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프랑스의 영화배우 필립 느와레(1930-2006)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에겐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로 너무도 잘 알려져 있고 친숙한 배우. <일 포스티노>에서의 파블로 네루다 역도 그만의 배역이었다. 부고를 전하는 기사들중에 '알프레도 아저씨께 부치는 편지' 형식의 기사가 눈에 띄어 옮겨놓고 추모의 마음을 대신한다. 나이 들수록 장례식에 갈일이 많아진다더니 요즘은 부쩍 부고기사들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뉴스엔(06. 11. 24) '시네마천국’ 알프레도 아저씨께 부치는 편지

영화 '시네마천국'의 영사기사 알프레도 역의 명배우 필립 느와레가 24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세상과 이별했다. 외신들은 그의 타계를 추모 속에 타전했다(*위키피디아에는 23일이라고 나온다).



1930년 프랑스 노드빌레에서 태어나 1955년 영화와 첫 인연을 맺은 그는 그로부터 정확히 33년 뒤 세계 영화사에 명작으로 남은 영화 '시네마 천국'을 탄생시켰다. 영화 속에서 소년 토토와 세대를 초월하는 우정을 나눈 그의 연기는 전 세계인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겨줬다. 이제 천국에서 잠들 '영원한 알프레도'에게 '영원한 소년 토토'가 가상의 추모 편지를 보냈다.

알프레도 아저씨!

벌써 30년이 지났어요.

아저씨가 영사기에 걸던 필름의 한 자락을 만지작러리던 시절, 잘려나간 필름을 보고 싶어 그렇게도 아저씨를 귀찮게 했던 시절.

제게 '고향에 절대 돌아와서는 안된다'고 하며 등을 떠밀어내시던 아저씨의 따스한 손길이 아직도 가슴 한 구석에 온전히 남아 있는데, 결국 아저씨는 떠나셨습니다.

매일 같이 편집된 장면을 보여 달라고 졸랐던 제가 어느새 영화를 밥벌이로 삼은 영화감독이 됐다는 걸 믿으시겠어요?

아저씨!

30년 만에 찾은 고향인데 우리의 추억이 담긴 시네마천국은 그 흔적 조차 남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라진 극장의 추억은 아저씨와 제 가슴 속 저 밑바닥에 따스한 우정이 되어 지금, 제 눈 앞에 서 있어요.

영화가 추억의 자락을 그토록 길게 남길 수 있다는 걸 아저씨는 제게 가르쳐 주셨지요.

한 편의 영화에 인생사가 모두 담겨졌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영화보다 빠르네요.

아저씨가 저를 떠나보내실 때 해주신 말씀이 아직까지 생생한 거 아세요?

'사랑이 별거냐'고. '작은 땅 안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멀리 떠나 좋은 영화감독이 되라'던 그 말씀. 솔직히 그 때는 조금 아니, 많이 섭섭했어요.

아저씨로 인해 저는 추억을 알고 사랑을 배웠습니다.

아저씨가 제게 우정이 뭔지, 영화가 뭔지 또 인생이 뭔지 알게 해주셨듯 저도 영화를 통해 관객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려고요.

제게 가장 처음으로 영화라는 근사한 놀이감을 던져주신 아저씨를 기리며….

아저씨의 영원한 친구 토토 실바토레가. (고홍주 기자)

06. 11. 26.

 

 

 

 

P.S. 필립 느와레가 영화에 데뷔한 건 1955/1956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26살의 청년 느와레도 물론 있었던 것이다. 1976년과 1990년, 두 차례 세자르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까 프랑스에서도 배우로서 입지를 굳힌 건 중년에 와서이다. 물론 그가 전세계적 명성을 얻은 건 <시네마천국>(1988/1989)과 <일포스티노>(1994) 덕분이었다. 이 두 영화를 빼고 내가 기억하는 느와레의 모습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파트리스 르콩트의 코미디 영화 <탱고>(1993). "바람기 심한 폴은 자신의 바람기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있다는 상상으로 미칠 지경이 된다. 결국 판사인 삼촌 렐레강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렐레강은 몇 년 전 아내와 정부를 살해하고도 교묘하게 풀려난 뱅상을 협박, 폴의 아내 마리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함께 마리를 찾아 떠난다. 하지만 아내를 죽이러가는 와중에도 폴은 자신의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를 기웃거린다."란 줄거리에서 렐레강 역할이 느와레의 몫이었다.

