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이면 매번 써야 되는 원고가 있고, 굳이 쓰는 페이퍼도 있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이 그 페이퍼다. 생각해보니 이 페이퍼의 용도는 당장에 읽을 책들을 나열하는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미래에 회고적으로 돌이켜보기 위함인 듯싶다. 작년에 쓴 걸 보면서 든 생각이다. '먼훗날' 다시 '지금'을 회고하기 위해서라... 그런 생각이 들자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다시 손을 댄다. 안부도 전할 겸...  

1. 문학 

작가 신경숙씨가 고른 문학분야의 책은 서하진의 소설집 <착한가족>(문학과지성사, 2009)이다. "<착한가족>안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을 보면 선량한 가족들의 이야기인줄 알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의 최소 단위라고 볼 수 있는 가족구성원들에게 치밀한 렌즈를 갖다 댄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착하다기 보다는 마지막 보루처럼 착해야 한다는 사명을 띠고 어떻게든 타인과 소통을 이루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매 상황들이 매우 드라마적이다."라고 소개된다.  

불황기에는 대개 '가족'이 화두가 되곤 했던가? 현재 장기 베스트셀러가 될 채비를 갖추고 있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2008)가 어필하는 것도 그런 사회적 여건과 무관하진 않겠다. 가족이 문제라면, 미국 중산층 가족의 일상과 상처를 다룬 조이스 캐롤 오츠의 <멀베이니 가족>(창비, 2008)도 꼽아보도록 한다. 880쪽에 이르는 책이라 아마 읽다 보면 개나리가 피고 지고 하겠다...  

2. 역사  

역사저술가 이덕일씨가 추천한 책은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푸른숲, 2009)인데, 버나드 칼슨 등이 쓴 책 <세계사 속의 기술>의 우리말 번역서다. "원제는 'TECHNOLOGY IN WORLD HISTORY'로서 '과학기술로 보는 세계사'라는 뜻이다.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란 제목으로 둔갑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한번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든다는 암시일 것이다.(...) 인류를 발전시킨 과학기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덧 세계사에 대한 지식까지 풍부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손색이 없다."라는 게 추천의 변이다.  

   

말랑하고 쫀득한 이야기가 입맛에 맞지 않다면 보다 정통적인 역사에 도전해볼 수도 있겠다. 중국사를 주제로 하는 건 어떨까? 존 킹 페어뱅크 등이 편집한 <캠브리지 중국사>(새물결)가 아직 완간되지 않은 상태인지라 현재 읽을 수 있는 통사는 페어뱅크와 멀 골드만의 <신중국사>(까치,2005) 정도(보다 전문적인 건 국내 학자들이 쓴 <강좌 중국사>(지식산업사) 시리즈를 참조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에 오래 봉직했던 페어뱅크는 영어권 중국사학계의 좌장이다(동료나 제자들에게 JFK라 불린다고). 때문에 그의 책은 '한 역사학자의 시각'이 아니라 '중국사를 보는 서구의 시각'을 대표하며 그런 의미에서도 필독해볼 만한 책이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시공사, 2001)은 '사진과 그림' 때문에 봐둘 만하겠고, <중국, 그 거대한 행보>(경당, 2002)의 저자 레이 황은 그 호방한 필력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역사학자다.    

3. 철학 

역사에서 철학으로 넘어보니 난이도가 수직상승한다. 김상환 교수의 추천도서가 <자크 라캉 세미나 11권-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새물결, 2008)이기 때문이다. 추천의 변은 격찬으로 가득 차 있다.  

"라캉의 언어 속에서 재탄생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그 극적인 재탄생 과정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책이 이번에 번역된 <자크 라캉 세미나 11권: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이다. 국제정신분석학회(IPA)에서 파문을 당한 1963년 라캉은 이론적 홀로서기의 길로 나아갔고 구조주의자로 평가되던 자신의 과거와도 과감하게 결별했다. 이 책의 부제가 암시하는 것처럼 이런 새 출발은 정신분석의 원천과 토대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드디어 이런 위대한 변신과 도약의 드라마를 잘 다듬어진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라캉 정신분석의 보물 상자를 누구라도 쉽게 열 수 있는 가슴 벅찬 순간이 왔다. 난해한 라캉의 문장을 자연스럽고 명료한 우리말로 옮겨놓은 번역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라캉은 이 세미나를 전쟁터의 기지를 구축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 이번의 책과 번역자들의 후속작업은 국내 정신분석 연구와 대중화에 수없는 승리와 진전을 가져올 항구적 기지의 초석이 될 것이다." 

몇 페이지 읽어보지 않아서 '가슴 벅찬 순간'에까지는 합류하지 못하지만 '자연스럽고 명료한 우리말'로 옮겨졌다는 평에는 안도감을 느낀다. 올해 출간되는 <에크리>에도 기대를 걸어봄 직하다. 혹 그럼에도 라캉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부담스런 독자라면 숀 호머의 <라캉 읽기>(은행나무, 2006)나 지젝의 <HOW TO READ 라캉>(웅진지식하우스, 2007)을 합석시킬 수도 있겠다. 원래는 루디네스코의 평전 <자크 라캉>(새물결, 2000)을 꼽아두려고 했는데 어느새 절판됐다(나는 얼마전에 원서와 함께 정독할 준비를 해놓았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앨 고어의 <이성의 위기>(중앙북스, 200)이다. 원제는 '이성의 암살'쪽에 더 가까운데, '이성'이라고는 했지만 문제가 되는 건 '미국 민주주의'다. 추천사에 따르면, "그는 미국역사상 처음으로 시민들이 영장도 없이 가택수색과 체포를 당하는 등 지난 8년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이를 단순히 부시의 잘못으로 치부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위기로 진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민주주의란 이성의 힘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같은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이라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나오미 울프의 <미국의 종말>(프레시안북, 2008)과 뜻을 같이하는 게 아닌가 싶다. 거기에 촘스키까지 보태자면 인터뷰집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시대의창, 2009)까지 포함할 수 있겠다. 한데, 모두 지난번 대선 이전 곧, '변화의 길목'에 출간된 책들이라 '오바마 시대'의 향방까지는 다루고 있지 않다. 내년 이맘때쯤 오바마가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궁금하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관련서는 조준현의 <19금 경제학>(인물과사상사, 2009)이다. 제목에 왜 '19금'이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와 같은 최근 뉴스기사를 접하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주가 조작, 은행의 비리 등 금융권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잇따라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1일 주가 조작을 노리는 작전 세력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작전'(감독 이호재 영화사사 비단길 제작)이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데 이어 은행의 음모와 비리를 다룬 외화 '인터내셔널'도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영등위는 '작전'에 '18금' 등급을 매긴 주요 이유로 "증권과 관련된 용어와 주가 조작에 대한 세세한 묘사 등 주제 이해도 측면에서 청소년들의 이해도 고려, 청소년에게 유해한 장면, 모방의 위험"을 들었다.(마이데일리, 09. 01. 29)  

조폭 영화는 청소년들이 봐도 좋지만, 금융비리를 다룬 영화는 '모방의 위험' 때문에 안된다? 하여간에 어처구니 없는 정권이 한번 들어서면 국가기관의 이성이 모두 '실종'(혹은 암살!)되는 모양이다. '경제는 알려고도 하지마!', 그런 게 이 정부의 모토라면, '19금 경제학'이야말로 딱 들어맞는 제목 아닌가?!  

추천사에 따르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경제학에 대해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도한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이 책 한 권을 읽고 경제학의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생각할 거리를 얻게 된다는 점에 만족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같이 읽을 만한 책에는 뭐가 있을까? 지승호와의 대담집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시대의창, 2009)와 새사연(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시대의창, 2009)는 어떤지? 부제대로 아무래도 올해의 화두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MB노믹스를 넘어'일 듯하므로. 더 나아가 '자본주의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마련해두어야겠다.  

