울하게 죽는 마당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 내가 감독이었다면 대사를 이렇게 수정했을 것이다. " 30초만 숨 쉴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네에 ? " 영화는 자유야말로 인간이 쟁취해야 할 A에서 Z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완전한 자유보다는 적당한 구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완전한 자유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상부 명령에 쉽게 복종하는 인간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부 명령에 복종한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신은 죄 없다. 상부 명령에 복종한 것뿐이니 문제가 발생하면 명령 주체'가 책임져야 할 사항이지 자기 책임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홀로코스트 주범이었던 아이히만이 법정에서 내세운 논리도 책임 회피'였다. 자신은 그저 상부 명령에 복종한 것이기에 죄가 없다는 주장'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국정원 소속 여성 직원'은 상부 기관인 조직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이처럼 인간이 자유 대신 복종'을 선택하는 이유는 책임 회피'에 있다. 방관자 효과( , bystander effect) 라는 사회 심리학 용어'가 있다. 키티 제노비스 (Kitty Genovese) 라는 이름을 듣고는 무릎 탁, 치며 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니 말이다. 뉴욕 퀸즈 거리 주택가에서 한 여성이 죽는다. 범인은 윈스턴 모즐리'라는 똘아이'였는데 살해 동기는 묻지마 살인'이었다. 그는 35분 동안 세 차례나 범행 장소로 돌아와 죽어가는 여자를 칼로 찌르고 거리에서 죽어가는 여자를 시간한다.

그 시간 동안 제노비스는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소리치지만 창문을 열어 살인을 저지하려는 몸짓을 하거나 경찰에 전화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집에 있는 목격자는 무려 38명이나 되었다. 이것이 바로 방관자 효과 혹은 제노비스 신드롬'이라 한다. 원인은 책임 회피'였다.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했을 것이라는 책임 회피성 추측이 비극을 낳은 것이다. 방관자 효과'와 일맥상통하는 실험이 신학생을 대상으로 한 "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 " 이다. 실험군은 두 부류였다. 하나는 착한 사마리안'에 대한 설교 과제를 준 쪽과 다른 하나는 이와 관련이 없는 설교 과제를 준 부류로 나누었다. 그리고 야외 몰카'를 준비한다. 설교를 하러 가는데 길거리에 강도에게 습격을 당한 것 같은 사람이 쓰러져 신음소리'를 낸다.

두 부류 가운데 어느 쪽이 도움의 손길을 주었을까 ? 상식대로라면 선한 사마리아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던 신학생이 더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노상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극진히 보살피는 내용이니 말이다. 하지만 심리학 실험의 묘미는 엉뚱한 결과에 있지 않은가.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변수는 설교 시간에 있었다. 설교 시간이 촉박한 사람은 외면했고 반대로 설교 시간이 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거리에서 쓰러진 사람을 도왔다. 그러니까 설교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 실험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촉박한 시간'이 주는 책임 회피'였다. 도와주고는 싶지만 설교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주지 못한다ㅡ라는 변명이 작동한 것이다.

여기서는 시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구속이 방관자 효과를 발생시킨 것이다. 반대로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특정 시간 동안에는 자유로운 몸인 사람은 이 타자의 곤경을 쉽게 외면할 수가 없다. 잘못을 전가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유는 사실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적당한 구속과 복종이 더 자유롭다. 다시 말해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구속에서는 회피할 수 있는 변명거리'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완전한 자유보다는 적당한 구속이 편하다. 자유를 원한다고 ?! 웃기지 마라. 그것은 착각'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승무원이 보인 방관자적 태도'였다. 사고의 심각성에 비해 승무원이 보인 태도는 당황'했다기보다는 침착'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타인의 죽음을 방관했다. 사람들은 승무원이 보인 이 처절한 외면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이해 가능하다.