그리고 내가 극장에서 제일 처음 본 느와레의 영화 <마이 뉴 파트너>(1984). 프랑스판 <투캅스>인데, 안성기 역을 느와레가 맡았다고 보면 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파리의 으슥한 밤거리. 귀가길에서 시민 주머니를 털어 도망가던 두 명의 도둑이 있다. 경찰의 추적에 몰린 이들은 순간적으로 꾀를 내어 한 명만 잡히기로 한다. 그러자 두 명 중 한 명이 자기 동료를 붙잡는다. 알고 보니 이들은 모두 경찰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찰인 르네는 천연덕스럽게 같이 강도를 하던 동료를 체포한다." 여기서 르네 역을 맡은 이가 느와레이다(영상기사 알프레도의 전직이 경찰이었던 것). 



"만년 말단 형사인 르네는 자신의 구역에 있는 상인들에게 비리를 미끼로 돈을 뜯어내는 '타락한' 경찰이다. 르네는 한마디로 직권 남용죄에 걸려도 여러번 걸린 형사. 지저분한 파리 교외에서 몸부딪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교묘하게 용돈을 울궈낸다. 노름꾼에게 돈을 걸면 억지로라도 따게 되어 있고 안경 노점상에서 안경을 사면 오히려 더 얹어서 거슬러 준다. 레스토랑은 물론 꽁자. 그러던 어느날 경마에 단단히 미친 그는 현행범이 눈앞에 있는데도 잡기는 커녕 경찰 사이렌을 올리며 마감 직전에 경마장에 가서 마권을 사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이 감방에 보낸 동료 대신 경찰학교를 졸업한 젊은 형사 프랑소와가 파트너로 배치된다." 대략 <투캅스>의 '원조'가 되는 영화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공통점은 두 영화 모두에서 티에리 레르미트(1952- )가 느와레의 단짝으로 나오는 것. 레르미트는 프랑스 영화에 등장하는 빈도수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인데, 아마도 프랑스의 현역 남자배우 베스트5에 들어갈 만한 배우이다. 그의 영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로맨틱 커플>(1992). 원제는 '엉뚱한 사람'을 가리키는 <얼룩말>인데, 알렉상드르 자르댕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소설은 <아내처럼 멋진 드라마는 없다>(까치글방, 1994)로 번역돼 있다. 자르댕의 소설들은 역시나 소피 마르소 주연으로 영화화된 <팡팡>(문학사상사, 1990) 외에 몇 권 더 소개돼 있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소설들과 함께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 둘을 같은 카테고리의 작가로 분류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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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E 2006-11-2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네마 천국의 OST 저는 요즘 매일 틀어놓고 있습니다. 질리지 않아요.

비연 2006-11-26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슬프네요....

nada 2006-11-26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의 캐릭터로만 바이오그래피를 써 보는 것도 재밌겠는데요. 영상 기사의 전직이 경찰.^^

stella.K 2006-11-2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시네마 천국>은 참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가 있어서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로쟈 2006-11-2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라기보다는 아예 영화속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던 양반인데요 어느덧 나이들이 그리 되었네요...
 

오랜만에 언론사이트에서 '진중권'이란 이름이 눈에 띄었다.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교양미학자'인 그는 알다시피 '진중권'이란 이름의 다른 한축인 '논객 진중권'에서 '논객'자를 떼기 위해 현재 칩거(?)중이다. 근황을 들여다보니 '디지털 시대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그런 근황과 맞물려서 최근에 그가 민주노동당의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은 흥미롭다. 레디앙에 게재된 정리기사를 자료삼아 옮겨온다. (90%가 부정적인) 댓글들을 읽어보니 그가 이미 이전부터 해온 이야기이지만 나 같은 '일반독자'에게는 진중권과 그의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자료가 아닌가 싶다.

