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주의에 대한 책 모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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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다윈
마크 리들리 지음, 김관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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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윈의 대답 1-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피터 싱어 지음, 최정규 옮김 / 이음 / 2007년 2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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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리처드 도킨스- 우리의 사고를 바꾼 과학자
앨런 그래펀 지음, 마크 리들리 엮음,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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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들어진 신-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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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7-27 20:34   좋아요 0 | URL
굴드의 [판다의 엄지] 다윈주의 서적 중에 가장 재밌게 읽어본 책인데 출판사가 망해서리 살 수는 없네요.ㅡㅡ;; [생명,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Wonderful Life]도 참 내용은 좋은데 너무 내용이 지루할 정도로 세세하고 반복된다는.... ㅡㅡa

로쟈 2007-07-27 22:31   좋아요 0 | URL
도킨스나 굴드의 책들을 다 거명하자면 두 손가락에 모자라지요.^^

수유 2007-07-28 17:32   좋아요 0 | URL
God Delusion이죠? 어서 구입해야할것 같아요. 번역은 이한음씨고..출판사가 김영사네요..

로쟈 2007-07-28 18:03   좋아요 0 | URL
며칠전 페이퍼(http://blog.aladdin.co.kr/mramor/1446434#C1259734)를 참조하시길...
 

'지아장커'란 이름으로 내겐 더 익숙한 중국 감독 자장커의 영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의 근작 3편을 상영한다는 '자장커 스페셜'이 그것이다. 작년에 워낙 호평을 받은 영화 <스틸 라이프>는 나도 구해놓은 지 오래됐지만 차일피일 미루면 못 보고 있었는데, 이 참에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니까 '나대로 스페셜'이다).  

 

문화일보(07. 07. 26) 고속성장 뒤편의 고허한 소시민, 중국의 ‘속살’을 본다

중국 내 독립영화의 흐름을 일컫는 ‘지하전영(地下電影)’.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 감독으로 분류되는 자장커(賈樟柯) 감독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서울 낙원동 소재 필름포럼이 26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개최하는 ‘자장커 스페셜’은 국내에선 다소 낯설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소시민들의 공허함과 혼란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잇따라 선보여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작품 3편을 모았다. 자장커 감독은 ‘플랫폼’ ‘소무’ ‘임소요’ 등 그동안 만들어온 작품들이 중국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탓에 중국 내 영화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우선 2006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스틸라이프’는 중국 양쯔(揚子)강 중상류 싼샤(三峽)지방을 찾은 두 남녀를 통해 해체와 파괴가 엇갈리고 있는 지금 중국사회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영화.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지고 있는 싼샤댐이 오랫동안 쌓아온 역사와 흔적을 지우는 현장을 담아낸다. 지난 6월 필름포럼에서 개봉했던 작품은 특히 단관 개봉임에도 현재 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장기 상영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선 또 ‘스틸라이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동’도 소개된다. ‘동’은 신도시 개발과 함께 댐 건설로 2000년 고도가 무너지는 현장을 찾아간 현대화가 류샤오둥의 여정을 자장커 감독이 담은 것. 신도시 건설현장의 노동자들, 그리고 방콕의 젊은 여자모델들을 화폭에 담는 화가의 뒤를 쫓으며 현재의 중국을 예리한 시선으로 고발하는 작품이다. ‘동’은 이번 행사 후 국내에 정식 개봉된다.



이와 함께 상영될 2004년작 ‘세계’는 베이징의 ‘세계공원’에서 댄서로 일하는 타오와 공원 순찰관인 타이셩 등 청춘남녀의 일상을 통해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는 작품. 에펠탑, 피라미드로 가득한 공원은 지구의 축소판이며, 현재 중국의 모습이다.

자장커 감독은 행사기간에 맞춰 방한해 관객과의 대화시간(28일 오후 3시) 등을 가질 예정이다. 자세한 상영작 정보와 행사일정은 필름포럼 홈페이지(www.filmforu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강연곤기자)

경향신문(07. 06. 21) [영화 가로지르기]스틸 라이프

‘스틸 라이프’(감독 자장커)는 가족을 찾아 먼길을 떠난 두 사람의 이야기다. 산밍(한산밍)은 자신의 아내와 딸을 찾아 16년 만에 산샤로 돌아온다. 그러나 산밍이 도착한 산샤는 건설되는 댐 때문에 많은 지역이 수몰된 상태다. 한편 2년 동안 남편과 연락이 끊어진 셴홍(자오 타오)도 남편을 찾아 산샤로 온다. 셴홍은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실망하며 혼자 산샤를 떠난다.

자본주의의 물결은 제일 먼저 인간관계를 이해관계로 대체해 버린다. 영화에는 산밍과 셴홍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두 사람은 모두 보상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웃들간의 격렬한 아귀 다툼을 우두커니 지켜본다. 이처럼 개발의 광풍은 오랜 인간관계에까지 개입하고 간섭한다.

