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꼴페'는 없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916/pimg_7499151041276956.jpg)
한국 사회에서 정희진은 < 꼴페 > 로 통한다. 그녀의 주장이 과격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녀'가 글에서 내세운 입장(들)은 과격한 것이었을까 ? 대한민국에서 << 꼴페 >> 는 << 배운 년 >> 에 대한 은유로 통한다. " 배운 년이랍시고 나대는... " 따위로 말하면 여성 혐오가 그대로 드러나기에 " 꼴페 " 라는 무리군을 만들어서 공격하는 것. 이와 같은 < 프레임 > 과 < 네이밍 > 작업은 실체는 없으나 있다고 추측되는 유령들'을 공격하기 위한 전술 가운데 하나이다. 적이 선명할수록 폭력은 정당화된다. << 마녀 >> 와 << 빨갱이 >> 가 대표적인 희생자'다. 21세기 < 빨갱이 > 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내세운 헛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 꼴페 > 는 " 공평(에 대한 요구) " 를 " 공갈 " 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만든 집합명사'다. 보수의 샌드백(분풀이 대상)이 빨갱이라면,
마초의 샌드백은 꼴페'다. 원 투 잽, 원 투 잽, 쓰리 어퍼컷. 물론, 꼴페 운운하는 마초라고 해서 날마다 샌드백만 두들기는 사람들은 아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용서하나니, 그들도 사랑에 빠지면 샌드백을 두들기던 주먹으로 애인의 핸드백을 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여성에게 호의적일 때는 코딱지 만한 " 핸드백을 들어주었던 나날들 " 뿐이다. 여기까지가 한계다. 결혼을 하고 나면 쇼핑백은 항상 아내의 몫. 그들은 다시 핸드백 대신 샌드백을 치기 시작한다. 둘 만의 뜨거운 밤'은 어느새 " 한밤의 의무방어전 " 이 되어 술자리에서 밤이 무섭다는 신소리'만 한다. 그들은 겉으로는 여성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꼴페'라는 한정된 부류를 혐오한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성 비하'를 숨기기 위해 꼴페(극성스러운 페미니스트) 혐오를 내세운 것뿐이다.
꼴페 운운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정희진은 대표적인 꼴페요, 페미년이다. 정희진은 배운 년이 설치고 다니는 대표적 캐릭터'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에는 평페(평범한 페미니스트)는 존재하지만 꼴페(꼴통 페미니스트)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성평등 우량 국가인 핀란드 국민 " 따루(미녀들의 수다에서 말 똑부러지게 했던 여성 방송인) " 가 김어준 방송 << 파파이스 >> 에서 언급한 말은 성평등에 대한 시각 차'를 보여준다. 따루가 보기엔 올리브영 화장품 광고 문구( 이 정도면 됐다 싶은 그와 그녀에게 올리브영이 제안하는, " 넌 더 예뻐져야 하니까 " - 올리브영 화장품 광고 카피)는 성차별 언어에 해당된다. 따루는 이 광고 문구를 보고 충격을 먹었다고 고백한다. 핀란드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광고 문구라는 것이다.
사실 따루가 이 사실을 지적했을 때 나는 의아했다. " 도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 " 왜냐하면 저 문장이 성차별 문장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보았다. 그때 비로소 따루가 말한 비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광고 속 남성은 "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여성 " 은 모자란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무리 진(眞)과 선(善)을 완벽하게 갖췄다고 해도 미(美)가 충족되지 않으면 " 나태하며 게으른 여성 " 일 뿐이다. 그래서 미남께서 충고 한마디 던지신다. " 넌 더 예뻐져야 하니까 ! " 이 말 속에는 여성은 반드시 예뻐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보다 더 예뻐져야지 내 애인이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만약에 신세경이 우유 광고에서 성인 남성을 향해 " 넌 더 키가 커져야만 하니까 ! ( 이 정도 키면 됐다 싶은 그에게 제안하는... ) " 라고 말한다면 대한민국 불알후드 사회 hell-chosun brotherhood network 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
<< 미녀들의수다 >> 에서 남자는 키가 커야 한다고 지적했던 여성은 그 후 마녀사냥에 시달렸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여성이 직장을 구하자 수많은 남성들이 회사에 전화를 걸어 협박을 한 예도 있었다. 그녀는 결국 직장 생활'을 포기했다. 내가 보기에는 < 여자는 더 예뻐져야 한다 > 와 < 남자는 더 키가 커야 한다 > 라는 문장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둘 다 천박한 말이다. 하지만 이 차이 없는 동질성은 전혀 다른 반응을 낳는다. 전자는 " 공감 " 이고 후자는 " 징벌 " 이었다. 내가 한국에는 꼴페가 없다고 말한 이유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한 여성도 " 넌 더 예뻐져야 해 ! " 라는 올리브 영 광고'에 대해 딴지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데 있다. 심지어 정희진'조차 말이다.
저 광고를 보고 충격을 먹었다는 말을 따루가 아닌 한국 여성이 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 딕헤드(dickhead) 의 기준에서 보자면 따루는 정희진'보다 한 수 위'인 꼴페다. 칼럼리스트 김태훈이라면 무뇌아적 페미니스트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 따루는 극렬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핀란드 국민의 평균적 성평등 의식을 가진 국민일 뿐이다. 따루가 < 꼴페 > 라면 핀란드를 중심으로 한 북유럽 국가들은 < 꼴페들이 사는 나라 > 다.
성평등 국가의 광고를 보면 이러한 인식은 확연히 드러난다. 대한민국 광고는 대부분 장난감 차에 사내아이가 앉아 있고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는 여자아이지만( 한국 광고는 가부장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놀이에 충실하다. 한국 사회는 남자는 남자답게 키우고 여자는 여자답게 키워야 한다는 맹신이 자리잡고 있다), 성평등 국가의 광고는 잰더 역할에 충실하지 않다. 장난감 차 안에 앉아 있는 아이는 여자아이이고,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는 남자아이'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 그렇지 않다. 스웨덴 광고의 의도적 잰더 배치'는 성평등 사회에 부응하기 위한 정치적 배려다. 과연 대한민국은 여성 상위 시대일까 ?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여성이 저 광고 카피(올리브영)를 보고 대다수의 여성이 놀랄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성평등 국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