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진 책 그만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중 삼중으로 책을 막 꽂아둔 덕분에 남편은 늘 걱정을 한다.
책장을 놓아둔 바닥 부분이 하중을 견디지 못해 수평이 안맞을 수 있다고 책장을 유심히 살펴보곤 책 좀 그만사라고 잔소리 한다.
새 책을 여기저기 찜박아 놓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도 막 분산해서 꽂아둔다. 그래야 정신이 없어 어떤 책이 늘어났는지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아 잔머리를 굴려 ˝요즘 나, 책 잘 안산다.˝고 시치미를 떼보지만 갑자기 늘어나버린 책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바닥이 꺼지지 않으려면 책장을 하나 더 사야겠는데 책장을 놔둘 곳이 없다. 그렇다고 책을 팔지도 않는다.
애들이 보던 책 그리고 사다 줬지만 안봤던 책을 버리거나 나눠 주면서 만들어 둔 새 공간들도 어느새 꽉 찼다.
내 책을 팔거나 버리려니 안 읽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처분할 수도 없다.
(넌 도대체 언제 책을 읽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결국 지난 달까지 책을 사면서 이젠 연말까지 책 안 사야지. 이제 살만큼 샀잖아. 라고 내뱉었다.
나 혼잣말로 내뱉었기에 아무도 들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이번 달만 더 사자. 당당하게......
꼭 사야 할 책 몇 권만 더...장바구니에 담았다.
(바닥아, 조금만 더 버텨다오!)
그리고 어디서 들어온 걸까? 적립금이 만 원이나 들어 있다고 알림을 두 번이나 받았다. 투비에서 들어온 적립금이지 싶은데 이것도 유효기간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마음이 좀 급했다. 이벤트 알림으로 쏙쏙 들어가 기똥차게 퀴즈를 풀고, 기대 별표 다섯 개를 잽싸게 클릭하여(이번엔 진짜로 기대 별표 다섯 개를 진심으로 눌렀다.) 적립금 4,500원을 순식간에 쌓았다.
그래서인지 결제할 때 조금은 심적 부담을 덜었다.
아...커피도 주문할 때 그동안 모아뒀던 스탬프를 알차게 썼다.
이 정도면 뭐 알뜰살뜰 책 주문 참 잘했다.
보람차다.
트루먼 커포티의 시리즈를 읽어보려 했으나 시리즈 1권에 해당하는 것 같은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을 구입했다.
도서관에 검색했더니 이 책이 없었다.
그래서 살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 예산도 때론 아껴줘야지.
커포티의 그로테스크한 성장소설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떨런지?
<회색 노트>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소년들 이야기.
제목은 들어봤었는데 읽어보진 못했다.
아주 감동적으로 남아있다는 댓글들을 읽었다.
읽어보고 딸들에게 읽어보라고 넘겨주려 한다.
<페이드 포>
이번 달의 여성주의 책이다.
책 판형은 좀 작은데 <회색 노트>도 그렇고 글자가 좀 어리어리하여 어지럽게 읽힌다. 노안이 자꾸 심해졌단 뜻이다. 읽기 힘들 것이란 이야기를 미리 들었지만 책장을 넘겨보고 흠칫 놀랐다. 요즘은 책이 작다고 좋아하면 큰일난다. 글자도 작아지고 행간 자간 모두 좁아지기 때문이다.
<백래시> 다 읽었다고 좋아했건만...다시 미간에 주름을 잡고 정독해야 한다. 안경을 벗고 책을 읽으면 난시도 심하여 그냥 어지럽다. 이 눈을 어찌하면 좋을까?
50살이 넘으면 지천명 선물로 누진다 초점 안경을 맞춰볼까. 생각 중이다.
출판사들도 노안이 온 독자들이 글 읽을 때 고통을 받고 있음을 좀 더 기억해줬음 싶다.
(시장조사 하시는 분께 건의 하나 올립니다.^^)
<펠리시아의 여정>
사랑하는 작가 윌리엄 트레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극찬의 리뷰가 쏟아져 나왔지만 소설의 내용은 잘 건너뛰며 읽었고, 빨리 사야지. 해놓고선 이제 생각이 난 거다.
연말되기 전까지 얼른 읽고 싶어 샀는데 막상 받아들고 나면 그냥 책장에 꽂아두고 책 하중에 보탠다.
이래서 책이란 미리 사다 놓고 당장 읽고 싶은 순간에 손을 뻗어 책을 집어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책을 기다리는 다음 날은 이미 의욕이 상실된다.
쓰면서도 뭔말인지 모르겠으나 암튼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책들은 야금 야금 미리 사다 놓자는 것이다.
<상황과 이야기>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가 또 나왔고, 한 권이 더 있단다.
띠지의 이슬아 작가의 추천사가 눈에 띈다.
‘나는 이 책으로 나를 가르친다‘
오호...작가를 가르치는 작가의 책이라니!
책 좀 볼 줄 아는 작가로세.
슬아 작가 이쁘게 보기 시작한 한 독자의 말이다.