수몰된 지역을 바라보는 산밍의 눈길에 포착된 풍경은 스산하다. 그 풍경에 스며든 적막은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서민들의 무력한 침묵으로 이어진다. 산밍과 아내의 대화는 서먹하다. 그 대화의 간극을 채우는 것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가난한 자들의 슬픈 침묵이다. 그 침묵에는 개발의 이름으로 삶의 뿌리가 뽑힌 사람들의 울분과 회한이 서려 있다.



번영의 이미지로 치장한 건설과 개발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합법적’으로 추방한다. 이제 오래된 건물들과 거주하는 사람들은 개발의 걸림돌로 여겨질 뿐이다. 그들은 그 개발의 축제에 초청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개발의 횡포 앞에 정직한 육체로 맞설 수밖에 없는 자들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줄타기를 하는 어느 노동자의 모습은 일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육체가 처한 위태로운 처지를 상징한다. 이제 그들은 다시 낯선 도시의 가난한 주변부를 향해 떠나야 한다. 산밍도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 노동자들과 함께 산샤를 떠난다.

개발의 과정은 그곳에 터잡고 살아온 사람들을 냉혹하게 추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정처없는 유랑민이 되어 현대판 유배 생활을 떠나는 것으로 완성된다. 가난한 자들을 추방하여 그들에게 유랑을 강요하는 개발의 논리는 아무리 합법을 가장하더라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스틸 라이프’의 산밍이 개발 예정지에서 목격한 것도 소외와 폭력이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 역시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풍문 한마디에 요동치는 ‘개발 지향적 사회’다. 한국 사회야말로 개발을 구원으로 맹신하는 ‘개발 강박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추방당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낯선 곳으로 ‘자본에 의한 유배’를 떠나야 하는 것일까.

치밀한 사실성으로 무장했지만, ‘스틸 라이프’에는 초현실적 장면들도 등장한다. 하늘로 발사되는 기이한 건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발의 논리 앞에서는 결국 그 건물도 언젠가는 철거를 위한 쇠망치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초현실적 장면에는 한꺼번에 하늘로 사라지지 않는 한 그 건물 역시 철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그런 공상을 통해서라도 철거를 막고 싶은 주변부 주민들의 절박감이 섞여 있다.

개발의 논리 앞에서는 ‘개발된 곳’과 ‘개발되지 못한 곳’의 구분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삶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공간들은 가차없이 서열화된다. 하지만 개발의 폭력은 단지 자연적 풍광만을 수몰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추억도 더불어 수몰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공간이 수몰될 때,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숨결과 자취도 함께 사라진다.

가난한 자들의 기억, 개발의 걸림돌이 되어버린 자들의 추억은 그렇게 폐기된다. 그들의 추억은 공권력이나 자본에 의해 기록되거나 보호되지 않는다. 사탕과 차를 통해 겨우 자신들의 추억을 되살려 내야 하는 그들의 막막함은 개발에 어울리지 않는 기억들을 모두 수몰시키려는 자본의 위세 앞에서 이내 절망감으로 변한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산밍과 동료 노동자들의 눈에는 일하는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온기가 담겨 있다. 그 담담한 온기는 가난한 자들 간의 우정이자 유대감일 것이다. 건설현장에 버려진 하숙집 청년의 주검을 수습하는 것도 결국 그 노동자들이다.

산밍은 딸과 아내를 데려 가기 위해 산샤를 찾는다. 하지만 산샤를 떠나며 그가 동행한 사람은 딸과 아내가 아니라 산샤에서 만난 노동자들이었다. 함께 땀방울을 흘린 노동자들과 길을 떠나는 산밍의 모습에는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에서 작은 희망을 찾으려는 감독의 의지가 녹아 있다.(황승현|영화평론가)

07. 07. 27.

P.S. 영화 <스틸 라이프>에 대해서는 작년 가을 씨네21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42355). 영화를 보고 나면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P.S.2. 이번 '스페셜'을 위해 내한한 지아장커와의 인터뷰 한 꼭지도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7. 30) 중국 독립영화 대표주자 지아장커 감독 내한

중국 독립영화의 대표주자 지아장커(賈樟柯ㆍ37) 감독이 서울에서 진행 중인 자신의 특별전을 맞아 방한했다. 감독은 28일 ‘지아장커 스페셜’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 필름포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속 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되고 파편화된 소시민들의 이야기”라고 자신의 작품들을 설명했다.

“싼샤(三峽) 댐 건설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람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7,8개의 도시가 사라졌어요. 도시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도 해체되고 있어요. 너무도 빠른 속도로.” 데뷔작 <소무>부터 그의 시선은, 일관되게 현대화의 광풍 속에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있다.

