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으로 가라타니?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은 죽었다고 선언했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 근대 문학 " 이라기보다는 " 순수 문학 " 의 죽음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학자여서 고상한 표현을 쓴 것이지 저잣거리 입말로 말이야막거리야-풍으로 말하자면 " 똥 싸고 자빠졌네. 누가 요즘 순수 문학 읽냐 ?
신형철은 이에 분개하여 " 가라타니, 너마저 순수 문학에서 대중 문학으로 가라타니 ? " 라고 말했지만, 현대 독자는 이제 순수의 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작가가 개떡 같이 써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평론가만이 순혈을 중요시했지, 개떡 같이 말하면 개떡 같이 알아듣는 독자 입장에서는 혈액형을 중시하는 문단에 관심을 끊은 지 이미 오래. 이게 바로 문단의 미래. 안 그래 ? 노벨상 심사 위원회에서 밥 딜런을 노벨상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오른 이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가라타니 고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노벨상 후보에 오른 작가들은 결과 발표에 화가 잔뜩 났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수상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는 소설가가 쓴 소설이 음악가가 쓴 가사보다 못하다는 사실에 분개했으리라. 문단의 반응도 대동소이하다. 시 같지도 않은 시시한 시를 써서 평소 시답지 않게 생각한 정호승 씨가 이번 수상 결과를 두고 " 밥 딜런의 경우 시인이 아니라 가수(싱어송라이터)로 평생 활동했는데 문학상 중 가장 권위가 있는 노벨문학상을 그에게 주니 의아스런 느낌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평했는데, 역시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문단은 지금 망연자실한 상태'다. 다음은 중앙일보 기사 내용이다.
국내 문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문학평론가인 고려대 불문과 조재룡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 포스팅에 대한 과도한 비난 사양합니다"는 단서까지 단 후 작심한 듯 노벨상의 선택을 비판했다. "노벨문학상이 밥 딜런에게? 어차피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필립 로스가 받으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고 하루키나 뭐 다른 후보 중 누구에게 돌아가도 이유는 찾을 수 있다…그런데 이건 좀 웃기다. 밥 딜런?(…) 고작 밥 딜런? 개인적으로 밥 딜런 음악을 전혀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이와 별개도 몹시 기분이 나쁘기까지 하네"라고 썼다. 그러면서 "문학이 노래로 표현될 거였으면 왜 백지 위에 미치도록 글을 쓰겠는가? 노벨음악상? 노벨 가사상? 노벨 서정적 노래 잘하기 아름다운 자연 예찬 통기타 반주상" 아니냐고 비꼬았다. 시인인 문학동네 강태형 전 대표도 "밥 딜런을 좋아한다. 그의 음악과 생애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다. 밥 딜런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설가 김도언은 "예컨대 내가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다소 불편한 것은, 그가 문학 진영 바깥에 있던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그가 주류 질서에 대한 저항을 자신의 모토로 들고 나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밥 딜런이 가볍고 태연한 표정으로 '고맙지만, 난 노벨문학상 따위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내가 너무 고지식한 탓이겠지. 서방이 주도하는 주류세계의 훈장인 노벨문학상을 저항과 자유의 상징격인 사람에게 주는 것을 보니, 석유로 부를 축적한 미국 자본주의 상징이자 재벌인 록펠러 재단이 자본주의의 예리한 비판자였던 마르쿠제를 후원했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세상이 참 다 그렇고 그런 것 같다"라는 글을 역시 페이스북에 올렸다. 시인 조현석은 페이스북에서 "어제의 뉴스 중 가장 경악한 것은 미국 팝가수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다. 문학과 여타 장르를 구분하지 못하는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과 관련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음악 가사가 시보다 나을 때가 많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이건 쫌 아니다 싶다"고 했고 최광임 시인은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탔으니 다음엔 우리나라 음유시인 정태춘도 가능하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출처: 중앙일보] 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반응 양분
이제 순수 문학의 주인 행세를 했던 소설과 시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힘들 것이다. 그들이 독점했던 문학판에 틈이 갈라질 조짐이 보였던 것은 밥 딜런 이전에 이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서 엿볼 수 있다. 그는 작가보다는 기자에 가깝고, 그의 글은 소설이 아니라 기록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소설가와 시인이 독점하던 문학을 이제는 저널리스트와 싱어송라이터'도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순수 문학의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히마리가 없는 상태인 것은 분명하다.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면 탐 웨이츠도 노려볼 만하다. 그는 노래하는 찰스 부코스키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의 미래에 대해 말하면서 모든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만들 때, 그때 영화는 예술이 될 것이다 _ 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을 흉내 내서 이 글을 매조지하자면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가 문학상을 수상할 때 그때 문학은 예술이 될 것이다. 밥 딜런에 대한 페이퍼를 쓴 적이 있는데 그의 수상을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걸어둔다.
