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에서 그것으로 !










셰익스피어의 명성은 황당할 정도로 지나치게 높아져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내 말을 믿어도 좋다. 그에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다. 아예 없다. 그는 옛날 소설들에서 얼개를 가져와서는 그 이야기들을 극적인 틀에 맞출 뿐이다. 그가 들이는 노력이라고는 당신과 내가 그의 희곡을 다시 산문적인 이야기로 바꿀 때 드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ㅡ 이 주장에 대하여 영문학을 전공했거나 문학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주먹 쥐고 일어나 나를 향해 원 펀치 쓰리 강냉이를 털었을 것이다. " 무식한 페루의 남미 새끼 ! 네가 문학을 알아 ? " 


우우, 오해는 마시라. 셰익스피어에게 저주를 퍼부은 사람은 페루애가 아니라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니까(제임스 호그에게 보낸 편지). 평소 바이런의 인성을 쓰레기'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이지만 그가 셰익스피어를 평가한 부분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 로미오와 줄리엣 >> 에 등장하는 비약泌藥(줄리엣은 가짜 독약'을 삼켜 가사 상태에 빠졌다가 관 속에서 눈을 뜬다는 계획을 꾸민다)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줄리엣이 " 죽은 척하는 생태 " 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뭔 짓인가. 이런 얼어죽을 동태 같으니라구...... << 베니스의 상인 >> 은 더 가관이다. 


베니스의 재판관은 계약서에 < 살 > 만 적혀 있을 뿐 < 피 > 는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 안토니오의 살은 베되 피를 흘려서는 안 되며,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샤일록의 전 재산은 몰수하고 사형에 처한다 " 고 선언한다. 결국 샤일록은 재판관의 선처(?)로 목숨은 부지하지만 전 재산을 잃고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한다. 오, 불쌍한 샤일록 ! 이것은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다. 놀랍게도 << 베니스의 상인 >> 은 히틀러 나치 시대 때 가장 인기 있는 연극이었다. 2차 대전 종전 후, 샤일록을 연기했던 독일 배우는 나치 부역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 그는 법정에서 판사에게 소리쳤다. 


" 배우가 최선을 다해 연기한 것이 죄라면 유대인을 혐오하는 연극을 쓴 셰익스피어부터 무덤을 파고 그 해골을 기소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 " 이 독일 배우의 당당한 외침에 당황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영국이었다. 영국이 그를 기소했기 때문이었다. 마, 마마마마많이 당황하셨세여 ? << 햄릿 >> 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 햄릿 >> 은 무대 위에 오를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어서 어쩔 수 없이 상연이 중단된 연극이다. 해태 프로야구 김응룡 감독의 성대모사를 빌리자면 : 아 ! 오필리어도 없고, 아 ! 플로니어스도 없고, 아 ! 거투르드도 없고, 아 ! 클로디어스도 없고, 아 ! 레어티즈도 없고, 아 ! 햄릿도 없고...... 


슬래셔 무비처럼 등장하는 족족 죽으니 연극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있나. 이 연극은 등장 인물 모두가 죽어야 끝나는 슬래셔 무비와 닮았다는 점에서 최초의 슬래셔 대본이라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문학은 희극일 때는 결혼으로 끝나고 비극일 때는 죽음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단순하다. 이런 작품을 가장 위대한 세계 문학이라고 설레발을 떠는 것은 교양이 없는 짓이다. 바이런의 말마따나 셰익스피어의 명성은 지나칠 정도로 과장되었다. 2002년, 노벨 연구소가 주최한 전 세계 유명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책 1위는 << 돈키호테 >> 였다. 투표에 참가한 작가의 절반 이상이 이 작품을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뽑았다. 