이 시선은 세계 최대의 댐 공사인 싼샤공정(三峽工程)에 멎어, 최근작 <동>과 <스틸라이프>를 낳았다. “2,000년 된 도시가 2년 만에 사라지고 있다고.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야.” <스틸라이프> 속 수몰민들의 이 대사에, 감독의 안타까운 절규가 겹쳐진다. 이 영화는 감독에게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중국에서 점점 ‘현실’을 얘기하는 작가들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더 (현실의 문제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감독은 최근 중국영화의 경향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첸카이커(陳凱歌), 장이머우(張藝謀) 등 중국영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선배들이 상업영화로 전환, 판타지에 가까운 사극만 만들어 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심의를 쉽게 통과하기 위해, 또는 해외에서 팔리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두들 사극만 찍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런 영화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지하전영(地下電映)’이라고 불리는, 중국적 인디영화의 정신을 이어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감독의 뜻이 얼마나 반향을 불러 올 수 있을까. 그는 지극히 개인화, 자본주의화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모습에 종종 울분을 토해 왔다. “<스틸라이프>의 DVD가 60만장 정도 팔렸어요. 인터넷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고요. 이 영화를 보고 싼샤로 여행을 가는 젊은이들도 생겼다고 들었어요.” 세계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 상영관을 찾기 힘든 그이지만, 3,4년 전에 비해서 그의 목소리는 분명히 희망적이었다.

감독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UFO 등 초현실적 이미지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변화 속에서, UFO의 등장도 그다지 비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며 “모두들 행복을 쫓아 정신없이 달려가지만, 그 행복은 UFO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영화의 호흡이 매우 느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우리 생활이 너무 빨라지고 있다. 생활의 과정을 보여 줄 새도 없이 지나가 버린다. 원래 그대로의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로우예(婁燁ㆍ42) 등과 함께 6세대 감독으로 분류되는 지아장커는 <임소요> <플랫폼> <소무> 등, 화려한 성장의 외피에 가려진 중국인들의 아픈 내면을 영화에 담아 왔다. 그의 영화는 중국 정부의 개발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 때문에 2004년까지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다음달 2일까지 진행되는 지아장커 스페셜에서는 싼샤댐을 다룬 다큐멘터리 <동>과 극영화 <스틸라이프>, 세계화 흐름 속에 중국 민중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세계> 등 3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자세한 정보는 필름포럼 홈페이지(www.filmforu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유상호 기자)

07.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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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7-28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과 <세계>를 <스틸라이프>와 함께 필름포럼에서 아주 짧게 올리더군요. 난 <스틸라이프>를 보았고 그것은 꼭 <동>과 함께 보아야 한다는 정성일의 말대로 <동>을 볼 생각입니다.
뒤늦게 지아장커의 팬이 되었어요..

로쟈 2007-07-28 17:30   좋아요 0 | URL
나중에 감상을 좀 들어야겠네요...
 

아침신문에서 도정일 교수의 칼럼을 읽었다. CEO들의 서재 얘기인데, 사실 내용 자체는 며칠 전에 접한 것이니 관심은 그에 대한 '논평'이었다. 한편으론 개인도서관들을 갖고 있는 데다가 주로 (경영서가 아니라) 인문계열의 책들을 읽는다는 이 CEO들이 '강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론 "책 읽는 CEO들의 얘기는 그래서 가뭄의 비 소식 같은 데가 있다"란 주장에 묘한 반발심이 생겼다. CEO들도 읽는 인문학? 책이야 각자가 알아서 읽을 일 아닌가 싶고, CEO들도 인문서를 읽고서 사업의 영감을 얻으니 이런저린 핑계를 대며 독서를 게을리하는 샐러리맨들도 인문서 좀 읽으시오, 란 암묵적인 권유가 너무 속보였다(거꾸로, 인문서를 즐겨 읽던 한 CEO의 회사가 부도나면 그것도 인문서 탓일까?). 

그러다 오늘 받은 김우창 교수의 <자유와 인간적인 삶>(생각의나무, 2007)을 펼치니 제일 첫 얘기가 작년 여름의 '페렐만 사건'에 관한 것이다. 러시아의 젊은 수학자 페렐만이 막대한 상금이 걸려 있던 난제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었지만 상금도 거부한 채 은둔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는 얘기가 당시 화제가 되었던 그 '사건'의 골자다(http://blog.aladin.co.kr/mramor/937360). 김우창 교수의 글을 읽으며 역시나 그맘때 읽은 도정일 교수의 칼럼이 생각났다. 두 칼럼을 거푸 다시 읽으며 도정일 교수가 경탄을 아끼지 않는 두 사례, 곧 '책 읽는 CEO'와 '버섯 따는 페렐만' 가운데 누가 우리의 '모델'이어야 할지 잠시 생각해본다...  

경향신문(07. 07. 26) [도정일 칼럼]CEO들의 샘 ‘서재’

미국의 각종 업계를 이끌어온 최고경영자(CEO)들은 주로 어디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고 생각할 거리를 공급받는가? ‘아이디어가 돈’이라는 말은 현대 비즈니스의 ‘황금 언어’가 되어 있다. 밥 먹을 때도 오고, 길 가다가도 얻고, 얘기하다가도 떠오르는 것이 아이디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영감처럼 아이디어도 평소에 준비되어 있는 사람의 머리에만 찾아온다. 녹슬고 무딘 안테나에는 아이디어가 걸려들지 않는다. 문제는 그 CEO들이 평소 어떻게 자기네 안테나를 섬세하고 예민한 상태로 준비해두느냐라는 것이다.