레디앙(06. 11. 25) “낡은 진보, 변하지 않으면 멸종할 것”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사회가 변하고 있는데 진보운동은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있다”며 “낙후된 패러다임으로는 멸종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객’ 생활을 접고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진씨는 지난 24일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와 성소수자위원회가 주최한 ‘소수자 정치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해 진보운동과 진보정당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양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을 고집할 경우 몰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씨는 “근 10년 동안 논객으로 살다보니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해야 하는 생활이 지겨웠다”며 “지금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짚어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일체의 집필, 방송활동을 중단한 채 디지털 시대의 사회와 문화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진씨가 발제 내내 강조한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 그는 “지금은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고 있다. 진보운동의 위기라고들 하는데 위기는 뭔가. 사회 자체가 변하고 있는데 진보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정보사회에 진입했다. NL은 농경사회의 패러다임이고 PD는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이다. 사회는 이미 정보사회로 진입했는데 농경사회,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으니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진씨는 “진보는 ‘텍스트’를 중시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블로그, 미니홈피를 꾸미는 것을 보라. 문자 대신에 소리와 그림, 동영상으로 꾸미고 있지 않은가”라며 텍스트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중권씨는 ‘시간’에 대한 기존의 관념도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진보는, ‘과거’는 피억압자의 기억을 조직해야 하는 것으로, ‘현재’는 미래를 위해 희생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보고 미래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현재의 즐거운 시간들이 모여서 미래가 된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비가역적, 즉 되돌이킬 수 없다는 관념도 사라졌다. 영화, 드라마 못 본 것이 있어도 클릭 몇 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는 정보화 사회의 계급구조의 변화에 대해 색다른 주장을 했다. 진씨는 “죄송한 말이지만 노동운동은 끝났다고 본다”며 “프로게이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미래 사회 블루칼라의 모습이고 화이트칼라는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농민 없는 진보운동, 노동자 없는 진보운동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자발적으로 게임을 하는 정보프롤레타리아트가 새로운 계급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씨는 진보정당의 활동에 대해 “‘저개발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의 양상에는 과개발의 정치와 저개발의 정치가 있다. 저개발의 정치는 목숨 걸고 하는 정치다. 서유럽 등의 과개발의 정치는 사회적 소통이 일정하게 해결된 상태에서 정치운동 자체가 유희가 되는 것으로 시위가 유희이고 퍼포먼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양자가 다 있다. 한쪽에서는 쇠파이프, 화염병, 최루탄이 있지만 다른쪽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촛불집회가 있다. 시민들은 과개발의 정치를 선호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어필하는 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그는 따라서 진보가 비판을 제시하는 방식 자체가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이미지를 복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 시대다. 진위라는 인식론적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새로운가, 색다르고 발랄한가라는 미학적 기준이 중시된다. 요즘 하는 역사드라마를 보라. 고증 자체가 필요 없어지지 않았나.”

진씨는 “지금은 비판만 갖고는 안된다. 제시하는 방향이 색다른 미학성, 예술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얼마 전에 ‘논쟁이 돌아온다’라는 행사가 있어서 갔는데 30분도 못 앉아있겠더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며 “그래서 내가 ‘좌파 리사이클링’(재활용)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진중권씨는 “디지털 시대 패러다임이 변했다. 새로운 방식, 창의성을 갖고 돌파해야지 이 상태로는 멸종한다. 우리 패러다임이 산업사회, 농경사회에 머물고 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하겠나. 위기의식을 갖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윤재설 기자)

06. 11. 26.

 

 

 

 

P.S. 해서, 앞으로 '진중권의 디지로그'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중권 패러다임'은 이어령 패러다임의 운동권 버전이 아닐까, 라는 게 기사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편으론 민주노총의 운동방식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의 인터뷰 기사도 읽어봄 직하다. 오마이뉴스의 기사이다(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5852&ar_seq=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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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1-26 09:26   좋아요 0 | URL
이 내용만 보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변화의 필요성만은 누구라도 절감하고 있는 듯 합니다. 퍼갑니다. :)

로쟈 2006-11-26 09:28   좋아요 0 | URL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까지입니다. 발제문이니까요...