그러니까 승무원이 보인 일사불란하며 초연한 외면은 책임을 전가시킬 대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 서두에서도 지적했듯이 세월호 승무원들은 상부 명령에 따라 일을 처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는 상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책임 회피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죽음을 외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만약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상부 명령 없이 세월호 승무원들이 자체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해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아마, 그들은 적극적으로 구명'에 나섰을 것이다. 단순히 명령에 복종하는 주체가 아닌 자발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 행위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체적 사고보다는 단순히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에서 밝혀야 할 부분은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실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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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2-1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세월호 승무원이 따랐다던 상부는 누구였을까요?
그 상부는 어떤 지시를 승무원에게 내렸길래 승무원은 그렇게 말하는 거구요.
지금 법원이나 여론은 선장에게 죄를 전가하는 추세잖아요.
그래서 선장에게 형을 구형하면 끝나는 건가?
좀 의문인건 대형 사고가 없었던 것이 아닌데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저를 포함해서 국민들이 너무 많이 슬퍼하고 공분했다는 건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민간인이 너무 많이 죽어서일까?
삼풍이 무너질 때, 성수대교가 붕괴 됐을 때의 충격보다 더 했던 것 같아요.
나만 이러나?


2015-02-14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5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6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철분 부족 사회 : 올림픽과 철거머리



 

 

 

 

 

 

 

 


올림픽'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이제 올림픽 같은 종합 운동회 형식'은 반갑지 않은 축제가 아닐까 싶다. 쿠베르탱 남작이 설파한 올림픽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 남작이 스포츠 마피아들이 장악한 작금의 작태를 본다면 납작 엎드려 통곡했을 것이다 ) 아예 육상 경기'이면 육상 대회, 수영 경기이면 수영 대회'로 나누어 소규모로 진행하는 게 합당하다. 20세기 스포츠'처럼 메달 수로 세를 과시하던 시대는 지났다. 모여라 꿈동산 식으로 과도하게 잔칫상을 차리다 보니 올림픽에 들어가는 비용과 자연 파괴'가 심각하다. 흔히 정부가 말하는 " 올림픽이 가져다 주는 경제 효과 ●● 조 " 따위는 실체가 없는 헛소리'다. 21세기 현대 올림픽은 이익 창출은커녕 엄청난 재정 적자'만 양산할 뿐이다. 

오죽했으면 올림픽의 저주'라는 소리가 나올까. 나가노 올림픽 재정 적자가 17조'라고 한다. 한마디로 " 나가노 " 는 동계 올림픽 이후 " 나가리 " 가 되었다. 올림픽 개최로 관광객 수가 늘어나 22조 원이라는 경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 헛소리 " 는  나가노 시 재정이 " 나가리 " 되면서 쏙 들어갔다. 자연을 파괴하고 만든 경기장은 축제 이후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이 되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용이 드는 자동차 주차장으로 사용한다고.  2주 간의 폼나는 카니발을 위해 4조 원'이라 돈을 쏟아부은 결과가 흙을 파서 콘크리트로 메운 운동장 시설과 빚 17조'다. 시설 관리 유지 비용을 따진다면 빚은 현재진행형으로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 포틀래치 " 는 저리 가라, 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부를 자랑하기 위하여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축제를 여는데, 그동안 축적한 재산을  거덜낼 만큼 모든 재화를 초대받은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꼴값(체면을 차리느라)하느라 한순간에 " 나가리 " 되는 경우'다. 축제에 초대받은 사람은 웬 횡재인가 싶지만 알고 보면 오히려 축제를 여는 주인보다 부담이 더 크다. 왜냐하면 초대받은 사람은 반드시 지금보다 더 큰 축제를 열어 화답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축제 규모가 적으면 사람들에게 밴댕이 소갈머리'라는 손가락질 받는다. 한마디로 체면 구기니 고개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올림픽은 현대판 포틀래치'다. 이 흥청망청'을 위해 평창 올림픽이 열린다. 대한민국은 한술 더 떠 올림픽 개최에 따른 예상 경제 효과를 65조 원으로 잡았다.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계산된 셈법인지는 모르겠으나 65조가 앞으로 파생될 빚'이 아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물론 올림픽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문제는 몇몇 소수'라는 데 있다. 평창 올림픽은 국민 세금으로 치뤄지나 이윤은 몇몇 철거머리'에게 돌아갈 뿐이다. 올림픽 이후, 지역 상권이 발달할 것이라는 지역 주민의 바람은 헛바람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나가노의 나가리'를 보면 장미빛 전망을 쏟아내는 헛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으리. 철거머리'는 < 철거 > 와 < money > 가 합쳐진 조어'로 찰거머리를 빗대서 만든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생소하다 못해 처음 들어볼 것이다. 내가 방금 지어낸 것이니 말이다. 하하. 여기서 철거는 원주민을 쫒아내는 행위를 뜻하고 머니는 철거 행위로 인해 파생된 이윤을 뜻한다.