한편으로 이번 세계경제 위기의 원인이 '금융'이 아니라 '실물'에 있다는,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브레너 교스의 진단도 흥미롭게 읽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5868.html). 그에 따르면, "오늘날 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난 1973년 이후, 특히 2000년 이후 선진 자본주의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 이번 위기는 2차 대전 후 가장 심각한 불황이었던 79~82년 불황 때보다 더 심각한 상태고, 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갈 정도로 악화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제예측가들은 현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들은 실물경제가 그래도 견실하다고 과대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실물경제가 그동안 자산시장 거품에 의존한 채무 누적으로 지탱돼왔다는 사실에 눈감고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 책이 브레너의 <혼돈의 기원>(이후, 2001), <붐 앤 버블>(아침이슬, 2002) 등이다. 그는 자본주의 미래에 대해서 상당히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는 편인데, 이번에 최소한 <붐 앤 버블>은 필독해볼 생각이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국내 사회학자들의 의기투합하여 펴낸 <대한민국은 도덕적인가: 한국사회 도덕 살리기 프로젝트>(동아시아, 2009)이다. 제목상으로는 상당히 '관변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하는데, 취지는 좀 다른 모양이다. 추천사에 따르면, "이 책은 한국사회의 도덕성에 관한 사회학자들의 글 모음이다.(...) 아홉 명의 저자들은 다양한 방식과 예증을 통해 현대 한국사회의 도덕적 위기를 진단한다. 어떤 이들은 공정 경쟁을 보장하는 사회규범의 오작동이나 사회적 신뢰의 상실에서, 다른 이들은 모순적 규범들 간의 탈구나 시민의식의 부재에서, 또 다른 이들은 부도덕을 강요하는 시장 제일주의나 왜곡된 과학주의에서 그 원천을 탐색한다. 이렇듯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소 다르기는 하나, 한국사회의 도덕성을 논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어느 학문보다 현실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사회적 당면 과제들에 관해 고민하며 개선을 도모하려는 사회학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좀 감이 안 오는데, 소개를 보니 이런 문제들을 다룬다고 한다.  

·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한국유학생들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 타이레놀을 만든 존슨 앤 존슨이 신뢰경영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 현대사회에서 패륜적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우리나라에 만연한 성형 열풍, 왕따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일상적 매너와 윤리, 사회적 규범을 사회학적으로 이해한다.
· 일상생활에서도 우리의 문화가 재생산된다. 놀이공원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성찰하는 한국사회의 도덕성.
· 한국은 왜 8월 15일에 추석을 쇠고, 중국은 10월 10일에 쌍십절을 쇠는 이유는 뭘까
· 도덕에도 남성적 도덕과 여성적 도덕이 있다. 남성중심주의적 도덕을 파헤친다.
· 2008년의 촛불집회가 보여준 새로운 시민문화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 태안 기름유출 사건에 그토록 많은 국민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한 원인은 무엇일까
· 황우석 사태와 광우병 논쟁을 통해 거대 과학 시대의 윤리에 대해 성찰한다.
  

한데, 지역문제와 교육문제는 빠진 듯해서 강준만 교수의 책 두 권을 더 얹어놓는다. 작년에 나온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2008)와 이번에 나온 <입시전쟁 잔혹사>(개마고원, 2009)가 그 두 권이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고른 과학책은 남극 얘기다. 고경남의 <서른셋, 지구의 끝으로 가다>(북센스, 2009). 여름에 더 어울릴 만한 책인데, "저자는 서울에서 17,240km나 떨어진 남극세종기지에서 1년을 보낸 의사다. 지겨운 일상의 탈출구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남극은 이름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누구나 갈 수 없는 곳이 남극이다. 독자들은 남극세종기지 월동대를 “남극마을 개구쟁이 스머프”로 표현한 저자의 눈을 통해 세종기지의 일상을 엿볼 수 있고 사람들의 손발을 꽁꽁 묶어버리는 강력한 눈폭풍인 블리자드가 남극에선 얼마나 큰 공포임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남극에 관한 책으로 뭔가 두툼한 것이 있었던 듯싶은데, 검색해보니 어린이용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해서 초등학교 때 세계위인전집에서 읽은 두 명의 탐험가 아문센과 스콧을 오랜만에 떠올려본다. 스콧의 <남극일기>(세상을여는창, 2005)는 현재 품절상태지만,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생각의나무, 2004)는 아직 구할 수 있다. 뭔가 더 멋진 책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아쉽다...  

8. 예술  

흠, 드라마의 파워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서희태의 <베토벤 바이러스>(MBC프로덕션, 2008)이다. 추천의 변은 이렇다. "한국 최초의 클래식드라마 라는 <베토벤 바이러스> 열풍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 덕에 클래식 음악과 음악계가 대중의 관심을 더 받게 되어 적지 않게 즐거워하고 있다. 여러 차원의 음악 강좌가 활성화되고, 재미있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도 지속적으로 청중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 사회에 미치는 드라마의 위력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드라마 속 인물, 강마애(김명민 분)에게 뒤에서 직접 지휘를 가르친 예술 감독 서희태가 클래식음악 입문서를 내놓았다. 어느 전문가의 책보다도 <베토벤 바이러스>의 영향력이 컸던 만큼 이 책을 보면 아마 이미 드라마를 통해 학습된 여러 가지 지식이 좀더 심화되고 흥미로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강마애가 나오는 몇 장면은 봤지만 나는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별다른 감흥이나 '위력'은 느끼지 못한다. 주중에 읽은 공진성의 <폭력>(책세상, 2009)에도 상징폭력을 다루면서 이 드라마 얘기를 잔뜩 늘어놓았기에 좀 어리둥절했었다(기대와는 동떨어진 책이었다). 그럼에도 베토벤이 대세라면, 고규홍의 <베토벤의 가게부>(마음산책, 2008)는 어떤가. 부제가 '클래식과 경제'이고, 음악가들의 ‘생계’를 화두로 삼은 클래식 음악사다. 저자는 음악가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1. 그들은 왜 가난했나.
2.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강구했나.
3. 생활인으로서 그들의 자의식은 어떠했나.
  

흠, 곤란한, 아니 짓궂은 질문들이군. 나는 음악가가 아니니 피해가도록 하겠다. 덧붙여 베토벤 마니아를 자임하는 서울대 의대 조수철 교수의 <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에 대하여>(서울대학교출판부, 2007)도 클래식 애호가라면 필수 소장도서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모로하시 데쓰지의 <십이지 이야기>(바오, 2008). 모로하시 선생은 백수(白壽)에 <공자 노자 석가>(동아시아, 2001/2008)를 펴내 화제가 됐던 일본의 석학인데, 얼마전에 나온 이 책은 말 그대로 자축인묘- 하는 십이지에 대한 것이다. "참으로 박식한 모로하시 선생은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와 음양오행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풀어내고 이어 각 띠별로 동양의 각종 고전에 담긴 전설과 우화까지 동원해 그 장단점을 구수하게 풀어낸다." 지난 설연휴에 읽을 만한 책이지 않았을까.  

10. 재출간본

이제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이다. 과학분야의 재출간본을 세 권 골랐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사이언스북스, 2009)는 예전 범양사판도 갖고 있지만(http://blog.aladin.co.kr/mramor/2511755) 이번에 아주 근사한 장정의 책이 나와서 지갑을 또 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또 치하할 만한 책은 바뀐 출판사에서 가격을 낮춰 보급판으로 낸 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동녘사이언스, 2008)과 제프리 밀러의 <연애>(동녘사이언스, 2009). 후자는 예전에 <메이팅 마인드>(소소, 2004)로 출간됐었는데, 32000원의 고가였다. 이번에 19800원으로 떨어졌으니까 2/3로 저렴해진 셈. 이 세 권의 책을 이번 대학 신입생들에게 강추하고 싶다...  