마법천자문 2006-11-26 10:48   좋아요 0 | URL
전형적인 기회주의, 개량주의적 사고방식이군요. 진씨는 정치얘기 하지 말고 본업에나 전념했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6-11-26 11:49   좋아요 0 | URL
"진중권은 조선의 김대중 주필이라는 놈과 별반 다를바 없는 기회주의자 중의 하나이다. 그런놈이 지금 마치 진보세력의 대변인양 호도하며 수구대변인, 김대중을 욕하고 지랄하지만 이놈한테 느껴지는 것은 참으로 출세욕이 유시민보다 강한 놈이구나하는 것이다.(...) 꼴갑지 않게 노는 저런 자식이나 좀 안나왔으면 싶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진중권의 한 칼럼기사에 대한 댓글인데 드루이드님도 같은 생각이신지요?

마법천자문 2006-11-26 12:20   좋아요 0 | URL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에 비교하는 건 물론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이겠지만... 자칫 유시민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본업인 미학쪽에서는 상당히 인정받는 학자로 알고 있는데, 부디 그쪽으로만 전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yoonta 2006-11-26 13:07   좋아요 0 | URL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맞는 말이긴한데..그게 정보 뭐시기여야만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 우리의 정치환경이 과개발의 정치환경인지도 잘모르겠공..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에는 공감하는데 어떻게 변화하자는 건지는 불분명한 글이네요.

로쟈 2006-11-26 14:29   좋아요 0 | URL
드루이드님/ '상당히 인정받는 학자'라기보다는 '교양미학'의 개척자이죠. 미학을 대중화한 공로가 있습니다.
yoonta님/ 오랜만에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어떻게'란 각론은 따로 나올는지 모르겠지만, 디지털 시대 패러다임이란 게 '프로그램'대로 움직여지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어부 2006-11-26 15:41   좋아요 0 | URL
개량주의라고 비난하는 그들을 저쪽에선 교조주의라고 하더만요..-_-
'본업에만 충실..' 이란 말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쓰여 온지도 많이 봐 온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6-11-26 16:24   좋아요 0 | URL
민주노동당이 진정 '진보'정당인지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받은 느낌은 변형된 '내셔널리스트' 정도라고 할까요? 뭐 어떤나라당은 내셔널리스트 축에도 못 든다는 점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위로라면 위로가 될 수 있겠군요^^

끼사스 2006-11-26 21:51   좋아요 0 | URL
진씨가 말하는 '저개발의 진보정치' 방식도 진득하게 하다보면 홍콩 느와르 식의 '복고적 미학성'을 획득해서 '정보사회 블루칼라'들에게 어필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ㅎㅎ

마법천자문 2006-11-27 00:49   좋아요 0 | URL
진씨가 노동자의 파업권을 옹호하는 칼럼을 쓰고,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 나와 시위에 동참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면 '본업에만 충실하라' 는 말을 할 이유가 없겠지요. 무슨 패러다임의 변화가 어쩌구 이미지 시대가 저쩌구 저개발의 진보정치 어쩌구 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나 늘어놓을 바에야 본업에나 충실하라는 말입니다. 무슨 패러다임, 이미지 시대 운운하는 게 이진경이가 '탈주, 유목' 같은 소리 늘어놓으면서 현실도피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지거든요. 제가 무식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천자문 2006-11-27 00:53   좋아요 0 | URL
그리고 서유럽에서는 시위가 유희이고 퍼포먼스라서 프랑스에서는 소방관들이 월급 올려달라고 불지르면서 데모하는 모양이죠?
 

밀린 일들 때문에 학교에 나오는 길에 이번주 '필름2.0'을 읽었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부음에 부쳐진('로버트 알트먼의 부음에 붙여'가 제목이다. '붙여'가 맞나?) 김영진 편집위원의 칼럼과 "브라운관에서보다 스크린에서 훨씬 매력적인" 배우 김지수씨의 인터뷰 등이 흥미로웠다(김위원의 칼럼은 내친 김에 옮겨놓으려고 했지만 온라인에는 아직 떠 있지 않다. 덧붙여, 김지수씨는 뒤늦게 데뷔한 스크린에서 경이로운 눈망울을 보여준다). 