이름마저 생소한 겨울 스포츠 운동장 건설을 위해 산을 깎는다는 측면에서 원주민이었던 나무가 잘리고 짐승이 터전을 잃으니 운동장 건설로 이득을 보는 이도 철거머리'다. 철거머리의 아버지로는 " 내가 해봐서 아는데... " 와 "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 " 라는 불멸의 유행어를 남긴 이명박 씨'가 있다. 민주주의와 정의 실현 따위와는 담 쌓고 지냈던 그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토건'이었으니 머니 머니 머니 해도 운하 사업은 각하다운 발상이었다. 땅을 파다 파다 파다 결국 바닥이 보이니 이제는 물 속으로 삽질 경영을 확대한 것이다. 운하'라는 낭만적 축제를 위해 22조라는 엄청난 돈이 낭비되었으니 이 또한 " 포틀래치 " 라 할 수 있다. 파괴된 운하는 노래하는 뱃사공 대신 녹조와 이끼벌레가 대신한다.

각하 말대로 강물은 " 졸라 " 푸르게 변했다. 문제는 너무 푸르게 변했다는 데 있다. 이제 대한민국 강물은 시푸르뎅뎅하거나 시푸르죽죽하다. 한 인간이 강을 거대한 녹즙기로 만든 것이다. 청와대에 어처구니가산다면 강바닥에는 이끼벌레가 산다. 각하가 장기 집권했다면 나중에는 은하 사업'도 했을 것이다. 그는 아도니스'여서 은하마저 허벌나게 시푸르죽죽한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철거머리'가 잘 사는 환경이 조성된 나라'다. 원주민이 터를 잡고 일군 일터는 철거머리'에 의해 쫒겨나기 일쑤다. 장사가 잘된다 싶으면 세입자를 쫒아내는 주인도 철거머리'이고, 골목 상권까지 진출해서 악착같이 서민의 이윤을 빨아먹으려는 대기업도 철거머니이며, 그린벨트 해제하고 산 깎아 이윤을 창출하는 이도 철거머니'이다.

철거머니가 기승을 부리니 원주민은 자신이 일군 터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멀어질수록 몸이 힘들다. 치솟는 집값 때문에 보다 먼 외각 지역으로 쫒겨나다 보니 출퇴근 시간은 그만큼 늘어나고,  아내( 혹은 남편)과 섹스할 시간은 부족하다. " 미안해, 여보 !  나 피곤해. 우리 각자 하루키처럼 각자 자위나 하자. " 시간이 없어서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으로 버스에 오르다 보면 왜 사나 싶다. 사람들은 온통 젖은 머리로 핏기 하나 없는, 히마리 없는,  얼굴로 아이폰 액정 화면'만 보고 있다. 가뜩이나 창백한 얼굴은 발광 다이오드 극성에서 하사하는 형광에 의해 더 히마리 없는 얼굴처럼 보인다. 히히, 좋댄다.  거머리는 잘 죽지 않는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철거머리에게 피를 빨려서 현기증으로 고생하는 철분 부족 사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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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나가노 올림픽 관련 기사를 읽었어요. 사실 올림픽뿐만 아니라 월드컵 이후 개최도시의 현 상황을 소개하는 르뽀를 종종 나오기 마련인데 우리나라는 국제대회를 열면 경제효과에 무조건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여전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3 19:13   좋아요 0 | URL
전 봅슬레이 경기장 어떤 방식으로 재활용할지가 궁금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브라질 월드컵도 월드컵 비용 때문에 휘청거린다는 소리도 들리고... 이젠 규모가 너무 커졌어요.