09. 01. 31. 

 

P.S. '이 달의 고전'은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유문화사, 2009)도 출간된 김에 '고전 읽기'에 관한 책으로 고른다('메타고전 읽기'인가?).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민음사, 2008)와 도쿄대 교양강좌의 교재 <문학, 어떻게 읽을까>(민음사, 2008) 등이 책상 가까이에 있는 책들이다.   

거기에 데이비드 덴비의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씨앗을뿌리는사람, 2008)을 덧붙이고 싶은데, 책은 중견의 영화평론가가 두 학기 동안 들은 교양강좌에서 읽은 책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어서 '실전적'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2184381). 미국대학 교양교육 핵심과정을 소개하는 <인문학 스터디>(라티오, 2009)가 '가이드북'이라면 이 두 권의 책은 '현장 실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인문학 스터디> 같은 경우는 '교양교육의 정신'이 으레 그렇지만 보수 엘리트주의적 경향이 짙은 책인데, 편역자들은 어떤 계산을 했던 것일까?). 개학을 맞기 전에 휘리릭 읽고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고전에 대해서, 읽기에 대해서, 강의에 대해서, 그리고 대학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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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9-01-3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월이라서 이렇게 분량이 짧은가요^^
진행중이신가..

로쟈 2009-01-31 20:54   좋아요 0 | URL
네, 시간이 좀 걸립니다.^^;

푸른바다 2009-02-01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환 교수님이 이토록 흥분하시는 걸 보니, 라캉이 이제 한국어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모양이군요. 전 15여년 전에 권택영 교수가 엮은 <욕망이론>을 읽다가 난해해서 포기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라캉이란 이름은 고등학교 때 신동아 별책 부록인 <오늘의 사상 100인 100권>을 통해 알게 됐는데, 라캉의 <선집>이 마음 속에 각인된 몇 권의 책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때는 라깡으로 표기되어 있었기에 제겐 '라깡'이 더 친숙한 표기법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교보에서 겁없이 불어판 <에크리>를 사기도 했는데, 이게 지금은 행방불명이군요^^ 그후 다시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다음 <욕망이론>의 번역본을 발견하고 반갑게 집어들었는데 그만 좌절을 겪은 셈이지요^^ 그 후 마단 사럽의 <알기쉬운 자크 라캉>을 읽고 어렴풋이 이해된다는 느낌(주관적이지만^^)을 가졌었는데, 아니카 르메르의 <자크 라캉>을 읽다가 다시 좌절에 빠졌지요^^ 아무튼 관심의 역사는 길지만 이해의 심도는 별로 깊어지지 않았는데, 이제야 몇 계단 더 깊이 내려가 볼 수 있는 전등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새로운 좌절을 맛보게 될런지도 모르지만^^

로쟈 2009-01-31 22:00   좋아요 0 | URL
<욕망이론>은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하기 어려운 책이지요. 그나마 지금은 상황이 많이 호전된 듯해서 다행입니다...

푸른바다 2009-01-31 22:15   좋아요 0 | URL
오래간만에 1986년 신동아 1월호 별책부록 <오늘의 사상 100인 100권>을 펼쳐 보니 <선집(에크리)> 소개 마지막 문단이 이렇게 되어 있군요^^ "라깡에게는 <선집>이외에 스무권이나 되는 <세미나>가 있다. 고등사범학교의 후원으로 일반대중에게 한 강의를 모은 것인데, 그 중에서도 제 11권은 10년 동안 계속해서 베스트 셀러로 꼽히는 책이다." 그 <세미나 11>이 23년 만에 제 눈 앞에 나타났군요^^

로쟈 2009-01-31 22:17   좋아요 0 | URL
그 별책부록은 저도 아주 옛-날에 봤던 건데, 아직도 보관하고 계시군요.^^

노이에자이트 2009-01-3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버트 브레너가 저렇게 생겼군요.경제사 공부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학자지요.그런데 브레너의 위의 책들이 공황을 다룬 건데 어휴...공황론을 요즘 공부하는데 정말 어렵더군요.공황론 공부하다가 공황상태가 되었습니다.

로쟈 2009-02-01 00:38   좋아요 0 | URL
공황의 원인은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 메카니즘이 어려운가요?..

노이에자이트 2009-02-01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황 이론 가지고 난다 긴다는 이론가들이 맞붙었는데 지금도 논란이 많아요.그냥 공황이 일어난 당시 상황을 르포형식으로 써놓은 책이라면 그럭저럭 괜찮은데 공황원인론에 대한 글을 보면 머리가...빙글빙글...

로쟈 2009-02-01 10:49   좋아요 0 | URL
그래도 월가의 금융공학만큼 복잡하진 않을 듯싶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2-01 15:07   좋아요 0 | URL
마르크스 자본론 제 2권의 재생산 표식을 가지고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내는데...계량 경제학은 마르크스 경제학엔 없을 줄 아는 이들은 뒤로 자빠져 버릴 것 같아요.폴 스위지<자본주의 발전이론> 뒤편에 나오는데,대단하더군요.

로쟈 2009-02-01 21:41   좋아요 0 | URL
오늘 도서관에서 <붐 앤 버블>을 대출해왔는데, 이 책엔 수식 대신에 도표만 많이 들어가 있네요. 사실 아무리 그래도 초끈이론에 나오는 수학 공식들보다야...^^;

2009-02-01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1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1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1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1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r 2009-02-0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이 페이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쟈 2009-02-01 21:42   좋아요 0 | URL
아, 한 분이 기다리셨군요!^^

릴케 현상 2009-02-0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강유원 선생강연에서(?) 경제학자가 일진인가 아닌가 확인하는 방법으로 공황을 전공했는가를 체크해볼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로쟈 2009-02-02 14:11   좋아요 0 | URL
주류 경제학자들은 잘 안 다룬다고도 하더군요. 설명할 수 없어서...

노이에자이트 2009-02-0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리고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에 나오는 저자의 조셉 콘라드 해석을 주목해 보십시오.제가 콘라드를 좋아해서인지 그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콘라드를 오리엔탈리즘에 사로잡힌 제국주의자라는 해석은 그다지 찬성하지 않습니다.물론 사이드와는 반대되는 해석이지요.

로쟈 2009-02-02 21:0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어디 리뷰에서 언급한 걸 읽은 것 같습니다. 주의해서 보겠습니다...

2009-02-06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6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중국 출판계에서는2007년부터 명나라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지만(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35130.html) 아직은 우리와 무관한 듯싶다. 대신에 이번주에 나온 중국사 관련서 두 권은 모두 청나라를 다루고 있다. 일본학자 이시바시 다카오의 <대청제국 1616-1799>(휴머니스트, 2009)와 미국학자 켄트 가이의 <사고전서>(생각의나무, 2009)가 그 두 권의 책이다('사고전서'란 말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중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놓치기 어려운 책들이겠다...  

 
왼쪽부터 청조 1대 황제 누르하치, 2대 홍타이지, 3대 순치제, 4대 강희제, 5대 옹정제, 6대 건륭제의 초상.

국제신문(09. 01. 31) 淸 … 다민족국가 중국의 원형    

'만주족이 세운 일개 소국이 만족할 줄 모르는 혁신력에 의지하여 차츰 거대한 중화 세계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힘은 장성 안쪽 세계의 테두리를 아득히 넘어 몽골 세계와 티베트 세계를 통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중앙아시아로까지 진출하여 이슬람의 위구르 세계도 수중에 넣었다. 청조의 그 만족할 줄 모르는 혁신력이란 도대체 어떠한 역사의 변화를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한국어판 서문 중) 



대청제국의 저자 이시바시 다카오(일본 고쿠시칸대 교수)의 서문은 명쾌하다. 역사학자로서 저자의 과녘은 두 가지. 중국을 정복할 당시 인구 100만에도 미치지 못한 만주족이 1억 명에 가까운 한족을 280년 동안 통치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대청제국은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판도를 구축하면서 팽창하고 발전했다. 그 원동력을 혁신력을 중심으로 밝히고자 하는 것이 하나다. 