개봉영화 리스트 가운데 특별히 눈길은 끈 영화는 로베르토 안도 감독의 <세르쥬 노박의 겨울여행>. 배우 다니엘 오테이유와 그레타 스카키(스카치?)의 이름이 일단은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데, '안나 무글라리스'라는 새로운 이름이 보태진다.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데미지>와 <비터문>을 뒤섞어놓은 거 같다. 좀 색다른 겨울의 시작을 이 영화와 함께할 수도 있을 듯하다. 흥미가 생긴 김에 관련기사와 이미지들을 찾아놓는다.  

세계일보(06. 11. 24) '세르쥬 노박의 겨울여행’, 유혹과 반전의 하모니

30일 개봉을 앞둔 ‘세르쥬 노박의 겨울여행’(2004)은 오랜만에 만나는 프랑스의 서스펜스 영화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부적절한 관계. 소재는 마치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와 비슷하지만 영화 ‘세르쥬 노박의 겨울여행’은 자극적인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영화의 특징.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다니엘(다니엘 오떼이유)은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탈리아 카프리섬으로 가던 중 배 안에서 금발 미녀 밀라(안나 무글라리스)를 만난다. 다니엘은 그녀의 유혹에 이끌려 뜨거운 밤을 보낸 뒤 다음날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그런데 아들과 혼인서약을 하고 돌아서는 신부는 다름 아닌 밀라. 밀라는 이후 당혹스러워하는 다니엘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연극연출가 출신 로베르토 안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세르쥬 노박의 겨울여행’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배우 다니엘 오떼이유와 샤넬 향수 모델로 유명한 안나 무글라리스가 시아버지와 며느리로 출연, 위험한 사랑을 그려냈다. 딜레마에 빠진 다니엘 오떼이유의 깊은 내면 연기와 치명적인 팜므파탈로 변신한 안나 무글라리스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 할리우드에서 주로 활동하며 ‘대통령의 연인들’ ‘레드 바이올린’ 등에서 열연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여배우 그레타 스카키의 출연도 반갑다. 그녀는 며느리와 남편과의 부적절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절망하는 다니엘의 부인 역을 맡았다.(홍동희 기자)

06. 11. 25.

 

 

 

 

P.S. 원제는 '욕망의 대가(代價)'쯤 될 거 같고, 일단은 세 배우의 연기 앙상불이 감상의 포인트이겠다. 다니엘 오테이유(1950- )는 물론 <마농의 샘>(1987)으로 국내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배우인데(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구애했던 여배우 엠마누엘 베아르와 동거하게 되며 둘 사이엔 딸이 하나 있다) , 이후에 여러 편 소개된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인상깊은 영화는 역시 엠마누엘 베아르와 같이 공연한 <겨울의 심장>(1993)이다. '겨울 이미지'가 가장 어울리는 배우인가?  

그리고 이 영화에서 '팜므 파탈' 역을 맡은 안나 무글라리스(1978- )는 인상이 낯익어서 찾아보니 영화 <노보>(2002)에 나왔던 배우이다. 등잔 밑에도 정말 많은 배우들이 숨어있다. 1998년 데뷔 이후에 현재 16편 이상의 영화를 찍었으니까 현재 상한가를 치고 있는 배우이다.

마지막으로 그레타 스카키(1960- ). '그레타 스카치'가 맞는 표기인 듯한데, 입에 더 자연스러운 건 '그레타 스카키'이다.

 

 

 

 

이미 많은 영화에 출연한 이탈리아 출신의 '중견' 여배우이지만, 내가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건 그녀가 '팜므 파탈'로 출연했던 <가면의 정사>(1991)나 <바다 냄새 나는 여인>(1992)이다. 갓 서른 무렵에 찍은 영화들이니까 여배우로서도 가장 미스테리하면서도 농염한 자태를 뽐낼 때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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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bahnstrasse 2006-11-2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어에서 ch음이 i와 e 다음에 올 때는 '키'와 '케'가 된다네요.

로쟈 2006-11-2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렇다면 '스카키'로 읽어도 되겠네요. 영화잡지들에서 '스카치'로 읽길래 제가 뒤떨어진 건가란 생각이 들었지요...
 

