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기 대 반복하기'는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2006)의 결론이다. '되돌아가기'와 '반복하기'의 목적어로 걸려 있는 것은 '레닌'이다. 즉, 지젝이 대비시키고자 하는 것은 '레닌으로 되돌아가기'와 '레닌을 반복하기'의 차별성이고, '레닌을 반복하기'야말로 지젝 고유의/특유의 정치적 전략 혹은 프로그램을 집약해주는 표현이다.

 

 

 

 

비록 작년 여름에 출간된 책이지만, 그리고 때로 부당한 폄하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나는 <혁명이 다가온다>야말로 지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에서 '혁명'이 갖는 의미와 그 가능성을 질문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익한 책이며(왜냐면 분량이 제일 만만하니까!) 특별히 10월 혁명 90주년이 되는 올해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87년 6월을 기념하는 일은 한 30년쯤 뒤로 미뤄두면 안될까?).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를 좀 훑어보면서 올 여름에 이 두권의 책을 정리해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거기에 밀린 숙제를 보태자면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 2005)와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를 마저 읽어야겠다). 그것이 몇 차례 관련 페이퍼를 쓴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이 책을 손에 든 한 가지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이 책이 생각만큼 널리, 그리고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 이면에서 분량만큼 만만치는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읽히고 너무 쉽게 평가되고 너무 쉽게 제쳐놓여진다는 점(그래서 그들은 전진하고 있는가?). 지젝은 비의적인 저자가 아니기에 대단한 수수께끼나 퍼즐, 음모 등을 숨겨놓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책들은 굳이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읽으면 된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상으로는 그냥 읽어나가는 게 대놓고 수월하지만은 않다(수월하게 읽히는 가라타니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번역이 낳는 예기치 않은 장애들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지젝에 대한 오해의 일부는 그러한 장애에 기인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읽어 넘어가기', 혹은 '넘어/너머 읽기'이다. 일단은 '결론'부터 넘어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덕분에 시오랑에 관한 페이퍼가 당분간 미뤄지게 됐다). 혹 몇 분의 독자가 이 책을 좀더 재미있게,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국역본 외에 내가 참조한 건 영어본(2002)과 러시아어본(2003)이다. 이전에 적었지만 국역본은 독어본(2002)을 옮긴 것이며, 이 독어본은 러시아본과 일치한다. 하지만 영어본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영어본은 레닌의 1917년 문건 선집에 지젝인 붙인 후기로 구성돼 있고, 이 후기의 내용이 <혁명이 다가온다>와 대략 일치한다. 하지만 차이가 나는 대목들도 적지는 않다.

"소련의 전체 역사는 프로이트의 로마에 대한 이미지와 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로마의 이미지에는 현재가 고고학적 유물의 서로 다른 층위라는 겉모습으로 침전되어 있다. 마치 트로이의 일곱 층위(서로 다른 모델)처럼 새로운 층은 앞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덮고 있어 역사는 더 오래된 시기를 향한 회귀에서 점점 더 깊이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고고학자같이 된다."(265쪽)

프로이트는 생전에 로마를 여러 차례 방문한 것으로 돼 있는데(특히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에 많은 감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 도시의 역사가 여러 겹의 고고학적 지층이 퇴적돼 있는 걸로 봤다는 것이고 지젝에 따르면 소련사가 바로 딱 그러한 이미지-모델과 비슷한다. 혹은 '또다른 모델(another model)'을 찾자면('서로 다른 모델'이 아니다) '트로이의 일곱 지층'에 비유될 수 있다('층위'보다는 '지층'이 낫겠다). '일곱 지층'이라고 돼 있지만 백과사전의 내용을 참고해보면 전체로는 '아홉 개의 지층'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 중 트로이에 해당하는 것만을 카운트한 듯하다.  