-고전 책 읽는 요즘 경영자들-

뉴욕 타임스 신문은 지난 21일자 인터넷 판에 ‘CEO들의 성공의 열쇠’에 관한 기사 한 꼭지를 내보내고 있다. 그 열쇠는 놀랍게도 ‘서재’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 업계를 이끌어온 주요 CEO들의 상당수가 자기 집이나 회사 집무실에 개인 도서관 규모의 큰 서재들을 갖추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속도전 시대에, 인터넷과 전자매체로 무슨 정보이건 쉽게, 빠르게, 싸게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에 책으로 꽉 찬 서재라?

더 놀라운 것은 그 CEO들이 즐겨 읽는 책의 종류다. 틀림없이 경영이나 비즈니스에 관한 책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얼른 들지만, 천만에 말씀, 기자가 취재한 ‘서재’파 CEO들 중에 경영이나 비즈니스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럼 무슨 책? 시, 소설, 전기, 역사, 철학 같은 이른바 인문학 계열 책들이거나 예술서들이다. 예컨대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지금도 즐겨 읽는 것은 아시아 역사에 관한 책, 미술 책, 시집이다. 유명한 벤처 캐피털리스트 마이클 모리츠가 노상 꺼내어 읽고 또 읽는 책은 티 이 로런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이다. 신용카드 사업의 아버지이자 ‘비자’ 창업자인 디 호크가 서재 탁자에 펼쳐놓고 매일 읽는 것은 12세기 페르샤 시인 오마르 카얌의 시집 ‘루바이야트’다.

티 이 로런스? 오마르 카얌? 젊은 세대들로선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이름들일 것이다. 영화로 알려진 ‘아라비아의 로런스’가 바로 그 로런스라는 걸 아는 사람은 더러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책 ‘지혜의 일곱 기둥’은 금시초문일 것이 틀림없다. 대학에서 세계문학 강의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오마르 카얌이라는 이름을 어렴풋이 기억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시집 ‘루바이야트’를 읽어보는 젊은이를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다. 사운드 시스템 사업의 대부격인 시드니 하만은 셰익스피어, 테니슨 같은 시인들과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같은 소설의 애독자다. 이런 작품들도 지금은 젊은 세대의 관심 대상에서는 한참 멀어진 책들이다.



CEO들은 왜 이런 책을 읽는가? 시인 경영자를 구하려 했으나 구할 수 없어 스스로 시인과 비슷해지기로 했다는 시드니 하만은 말한다. “시인들은 우리가 생각한 ‘시스템’을 생각해낸 원초적 사상가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처해있는 복잡한 환경들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바꿔준다.” 또 ‘세일즈맨의 죽음’이나 ‘이방인’ 같은 작품은 일하는 삶의 품위를 정의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그 작품들의 시적 품질을 노동자 친화적 공장 환경에 들여오고 싶었다는 것이 CEO 하만의 말이다. “나는 논픽션보다는 픽션을 더 많이 읽는다. 비즈니스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가 앤디 그로브의 ‘헤엄쳐 건너기’인데, 그것도 비즈니스와는 관계없이 어떤 탁월한 개인의 정서적 바탕을 기술한 책이다.”

-가치는 가격이 아닌 문화에서-

모든 것에 ‘가격’을 갖다 붙이고 모든 가치들을 돈이 되는가 안 되는가의 잣대에 의한 가격체계로 바꿔놓는 것이 우리 시대다. 오늘날 문화는 ‘오락’이다.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쪼가리 뉴스가 심층적 분석과 신중한 판단들을 밀어내고, 모든 창조적 작업을 가능하게 할 가장 창조적인 지식과 통찰의 소스들이 말라죽고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콜레라, 우리 시대의 문화적 위기다. 책 읽는 CEO들의 얘기는 그래서 가뭄의 비 소식 같은 데가 있다.

한겨레(06. 08. 25) [비판적상상력을위하여] 버섯 따러 간 천재 수학자

지난 22일 마드리드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사람들은 그를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회에 앞서 세계수학자연맹 회장 존 볼 경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스부르크까지 날아가 이틀씩 머물며 대회 참석을 종용한 끝인데도 그는 종내 오지 않은 것이다. 개막식에서 존 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섭섭하다. 그러나 참석하지 않은 것은 그의 결정이고 그에게 상을 주기로 한 것은 우리의 결정이다.” 그렇게 해서, 4년에 한 번 40세 미만의 젊은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큰 상 ‘필즈메달’이 그 고집스런 불참자에게 수여된다.