또 한가지는 대청제국이 태생할 때부터 본질적으로 '복합 다민족 국가'였음을 밝혀내면서 이러한 체제의 형성·운영원리가 현대의 중국에까지 이어져오고 있음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현대 중국을 알려면 청나라라는 뿌리부터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 중국은 1980년대 공포한 헌법에서 복합적인 다민족 국가임을 명기했고, 이런 다민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고민에서 동북공정 등의 대처법이 나온 것인데 이러한 행위와 인식의 뿌리가 대청제국 시절에 형성됐고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저자는 논증한다. 



일련의 혁신과정. 이것이 청나라 발전과 팽창의 원동력이다. 1616년 아이신국(후금 또는 만주국)을 세우면서 청 태조가 된 누르하치는 25세에 거병할 때만 해도 일족에서조차 후원받지 못하는 고립무원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속한 여진족에게 숙명처럼 따라붙던 가난에 맞서려고 한족의 농경사회를 경제적 기반으로 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선대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몽골과 한족을 끌어들이고 내부적으로는 군사제도인 팔기제도를 창시하면서 여진족의 전통적 부족제를 혁신한다. 

누르하치에게 권력이 집중되던 상황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보수파는 그가 죽자 힘없는 권력승계순위 최하위 홍타이지를 2대 황제로 선택해 재기를 노린다. '보수의 반격이었던 것이다.'(121쪽) 홍타이지는 '굴욕감을 참고 분권통치 체제에 안주하는 편안한 길'보다 위험을 무릅쓰고 집권화에 모든 것을 건다. 홍타이지는 '한족의 정치·경제·군사력과 몽골족 기마병의 기동력'을 새 기반으로 삼고 혁신을 단행해 결국 대청국 건국을 선포한다.

뒤를 이은 순치제는 유목민 전통을 깨고 중화적 방식인 환관제도까지 도입했고 이후 강희·옹정제는 관료적 중앙집권제를 강행하는 두뇌와 강단으로 지배구조를 반석에 올린다. 청나라 전성기의 절정을 장식한 건륭제는 60년 치세 동안 오늘날의 중국보다 훨씬 넓었던 강역을 개척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혁신-보수의 대립 과정에서 시행된 일련의 혁신 과정을 통해 중국은 '만리장성 이남 한족의 나라'에서 몽골 위구르 티베트 등을 포괄하는 복합적 다민족국가가 되었고 이에 걸맞은 이데올로기와 인식을 형성했다는 점. 이렇게 놓고 보면 청나라를 단순히 한족 왕조를 대체한 정복왕조로 보는 기존 시각은 '천만의 말씀'이다. 대청제국은 이전 '중화제국' 시스템을 해체하고 새로운 복합적 다민족국가로서 중국의 뿌리를 놓았으며 오늘에 이른 것이 된다. 이 점이 이 책의 새로운 점이다. 청나라 팽창기 판도는 성과 자치구로 이뤄진 현대 중국의 시스템과 대비시키면 거의 일치한다.

후반부에 가면 잘 나가던 대청제국이 건륭제 이후 쇠퇴기로 접어든 원인도 고찰한다. 그 중 한가지는 '혁신은 가고 보수만 남았다'는 것. 새가 좌우 날개로 날듯 혁신·보수가 짝을 이뤄야 국가도 활력을 잃지 않는다는 교훈을 여기서 도출하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역사에서 실용을 배우는 경영서적이나 CEO론이 아닐까 싶을 수 있겠지만 '대청제국'은 역사연구서로서 정통 인문학 책이다. 그럼에도 '혁신력' 또는 '혁신과 보수'라는, 친숙하고도 현명하게 대처해내기 힘든 함수를 푸는 데 영감을 준다.(조봉권 기자) 



문화일보(09. 01.31) 18세기말 中의 세계최대 출판 프로젝트

1772년 2월 중국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는 총독·순무·학정 등 각 성(省)과 현(縣)의 관리들에게 그들이 관장하는 모든 서고(書庫)에 보관된 희귀본과 귀중본들을 조사하는 한편, 이들을 필사해 그 성과물을 베이징(北京)으로 보낼 것을 명령했다. ‘사고전서(四庫全書)’의 편찬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건륭제는 개인 장서가들에게도 그들이 소장한 귀중본을 자발적으로 베이징에 보낼 것을 촉구했다.

1773년 3월에는 각지에서 보내온 책들을 수납하고 내용을 평가하기 위한 행정기구가 베이징에 창설됐고 사업을 위한 실무진도 구성됐다. 당시 조정이나 학술계의 명사로서 이 기구에 참여한 찬수관·분교관·등록관만도 300명이 넘었다. 22년에 걸쳐 완성되고 수정된 최종 결과물은 청 제국에 남아 있던 1만680종의 책을 경전·역사서·철학서·문학서의 사부(四部), 즉 사고(四庫)로 나눠 그에 대한 해제를 작성한 목록과 그중 3593종을 3만6000여 책으로 다시 필사한 방대한 총서였다.  

Cover: The Emperor's Four Treasures 

미 워싱턴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61)가 자신의 하버드대 박사 논문을 기초로 완성한 책은 ‘사고전서’의 편찬 과정을 통해 건륭제 시대의 학자와 국가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고전서:건륭 연간의 학자와 국가’가 원제인 책에서 저자는 ‘사고전서’가 건륭제가 벌인 검열과 탄압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기존 학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고전서’의 편찬이 당시의 학자와 국가, 건륭황제의 이해가 모두 반영된 복합적 행위의 성과물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사고전서’가 편찬될 당시인 1770년대부터 1790년대까지의 청대 사상가들과 그들을 후원한 고위 정치가들의 삶을 다루는 한편, ‘사고전서’의 편찬 과정에서 벌어지는 한학파(漢學派·고증학자)와송학파(宋學派·성리학자)들 사이의 첨예한 논쟁과 갈등, 대립과 반목을 섬세하게 복원해냈다.

사실 ‘사고전서’ 편찬 사업은 1770년대 후반과 1780년대 초반 조정에서 진행된 검열운동 때문에 20세기 내내 비판을 받아왔다. 한 통계에 따르면 이 검열운동을 통해 2400여종 이상의 책들이 파괴됐고 400∼500여종의 책은 공식적 명령에 의해 개정됐다. 이는 ‘사고전서’ 편찬이 서지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과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책을 수집하고, 수정하고, 검열하는 과정이 더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청대 고증학이 만주족 통치자들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발전하게 된 수동적 학문이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사고전서’ 편찬의 주요 목적은 검열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사고전서’ 검열이 체계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고 검열의 진행 과정도 학자와 국가의 상호반응에 의해 이뤄진 복합적인 결과일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전대미문 또는 세계 최대의 출판 프로젝트로 평가되는 ‘사고전서’ 편찬사업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절대적인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최영창기자) 

09. 01. 31.  

 

P.S. 청나라의 치세를 다룬 책으로 조너선 스펜스의 <강희제>(이산, 2001), <반역의 책: 옹정제와 사상통제>(이산, 2004), 그리고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제>(이산, 2001)가 떠오른다. 이번에 나온 책들과 같이 묶어서 통독하면 대청제국에 대한 그림이 조금더 자세하게 그려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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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을 이끈 책의 문화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25 09:58 
    서지학에 과문한지라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중국 서지학의 고전도 출간됐다. 섭덕휘의<서림청화>(푸른역사, 2011). '중국을 이끈 책의 문화사'란 부제가좀더 다가가기 편하다('중국책'이라곤 하지만 당연히 조선의 지식인들과 무관하지 않았다). 켄트 가이의 <사고전서>(생각의나무, 2009)에 대한 욕심이 다시 생긴다. 뤄슈바오의 <중국 책의 역사>(다른생각, 2008)도 배경이돼줄 수 있겠다. 수년 전 중국여행 시 소주
 
 
노이에자이트 2009-01-31 22:29   좋아요 0 | URL
만주 문자로 된 수많은 서적들이 잠자고 있다고 합니다.만주어 해독자가 이제 없어졌다는 말도 있구요.엄청난 대제국을 건설했는데 이젠 만주족도 없어진거나 마찬가지라고 하네요.한때 만주문자를 공부해서 청나라 역사서 연구하러 중국에 가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다 헛된 꿈이 되었습니다.

