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토요일자 한국일보를 사들고 왔다. 가장 눈길을 끈 기사/칼럼은 이광일 논설위원이 쓴 '지식을 나눕시다'('정보'가 아니라 '지식'이다). 세계 수위를 다투는 인터넷강국이지만 우리의 인터넷은 '지식의 바다'라고 하기엔 아직 쑥스러운 수준이다. 오늘 아침에도 '마샬 버만'과 '들뢰즈의 영화론'에 관한 자료들을 좀 찾아보려다가 뭔가 그럴 듯한 게 눈에 띄지 않아 혀를 차고 있던 참이었다(물론 영어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그러는 사이에 미국 명문대학들에서는 자신들의 강의를 무료로 공개한다고 하고(한국의 대학은 등록금 천만원시대를 감당할 만한 강의를 제공하고 있는가?), 구글에서는 수백만권의 책을 영인해서 인터넷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지식사회로 진입해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의 관심이나 대처는 너무 고답적이고 너무 한가해 보인다(내용도 없는 리포트/논문들이 몇 천원씩 '거래'되는 게 '한국적 지식'의 현주소인가?). 문제의식이 좀 확산될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07. 02. 17) 지식을 나눕시다

가히 인터넷 세상이다. 하다 못해 자기 집 전화번호가 생각이 안 나도 인터넷에 들어가 “우리 집 번호는?”하고 칠 정도다. 모든 게 인터넷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한글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별 게 없다. 거의 잡담 수준의 정보가 올라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금 깊이 있는 정보가 있겠다 싶으면 예외 없이‘전문자료’라고 해서 돈을 내고 사야 한다. 심지어 30쪽짜리 논문 한 편이 7,000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영어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온갖 지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를 들어 history(역사)를 쳐 보라. 한 두 사이트만 들어가면 세계사에 관한 개요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관심 분야에 따라 거기에 연결된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면 지역별, 시대별로 아주 전문적인 수준까지도 공부할 수 있다.

이처럼 한글 인터넷과 영어 인터넷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는 사람에 있다. 우선 지식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 다음 그런 지식을 남에게 공짜로 제공할 만큼 헌신적이어야 한다(*위키피디아의 한국어판을 영어판과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다). 한글 인터넷이 내용 면에서 별 매력이 없는 이유는 우선 매력적인 수준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 적고, 그나마 그런 지식이라도 인터넷에 올리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은 더더구나 적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지간한 학회는 최근호를 제외하고는 학회지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그것도 디자인을 아주 멋지게 해서. 반면 우리나라 학회들 중에서 홈페이지에 제대로 정보를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니 한글을 사용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지식 수준은 영어권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매력적인 지식을 갖춘 헌신적인 사람을 단기간에 많이 키울 수는 없다. 그나마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 우리의 지식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돈을 내고 사게 돼 있는 각종 전문자료를 네티즌들이 무료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전문자료들은 대개 논문의 형태인데 한두 회사가 학술지를 내는 학회나 연구기관과 계약을 맺고 일반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그래 봐야 회사만 돈을 벌 뿐 학회나 연구기관은 다른 전문자료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권리 정도밖에는 돌아오는 것도 없다.

일반인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알량한 자료를 사거나 무슨 무슨 학회지에 실린 논문 한 편을 보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을 뒤져야 한다. 인터넷 시대에 이런 번거로움이 없다. 교육인적자원부가 1999~2005년에 실시한 두뇌한국(BK)21 사업도 그렇다. 1조 5,700억원을 들여서 나온 수많은 논문들이 인터넷에는 올라 있지 않다. 그냥 책이나 논문의 형태로 출판됐을 뿐이다. 이것만 그냥 인터넷에 올려도 지식검색에서 볼 만한 내용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국민 세금을 엄청 쏟아부어 나온 결과물을 극소수의 사람만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낭비 중에서도 터무니없는 낭비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교육부도 좋고, 문화부도 좋고, 학술진흥재단도 좋으니 정부가 나서서 서고에서 잠자고 있는 연구물들을 인터넷으로 끌어냈으면 한다. 저자에게 최소한의 지적재산권 사용료만 지급하고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다. 논문 한 편에서 영화나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제품 개발의 소재를 얻을 수도 있고, 전문지식을 키울 수도 있다. 이제 공부는 학생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식은 누구에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구글에서는 지금 미국 주요 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1900년 이전 발행 도서를 영인해 인터넷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종수만 해도 수백 만 권에 달한다. 그 방대한 자료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갈 때 어떻게 활용될지는 예측을 불허한다.(이광일 논설위원)

한겨레(07. 02. 17) 미 명문대 온라인 공짜강좌 ‘펑펑’

카리브해 연안 세인트루시아에 살고 있는 캐나다 출신 기업가 로버트 크로건은 요즘 미 아이비리그 명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무료 강의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이 대학 몇몇 강좌의 강의노트가 자신이 추진중인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업무와 폭넓게 관련된 ‘세계 개발’과 ‘기업금융’ 등의 강의도 공부하고 있다. 크로건은 “(MIT 강좌가) 내가 사회에서 배운 실무지식과 제도교육의 용어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미군 소위인 로니 매튜도 노트르담 대학의 ‘신학의 기초’ 온라인 강좌에 빠져 있다. 그는 담당 교수인 게리 앤더슨의 강의 계획과 내용, 과제에 따라 하루에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있다고 <원스트리트저널>이 15일 전했다.

미국에서 강의 내용을 온라인에 무료 공개하는 대학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문턱이 높은 대학 강의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해, 이른바 ‘교육의 민주화’를 추구하겠다는 게 강좌를 공개하는 대학들의 공식적인 설명이다. 이 외에도 △대학 지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동문 기부금을 확충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신문은 분석했다.

