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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벌 罰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원작 소설'은 뛰어난데 원작을 각색한 영화가 형편없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리처드 매드슨의 << 나는 전설이다 >> 가 대표적이다. 원작에서 보여준 " 헤비 " 하며 " 블루 " 하고 " 다크 " 한 멜링콜리'를 이따위 SF 율동 쾌감 활극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소설이 인간의 고독에 대해 말한다면, 영화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 이래서 차이 밍량이 좋은 영화는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는 영화이고 나쁜 영화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영화라고 말한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 정신에 기반한 할리우드 영화의 맹점은 광활한 오지랖'이다. 그냥 " 너나 잘하세요. " 반면 형편없는 소설을 가지고 뛰어난 영화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충무로 속담에 좋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형편없는 영화를 만들 수는 있지만 형편없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는 말이 떠도는데,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형편없는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 자체가 판단 미스'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형편없는 소설로 영화를 만들 바에는 차라리 창착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게 더 낫다. 영화 << 모래의 여자 >> 는 20세기 걸작 소설로 평가받는 아베 코보의 << 모래의 여자 >> 를 각색했지만 원작이 가진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잘 만든 영화'다. 대중 영화이건 예술 영화'이건 초반 20분대 안에 관객에서 흥미를 돋울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데 이 영화는 시작부터 흥미롭게 진행된다. 보다 보면 무릎 탁, 치며 아, 하게 된다. 굳이 공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영화 시작 후 20분대까지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상황 설명 부분'이기에 차분하게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한 튼튼한 근거 자료'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스릴러 영화는 대부분 영화 시작 부분에 중요한 복선을 깐다. 그래야지 뒤통수 제대로 맞은 관객이 영화 앞부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 보낸 장면이 중요한 장면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만약에 영화 전반보다는 영화 후반이 기똥차다고 해서 전반부를 무조건 상황 설정'만 하다 보면 관객은 모니터 전원을 끄게 된다. 관객이 지루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을 넘기면 관심을 끄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그러니까 지루해서 관객의 엉덩이가 들썩거릴 때 히든 카드를 꺼내야 한다. 모니터 채널을 돌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영화를 자세히 보다 보면 이러한 공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장르 영화에 국한해서 설명하자면 공포 영화나 스릴러 영화는 20분대에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살인 장면'을 끼워넣는다.
영화 << 모래의 여자 >> 는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진행된다. 타이틀 디자인'부터 세련된 맛을 선사한다. 영화 시나리오는 소설가인 아베 코보가 직접 썼기에 소설과 영화는 내용이 거의 똑같다. 다음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보도 자료'다.
작품은 한 남자의 실종 사건이 근간이 된다. 주인공은 잿빛 일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모래땅으로 곤충 채집을 나선다. 그가 찾아간 해안가 모래 언덕에는 기이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치 부서져가는 벌집처럼 거의 20미터나 될 정도로 깊게 파인 모래 구덩이들 속에 집이 세워져 있다. 남자는 마을 사람들의 계략으로 여자 혼자 사는 모래 구덩이에 갇히게 되고, 흘러내리는 모래에 집이 파묻혀 버리지 않도록, 마치 쉬지 않고 돌을 굴려야 하는 신화 속의 시지프처럼 매일매일 삽질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어이없어 하는 그에게 여자는 자기 혼자서는 그곳 생활을 견디기가 벅차다고 해명한다. 한 집이 붕괴되면 사구에 자리잡은 마을 전체가 붕괴되기 때문에 작업을 멈출 수가 없다고.
모래 퍼내는 것쯤 훈련만 받으면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고, 자기에게도 좀더 그럴 듯한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냐고 절규하며,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는 남자. 치밀한 계획 하에 구멍에서 빠져나오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에 의해 돌려보내진 후 여자가 남자를 위로하는 장면에 삽입된 작가의 목소리, <서로 상처를 핥아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만 있는다면, 끝내는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라는 부분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어내고 있는 독자들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그런데 작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탈출을 기도하는 남자를 위협하는 수단이었던, 그들이 배급해 주어야만 얻을 수 있었던 물을 모래 속에서 끌어올리는 유수 장치를 우연히 발명하게 된 이후, 남자는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탈출을 뒤로 미룬다.
마을 사람 누군가에게 유수 장치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이 갑작스러운 결말 앞에서 독자는 멈칫거리게 되고, 일상의 존재 근거에 대해 다각도로 되묻게 된다
ㅡ 출판사 소개글 中
내가 이 소설(영화)에 뻑이 간 원인은 도입부 때문이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8월 한여름의 사막 기후, 천연 암반수를 얻기 위해 시추한 구멍처럼 깊은 지하 세계에 지어진 집, 모래 구멍 지옥에 갇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벌이는 잰더 트러블'에서 비롯되는 밀당이 흥미쥔쥔하다. 한여름, 해변가에서 뒹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땀 때문에 달라붙는 모래'가 주는 불쾌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하루 종일 비처럼 모래가 쏟아지는 곳이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모래 집에서 갖게 되는 섹스 또한 고통으로 얼룩지리라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모래 위'에서 섹스하지 마라. 모래 때문에...... 아, 퍼요. 소설(영화) 도입부의 강렬함은 끝까지 간다.
개인적으로 << 모래의 여자 >> 는 20세기 문학을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소설 탑 10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서사 자체가 독자를 압도하는 소설은 흔한 일이 아니지만 이 소설은 대중성은 물론이고 예술성도 갖췄다. 누구나 탐낼 텍스트'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아닐까 싶다. 아, 술 마시면서 쓰다 보니 급하게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