셰익스피어에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다고 혹평했던 바이런조차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 에 대해서는 " 서사의 예술 " 이라고 극찬했다. 이 문학 작품에 붙는 " 최초~ " 라는 수식어는 찬란하다. 최초의 근대 소설, 최초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최초의......  이 소설에는 이미 상호텍스트성, 작가의 죽음, 독자 비평과 같은 20세기 문학 개념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다. 그런데 세르반테스를 초월하는 작가가 있었다. 바로 피에르 메나르'다. 그는 << 돈키호테 >> 를 흠모한 나머지 첫 문장의 첫 글자부터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그대로 필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발생한다. 피에르 메나르가 쓴 << 돈키호테 >> 는 세르반테스가 쓴 << 돈키호테 >> 보다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 우리 모두, 대문호 삐에르 메나르에게 경배를 ! " 원본보다 사본이 훌륭한 경우'다. 그런 희한한 일이 가능하냐고 ?  놀라지 마시라. 이 이야기는 호르헤 보르헤스의 <<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라는 단편에 나오는 픽션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삐에르 메나르가 쓴 << 돈키호테 >> 를 시뮬라크르1)라고 부른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실재가 실재 아닌 파생 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바로 시뮬라시옹이다. 


현대 사회는 재현과 실재의 관계가 역전되어 더이상 흉내 낼 대상인 원본이 없어서 삐에르 메나르가 쓴 < 돈키호테 > 가 더욱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티가 된다. 며칠 전,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손창현 문학 도용 사기 사건은 보르헤스와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문학 혹은 문화 이론을 떠올리기에 손색이 없다. 그는 한국의 삐에르 메나르'다. 손창현은 2018년 백마문학상 수상작인 김민경의 << 뿌리 >> 를 그대로 필사해서 제16회 김장생 신인문학상 수상, 2020포천문학상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최거를 이룬다. 


원본(김민경의 뿌리)이 한 개의 문학상을 수상한데 비해 사본(손창현의 뿌리)은 무려 다섯 개의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원본을 초월한 사본의 탄생인 셈이다. 그런데 그가 창조한 시뮬라크르-들은 문학상 공모 작품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각종 아이디어 공모전, 사진전, 정책 논문 그리고 자신의 프로필마저 모두 가짜였다. 나는 이 지점에 전율했다. 그는 한갓 문학 작품이나 필사하는 필경사의 운명을 초월해서 그 스스로 시뮬라시옹 해서 시뮬라크르가 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발현된 미학의 결정판이란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은 시뮬라시옹을 통해서 < 그 사람 > 에서 < 그것 > 으로 전환한 물성이 되었다. 이제 더이상, 우리는 그를 그 사람이라고 호명하면 안된다. 그는 " 그것 " 이다. 





덧대기    " 그것 " 은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국방안보분과 부위원장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인하여 국민의힘중앙위원회국방안보분과부위원장에서 해촉되시었다. 최은혜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국방안보분과 간사 님께서는 페이스북을 통해 " 그것 " 이 제명되었음을 만천하의 국민의힘 동지들에게 고지하시었다.








​                               


1) 시뮬라시옹 : 프랑스 철학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이론으로 실재가 실재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뮬라시옹(Simulation)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을 '시뮬라크르'(Simulacra)라고 부른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은 다름 아닌 가상실재, 즉 시뮐라크르의 미혹 속인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사물이 기호로 대체되고 현실의 모사나 이미지, 즉 시뮬라크르들이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하는 곳이다. 이제 재현과 실재의 관계는 역전되며 더이상 흉내낼 대상, 원본이 없어진 시뮬라크르들이 더욱 실재 같은 극실재(하이퍼리얼리티)를 생산해낸다. 더이상 원본은 없고 어느 의미에서는 원본과 모사물의 구별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뮐라시옹의 질서를 이끌고 나아가는 것은 정보와 매체의 증식이다. 온갖 정보와 메시지를 흡수하지만 그것의 의미에는 냉담한 스폰지 또는 블랙홀 같은 존재가 현대의 대중이다. 사유가 멈추고 시간이 소멸된 현대사회에서 역사의 발전은 불가능하며 인권이란 미명 아래 강요된 정보에 노출된 대중과 시뮬라시옹의 무의미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이같은 사고 때문에 보드리야르는 지적 허무주의자, 정치적 보수주의자로 비판받기도 했다. 보드리야르가 자신의 사상 체계를 만들어 가던 1960년대는 프랑스가 본격적인 대량 소비 사회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1940년대 말의 전후 복구기와 1950년대의 경제 구조 형성기를 거친 프랑스에 호황이 시작됐고 거리, 상점, 가정에 물건들이 넘치기 시작했고, 라디오와 TV가 가정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가던 즈음이었다. 넘치는 물건, 넘치는 일자리, 넘치는 이미지 앞에서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이 넘치는 물건들이 우리의 삶과 어떤 의미 관계를 맺는지를 고찰했다.