강좌 공개에 가장 적극적인 대학은 MIT다. 현재 1500개 강좌의 강의 노트와 교육과정을 온라인에 올려 놓고 있다. 오는 11월까지 1800개로 확대해 사실상 대학의 모든 강좌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노트르담대도 지난 가을부터 ‘철학개론’ 등 8개 강좌의 강의노트와 필독서 목록, 과제물 등을 온라인에 올려 놓고 있으며, 2년 안에 30강좌로 확대하기로 했다. 아이비리그의 또다른 명문 예일대도 오는 가을 학기에 ‘구약개론’과 ‘물리학의 기초’ 등 7개 학부 강좌를 영상 녹화해 공개할 계획이다.

아이팟과 같은 엠피3 플레이어와 컴퓨터로 음성 파일을 내려받는 방식인 ‘팟캐스팅(Podcasting)’을 통해 강좌를 공개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미 서부 최고 명문 스탠퍼드 대학은 지난 가을학기부터 ‘위기의 문학’, ‘역사 인물로서 예수’ 등 3강좌를 애플의 아이튠 유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공개 강좌수를 12개로 늘릴 계획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도 강의 공개를 위해 일부 강좌를 음성과 영상 파일로 제작하고 있다.

이런 강의 공개에는 재단 지원금도 활용되고 있다. 교육자료 공개 촉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윌리엄 플로라 휼릿 재단’은 지금까지 각 대학과 비영리 재단에 6800만달러 이상을 기증했다. 이 재단의 교육 프로그램 간부인 캐서린 캐설리는 “지식은 공공재다. 공공재는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쪽에선 잠재적인 지원자를 늘리겠다는 목적이 크다. MIT의 공개강의 이용자 조사를 보면, 대학 입학 전 이 강의 사이트를 알고 있었던 신입생의 3분의 1은 강의 내용이 대학 선택과 등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대학들은 강의내용 공개가 지원자를 줄일 것이라고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신문은 전했다.(강성만 기자)

07.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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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2-19 11:00   좋아요 0 | URL
아, 나 이렇게 자꾸 똑똑해지면 안 되는데 ^^; 좋은 정보 추천하고 퍼갑니다.

로쟈 2007-02-19 11:02   좋아요 0 | URL
지식도 평평해지면, 따로 '똑똑한 사람'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외로운 발바닥 2007-02-19 11:05   좋아요 0 | URL
네이버 지식 만 해도 물건 사거나 음식점 찾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만 조금만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정말 엉터리가 많더라구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부족과 그런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열정부족이 가장 큰 문제겠지만, 부족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지식수준을 넘어서는 게시물을 마구 올리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

마늘빵 2007-02-19 11:33   좋아요 0 | URL
대학 강의록을 다 공개했음 좋겠어요. 강의계획서만이라도. 어떤 학문에 눈독들일 때 강의계획서의 목차와 참고문헌들이 참 도움이 많이 되는 때가 있어요. 학부시절 모아놨던 자료들 괜히 다 버렸나봅니다. 지금 와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리스 2007-02-19 11:40   좋아요 0 | URL
우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스탠포드의 '위기의 문학'강좌가 제일 솔깃하군요.

기인 2007-02-19 13:25   좋아요 0 | URL
아 저도 퍼갑니다. 음. 외로운 발바닥님 말씀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네요. 그래도 검색 엔진이 아닌 대학들이 정보공개를 하는 것은 그런 걱정거리를 줄게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로쟈 2007-02-19 13:29   좋아요 0 | URL
이번 학기부터 서울대 공대 등도 강의자료를 공개한다고 하네요. 점차 확산될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로쟈 2007-02-19 15:58   좋아요 0 | URL
**님/ 우려하시는 내용은 저도 공감합니다. 한데, 지식 공유가 저작권 공유를 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적어도 출처만큼은 확실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문화'라면 상당 부분은 이용자(네티즌)들이 만들어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07-02-19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19 16:45   좋아요 0 | URL
**님/ 원래 서재주인에게만 보기로 하셨는데요 뭐.^^

비로그인 2007-02-19 17:08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해적오리 2007-02-19 19:02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짱꿀라 2007-02-19 19:21   좋아요 0 | URL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퍼갑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구요.

hnine 2007-02-19 20:05   좋아요 0 | URL
'정보'와 '지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서 읽었습니다.

로쟈 2007-02-19 20:48   좋아요 0 | URL
예, 다른 분들도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글고, 제가 퍼온 것들이 '정보'지요.^^

클레어 2007-02-19 21:04   좋아요 0 | URL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저도 퍼가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2007-02-20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인 가장 사랑하고 애송하는 시인들로 꼽힐 만한 김소월과 백석의 시집이 또 출간됐다. 발표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보전한 게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 얼마전 우리 근대문학의 경우에도 정전(텍스트) 확정 작업이 매우 중요하면서도 아직도 미진하다는 페이퍼를 올려놓은 바 있는데, 이번에 나온 시집 두 권은 그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거리들을 제공해준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2. 17) 고형진 고려大교수, 소월·백석의 詩원형 살려내 출간

‘산(山) 뽕닢에 빗방울이 친다 / 멧비둘기가 난다 / 나무등걸에서 자벌래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켠을 본다’ (<백석, <산(山)비> 전문) 단 석 줄의 절제된 언어 속에, 비 내리는 적요한 산 속에서 일어나는 연쇄 반응이 손에 잡힐 듯 하다. 초고속 촬영의 영상이 펼쳐지는 HD 화면이랄까. 아찔하도록 감각적이고 함축적인 시어들을, 우리 시는 일찍이 구축해 두고 있었다.

백석(본명 백기행ㆍ1912~1995 사망 추정)과 소월(본명 김정식ㆍ1902~1934)의 시가 발표 당시의 형태로 살아 왔다.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 펴냄)과 ‘원본 김소월 시집’(깊은 샘 펴냄). 방언과 토속어는 물론 당대의 신조어까지 당시 표기대로 살린 이 시집들은 원본을 보는 듯한 감흥을 선사한다.

