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분노해야 하는가 -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한국 자본주의 2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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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꿈을 꿨어요 :






불행한 자의 특권







                                                                                                     실패한 사람은 과거지향적 성향을 보이고 성공한 사람은 미래지향적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서 실패한 사람은 " 왕년(往 : 가다) " 을 자주 언급하고, 성공한 사람은 " 내년(來 : 오다) " 을 설계한다는 말. 실패한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 라는 표현'에서 " 왕년 " 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 이래 봬도 ~ " 이다.

이 둘은 서로 손발이 착착 맞는 고춘자-장소팔식 만담 커플이다.   < 이래 봬도 ~ > 라는 자조 섞인 표현은 후줄근한 현실에 대한 자각을 내포하고 있다. 축 늘어진 누런 난닝구 사이로 거무퉤퉤한 젖꼭지가 보이는(여기에 길게 자란 털 몇 올이 젖꼭지 주변에서 방목되고 있다면, 아......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중년 남자일수록 초라한 " 이래 봬도 ~ " 와 화려한 " 왕년에 ~ " 는 힘을 얻는다.   이런 말투가 관형어처럼 굳어진 데에는 강렬한 대조를 통한 극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이다.  성공과 몰락을 다룬 영화에서 먼저 몰락한 증후를 보여준 후에 플래시백으로 순수하고 화려했던 과거를 나중에 보여주는 방식 또한 강렬한 대조를 통한 파토스를 얻기 위한 영화적 수사법이다. 

마틴 스콜세이즈 감독이 연출한 << 성난 황소 >> 는 권투선수였던 로버트 드니로가 술집에서 뚱뚱한 몸집으로 스탠딩 코미디를 선보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권투 챔피언이었던 그는 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추락했을까 ?  이 영화는 몰락의 증후로 시작해서 플래시백 기법을 통해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던 화려한 과거로 되돌아간다. 영화 용어인 < 플래시백 기법 > 은 일종의 " 왕년에 ~ " 인 셈이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플래시백이라는 서사 방식은 필요 없다.  강렬한 대조가 없다 보니 감정적 소요'도 없다.  행복한 남자의 행복한 과거'는 울림도, 반성도, 회한도 없기 때문이다. 

< 왕년에 > 서사가 빛을 발하는 지점은 몰락에 있다. 낮은 곳에서 떨어진 남자의 왕년보다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 남자의 왕년'일수록 더 깊은 파토스를 선사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1987년에 만든 << 마지막 황제 >> 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군중에 섞여서 병들고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한다(관객은 그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다).  이 도입부는 "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 라는 문장에서 < 이래 봬도 ~ > 에 해당된다. 그 이후는 < 왕년 ~ > 에 황제였던 푸이의 궁 생활을 다룬다. 몰락을 도입부에 배치하느냐 아니면 끝에 가서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영화는 전혀 다른 색깔을 띠게 되는 것이다.

승장구를 달리던 자가 끝에 가서 몰락하게 되는 영화 서사는 관객에게 사이다 같은 통쾌를 주지만 몰락한 인간이 플래시백으로 들려주는 화려한 세계는 고구마처럼 묵직하고 깊은 회한을 선사한다. 영화 << 베테랑 >> 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악질 재벌의 몰락을 도입부에 두었다면  쾌감보다는 몰락한 자에 대한 연민이 영화의 주요 정서였을 것이다. 플래쉬백 기법을 가장 잘 활용한 영화는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 박하사탕 >> 이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몰락으로 시작해서 가장 행복했던 미소를 짓는 얼굴에서 끝나는 영화다(울음에서 가장 처절한 울음은 통곡이 아니라 소리 없이 우는 모습이듯이, 가장 쓸쓸한 미소는 조용한 미소'다).