- 철학사전2009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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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 - 개정판
마틴 셀리그만 지음, 김인자.우문식 옮김 / 물푸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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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가 사람 잡는다









종종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 지성의 문화 교양을 통해서 자기계발을 하자는 주장이다. 이지성이 대표적인 인간이다. 그런데 그의 < 리딩으로 리드하라 > 라는 책을 읽다 보면 이 지성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지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지성이 그 지성이 아닌가벼.         


인문학과 성공학은 떼레야 뗄 수밖에 없는 젖은 땔감과 같은 사이'여서 서로 상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계발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주목하지만 인문학은 대체로 인간을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볼까 ? 마르크스의 < 자본론 > 은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을 부스러기로 보고 대신 물질을 근본적인 실재라고 생각한다(유물론). 물질이 상수이고 정신은 하수다. 이수일은 변심한 심순애에게 "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냐 ? " 라고 묻자 심순애는 아무 말도 못한다. 부끄럽구요. 하지만 유물론적 시각으로 보자면 " 응. 다이아몬드 좋아, 대빵 좋아 ~ " 가 정답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한술 더 뜬다. 인간은 하(?)고 싶어 미친 짐승이다. 정상적인 놈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모두 다 발정난 개/돼지다. 하, 시바. 결정타는 다윈'이다.  다윈에 이르러 만물의 주인인 인간은 원숭이로 강등된다. 19세기 거대 지성 3인방은 말 그대로 인간의 얼굴에 똥바가지를 붓는다.  종합하면 " 다이아몬드에 환장한 발정난 원숭이 " 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이런 인간에게 자기계발은 과연 가능할까 ?  다이아몬드에 환장한 발정난 원숭이에게 배울 게 뭐가 있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문학에 대하여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 인간은 지구의 기생충 " 이라는 사실을 각성하게 만드는 학문이라는 데 있다.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인간 본성을 계발하자는 주장은 더 악랄하게 지구의 혈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자는 소리나 다름없다. 무엇보다도 자기계발서가 숭배하는 긍정심리학의 해악은 해악의 범위를 뛰어넘는 사악에 이르게 된다. 고양이라면 정색을 하며 하악질 할 판. 솔까말, 사약 한 사발 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긍정심리학의 할베이자, 신자유주의 천조국의 자랑스러운 아들 마틴 셀리그만은 " 학습된 무기력 " 이라는 개념으로 부정성을 비판하면서 " 학습된 낙관주의 " 를 장려하지만 학습된 낙관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솝 우화 < 개미와 베짱이 > 에서 여름 내내 놀다가 겨울에 식량이 떨어져 얼어죽은 베짱이의 낙천성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다.  긍정 심리학 - 교도들은 부정성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며 부정성 편향을 병으로 취급하지만 부정성 편향은 인간의 생존 전략이자 본능에 가깝다.  좋은 뉴스보다는 나쁜 뉴스에 눈이 가는 이유는 길 위의 토끼보다는 길 위의 뱀에게 더 집중하는 심리와 비슷하다.  만약에 마틴 셀리그만의 학습된 낙관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뱀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 설마, 저 뱀이 나를 물겠어 ?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이 대책없는 모험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 설마가 사람 잡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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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내 인생 - [초특가판]
라세 할스트롬 감독, 안톤 글란젤리우스 외 출연 / 기타 (DVD)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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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의 힘











고1이었을 때 머리를 삭발한 적이 있다. 그것도 새벽 한밤중에 말이다. 면도기로 머리를 밀기 시작했는데 머리에 난 여드름(들)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에라 모르겠다, 시바. 잠이나 자자. 