살을 에는 삭풍이 부는 겨울밤, 마려운 오줌을 더는 참지 못하고 한잠을 깨 일을 보는 아이를 산문시 형식으로 그린 <동요부(童尿賦)>는 우리 시대가 까마득히 잊고 있던 생활 성정을 제시한다. ‘ 긴 긴 겨울밤 인간들이 모두 한잠이 들은 재밤중에 나혼자 일어나서 머리맡 쥐발 같은 새끼 오강에 한없이 누는 잘매럽던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하는 소리’(1939년 문장). ‘오줌 누는 아이에 부침’이란 익살스런 뜻을 지닌 한자어 제목답게, 백석은 일상속에 숨은 골계의 순간을 한국어로 엮어 낸다.

책을 엮은 고형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백석의 시가 현대 시사에서 갖는 기본적인 성취는 토박이어와 옛말을 포괄하는 모국어의 확장에 있다”며 “다채롭고 화려한 감각어 등 풍요로운 우리의 낱말밭을 주시하고, 거기 심어져 있던 주옥 같은 말들을 캐내어 쓴 최초의 시인”이라고 백석의 국문학적 위치를 규정했다.

이 책을 펴내기 위해 고 교수는 고려대 도서관은 물론 연세대ㆍ서강대 도서관의 원본 잡지를 찾아내 일일이 비교, 작품의 원형에 밀착했다. 25년전, 학계 최초로 백석 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뒷門 박게는 갈닙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江邊 살쟈’ 개벽 제 19호(1922년 1월)에 실렸던 그 모습 그대로,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도 살아 왔다. 시집 <진달래꽃>의 초간본에 수록됐던 형태다(*기사의 타이틀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원본 김소월 시집>의 편자는 김용직 교수이다).

<원본 김소월 시집>은 시집 <진달래꽃>의 초간본 원문을 영인과 함께 수록하고, 소월이 죽은 뒤 스승 김억이 엮은 시집 <소월 시초>에 실린 12편도 포함했다. 그 간 지인이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나돌던 영인본도 최초로 일반 공개, 감회를 더해준다.

김소월시집 (원본)

서정시의 대가일뿐 아니라, 민족혼을 부르짖기도 했던 소월의 모습까지 복원했다. ‘달은 쇠끝 갓튼 지조가 튀여날 듯 / 타듯하는 눈동자만이 유난히 빗나섯다 / 민족을 위하야는 더도 모르시는 열정의 그님.’ <제이, 엠, 에쓰>라고 제목 대신 이니셜만 덩그마니 맨 위에 달린 이 시는 오산학교 교장 조만식에게 헌정된 1934년의 작품이다.

정지용 김기림 등 해금 작가들의 책을 내기도 한 깊은 샘 출판사의 박현숙 대표는 “올해 안으로 만해와 영랑의 작품을 영인본과 주석본으로 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형진 교수는 “소월이 우리말의 선율을 아름답게 가꾼 시인이고 지용이 우리말을 조탁한 시인이라면, 백석은 우리말을 채집한 시인”이라고 평했다.(장병욱 기자) 

07.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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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인가 운만 떼놓은 일을 해치우기로 한다. 도올 김용옥의 <요한복음강해>(통나무, 2007) '참고문헌목록'을 읽고 느낀 점 몇 가지를 적어놓는 일 말이다. 저자가 <요한복음강해>와 (아직 미출간된) <기독교 성서의 이해>, 두 권을 쓰기 위해 구체적으로 참고한 책들이자 그의 '서재에 꽂혀 있는 개인소장본"들의 목록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목차에서 '자세히 열람하시오'라고 당부해놓을 만큼 은근히 자부심을 갖고 적어놓은 것이면서 몇몇 책들에 대해서는 요긴한 사항들을 밝혀놓은 문헌 해제이기도 하다.

사실 나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많은 책들의 서지사항을 훑고 그 중 많은 책들을 구입하며(적어도 소득수준에 비하면 그렇다) 더러 읽어보지만 저자의 편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물론 나도 20년후쯤이면 2만권 이상의 장서를 갖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게 일차적인 느낌인데, 한편으론 전공과 관심이 전혀 다른지라(나는 한번도 '신학'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모처럼 좋은 '책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러는 한편으론 구경 차원이 아닌 보다 실제적인 관심을 촉발시킨 책들도 없지 않았는데, 그런 범주에 속하는 몇 권의 책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한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여러 권이어서 이 '책 이야기'는 '세계의 책' 범주에 집어넣는다.

저자가 첫번째 분류 항목인 '사전류'의 책 50권을 나열하면서 제일 처음에 적어놓은 책이자 "이 지구상에서 "현존하고 있는 최고의 성서사전"이라고 격찬하고 있는 책이 옥스포드 컴패니언 시리즈로 나온 <성서사전>(1993)이다. 이 컴패니언 시리즈의 책들은 나도 러시아문학 관련을 중심으로 여러 권 갖고 있지만 이 사전은 '그냥 그 정도'를 훌쩍 넘어서는 모양이다. 932쪽의 분량도 만만찮지만 도올에 따르면 "간략하면서 많은 정보가 압축되어 있고 또 매우 이론적으로 깊이가 있다. 정통신학적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다양한 최근의 학문성과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왜 이런 사전이 우리나라에서 번역 안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국 옥스포드대학 학문의 수준을 잘 나타내주는 명저 중의 명저이다."

이만한 사전이라면 이해가 안 가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국내의 출판 현황을 고려하면 이해 못한 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기독교 교세와 신심을 생각하면 미스테리한 일이다(우리 교계와 신학 수준을 잘 나타내주는 지표가 아니기만을 바란다). 어쨌든 그런 격찬을 접하고 보니 한권 정도는 사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서 최저가 중고서적을 주문까지 했으나 배송지 제한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허세를 부릴 게 아니라 학교 도서관이나 이용하라는 뜻으로 새겼다).