하루에 책 한권씩을 읽지는 못하더라도 책 한권 정도와는 안면을 터놓는 게 나대로의 '기본'이다. 오늘의 책으로 고른 건 프랑스의 역사학자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1929- )의 <몽타이유>(길, 2006)이다. 나로선 생소한 이름인데, 아날학파의 대부 페르낭 브로델의 뒤를 이어서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근대사를 담당했다고 하니까 걸출한 역사학자라는 것 정도는 알겠다. 하긴 주초에 교보에 들렀다가 신간으로 나온 책을 보고 몇 페이지 넘겨보기는 했지만 대체 어떤 책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제목부터가 알듯 모를 듯한 '몽타이유' 아닌가? 오늘자 경향신문의 서평을 읽어보니 '몽타이유'는 지명이다. 자세한 서평이므로 일독한 연후에 라뒤리의 세계로 한번 빠져보는 것도 그럴 듯한 역사기행이겠다. 중세사는 아직 내게 유혹적이진 않지만, "20세기 서양사학이 거둔 최대 역작의 하나로 평가받는 명저"라고 띄워주니 또 눈길이 안 갈 수도 없지 않은가.

경향신문(06. 11. 25) 중세 이단마을 민중의 삶·운명·神

전세계적으로 지난 20세기의 역사학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학파를 하나 꼽으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뜻 아날학파를 지목하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거기에 속하는 역사가들은 양과 질에서 모두 풍요로운 업적을 산출하며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역사학의 영토를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향력을 반영이라도 하듯 우리나라의 출판계에서도 아날학파의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역사가들의 저작을 앞다투어 번역 출간했다. 뤼시앵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 페르낭 브로델에서 자크 르 고프와 조르주 뒤비를 거쳐 마르크 페로와 로제 샤르티에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날학파 역사가의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지적 호기심과 열의를 가진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외된 한 공백이 있으니 그가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이다. 게다가 그는 한 점 공백이라고 말하기에는 아날학파 내에, 더 나아가 사학사 전반에 너무도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1973년 그가 브로델을 계승하여 99년까지 사반세기에 걸쳐 명성 높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근대사를 담당한 교수였다는 사실은 그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한 지표에 불과하다.

66년에 책으로 출간된 그의 박사학위 논문 ‘랑그독의 농민들’은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프랑스 남부 지방의 토지대장에 수록된 방대한 양의 계량적 정보를 분석하여 농업의 성장과 쇠퇴에 거대한 주기가 있음을 밝힌 연구서이다. 토지는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집중되고 분할되는 주기가 있지만, 그 변화는 극히 완만하여 랑그독의 역사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역사’였다는 그의 결론은 초기 아날학파 연구 방법론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실로, ‘움직이지 않는 역사’라는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취임 강연의 제목은 (최소한 초기) 아날학파의 특징인 구조주의 역사학의 면모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구호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라뒤리에게 국제적으로 가장 큰 명성을 안겨준 책이 바로 ‘몽타이유: 중세 말 남프랑스 어느 마을 사람들의 삶’이다. 본디 75년에 발간되었던 책이 30년도 넘어서야 우리글로 소개되니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지만, 최선의 번역자와 출판사를 만나기 위해 걸린 시간이라 자위하며 그 간행을 반긴다. 더구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저서의 실제 내용은 알 수 없는 공백으로 남아있던 아날학파의 한 핵심 인물의 저작을 통해 아날학파의 계보를 실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 것도 기쁨을 더해준다.