다음날, 비명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니 형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비명소리에 어머니가 뛰어오고 누나가 달려왔다. 비명에, 비명에, 비명을 더하니 이런 것이 아비규환이로구나. 처음에는 가족의 호들갑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거울을 보고서야 가족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면도기로 밀다가 터진 여드름 상처 때문에 머리에는 온통 피딱지가 붙었고 핏줄기는 굳어서 빨강머리 대머리 소년이 된 것이다. 피딱지 붙은 민머리를 보고 있자니 가뭄으로 인해 밑바닥을 드러낸 강바닥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찰랑찰랑한 물결을 걷어내자 드러난 것은 황폐한 자갈밭이었다. 


문제는 이 꼬라지로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  심란한 마음에 어물정거리다가 지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 중이병-스러운 기질이 있던 나는 지각을 해도 항상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가곤 했는데 그때도 나는 앞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서 교실은 혼란스러웠다. 지각하는 놈에게는 원 펀치 쓰리 강냉이를 선물하시는 담임도 영문을 몰라 멍하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마도 선생은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미친 줄 아셨던 모양이었다. 선생이 내게 삭발한 이유를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집이 가난해서 머리 깎을 돈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매일 두발 단속을 하니 한 달에 한 번은 이발소에 가야 하는데 우리집은 그럴 돈이 없어요. " 나는 이 변명이 기가 막힌 거짓말이라 생각했는데 선생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그날, 죽도록 맞았다. 개 같은 날이었다. 3교시'였나 ? 수업 도중에 교무실에서 나를 긴급 호출했다. 그 자리에는 담임과 교감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오고가는 입말을 요약하자면 교감은 내게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며 조퇴해도 좋다는 선고를 내렸다. 학교를 조퇴하고 집으로 오는 길. 맑고 밝고 화창했던 한낮. 그때 보았던 영화가 바로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 개 같은 내 인생 >> 이었다. 


좋은 영화였다(그 후로도 몇 번, 이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그때마다 머리를 삭발했던 일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곤 한다). 그때 그 사건을 계기로 신경질적인 만큼 잔인했던 학교의 두발 단속 기준은 상당히 완화되었다. 삭발의 힘이었다. 황폐한 자갈밭에서도 내 머리는 자랐다. 사막에서는 풀 한 포기가 자라기 위해서는 자갈밭이 필요하다고 한다. 돌맹이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아침 이슬이 돌덩이를 타고 땅에 떨어져 수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란다. 내 인생을 " 지랄 발악 " 이라고 고백한 내 이웃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힘 내시라. 인생..... . 시발. 사실은 좆도 아니다. 






ㅡ 이 노래 듣고 힘 냅시다 !!! 

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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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장하영 씨










프랑스 여행 중에 인종 차별을 당했다며 씩씩거리는 유튜버가 있었다. 식당에 갔더니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식당 주인이 자신을 차별했다는 것. 그는 얼굴을 붉히며 프랑스 사람을 막돼먹은 민족이라며 욕을 했다. 그런데 그 유튜버가 인종 차별을 당했던 곳은 프랑스만이 아니었다.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 영국에서도 똑같은 차별을 당했다는 것. 그녀의 말은 과연 사실일까 ?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녀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 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폈다. 나이는 30대 초반 / 주요 활동 무대는 청담동 / 관심 분야는 미용과 패션 / 플라스틱 성형 미인 / 시간 날 때마다 해외 쇼핑 / 특히 루이비통과 샤넬 ㅡ 성애자 / 청담동 고급 빌라에 살며 고급 외제차 소유 / 그녀의 재정 상태를 보니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할 정도의 강남 부자. 견적이 나오자 내 호기심은 해결되었다. 손님이 왕인 한국 사회에서 VVIP의 삶이란 럭셔리한 것. 서비스 감정 노동자의 과잉 친절 서비스만 받다가 유럽인의 불친절 아닌 무친절 서비스를 받다 보니 그것을 차별로 인식한 것이다. 


