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이 있는 네 편의 영화
1. 영화 << 터널, 2016 >> 에 대하여 : 바늘과 터널의 공통점은 ? " 구멍이 있다 " 가 정답일 것이다. 크기야 하늘과 땅 차이지만 어찌되었든 구멍은 구멍이다. 영화 << 터널 >> 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그래서 희박한 생존 경쟁을 뚫고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 인간군상에 대한 은유'이다. 터널 안에 갇힌 두 사람은 터널의 끝, 그러니까 구멍을 통과하지 못한 채 낙오된 낙타 두 마리'다. 이제 갓 사회인이 된 미나가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죽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며 아픈 대목이다. 무거운 짐(돌덩이)을 안고 그 무게에 압사되어 죽는 것은 88세대에 대한 뼈아픈 은유가 아닐까. < 저녁이 있는 삶 > 을 잃어버린 과노동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결국 " 버티는 삶 " 밖에는 없다. 버티지 못하면 죽고, 버티지 못하면 죽고, 버티지 못하면 죽고, 버티면 겨우 살 수 있다. 단, 경제적 효율성을 따져야 한다. 당신의 목숨이 경제 성장에 있어서 비효율적이라는 계산이 나오면 구조는 중지된다. 세월호는 그 사실을 각인시킨 사건이다.
2. 영화 << 덕혜옹주, 2016 >> 에 대하여 : 대부분 나라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다. 러시아 짜르 왕조는 민중 혁명을 통해 숙청 당했고 프랑스는 왕의 목을 잘라서 공화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반면 대한민국은 왕정을 제거해야 할 구시대적 잔재가 아니라 왕정 시대의 왕족에 대한 향수와 존경을 드러낸다. 영화 << 덕혜옹주 >> 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일본에서 귀국한 옛 왕조의 옹주를 위해 마중나온 사람들이 대성통곡을 하며 흐느끼는 장면이었다. 공화정인 시대에 여전히 왕정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 지독한 센티멘탈을 단순히 한때 나라 잃은 백성의 회고적 회한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 몰락을 거듭했던 허진호 감독은 결국 막장을 찍은 것이다. 허진호는 < 그들만의 가족사 > 를 < 우리들의 역사 > 로 포장한다. 이 정도의 왜곡이라면 잘 만들어진 " 센티멘탈 " 을 찬양할 것이 아니라 " 감독멘탈 " 을 의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러한 노예근성은 박정희에 대한 애도와 박근혜에 대한 지지에서도 나타난다.
3. 영화 << 채식주의자, 2009 >> 에 대하여 : 흡혈귀와 채식주의자는 정반대의 거울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동일한 상(象)이다.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이며 동전의 양면이다. 흡혈귀에게 물린 사람은 식물성을 멀리하고 동물성(피)만 찾게 된다. 반면에 한강의 << 채식주의자 >> 에서 채식주의자인 아내는 동물성(고기) 음식을 보면 구토를 일으킨다. 그들은 모두 특정 음식을 기피하다가 결국에는 거식증의 단계에 들어선다. 극우와 극좌는 나중에 하나의 얼굴로 조우하듯이 결국 두 부류는 전혀 다른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일한 이미지인 것이다. 뱀파이어가 붉은 피를 원한다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푸른 피를 원한다. 색이 다를 뿐이다. 그녀가 알몸으로 베란다에 나가 해바라기를 하는 행동은 광합성을 통해서 자신의 붉은 피를 푸른 피로 교체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즉, 광합성이란 푸른 피를 흡혈하는 과정이다. 한강이 실패하는 지점은 바로 그것이다.
4. 영화 <<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1957 >> 에 대하여 : 영화 << 헐크 >> 는 발기된 남근 캐릭터'이다. 툭툭, 힘줄이 솟고 근육이 팽창하며, 무엇보다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혈류가 한쪽으로 쏠린 귀두 같다. 반면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 줄어드는 남자 >> 를 영화로 옮긴 <<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 에서 날마다 줄어드는 남자는 헐크와는 정반대인 캐릭터라는 점에서 발기부전'인 남자다. 그는 BIG MAN에서 SMALL BALLS 이 된 남자로 몸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의기소침, 우울증, 신경쇠약에 시달린다. 1950년대 기혼 여성이 가정을 벗어나 직장을 얻기 시작하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여권 신장에 따른 남성의 의기소침으로 읽을 수 있다. 50년대 미국의 풍요로움이 좌파의 승리를 이끄는 동력이었다면 90년대 한국의 경제적 몰락(IMF사태)은 고개 숙인 남성을 대량 생산한다. 이 시절, 고개 숙인 남성의 복원을 담은 영화가 바로 << 실미도 >> 다. 이 영화에 대한 20자평을 말하자면 " put your head up !!! " 그들은 죽지 않기(발기부전) 위해 악을 쓴다. 그럴수록 몸은 지옥훈련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실미도 대원이 내지르는 절규가 인상 깊다. " 우린 죽지 않아 !!! " 죽지 않는다는 다짐, 목숨인가 아니면 남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