활강 경기 고거 3일 치르는 데 그걸 위해서 수백억이 들어가고 500년산 나무 500그루가 잘려나가는 거 보면 비단 이익 창출 뿐만아니라 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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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罰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원작 소설'은 뛰어난데 원작을 각색한 영화가 형편없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리처드 매드슨의 << 나는 전설이다 >> 가 대표적이다. 원작에서 보여준 " 헤비 " 하며 " 블루 " 하고 " 다크 " 한 멜링콜리'를 이따위 SF 율동 쾌감 활극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소설이 인간의 고독에 대해 말한다면, 영화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 이래서 차이 밍량이 좋은 영화는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는 영화이고 나쁜 영화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영화라고 말한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 정신에 기반한 할리우드 영화의 맹점은 광활한 오지랖'이다. 그냥 " 너나 잘하세요. " 반면 형편없는 소설을 가지고 뛰어난 영화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충무로 속담에 좋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형편없는 영화를 만들 수는 있지만 형편없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는 말이 떠도는데,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형편없는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 자체가 판단 미스'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형편없는 소설로 영화를 만들 바에는 차라리 창착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게 더 낫다. 영화 << 모래의 여자 >> 는 20세기 걸작 소설로 평가받는 아베 코보의 << 모래의 여자 >> 를 각색했지만 원작이 가진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잘 만든 영화'다. 대중 영화이건 예술 영화'이건 초반 20분대 안에 관객에서 흥미를 돋울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데 이 영화는 시작부터 흥미롭게 진행된다. 보다 보면 무릎 탁, 치며 아, 하게 된다. 굳이 공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영화 시작 후 20분대까지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상황 설명 부분'이기에 차분하게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한 튼튼한 근거 자료'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스릴러 영화는 대부분 영화 시작 부분에 중요한 복선을 깐다. 그래야지 뒤통수 제대로 맞은 관객이 영화 앞부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 보낸 장면이 중요한 장면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만약에 영화 전반보다는 영화 후반이 기똥차다고 해서 전반부를 무조건 상황 설정'만 하다 보면 관객은 모니터 전원을 끄게 된다. 관객이 지루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을 넘기면 관심을 끄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그러니까 지루해서 관객의 엉덩이가 들썩거릴 때 히든 카드를 꺼내야 한다. 모니터 채널을 돌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영화를 자세히 보다 보면 이러한 공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장르 영화에 국한해서 설명하자면 공포 영화나 스릴러 영화는 20분대에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살인 장면'을 끼워넣는다.

영화 << 모래의 여자 >> 는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진행된다. 타이틀 디자인'부터 세련된 맛을 선사한다. 영화 시나리오는 소설가인 아베 코보가 직접 썼기에 소설과 영화는 내용이 거의 똑같다. 다음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보도 자료'다.



작품은 한 남자의 실종 사건이 근간이 된다. 주인공은 잿빛 일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모래땅으로 곤충 채집을 나선다. 그가 찾아간 해안가 모래 언덕에는 기이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치 부서져가는 벌집처럼 거의 20미터나 될 정도로 깊게 파인 모래 구덩이들 속에 집이 세워져 있다. 남자는 마을 사람들의 계략으로 여자 혼자 사는 모래 구덩이에 갇히게 되고, 흘러내리는 모래에 집이 파묻혀 버리지 않도록, 마치 쉬지 않고 돌을 굴려야 하는 신화 속의 시지프처럼 매일매일 삽질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어이없어 하는 그에게 여자는 자기 혼자서는 그곳 생활을 견디기가 벅차다고 해명한다. 한 집이 붕괴되면 사구에 자리잡은 마을 전체가 붕괴되기 때문에 작업을 멈출 수가 없다고.

모래 퍼내는 것쯤 훈련만 받으면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고, 자기에게도 좀더 그럴 듯한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냐고 절규하며,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는 남자. 치밀한 계획 하에 구멍에서 빠져나오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에 의해 돌려보내진 후 여자가 남자를 위로하는 장면에 삽입된 작가의 목소리, <서로 상처를 핥아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만 있는다면, 끝내는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라는 부분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어내고 있는 독자들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그런데 작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탈출을 기도하는 남자를 위협하는 수단이었던, 그들이 배급해 주어야만 얻을 수 있었던 물을 모래 속에서 끌어올리는 유수 장치를 우연히 발명하게 된 이후, 남자는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탈출을 뒤로 미룬다.

마을 사람 누군가에게 유수 장치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이 갑작스러운 결말 앞에서 독자는 멈칫거리게 되고, 일상의 존재 근거에 대해 다각도로 되묻게 된다


ㅡ 출판사 소개글 中

내가 이 소설(영화)에 뻑이 간 원인은 도입부 때문이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8월 한여름의 사막 기후, 천연 암반수를 얻기 위해 시추한 구멍처럼 깊은 지하 세계에 지어진 집, 모래 구멍 지옥에 갇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벌이는 잰더 트러블'에서 비롯되는 밀당이 흥미쥔쥔하다. 한여름, 해변가에서 뒹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땀 때문에 달라붙는 모래'가 주는 불쾌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하루 종일 비처럼 모래가 쏟아지는 곳이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모래 집에서 갖게 되는 섹스 또한 고통으로 얼룩지리라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모래 위'에서 섹스하지 마라. 모래 때문에......  아, 퍼요. 소설(영화) 도입부의 강렬함은 끝까지 간다.