그는 유럽이 사회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국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민 혁명군의 손으로 왕의 모가지를 잘라낸 후예들이 손님따위를 왕(대접)으로 생각할 리는 없지 않은가 !  이건희, 이 자식 때문일까 ? 한국 소비자들은 감정 노동자의 과잉 친절 서비스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친절하지 않다 싶으면 삿대질은 기본이다. 이런 발상은 아마도 이건희가 삼성 그룹 사훈으로 " 손님은 왕 " 이라고 선언한 이후 생긴 이씹세기 최악의 악성 바이러스'일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하나인 << 친절한 금자씨 >> 는 교도소 재소자에게 친절하기로 유명세를 떨쳐서 결국에는 " 친절한금자씨 " 라는 별명을 얻은 금자 씨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 친절 > 은 친절한 금자 씨'라는 캐릭터에 후광을 부여하는 일종의 트로피'인 셈이다.  도대체 얼마나 친절해야 친절한 ㅡ 이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을까 ?  하지만 금자 씨가 교도소 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 친절했던 금자 씨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그 유명한 대사는 친절한 금자 씨가 친절이라는 가면을 벗는 순간에 탄생한다.  " 너나...... 잘 하세요 ! " 


그녀는 친절을 무기로 그루밍했던 촐소자를 조종해서 복수를 위한 소모품으로 활용한다. 친절의 두 얼굴이 아닐 수 없다. < 친절 > 은 현대인이 갖춰야 할 소양이자 교양의 한 덕목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연출한 감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친절은 양면성을 띤다.  갓난아기를 입양한 후 잔인하게 살인한 장하영 사건을 접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떠올랐던 이미지는 친절한 금자 씨였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을 훌륭한 기독교인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친절이라는 감정을 연출했을 것이다. 그리고 입양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장하영에게 있어서 입양아는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트로피이자 황폐한 내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충동 구매한 명품 가방에 불과했던 것이다.  입양 초기, 아이를 품에 안은 장하영이 카페 주인에게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 저, 이 아이 입양했어요 ! " 라고 말했다는 후일담은 그녀의 악마적 과시욕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녀가 입양한 것은 따스한 체온을 가진 아이가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명품 로고가 박힌 차가운 가죽 가방이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영화 속 대사처럼 너(장하영)나 잘 했으면 없었을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본질을 들여다볼수록 먹먹하다. 











​                    


1)  양모 하영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 하나님의 영광 " 을 줄인 말일 것이다. 그리고 양부 성은이라는 이름은 " 성스러운 은혜 " 가 아닐까 ?  목사 자녀의 흔한 이름이 바로 하영과 성은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성스러운 은혜가 충만한 가족에게서 일어난, 이 극렬한 비극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빛도, 영광도, 은혜도, 동정도, 사랑도 없는, 지옥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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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1-14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교를 자신의 도덕적 편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 소비하는 사람들의 최후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인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1-17 09:29   좋아요 0 | URL
부모가 목사이고 시부모도 목사이니 기독교 엘리트 집안의 딸. 아마도 그녀는 입양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심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개정증보판)
이지성 지음 / 차이정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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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성 이 면   감 점 이 다   :









순수지성비판










상관 관계를 인과 관계로 오인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예를 들어 : 흡연이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상관 관계이지 인과 관계는 아니다.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흡연자가 모두 다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흡연과 암의 상관 관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담배는 건강에 있어서 매우 치명적인 독극물이다. 