그뿐 아니라 이 책은 아날학파를 넘어서는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인정 받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피터 버크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이 책이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와 함께 ‘미시사’를 지식의 지도 위에 올려놓은 저작으로서, 물질문화와 망탈리테(집단무의식)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문화사에 크게 기여했다고 칭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여류 역사가로 여러 면에서 유럽 중세와 근대 초의 역사를 개척한 선구자로 꼽히는 나탈리 데이비스는 자신의 학문 여정을 회고하는 연설에서 자신이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저작을 쓰게 된 계기의 하나가 ‘몽타이유’라는 미시사의 저작이 거둔 성공에서 얻은 자극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1294년부터 1324년까지 프랑스의 남쪽 랑그독 지방 피레네 산맥의 1,300m 고원 지대에 자리한 몽타이유 마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연구서이다. 이 시기에 몽타이유 마을은 카타르파 이단에 물들어 있었다. 카타르파는 물질계를 사악한 신의 피조물인 것으로 간주하는 기독교의 극단적인 이단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빵을 통해 우리 몸에 임한다는 성체성사의 핵심적인 교리마저 부정했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이들을 척결하기 위해 1244년에 십자군을 파견했고, 그 이후 생존한 카타르파의 일부가 피레네 산간 지방으로 도피하여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후에 교황 베네딕투스 12세가 된 자크 푸르니에가 1317년 몽타이유 마을 근처의 파미에 교구에 주교로 부임했다. 그는 이단재판관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 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을 피의자로 소환했다. 그는 마을의 모든 비밀을 꼬치꼬치 끈덕지게 심문하여 그 내용을 양피지에 정서했다. 라뒤리는 그의 기록을 이용하여 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의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모두를 생생하고 정교하게 되살려놓았다. 농경 방식, 집, 다른 마을과의 관계, 세속 권력이나 교회 권력과의 관계와 같은 물질 세계와 신, 운명, 삶, 죽음, 마법, 공간, 시간, 구원, 성(性)과 같은 정신 세계의 모습이 복원된 것이다.

그렇게 복원된 이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 기독교 사회의 엄격한 행동 윤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 마을 사람들의 자유로운 성 관념과 느슨한 성 풍속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14세기에 이르기까지도 기독교의 윤리관은 아직 민중 문화에 깊이 침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몽타이유’의 번역 출간을 계기로 ‘랑그독의 농민들’ ‘로망스의 사육제’를 비롯하여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그의 저작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조한욱|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

06. 11. 25.

P.S. <로망스의 사육제>는 영역본(1979)으로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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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세기 카타르파 이단의 재판기록을 통해 본 중세인의 삶
    from 창조를 위한 검은 잉크의 망치 2011-05-03 15:50 
    프랑스 남부의 랑그독 지방은 알비 카타리즘, 카타르파에 감염되었다. 1208년 알비파 이단에 대한 십자군 전쟁이 있었고 카타르파 최후의 보루였던 몽세귀르 성이 함락된 뒤에 이단재판이 맹위를 떨쳤다. ‘약속된 탈선의 땅’이라 불리는 이 지역에는 그 뒤에도 끈질기게 이단이 창궐한다. 도시에서 쫓긴 이단들은 이곳 산골 농민세계로 퇴각해 생존의 땅을 얻었다. 그러나 교황청은 이단자들을 좇아 이곳에 새로운 교구를 신설하고 재판을 통한 이단척결공세를 퍼붓는다. 파

김장하는 동생네에 오면서 내가 들고 온 책은 요즘 필요 때문에 들춰보는 책인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바다출판사, 2004)이다. 아예 도서관에서 원서까지 대출했는데, 펭귄북 사이즈의 허름한 포켓북이어서 좀 의외였다. 내가 주의해서 읽은 건 4장 '왜 살인자가 되었는가'와 6장 '범죄 유형의 두 얼굴'이다. 시간이 되는 만큼 읽은 내용에 대해서 정리해둘 작정이다.

 

 

 

 

먼저, '왜 살인자가 되었는가?', 라고 제목이 붙어있지만 원서의 장제목은 'Childhoods of Violence'이다. '폭력에 물든 어린시절'쯤 될까? 살인범들의 유년기가 대개 가정폭력으로 얼룩져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국역본은 이를 효과적으로 의역하고 있다(절제목들 또한 국역본에만 있는 것이다)

저자 로버트 레슬러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란 물음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지? 바로 고갱의 그림(1897) 제목이기도 하다(그림은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여준다). "고갱의 유명한 작품에 나오는 이 세 가지 큰 질문은 내가 1970년 후반부터 살인범들을 만나보면서 면담 때마다 주제로 삼았던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들이 살인마가 된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내서 살인범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었다."(137쪽)