로쟈 2009-02-01 00:37   좋아요 0 | URL
중국에서마저 연구자가 없다는 건 의외인데요. 한데, 한국에선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있으셨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2-01 01:33   좋아요 0 | URL
70년대에 만주문자 해독할 줄 아는 사람이 중국에 몇 명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고 하더라구요.만주족도 만주어를 모르니까요.예전 서울대 외교학과 이용희 씨가 만주어를 해독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분도 고인이 된지 10년이 넘었구요.
제가 먹고 사는 일에 관해선...비밀주의를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로쟈 2009-02-01 10:47   좋아요 0 | URL
동양사 전공자들 가운데에서도 없다면 좀 의외이면서 나름 심각한 문제겠는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2-01 15:09   좋아요 0 | URL
소수민족의 언어가 사라지면서 닥치는 문제점 중의 하나가 그런 것 같아요.한때 대제국을 건설한 만주족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몰락할 수 있는지 참 서글퍼요.

로쟈 2009-02-01 21:39   좋아요 0 | URL
몰락이야 자연사에 속할 수 있지만 그걸 기억/보존하는 건 다른 문제일 텐데 좀 유감이예요...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유문화사, 2009)이란 책이 출간됐다. 흔한 컨셉이어서 타이틀만으로는 저자를 쉽게 떠올리기 어렵지만, 저자가 <오픈북>(을유문화사, 2007)의 '마이클 더다'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책.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서평 전문기자이면서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이력의 소유자다. 어쩌다 보니 서평 원고를 자주 쓰게 되는데, 또 그러다 보니 '최고의 서평가'가 쓰는 서평은 어떤 것일까란 호기심도 생긴다. 그래서 며칠전 기사를 보고 엊그제 대형서점을 찾았다가 허탕을 치고, 어제 동네서점에서 손에 들 수 있었다. <오픈북> 때와는 달리 이번엔 번역본의 표지가 원서보다 낫다. '서평'보다는 '즐거움'에 방점이 놓인 책이어서 편하게, 더디게 읽을 수 있을 듯. 만년에는 나대로의 즐거움을 기록해보고 싶다...

한국일보(0. 01. 31) 고전 앞에서 고전하는 독자에게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단테의 <신곡>,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고전,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작가와 작품 목록이다. 여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이들 책은 긴 분량과 딱딱한 내용 때문에 책을 펼치려는 일반 독자들을 주저하게 만들고, 괴롭히는 것도 사실이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열두 살 때 이런 목록으로 가득찬 고전안내서를 읽고 이후 목록에 있는 책들을 섭렵하며 문학평론가이자 출판저널리스트가 된 마이클 더다(61ㆍ사진)는 이런저런 고전들은 건너뛰고, 또 새롭고 덜 알려진 고전들을 소개하는 안내서를 쓴다. <고전 읽기의 즐거움>은 그 산물이다.

 

80여 명의 작가가 소개돼 있는데, 선정의 기준은 제목 그대로 '즐거움'과 '다양함'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같은 잘 알려진 고전들도 있지만,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같은 과학소설, 애거사 크리스티나 코넌 도일의 추리소설, 심지어는 영국의 문필가 H W 파울러가 쓴 <현대영어 용법사전> 같은 책까지 포함돼 있다.

저자는 코넬대에서 프랑스문학과 중세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8년부터 워싱턴포스트에 서평과 문학기사를 기고해왔다. 오랜 신문 기고에서 쌓은 내공으로 그는 이 책에서 작가의 인상적인 에피소드나 격언 등을 적절히 제시하며 독자들의 흥미를 유도하는 등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묘미를 보여준다. 가령 사포의 연애시를 소개하면서 "어떤 시의 파편은 단 두 마디로 되어있다. '여기'라는 단어가 나오고 한참 뒤에 '다시'라고만 되어있다.

이 두 단어를 읽으면 어떤 텅빈 공간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정사를 상상하게 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또 <타임머신>의 저자 H G 웰스를 소개하면서는 "결국 과학소설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뿐 아니라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리려는 문학이다"라는 독창적 해설을 곁들인다. 고전 앞에서 고전하는 독자들을 위한 독특한 독서지침서다. 원제 'Classics for pleasure'(2007).(이왕구기자) 

09. 0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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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1-31 11:07   좋아요 0 | URL
로쟈님은 동네에 서점이 있나 봅니다.
저희는 몇년 전부터 없어졌는데...
가끔 동네 서점이 그립기도 하더라구요.
있을 땐 몰랐는데 없어지고나니 왜 그리 허전한지...
하긴 있어도 거기 있나 보다하지 막상 이용은 안하게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동네 서점은 추억이란 여간해서 안 없어지네요.
이러다 로망이 되는 건 아닌지.ㅎㅎ

로쟈 2009-01-31 11:11   좋아요 0 | URL
'동네서점'이라고 적었는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역서점'입니다. 전철역 앞에 있는 중형서점이고, 나름 체인입니다. 주문해야 들어오는 신간이 많아서 제가 '동네서점'이라고 부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1-31 14:07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서점은 책분류가 엉망이예요 쩝 --;;

로쟈 2009-01-31 14:51   좋아요 0 | URL
분류의 원칙을 정하기가 사실 어렵죠. 동선이나 편의성도 고려해야 해서요. 집에서 꽂아놓을 때부터도 그렇습니다.^^;

놀이네트 2009-01-31 18:50   좋아요 0 | URL
책이라면 고전을 좀 읽어봐야하고 놀이라면 전래놀이에 좀 빠져봐야죠. ^^
예전에 로쟈님 따님에 대한 포스팅(덧글이었나?)이 있었던 게 생각나 몇 줄 남깁니다.
아이들이 책과 놀이를 마음껏 접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하는데요.
책에 관해서는 일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놀이는 영 그렇더군요.
아마 서포트해줄 산업이 전혀 없다는 차이 때문인 듯 합니다.
여하간 www.playkorea.net에 함 놀러 오셔서 둘러보시고 배너라도 달아주신다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참 저는 01년생과 03년생 딸 둘과 함께 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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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마음껏 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권리나 인권을 넘어서는 또다른 생명입니다.
놀이네트는 이 단순한 메시지를 송출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적으로 합니다.
또한 새로운 과거이자 오래된 미래인 놀이생태계를 최적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로쟈 2009-02-01 21:3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노는 데는 소질이 없는 편입니다.^^; '놀이생태계'라는 말이 신선하네요. 좋은 성과가 있으시길...

Kir 2009-02-01 15:42   좋아요 0 | URL
어릴 적에는 서점있는 동네에 살았는데, 어느새 서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곳에 산 지 오래되었네요. 주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고 있으니 불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가할 때 조용한 서점 구석에서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언젠가부터는 작정하고 날을 잡아서 대형서점으로 나가야만 가능한 일이 되었어요.