개인적으로 << 모래의 여자 >> 는 20세기 문학을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소설 탑 10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서사 자체가 독자를 압도하는 소설은 흔한 일이 아니지만 이 소설은 대중성은 물론이고 예술성도 갖췄다. 누구나 탐낼 텍스트'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아닐까 싶다. 아, 술 마시면서 쓰다 보니 급하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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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2-1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아베 코보는 손이 잘 가지 않아서, 책만 사두고 여태껏 읽지 않았습니다. 곰곰발님 글을 읽고 나니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3 14:21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 작품이 있지요. 아베 코보 작품을 다 읽을 필요는 없지만 < 모래의 여자 > 만큼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수다맨 2015-02-13 15:45   좋아요 0 | URL
이 글과는 상관없는 얘기입니다만, 이명박 대통령 자서전에 대해 썼다가 알라딘 서재 관리자에게 얼마전 메일을 받았습니다.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비속어 사용 및 제3자에 대한 명예훼손 등 미풍양속을 손상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상품 페이지에서 노출을 중지시킨다고 하더군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3 16:27   좋아요 0 | URL
허걱이군요... 역시 각하는 항상 사람들을 허걱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뭔 놈의 미풍양속을 손상시키는 것인지.... ㅎㅎㅎㅎㅎㅎ
그의 존재 자체가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슾네요.. 헐...
 
우나기 (화질보정판) (Unagi/3장 구매시 리모콘 홀더증정)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 우나기, 1997  >>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작품 : 성실한 삶을 살던 다쿠오는 어느날 아내의 불륜의 현장을 목격하고 아내를 난자하여 살해한 후, 경찰서로 가서 자수를 한다. 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후 가석방을 한 그의 손에는 뱀장어가 한 마리 들려져 있다. 다쿠오는 조그만 변두리 마을에 이발소를 차리고 정착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채 오직 뱀장어에게만 관심을 쏟으며 살아가는 다쿠오. 어느 날 그는 숲속에서 자살을 하기위해 약을 먹고 쓰러져있는 게이코를 구해준다. 정신이상자인 어머니와 고리대금업자 애인 사이에서 방황을 하고 있던 게이코는 다쿠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지만 다쿠오는 쉽사리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느날 게이코의 애인이 이발소로 들이닥쳐 난동을 부리자 다쿠오는 분노와 증오로 상대방의 목에 칼을 댄다.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다쿠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 게이코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줄 것을 약속한다.

 

 

1926년 도쿄에서 태어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와세다 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연극에 관심을 갖고 희곡을 쓰며 좌파 연극 활동을 했다. 1951년 쇼치쿠 영화사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이후 스튜디오의 도제 시스템과 오즈 영화 스타일에 대한 반감으로 닛카츠로 옮긴다. 새로운 영화사에 정착한 그는 1958년,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을 유랑극단의 타락한 삶에 비추어 그려낸 <도둑맞은 욕정>으로 장편 영화감독에 데뷔한다. 첫 연출작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나타낸 그는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나 하층계급에 속한 이들의 끈질긴 생명력, 삶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포착해왔다. 1960년대 가장 문제적 감독으로 손꼽히는 오시마 나기사와 함께 일본 뉴웨이브를 이끄는 주역이 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1965년 '이마무라 프로덕션'을 설립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TV 다큐멘터리에 전념한 그는 <복수는 나의 것>으로 일본 국내 영화상을 휩쓸기도 한다. 1982년에는 <나라야마 부시코>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여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1997년 <우나기>로 두 번째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

 

ㅡ 영화 우나기 소개 글에서 부분 발췌

 

 

 

 

ㅡ 꼼장어의 정식 명칭은 " 먹장어 " 다. 먹장어는 경골어류인 다른 장어'와는 달리 턱뼈가 없어서 무악류로 분류된다. 기생충 흡반처럼 생긴 입으로 기생충처럼 생명체 몸에 붙어 살을 빨아먹고 산다.  모양새와 식습성이 혐오스러워서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 주로 껍질은 가죽으로 사용되었는데 해방 직후 먹거리가 부족했던 한국인은 껍질이 벗겨진 채 버려진 먹장어를 먹기 시작했다. 질긴 생명력 때문에 껍질을 홀랑 벗겨 토막을 내도 불판 위에서 꼼지락거린다고 해서 " 꼼장어 " 라고 불렸다.