티븨엔 드라마 시리즈 << 응답하라 1988 - 1997 >> 에 시청자가 뜨겁게 응답한 데에는 " 1988 - 1997년 " 을 왕년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었던 축구 선수 앨런 스미스식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리즈 시절은 1988 - 1997년이다. 그렇다면 이명박근혜 시대를 사는 한국인은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왕년을 호명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까지나 불행한 자의 특권이니까. 시간을 되돌려서 1988 - 1997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자. 그때 인기 있었던 드라마는 무엇이었을까 ?  그 시절의 시청자들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권정생의 << 몽실언니 >> 같은 류의 드라마'가 인기가 높았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시대에는 과거에 없이 살았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행한 사람이 왕년에 화려했던 기억을 호명한다면 행복한(성공한) 사람은 왕년에 고생했던 이야기를 훈장으로 여기니까. 왜냐하면 고생담(과거)이 스팩타클할수록 성공담(현재)이 빛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응답하라의 시대가 행복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   단서는 경제적 불평등을 다룬 장하성의 << 왜 분노해야 하는가 >> 에 있다. 

 

 - 장하성의 << 왜 분노해야 하는가>> 에서 그래프 인용




그래프가 위로 갈수록 빈부 격차가 심하고 아래로 떨어질수록 공정 분배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그래프에서 회색 블록 안은 떼부자가 적었던 반면 떼거지도 적었던 시절이라는 소리'다. 화투판으로 비유하자면 이긴 놈은 겨우 3점 내서 푼돈 챙기고, 접은 놈은  광을 팔았으니 광 값 챙기고,  잃은 놈은 푼돈 잃었으나 재미있게 놀았으니 아쉬울 게 없는 한판인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 응답하라 시리즈 > 를 호명하는 이유는 그 시절이 " 럭셔리 " 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적었다는 데 있는 것이다.  모두 다 그럭저럭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모두 다 동의한다면 고개 끄덕끄덕이며 푸쳐핸섭~  하지만 1997년을 기점으로 그래프는 미친듯이 치솟는다.

그 결과 2016년 IMF가 내놓은 << 아시아의 불평등 >> 보고서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아시아에 머무르지 말고 외연을 확장해 볼까 ?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재산불평등이 악화된 나라 2위다).  상위 10%가 전체 부의 45%를 차지한 것이다.  한 놈이 화투판에서 광박에, 멍박에, 피박에, 멍따에 더해서 흔들기 신공으로 판돈을 모두 휩쓴 경우'다. 88만원 세대인 당신이 유니클로에서 29,900원짜리 옷을 고르며 맵시를 자랑할 때 권오현 삼성 전자 부회장의 연봉은 대략 150억이었다. 응답하라 시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임금 격차이다.  장하성이 이 책에서 내놓은 답은 재벌 개혁이다. 그래야 응답하라 시리즈를 재현할 수 있다. 

맥이 빠지는,  뻔한 결론이기는 하지만 장하성이 내놓은 해답은 청년이여 분노하라, 이다. 재벌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29,900원짜리 유니클로 청바지를 입고 거울에 비친 솟아오른 " 힙라인 " 에 만족하지 말고 관심을 자신의 힙라인에서 정치 영역의 " 핫라인 " 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씀.  지금 대한민국 재벌은 시장의 지배를 받아야 하지만 썩은 정치와 결탁해서 시장 위에서 황제처럼 군림하고 있다. 대통령 위에 재벌이라 불리우는 황제가 있는 구조'다. 나는 근미래에 이재용이 축 늘어진 누런 난닝구를 입고 눈을 지그시 감고는 회한에 젖은 채 왕년에 _ 운운하는 서사를 바란다. 몰락은 보다 높은 곳에서 추락해야 심금을 울린다고 했으니 그가 이룩했던 제국의 왕년을 듣다가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인정머리 없는 내가 왕년에 잘나갔던 당신의 몰락 앞에서 기꺼이 울어 줄 용의가 있다. 잔인한 마음이라 욕하지 마라,   당신의 불행이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이 될 수도 있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쪽수가 많은 쪽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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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3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최쑨쓀은...(이런 비선들이 난무하는 국가에서 평등은 고사하고 공정이 과연 될까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09:11   좋아요 1 | URL
아차, 해시테그 빠졌네요... 유레카 님 댓글 보고 알았습니다.. 앞으로 저는 모든 태그에 그런데최순실은을 붙일 예정입니다..

samadhi(眞我) 2016-10-13 09:15   좋아요 1 | URL
페이스북에 남겨뒀어요. 그런데 최순실은? 모두가 입버릇처럼 말해서 이 이슈가 잊혀지지 않았음 좋겠어요. 그래서 가능하지 않겠지만 이 정권을 끝낼 수 있다면...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09:20   좋아요 0 | URL
프사 강렬하지 않나요. 패션 감각이 뛰어나세요. 우리 순씰 씨는..

