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비로소 <지젝과의 대담 >(Polity, 2004)을 다 읽었다(*지난 1월초에 쓴 글이다). 170쪽 정도의 얇은 분량이지만, 주로 출퇴근 시간에만 야금야금 읽느라고 8일쯤 걸린 듯하다. 그래도 새해 들어 완독한 첫번째 책이라 나로선 뜻이 없지 않다. 내 생각에 이 책은 지젝을 이해하는 데 가장 유익하며 또 필수적인 책이다.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는 지론이지만, 어떤 사상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지름길은 그의 자전적인 기록이나 대담을 읽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이나 대담은 지극히 평이하면서도 자기 사상의 핵심을 짚어주기 때문에 더없이 친절한 길잡이가 된다. 지젝의 이번 대담집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향락의 전이>에 부록으로 실린 “자가-인터뷰”와 함께 지젝 입문서로 적극 추천한다. 지젝의 지명도를 감안하면, 아마 책의 국역본이 의외로 빨리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시켜만 준다면 나라도 나서겠지만).
이 책은 Polity출판사의 Conversations시리즈 중 다섯번째 책이다. 이보다 앞서거나 동시에 나온 책들은 각각 지그문트 바우만, 울리히 벡, 마뉴엘 카스텔(Manuel Castells), 앤소니 기든스와의 대담들이다. 폴란드의 석학 바우만의 책으론 <자유>(이후, 2002)와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 Globalization>(한길사, 2003)이 번역/소개돼 있고, 독일의 사회학자 벡의 책들은 대표작인 <위험사회>(새물결, 1997)을 비롯하여 <정치의 재발견>(거름, 1998), <지구화의 길>(거름, 2000),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새물결, 2000) 등 다수의 저작이 번역/출간돼 있다. 나에겐 좀 생소한 카스텔은 ‘카스텔 3부작’의 한권인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한울, 2003)란 책으로 유명한, 스페인 출신의 정보사회학자이다. 그리고 ‘제3의 길’의 주창자 기든스에 대해선 군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그의 저작은 거의 20권이 소개돼 있다).
이 시리즈의 근간으로 돼 있는 책들은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과 문화비평가 스튜워트 홀 등의 대담집인데, 연배로만 따지자면, 아마도 지젝이 가장 어린 축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49년생인 그로선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이미 동시대의 핵심사상가들(Key Thinkers) 반열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물론, 이러한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동시대의 사상가들 중에서 이 ‘괴물 엔터테이너’보다 더 재미있으면서 동시에 감동적인 사상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물론, 재미있으면서 읽을 만한 철학자/사상가는 여럿 있다. 하지만, 동시에 찡한 감동까지 전달해주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나는 좀 오랫동안 지젝과 데리다 사이에 머무를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데리다와 지젝은 서먹한 관계가 아니다. 지젝의 고백에 따르면, 하이데거를 전공하던 그에게(그의 철학박사학위 논문은 하이데거에 관한 것이다) 결정적인 자극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데리다이다: “내 생각에 데리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일개 하이데거 학자로만 남았을지 모릅니다. 내가 하이데거를 떠나도록 처음 자극을 준 사람이 바로 데리다였습니다.(I think that without Derrida I would probably have ended up as a Heideggerian. It was Derrida who provided this first impetus to move away from Heidegger.)”(29쪽) 그래서, 그는 데리다의 첫번째 메이저 저작인 <그라마톨로지>가 출간됐을 때, 하이데거가 직접 다루어지지 않은 것에 무척 실망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저널 <문제들 Problemi>의 1967년 겨울호에 <그라마톨로지>의 2개 장에 대한 번역을 싣는데, 이것이 아마도 데리다 저작의 최초의 외국어 번역일 거라고도 말한다. 아무튼 지젝과 그의 그룹 동료들은 데리다에 이끌려 프랑스 현대사상에 심취하게 되고 라캉과도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초기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라캉으로 마침내 그들의 진로가 결정되는 것은 1970년대 중반이 되어서인데, 이를테면 지젝에게 있어서 라캉은 포스트-데리다였던 셈이다. 실제로 지젝은 자신의 입장/입지를 포스트-해체론(post-deconstruction)이라고 몇 차례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비유컨대, 그에게서 데리다는 하이데거가 데리다에게서 갖는 의미/자리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데리다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해준 건 물론 라캉,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크-알랭 밀레의 라캉이다.
슬로베니아에서 동료들과 함께 80년대 초반에 얼떨결에 ‘정신분석과 문화’라는 국제 콜로키움을 개최했는데, 거기에 초빙되어온 밀레가 자신이 있는 파리 8대학의 (해마다 한두 명씩 뽑았던) 외국인 조교직을 제안한다. 박사학위를 받고도 변변하게 취직도 못하고 있던 지젝의 인생역전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이다. 그는 파리로 가게 되고 라캉의 사위 밀레에게서 라캉을 전수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밀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평가에 의하면 밀레는 최고의 교사였다. “그래서 이 말은 꼭 공개적으로 해야겠는데, 내가 이해하는 라캉은 밀레의 라캉입니다. 밀레를 만나기 이전에 나는 라캉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해서 이 시절은 나에겐 엄청난 배움의 시간이었죠.”(So I must say this quite openly that my Lacan is Miller's Lacan. Prior to Miller I didn't really understand lacan, and this was for me a great time of education.)(34쪽)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도 그러한 배움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