다음 두번째 책도 역시 사전인데, 저자의 첨언이 아니더라도 사실 "학문을 하는데 좋은 사전을 활용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이들을 구비해놓는 데 적잖은 비용과 상당한 공간이 요구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따름. 엘리아데의 <종교학백과사전>(1987)도 같은 경우이다. 무려 16권이 한 질이다. 역시 도올에 따르면 "신학도라면 꼭 봐야할 명저 중의 명저"로서 "이 백과사전은 세계종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기독교관련 항목도 그 정보의 깊이로 말하면 사전 중의 왕중왕이다." 일당백이란 얘기겠다(물론 이 책은 나의 '실제적인 관심'과 무관하다. 편자의 이름이 친숙한지라 그냥 꼽아보았다).

세번째 책은 보다 직접적으로 '요한복음'과 관련한 '발군의 주석'이다. D. A. 카슨이 쓴 <요한복음주해>(1991)가 그것인데, 715쪽 분량이다. 도올의 설명은 이렇다: "영어원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책을 사서 한줄한줄 나의, 번역과 대조하여 읽어보면 매우 명료하게 요한복음 전체상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고, 지적모험의 한 분수령을 창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책들은 아마존 등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쉽게 구입 가능하다." 확인해보니 책값은 25불 가량이다. 하지만 나는 엊그제인가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바로 옆에 두고 있다.

그리고 네번째 책은 '예수에 관하여'란 카테고리 속에 들어 있는 책인데, 저명한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의 <예수와 말씀>(1958)이다. 도올 자신이 "인생에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고 있기도 하다. 물론 원저는 독어본(1926)이며 도올이 목록에 올려놓은 것은 그 영역본이다(책의 내용에 대한 소개는 http://www.religion-online.org/showchapter.asp?title=426&C=276 참조). 도올의 평가: "우리나라에서는 불트만신학이 마치 한물 건너간 시대조류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착각이다. 우선 우리나라 신학계는 불트만을 이해하지도 訪柰?수용하지도 않았고 토론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불트만신학은 21세기 최고봉이며, 불트만을 안 거치고 21세기 신학을 운운할 수 없다."

 

 

 

 

검색해보면 불트만 관련서는 10여 권 이상 찾아볼 수 있는데, 아직 제대로 된 평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게 도올의 판단인 듯싶다.

끝으로 예수와 관련한 책을 한권 더 꼽자면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여태까지의 모든 성과를 종합한 사계의 최고봉"이라고 도올이 격찬하고 있는 존 도미닉 크로산의 <예수: 혁명적 전기>(1995). 224쪽에 불과하니까 모처럼(!) 단숨에 읽어볼 수 있을 만한 책이다. 도올의 서지에는 빠져 있지만, 보다 두꺼운 책인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1993)은 <역사적 예수>(한국기독교연구소, 2000)로 번역돼 있다.

07. 02. 18.

 

 

 

 

P.S. "성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희랍미술사의 지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저자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라 꼽고 있는 것은 존 보드먼의 <그리스 미술>(시공사, 2003)이다. 나이즐 스피비의 <그리스미술>(한길아트, 1998)이나 뒤센의 <트로이>(시공사, 2004)도 목록에 올라와 있다.  

 

 

 

 

 

창해ABC북으로 나온 <알렉산드리아>와 <레바논>도 "성서이해를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좋은 서적이다"라는 게 저자의 평이다.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은 책 몇 권 정도는 직접 참고해볼 수 있겠다. <요한복음강해>를 읽기 위하여?..

P.S.2. 본문에서 빠뜨렸는데, 크로산의 <예수 -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한국기독교연구소, 2001)도 번역돼 있다. 한번쯤 일독해 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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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19 00:10   좋아요 0 | URL
로쟈님 때문에 자꾸 보고 싶잖아요 ㅋ 그래도 굳이 '영어로 배우는' 타이틀을 넣은 것은 유료강의라는 특성때문에 넣은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인문학적 교양만으로 절대 한국인의 지갑을 열 수는 없지요.(아무리 도올이라도) 어학관련은 출판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큰 손이니.ㅎㅎ

마늘빵 2007-02-19 00:09   좋아요 0 | URL
설까지 수고가 많으세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인 2007-02-19 10:58   좋아요 0 | URL
이런 책들은 아마존 드응이 -> 등의
오타 지적하고 갑니다. 오우~ 로쟈님의 폭이란 정말 대단하십니다. :)

로쟈 2007-02-19 11:00   좋아요 0 | URL
테츠님/ 요즘 나오는 책 치고 그다지 비싼 책도 아닙니다.^^
아프님/ 연휴가 좀 짧지요?^^
기인님/ 수정했습니다.^^ '폭'이 아니라 '제스처'입니다...

길손 2007-02-20 17:21   좋아요 0 | URL
저도 오타 지적합니다. <역사적 예술>은 <역사적 예수>, 한국기독교연구서->한국기독교연구소. 참고로 크로산의 <예수 -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도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


07. 02. 18.