레슬러는 FBI의 '범죄인 성격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복역중인(번역본엔 '북역 중인'으로 돼 있다. 북역?) 살인범 36명과 만나서 면접조사를 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작성된 결과보고서는 살인범에 관한 연구로는 유례가 없으면서도 가장 방대하고 치밀하며 완성도 높은 연구라고 한다. 그가 살인자들의 성장환경과 성격에 대해 지적하는 대목들은 이런 '데이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이 상식은 이후에 물론 많이 교정됐지만) 대부분의 살인범들은 가난한 결손가정 출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능의 경우에도 "연구 대상이었던 36명중 IQ가 90미만인 사람이 7명 있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정상 범주에 들었으며, 그중 11명은 120이 넘었다." 하지만 중요한 공통점. "겉보기에는 정상적일지 몰라도 이 가정들은 사실상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연구 대상 중 절반은 직계가족 중에 정신질환자가 있었고, 부모가 범죄행위에 연루된 적이 있는 경우도 절반이 넘었다. 가족 중에 술이나 약물을 남용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는 거의 70퍼센트에 달했다. 게다가 모두 어린시절에 심각한 정서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이들 모두가 정신과 전문의들이 '성불능자'라고 부르는, 다른 성인과 교감하며 성숙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139쪽)

'다른 성인과 교감하며 성숙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때 '성숙한 관계'란 물론 '성적인 관계'를 말한다. 그러니까 다른 성인과 정상적인 성관계를 갖지 못하는 '성불능자(sexually dysfunctional adults)'는 살인자들이 성에 대한 극도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과 연관해서 주의를 요한다.

이어서 다루어지는 건 가정환경이다. 레슬러는 두 단계로 나누는데, 상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여러 연구에 따르면 출생후 6-7세까지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른은 어머니이며, 이 시기에 아이는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연구한 살인범들의 경우 어머니와의 관계는 한결같이 차갑고 냉담하며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 바로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던 것이다."(강조는 나의 것)

흔히 말하는 인격형성기의 '애정겹핍'이 되겠다. 유아기때의 애착관계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애정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경우에 아이의 사회적 인격 형성은 치명적인 장애를 수반하게 되며 그 대가는 단지 당사자와 가족에게만 지불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결국 남은 평생 동안 그 결핍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가 무고한 생명을 여럿 앗아갔으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영영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남겼으므로, 사회 역시 고통받게 된 셈이다."(139쪽)  

중요한 것은 정서적 학대가 신체적 학대 못지 않게 아이에게 치명적이며 폭력적인 성향을 자극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는 때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는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아이를 방치하지 말라'가 아니겠는가?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자신의 아들들 네 명을 모두 제 손으로 양육하지 않았으며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는 아예 하인으로 부려먹는다. 그가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그가 한번 죽은 것은 그의 목숨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0-6세 아동의 최대 과제는 사회화다. 다시 말해 아이들에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의 적절한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하지만 자라서 살인을 저지르는 아이들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어머니가 소홀한 탓이지만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한다."(140쪽) 

 

 

 

 

물론 부모가 무관심하더라도 다른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이 정성껏 돌봐준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카라마조프의 세 형제, 드미트리와 이반, 그리고 알료샤(알렉세이)가 부모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친인척의 도움으로 (비록 알료샤를 제외하곤 아버지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사회적인 인격으로 성장하지는 않은 것도 한 가지 예이다. 하지만, 그런 이차 보호망마저 부재하다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의의를 발견할 수 없게 된다.  

즉 "가족에 대한 아이의 애착은 훗날 아이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인정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살인범들이 자란 가정에서는 부모의 냉담함을 상쇄시켜줄 수도 있는 형제자매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 또한 거의 전무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이 아이들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가장 가까운 가족에 대한 애착을 발전시킬 수도 없는 상태에서 점점 더 외롭고 고독해져갔다."(142쪽)

어머니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은 물론 아버지이다. "잠재적인 살인범들은 8-12세 사이의 시기에 외톨이로 굳어지며, 고립은 그들의 정신적 발달양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들을 외톨이로 만드는 여러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빈자리다... (물론) 아버지 없이 자란 소년이라고 해도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로 자라나는 이른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로 자란 사람들의 경우 8-12세 사이의 기간이 결정적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연구를 하다 보면 바로 이 시기, 다시 말해 아버지 역할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오게 될 때가 많다."(14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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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1-24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이어요 방가워서...

로쟈 2006-11-2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제가 좀 늦은 편이죠. 도서관 책이 항상 대출중인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