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들렀다가 종각역 지하의 반디앤루니스에 처음 들러보았다. 역시나 익숙한 매장이 아니어서 책들을 둘러보는 일도 좀 어색했는데 인문서 신간 매장에서 우연히 애니 스타브라카키스의 <라캉과 정치>(은행나무, 2006)가 출간된 걸 보았다. 이미 지난번에 숀 호머의 <라캉 읽기>가 출간되었을 때 근간으로 예고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빨리 출간될 줄은 몰랐다. 사실 원서 자체는 지난 1999년에 나온 것이므로 번역/소개 자체가 발빠르게 이루어진 건 아니지만(저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라캉의 정신분석>도 바로 나오는 것일까?).

 

 

 

 

<라캉과 정치>라고 옮겨졌지만, 역자의 해명대로 원제는 '라캉과 정치적인 것(Lacan and the political)'이며, 작년에 나온 폴 패튼의 <들뢰즈와 정치>(태학사, 2005)와 같은 시리즈의 책이다(참고로, 원저는 188쪽 분량이지만 국역본은 459쪽이다. 2배 이상 부풀려진 셈인데 그나마 가격마저 부담스러운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현재까지는 이 두 권만 소개됐지만, 루틀리지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이 시리즈에는 이미 <푸코와 정치>, <데리다와 정치>, <니체와 정치>, <하이데거와 정치>, <레비나스와 정치> 등 여러 권이 출간 목록에 올라와 있는 상태이다(나도 몇 권을 더 갖고 있다). 시리즈의 공동편집자는 <싹트는 생명>(산해, 2005)의 저자인 워윅대학의 키스 안셀-피어슨과 에섹스대학의 사이먼 크리칠리 교수이다. 각각 니체-들뢰즈, 데리다-레비나스 전문가로서 유명하다.

 

<라캉과 정치>의 저자인 야니 스타브라카키스 또한 에섹스대학 출신으로 급진적 민주주의론으로 유명한 어네스토 라클라우의 제자이다('Essex' 를 국역본의 필자소개에서는 '에식스'라고 표기했는데, 원래 발음이 그러한 것인가, 아니면 '에섹스'의 '어감' 때문인가? 뒷표지에도 '슬보예 지젝'을 '슬보예 지젝"이라고 오기했는데, 이것도 발음 때문일까?). 이름이 좀 희한한 것은 그리스 출신이어서이다(왜 있잖은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같은 이름). 

라클라우의 제자란 말은 단순한 사실 이상으로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 책은 라캉의 기본적인 개념을 명확하고 완벽하게 설명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현재의 사회-정치 현상 연구에 적용하려는 지금까지의 시도 중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통찰력 있는 시도이다."라는 라클라우의 찬사를 뒷표지에 싣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스타브라카키스는 자신의 스승이자 동료인 라클라우/무페의 급진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라캉 정신분석학의 윤리 속에서 발견하고 있으니 라클라우로서는 어찌 대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 나온 김에 언급하자면, 라클라우와 무페의 공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Verso, 2001, 2판)은 적어도 이 책 <라캉과 정치>와 같이 읽거나 미리 읽어두어야 하는 책이다. 책은 지난 1985년에 197쪽 분량으로 초판이 나왔었는데, <라캉과 정치>가 출간된 이후인 지난 2001년에 240쪽 분량의 증보된 2판이 출간됐다. 국역본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터, 1990). 물론 품절됐다. 한때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적인 저작인데, 나는 민주주의론에 관한 책으로 이보다 더 재미있는 책을 읽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물론 내가 읽은 게 몇 안되지만). 어정쩡한 제목이 아닌 제대로 된 제목을 달고 조만간 복간되었으면 한다.

 

 

 

 

정리하자면, <라캉 읽기>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두 권 정도는 <라캉과 정치>보다 먼저 읽어두는 게 좋겠다(예비적인 읽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책읽기가 더뎌질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읽어야 할 책은 지젝의 <이라크>(도서출판b, 2004).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Verso, 1989)을 통해 지젝이 '데뷔'할 때 후견자 역할을 하면서 서문을 써준 이가 라클라우이며 지젝은 당시만 해도 (급진적)민주주의론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했었다.

하지만 이후에 지젝은 점차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게 되며(최근의 영화 <지젝!>에서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내비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창피한 것'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라클라우와의 이론적 동반자 관계가 이론적 긴장관계로 전이된다. 이러한 이론적 긴장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는 대목이 (내가 읽은 한도 내에서는) <이라크>의 2장(원서에서는 부록1)에 포함돼 있다. 그걸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샹탈 무페의 <민주주의의 역설>(인간사랑, 2006)과 발리바르의 <민주주의와 독재>(연구사, 1988)를 참고문헌으로 덧붙일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맥락에서 라클라우-스타브라카키스와 지젝은 이론적 전선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전선'은 라캉의 해석을 둘러썬 전선이다. 라클라우와 함께 지젝이 이 책의 (뒷표지에서) '추천사'를 쓰고 있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라캉과 정치>는 명확하고 체계적이며 이해하기 쉽게 저술되었으며,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정치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즉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급진적 민주주의의 입장을 단호하게 보증해주는 정치적인 것에 관한 이론을 포함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스타브라카키스의 책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쟁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논쟁의 용어들을 재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라클라우와 지젝 간의 '논쟁'으로 다시 이해해보고자 하며, 그래서 제목을 '라클라우-라캉-지젝'이라 붙였다. 여기서는 논쟁의 구도만을 제시할 따름이고 그 내용은 차후에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당장 <이라크>의 국역본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보이지 않는군). 사실 이 구도는 역자가 이 책의 의의를 거론하면서 해설에서 잘 짚어주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지젝의 <이라크>를 통해서 이 책과 지젝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논쟁점은 급진적 민주주의 기획과 정치경제학과 계급 적대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획 사이의 논쟁일 것이며, 라캉의 윤리학과 급진적 민주주의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일 것이다."(430쪽) 책은 "이들간의 논쟁점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이해의 발판을 마련해준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구도이다. 물론 책은 언제나 돌발적인 '발견', 우연한 마주침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책읽기는 정해진 경로만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 '긴장'이 물론 독자의 즐거움인 것이고...