세계 수학계가 백 년 동안 매달렸으나 해결하지 못한 어려운 문제 하나를 풀어냈다 해서 신문들이 대서특필하는 통에 갑자기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 그가 ‘그’다. 연예인도, 정치인도, 스포츠 영웅도 아닌 수학자가 세계의 눈을 끌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진귀한 뉴스다. 수학은 지금 어느 나라에서도 ‘인기 학문’이 아니다. 수학은 돈, 명성, 권력의 어느 것도 가져다주기 어려운 기초학문 분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대학 총장들조차도 “수학? 수학이 밥 먹여주나?”라고 공공연히 말하기 시작한지 10년이 넘는 나라다. 그런데 수학자가 수학으로 유명해졌다니?

따지고 보면, 그리샤(그리고리의 애칭) 페렐만이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게 된 것이 꼭 그의 학문적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우주공간의 생김새에 관한 가설의 하나인 이른바 ‘푸앵카레 문제’를 풀어낸 것은 수학계의 대사건은 될 수 있을지라도 대중적 관심을 끌만한 뉴스거리는 아니다.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오히려 수학 외적 요소들이다. 그가 세계수학자대회의 수상 후보가 되었으면서도 종적을 감추어버려 “그리샤, 너 어디 있니?”라고 신문들이 찾아나서야 했다는 사실, 그 이전에도 그가 유럽 수학회의 어떤 상을 거부한 적이 있다는 일화, 미국 스탠포드대학과 프린스턴대학이 교수로 모셔오고자 했는데도 그가 “싫다”며 퇴짜를 놓았다는 소식, 생김새가 제정 러시아 말기의 괴승 라스푸틴 (이 괴승은 총알 여섯 발인가를 맞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고 되레 저격자들에게 달려들었다는 얘기로 유명하다) 비슷하다는 형용묘사, 지난 3년간 어딘가로 꼭꼭 숨어 전자우편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 고등학생 시절인 16세 때 세계 수학올핌피아드에서 만점을 받은 ‘천재’라는 칭송, 이런 일화들이 말하자면 그를 뉴스의 인물이 되게 한 ‘페렐만 미스테리’의 요소들이다.


지금 이 시장시대의 눈으로 보자면 페렐만 미스테리에서 단연 압권은 천재 그리샤가 돈 알기를 뭣 같이 한다는 얘기다. 그가 풀어낸 푸앵카레 문제는 미국의 클레이연구소가 큰 상금을 걸고 지정한 ‘제3천년의 7대 난제’ 가운데 하나다. 아직 풀지 못한 그 일곱 개의 수학문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풀어내는 사람에게는 상금 1백만 불을 주겠다는 것이 ‘클레이 밀레니엄 상’의 내용이다. 그리샤는 이 상의 아주 유력한 수상 후보다. 그의 업적이 향후 2년을 더 기다리며 테스트를 견디어낸다면 그는 백만 불을 받게 된다. 그가 백만 불의 주인이 될 것이 확실하다고 수학계 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행보로 보아 그가 냉큼 돈을 받아 챙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도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돈 백만 불을 감히 거절한다고? 백만 불이 무슨 껌 값이냐? 그리샤, 너 참 사람 놀라게 하는구나.

그렇다. 그러고 보니 우리를 놀라게 하고 뭔가 생각하게 하는 것은 페렐만의 학문적 업적보다는 그의 이 괴짜 운신법이다. 그의 행보는 돈, 명예, 권력으로 사람값이 매겨지는 시대의 물결을 거스르고 시대의 도덕률과 성공의 법칙을 넘어선다. 상트페테르스부르크로 찾아간 존 볼 경에게 그는 “문제를 풀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상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 대학들로부터의 교수직 제의만 거절한 것이 아니라 재직하고 있던 상트페테르스부르크 대학에서도 사임했다고 한다. 이런 운신은 그가 괴짜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찐이 은근히 자랑해마지 않던 ‘러시아의 정신성’이란 것의 한 자락에 연결된 어떤 삶의 원칙 혹은 가치관 때문인가?


모를 일이다. 러시아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박사후 과정을 밟는 동안 그를 알고 지낸 미국인 동료들은 평소의 그리샤가 ‘딴 세상 사람’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가 즐겨 추억거리로 얘기했던 것은 고향 상트페테르스부르크의 숲에서 ‘버섯’을 찾아 돌아다닌 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을 종합해보면 그의 일련의 처신법이 돌발적 행동은 아님이 분명하다. 지금도 그는 딴 세상 사람처럼 버섯 하이킹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를 만나고 온 존 볼의 보고 가운데 심상치 않은 대목이 하나 있다. “그는 수학 한다는 것에 어쩐지 실망한 것 같았다”는 보고가 그것이다. 수학 그 자체에 실망한 것인지, 아니면 수학 한다는 사람들의 ‘노는 꼴’에 정나미 떨어져 ‘수학하기’를 그만두려는 것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유럽 수학회가 상을 주려 했을 때 그가 거절한 사유를 들어보면 뭔가 짚이는 것이 있다. “심사위원들의 자격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가 수상을 거부한 이유다. 심사할 자격이 의심스러운 자들이 주는 상은 받지 않겠다--오 그랬구나, 그리샤, “차라리 버섯상이 낫지”가 그대의 메시지였구나, 잉? 그렇다면 세계수학자대회의 필즈메달을 거부한 것도 심상치 않군 그래.