로쟈 2007-02-20 18:26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막판에 오타들이 숨어(?) 있었네요.^^ 크로산의 책은 조만간 구해봐야겠습니다...

yoonta 2007-02-23 23:56   좋아요 0 | URL
오늘에서야 요한복음강해를 손에 쥐었는데..뒤에있는 참고문헌목록이 정말 볼만하더군요. 기독교관련책들은 거의 없는 편이어서 이 목록을 손에들고 이쪽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면 최소 몇백권은 돈만있으면 바로 지르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더군용..ㅋ

로쟈 2007-02-24 00:02   좋아요 0 | URL
저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 저는 고작 대여섯 권 정도 꼽아보았을 뿐인데...

yoonta 2007-02-24 00:09   좋아요 0 | URL
제가 좀 고대근동지역이나 초기기독교 역사랄지 영지주의등과 관련된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편이어서요. 특히 사전류에 소개된 < A Coptic Dictionary > H.G. Crum 요책 구해보고 싶어지네요. "경이로운 책이다...이집트의 곱틱어를 완벽하게 살려놓은 희대의 명저이다...이사전이 있었기에..나그함마디의 방대한 문헌이 해독될수있었고, 초기 기독교의 역사가 밝혀질수있었고" 라는 식이니..^^

canon 2008-07-03 11:09   좋아요 0 | URL
김용옥이 칭찬한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은 신학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학문적으로 가치 없는 책입니다(도올처럼 이 분야에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책으로 보이겠지만). 그 책은 사도적 기독교에 적대적인 비그리스도인이 쓴 안티 기독교 책에 불과합니다. 크로산이 속한 예수 세미나의 작업은 그들의 주장처럼 진리를 위한 고귀하고도 중립적인 추구가 전혀 아닙니다. 진리가 인도하는 대로 나아가는 중립적 학자들의 결과물이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예수 상을 미리 설정한 후 그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중립적이 아닙니다. 이미 '신학적 헌신'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루크 티모디 존슨(Luke Timothy Johnson)의 [누가 예수를 부인하는가? :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잘못된 탐구와 복음서 전승의 진리] (CLC, 2003)를 읽어보시길.

로쟈 2007-02-26 10:02   좋아요 0 | URL
어떤 책에 대한 입장이 동일할 수는 없겠죠. 한데, '학문적으로 가치 없는 책'들을 세 권이나 옮긴 '한국기독교연구소'는 어떤 곳인지 궁금하네요. CLC와는 종파가 다른 곳인가요?..

canon 2007-02-26 13:07   좋아요 0 | URL
"어떤 책에 대한 입장이 동일할 수는 없겠죠"라고 쓰셨는데, 제 말은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것은 이 분야에 무지하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 대한 입장은 오직 한가지만 옳은 것입니다. 이 책을 칭찬한다는 것은 크로산의 속임수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만 이 책이 뛰어나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 세미나는 '학자'라는 신뢰도 높은 브랜드를 달고, 학문적이지도 신앙적이지도 않은 주장을 펼치는 안티 기독교일 뿐입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연구소는 예수 세미나에 찬사를 바치는 비그리스도인들의 모임입니다. 그리고 제가 소개한 Luke Timothy Johnson의 책이 CLC에서 번역되어 나온 것 뿐이지,제가 CLC에서 발행한 모든 책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쟈 2007-02-26 15:50   좋아요 0 | URL
덕분에 '한국기독교연구소'나 '예수 세미나'에 대해서도 알게 됐네요('예수 세미나'가 고유명사라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개인적으론 이 분야에 관심이 없었던지라(기독교/안티 기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요) '역사적 예수론'이 신학계나 교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신'학'을 표방한 주장이라면 논리적인 근거의 제시와 그에 대한 논박 등을 통해서 해결/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적어도 그것이 '신앙의 충돌'이 아니라면). 말씀대로라면 '황우석 사기극'에 버금가는 '크로산 사기극'이란 것인데 그런 경우에도 제 관심은 어느 것이 '지금으로서 알 수 있는 최선의 것'인가에 놓여 있습니다. '오직 한가지만 옳은 것'은 '신학'을 넘어서는 것이겠지요...

canon 2007-02-27 09:07   좋아요 0 | URL
"논리적인 근거의 제시와 그에 대한 논박 등을 통해서 해결/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라고 쓰셨는데, 제가 소개한 Luke Timothy Johnson의 책이 예수세미나의 주장을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반박한 책입니다(제가 4월 초에 이 주제로 강의를 합니다).

로쟈 2007-02-27 09:54   좋아요 0 | URL
강의의 요지를 나중에 정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반조 2007-03-18 00:57   좋아요 0 | URL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역사적 예수론은 다비트 슈트라우스David Strauss의 "예수의 생애"가 출발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 1권이 그와 연관되어 있지요. 물론 니체의 논쟁은 역사적 예수론과는 무관한 것도 아실테고요.) 쉽게 말해서, 역사적 예수론은 성서에서 신화적 요소를 벗겨내고 또 제자들(특히 바울)이 덧칠한 가르침을 벗겨내는 작업을 통해서 실제의 예수상, 소위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니체의 "안티크리스트"가 이 역사적 예수론과 어느 정도 맥락이 닿아 있다고 봅니다.

예수교장로회(예장측)와 기독교장로회(기장측)의 대립을 이해하면 한국개신교 종파간 견해차가 쉽게 이해됩니다. 그들은 원래 하나였는데(장로교!) 김재준박사의 "성서에도 오류가 있다"는 주장과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죠. 성서오류설은 기장측의 입장으로 한신대로 이어졌고요, 성서무오류설은 예장측의 입장으로 장신대, 총신대로 이어졌습니다. 이제 짐작하시겠지만, '한국기독교연구소'는 기장측 연구소이고 CLC는 예장측 논지의 출판사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 예장측의 학문적 수준은 거론하기 창피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한기총을 보시면 됩니다.) 이들은 성서의 축자적 영감설을 신봉하는 이들인만큼 "역사적 예수론"을 절대 받아들일 수도 없고 하등의 고민거리도 아니지요. 그래서 도올의 "우리나라 신학계는 불트만을 이해하지도 않았고 수용하지도 않았고 토론하지도 않았다"는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기장측에서는 한동안 좌파적 신학이론에만 매몰되었고 예장측에서는 학문적 논의가 불가능한 수준이니 불트만은 수용이 될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론을 거친 이후의 성과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역사적 예수론 이후 타격 받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을 내면화시켜준 공로가 있으니까요.

canon 2007-03-18 09:53   좋아요 0 | URL
한국기독교연구소가 "기장측 연구소"라구요? 설립자인 홍정수와 현 소장인 김준우 모두 감신 소속입니다. 홍정수는 감신대 교수였지요. 김준우도 감신대 겸임교수였고. 뭘 근거로 기장측 연구소라고 한 건가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님과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군요. 역사적 예수 연구와 관련해 님의 학문적 수준이 어느 정도이기에 예장측의 학문적 수준 전부를 깔보는지 말입니다(그리고 한기총은 예장의 학문적 신학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오버하지 마시길).