samadhi(眞我) 2016-10-13 09:22   좋아요 0 | URL
곰발님 대문 사진 때문에 키득키득 웃었잖아요. 페이스북에, 그런데 순실이는? 을 이 사진 찾아서 썼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09:26   좋아요 0 | URL
저도 웃습니다. 절묘한 패션 감각임..

samadhi(眞我) 2016-10-13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 제일(?)- 제일까지는 아니어도 그 정도면 되는데- 부자가 돼서 삼성 왕국을 무너뜨리고 싶다는 헛꿈(?)을 꾸어봤는데 오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09:21   좋아요 0 | URL
아직도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더군요. 참... 이걸 뭐라 해야 할지..

2016-10-13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3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6-10-13 10:08   좋아요 0 | URL
설렘 가득 품고(?) 그날 봅세~ 제주 사투리? 원래 섬 말이 좀 짧잖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10:11   좋아요 0 | URL
RMEH
그동안 제가 여러 알라디너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요..

yureka01 2016-10-13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앞으로 모든 포스팅에 해시테그 붙일 작정입니다.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09:26   좋아요 1 | URL
럭셔리하네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언 하나 하련다. 응답하라 다음 시리즈는 1992가 될 것이다.

수이 2016-10-1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_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10:01   좋아요 0 | URL
캬 ~

시이소오 2016-10-1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순실 사진만 보면 흠칫 흠칫 놀라게 되네요.

두려움과 혐오감이 뒤섞인듯.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12:30   좋아요 0 | URL
빨간색의 강열함 때문일까요 ? 하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시니 대단하신 분입니다..

마립간 2016-10-1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elle Époque는 평등 지수와 함께 어느 정도의 경제 성장도 동반되는 시기입니다. 이론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낮죠.

재벌 개혁이 정권뿐만 아니라 국체나 정체를 유지하는 데도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12:31   좋아요 0 | URL
그럼요. 재벌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될 조직이죠..
국정원보다 나을 것 하나 없다고 생각됩니다..

수다맨 2016-10-13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번 글은 정말이지, 곰곰발님 내공을 또 한 번 제대로 느꼈습니다. 화투 비유는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오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12:48   좋아요 0 | URL
때마침 잘 오셨구려.. 수다맨 님에게 댓글 남길려고 했는데.. 혹시 22일 시간되십니까. 한잔 해야죠.. 가을인데...ㅎㅎ위의 진아 님 서울 오신다고 해서 그날 만나는데 같이 나오시죠 ?

수다맨 2016-10-13 16:45   좋아요 0 | URL
22일은 제가 동창들과 약속이 있어서 어려울 듯합니다;;; 아무래도 다음번에 뵐 수 있을 것 같네요.

stella.K 2016-10-13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에 길게 자란 털 몇 올이 젖꼭지 주변에서 방목되고 있다면, 아......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아유, 정말이지 곰발님의 디테일이란...!
몇 가닥의 털로 하늘을 찌를 수 있는 사람은 곰발님 밖엔 없을 것 같습니다.ㅋㅋ

<마지막 황제> 저도 재밌게 봤는데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잖습니까?
푸이를 중국 감독이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한번 다시 봐야겠습니다. 본지가 하도 오래라 변발한 꼬마가 자금성 문인가? 그거 여는 것 밖에는
기억이 안 나눈군요.

근데 이재용이 누런 나닝구 입는 거 상상이 안 가요.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잖아요.
아, 이재용이 3대죠? 이병철로부터 따지면...
가능한 세댄가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3 14:41   좋아요 0 | URL
삼성이 신문사 광고를 다 주어 먹여살리니 정적인 애플에 대한 악성 기사만 쏟아내더군요.. 하긴 신문사들이 알아서 그런 기사 써달라고 전면 삼성 광고 깔고 그러죠... 요즘 누가 종이 신문 읽습니까. 알면서도 읿부러 뇌물 주듯 광고비 책정하는 것. 삼성은 망해야죠. 망해야 대한민국이 삽니다..

2016-10-13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3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3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4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솔불곰 2016-10-1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화법과 어법에 놀람을 금치못하겠습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