우리가 궁극적으로 생각할 거리는 그리샤 페렐만 같은 사람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태어나 학위를 한다면 그가 대학에 취직이나 할 수 있을 까, 버섯이나 따러 다니고 영광도 명예도 돈도 내팽개치는 사람이 한국 대학사회 어느 곳에 발붙일 수 있을까라는 문제다. 그가 천재라면 우리의 교육이, 우리 대학들이, 그런 유형의 천재를 길러내고 보듬을 수 있을까. 돈 될 ‘대형연구’ 같은 것에나 목매단 대학들이 혼자 외롭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페렐만 스타일의 학자를 쫒아내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그리샤, 너는 한국에는 오지 말라. 여긴 버섯의 숲도 없다네.(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 ‘책읽는사회’ 대표)

07. 07. 26.

P.S. 생각해본 결론은 내가 CEO도, 수학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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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7-27 00:48   좋아요 0 | URL
"심사위원들의 자격을 믿지 않기 때문”거참 말되네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페렐만이 저런 이야기하니 왠지 납득이 되는군요..^^그리고 돈 이야기나와서 말인데..페렐만이 거부한것은 클레이수학연구소에서 준다는 100만달러만이 아닌걸로. 필즈메달도 만만찮은 액수의 상금을 부상으로 준다고 합니다. 페렐만은 그것도 거부한거죠..

yoonta 2007-07-27 03:44   좋아요 0 | URL
페렐만 관련글을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있더군요. 위의 글도 아마 이 내용을 참조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http://www.newyorker.com/archive/2006/08/28/060828fa_fact2?currentPage=1

로쟈 2007-07-27 08:45   좋아요 0 | URL
칼럼의 첫 내용이 필즈상 거부에 관한 것이죠.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장문의 기사까지 찾으셨네요.^^

전자인간 2007-07-27 15:32   좋아요 0 | URL
나이키 회장은 아시아인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해서 아시아 역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나 보군요.

philocinema 2007-07-27 16:3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효과적 착취.

로쟈 2007-07-27 22:44   좋아요 0 | URL
착취 당하지 않으려면 나이키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할까 봅니다...

수유 2007-07-28 21:02   좋아요 0 | URL
<지혜의 일곱기둥>은 정말 아라비아의 로렌스 의 그 T.E.로렌스가 맞죠^^ 토마스 로렌스가 오뒷세이아를 산문으로 번역도 하였다 하더군요.. 그리고 루바이야트, 오마르 카이얌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페렐만도 요즘 꽤 회자되는 물리학자이구요^^

로쟈 2007-07-28 21:26   좋아요 0 | URL
페렐만은 수학잡니다.^^

수유 2007-07-28 23:52   좋아요 0 | URL
앗!! 수학자이지요. 더 이상 수학과 관련된 연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지요마는..
 

기다리던 소설집이 나왔다.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문학동네, 2007). 발표 당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작품이어서 나중에 작가의 작품들을 더 챙겨읽은 기억이 있다. 주로 문학잡지에 발표되는 단편들이기에 일일이 찾아 읽기가 번거로웠는데 한데 모아놓으니 보기에 편하지 아니한가. 내가 좋아하는 건 작품의 '악몽적인' 세계라기보다는 작가의 하드보일드한 문체이다. 나는 작가가 편혜영식 <변신>, 편혜영식 <성>을 써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는 쪽이다. 사육장쪽이 그쪽이라고요?..

경향신문(07. 07. 26) 편혜영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 끔찍 기괴한 일상 비판

작가 편혜영씨(35)가 두 번째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문학동네)를 발표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2005년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문학과지성사)을 내면서 무서운 신예로 주목 받았다.

썩어들어가는 몸, 절단된 사지, 시체를 뜯어먹는 쥐 등 하드코어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아오이 가든’의 세계는 초현실적 시공간 속에서 빚어지는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사건들이 지배했다. 작가의 메시지는 소설뿐 아니라 현실도 이렇게 끔찍하고 불안하며 기괴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악몽 같은 이미지들이 신인인 저를 기억시키는 데 큰 몫을 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인 이미지만 주목을 끌게 돼 그런 상황을 빚어낸 현실을 보여주는 데는 역부족이었지요. 그래서 좀더 현실과 가까운 작품을 쓰자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번 소설집이다. 총 8개 단편 가운데 4편이 주요 문학상 후보작이기도 하다. 표제작인 ‘사육장 쪽으로’는 현대문학상·이수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퍼레이드’는 황순원문학상, ‘분실물’은 이효석문학상, ‘첫번째 기념일’은 이상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이 같은 편혜영 소설의 특징은 부조리한 상황,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인물을 통한 문명비판이다.

