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의 즐거움>(을유문화사, 2009)이란 책이 출간됐다. 흔한 컨셉이어서 타이틀만으로는 저자를 쉽게 떠올리기 어렵지만, 저자가 <오픈북>(을유문화사, 2007)의 '마이클 더다'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책.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서평 전문기자이면서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이력의 소유자다. 어쩌다 보니 서평 원고를 자주 쓰게 되는데, 또 그러다 보니 '최고의 서평가'가 쓰는 서평은 어떤 것일까란 호기심도 생긴다. 그래서 며칠전 기사를 보고 엊그제 대형서점을 찾았다가 허탕을 치고, 어제 동네서점에서 손에 들 수 있었다. <오픈북> 때와는 달리 이번엔 번역본의 표지가 원서보다 낫다. '서평'보다는 '즐거움'에 방점이 놓인 책이어서 편하게, 더디게 읽을 수 있을 듯. 만년에는 나대로의 즐거움을 기록해보고 싶다...

한국일보(0. 01. 31) 고전 앞에서 고전하는 독자에게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단테의 <신곡>,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고전,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작가와 작품 목록이다. 여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이들 책은 긴 분량과 딱딱한 내용 때문에 책을 펼치려는 일반 독자들을 주저하게 만들고, 괴롭히는 것도 사실이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열두 살 때 이런 목록으로 가득찬 고전안내서를 읽고 이후 목록에 있는 책들을 섭렵하며 문학평론가이자 출판저널리스트가 된 마이클 더다(61ㆍ사진)는 이런저런 고전들은 건너뛰고, 또 새롭고 덜 알려진 고전들을 소개하는 안내서를 쓴다. <고전 읽기의 즐거움>은 그 산물이다.

 

80여 명의 작가가 소개돼 있는데, 선정의 기준은 제목 그대로 '즐거움'과 '다양함'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같은 잘 알려진 고전들도 있지만,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같은 과학소설, 애거사 크리스티나 코넌 도일의 추리소설, 심지어는 영국의 문필가 H W 파울러가 쓴 <현대영어 용법사전> 같은 책까지 포함돼 있다.

저자는 코넬대에서 프랑스문학과 중세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8년부터 워싱턴포스트에 서평과 문학기사를 기고해왔다. 오랜 신문 기고에서 쌓은 내공으로 그는 이 책에서 작가의 인상적인 에피소드나 격언 등을 적절히 제시하며 독자들의 흥미를 유도하는 등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묘미를 보여준다. 가령 사포의 연애시를 소개하면서 "어떤 시의 파편은 단 두 마디로 되어있다. '여기'라는 단어가 나오고 한참 뒤에 '다시'라고만 되어있다.

이 두 단어를 읽으면 어떤 텅빈 공간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정사를 상상하게 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또 <타임머신>의 저자 H G 웰스를 소개하면서는 "결국 과학소설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뿐 아니라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리려는 문학이다"라는 독창적 해설을 곁들인다. 고전 앞에서 고전하는 독자들을 위한 독특한 독서지침서다. 원제 'Classics for pleasure'(2007).(이왕구기자) 

09. 01. 31.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9-01-31 11:07   좋아요 0 | URL
로쟈님은 동네에 서점이 있나 봅니다.
저희는 몇년 전부터 없어졌는데...
가끔 동네 서점이 그립기도 하더라구요.
있을 땐 몰랐는데 없어지고나니 왜 그리 허전한지...
하긴 있어도 거기 있나 보다하지 막상 이용은 안하게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동네 서점은 추억이란 여간해서 안 없어지네요.
이러다 로망이 되는 건 아닌지.ㅎㅎ

로쟈 2009-01-31 11:11   좋아요 0 | URL
'동네서점'이라고 적었는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역서점'입니다. 전철역 앞에 있는 중형서점이고, 나름 체인입니다. 주문해야 들어오는 신간이 많아서 제가 '동네서점'이라고 부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1-31 14:07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서점은 책분류가 엉망이예요 쩝 --;;

로쟈 2009-01-31 14:51   좋아요 0 | URL
분류의 원칙을 정하기가 사실 어렵죠. 동선이나 편의성도 고려해야 해서요. 집에서 꽂아놓을 때부터도 그렇습니다.^^;

놀이네트 2009-01-31 18:50   좋아요 0 | URL
책이라면 고전을 좀 읽어봐야하고 놀이라면 전래놀이에 좀 빠져봐야죠. ^^
예전에 로쟈님 따님에 대한 포스팅(덧글이었나?)이 있었던 게 생각나 몇 줄 남깁니다.
아이들이 책과 놀이를 마음껏 접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하는데요.
책에 관해서는 일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놀이는 영 그렇더군요.
아마 서포트해줄 산업이 전혀 없다는 차이 때문인 듯 합니다.
여하간 www.playkorea.net에 함 놀러 오셔서 둘러보시고 배너라도 달아주신다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참 저는 01년생과 03년생 딸 둘과 함께 삽니다. ^^;
------------------------------------------------------------
어린이는 마음껏 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권리나 인권을 넘어서는 또다른 생명입니다.
놀이네트는 이 단순한 메시지를 송출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적으로 합니다.
또한 새로운 과거이자 오래된 미래인 놀이생태계를 최적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로쟈 2009-02-01 21:3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노는 데는 소질이 없는 편입니다.^^; '놀이생태계'라는 말이 신선하네요. 좋은 성과가 있으시길...

Kir 2009-02-01 15:42   좋아요 0 | URL
어릴 적에는 서점있는 동네에 살았는데, 어느새 서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곳에 산 지 오래되었네요. 주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고 있으니 불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가할 때 조용한 서점 구석에서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언젠가부터는 작정하고 날을 잡아서 대형서점으로 나가야만 가능한 일이 되었어요.

로쟈 2009-02-01 21:38   좋아요 0 | URL
색깔있는 전문서점들이 생기면 대형서점에 밀려나지 않을 것도 같은데요. 일단은 책들을 사야 말이죠.^^;