로쟈 2009-02-01 21:38   좋아요 0 | URL
색깔있는 전문서점들이 생기면 대형서점에 밀려나지 않을 것도 같은데요. 일단은 책들을 사야 말이죠.^^;
 

국내 필자가 쓴 지젝론으로는 권택영 교수의 <잉여쾌락의 시대>(문예출판사, 2003) 이후 두번째 책이 얼마전에 나왔다. 독일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김현강 박사의 <슬라보예 지젝>(이룸, 2009)이 그것인데, '누구나 철학' 시리즈로는 상당히 오랜만이다. 책에 대한 서평기사가 좀 뒤늦게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이미 몇 권의 소개서가 나와 있어서 국내 필자(아니 독일에 체류중이니'국외 필자'라고 해야 할까?)의 저작이라는 점 외에 어떤 장점이 있을까 싶지만, 번역서가 아니어서 좀더 편하게(혹은 정확하게) 전달될 수는 있을 듯싶다.   

한겨레(09. 01. 31) 지젝 “해체된 저항주체를 되살려라”

이룸출판사의 ‘누구나 철학총서’의 하나로 나온 김현강(독일 본대학 철학박사)씨의 <슬라보예 지젝>은 철학자 지젝에 관한 단출하지만 밀도 있는 안내서다. ‘레볼루션스’ 시리즈의 <로베스피에르> <트로츠키> <마오쩌둥> 서문의 배경을 이루는 지젝의 철학적 바탕과 정치적 지향이 일목요연하게 서술돼 있다.

이 책의 설명을 따르면, 지젝의 대결 상대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이다. 지젝은 이들의 철학이 주체를 해체함으로써 저항의 거점도 동시에 해체했다고 비판한다. 근대적 주체 이념이 인간을 해방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억압과 구속에 빠뜨렸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해체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지젝이 보기에 이들은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함께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철학이 주체성을 해체한다면 이와 더불어 주체마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 지젝의 문제의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젝이 해체주의자들의 작업을 모두 일소에 부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해체 작업이 이루어낸 성과는 성과대로 보존하면서 저항과 혁명의 주체를 되살리는 방안을 찾는 것이 지젝의 목표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젝이 주체를 되살리는 작업에 동원하는 주요 사상으로 꼽히는 것이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 독일 관념론의 종합인 헤겔 철학,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이다. 이 책은 이 사상들을 차례로 답사함으로써 지젝 이론의 핵심으로 다가간다. 지은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지젝이 재구축하고자 하는 주체의 특성이다. 지젝은 근대 철학이 상정했던 자기완결적이고 충만한 주체는 없다는 해체주의적 관점을 수용한다. 주체는 균열과 틈새와 단절을 내장한, 내적 불화를 겪는 주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주체가 말하자면, 지젝 저작의 제목이기도 한 ‘까다로운 주체’다. 이 주체는 그런 불완전성 속에서도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주체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입론에 기대어 지젝은 세계 질서에 변화를 가져올 행동의 주체를 불러들인다.

더 나아가 지젝은 이 주체를 통해 정치를 다시 사유하고 있다. 오늘날 정치의 문제는 진정한 정치적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고 지젝은 말한다. 그 이유를 지젝은 “경제의 탈정치화”에서 찾는다. 자본과 시장의 문제를 정치와는 무관한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야말로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 지점에서 지젝은 경제적 차원의 갈등, 다시 말해 계급갈등을 정치의 문제로 복권시키고 이 계급갈등을 다른 갈등보다 우위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사회적 갈등이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거쳐 그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만난다. 요약하자면, 주체를 복원하고 그 주체를 통해 계급갈등이라는 근본모순을 해결하는 정치를 실천하는 길을 찾는 것이 지젝의 관심사인 것이다.(고명섭 기자)  

09. 01. 30.  

P.S. 저자가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탓이겠지만 부록의 참고문헌이나 후주에서의 인용문헌에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먼저, 참고문헌에는 원서와 국역본이 병기돼 있는데, 실수인지 고의인지 일부 번역본이 누락됐다(사실 출간된 번역본이야 알라딘에서 '지젝'을 한번이라도 검색해보면 다 알 수 있다). 그래서 알렌카 주판치치의 <실재의 윤리>(도서출판b, 2004)가 <실재의 윤리학>으로, 미란 보조비치의 <암흑지점: 초기 근대철학에서의 응시와 신체>(도서출판b, 2004)가 <완전히 까만 점: 현대 초기 철학에서의 응시와 신체>로 표기됐고,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새물결, 2008)는 <누가 전체주의를 말했는가?>로 표기됐다.  

 

비록 원제와는 다른 제목이 붙여지긴 했지만 <죽은 신을 위하여: 기독교 비판 및 유물론과 신학의 문제>(길, 2007)는 <인형과 난장이: 기독교의 변태적 핵심>으로만 표기됐고, <지젝이 만난 레닌: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교양인, 2008)는 <혁명이 문전에 와 있다: 1917년 이후의 레닌 작품선>이라고 표기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1917년 이후'가 아니라 '1917년'의 레닌 문선이다. 그리고 <진짜 눈물의 공포>(울력, 2004)는 <The Fright of Real Tears: Krzysztof Kieslowski between Theory and Post-Theory>를 옮긴 것인데, 부록에는 지젝 편저의 <The Fright of Real Tears: The Uses and Misuses of Lacaan in Film Theory>(2000)와 <The Fright of Real Tears, Kieslowski and the Future>(2001)라는 엉뚱한 책 이름이 두 권이나 들어가 있다. 저자나 편집자의 착오가 아닌가 싶다.  

후주에서는 헤겔과 칸트, 니체, 비트겐슈타인의 인용 쪽수를 독어 원전을 근거로 표시해주고 있는데, 국역본을 이용하거나 국역본의 쪽수도 병기해주는 것이 '입문서'의 에티켓 아닐까(게다가 저작명도 독어만을 써주고 있다). 이것도 원칙이 있는 건 아니어서 프로이트는 영역본과 독어본을 왔다갔다하고, 라캉의 경우엔 <에크리>는 불어본을 <세미나>는 영어본을 참조해야 한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우리말로 번역돼 있지만 독역본을 참고해야 하고, 울리히 벡은 독어본으로 읽어야 한다. 아무래도 독자에 대한 고려나 감이 좀 부족하달 수밖에 없다.    

 

참고로, 현재 국내에 소개돼 있는 지젝 입문서로는 토니 마이어스, 사라 케이, 이안 파커 세 사람의 책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초심자가 읽을 수 있는 건 마이어스 정도가 아닐까 싶고(사라 케이의 책은 번역도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 그것도 지젝의 책을 한두 권은 읽은 뒤에야 흥미를 갖고 따라갈 수 있지 않나 싶다. 그 마이어스의 책에는 친절한 문헌 소개가 붙어 있는데, <믿음의 대하여>에 대해서는 "지젝의 다른 저작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그래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라고 소개한다. 정확하게 말하는 그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이고, 예전에 지적한 대로 국역본은 최악의 번역이어서 거의 읽을 수가 없다. 이런 것이 한국(어)의 핸디캡이다.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책을, 읽다가 집어던져야 하는 나라에서 그래도 공부를 해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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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AV 2009-01-3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는 되게 오랜만에 출간이 되었네요.

로쟈 2009-01-31 00:32   좋아요 0 | URL
네, 끊어진 걸로 알고 있었어요...

비로그인 2009-01-3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니 마이어스의 지젝... Slavoj Zizek (Routledge Critical Thinkers) Routledge; 1 edition (December 3, 2003) 이것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로쟈님에 의해 관심이 발동해서 지금 이 책을 주문했습니다. ^^

로쟈 2009-01-31 00:32   좋아요 0 | URL
혹시 오역본으로 아신 건가요?...

비로그인 2009-01-31 00:56   좋아요 0 | URL
아뇨, 제가 지젝에 대해 잘 몰라서요. 좀 알아보려고요. 그런데 써놓으신 것을 보니 마이어스의 책이 적당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로쟈 2009-01-31 01:02   좋아요 0 | URL
제가 처음으로 읽은 건 <향락의 전이> 같은 책입니다. 사실 입문서들보다는 지젝 자신의 책이 더 재미있습니다. 사라 케이의 책은 고급 입문서이고, 이안 파커의 책은 '비판적 입문서'입니다. 마이어스의 책은 평이한 입문서이고요...