로쟈 2007-03-18 23:52   좋아요 0 | URL
返照님/ 예장/기장 얘기는 오래전 연대 신학과에 다니던 선배가 좀 해주더군요(그 선배는 지금 한의사를 하고 있지만.^^) 지적하신 대로, 국내 신'학' 연구가 불비하다면 이 참에 자극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anathema님/ 저에게 다신 댓글은 아니지만 '내부'의 다른 목소리인지라 흥미롭네요. '예장의 학문적 신학'을 대표할 만한 업적들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널리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반조 2007-03-18 13:01   좋아요 0 | URL
anathema 님, 제가 잠시 착각했군요. 한국신학연구소하고 헷갈렸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님의 학문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의견을 철회할 생각은 없고요. 그저 제 의견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로쟈 님께 가볍게 한 이야기로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저같은 천학비재하고 논쟁하는 것은 저에게나 님에게가 도움이 될 게 없을 듯합니다.
 

이번주 경향신문의 북리뷰를 읽다가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그린비, 2007)에 눈길이 머물렀다. 출판관계자를 통해서 이 책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는 진작부터 듣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동아시아 사상'은커녕 일본 근대사상에도 눈이 밝지 못하다. 마루야마 등의 이름을 일본의 근대사상가로 주워섬기는 것이니 아직 초급의 초식밖에는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해야겠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과문한 것도 아니어서 국내 출간된 다케우치의 책은 <일본과 아시아>(소명출판, 2004), 그리고 <루쉰>(문학과지성사, 2003)이 전부인 듯싶다(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다케우치는 루쉰 연구자 다케우치였다). 전자는 '당신이 없는 사이에' 나온 책이어서 출간 사실도 이번에 알았고 <루쉰>은 내가 산 책인 듯도 싶지만 기억의 공백 때문인지 감이 없다. 여하튼 '다케우치 유시미라는 물음' 자체가 어떤 내용을 갖는 것인지는 리뷰나 읽으면서 알게 됐다. 한데, 경향신문의 리뷰는 기본사항들을 전제하고 있으면서도 '연이은 의문부호'들을 나열하고 있기에 좀 불친절하다. 지난주 서울시문의 리뷰를 먼저 읽어봐야 문맥이 잡힌다. '동아시아 저항사상의 계보'라는 문맥. 

 

서울신문(07. 02. 10)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지난해 국내에서 ‘근대 논쟁’ ‘해방전후사 논쟁’이 뜨겁게 불어닥치는 등 요즘 동아시아에서는 ‘탈근대’가 화두이다. 침략, 이식의 형태로 유입된 근대는 아시아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사상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진보주의와 동양의 민족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근대’를 사유한 일본의 비평가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1910∼1977)의 사상은 우리에게도 유의미하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유럽모델’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한 일본의 근대를 강력히 비판한 사상가로 유명하다.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근대화를 이루고, 자신을 유럽과 동일시하면서 근대화의 과정을 겪은 일본의 근대는 기본적으로 ‘저항’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일본은 어떤 저항이나 반성도 없는 패전을 경험했다는 게 다케우치의 생각이다. 일본의 패전 당시 중국에 있었던 다케우치는 일본군의 무저항 상태를 이렇게 묘사했다.“일제히 통곡했다. 그리곤 잠들어 버렸다. 다음날 눈을 뜨고 나서 그들은 일제히 귀국준비를 위해 몸단장을 했다.”



도쿄제국대학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다케우치는 루신(魯迅·1881∼1936) 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루쉰 전문가이다. 최초의 저작이 1943년 발간한 ‘루쉰’이었고,65년 평론가 폐업을 선언한 이후 죽을 때까지 루쉰의 글을 번역하는 일에 전념했다. 평생 루쉰을 사상의 ‘참조점’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는 당대 일본내의 중국 및 중국문학 연구가 한학 중심이었던 것에 비춰볼 때 엄청난 차이점이었다.

이런 그가 루쉰을 통해 길어낸 사상은 ‘쩡자’ 다.‘쩡자’는 ‘저항’이라는 말로 옮길 수 있지만 ‘자기임과 자기이외임을 모두 거부하는’ 이중의 거부로 보인다.“아시아의 사상 자원은 겉으로 보기에 유럽에 대항하는 모습을 취하겠지만 반드시 ‘반유럽적’이지도 않다.”라는 다케우치의 말은 바로 이 ‘쩡자’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쑨거(孫歌·52)는 10년 이상 이런 다케우치의 사상에 매달렸다.‘루쉰-다케우치 요시미-쑨거’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저항’사상의 계보가 엮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재작년 일본어와 중국어로 펴낸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쑨거 지음, 윤여일 옮김, 그린비 펴냄)은 다케우치 사상, 루쉰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듯하다.(박홍환 기자)

경향신문(07. 02. 17) ‘타자’로 자기해체, ‘주체’로 자기재건

다케우치 요시미를 대면한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다케우치는 끊임없이 신원 증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소속 기관이 발부한 증명서를 가지고 가도, 관공서가 인증한 등본 서류를 제출해도, 다케우치의 반응은 싸늘하다. 쓰라린 비웃음만이 되돌아올 뿐이다. 무언의 눈빛으로 다케우치는 계속 추궁한다. 바깥에서 ‘주어진 것’이 어찌 너의 주체성을 보증할 수 있느냐. 어떤 외적 근거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네 자신만으로 너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가. 여기서 실질적인 증명 가능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물음을 자신의 물음으로 끌어안을 때 당면하게 되는 일련의 또다른 질문들. 지금껏 자명성과 안정성을 자신에게 부여해 준 근거들을 향하는 연이은 의문 부호.