상관 관계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유의미한 것도 아니다. 어느 경찰관이 범죄 통계 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강력 범죄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수 A( : 아이스크림 판매량 급증)와 변수 B(:강력 범죄 증가)는 서로 상관이 있기에 상관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 만약에 경찰관이 이 통계값을 근거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난폭해진다는 결론을 내린다고 주장하면 아마도 " 상또라이 " 라는 소리 듣기 쉽다. 왜냐하면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날씨가 덥다는 것이고, 


고온다습한 한국의 여름 날씨를 감안하면 날씨가 덥다는 것은 불쾌지수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쾌지수와 강력 범죄는 상관 관계일 수가 있지만 아이스크림과 강력 범죄는 상관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관계일까 ?  그냥, 아무 관계도 아니다. 다음 주장은 어떤가 ? " 어릴 때 평범했던 아인슈타인은 14살 때 칸트의 << 순수이성비판 >> 을 읽었다. 그는 커서 천재가 되었다. 그러므로 인문학 고전을 읽으면 천재가 된다." 아인슈타인은 < 순수이성비판 > 을 읽고 나서 천재가 된 것일까, 아니면 그는 천재였기에 14살 때 < 순수이성비판 > 을 이해한 것일까 ? 


우선,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면 천재가 된다는 가설은 인과 관계도 아니고 상관 관계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 시간 경과를 순서적으로 나열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누가 화장실에서 똥 싸고 나와서 밥을 먹었다는 단순한 시간 순서의 나열을 두고 그것은 똥 싸고 나면 식욕이 상승한다는 인과 결과(라고 우기는)라고 주장한다면 ?  이지성은 < 리딩으로 리드하라 > 라는 책에서 놀랍게도 아인슈타인은 < 순수이성비판 > 을 읽고 천재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너무 황당한 주장이어서 그 주장의 과학적 증거와 증명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지만 저자는 아무 설명이 없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이 글을 쓰는 나도 천재가 되어야 한다. 왜 ? 나도 그 책을 읽었으니까 !  저자는 아인슈타인이 고등학교 때 낙제 점수를 얻었고 대학 입학 시험에서도 낙방했던, 별 볼 일 없던 둔재 아인슈타인을 천재로 만든 것은 유클리드의 < 기하학 > 그리고 칸트의 < 순수이성비판 > 과 같은 인문학 독서 때문이라는 주장했는데, 이 주장을 반박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0.01초면 충분하다. 이 간단한 판단 정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굳이 뇌를 빌릴 필요는 없을 듯하다. 기록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은 < 기하학 > 을 12살 때 읽었고, < 순수이성비판 > 을 14살 때 읽었다. 


그런데 14살 때 인문 고전을 읽고 천재가 된 아인슈타인은 16살 때 학교에서 낙제를 했으며 18살 때에는 대학 입학 시험에서도 낙방을 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아인슈타인은 << 순수이성비판 >> 을 읽고 나서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둔재가 되었다고 해야 되는 것 아닐까 ? 변수 A(:14살 때 순수이성비판 독서 체험)와 변수 B(천재가 된 아인슈타인)는 인과 관계도 아니고 상관 관계도 아니다. 시간의 스펙트럼이라는 선 위에서 두 점이 우연히 근접 조우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과 관계라고 우긴다면 그 관계는 인과 관계가 아니라 관계 망상'이다. 


이 사례만으로도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가름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지성의 순수 지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데, 이 정도 수준의 지성이면 감점이다. 하지만 이따위 책을 읽었다고 실망하기는 이르다. 독서 행위의 팔 할은 실패하기 때문이다. 이 길이 아니면 저 길을 가면 되는 법. 출판 문화의 수준을 한탄하며 판교 다리 무너졌다고 징징거리지 마라. 마포대교도 무너졌냐, 새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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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1-04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초딩이었을 때 이런 말장난이 유행했어요. 상대방이 제게 다가와서 질문을 해요.

“너, 천재 될래? 아니면 바보 될래?”

(당연히 천재가 좋지.) “천재가 되고 싶어.”

“넌 천재니까 [천]하에 [재]수 없는 놈이야.”

“그러면 바보는?”

“바보? [바]다의 [보]배!”

저는 바보가 되고 싶어요. 책.바.보.

곰곰생각하는발 2021-01-11 15:11   좋아요 0 | URL
천하에 재수없는 놈이라는 말장난은 고전 중의 고전이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