슐리만과 되르펠트는 집들이 건설되어 사람들이 살다가 마침내는 파괴되어 버린 아홉 기(紀)를 나타내는 9개 주요지층의 순서를 밝혀냈다. 제1~7기 트로이는 요새, 트로아스의 수도, 왕의 가족·신하·노예들이 살았던 왕의 거주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1~5기는 청동기시대 초기(BC 3000경~1900)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 기간 동안의 주민들이 에게 해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 섬, 헬라도스 문화기의 그리스 본토에 살던 주민들의 선조였을 것이며, 아나톨리아 남서부 또는 시리아로부터 온 것으로 추정된다. 트로이 제6·7기는 청동기시대 중기와 말기(BC 1900경~1100)에 해당한다. 불과 한 세대 동안 지속되었던 제7a기는 BC 13세기경 발생한 화재로 파괴되었는데, 아마도 이때의 트로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묘사된 프리아모스 왕의 도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의 파괴 이후 약 400년간 이곳은 사실상 버려졌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정착한 것은 제8기이며,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일리온은 제9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소련사는 어째서 이러한 도시들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가? "소련의 (공식 이데올로기) 역사는 배제의, 인간의 비인간으로의, 역사의 회고적인 다시 쓰기와 동일한 축적이 아닌가?" 즉, 공식 이데올로기상으로 소련사는 지속적인 배제의 축적이요, 사람들을 비인간으로 내모는 일의 축적이자, 거듭 역사 다시쓰기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탈스탈린화'는 '복권', 즉 당의 과거 정치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반대의 과정이라고 신호되었다." '신호되었다'고 옮겨진 단어는 영어본에서는 '지시되었다(indicated)'로, 러시아어본에서는 '수반되었다'로 옮겨졌다. 내 식으로 다시 옮기면, "'탈스탈린화'가 정반대의 과정, 곧 점차적인 '복권'과 당의 과거 '오류들'에 대한 인정을 통해 표시되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논리적이다." 여기서 흥미를 끄는 것은 '점차적인' 복권의 과정/순서이다.

"악마처럼 취급되던 볼셰비키 옛 지도자들의 점진적인 '복권'은 아마 소련의 '탈스탈린화'가 어느 정도(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민감한 지표로 기능할 수 있다." 해서 가장 먼저 복권된 사람들이 1937년에 총살당한 (투하체프스키 같은) 군 지도자들이고 맨마지막으로, 그러니까 고르바초프 시기 공산주의 정권 붕괴 직전에 복권된 이가 부하린이었다.

미하일 투하체프스키(1893-1937)는 소련군 최고사령관(1925-28)을 지낸 고위 장성이지만 1936년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을 순방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이듬해 군내 트로츠키파 조직을 건설하고 독일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그리고 저명한 볼셰비키 니콜라이 부하린(1888-1938)은 혁명직후 <프라우다>지의 편집장을 지냈고 여러 권의 사회주의 경제이론서를 집필했다. 1921년 신경제정책(NEP)을 주도적으로 지지하면서 '우파'의 우두머리가 된다. 역시나 1937년 트로츠키파란 혐의를 뒤집어쓰고 비밀리에 체포되어 이듬해에 처형당했다. 국내엔 <과도기 경제학>(백의, 1994) 등이 번역돼 있으며, 단행본 연구서로는 김남국의 <부하린: 혁명과 반혁명 사이>(문학과지성사, 1993)가 유일한 게 아닌가 싶다. 부하린의 복권은 1988년에 이루어졌다.

"이 최후의 복권은 자본주의로 돌아간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복권된 부하린은 1920년대 '부자가 되자!'라는 유명한 구호를 내걸고 노동자와 농민 간의 동맹을 주창했고 강제 집산화에 반대했다."  이 유명한 구호(슬로건)가 영어로는 "Enrich yourselves!"이다. 딱 "부자되세요!". 부하린의 복권과 함께, 그리고 '부자되세요!'란 구호의 부활과 함께 러시아는 다시 자본주의 사회로 돌아가게 된 것.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절대 복권될 수 없는 인물,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반공주의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에게도 배제되는 한 사람, 레온 트로츠키, 혁명의 '떠돌아다니는 유대인', 진정한 반스탈린주의자, '일국 사회주의 건설'의 아이디어에 대립되는 '영구혁명'을 주창한 철천지원수가 있다."(266쪽)

 

 

 

'철천지원수'란 표현은 영어로는 'arch-enemy'이며 러시아어로는 '저주받은 적'('불구대천의 원수')이라고 옮겨져 있다. 1920년대 권력암투의 트로이카 '부하린(우파)-스탈린(중도파)-트로츠키(좌파)'에서 트로츠키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복권될 수 없는 인물(포지션)로 남아 있는 것(*최근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전기 3부작이 완간되었다 -07. 25.). 