<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앞전의...<저주 토끼> 단편집이 무척 인상깊었다고 쓰려니 작년 여름에 읽었네? 1년이 지났는데도 몇 개의 단편들이 인상깊게 기억으로 남다니...흔치 않은 일이다.
나는 늘 커다란 지우개를 머릿 속에 찜박아 놓았어서 대부분 읽은 책을 다 까먹는다. 그런 경험에 비추면 <저주 토끼>의 정보라 작가는 퍽 인상깊었나 보다.
그런데 김혜리 기자의 ‘조용한 생활‘에 정보라 작가가 출연한 인터뷰를 듣고서 정말 깜짝 놀랐다. 내가 상상한 작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엇을 상상했던 것일까? 내가 생각했던 정보라 작가의 그 이미지가...그렇게 상상한 내가 너무 부끄럽고 난처할 지경이었다.
남편의 간암이 재발되어 어쩔 수 없어 다니던 대학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자의적인 전업 작가 생활이 아닌 타의적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정보라 작가의 목소리는 너무 덤덤하다 못해 어딘가 강인하게 들렸다.
대학에서 코로나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작가는 장애 학생들을 위한 건의를 했고, 학생들이 쉽게 수업에 임할 수 있게 직접 행동으로 옮긴 스승이었다.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은 바람돌이 님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씀 하셨지만, 나도 그 말이 참 묵직하게 다가왔었다.
인상깊었던 정보라 작가의 인터뷰를 듣고 시위현장에 있었을 작가를 상상하며 이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추석을 쇠고 나니 또 커다란 지우개가 쓱쓱.....며칠 전 단발머리 님 서재에서 글을 읽다 아차! 싶었다.
단발머리 님 페이퍼에서 작가님의 답변을 옮겨 놓은 문장을 읽었는데 어쩜. 사진을 찍은 인용문처럼 귀로 들은 말도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정갈하게 옮겨 놓으셨다.
두뇌의 크기가 다른 것일까? 용량이 다른 것일까?
이곳엔 왜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걸까?
내가 똑똑한 사람들 곁에서 덕을 많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똑똑하다고 감탄은 했는데 땡투는 누구에게 드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바람돌이 님께 한 건지? 단발머리 님께 한 건지?^^
굳이 이렇게 밝히는 건 정보라 작가님 책은 모두에게 땡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한 사람만 정하기 힘들어 고민을 많이 했다는 개인적인 생색을 내기 위함이다.
모두에게 땡투하고 싶었습니다.
<펠리시아의 여정>도 마찬가지였구요.^^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도나 해러웨이의 책이 북펀딩을 한다는 홍보 북플 페이퍼를 읽었다. 예전 <해러웨이 선언문>을 읽고 빙글빙글 어지러웠던 경험 탓에 살짝 고개 돌리고 모른 척 했었다.
분명 어려울 거야! 안 읽을 거야!
그랬는데....
분명 그랬는데...
나는 북펀딩 인쇄명을 이틀이나 고민을 하며
(영장류 책나무로 할 것이냐? 사이보그 책나무로 할 것이냐? 고민 하다....좀 이색적이게 도나도나짱 책나무로 할까 하다...넘 튀는 것같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사이보그 책나무‘로 기록.)
펀딩을 했다.
펀딩한 후, 엽서를 받아들면 분명히 내가 젤 꽁지로 이름 적힐텐데 담번엔 그냥 ‘ㅇㅇ나무‘로 기록해야 겠다는 괜한 경쟁의식 계획을 세우며 나 지금 뭐하는 거니? 정신 차려. 책나무!
암튼 그렇게 받은 펀딩 책인데 와 도나도나짱!
책이 가을에 맞춤맞다.
표지의 색감이 커피와 쵸코렛을 연상시킨다.
분명 어려운 책일테지만 맛있는 구미가 땡기는 책으로 예쁘게 만들어져 왔다.
지난 달 주문한 커피가 똑 떨어졌다. 하지만 디카페인 커피는 가득 남아 있어 이번엔 드립백 커피를 주문해볼까. 싶어 들어가봤더니 드립백 7개 세트가 나와 있었다. 무민 두 녀석이 가을하다며 가을 놀이 중인 박스 표지 그림도 귀엽다.
지난 달 굿즈를 넘 미친 듯 주문을 했던 것 같아 이번엔 자제했다. 굿즈에 쓸 마일리지를 애껴 책을 한 권 더 사는 게 현명한 소비라는 걸 알고 있지만 늘 뒤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무릎 담요 하나만 주문했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차 나이 들어가는 알라디너는 무릎이 시리답니다.ㅜㅜ)
이럴 땐 굿즈로 무릎 건강도 챙기고 일석이조.
도서관 그림이 화려해 보여 도서관 그림으로 샀다.
외모는 화려하게 못 꾸미지만 굿즈는 화려한 걸 골라야 제 맛.
이제 무릎 담요 애들한테 안 뺏기고 내 무릎 내가 챙겨야겠다.
이제 가을이니까 열심히 읽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