‘사육장 쪽으로’는 도시민의 꿈이라는 전원주택에 살기 위해 많은 융자를 받은 직장인 ‘그’가 어느날 출근길에 파산통고가 담긴 우편물을 받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인생을 걸다시피한 전원주택은 실제로는 열흘 만에 지어진 조립주택이며 단지 내의 다른 집들과 판박이인 데다 인근 사육장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로 인해 황량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을 준다.

그와 그의 아내가 집을 뺏기고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가운데 치매에 걸린 노모는 아랫도리를 벗은 채 정원으로 뛰쳐나오고 개 사육장을 탈출한 개들이 들이닥치면서 아이를 물어뜯어 실신하게 만든다. 소설은 담요에 싼 아이와 울부짖는 아내, 노모를 차에 태운 그가 사육장 옆에 있다는 병원을 찾아 헤매는 장면에서 끝난다
.

'퍼레이드’에서는 쇠락한 U공원을 배경으로, 퍼레이드에 동원된 여섯 마리의 코끼리와 네 명의 퍼레이드맨 이야기가 펼쳐진다. 알록달록한 고깔과 색색의 망토를 걸친 코끼리들, 당나귀·고양이·개·수탉으로 구성된 브레멘 음악대로 변장한 남자들은 비슷한 처지다. 고향인 라오스를 떠나온 코끼리들은 천천히 걸으며 코로 과자를 받아먹는 것밖에는 별다른 재주가 없다. K, P, E, S라는 이니셜로 불리는 남자들 역시 공사장 막일, 이삿짐 센터 직원, 텔레마케터,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거쳐 아이들에게 손을 흔드는 놀이공원의 마스코트가 됐다.

어느날 퍼레이드 도중 코끼리들이 감쪽같이 탈출하고 남자들은 다른 자리에 배치받는다. 유령의 집에서 드라큘라가 된 K는 자기가 당나귀인지 드라큘라인지 헷갈리고, 청소를 맡은 P와 E는 비질을 하다가 과거 습관 때문에 아이들에게 손을 흔든다. 롤러코스터 검표원인 S는 검표원 복장으로 퍼레이드를 하는 중이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마침내 도심의 벙커 속에서 코끼리들이 발견되고 남자들은 새로 도착한 인형옷을 입는다.

‘분실물’은 무능한 직장인 박이 상사인 송으로부터 회사의 비자금과 관련된 일을 지시받는데 이 내용이 담긴 서류를 지하철에 놓고 내리면서 빚어지는 악몽 같은 일상을 담았다. 일생 일대의 기회를 놓친 박은 분실물 센터를 다그치지만 가방의 모양과 내용물조차 기억이 안 나고 스트레스로 인해 회사 동료들, 거래처 직원의 얼굴도 헷갈린다. 자꾸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 그는 텅 빈 가방을 찾은 후 송에게 분실 사실을 전화로 보고하려 하지만 소음 때문에 대화조차 제대로 안된다.

‘첫번째 기념일’은 리모델링을 앞두고 대부분 입주자가 퇴거한 아파트 6층에 사는 여자에게 홈쇼핑으로 구입한 물건을 배달해주는 택배회사 직원의 이야기다. 늘 배달물이 밀린 그는 전원이 꺼진 엘리베이터 대신 깜깜한 계단을 올라가지만 늘 여자는 부재 중이다. 그의 유일한 취미이자 희망은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이력서를 쓰는 일이지만 스스로도 아무 소용 없는 일임을 안다. 어느날 여자가 인근에 들어서는 테마파크의 놀이기구 시험운행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여자를 찾아가고, 연인이나 되는 것처럼 나란히 곤돌라를 탄다. 그후 여자가 받지 못한 물건 목록이 적힌 이력서를 여자에게 내민다.

이처럼 대개 익명 처리된 편혜영의 주인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현실은 손끝 하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면서도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사람을 덮치는 사나운 개, 땅 밑의 코끼리, 지진, 버려지거나 공사 중인 건물 등 불안 요소는 어디에나 잠복해 있다. 작가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못지 않게 우리 현실은 끔찍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한윤정기자)

07. 07. 26.

P.S. 관련페이퍼로는 '편혜영과 사육장적 상상력'(http://blog.aladin.co.kr/mramor/111517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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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7-26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리소설을 써주기를 바랬습니다^^:;;

로쟈 2007-07-26 23:55   좋아요 0 | URL
물만두님다우십니다.^^

비로그인 2007-07-26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아오이가든, 사육장, 모두 관심있어요!
로쟈님 페이퍼 감사합니다 :)

로쟈 2007-07-26 23:56   좋아요 0 | URL
'가든'하고 '사육장'은 좀 다른데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근작 <폭력의 역사>(2005)의 국내상영 소식은 예고된 바 있는데, 곧 상영되는 모양이다(데이비드 린치의 신작 <인랜드 엠파이어>와 함께 최근 가장 주목되는 개봉작이다. 상업적으로가 아니라 영화적으로). 이번주 '씨네21'에서는 이 두 감독의 영화세계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지만 아직 온라인에서는 읽을 수 없기에 대신 '영화평론가 오동진의 동시 상영관'에서 <폭력의 역사>에 대한 리뷰만을 옮겨놓는다. 분량이 읽기에 적합한 것도 옮겨오는 이유이다(기사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문화일보(07. 07. 24) 가정을 지키려는 ‘家長의 폭력’

‘비디오드롬’과 ‘플라이’, ‘크래쉬’와 ‘엑시스텐즈’ 등의 영화로 기억되는 캐나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인간의 육체와 기계가 결합해 이루어지는 하이브리드(hybrid)한 영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영화는 공포와 공상과학(SF)을 오가며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극단적일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인간이 얼마나 혐오스러울 수 있는 존재인가를 파헤친다.

