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판 아수라
시를 읽지 않는 사회가 된 지는 이미 오래이다. 독자는 없는데 시인만 넘쳐난다는 비판도 있다. 시인이 넘쳐나니 부인도 못하는 상황이다. 또 누군가는 시를 읽지 않는 한국 사회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를 읽지 않는 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시가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나라는 없다. 함민복 시인은 한때 시만 써서 " 먹고살겠다 " 고 주장했지만, 시를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빈병을 모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시만 써서 먹고살 수 있는 시인은 아마도 천상병 시인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 나는 부업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한국 유일의 시인.“ 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니까.
사실 천상병 시인이 시만 써서 먹고살 수 있었던 데에는 아내가 인사동에서 운영했던 찻집 덕분이었으니 그 또한 온전한, 독립적인 < 먹고살기 > 은 아니다. 웃지 못할 일도 있다. 엘제 라스커-쉴러라는 여성 시인은 나치를 피해 스위스로 망명하면서 체류허가 신청서 직업란에 시인이라고 기재했더니 당국이 내놓은 답변은 시인은 노동을 해서 돈을 벌면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시인이 이 글을 읽으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시인의 시 쓰기는 모두 부업인 셈이다. 이제 시인이라는 직함은 명예직으로 추락한 지 오래이다. 그것은 마치 독립유공자 훈장처럼 보인다.
<< 먹고살다 >> 라는 동사를 보면 내가 악다구니 같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된다. 한 단어이니 " 먹고 " 다음에 띄어쓰기를 한 후 " 살다 " 라고 쓰면 틀린 문장이 된다. 먹다와 살다는 한몸인 것이다. 먹기 위해 사는 생이요, 살기 위해 먹는 생인 것이다. 먹기 = 살기'인 셈이다. 이 동일시는 절망적이다. 그래서 자유와 정의를 이야기하면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타박하는 모양이다. 이 원초성 때문일까 ? 백남기 농민에게 병사라는 진단을 내린 주치의도, 백남기 농민의 가족을 살인 혐의로 고소한 사람도 먹고살기 위해 그런 악행을 저지른 것일까 ? 아수라장은 문학판이라도 해서 다르지 않다. 시인다운 시인이 얼마나 될까.
그는 문학판에서 성공한 문인이다. 유명 사립대 교수이고,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며, 유명 출판사에서 여러 권의 시집과 평론집을 낸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니 이쪽 세계에서는 가질 것은 다 가진 3관왕 출신'이다. 그의 시는 유려하고 화려했으며 문학적 향기는 고고했으리라(추측된다). 하지만 그의 파렴치한 과거를 들추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의 속사정은 순문학이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장르 문학에 가깝다. 한 여자가 그 남자를 상대로 위자료 및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그 남자는 교수이며, 시인이며, 평론가인 사람이고 그를 고소한 여자는 그의 처제'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형부는 대학 입시 시험이 끝난 무렵 자신을 성신여대 여관으로 끌고가 성폭행한다.
그 후에도 그는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고 거부하면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폭력의 수위도 순문학과는 거리가 멀어서 악마가 나오는 스릴러 소설 속 주인공에 가깝다. 주먹질과 발질은 기본이고 칼로 허벅지를 찌르거나 젓가락을 불에 달궈 몸을 지지거나 담뱃불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더 끔찍한 짓은 손가락을 성기 속에 넣고는 칼처럼 찔렀다고. 그녀는 시인이자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형부에 의해 6번이나 낙태를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내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장르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현재에도 진행 중인 소송'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걸어둔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38551
그의 시가 궁금하다. 어쩌면 내가 이미 구입한 시집의 시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피해자는 시인의 영롱하며 아름다운 시 세계를 찬양하는 내 리뷰를 읽고 울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 아수라 >> 에는 좋은 놈이 하나도 없다. 모두 다 악인이어서 모두 다 개새끼로 나온다. 남자들의 우정 따위는 없다. 스포일러에 속하는 내용이지만(이 영화를 안 보았다면 읽기를 여기서 멈추시길)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다 죽는다. 먹기가 곧 살기와 동일해서 " 먹고살다 " 라는 동사가 탄생하는 사회, 어쩌면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