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알후드'에는 좌우가 없다
어떻게 하다 보니 << 새빨간 활 : 시즌 2 >> 를 맞이하게 되었다. 글을 쓸 공간만 있으면 되니 딱히 전에 사용하던 블로그 공간이 그립지는 않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블로그 시즌 1'은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구멍가게 단골 이웃들은 이 사실을 아시리라. 대한민국에서 악전고투하며 살아가면서 깨달은 것은 그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정의로운 사람은 소수라는 점이다. 진보 진영'이라고 해서, 시민 단체'라고 해서, 문단'이라고 해서 다른 보수 꼴통 진영보다 정의로운 사람이 많으리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문인의 팔 할은 개새끼였고, 인권활동가의 팔 할 또한 개새끼였다.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을 향해 " 꼴통 " 이라며 진저리를 쳤지만, 사실 진보 진영은 마우스(mouth) 진보와 캐비어 좌파'가 팔 할이었다. 둘 다...... 꼴통이었다.
나는 보수 꼴통과 진보 꼴통'을 싸잡아서 << 불알후드 >> 라는 철학 용어'를 맹가노니, 다음날 보기에 알흠다웠어라. 불알후드는 " brotherhood " 를 토종 한국어로 축약할 때 발생하게 되는 아찔한 비속어인데, 사상은 서로 다르지만 좆대가리 근성은 똑같은 부류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용어'였다. 좆대가리 근성 앞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한통속으로 묶기 위해 불알에 hood를 달았다. 영화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에 등장하는 전투 트럭 끝에 둥근 유류 탱크를 달았듯이 말이다. 신이여, 이 비뇨기적 불경을 용서하소서 ! 지금 소개하는 몇몇은 진보인 척하지만 좆대가리 근성을 버리지 못한 불알후드(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청소년 인권활동가'라는 명함을 가진 스무 살 청년이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청소년 때부터 각종 집회에 참석하여 자유와 인권에 대해 핏대를 세우는 청년이었다. 여성 인권에도 관심이 많아서 시간 날 때마다 평등 사회를 주장하고는 했다. 그랬던 그의 정체'가 들통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자유, 인권, 평등'을 주장한 올곧은 대나무였으나 대내적으로는 좆대가리 근성에 사로잡힌 울트라 하드 바디'였다. 그에게 여성은 섹스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표적이 되는 순간, 그는 집요하게 여성에게 만남을 요구했다. 거부하면 욕을 하고 협박했다. 그는 새벽에도 전화를 걸어 음담패설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당시 피해 여성이 공포를 느꼈을 정도였다고 술회한 것을 보면 그 수위는 내가 이 자리에서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는 인권활동가라는 명함을 이용해 여성에게 접근하여 인권을 유린한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폭로하고 사과를 요구하자 그가 내세운 논리는 < 자신의 인권 > 이었다. 진보를 가장한 꼴통이 보여준 추태 앞에서 할 말을 잊었다. 젊은 진보 논객으로 인기가 높은 한윤형 사건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경우'다. 그의 전 여자친구가 폭로한 글에 따르면 그녀는 한윤형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팀이 졌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아, 불알후드의 좆대가리 근성은 좌우가 없는 모양이다. << 일베의 사상 >> 이라는 책을 쓴 박가분의 전 여자친구도 용기를 내 박가분의 데이트 폭력을 고발했다. 이들 모두는 진보라는 그럴듯한 밍크 코트'가 탐이 나서 진보 코스프레를 할 뿐 진보는 아니었다.
말로는 양성 평등과 여성 인권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였던 셈이다. 이들 모두가 잘못된 여성관을 가지고 있는 원인은 여성에 대한 이해를 싱크대에서 배우지 않고 페미니즘 이론 서적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여성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여성과 동등한 권력을 나누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싱크대에서 배우는 것이다. 좆대가리 체면은 잠시 접고, 쩨쩨한 남성이라는 비아냥을 두려워하지 않고, 싱크대를 배움터로 이해하면 된다. 기름 잔뜩 묻은 그릇을 다른 그릇과 함께 물에 담그면 안된다는 것을 배우면 여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 끼 끼니를 위해 싱크대 앞에서 요리를 한다는 것의 고단함을 이해하면 함부로 여자를 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 아들을 둔 내 이웃은 다른 학부모와는 달리 설거지를 시켰다. 대한민국 교육 열풍을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자식 교육에 뜻이 없는 엄마라고 손가락질했으나 내 이웃은 단호했다. 그녀가 말했다. " 내 아들이 날마다 설거지를 해서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고, 그 시간만큼 공부를 못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 해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룰 때 오래 전부터 해온 습관대로 아내와 가사를 분담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 그 말에 나는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이 단순한 진리. 양성평등은 싱크대에서 나온다는 이 단순하지만 촉촉한 진리. 이 자리에서 고백하지만 나 또한 좆대가리 근성을 버리지 못한 불알후드'였으며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였다.
종종 꿈속에서 헤어진 옛 애인에게 용서를 빌고는 한다. 이제는 불알후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책상 앞에서 책만 읽지 말고, 싱크대 앞에서 밥그릇은 닦으련다. 내가 먹은 밥그릇은 내가 닦아야 한다. 가난한 노동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노동을 나누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