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 책임과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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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사람들은 주인(자유) 과 노예(구속) 가운데 주인의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노예를 갈망한다
영화 << 브레이브 하트 >> 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멜 깁슨은 자신이 공개 처형 당하는 날, 최후 변론에서 이렇게 외친다. " freedom !!! " 이 말을 끝으로 그는 목이 잘린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처절했으면 죽는 그 순간에 이토록 처절하게 절규했을까. 이 장면은 이 영화의 화룡점정이었다. 적막이 흘렀다. 눈물을 부끄러워하는 남자들은 여기저기서 애써 눈물을 참으려는 듯 헛기침을 했다, 마치 양파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신파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 이 숭고한 죽음 앞에서 주먹 쥐고 괄약근에 힘주었으리라. 그런데 나는 이 " 뽕끼 " 가 너무 유치해서 요실금 환자처럼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독재 타도, 엄마야, 화이팅, 하모 내 없으모 니가 장남이데이 알긋나 부탁한데이 ! 따위도 아니도 밑도 끝도 없이 대뜸 명사로 " 자유 !!!!!! " 를 외친다는 게 우습게 보였다.
물론 feedom이 대한 독립 만세 ㅡ 뉘앙스'이기는 하나, 적 앞에서 억울하게 죽는 마당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 내가 감독이었다면 대사를 이렇게 수정했을 것이다. " 30초만 숨 쉴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네에 ? " 영화는 자유야말로 인간이 쟁취해야 할 A에서 Z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완전한 자유보다는 적당한 구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완전한 자유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상부 명령에 쉽게 복종하는 인간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부 명령에 복종한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신은 죄 없다. 상부 명령에 복종한 것뿐이니 문제가 발생하면 명령 주체'가 책임져야 할 사항이지 자기 책임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홀로코스트 주범이었던 아이히만이 법정에서 내세운 논리도 책임 회피'였다. 자신은 그저 상부 명령에 복종한 것이기에 죄가 없다는 주장'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국정원 소속 여성 직원'은 상부 기관인 조직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이처럼 인간이 자유 대신 복종'을 선택하는 이유는 책임 회피'에 있다. 방관자 효과(傍觀者 效果, bystander effect) 라는 사회 심리학 용어'가 있다. 키티 제노비스 (Kitty Genovese) 라는 이름을 듣고는 무릎 탁, 치며 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니 말이다. 뉴욕 퀸즈 거리 주택가에서 한 여성이 죽는다. 범인은 윈스턴 모즐리'라는 똘아이'였는데 살해 동기는 묻지마 살인'이었다. 그는 35분 동안 세 차례나 범행 장소로 돌아와 죽어가는 여자를 칼로 찌르고 거리에서 죽어가는 여자를 시간한다.
그 시간 동안 제노비스는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소리치지만 창문을 열어 살인을 저지하려는 몸짓을 하거나 경찰에 전화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집에 있는 목격자는 무려 38명이나 되었다. 이것이 바로 방관자 효과 혹은 제노비스 신드롬'이라 한다. 원인은 책임 회피'였다.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했을 것이라는 책임 회피성 추측이 비극을 낳은 것이다. 방관자 효과'와 일맥상통하는 실험이 신학생을 대상으로 한 "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 " 이다. 실험군은 두 부류였다. 하나는 착한 사마리안'에 대한 설교 과제를 준 쪽과 다른 하나는 이와 관련이 없는 설교 과제를 준 부류로 나누었다. 그리고 야외 몰카'를 준비한다. 설교를 하러 가는데 길거리에 강도에게 습격을 당한 것 같은 사람이 쓰러져 신음소리'를 낸다.
두 부류 가운데 어느 쪽이 도움의 손길을 주었을까 ? 상식대로라면 선한 사마리아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던 신학생이 더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노상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극진히 보살피는 내용이니 말이다. 하지만 심리학 실험의 묘미는 엉뚱한 결과에 있지 않은가.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변수는 설교 시간에 있었다. 설교 시간이 촉박한 사람은 외면했고 반대로 설교 시간이 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거리에서 쓰러진 사람을 도왔다. 그러니까 설교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 실험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촉박한 시간'이 주는 책임 회피'였다. 도와주고는 싶지만 설교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주지 못한다ㅡ라는 변명이 작동한 것이다.
여기서는 시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구속이 방관자 효과를 발생시킨 것이다. 반대로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특정 시간 동안에는 자유로운 몸인 사람은 이 타자의 곤경을 쉽게 외면할 수가 없다. 잘못을 전가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유는 사실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적당한 구속과 복종이 더 자유롭다. 다시 말해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구속에서는 회피할 수 있는 변명거리'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완전한 자유보다는 적당한 구속이 편하다. 자유를 원한다고 ?! 웃기지 마라. 그것은 착각'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승무원이 보인 방관자적 태도'였다. 사고의 심각성에 비해 승무원이 보인 태도는 당황'했다기보다는 침착'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타인의 죽음을 방관했다. 사람들은 승무원이 보인 이 처절한 외면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이해 가능하다.
그러니까 승무원이 보인 일사불란하며 초연한 외면은 책임을 전가시킬 대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 서두에서도 지적했듯이 세월호 승무원들은 상부 명령에 따라 일을 처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는 상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책임 회피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죽음을 외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만약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상부 명령 없이 세월호 승무원들이 자체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해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아마, 그들은 적극적으로 구명'에 나섰을 것이다. 단순히 명령에 복종하는 주체가 아닌 자발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 행위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체적 사고보다는 단순히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에서 밝혀야 할 부분은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실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