▶ http://youtu.be/ZVLtH6Bt8Kg 탐 웨이츠, 미니애폴리스의 창녀에게 온 크리스마스 카드 : 찰리, 잘 지내 ? 존나 보고 싶다, 시바. 난 잘 살아. 순둥이 남편 만나 사랑도 하고 임신도 했어. 존나 날마다 감동 쩌는 이벤트 마련한다. 시애미'도 잘해. 니미. 행복해, 호호. 똥 쌀 지경이야. 아, 사실. 나 돈이...... 좀, 필요해. 지금까지 했던 말 다 거짓말이야. 나 여기 깜빵이야. 보석금이 필요해.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찰리 ? 생각난다. 우리 침대에서 뒹굴 때 말이야. 자긴 내 젖가슴 터져라 움켜쥐었고 난 당구공 같은 당신 불알을 핥고는 했지. 당신 불알을 난 항상 눈깔 사탕이라고 놀렸잖아. 난, 흠뻑 젖고는 했어. 보고 싶어, 찰리. 돈 빌려줄 수 있지 ? 보석금만 있으면 크리스마스 전날에 풀려날 수 있을 거야. 찰리... 오, 찰리 !
탐 웨이츠와 밥 딜런'은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가 아니다. 둘 다 썩은 성대'로 노래를 부른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고음이 없다. 눅눅한 짚불마냥 슬슬 타다가 연기만 매캐하게 날 뿐이다. 명창이 박연 폭포 아래에서 피를 토하는 지옥 훈련 끝에 득음을 얻었다면, 탐과 밥은 여자와 담배와 위스키로 숙성된 성대'로 전봇대 아래에다 800,000번 토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둘 다 썩은 성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썩은 성대에 썩 좋지 못한 가창력으로 불렀는 데도 이 정도 퀄리티'라면 가창력 뛰어난 가수가 부르면 정말 뛰어난 노래'가 될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탐 웨이츠 노래를 다른 가수가 부르면 맛이 안난다. 찰스 부코스키'가 위스키 먹고 술 취한 상태에서 부르면 모를까, 다른 이'가 탐 웨이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 http://youtu.be/HwA-droqk5Y 밥 딜런, make you feel my love : 날도 오지라게 춥고 애새끼들은 널 괴롭히는 것 같고, 시바 ! 슬퍼서 많이 울었지 ? 비록 찐따 같은 나이지만 네 횡경막이 으스러지도록 안아줄께. 날 믿어, 시바. 우린 처음 만났을 때 알았어. 넌 내 여자'라는 사실. 우리 그냥 둘이, 고슴도치처럼 살자.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반면 밥 딜런'은 정반대'다. 밥 딜런이 부른 노래를 듣게 되면 아주 좋은 것도 아니고 아주 나쁜 상태도 아닌 노래처럼 들린다. 음... 그러니까, 그냥 " not bad ! " 인 상태'다. 그런데 실력파 가수가 다시 부르게 되는 경우, 그 노래가 보석 같은 곡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밥 딜런이 가창력이 없다 보니 보석 같은 노래'를 not bad하게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밥 딜런 노래'는 누군가가 다시 불러야 비로소 진가'를 알 수 있는 곡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밥 딜런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썩은 성대, 새집 같은 헤어스타일, 허접한 가창력'에서 쏟아내는, 매캐한, 연기 자욱한, 뜨, 뜨뜨미적지근한, 겨우 내내 얼었던 수도가 봄볕에 녹아 쏟아내는 녹물 같은 맛이 밥 딜런 노래의 아우라'다. 이들 목소리에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떠돌이 서정을 담고 있다.
다음은 같은 노래를 가창력 제왕인 아델'이 부른다. 아델의 곡이 뛰어나지만 아델 노래는 불알 탁, 치며 아, 프게 하는 싼티 나는 " 19,990원의 서정 " 이 없다.
▶ http://youtu.be/ljawHxBl_Rk
아델의 프리허그'가 달달할지는 모르지만 끈적끈적한 뒷골목 쌈마이 프리허그'를 재현하지는 못한다. 수채화 물감으로 유화 그림 흉내를 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아무래도 가창력 뛰어난 가수의 미성 앞에서 무릎 탁, 치고 아, 하기보다는 둔탁한 통증 앞에서 불알 탁, 치고 아, 픈 노래에 끌린다. 둘 다 좋다. 하지만 비루한 쌈마이 프리허그'가 더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