비로그인 2009-01-3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토니 마이어스의 지젝 국역본이 그렇게 엉터리이던가요? 이 지구 반대편에서까지 그 분노가 느껴지는 것을 보면요...^^;

로쟈 2009-01-31 00:32   좋아요 0 | URL
<믿음에 대하여>가 엉터리 번역이란 말씀인데요.^^;

비로그인 2009-01-3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마이어스가 'Slavoj Zizek'이라는 책에서 지젝의 On Belief (Thinking in Action)가 "지젝의 다른 저작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그래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라고 한 거군요. 그리고 이 책 <믿음에 대하여 On Belief>의 국역본이 엉터리라는 거구요. 하하하...^^ 제가 잘못 읽었군요. 이 두 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느 것이 좋을까요? 물론 저자를 알려면 저자의 작품을 직접 읽어야겠지만... 그래도 다른 읽을 책이 산적해 있으니 '알짜'를 골라야겠네요...

비로그인 2009-01-31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락의 전이>를 언급하신 댓글을 읽고 다시 씁니다. 그럼 지젝 자신의 책 중 가장 재미있고 relevant 한 책을 한 권 권하신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영어 단어를 써서 미안합니다. 이 단어는 참 '곤란'한 단어라서...)

로쟈 2009-01-31 01:15   좋아요 0 | URL
그건 관심사에 따라 다를 듯싶은데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혁명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등. <향락의 전이>에는 여성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죠.^^

비로그인 2009-01-31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데올로기 혹은 신학에 관한 거라면 어떨까요? 제가 근래 몇 년 동안 신학과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책을 읽었거든요... 하지만 먼저 지젝이라는 인물의 사상에 대해 개괄해서 알고 싶은데... 그러자면 마이어스라는 사람의 책이 그 역할을 할까요?

로쟈 2009-01-31 10:22   좋아요 0 | URL
신학 관련으론 <죽은 신을 위하여>가 좋을 듯싶은데요. 원제는 <꼭두각시와 난쟁이>입니다.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에 나오는...

열매 2009-01-31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관한 내용은 아닌데요, 혹 책을 살펴보려 이미지를 클릭할 때 화면이 책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아닌, 따로 창을 열어 보여주는 방식은 선택가능한 것이 아닌가요?
소개해주시는 기사를 읽으며 책을 자주 클릭해보는데, 화면이 바뀌니 여러 면으로 불편합니다. 개선할 방법이 없는지요? 저는 서재를 통 안다루어봐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엔미블루 2009-01-31 07:34   좋아요 0 | URL
저는 따로 창이 나옵니다...인터넷옵션-->도구-->고급 에서 기본값 복원을 한번 해보시지요..

BusterKeaton 2009-01-31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에 대한 입문으로는 어떤 책이 좋을지, 추천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로쟈 2009-01-31 10:20   좋아요 0 | URL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 어려우시면 <하우투리드 라캉> 같은 책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지젝이 만난 레닌>도 좋겠습니다...

푸른바다 2009-01-31 11:59   좋아요 0 | URL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번역본은 이미 희귀본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새책은 절판이고 헌책방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네요^^

나의왼발 2009-01-3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딱하게 보기 한글판은 번역이 괜찮은가요?

로쟈 2009-01-31 10:18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읽은지라... 제일 처음 나온 번역서라서 전문용어들이 요즘과는 좀 다릅니다. 전반부는 괜찮고 민주주의를 다룬 후반부는 오역이 좀 있었던 듯싶네요...

옥점 2009-01-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락의 전이>는 개역판도 오역으로 말이 많던데요..게다가 책값도 올렸고.
읽을 수 있는건가요?

로쟈 2009-01-31 12:09   좋아요 0 | URL
차라리 원서가 읽기 쉽습니다.^^;
 

'레볼루션' 시리즈에 대한 서평기사가 이번주에 뜨는 듯하다. 마이리스트로만 만들어두었는데, 관련기사도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로는 연휴의 자투리 시간에 <마오쩌둥>에 붙인 지젝의 서문을 읽었는다. 마오의 혁명론뿐만 아니라 지젝의 혁명론을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글이었다(시간이 나면 정리해서 올려두고 싶다).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상상력'이 필요한 분들은 나머지 다섯 권이 마저 출간되기 전까지 1차분 다섯 권 가운데 최소한 한두 권 정도는 읽어보시길 바란다.  

경향신문(09. 01. 31) 혁명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상상력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혁명가들에게 ‘혁명(Revolution)’이란 무엇이었을까. 마오쩌둥은 “실천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며, 실천을 통해 진리를 검증하고 발전시키라”라고 했고, 공포정치의 대명사 로베스피에르는 “덕이 없는 공포는 재난을 부르고, 공포가 없는 덕은 무력하다”고 말했다. 예수는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했고, ‘영구혁명론’을 주장한 트로츠키는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려면… 오로지 피와 강철뿐”이라고 했다.  


마오쩌둥, 로베스피에르, 호찌민, 예수, 트로츠키(사진 왼쪽부터)

<레볼루션 시리즈>는 예수부터 카스트로까지 시대적·사상적·정치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독해되는 혁명가들의 불꽃 같은 사유와 상상력을 담은 원전들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영국의 좌파 출판사 버소(Verso)가 2007년부터 출간하고 있는 시리즈를 번역 출간했다. 이번에 마오쩌둥·로베스피에르·호찌민·예수·트로츠키 등 5권이 나왔고 올해 안에 카스트로·토머스 제퍼슨·시몬 볼리바르·토머스 페인·마르크스 등 5권이 나올 예정이다.  

시리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원전의 함의와 그 현재적 의미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40~50쪽에 이르는 서문. 슬라보예 지젝, 테리 이글턴, 알랭 바디우, 타리크 알리 등 이 시대의 진보적 지성들이 혁명가들의 육성이 어떻게 지금까지 새로운 혁명에 대한 영감을 주고 있는지를 풀어냈다.  



특히 세계 철학계의 스타 슬라보예 지젝은 마오쩌둥·로베스피에르·트로츠키의 서문을 썼다. 지젝은 ‘무질서의 왕, 마오쩌둥’에서 “혁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부정이라는 ‘가무한(假無限)’ 속으로 빠져들어야 했다”면서 “이것은 문화대혁명에서 정점에 도달했다”고 밝힌다. ‘로베스피에르, 혹은 공포라는 신성한 폭력’에선 로베스피에르의 사상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순수에의 의지’를 짚어내면서 그의 사상이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급진적 자유주의 아래 놓여 있는 동시에 그것의 한계 역시 배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트로츠키>에는 스탈린 테르미도르에 대한 반(反)관료적·자유주의적 비판자와 ‘영구혁명’을 주장하는 ‘방랑하는 유대인’ 등 이질적인 모습으로 각인된 트로츠키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테러리즘과 공산주의’가 실렸다.  

지젝은 서문에서 이 책이 1930년대 스탈린주의를 예견하게 하는 많은 메시지들이 녹아 있는 “징후적 텍스트”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스탈린에게 레닌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외설적 영혼’ ‘권력의 도구가 되어 인공적으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영혼’으로 영원히 산다면 트로츠키에게 레닌은 “같은 이데아를 위해 투쟁하는 민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살아 있다”고 말한다.  



혁명가의 반열에 예수가 올라 있는 것도 이채롭다. 영국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서문에서 ‘예수는 혁명가였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예수는 레닌이나 트로츠키보다 더 우월하기도 하고 열등하기도 한 혁명가”라고 밝힌다. 자신이 맞섰던 권력구조의 전복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선 레닌이나 트로츠키에게 뒤지지만 그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완벽한 존재양상에 의해 기존 권력구조가 일소되리라 기대했다는 점에선 우월하다는 설명이다.