다케우치가 평생 씨름하며 고투한 ‘주체’의 문제는 ‘주체와 세계’ 혹은 ‘주체와 타자’의 문제이기도 하였다. 객관성-관찰 가능성 등의 이름으로 주체와 대상 혹은 타자 사이에 거리를 확보하면, 주체에게는 안정적 근거가 마련된다. 이 안정성이 주체의 주체성과 활동성을 보장해 주지만, 그 대가로 주체는 세계-대상에서 이탈하고 분리된다. 세계-속에 존재하는 주체가 세계의 전체상을 가질 수는 없다. 지구를 보려면 지구 바깥에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은 이미 세계의 전체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주체가 인지 가능한 방식으로 추상화하고 조작한 결과일 터이다. 통계 수치나 계량적 측정이 대표적인 수단이겠다. 주가 지수가 경제 상황의 전체상을 대신하고, 통계 수치가 현실의 움직임에 대한 지식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주체의 자리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단적으로 이른바 국가의 정책이 시행되는 자리는 늘 여기이다. 국민의 대상화가 불가피하므로, 어떤 국가-정부도 국민의 의지와 수렴될 수는 없다.

다케우치 식으로 추궁하자면, 국민을 대표할 수 없다는 뼈아픈 자각을 전제로 할 때, 국가의 정책은 어떤 의의가 있고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다케우치는 말한다. “지식은 그것을 부정하는 계기 없이는 지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 인문학이 정말 위기라면, 정말 근본적인 이유는 인문학에 자기 부정의 계기가 없기 때문이다.

주체가 세계를 관찰하지 않고 대상-타자와 더불어 세계 속에 내재해 있다면, 세계가 움직이는 한 주체는 늘 유동상태에 놓인다. 여기서 안정적인 실체성은 존립하기 어렵다. 제도화된 개념이나 객관적인 지식도 분명 존재하고 또 필요하다. 그렇지만 주체-세계의 유동 속에서 이러한 실체성은 늘 부정될 운명을 자각해야만 한다. 그래야 배반당하지 않는다.

주체의 부단한 자기 갱신은 타자와의 관계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타자라는 매개를 통해 자기 해체를 진행하면서도 타자를 따르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를 재건하는 길. 이 길은 바로 “타자를 타자로서의 자족성에서 해방하는 동시에, 자기를 자족적 배타성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부단한 과정이다.” 다케우치를 대면하는 일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잠 들지 않고 깨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달콤한 유혹과 자기 변명은 이미 수없이 유포되어 있지 않은가.

지난 20년 간 개혁 개방 시기 중국의 내적 혼란과 지식계의 변동을 몸으로 겪으면서, 바로 이 문제를 자신의 신체감각으로 예민하게 파악한 지식인이 이 책의 저자이다. 저자에 따르면 다케우치는 평가를 기다리는 역사상의 인물이라기보다는 당대 중국 및 아시아 지식인으로서 저자가 직면한 문제들을 대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질문법’에 가깝다.

다케우치의 명성은 무척 오래지만, 아무도 그 일을 선뜻 맡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당연히 다케우치 자신이 아무에게나 말을 걸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장 중문학자인 서광덕, 백지운 두 분에 이어, 젊은 패기의 윤여일씨가 고된 일을 자임하고 나섰다. 다케우치 요시미가 기억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제목처럼, “다케우치 요시미” 자체를 “물음”으로 전환하는 능력은 너무도 절실하다. 다케우치 요시미에게 루쉰이 그러했고, 저자 쑨거에게 다케우치 요시미가 그러했듯이.(류준필|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07. 02. 18.

P.S. 국역본에는 중국어판과 일본어판, 그리고 한국어판 저자 서문이 모두 붙어 있다. 그건 한국어판이 맨마지막에 나왔다는 뜻도 된다. 이미지는 일본어판(2005)의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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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2007-02-18 15:26   좋아요 0 | URL
좋은 글 퍼갑니다. 늘 신세를 지고 있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로쟈 2007-02-18 17:31   좋아요 0 | URL
제 편의를 위해서 정리해놓는 것인데 도움이 되신다면 다행입니다. 앨런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베토벤 2007-02-19 12:04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로쟈님이 '편의'를 계속 추구하셨으면 합니다. 저도 맘속으로 신세를 지고 있는 듯 하여서요. ^^;

로쟈 2007-02-19 18:58   좋아요 0 | URL
그러다가 '편의주의자'가 되겠는데요.^^
 

귀가길에 전철에서 문화일보의 북리뷰를 읽었는데 가장 크게 다루어진 책은 의외로 로빈 베이커의 <정자전쟁>(이학사, 2007)이다. 예전에 <정자전쟁>(까치글방, 1997)으로 처음 소개된 바 있고(이전에 한번 페이퍼로 다룬 바 있다), 이 책의 재판이 나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리뷰를 읽어보니 이번에 나온 건 개정판 원저의 번역이다. 국역본 분량으론 398쪽에서 405쪽으로 거의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아 크게 보태진 내용은 없어 보이지만(신간은 2006년 증보판의 번역임에도 알라딘에는 1996년판이 원저로 기재돼 있다. 설마 출판사의 실수일까?). 어쨌든 같은 역자가 수고했고, 대신 출판사는 바뀌었다. 기억엔 재미에 비해서 그다지 팔리는 책이 아니었는데, 증보판 번역은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표지 이미지만을 놓고 보자면 이제나그제나 유치하긴 마찬가지지만. 제목도 '스펌워즈'가 낫지 않았을까? <정자전쟁>을 전철에서 읽을 수 있나?)...