 

욕망의 아나고

 

보험금을 수령하면 이 지긋지긋한 장어구이 가게를 때려치우고 근사한 카페 하나 차리리라. 나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아내를 죽일 계획을 꾸몄다. 아내와 잠자리를 갖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아내는 이유 없이 섹스를 거부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때 아내는 나 몰래 젊은 놈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아내가 죽으면 보험금은 10억이 나온다. 물론 보험 회사에서는 나를 의심은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있다. 아내는 오늘도 술에 취해 가게 바닥에 누워 자고 있다. 장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셨다고 하지만 그것은 변명'이다. 사내만 보면 추파를 던지는 여자'다. 아내를 살짝 흔들어 보았다. 입을 벌린 채 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나는 수족관이 있는 곳으로 가서 펄떡거리는 장어 열 마리'를 꺼냈다. 모두 아이 팔뚝 만한 놈들이었다.


내 비장의 무기다. 물 밖으로 나온 장어는 숨을 곳을 찾아 고통스럽게 움직였다. 장어는 어둡고 촉촉한 구멍을 좋아해서 구멍이 보이면 무조건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습성이 있다. 나는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붕장어를 일본어로는 아나고라 하는데 한자 표기로는 

 

눈빛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아내는 입 속에 들어간 장어를 꺼내기 위해 손으로 장어를 잡고 필사적으로 밖으로 빼려고 했지만 미끄러운 장어를 꺼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내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다가왔으나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벌어진 입 사이로 붕장어 꼬리가 보였다. 마치 검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마녀 같았다. 입 속으로 들어간 장어는 살기 위해서 식도를 갉아먹을 것이다. 형사가 물으면 요리를 하기 위해 부엌에 둔 장어가 도망치다가 누워 자는 아내 입 속으로 들어갔다고 할 생각이다. 바닥에 나뒹구는 장어 몇 마리만 남겨둔 채 나머지는 비닐 봉투에 담아 화장실 변기에 버렸다. 바닥에 장어가 너무 많으면 형사가 의심을 할 게 분명하다. 나는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이제 번거로운 몇몇 절차만 끝나면 보험금이 나오리라.


형사 앞에서 슬픈 표정을 한다는 게 무척 힘들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자니 자꾸 웃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곳은 화장실이다. 화장실에 가서 웃으리라. 변기 카버를 열고 바지를 내린 후 앉았다. 낄낄, 웃음이 났다. 낄낄낄, 계속 웃음이 났다. 그때였다. 묵직한 것이 내 몸을 뚫고 들어오는 통증을 느꼈다. 항문 쪽이었다. 엉거주춤 일어나 살펴보니 장어 한 마리'가 항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시발.... " 나는 장어 꼬리를 잡고 있는 힘을 다해 빼려고 했으나 힘 좋은 장어는 그럴수록 더욱 세차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묘한 배변욕 그리고 오르가슴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꼬마 한스가 되었다. 나는 이제 곧 죽으리라. 대장 길을 거쳐 소장으로, 앞으로, 앞으로.... 날카로운 장어 이빨이 내 몸속을 뜯으리라.



에필로그

 

" 9시 뉴스입니다. 첫 번째 소식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항문에 장어가 기어들어가는 사고로 40대 남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색정사'로 결론 내렸습니다. 경찰은 평소 김 씨 부부가 섹스리스'로 성 상담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보아,  최근 아내와 사별한 김 씨가 평소에도 장어를 가지고 유사 항문 섹스 행위에 심취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월례 회의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이완구 총리 내정자 청문회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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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2-1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최종분석`을 본 후, 끝까지 확인해야 할 것은 한국어만은 아니다라고 느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2 18:07   좋아요 0 | URL
최종분석 보셨군요...... ㅎㅎㅎ. 역대급 반전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