시리즈 발간의 의미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쓴 ‘발간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혁명에 대한 올바른 독법은 거대담론의 극적 도식을 해체하고 그 속에 묻혀 있는 인간의 진정성에 접속하는 일이다. 그것은 현실의 건너편을 사고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그것은 오늘날 목도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김진우기자) 

09. 01. 30.   

P.S. 한겨레의 서평기사는 지젝의 로베스피에르론에 대해서 짚어주고 있다. 횃불을 든 5인의 혁명가 그래픽이 볼 만하다!..  

 » 마오쩌둥, 호치민,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예수, 레온 트로츠키(왼쪽부터). 슬라보예 지젝은 이 혁명가들의 실천을 비판적으로 반복할 필요가 있다며 혁명을 상상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말한다.  

한겨레(09. 01. 31) 해방 위한 창조적 혁명을 꿈꿔라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 출판사 ‘버소’에서 2007년 펴낸 ‘레볼루션스’ 시리즈 가운데 다섯 종이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 <마오쩌둥-모순론·실천론> <로베스피에르-덕치와 공포정치> <호치민-식민주의를 타도하라> <예수-가스펠> <트로츠키-테러리즘과 공산주의>는 이 시리즈가 제목 그대로 ‘혁명가들의 말과 글’을 텍스트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레시안북은 이 책들에 이어 올해 안에 나머지 다섯 종, <피델 카스트로> <토머스 제퍼슨> <시몬 볼리바르> <토머스 페인> <마르크스>를 펴낼 예정이다.

이 시리즈는 원텍스트 앞에 저명한 지식인들의 긴 서문이 붙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오늘날 이 오래된 글들이 왜 다시 읽혀야 하는지 소개하는 글이다. 이 글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세계 철학계의 스타 슬라보예 지젝이 쓴 서문들이다. 지젝은 지난 200년의 근대 혁명의 인격적 대리자라 할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레온 트로츠키, 마오쩌둥 세 사람을 재해석함으로써 이 시리즈의 근본 의도를 도드라지게 보여주고 있다.  

시리즈가 발간된 2007년도면,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결코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처럼 세계를 지배하고, 반자본주의적 혁명 열정은 주눅이 들어 ‘제3의 길’ 따위 패배적 타협책에 안주하던 때다. 그런 상황은 본질적으로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전망 상실의 시대에 지젝은 혁명을 재사유하자고 이야기한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지젝이 혁명을 재사유하는 방식에 있다. 로베스피에르·트로츠키·마오쩌둥의 텍스트들이 보여주는 대로 지젝은 이들의 주장과 실천에서 ‘독재’와 ‘공포’를 사유의 중심으로 삼는다. 오랫동안 진보파들이 외면하고 회피했던 문제를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지젝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는 혁명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지젝의 문제의식은 앞서 그가 편집하고 긴 해제를 단 레닌의 텍스트(<지젝이 만난 레닌>)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텍스트에서 지젝은 레닌을 통해 러시아혁명을 다시 사유하자며 이렇게 말한다.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은 레닌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닌을 되풀이하는 것은 ‘레닌이 죽었다’는 것, 그의 특수한 해법이 실패했다는 것, 그러나 그 안에 구해낼 가치가 있는 유토피아적 불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로베스피에르·트로츠키·마오쩌둥은 레닌의 기원이고 변주이며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세 혁명가를 다시 사유한다는 것은 이들의 실패한 해법 안에 유토피아적 불꽃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시인하고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드는 일이 된다.

지젝이 해석하는 로베스피에르는 근대 정치혁명의 출발이자 원형이다. 근대의 거의 모든 급진적 혁명은 로베스피에르가 이끌었던 자코뱅파의 혁명 원리를 이어받았다. 말하자면 로베스피에르는 자코뱅주의 공포정치·독재정치의 기원적 모델을 제공한 사람이다. 자코뱅주의야말로 근대 혁명의 핵심 인자였던 셈이다. 여기서 지젝은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1793년 없는 1789년’, 다시 말해 자코뱅의 공포정치가 없는 프랑스 혁명을 옹호하는 데 대해, ‘카페인이 제거된 커피’를 옹호하는 것과 같은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로베스피에르는 온건파 당통을 두고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는데, 지젝이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포를 혁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덕이 없는 공포는 재난을 부르고, 공포가 없는 덕은 무력합니다. 공포는 신속하고 엄격하고 강직한 정의의 다른 말입니다.” 로베스피에르 연설의 특징은 ‘상반된 것들의 역설적 일체화’에 있다. “인류의 압제자를 응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비로운 일이요, 그들을 용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야만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혁명의 본질에 들어 있는 이 ‘공포’(테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다. 지젝은 공포가 정치적 해방에 필수요소로 깃들어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코뱅파가 한없이 과격해지고 극단화한 데는 어떤 무능력이 깔려 있었다고 진단한다. 다시 말해, 사적 소유의 철폐와 같은 경제적 차원의 평등을 실현할 수 없었던 이 부르주아 혁명가들이 그 문제를 미봉하고 정치적 차원에서 정의를 실현해보려 몸부림치다 나타난 결과가 대공포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로베스피에르를 겨냥해 ‘선한 테러리스트’, ‘덕을 집행하는 악마’라고 규정한다. 그런 식의 규정은 트로츠키와 마오쩌둥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이런 규정은 냉소적이기만 한 것일 뿐 자유와 해방에 대한 신념은 결여한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젝은 말한다.

지젝은 철학자 헤겔이 <역사철학 강의>에서 프랑스혁명을 두고 했던 발언이야말로 진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프랑스혁명은) 영광스러운 정신적 여명이다. 사고하는 존재가 모두 이 시대의 환희를 나누었다. 고귀한 감정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정신적 열정이 전 세계를 흥분시켰다. 마치 신과 세상이 처음으로 화해한 듯했다.” 헤겔의 이런 평가는 러시아 10월혁명과 이후 중국혁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지젝은 말한다. 그는 근대의 주요한 급진 혁명들이 공포와 독재라는 본질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본질을 단순히 부정해야 할 대상이 아닌 헤겔적 의미에서 ‘지양’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한다. 그 문제에 담긴 해방적·창조적 내용을 보존하되 거기에 스며든 독성은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이 다소 추상적인 얼버무림으로 들리지만, 지젝의 강조점은 혁명을 상상하고 실천하기를 두려워해서는 해방은 오지 않는다는 지점에 놓여 있다. 두려움이야말로 상상력의 적이라고 지젝은 말한다.(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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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01-30 18:14   좋아요 0 | URL
저도 재작년에 <마오쩌둥>과 <트로츠키>에 붙인 지젝의 서문들을 읽고 이리저리 엮어 한 번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던 차, 로쟈님이 써주실 글을 학수고대하고 있어야겠습니다.^^

로쟈 2009-01-30 18:51   좋아요 0 | URL
요즘 같은 '생존 스케줄'로는 언제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미친 척하지 않는 한...^^;

비로그인 2009-01-30 19:37   좋아요 0 | URL
마오쩌둥에 대한 지젝의 서문 요약, 저도 읽어보고 싶군요. 그 살인적인 스케줄에 부담을 드려서 미안합니다만... ^^ "거대담론의 극적 도식을 해체하고 그 속에 묻혀 있는 인간의 진정성에 접속하는 일... 그것은 현실의 건너편을 사고하는 일이기도 하다." 신영복 교수님의 이 말씀 좋군요. '거대담론'에서는 희망을 느끼지 못하지만 '인간의 진정성'이라는 말과, '현실의 건너편'이라는 말에서 희망의 가는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전자에서도 그 빛이 잘 안보이는 듯하지만요...

로쟈 2009-01-31 14:48   좋아요 0 | URL
준비하는 자들의 모습이 다른 이들에겐 빛이 될 수도 있겠지요.^^

2009-01-30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31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