‘비디오드롬’에서는 인간이 텔레비전과 몸을 합치고 ‘크래쉬’에서는 주인공들이 결국 자동차와 섹스를 나누는 식이다. ‘플라이’같은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기계 대신 다른 생명체, 곧 파리의 유전자를 합쳐 결국 파리인간이 되고 만다.

이 해괴망측할 만큼 노골적으로 폭력적인 얘기들을 통해 크로넨버그는 의도적으로 반(反)휴머니즘의 노선으로 자신을 내모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반인간주의의 목표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인간형, 새로운 인간성에 대한 탐구 곧 진짜 휴머니즘에 대한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야말로 그의 기이한 상상력이 닿으려고 하는 지점이다.



국내에서 뒤늦게 단관상영되는 크로넨버그의 2005년작 ‘폭력의 역사’는 전작들에 비해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인간적’이고 ‘구체적’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기계인간이나 파리인간 따위는 이번 작품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크로넨버그는 이제 극단적 사유의 관념론자라는 평가를 벗어나려는 듯 인간 삶의 구체적 행태를 뒤좇는 데 주력한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소박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톰 스톨(비고 메텐슨)은 변호사인 아내 에디(마리아 벨로),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중년 가장이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의 평온한 일상은 어느 날 이 식당에 별다른 이유없이 살인을 일삼고 다니는 두 남자가 침입하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두 악당의 이미지는 마치 트루먼 카포티가 쓴 ‘콜드 블러드’의 두 악한들을 연상시킨다) 톰은 여종업원의 목숨을 위협하는 두 악당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자신도 다치게 된다.



이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톰은 사람을 구한 영웅으로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가 악몽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왔다는, 언뜻 보기에도 마피아로 보이는 칼 포가티(에드 해리스) 일당은 톰 스톨의 식당과 집을 오가며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칼 포가티는 톰이 20년전 필라델피아에서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킬러 조이 리치였다며 그에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강요한다. 자신은 절대 조이 리치가 아니라고 부인하던 톰 스톨은 이들의 집요한 추궁에 조금씩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폭력의 역사’라는 다분히 학술적 분위기의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폭력에 대한 역사적 이론이나 사회정치적인 거대담론을 내세운 작품이 아니다. 그보다는 폭력의 일상성 혹은 그 순환성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영화는 우리가 얼마나 폭력적인 삶에 노출돼 살아가고 있으며 폭력적인 문제에 얼마나 근접해 살아가고 있는가, 그 굴레에서 자유롭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폭력은 결국 폭력으로 계속해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말하려는 폭력의 일상화는 9·11 이후 전세계에 만연돼 있는 테러의 공포와 무관치 않다. 주인공처럼 일단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게 되면 자신이 그동안 지키려 애썼던 현재적 삶의 가치가 무엇이든, 잊고 싶은 과거가 어떻든 그 구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가 가해자였고 누가 피해자였으며 궁극적으로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가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폭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기생명력을 가지고 운행되며 그럼으로써 결국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아내 에디는 20년 가까이 과거를 속여 온 남편 톰을 용서하지 않는다. 톰으로 하여금 과거의 킬러, 곧 조이 리치의 삶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건 결국 누구인가. 칼 포가티 같은 마피아 일당인가 아니면 톰에게 마음의 벽을 쌓는 아내 에디인가. 폭력의 공모자는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이다.(오동진 영화평론가)

07. 07. 24.

P.S. 폭력에 관한 책 몇 권을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그러다 공연히 톰의 경우처럼 '폭력적인' 나 자신을 '재발견'하게 될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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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7-2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 이런 영화는 CGV 강남 같은 데에서는 개봉 안하나열?

로쟈 2007-07-2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그런 게 보이지 않는 폭력이지요. 대신에 쓸데없는 영화들만 주변에 널려 있는 현실...

수유 2007-07-28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데이비드의 영화는 즐기진 않으나 봐두어야 할 영화로 분류하고 날짜를 정하는 중입니다..그러고보니 즐겨 달려가 행복하게 봐야 할 영화들과 <폭력의 역사>같은 영화와 여유를 가지고 음미하듯 천천히 걸어가 볼 영화들로 내 방학의 영화들이 나누어지네요..^^

로쟈 2007-07-28 21:27   좋아요 0 | URL
방학의 '여유'가 느껴지네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