문화일보(07. 02. 16) 불륜·자위 행위도 ‘정자 전쟁’의 전술

“여자와 그 애인이 바닥에 쓰러져서 삽입을 시작하기 직전이다. 여자의 몸은 이미 정자를 보유하고 있다. 여자의 남편이 앞선 주말에 둘의 주기적 성교 동안 통틀어 6억 마리의 정자를 주입했다. 대부분은 다양한 분출물을 통해 방출됐지만, 그렇다고 해도 얼마간은 아직 그녀의 몸 속에 남아 있다.(중략) 여자의 애인은 삽입 행위를 몇 번 하지도 않고 여자의 질 안에 자신의 정액고를 비축했다. 여자의 자궁경부는 정액고에 잠겨서 그대로 머물러 있고 남자의 전위부대는 자궁경부 점액 경로로 물결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군대는 약 5억 마리의 정자잡이(killer sperm)와 약 100만 마리의 난자잡이(egg getter), 약 1억 마리의 방패막이(blocker)로 이뤄져 있다. (중략) 누구 편이 먼저든, 어느 한쪽의 정자잡이가 상대의 정자와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바로 전쟁 경보가 내려진다. 한 시간 가량은 적진의 정자를 가급적 많이 찾아내기 위해 쌍방의 정자 모두가 평상시보다 빠른 속도로 헤엄친다. 목표는 머리에 쓴 모자 속의 치명적인 혼합물질로 상대방의 난자잡이와 정자잡이한테 독을 놓는 것이다.… 정자잡이가 적군의 정자를 발견하면 자신의 치명적인 머리 끝으로 상대의 허약한 옆구리를 찔러서 부식성 독을 바른다. 몇 차례 찌르고 난 뒤에는 상대 정자가 죽도록 내버려두고 계속 전진한다….”

다소 긴 인용문이지만, 책의 핵심을 담고 있는 대목이다. 정자가 난자와 결합하기 위한 과정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특히 경쟁자(다른 남자의 정자)와 싸워야 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부대와 무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전략과 전술을 적절히 운용해야만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정자잡이와 난자잡이, 방패막이로 이뤄진 부대는 각각의 사명을 띠고 여자의 몸 속에서 대오를 지어 전투를 벌인다. 이 전투를 촉발시킨 이는 여자 자신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 본능적으로 경쟁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책은 남자와 여자의 섹스에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들을 철저하게 진화생물학적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남녀의 불륜과 자위 행위, 오르가슴과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온갖 성적 행동과 심리상태를 생물학적 동기로 분석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최상의 조건을 지닌 유전자와 결합시켜 되도록 많은 후손에게 이어지게 하려는 종족보존의 본능에 따라 인간의 모든 성적 행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녀의 부정 행위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이득을 안겨줄 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남자의 경우, 배우자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유전자를 더욱 많이 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다. 여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에게 맞는 최상의 유전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배우자가 알아차릴 경우 외도로 인한 손실이 치명적일 수도 있다. 요는, 외도를 행하는 것이 이득이 될 것인지 아닐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한 자들이 종족보존에 보다 높은 성공률을 보인다.
 


저자의 이 같은 견해는 결코 불륜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 차원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오로지 종족보존의 차원에서 인간의 ‘몸’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 본능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를 진화생물학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저자는 심지어 “상황을 오판해서 정숙해야 할 때 부정을 저지르고 부정을 행하는 것이 나을 때 정절을 지키는 것 역시 실수”라며 “대 잇기 게임에서 최선은 정확하게 판단하고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사회에서 수치스러운 짓으로 비난받는 자위 행위는 왜 은밀하게 이뤄지는 것일까. 어떻게 자위 행위가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남자의 자위 행위는 정액을 그냥 방출해버리는 무용한 짓에 불과한 게 아닐까. 저자는 “남자의 몸은 자위 행위와 성교를 구별할 줄 안다. 각각의 사정 물질은 동일하지 않다”며 “남자가 자위 행위를 할 때에는 지난번 사정을 한 이래로 (생산된) 시간당 약 500만 마리의 정자를 내보낸다. 이는 방패막이, 정자잡이, 난자잡이로서의 유효기간을 초과한 정자의 수치로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즉, 남자가 성교를 갖는 사이사이에 자위 행위를 한다는 것은 보다 젊고, 역동적이며, 전투력 넘치는 정자를 여자의 몸 안에 주입하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남자에게 최상의 정책은 일정 시점을 넘어선 늙은 정자를 자가 사정으로 스스로 내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것이 자위 행위의 기능 중 한 가지다.

책은, 일반적인 과학 저술과는 다르게, 생동감 넘치는 사례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남녀의 섹스에 얽힌 37개의 장면들은 마치 소설의 한 대목처럼 구체적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 상태까지 치밀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제시하고, 그 같은 사례에 내포돼 있는 정자(유전자) 전쟁의 이면을 들춰낸다. 부부간 주기적인 성생활뿐만 아니라 자위행위하는 여자의 모습, 외도의 현장, 집단 성교,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성과 관련된 대부분의 양상들이 그려진다(*책의 부제가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외설적이지 않다.
 


한 사람의 생명이 탄생하는 최초의 순간을 철두철미하게 파고들고 있는 책은 과학 저술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심리적으로도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참고로, 한국에선 1997년 처음 번역·소개됐으나 원서 개정판이 나온 이후 새로운 내용들을 추가해 이번에 새롭게 선보였다.(김영번 기자) 
 
07.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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