 

 

 

 

"우리는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근원적(기초적) 억압과 무의식 속에서의 부차적 억압 사이의 구별과 위험을 무릅쓰고 나란히 다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물론 트로츠키는, 트로츠키의 배제는 '근원적 억압'에 해당한다. "1990년 이전의 현존 사회주의에서뿐 아니라 1990년 이후의 현존 자본주의에서 심지어는 공산주의에 대해 향수를 가지는 경우도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트로츠키는 어떤 자리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아마 '트로츠키'라는 기표는 레닌주의의 유산에서 다시 찾을 가치가 있는 가장 적절한 호칭일 것이다."(266-7쪽)

분량상 레닌주의의 유산으로서의 트로츠키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07.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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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6-13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맛만 보다가 만 느낌입니다. 후편도 어서 써주시길 ^^

그런데 소련사가 로마의 지질학적 지층과 같은 여러 겹의 지층을 가지고 있다는 비유가 적절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 공식 이데올로기상으로 소련사는 지속적인 배제의 축적이요, 사람들을 비인간으로 내모는 일의 축적이자, 거듭 역사 다시쓰기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인 것 같은데 트로츠키와 같은 여러 당내인물들의 배제가 축적되어온 역사라는 것을 굳이 고고학적 지층과 연계시키는 이유는? 그냥 문학적 수사인 것인지..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요.

로쟈 2007-06-1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은 그냥 읽어보셔도 될 거 같은데요.^^

yoonta 2007-06-13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산다 하고 계속 뒤로 밀리게 되네요. 로쟈님 페이퍼때문이라도 어서 한권 사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

2007-06-28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6-2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지젝의 레닌론이 많은 도움이 되실 거 같습니다. 주객분리론에 대해서도. 제 생각은 7월로 넘어가야 보탤 수 있을 거 같고요.^^;

노승영 2008-10-2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트로츠키 론(『Terrorism and Communism』 서문)을 번역하는 중에
프로이트의 로마 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로쟈 님 블로그로 연결되더군요.
지젝이 레닌에게 써먹은 표현을 많이 차용하고 있어서 이 블로그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번역 비평 글이 있길래 마감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도 다 찾아 읽었습니다.
답례(?)로 제 번역을 올립니다.
혹시 출간 전 원고를 읽어보실 의향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①⑧⑤⑤③①①①③@paran.com

소 비에트 연방의 전체 역사는 프로이트가 로마를 표현한 유명한 이미지와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로마 역사는 여러 겹의 고고학적 지층이라는 형태로 저마다의 현재에 퇴적되어 있다. (또 다른 모델인) 트로이의 일곱 지층과 마찬가지로 새 지층이 이전 지층을 차례로 덮고 있다. 따라서 역사는--앞선 시대를 향해 퇴행하며--고고학자가 깊숙이 더 깊숙이 땅을 파헤치며 새 지층을 발견하듯 나아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비에트 연방의 (공식 이데올로기적) 역사는, 배제하고 인간을 비(非)인간으로 전락시키고 역사를 소급하여 다시 쓰는 행위가 누적된 것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복권’ 과정, 즉 당의 과거 정책에서 ‘오류’를 인정하는 정반대의 과정이 탈(脫)스탈린화의 신호탄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다.

The entire history of the Soviet Union can be comprehended as homologous with Freud’s famous image of Rome, a city whose history is deposited in its present in the guise of the different layers of the archaeological remainders, each new level covering up the preceding one, like (another model) the seven layers of Troy, so that history, in its regression towards ever older epochs, proceeds like the archaeologist, discovering new layers by probing deeper and deeper into the ground. Was the (official ideological) history of the Soviet Union not the same accumulation of exclusions, of turning persons into non-persons, of the retroactive rewriting of history?Quite logically, ‘de-Stalinization’ was signalled by the opposite process of ‘rehabilitation’, of admitting ‘errors’ in the past policies of the par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