07. 01. 05 - 06.

P.S. 내가 갖고 있는 이 책의 원서는 언젠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손수 복사한 것이다. 이 책에서도 자주 참조되고 있는 라쿠-라바르트와 낭시의 공저 <문자라는 타이틀(The title of the letter)>과 함께 복사해서 (비용절감을 위해) 합본으로 제본했었다. 이 책을 만지고 있자니 어느 해 겨울 도서관의 공기가 느껴진다. 나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 수십 권의 책들을 그렇게 복사하곤 했다(스프링 제본을 해주던 아저씨와 안면이 생길 정도로). 그렇게 다 발품과 손품을 판 책들이라 애착을 가는 것. 어제 복사물 더미에서 책을 찾으니까 '서문' 정도를 읽은 것으로 표시돼 있다.

Cover: Language in Literature

원서를 찾자마자 가장 먼저 들춰본 페이지는 야콥슨의 은유와 환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국역본을 뒤적이다가 "은유와 환유는 그림(야콥슨에 따르면 큐비즘은 환유적인 반면에 사실주의는 은유적이다), 영화, 스토리텔링, 그리고 심리적 과정까지 포함하고 있는 모든 기호학적 체계의 형식 속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150쪽)라고 한 대목이 아무래도 오역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사실주의가 은유적이라니?). 한데, 찾아보니 원서에서도 "according to Jakobson, cubism is metonymically oriented while  realism is metaphorically oriented"(58쪽)라고 돼 있는 게 아닌가. 

저자가 참조한 책은 야콥슨의 'Essays on Language of Literature"(1998)인데(이건 아테네에서 출간된 책이다! 국역본의 참고문헌에는 'Essay on  Language of Literature'로 탈자가 있다. 한가지 더 꼬집자면 '내어쓰기'를 하지 않은 참고문헌을 어떻게 읽으라는 것인가? 편집자의 기본 혹은 성의가 부족해 보인다), 보다 대중적인 판본은 하버드대출판부에서 나온 'Language in Literature'(1987)이고 우리말로는 <문학 속의 언어학>(문학과지성사, 1989)으로 번역됐었다(완역은 아니다. 이왕 품절된 김에, 완역본이 재출간됐으면 싶다). 보다 구체적으로 거기에 들어 있는 '언어의 두 양상과 실어증의 두 유형'(이 책엔 '언어의 두 가지 측면과 실어증의 두 유형'이라 옮겨진)이란 고명한 논문이 참조 대상이다.

아테네에서 나온 판본에는 뭐라 적혀 있는지 모르겠지만(<문학 속의 언어학> 또한 당장 옆에 있지 않아서 참조할 수 없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무래도 저자가 'surrealism'을 'realism'으로 오기한 듯싶다. 이 상식에도 맞지 않는 내용이 루틀리지의 편집자에게 걸러지지 않았고 국역본의 역자나 편집자에게도 간과된 것. 해서 교정된 번역은 "야콥슨에 따르면 큐비즘은 환유적인 반면에 초현실주의는 은유적이다"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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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1-06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것쯤 빨리 완성해주세염..로쟈님^^ 제목만으로두 벌써 무슨 내용일찌 기대가 되는군용. 라캉과 정치두 몇일전 주문 했으니 내일쯤이면 받아볼수있을것 같구 ^^

로쟈 2007-01-0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우연히 책을 사게 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원서도 다시 찾아놨으니까 시간만 내면 되겠네요. 한데, 견적은 좀 나올 거 같습니다.^^

2007-01-06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0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영화의 자막파일은 제가 갖고 있는데(최종본은 아닙니다. 교정이 더 필요한 대목이 있어서), 이게 프린트아웃이 안됩니다(혹은 제가 못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볼 때는 자막생성파일를 통해서 불러들여 실행해야 하구요. 재미동에 비공식적으로 DVD 카피본을 구할 수 있는지 한번 문의해보시길. 혹은 자막생성파일을 갖고 계시다면 자막은 이메일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2007-01-06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07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디스 2007-01-08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팅만 하다가 첨으로 글을 남기네요...;; 로쟈님 안녕하세요...;;

지젝! (Zizek!, 2005) 영상 파일을 찾고계신 분이 있는 것 같아 올려봅니다. 이 영화 DVD를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토렌트(P2P 방식 파일공유 프로그램, 네이버에서 검색하시면 프로그램 다운방법과 사용방법을 알 수 있을 겁니다)에 영상 파일이 있습니다. 지젝이 쓴 글들과 지젝에 대한 글들 그리고 야니 스타브라카키스의 'Politics and Religion'도 pdf파일로 올라와 있습니다...;;

http://www.torrentz.com/search?q=Zizek%21

2007-01-08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0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보내드렸습니다...

기인 2007-03-05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오옷 라깡 역시, 다시 봐야 겠군요;;

2009-08-25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